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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운구에서 역적괴수를 사로잡고
황성에 드리운 구름이 가셔지다


설연의 진중에서 흉계가 탄로되여 뜻을 이루지 못한 진형은 삼십륙계줄행랑을 놓아 미주성으로 찾아갔다.

만신창이 된 동생을 본 진권이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지금쯤은 황성에 틀고앉아 희소식을 가져오리라 믿었던 진형이 끓는 물에 털을 뽑히우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수닭모양으로 자기앞에 나타났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수 있으랴.

진권의 앞에 주저앉은 진형이 코물눈물 흘리며 가슴을 쥐여뜯었다.

《소제가 기묘한 계책으로 황성을 점령하고 발해국 주상과 계루왕 형제까지 사로잡아 이젠 다 먹은 떡이로구나 했는데 그 빌어먹을 황운이 난데없이 쳐들어오는 통에 수포로 돌아갔소이다.

만번중에 단 한번이나 있을가말가 한 절호의 기회를 놓친걸 생각하면 복통이 터져 죽겠소이다.…

소제가 여기로 오면서 다시 설연이를 없애려고 계책을 꾸몄댔는데 그것도 그만 탄로나 이렇게 빈 손으로 왔소이다.》

진권은 지모와 용맹을 겸비했다고 자처하던 진형이 아부재기를 치는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머리를 외로 틀었고 진걸은 그 정상이 가긍한지 쓰거운듯 입만 다시였다.

진권과 진걸의 뜨아한 태도에서 자존심이 상한 진형이 산매들린 할미마냥 벌떡 일어나 언제 눈물을 줴짰던가싶게 정신나간 놈처럼 부르짖었다.

《황운의 소식을 몰라 전전긍긍하던 설연이가 이젠 소식을 알았으니 필경 래일모레쯤이면 공격을 개시할것은 불보듯 뻔하옵니다. 그러니 대왕은 복주에 있는 양철에게 련락하여 길을 열게 하고 군량과 군마를 끌고 미주성을 떠나소서.

오늘밤에 소제가 검술을 행하여 설연의 머리를 베고 돌아오겠나이다.》

제입에서 범이 나오는지 구렝이가 나오는지 알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진형을 바라보며 진권이 어이가 없다는듯 얼굴을 찡그렸다.

《설연이 비록 나이 어리나 지략과 무예가 여느 사람과는 다르니 동생은 너무 가볍게 보지 말라.》

진형이 목대에 피줄을 돋구며 어성을 높였다.

《아니, 너무 걱정마소이다. 오늘밤 설연의 목을 따오지 못하면 이 분통을 도무지 삭일수 없소이다. 내 기필코 설연의 머리를 베오겠으니 대왕은 소제의 검술을 믿으소서.》

그의 말대로 설연만 해치운다면 황운이 황성에 있는 조건에서 발해군사를 무너뜨리기는 그리 품이 들지 않는다. 천행중 다행으로 일이 성사되여 혹시 진형이 설연을 죽일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진권과 진걸의 머리에 동시에 갈마들었다. 허나새나 지용을 겸전한 진형이 아닌가. 한번 믿어보는것도 그리 랑패를 볼것 같지 않았다.

《네 결심이 그렇단 말이지? 정 그렇다면 이 과인은 동생을 믿겠다.》

제법 자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는 진권의 그 말에 진형이 눈물이 글썽해서 고개를 떨구었다. 좀전에 짜내던 눈물과 전혀 다른 눈물이였다.

이날 밤 진형은 도술을 부려 쌍검을 휘두르며 공중에 솟아올라 설연의 진중으로 향하였다.

그무렵 장수들에게 래일아침 성을 공격하려는 자기의 취지를 밝히고 임무를 분담한 설연은 그루를 박으며 강조하였다.

《각 장수들은 이제 자기 부대로 돌아가 진지방비를 철통같이 강화하고 모든 군사들이 갑옷과 투구를 빈틈없이 갖추도록 하며 홰불로 진중을 대낮같이 밝히도록 하라!》

령을 받은 장수들이 장막을 나섰다.

문밖을 나서는 그들을 바래우고난 설연은 서안에 의지하여 다시금 작전안을 머리에 되새겨보며 병서를 뒤적거렸다.

잠시후 문득 서늘하고 오싹한 찬바람이 허공에서 불어왔다.

