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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4 장


5


계응상은 다나까 요시마로의 연구조수로 대학연구원수업을 하는 5년동안에 《몇가지 린시목유층의 배다리낭상체에 대하여》, 《피부를 갈라헤친 후 누에 및 나뱅이기관의 운동에 대하여》 등 5편의 과학론문을 발표했다.

다나까 요시마로는 계응상의 과학적자질에 대하여 친지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군 하였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통하여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당시 다나까 요시마로는 자기에게 제자가 한사람 반이 있는데 그중의 한사람은 계응상이요 반은 일본인 제자 X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반개짜리로 치부한 일본인제자도 후날 일본유전학계에서 저명한 학자로 되였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다나까 요시마로가 계응상의 재능과 완강한 탐구심을 얼마나 높이 쳤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나까 요시마로교수가 우에서 한 말의 진실여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후날 그가 쓴 유전학에 관한 큰 저작에서 계응상의 실험자료들을 절마다 인용한 사실들은 그가 계응상의 연구성적을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평가했는가를 충분히 립증해준다고 본다.

이 시기 누에해부생리에 대한 다나까교수의 론문집이 도이췰란드에서 출판되였다. 도이췰란드문으로 된 론문집을 입수하여 읽어본 응상은 그가 몇해동안 다나까의 지도하에 관찰한 누에해부관찰결과가 그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여있는것을 보았다. 연구조수의 처지란 의례히 이런것이지만 이때 그는 처음으로 자립적인 연구사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밖에서는 부슬비가 끈덕지게 내리였다. 바람이 일 때마다 뜰안의 자귀나무며 참대나무들이 와스스 설레고 덧문들이 덜컹거리였다. 그럴 때마다 중국인연구생 량반걸은 귀를 강구고 창밖을 내다보군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응상은 밤이 깊어가는데도 대학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응상과 중국인연구생 량반걸이 실험잠실에서 나올 때였다. 한 젊은 교원이 뒤따라나오며 다나까 요시마로가 응상군을 찾는다고 알려주는것이였다.

응상은 량반걸에게 먼저 가라고 이르고는 젊은 교원을 따라갔다.

계응상과 량반걸은 한날한시에 연구원수업을 마치였다.

남중국 광동시 중산대학 교원으로 생활하다가 이 대학 연구원에 류학을 왔던 량반걸의 장래는 이미 정해져있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애초의 목적대로 조국에 돌아가면 중산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될것이다.

그러나 응상의 앞날은 아직 기약할수 없는 불안하고 망연한것이였다. 얼핏 생각하면 그는 깊이 생각할 여지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것 같았다.

허나 그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조국으로 돌아갈념을 선듯 내지 못하고있었다. 응상은 연구원수업이 끝나가게 되자 자주 량반걸에게 말하군 했다.

《지금 조선에서는 잠업기관을 몽땅 일본 〈총독부〉가 직접 틀어쥐고있네. 수원에 있는 농사시험장을 비롯해서 북선과 서선지구에 널려있는 지장들의 고원들에 이르기까지 잠업기관의 관리일군들과 기술일군들은 일본인들로만 배치했다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나. 〈내선일체〉란 빈말뿐이고 실속이 있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면에는 조선사람을 절대로 인입시키지 않는것이 일본사람들의 정책이라네… 그런데 나라구 례외로 삼을것 같은가.》

응상은 이런 말을 한두번만 뇌인것이 아니였다.

《설마 일본의 이름있는 대학 연구원까지 나온 농학사를 시험장고원으로 배치하는것조차 거부할가.》

《혹시 나한테만 특전을 베풀어 고원으로 배치해줄지 모르지. 그렇지만 내가 지니고있는 학식에 합당한 일자리는 절대로 주지 않을걸세. 과연 내가 같지 않은 일본인기사들의 지시를 받으며 그네들이 요구하는 연구사업을 해낼수 있겠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량반걸은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하였다. 그는 아직 남의 수모를 받으며 정신로동을 해본 일이 없기때문에 응상의 말을 생동한 표상으로 감수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성인이 정신적속박을 받으며 생활하는것은 안똔 체호브의 소설 《6호병실》에 나오는 생활과 같이 가슴터질듯 괴로운것일것이다. 대쪽같이 결곡한 성미의 계응상이 과연 그런 굴욕적인 조건에서 연구사업을 해낼수 있겠는가.

