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1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5 장


1


기원 8세기초, 지금으로부터 1209년전에 세계적인 대려행가인 마르코폴로와 콜롬브스보다 500~600년이나 앞서서 신라사람인 혜초가 세계려행을 하면서 중국 광동에 들린 때로부터 조선사람이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에 찾아간것은 몇번째였으며 계응상이 그들중의 몇번째로 이곳을 찾은 조선사람이였는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계응상이처럼 이 고장에 오래동안 머무르면서 중국의 유전학과 잠업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사업한 사람은 더는 없으리라.

《광명》호에 몸을 싣고 홍콩을 거쳐 광동에 도착한 계응상은 8년 3개월동안이나 이 남중국 최대의 항구도시에서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했다.

자립적인 과학연구사업에 나서서 첫 정열을 쏟아부은 그곳에서 계응상이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자상한 내용을 알길이 없다. 이제는 계박사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러 그가 이따금씩 지난날의 생활을 토막토막 이야기한것을 새겨두고있던 사람들도 삭막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몇마디씩 할뿐이다.

한 과학자가 걸어온 생활을 과장이 없이 진실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불가불 그때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을 더듬어 올라가보는것이 좋을듯 싶다.

1953년 초가을 계응상의 맏아들 계원삼이 우리 나라 농업성대표단성원의 한사람으로 중국을 방문하게 되였다. 원삼은 부친의 뜻을 쫓아 잠업부문학교를 마치였고 해방후에는 재령지장 책임자로 사업했다.

대표단일행은 중국동지들의 진지하고도 동지적인 환대를 받으며 장춘, 심양, 베이징을 거쳐 남중국의 광동에 도착하였다. 원삼은 비행장에 마중나온 시정부 농업부책임일군들을 통하여 부친의 잊지 못할 옛 친우인 량반걸교수가 중산대학 잠상학부 주임으로 사업하며 여전히 교편을 잡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계원삼은 초저녁에 량반걸교수의 집을 방문했다. 저녁해는 산너머로 넘어갔지만 정원에는 한낮에 달아오른 뜨거운 공기가 짙게 떠돌고있었다.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는 기별을 받고 마당까지 나와있던 량반걸이 차에서 내리는 원삼을 뜨겁게 포옹했다. 정정하긴 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눈밑의 군살이 드리우기 시작한 량반걸은 목이 메여 말했다.

《난 젊은 시절의 계응상이 환생하여 다시 나타났는가 했소. 신통히도 자네는 부친의 모습을 닮았구만.》

《선생님!》 원삼은 량반걸의 두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제가 조국을 떠날 때 부친은 광동에 찾아가 량반걸선생을 꼭 찾아뵙고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고맙네, 고마와.》

량반걸교수는 감구지회를 금치 못하며 손님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둥그런 식탁에는 이 고장 특유의 구운 오리며 련꽃뿌리볶음, 참대순료리 등 가장 귀한 손님들에게만 대접하는 음식들이 그들먹하게 차려져있었다. 네명의 대학교원들이 또한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며 식탁앞에 둘러앉았다.

《어서들 드십시오. 이 료리는 오리에 진흙을 발라 반겻동안이나 구워서 만든 우리 고장의 이름난 음식입니다.》

량반걸은 술잔에 모태주를 찰찰 넘치게 부어주면서 긴 저가락으로 구운 오리고기료리를 계원삼의 음식접시에 덧놓아주는것이였다.

《오늘은 제집에 돌아와 려로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것으로 생각하고 마음껏 마시고 즐기기를 바랍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량반걸의 어조에는 친혈육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따뜻한 인정미가 한껏 넘쳐흐르고있었다. 20여년전 그때에도 량반걸은 광동에 온 그의 부친을 이같이 진정을 다하여 보살펴주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다.

남방의 뜨거운 태양이 눈부신 빛발을 뿌리는 이른아침이였다. 량반걸은 원삼일행을 광동중심가에서 얼마쯤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있는 중개농공학교로 안내했다.

길차게 자란 참대나무며 월귤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있는 학교후원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빨간 벽돌로 지은 단층집 한채가 나타났다. 나무그늘이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운 마당귀에는 화강석으로 다듬어세운 크지 않은 비석이 서있었다. 상석우에 정성스레 다듬어세운 비석에는 《1930년 봄부터 1938년 10월까지 조선의 잠업과학자 계응상이 이 집에서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여 광동지구에 적응한 새로운 누에품종들을 십수종이나 육종하였다.》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뜨거운 눈길로 비문의 글발을 어루만지던 량반걸은 둥실한 얼굴에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부친은 초인간적인 의지를 지닌 보기드문 과학자였네. 그때 계선생이 여기에서 새로 육종한 누에품종들은 아직도 우리 광동지구에서 광범히 사육되고있네. 우리는 이것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네.》

비문앞에서 좀체로 자리를 뜰줄 모르는 량반걸의 모습은 그가 지난날 여기에서 생활하던 계응상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길이 추억하는가를 가슴 뭉클하도록 느끼게 했다.