(자객이다!)

설연은 재빨리 쌍검을 차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얼핏 허공을 쳐다보니 한사람이 공중으로부터 쌍검을 들고 춤추며 내려오는것이 아닌가.

(자객이 틀림없구나!)

설연은 재빨리 허리에 찼던 쌍검을 뽑아들고 자객을 향하여 공중으로 몸을 솟구쳤다. 허공에서 두사람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쟁- 쟁- 울리기 시작하였다. 서로 칼이 어울려 무지개가 반공에 펼쳐지고 황금독수리가 서로 뒤엉켜 동쪽으로, 서쪽으로 오고가니 그 광채가 온 진중에 빛발쳐갔다.

갑옷투구를 떨쳐입고 군마와 병쟁기를 정비하던 장수들과 군사들이 그 광경에 놀라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자리에 서서 격렬한 싸움을 긴장하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금독수리 하나가 땅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뒤따라 도원수 설연이 허공으로부터 쌍검을 들고 진중 한가운데로 내려왔다. 긴장해서 주시하던 장수들과 군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날 해치러 왔던 자객이니라.》

장수들이 다가가 몸을 뒤집어보니 다름아닌 적군의 제일가는 장수라는 진형이였다.

장수들과 군사들이 도원수의 뛰여난 검술에 탄성을 질렀다. 도원수가 진형의 머리를 기대에 높이 달아 군사를 시켜 성중에 있는 진권에게 보이라고 지시하였다.

그 군사가 진형의 머리가 대롱거리는 기대를 들고 미주성밑에 이르러 진권을 소리쳐 불렀다.

《네 동생 진형의 머리를 구경하라!》

성우에서 그것을 내려다본 진권의 커다란 하늘소귀가 부채질하듯 푸들푸들 요동쳤다. 그의 두눈알이 휘딱 뒤번져져 흰자위만 드러났다. 진권은 그 순간 온몸이 얼음장을 뒤집어쓴듯 선뜩하고 모골이 송연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이후론 성문을 더 굳게 닫고 아예 꿈쩍하지 않았다.

다음날 반란적의 제일가는 장수라고 일컫는 진형을 베인 도원수 설연이 미주성공격을 앞두고 군사들의 사기를 돋구느라 고기와 음식을 내여 푸짐히 먹이는데 수문장이 황실의 호위군교가 성상의 조서를 가지고 원문밖에 이르렀다고 보고하였다.

뒤따라 들어선 호위군교의 얼굴이 설연에게 퍽 낯이 익었다.

도원수가 장대에서 내려 사신을 맞아 남쪽을 향해 네번 절을 하고 정중히 조서를 받아들었다.

《짐이 역적 진형의 핍박을 받아 청하에서 종묘사직의 백여년대업을 마치는가 했더니 천행으로 부원수 황운의 충의지심으로 잔명을 보존하였노라. 허나 아직 역적 진형을 잡지 못하였고 황성이 비면 변고가 또 닥칠것을 념려하여 부원수 황운더러 그냥 남아 황성을 지키고 백성들을 안무하게 하였도다.

짐은 경의 충의와 용병술을 믿나니 도원수는 하루빨리 역적들을 멸하고 개가를 올리며 돌아오라.》

조서를 읽어가는 도원수 설연의 눈가에 맑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이미 황공자가 어려운 위기를 가셔낸것을 알고있었지만 정작 성상의 조서를 받고보니 그가 더 돋보이고 장해보였다.

(그러니 황성에 드리운 구름은 끝내 가셔지고 성상이 안녕하구나!)

떠날 때 자기를 유심히 뜯어보던 그 억실억실한 황공자의 두눈이 금시인듯 눈앞에 방불하면서 설연의 가슴속에 황운에 대한 애모쁜 련정이 슬며시 살아났다.

가슴에 조서를 꼭 껴안는 도원수의 아련한 자태에 장수들과 군사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환희와 기쁨에 겨워 눈물짓는 도원수의 모습은 랑자의 모습과 너무도 방불했기때문이였다.

옆에 있던 우시춘이 조용히 불렀다.

《장군!》

옆에 사람들이 모여있다는것을 잊고 자기의 감정에 옴해있던 설연은 그 부름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둘러보니 숱한 장수들과 군사들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있는것이 아닌가. 설연의 낯색이 익은 꽈리마냥 빨개졌다. 그렇다! 설연은 아녀자가 아니라 도원수였다!