량반걸은 응상에게 깊은 동정을 표시할뿐이였다.

계응상은 다나까 요시마로의 연구조수로 근 5년동안 사업하면서 다나까가 도달한 과학적높이와 연구방법을 체득하고 벌써전부터 독자적인 과학연구의 길로 나갈것을 갈망하고있었다. 예민한 관찰결과들로써 특이한 그의 여러편의 누에해부론문들과 새로운 누에들을 육종하기 위한 시험기구들을 직접 관리한 경험들이 그의 이러한 지향을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이제 계응상에게는 자기의 과학적재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광활한 무대와 독자적으로 연구사업을 진행할수 있는 충분한 연구조건이 보장되여야 한다. 그런데 연구원수업이 끝나가고있는 때에 불쑥 다나까 요시마로박사가 응상군을 찾는다는것이였다.

순간 눈길을 마주친 두사람은 이제 계응상의 장래와 관련한 신중한 담화가 있으리라는것을 대뜸에 직감했다. 량반걸은 일본인 젊은 교원을 따라가는 응상을 멈춰세우고 그만이 알아들을수 있게 나직이 속삭였다.

《내 자네의 하숙방에 가서 기다리지.》

《알겠네.》

응상은 방열쇠를 량반걸에게 꺼내주었다.

《책이나 보면서 기다리게.》

량반걸은 풍로를 지펴놓고 중국료리인 배추를 둔 돼지고기볶음과 교즈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빼주까지 받쳐놓고 응상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밤이 깊어가는데도 응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량반걸이 계응상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전인 1926년 4월 초순경 일본규슈제대연구원 실험실에서였다. 중국광동의 중산대학 농학부 교원으로 있던 량반걸은 동양에서 이름있는 누에유전학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다나까 요시마로박사의 지도하에 연구수업을 하려고 규슈에 찾아왔다.

세계최대의 누에고치생산국인 중국에서는 이 근년에 발전된 나라들의 생물학계에서 유전학의 성과를 리용하여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1대잡종누에들을 육종하고있는데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양잠학이 전공인 젊고 지식욕이 강한 량반걸은 장차 중국의 잠업전망은 유전학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가에 크게 달려있다는것을 간파했다.

그는 세계생물학계의 최신성과를 중국에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의 선구자가 되려는 큰 뜻을 품고 규슈제대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 대학 실험유전학연구실에서는 벌써 계응상을 비롯한 여러명의 연구생들이 긴장하게 연구사업을 하고있었다.

다나까 요시마로는 량반걸에게 해부실험실을 정해주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방에는 조선에서 온 가쯔라(계응상이라는 계를 일본식으로 부른것)군이 일하고있소.》

묻지도 않는 말을 이렇게 뇌이는 다나까의 어조에는 경건한 태도까지 엿보이였다.

하숙집에 같이 있게 된 남경출신의 라군은 반걸이 유전연구실에서 연구사업을 하게 되였다는 말을 듣자 《거기엔 조선에서 온 계응상이라는 유명한 연구생이 있지.》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갖가지 일화들을 들려주는것이였다.

계응상에게는 스스로 정한 엄한 계률이 있다고 한다. 우선 그는 술, 담배와 인연을 끊었다. 이 두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마약과 같은것인즉 학문의 도를 닦는 사람은 반드시 첫째가는 금기물로 삼아야 한다는것이였다.

또한 그는 일생을 바쁘고 긴장하게 사는 사람만이 장수할수 있으며 잠을 많이 자고 라태하게 사는 사람은 단명한다고 굳게 믿고있는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그가 새벽 5시에 깨여나고 밤 1시에 잠자리에 드는것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삼으며 엎드리거나 기대거나 누워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것을 허용하지 않고 반드시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아 공부하는것은 이런 신념으로부터 흘러나온 행동이라고 한다.

하숙집에서 대학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리는데 절반까지 갈 동안은 가방을 오른손에 들고 가고 나머지구간에는 가방을 왼손에 들고 간다. 그가 영어, 일어외에 도이췰란드어를 습득한것은 순전히 대학을 오가는 길거리에서 체득한 지식이라고 한다.

그의 일거일동은 시간표에 의하여 1분1초도 틀림없이 정시정각으로 달리는 렬차와 같이 면밀한 판단에 기초하여 정해져있다.