량반걸교수는 일행을 집안으로 안내했다. 남향으로 낸 창문으로 은초사같이 눈부신 해발이 고요히 흘러들고있었다. 방 한쪽에는 참대로 엮은 교의가 놓여있고 거기에서 좀 새뜬 곳에는 밤빛대우가 오른 묵직한 책상이 자리잡고있었다.

그 책상우에는 결이 고운 나무로 조각품같이 다듬은 표찰이 놓여있는데 그 표찰에는 다음과 같은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조선의 잠학과학자 계응상박사가 사용하던 책상.》

일행은 활짝 열어젖힌 창문아래의 원탁앞에 빙 둘러앉아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홍차를 한모금씩 마시며 량반걸교수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계응상선생이 이 방에서 생활할 때에는 저 방문우에 시퍼렇게 날이 선 룡천검이 걸려있었소. …》

…광동은 중국의 남쪽관문이다. 조선의 대려행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인디아려행기라는 뜻)에는 페르샤에서 쓴 글의 한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부분이 있다.

…배길로 중국 광주땅에 가서 비단, 실 등속도 가져왔다. …

고대로부터 중국의 비단은 광동을 거쳐 싱가포르, 인디아, 이란, 멀리는 유럽까지 수출되였다. 그러나 계응상이 광동에 왔을 때 이 지대의 양잠업은 조상전래의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그러한것으로서 현대적인 과학적토대우에서 누에고치생산을 늘이기 위한 사업은 바야흐로 시작에 불과했다.

량반걸과 더불어 광동에 당도한 계응상은 우선 중국 각지에서 사육하고있는 수백종의 누에품종을 수집하여 순계로 분리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종래에는 양잠업자들이 같은 품종간의 누에들을 쌍붙이는것은 품종의 퇴화밖에 가져오는것이 없다고만 생각해왔다. 그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고유한 성질을 가진 품종을 뽑아내는것이야말로 유전의 법칙을 리용하여 우수한 1대잡종의 품종을 얻어내는데서 결정적인 조건이였다. 량반걸은 중개농공학교에 누에육종실험실을 꾸려놓고 새로운 누에품종들을 육종할수 있는 조건들을 서둘러 마련해놓았다. 그닥 알려지지 않은 이 학교 실험실이 큰 과학연구기관의 연구실 못지 않게 훌륭히 꾸려진데 대하여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량반걸과 계응상의 포부는 컸다. 그들은 최근년간 세계생물학계에서 달성한 최신성과를 리용하여 이 연구실에서 남중국에 적응한 생활성이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우량한 누에품종들을 수많이 육종하여 널리 보급할것을 계획했다. 또한 이 학교 잠상학과에서는 선진적인 누에1대잡종체계를 전반적으로 도입하는데 이바지할 새로운 일군들을 키워낼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한편 계응상은 중산대학 농학부교수로 초빙되여 전국각지에서 찾아온 재능있는 학생들에게 《유전학》과 《누에해부생리》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중국에서 자체로 1세대의 유전학자들을 키우기 위한 사업중의 한부분이였다고 할수 있었다.

그가 중산대학 종합강의실에서 현대과학이 이룩한 대발견의 하나인 유전자와 염색체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초파리를 가지고 염색체의 본거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시간이면 강의실에는 언제나 새로운 지식욕으로 불타는 대학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언제인가 량반걸은 다른 대학교원들과 함께 계응상의 누에해부생리시간에 교수참관을 하러 강의실로 들어갔다.

계응상은 앞탁우에 현미경을 놓고 가위와 칼로 누에를 해부하여 그 조직편을 떼놓았다. 그는 학생들을 한명한명 불러내여 누에의 조직편들을 자상히 관찰하도록 하고있었다. 손가락만 한 작은 누에속에 펼쳐진 신비의 세계는 학생들을 경탄시켰다.

이때 한 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생님! 개미누에때에도 비단실을 뽑아내는 견사선을 관찰할수 있습니까?》

흔히 새로 나타난 교수의 실력을 떠보기 위하여 대학생들이 던질수 있는 질문이였다. 량반걸은 긴장했다. 벼룩만 한 개미누에에서 견사선을 찾아내여 학생들에게 보여준다는것은 몇해동안 누에해부를 하여온 그로서도 금시초문이였다. 그런데 계응상은 침착한 태도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누에의 견사선은 개미누에때부터 명확히 볼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확대경들을 들고 앞으로 나오시오.》

질문을 한 학생과 몇몇 학생들이 앞으로 나갔다. 계응상은 해부침을 꺼내여 티끌만 한 개미누에의 머리언저리를 별로 겨누는것 같지도 않게 찔렀다가 꺼내면서 학생들의 눈가까이에 들어보이였다.