애써 자기를 다잡은 도원수 설연은 군중을 향해 격정에 넘쳐 웨쳤다.

《모두 기뻐하라! 부원수가 성상을 구원하고 황성을 수복하였노라!

역적들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왔고 멀지 않아 나라의 재난이 가셔질것이로다!》

온 진중에 터져나오는 와- 와- 함성소리 천지를 진감하였다. 열에 뜬 군사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그 모습을 굽어보는 설연은 물론 전장을 누비며 오늘까지 달려온 우시춘, 조명걸을 비롯한 장수들의 구리빛 도는 얼굴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그날밤 삼경이 지나도록 도원수의 처소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조서를 받아안았을 때의 격정이 아직도 설연의 아릿다운 얼굴에 력력히 남아있었다. 투구와 갑옷을 벗고 서안에 앉아 설연은 조용히 자기의 감정에 젖어있었다. 도원수장막에 뛰여들었던 그날의 황공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황성의 변고를 예감하고 달려왔던 그날의 모습도 눈에 방불히 안겨왔다. 그런걸 보면 사내들은 남녀간의 일에선 녀인보다 감각이 둔한듯싶었다. 매일 눈앞에 다름아닌 자기- 봉선이를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황공자였다. 그의 열정적이고 순진한 모습이 못 견디게 가슴에 파고들었다.

(아, 황공자! 정말 보고싶소이다!)

련정으로 들먹이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애상에 마음껏 잠겨있던 설연은 불쑥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 처절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생각에 소스라치듯 놀랐다.

자신을 속으로 자책하며 도원수 설연은 다시 갑옷투구를 떨쳐입었다. 역적들을 모조리 소멸하기 전에는 엄연히 자기는 설소저가 아니라 전군을 승전으로 이끌어야 할 도원수였다.

좀전에 읽던 병서를 읽어가던 도원수 설연의 머리에 문득 한가지 계교가 떠올라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잠시후에 머리를 끄덕이며 장막으로 다시 들어온 설연은 미주성지형도를 펼쳤다.

미주성은 다른 성들과는 달리 성안으로 호란하의 지류인 금소강이 지나고있었다. 성가운데를 꿰지른 금소강은 성안을 지나 서산에서 내려오는 호란하에 합수되여 성벽을 빙 에돌아 동쪽의 청운산으로 흐르고있었다. 청운산을 지나 호란하를 넘으면 막힐부지역이다. 성안으로 흐르는 금소강의 좌우에는 제방을 쌓았고 도간도간 강을 건늘 다리가 있었으며 제방너머로 건물들과 집들이 붙어있었다.

도원수 설연은 급히 전령장을 불러 장수들을 모이게 하였다.

《각 장수들은 십만군졸모두에게 각각 가마니 하나씩 준비시키도록 하라. 래일 성을 공격할것이니 모든 장수들은 령을 허술히 대하지 말고 한사람도 빠뜨리지 말고 무조건 가마니를 준비시키라.》

도원수의 령을 받은 군중이 뒤설레였다.

《우리 도원수나리의 계책은 고금에 보지 못한 신출귀몰한 용병술이라 미주성을 깨뜨리는것은 땅짚고 헤염치기인데 가마니 하나씩 장만하라고 함은 어데 쓰자는걸가요?》

두눈이 머루알같이 새까만 젊은 군졸의 물음에 늙수그레한 군졸이 핀잔을 준다.

《너무 호기심이 많으면 네 색시도 딴 내인으로 보여. 그러다가 우리 마누라하구 삭갈리지 않을가. 그러면 내 오죽이나 좋을라구. 이발이 빠진 내 마누란 임자가 차지하구 물오른 앵두같은 네 색시는 내가 차지하면 정말 멋있겠어.》

《무슨 황당한 소릴 하우? 아저씨네 아주머니가 나와 산다구요?!

체, 이자 보니 흉측하기 그지없군요. 내 처가 곱다는건 어떻게 알구 그런 수작질이유?

흥, 올라가지 못할 나문 쳐다보지 말랬다구 어림두 없수다. 내 아무리 전장에서 녀자한테 기갈나두 아저씨네 아주머니같은 녀잔 백이래두 싫수다.》

옆에서 듣던 군졸들이 히히 손을 싸쥐고 웃어대자 늙수그레한 군졸이 히물거리면서 젊은 군졸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그러게 쓸데없는 소릴 하지두 말구 의심두 두지 말라 그 말이야.