필경 그에게는 일생동안 자기가 가닿아야 할 정확한 목적지가 정해져있는데 거기에 한시바삐 도달하기 위하여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무섭게 질주하고있다는것이였다.

《학구적인 열정에서는 탄복할만 한 사람이요. 그러나 그의 리해할수 없는 행동을 괴이쩍게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소.》

라군은 이런 말로 계응상에 대한 말을 결론짓듯이 마쳤다.

(과연 그 유별난 연구생은 어떤 용모를 지닌 사람일가?) 량반걸은 이런 남다른 호기심을 품고 대학뒤뜰의 부속건물에 자리잡고있는 해부실험실로 찾아갔다.

고즈넉한 실험실 작업탁앞에 30대의 미남자가 앉아있었다. 그가 계응상이였다. 현미경을 들여다보고있는 계응상은 량반걸이 방안에 들어선것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반쯤 벗어진 시원한 이마아래 고요히 빛나는 맑은 눈동자는 단순하면서도 깊어보였으며 만만치 않게 쳐들린 뾰족한 코며 군살 한점 없는 창백한 얼굴은 침착하면서도 매서워보였다. 코아래의 인증과 예리한 턱언저리에는 수염을 더부룩하게 자래웠는데 그것은 미모를 돋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는데 들게 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방임해두었기때문에 저절로 무성해진 그런것이였다.

유표한것은 왼쪽눈섭우에 흔히 복김이라고 하는 팥알만 한 크기의 기미가 돋혀있는것이였다. 꼿꼿한 자세를 까딱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계응상은 바늘같은 해부침을 잽싸게 집어들어 언듯 놀리는것 같더니 어느새 티끌만한 한 조직편을 찍어내여 현미경밑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손에 쥔 연필을 뱅글뱅글 돌리여 흰종이우에 해부도를 그려나갔다. 눈섭 한오리, 손끝 하나의 움직임에도 사상과 감정을 담는 배우의 연기와도 같이 세련되고 빈틈이 없는 동작이였다.

그는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우정 일손을 멈추는 순간조차 없었다. 눈길을 돌려 박절기로 누에조직을 떼낸다든가 조직편에 색갈을 먹이기 위해 손바투 가져다놓은 시약을 리용하는 찰나를 피로회복의 공간으로 삼고있었다.

곁에서 폭탄이 터진다고 해도 끄떡하지 않고 현미경을 들여다볼듯싶은 예리한 눈초리며 엄숙한 그 자태에는 한목숨을 바쳐서라도 적의 화구를 막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을듯이 돌진하는 사람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그 어떤 처절한것이 깃들어있는것 같았다.

이름할수 없는 충격에 가슴이 쩡해서 계응상을 바라보던 량반걸은 발끝걸음으로 그의 의자뒤를 지나 시약대에 의하여 구분된 반대쪽작업탁앞에 다가앉았다. 그는 실험용으로 가져온 누에를 샤레우에 꺼내놓고 알콜주사를 하여 완전히 마취시킨 다음 해부가위로 누에를 베놓기 시작했다. …

시약병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얼결에 그쪽으로 시선을 준 량반걸은 자기에게 주의깊은 눈길을 보내는 계응상과 눈을 마주쳤다.

찰나에 두사람은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자는듯 무언의 언약을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야 두사람은 해부실험실을 나섰다. 그들은 인적이 드문 대학가의 뒤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종일 현미경을 들여다보다가 이렇게 거리에 나서면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습윤한 바람을 피부에 감촉하는것이며 구름이 떠도는 검푸른 하늘에서 가물거리는 별빛에 눈길을 주는것도 크나큰 향락처럼 생각된다.

어느새 애기손바닥처럼 귀여운 푸른 잎을 펼치고 바람결에 살랑이는 자귀나무며 무화과잎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것도 다시 없는 행복으로 여겨진다.

《몇해째요?》

량반걸은 일본어로 물었다. 응상은 고개를 돌려 반걸의 너부죽한 얼굴에 눈길을 주었다. 의미심장한 그의 표정이며 어조로 보아 조국을 떠난지 몇해인가를 묻고있었다. 응상 역시 일어로 대꾸했다.