《자, 확대경으로 해부침끝을 보시오.》

학생들은 분주히 확대경을 들고 해부침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들은 저마다 경탄에 차서 부르짖었다. 《예, 분명 비단실이 얼른거립니다.》

자신만만하고도 정확한 그의 지식은 강의때마다 학생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계응상은 항상 자기의 강의안을 각국의 생물학자들이 이룩한 새로운 성과들로 보충하여 풍부하고도 생신한것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정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책상우에는 언제나 세계 각국의 생물학잡지들이 무둑히 쌓여있었다. 특히 자기의 전공분야인 실험유전학분야에 대해서는 일본의 다나까와 나가모도는 무엇을 하고있으며 프랑스의 아무개는 무엇을 하고있는가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있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 세계생물학계의 움직임이 손금처럼 환히 들여다보이군 했다.

이때에 이르러 중개농공학교에서는 선진국들의 생물학계에서 최신과학으로 개척하고있는 유전학이 벌써 신비한것이 아니였다. 호기심에 불타는 쟁쟁한 학생들앞에서 진행되는 누에의 교잡과 거기에서 분리되여나오는 누에를 계산하는것은 보통 사육공들도 수행하는 례사로운 실험으로 되였으며 특이한 광동누에의 형질을 지배하는 유전인자를 해명하고 새로운 누에품종을 육종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였다.

계응상은 량반걸과 의논하여 자체로 육종해내기 시작한 누에품종들을 중개 1, 2, 3… 등으로 이름을 붙이였다. 중개농공학교에서는 자체로 과학론문집을 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였다. 량반걸의 주선으로 《중개농공학교연구보고》라는 과학잡지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 연구보고에는 중국에서 집필한 계응상의 과학론문들이 체계적으로 실리였다.

랑반걸은 어느날 계응상이 샤레에 누에를 담아가지고 흥분하여 그의 방에 찾아왔던 일을 잊을수 없다.

《량선생, 이것 보시오. 〈대조〉품종을 순계분리하는 과정에 이런 새로운 계통을 발견했소.》

책상우에는 전에 볼수 없던 붉은 누에와 검은 누에, 기름누에들이 놓여있었다. 붉은 누에는 온대종으로 알려진 품종과 류사했으나 검은 누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것이였다.

계응상과 더불어 근 200여종의 누에품종들을 순계분리하여 고정시키게 되였을 때 량반걸의 기쁨은 헤아릴수없이 컸다. 그것은 장차 중국각지에 산재되여있는 누에들을 순계분리하고 그것들을 잘 조합시킨다면 여직껏 공상으로만 그려오던 훌륭한 누에품종들을 수많이 만들어낼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고있었다.

기억도 새로운 1933년 누에의 1사육기를 코앞에 둔 어느날 중개농공학교에는 광동시주변은 물론 호남성과 절강성의 한다하는 양잠업자들 20여명이 모여들었다.

량반걸은 응접실에 손님들을 청해들이고 차를 대접하면서 말을 꺼냈다.

《우리 중국은 력사이래 오늘까지 세계에서 으뜸가는 비단생산국의 하나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최근년간에 중국의 누에고치생산은 제자리걸음을 하고있는 반면에 일본이나 프랑스의 누에고치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 나라의 정국이 안정되지 못하여 뽕밭들이 황페화되고 농민들이 안정된 생활을 잃은데 중요한 원인이 있지만 구태의연한 낡은 생산방법에 매달리고있는데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장사거래때문에 여러 나라들에 다녀봐서 알겠지만 지금 서양나라들과 일본 같은데서는 누에품종들을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품종으로 개량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품종들인가를 말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심이 계신분들은 우리의 잠실들에서 키우고있는 새로운 누에품종들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량반걸은 손님들을 잠실로 데리고갔다. 돈 많고 거만한 양잠업자들은 여기에서 그 어떤 새로운것도 보게 되리란걸 믿지 않는듯이 뒤짐들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느직느직 잠실에 들어섰다. 덕대우에 얹어놓은 잠박마다에서 순계분리해놓은 희한한 누에들을 보게 된 양잠업자들은 목소리를 죽여 빠른 말씨로 몇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들도 중동과 유럽까지 나가서 여러가지 누에품종들을 들여다가 종란장에서 교잡실험을 해본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형태가 순수하고 색갈도 뚜렷한 누에들은 처음 보았던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치고있는 〈대조〉와 〈륜월〉품종입니다. 그리고 이쪽 잠박에 있는것이 우리가 1대잡종으로 새로 육종한 누에품종입니다.》

량반걸의 소개를 받으며 대비시험을 하고있는 잠실에 들어선 양잠업자들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새 누에품종은 우선 눈으로 보기에도 고치가 크고 누에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고치수확량도 종전의것에 비하여 대비할 정도가 아니였다. 새 누에품종이 우월하다는건 두말할 여지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중개농공학교에서 희귀한 누에품종이 생산되고있다는 소문이 짜하니 퍼지였다. 종란장들에서 이들이 새로 육종한 품종을 원종으로 사가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 중개농공학교의 실험잠실은 이 일대의 양잠업을 1대잡종체계로 전환시키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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