우리 도원수어른의 계책이야 제갈량인지, 제갈공명인지 하는 량반두 울고갈 묘한 수가 아닌가.》

《아, 내가 뭐 딴 의견이 있겠수? 하두 이상하니 물어본거유. 이제 보우다. 싸움이 붙으면 내사 제일 앞장에서 싸우지 않나.》

다음날 아침 도원수가 장수들에게 령을 하달하였다.

《오늘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에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술시(오후 7시~오후 9시)에는 멎으려니 각 장수들은 이리이리 하도록 하라!》

장수들이 령을 받고 물러나와 성을 공격할 기재들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아침 진형의 죽음으로 의기소침해진 진권의 기색을 살피며 진걸이 한마디 귀띔하였다.

《오늘 날씨를 보니 비가 올터인데 쉬이 그칠것 같지 않소이다. 그러면 물이 범람할터이니 미리 막을 준비를 하는것이 좋을듯 하오이다.》

진권이 얼굴을 찌프린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나다를가 오시경에 억수로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도원수가 신시(오후 3시~오후 5시)에 대군을 지휘하여 각각 가마니에 모래와 흙을 담아 성안을 가로지나 내려오는 금소강을 막으니 물이 성안에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함지로 물을 쏟아붓는듯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인차 물이 출렁출렁 성을 넘어섰다.

크게 놀란 진권이 불어나는 물을 피해 성첩에 올라 바라보니 다리는 보이지 않고 물우에 집이며 짐승들이 둥둥 떠가고 아우성소리가 온 성안을 진동하였다. 엎친데덮친격으로 날까지 어두워지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락심천만한 진권이 진걸을 돌아보며 탄식한다.

《저 설연이가 우리를 물귀신으로 만드는구나. 이를 장차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이때 성밑의 어디선가 《대왕님! 대왕님!》 하는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진권과 진걸이 동시에 내려다보니 복주의 양달이 작은 배 십여척을 성벽밑에 붙이고 급히 부르는 소리였다. 련락을 받은 양철이 진권을 구하라고 제 아들 양달을 보낸것이였다.

진권이 황황히 진걸과 함께 부하장수들을 데리고 성벽을 타고 내려가 배에 올라 금소강을 따라 동쪽의 청운산을 지나 막힐부지역으로 꽁무니를 사렸다. 도원수 설연은 진권이 도망하는 꼴을 보고 물을 터놓아 성안의 백성들을 안정시키라는 령을 내렸다.

이어 설연은 정병 십만을 이끌고 진권을 추격하여 동쪽의 고주성으로 진군하였다. 대오의 뒤에는 소 한마리씩 끌고오는 백여명의 군사들이 따르고있었다. 고주성은 서쪽으로 강을 사이두고 회원부와 련결되여있는 막힐부지역이다.

배를 타고 청운산을 에돌아 고주성에 당도한 진권이 이젠 됐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데 성밑에 설연이 대군을 이끌고 당도하여 싸움을 돋군다는 기별이 왔다.

《아이쿠, 그놈의 설가는 참말로 검질기구 지독하구나!》

진권이 푸념하더니 진걸에게 물었다.

《우리 군사의 형세가 기진하고 게다가 군량마저 없으니 필연코 설연을 당하지 못할텐데 어쨌으면 좋겠냐?》

진걸이 호언장담하였다.

《살아남은 패잔병으로 설연을 당할수 없으나 이곳의 지세가 험한고로 일체 싸우지 않고 성곽을 굳게 지키면 비록 설연이 십만대병을 끌고왔어도 깨치기 어렵나이다. 그러느라면 오래 견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갈것입니다.》

진권의 낯색이 밝아지는듯 하였다.

매한테 쫓기운 까투리마냥 고주성에 대가리를 틀어박고 도무지 응전하려 하지 않는 진권의 잔꾀를 알아챈 도원수 설연은 즉시 장수들을 불러 임무를 하달하였다.