《8년째요.》

《8년?! 나이는?》

《서른셋.》

《당신도 나와 같구만.》

《무엇이 말이요?》

《나이도 때늦게 과학에 발을 들여놓은것도.》

《그렇소?!》

서로 눈길을 마주친 두사람은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응상은 부지중 걸음을 멈추었다. 반걸도 우뚝 멈추어서서 응상이 바라보는 정원에 시선을 던졌다.

월귤나무며 팔뚝같은 참대나무들이 푸른 잎을 드리우고있는 정원 한가운데에 지붕이 뾰족한 한채의 아담한 함석집이 자리잡고있었다.

《다나까 요시마로선생의 집이요.》

《그렇소!》

늙은 교수는 퇴근하여 자기 방에 앉아있는듯 남향으로 낸 살림방뿐만 아니라 서재며 응접실창문들에까지 불빛이 환했다. 응상은 그 창문들에서 비단천같이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불빛을 지켜보고있었다.

그는 지도교수의 집이 눈에 띄여 걸음을 멈춘것이 아니였다. 타향살이에 지친 나그네의 눈에는 언제나 정답고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저런 창문들을 바라보느라면 두고온 고향집과 처자들생각에 목이 메이는 법이다.

반걸도 조국에 있을 때에는 언제한번 길가의 남의 집 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며 가슴 뭉클해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어느때도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밑을 유심히 지나갈수가 없다.

장난에 팔린 아이들을 저녁상으로 불러들이는 아낙네의 목소리를 귀결에 듣고도 무강현의 향촌집뜨락에서 뛰여다니는 자식들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지 않는 때가 없다. 그럴 때면 언제면 이역살이를 마치고 향촌의 옛집으로 돌아가 일가식솔이 둥근식탁에 빙 둘러앉은 저녁상에 마주앉을수 있을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찌르르해지군 한다.

집뜨락에서 살랑살랑 가지를 흔들던 귤나무도, 그우에서 재잘거리던 참새들의 우짖음소리까지도 못 견디게 그리웠다. 향수의 정에 가슴이 저릴수록 새겨지는 마음의 흔적도 깊어지는듯싶었다.

이곳에 온지 달포밖에 안된 그의 심정이 이러하거늘 이역살이 10년이 가까와오는 계응상의 마음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차나 한잔 마시고 가세.》

반걸은 중국차집앞에 멈추어섰다.

응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이마를 마주대고 앉을수 있는 자그마한 원탁앞에 턱을 고이고 앉아 예쁘장한 중국처녀접대원이 가져다주는 홍차에 각사탕을 한알씩 넣고 저으며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님이여 내 님이여

장마달의 해님이여

초가을의 소낙비여

그렇게 올바엔 오지나 말지


구슬픈 중국의 그 류행가는 무엇을 읊조리는것인지.

《연구원에 들어온 후 3년이 넘두룩 한번도 고향에 다녀오지 않는다는건 너무하오.》

량반걸은 차숟가락을 차잔에 넣고 소리나지 않게 저으며 응상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응상은 따가운 차물을 천천히 한모금씩 마시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다녀올 때가 되지 않아 그러오.》

《때라니?》

《허허허, 별것이 아니요. 그저 괴벽을 부리느라 그러는거지. …》

응상의 대꾸에는 석연치 않은것이 있었다. 량반걸은 제나름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군.》

《아니, 그렇지 않소. 그와는 정반대요. 조국에는 내가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소.》

응상은 열정적으로 부르짖듯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까운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사람에게 쏠릴만큼 의외에도 높았다. 응상은 눈밑을 알릴듯말듯 붉히였다.

《용서하오. 내가 지내 흥분한것 같소.》

《아니, 날 량해하오. 내가 당신의 아픈 구석을 다친것 같소.》

《그런게 아니요. 가슴아픈 일이 생각나서 그랬소.》

응상은 처음 만난 량반걸에게 한가슴에 안고있기에는 너무도 괴로운 고향에 대한 추억을 터놓았다. 심장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심장으로만 대할수 있는것이다.

이때로부터 그는 2년나마 연구원수업을 같이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남달리 자별한 벗으로 지내게 되였던것이다. …

량반걸은 한쪽구석에 개여놓은 이불에 비스듬히 기대여 끄덕끄덕 졸다가 펀듯 눈을 떴다.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발자국소리가 났다. 량반걸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비에 후줄근히 젖은 응상이 고개를 수굿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 한쪽에 신문지를 덮어놓은 밥상이 놓여있는것을 본 응상은 입가에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량반걸은 제가 이 방의 주인인듯이 풍로우에 고기볶음을 올려놓고 수교즈를 데우고 술잔을 내놓았다. 그는 그때까지도 얼없이 서있는 응상을 쳐다보았다.

《어서 앉게.》

두사람은 고기볶음을 데우는 풍로를 한가운데 놓고 앉았다. 량반걸은 유리술잔에 빼주를 부어놓았다.

《자, 드세.》

반걸이 큰소리로 권했으나 응상은 집어든 술잔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량반걸은 머리를 저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떨군 응상의 얼굴에는 비참하다고밖에는 달리 말할수 없는 깊은 고뇌의 빛이 깃들어있었다.

그처럼 강인하고 굳세던 응상의 얼굴에 파멸직전에 달한 사람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절망적인 기색이 어려있었던것이다. 응상은 량반걸이 권하는 술잔을 쭉 들이키고 힘겹게 말을 꺼냈다. …

다나까 요시마로의 부름을 받은 응상의 가슴은 후두두 뛰였다. 마침내 그가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못내 두려워하던 그 일이 닥쳐왔다는것을 감득했기때문이다. 연구원수업이 끝나감에 따라 응상은 예기치 못했던 불안감에 휩싸이였다.

이제는 유전학분야에서 앞선 과학자들이 지척에 바라보였다. 조금만 더 박차를 가하여 앞으로 나가면 발전된 나라들의 과학자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나갈수 있다는 자신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가 그리도 도달하려고 애썼던 계선이 눈앞에 보이건만 어인 일인지 안타깝고 괴로운 생각만이 짙어가는것이였다. 단순하고 천진한 생각에 사로잡혔었다고 할가. 연구원수업까지 마치면 그는 바라던 모든 일에 성공했다고 할수 있었다.

과연 이것이 남다른 영예가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그것이 자기가 성취하려던것의 극히 작은 한부분에 불과했다. 그는 다른 과학자가 되려고 한것이 아니라 다름아닌 내 나라 조선의 과학자가 되려고 갈망해왔던것이다.

한데 그가 그리도 바라던 내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그는 내 나라를 강탈한 일제놈들에게 복무하기 위하여 애타게 과학탐구를 해온것이란 말인가. …

응상은 착잡한 생각을 걷잡지 못하며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앉게.》

다나까교수는 여느때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응상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꼿꼿한 자세로 단정하게 앉아있는 응상을 이윽토록 건너다보던 다나까는 넌지시 물었다.

《고향집에는 년로한 부모님들이 계신다지?》

《예.》

《아이들은 모두 몇인가?》

《벌써 넷입니다.》

《흠, 안해의 고생이 막심하겠구만.》

하지만 교수가 응상을 부른것은 이런 사담이나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러나 그 역시 하려는 말을 선뜻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이윽고 다나까 요시마로는 나직이 말을 꺼냈다.

《나는 자네가 벌써전부터 독자적인 과학탐구의 길에 나서려고 한다는걸 느낀지 오래네. 응당한 일이지. 자네도 그에 대해서 생각한바가 있겠지?》

《예.》

《그래 장차 어떻게 할 생각인가?》

교수는 실눈을 짓고 응상을 건너다보았다.

응상은 고개를 수그린채 덤덤히 앉아있었다. 다나까교수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우선 그자신이 스스로 자기에게 한두번만 묻고 대답한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정작 교수에게서 정식으로 이런 질문을 받고보니 무엇이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막연했다.

차라리 앞으로의 그의 희망이 무엇인가고 물었다면 주저없이 자기의 소견을 내놓고 토론할수 있었을것이다. 1930년 초엽인 이 시기 유전학은 아직 유년기에 처해있다고 볼수 있었다. 유전연구는 이때까지도 실험실적연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선견지명이 있는 과학자들은 유전의 비밀을 어떻게 해명하는가에 따라 인류에게 복무하는 미래의 생물계의 앞길이 환히 열릴것이라고, 미구하여 인간은 자기가 희망하는 그러한 생물체를 마음대로 육종하게 될것이라고 예언했다. 각국의 생물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유전학연구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서방의 과학발전추세에 예민한 일본의 생물학자들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유전의 법칙을 리용하여 누에사육에서 1대잡종체계를 도입하고있었다. 쏘련(이전)이나 미국, 서유럽나라들에서는 세대반복이 빠른 초파리를 기본자료로 하여 유전학연구를 하고있었다. 그러나 계응상은 앞으로 누에를 출발자료로 하여 실험유전학에 전념함으로써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의 비밀들을 새롭게 밝히고싶었다.

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종의 누에품종들을 모조리 수집해가지고 그것들을 지배하는 유전의 조화를 완전히 해명하고 우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새로운 누에품종들을 만들어내고싶었다. 그러자면 그에 필요한 연구자금을 누구한테서 보장받겠는가.

이것이 무엇보다도 계응상을 괴롭히는 주되는 문제였던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가 돌아가게 될 조국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일제는 조선의 농업을 과학적으로 연구한다는 명목밑에 서울에서 멀지 않은 수원에 농사시험장이라는것을 설치하고 그아래에 몇개 도에 하나씩 지장이라는것을 두고있었다. 여기에는 기술과는 관련이 없는 일반 고원에 이르기까지 몽땅 일본인을 채용하고있었으며 시험장은 물론 지장에 이르기까지 조선 《총독부》에서 관할하고있었다.

시험장안에는 잠사부라는것이 있어 여기에서 일본누에품종들을 가져다가 지방원종장들에 넘겨주어 누에알을 생산하여 농민들에게 팔아주고있었다. 생산된 누에고치는 일본사람들이 몽땅 사들이고 그대신 농민들에게 광목이나 고무신짝 같은것들을 가져다주고 수매하여 일본으로 실어다 비단을 생산하였다.

수천년의 력사를 가진 조선의 비단은 자취를 감추고 한때 일본사람들에게 비단짜는 법을 가르쳐준 조선사람들이 일본에서 짠 비단을 비싼 값을 주고 사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가 이러한 조국에 돌아가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이제라도 제 나라가 있고 제힘으로 관리운영할수 있는 연구기관이 있고 대학이 있다면 그래도 남들을 따라앞서자고 분발해나서볼수 있으련만 왜놈들이 판을 치는 내 나라에 가서 그가 무엇을 할수 있단 말인가. 계응상이 고향으로 돌아가 배운것을 써먹는 길은 오직 일본관리들앞에서 굽신거리며 사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어느덧 일본에 건너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속에서 조선사람의 재능의 상징처럼 이야기되고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고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왜놈들의 사환군이 될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오래동안 침묵을 지키던 끝에 애매하게 한마디했다.

《글쎄요.》

다나까 요시마로는 뾰족한 턱을 끄덕이며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응상을 보았다. 그는 얼마전에 조선 《총독부》관리로 일하는 제자를 통하여 계응상의 장래문제를 슬쩍 비쳐보았었다. 그가 보내온 편지를 받아본 다나까교수는 분개하지 않을수 없었다.

반도에서는 조선인이 아무리 재능있는 박사나 학사라 해도 절대로 그들을 일본관리들우에 올려놓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이런 편협한 행동은 애써 키운 인재들을 바로 써먹을수 없게 하는 결과밖에 가져오는게 없지 않는가.

다나까 요시마로는 침중한 기색을 짓고 뜨직뜨직 말했다.

《군이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네만 나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사고하지 않을수 없네. 원래 우리 과학자들이란 정치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지. 과학연구사업을 통하여 인류의 진보와 번영에 이바지할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이겠나.

요새 우리 나라에서는 만주의 신경에 큰 농사시험장을 하나 설립하는중일세. 내가 그곳 시험장 장장으로 임명되여가는 동료에게 자네를 중요한 직책에서 일하도록 천거할테니 그렇게 해보지 않겠나. 일전에 그 친구가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필요한 전문가들을 구하지 못해서 걱정이라구 하더군.》

응상의 얼굴에 깊은 의혹의 빛이 실리였다. 그 역시 교수의 방조를 받아 연구사업을 계속할 처소를 정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다나까교수를 일본과 같은 사회에서는 보기드문 청렴결백한 과학자로 여기고 존경해왔었다. 허나 그가 응상을 만주시험장으로 천거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만주는 량반걸의 조국의 한부분이다. 한데 그가 어찌 일본사람들과 한패가 되여 그 땅에 가서 왜인들의 사환군노릇을 할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한다는것은 그가 스스로 자기자신을 욕되게 하는것과 같은 너절한 행동이 아니겠는가.

하다면 다나까교수는? 아니다. 그럴수 없다. 아마도 교수는 그에게 합당한 직책을 알선해주기 위해 애쓰던 나머지 그러는것이겠지.

응상은 한순간이나마 다나까교수에 대하여 의혹의 감정을 품은데 대해 죄송스럽게 여기였다. 하지만 교수가 천거하는 곳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응해나설수는 없었다. 그는 명확한 어조로 자기의 소신을 표명했다.

《만주에는 가고싶지 않습니다.》

다나까교수는 안색이 흐려졌다.

《그러면 어떻게 할 작정인고?》

《생각을 좀더 해보겠습니다.》

《음.》 교수는 또다시 턱방아를 찧었다. …

계응상이 이야기를 마치자 량반걸은 《고맙소.》라고 하며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았다.

《천만에.》 응상은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나는 다만 자기의 량심을 어지럽히고싶지 않았을뿐이네.》

비는 멎고 밖에서는 바람이 일었다. 우우- 으스산하게 불어치는 바람소리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렸다. 바람이 태질을 하듯 불어칠 때마다 목조로 지은 집은 부르르 몸을 떨며 애처로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것은 어수선하고 불안한 응상의 마음을 더욱 번거롭게 했다. 어금이를 꾹 다물고 창밖을 내다보는 응상의 두눈은 미칠듯이 번뜩이였다. 그는 함정에 빠진 사람과 같이 신음소리를 냈다. 그딴에는 한몸의 열정을 다하여 분수처럼 솟구쳐오르면 민족의 자랑이 되고 내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큰일을 할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다. 비록 일본땅에 건너와서 공부를 해도 자기의 넋을 잃지만 않으면 반드시 기울인 노력이 볕을 볼 때가 있으리라고 믿고있었다. 이것을 위해서 그는 십수년세월 온갖 고초를 달게 맛보며 꿋꿋이 살아왔다. 그런데 결국 그에게 차례진것은 무엇인가.

《량군, 지금 내 가슴속에서는 일생동안 정성들여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귀중한 모든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심정일세.》

응상의 절절한 고백을 받아안은 량반걸은 무슨 말로 그에게 위안과 동정을 표시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덕분으로 계응상처럼 간고한 고학생활을 하지 않고도 고등교육을 받을수 있었으며 동란에 휩싸여 어수선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조국이 있었으며 그 조국의 뒤받침을 받아 일본으로 류학을 오는 《행운》을 지니였다. 그러나 그 역시 자기의 조국을 외래침략자들에게 빼앗긴 민족의 운명이 어떠한가 하는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일본을 망라한 소위 《8개국련합군》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점령하고 부녀들과 처녀들을 강간하고 귀중한 국보들을 마구 략탈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가슴 터질듯 한 분노를 안고 몸부림쳤던가. 수치를 당하느니 죽음으로 맞서리라 결심하고 고도의 우물과 늪을 메운 그녀들이야말로 사랑하는 그의 안해와 누이들이나 무엇이 다르랴.

귀축같은 원쑤놈들이 베이징에서 략탈해간 력사화들과 꽃병, 가구들이 다름아닌 그의 집에 장식품으로 보존하고있는 선친들이 물려준 유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자기의 조국이 벌써 20여년이나 일본놈들에게 유린당하고있는 계응상의 심정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저도 모르게 불쑥 말을 꺼냈다.

《응상군, 나하구 남중국 광동으로 건너가세.》

《광동으로?》

《그렇네.》

량반걸은 활기를 띠였다.

《물론 우리 고장으로 가도 타향살이이긴 마찬가지일세.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연구조건만은 손색이 없이 충분히 보장해줄수 있네. 신중국을 세우기 위해 건설된 중산대학에도 지금 유전학강좌를 내오는중일세. 자네가 그리루 가면 대학에서 유전학, 해부생리학, 잠사학 등의 강의를 할수 있을것이네. 그리구 우리 광동은 사철 누에를 칠수 있는 따뜻한 곳인만큼 자네가 출발자료로 삼고있는 누에를 가지고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유전실험을 하기에는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하네.》

진정 고마왔다. 량반걸의 말을 듣고보니 그곳이야말로 그가 장차 수행하려는 과학연구를 위해서는 더할나위없이 리상적인 곳이 아닌가. 남중국의 광동지역은 중국에서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누에산지이다. 그렇듯 광활한 누에산지를 활동무대로 삼고 독자적인 과학연구를 해나간다는것은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가.

뜻밖에 찾아든 행운에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지금의 그의 처지에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연구조건과 학구적인 분위기를 바랄수는 없을것이였다.

그러나 불현듯 응상의 얼굴에는 어두운 빛이 짙게 어리였다. 집을 떠나 십수년, 또다시 그는 만리타향에서 애달픈 향수에 시달려야만 한단말인가. 응상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량군, 나한테 생각할 여유를 좀 주게!》

그의 어조는 간청에 가까운것이였다. 량반걸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이때 응상의 고향집 부모들은 년로하여 전같이 농사일을 감당해내지 못했고 형은 아들딸이 오롱조롱 다섯이나 달리여 먹고살아가는 정신에 집을 나가있는 계응상을 생각해줄 겨를이 없었다. 이제는 애당초 그를 념두에 두는 습관조차 사그라지고있는지 몰랐다.

서당시절부터 헤아리면 무려 20여년을 가사에 관여하지 않고 나돌아가는 사람을 어찌 식솔축에 두랴. 그의 부모들은 덕다리로 딴살림을 나간 응상의 처와 어린 자식들 돌아보아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의 안해는 과부같이 혼자 사는 녀자라고 남들처럼 작권도 온전히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에 가서 공부하는 남편이 돌아오면 돈구멍이 터질걸로 생각하고 둬두락의 수렁논과 경사지밭을 소작준 사람이 있어서 그의 안해가 부라퀴같이 일을 하여 네자식을 먹여살리고있었다.

얼마전에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에 의하면 벌써 열두살이 된 맏아들이 산에 올라가 삭정귀나 솔가래기를 까치둥지같이 해오지 않으면 밥도 지어먹을수 없는것이 그의 집 형편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서리가 내린 연후 지붕에 얹힌 박을 따서 가마속에 익혀 말려놓았는데 애들이 그 바가지짝을 하나씩 안고 《야, 이 바가지에 사리밥이라도 가득 담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들 해서 손주애들을 보러 갔던 어머니가 돌아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응상아, 이젠 더는 너를 기다릴 힘조차 없구나. 보잘것도 없는 이 늙은건 더는 바랄것도 없다만 네 어린 자식이 아찔한 나무꼭대기까지 기여올라가 바들바들 떨면서 삭정귀를 따내리는 광경은 오금이 저리고 애간장이 타서 보지 못하겠구나!

아장아장 발자국을 내디디는 네 어린 딸도 땔감때문에 에미가 우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잔솔밑에 기여들어가 솔가래기를 긁어오다가 뱀한테 물려 하마트면 아비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될번 했단다. 그래도 마침 귀인을 만나 썩어들어가는 장딴지에 분지나무잎을 짓찧어 심지를 해넣었더니 그게 우연히도 독을 빼내여 목숨을 구했다만 제 자식이 이 지경이 된걸 놓구서야 어찌 타관에 나가 한뉘 글만 읽고있을수가 있느냐. …》

차라리 대학과정을 마칠 때처럼 편지를 뜯어보지 않았더라면 마음편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전날의 그 모진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주인집아주머니가 방문안에 들여놓고간 편지를 더는 보고만 있을수가 없어 뜯어본것이 이런 마음고생을 하게 될줄이야. 그래도 응관형은 허약해진 부모를 대신하여 식솔많은 큰집을 이끌어나가느라고 고생이 막심해도 우는소리 한번 한적이 없다고 한다.

저녁끼니는 호박죽으로 에우고 사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안도의 숨을 내쉬는 제수네 살림살이를 못 본체 할수 없어 때때로 나무달구지를 끌고 내려오고 아주머니한테 좁쌀알이라도 이워 내려보낸다고 한다.

부모에겐 더 말할것 없고 형과 형수에게도 볼 면목이 없게 되였다.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꿈만히 여기던 안해한테도 이제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었다 해도 집안사람들한테서는 리해를 바랄수 있었다. 하나 은사에게서 받은 천만금에도 비길수 없는 은혜만은 기어이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상이였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때에 그를 도와준 스승은 애석하게도 저세상으로 간 몸이 되고말지 않았는가.

그는 고국의 귀중한 사람들에게서 너무나 많은 빚을 지였다. 언제면 그 빚을 가슴후련히 갚을수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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