제2대 좌군장 우시춘과 제3대 우군장 서하수는 각각 이천명으로 고주성의 북쪽 제운구에 매복하고 제4대 거기장군 흥윤은 이천명으로 고주성의 서쪽으로 통하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진권의 군량길을 막으라 하고 제5대 표기장군 강수천은 이천명으로 고주성의 남쪽길에 매복하였다가 양철의 치중부대를 끊으라 하고 제6대 원문장 염성태는 이천명을 이끌고 강연안에 매복하였다가 진권의 싸움배가 왕래치 못하게 하고 제7대 후군장 맹학신의 이천명은 우회길에 매복하여 진권이 왕래하는 도로를 차단하라 하고 제8대 성문장 마맹달로 하여금 이천명을 데리고 동쪽길에 매복하였다가 진권이 동쪽으로 달아남을 막으라 하고 제9대 별장 륙합으로 하여금 이천명을 이끌고 고주성의 서쪽산에 매복하였다가 진권의 소식을 탐문하여 보고하라 하고 제10대 선봉장 조환, 왕연 두 장수로 하여금 오천명을 거느리고 고주성을 포위하고 동정을 살피다가 적의 군심을 소란케 하며 중랑장 조명걸은 철기군 오천을 거느리고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 대기하라는 령을 내렸다.

《진권이 오도가도 못하고 독안의 쥐신세가 되고말았구려.》

령을 받고 나오면서 우시춘이 한마디 하자 조명걸이 도원수의 기막힌 작전에 탄복을 금치 못하며 덧붙였다.

《도원수의 지략은 참말로 신비롭소이다.》

장수들이 한결같이 머리를 끄덕거리며 신바람이 나서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각 장수들이 분담된 임무대로 대오를 끌고 떠나 자기 위치를 차지했다는 보고가 당도하자 도원수 설연은 대군을 총독하여 날마다 성밑에 이르러 진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돋구었다.

공포에 질린 진권은 진걸의 의견을 쫓아 성밖으로 나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 설연이 포위를 풀고 스스로 물러가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이러구러 이십여일이 지났다.

복주에 있던 양철의 군사까지 들어오니 얼마 안가서 성안에 저축했던 량식이 다 떨어지고 마초가 고갈나기 시작하였다. 반란군사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소와 군마를 잡아먹었으며 백성들속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지어 성을 타고 몰래 도망치는 군사들도 있었다. 행여나 먹을것이 없나 구석구석 돌아치며 오물통을 뒤지는 군사들의 수가 불어났다. 조금이라도 눈에 먹을것만 보이면 굶주린 들개마냥 왁- 달라붙어 치고 받으며 싸움질하는 군사들의 그 란무장을 바라보는 진권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었다. 여차하면 앉은자리에서 군사들이 굶어죽든가 아니면 다 도망갈 판이였다.

(형세가 곤궁하고 군사들이 굶주려 모두 기진맥진하였는데 며칠이나 견디여내겠는가. 내 수하에 아직도 십만이 넘는 군사가 있는데 이럴바에야 차라리 한번 싸워 설연과 승패를 다툼이 옳지 않겠는가.)

진걸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진권은 다음날 남은 군사를 모두 모아놓고 성밖을 나가 죽기로 싸울 결심을 밝히고 이어 진걸을 선봉장으로, 양철을 후군장으로 삼은 다음 군사 십만을 거느리고 성문을 열고나가 진을 형성하였다.

도원수 설연은 적들이 욱 밀려나와 진을 치는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곧 성을 포위하고있는 조환과 왕연에게 다음과 같은 령을 내렸다.

《막다른 골목에 빠진 반란적이 사생결단하려고 하거늘 진권을 잡기는 어렵지 않도다.

허나 도적괴수를 잡으려면 우리 군사들이 많이 상할것이니 싸움이 한창 벌어지면 일단 길을 열어주어 도적이 달아나게 한 다음 그뒤를 엄습하라!》

싸움이 곧 시작되였다.

굶주리고 기진맥진하고 더구나 신심이 부족한 적군이였다. 허나 이 싸움의 승패에 따라 저들의 운명이 결정된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진권과 진걸이라 군사들을 내몰아 필사적으로 저항해나설것은 불보듯 뻔하였다. 비린청을 돋구어대는 적장들의 거센 고함소리에 뒤이어 눈에 피발이 선 적군사들이 행렬을 지어 한걸음한걸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장대에 올라 전장을 일별하던 도원수 설연이 조명걸에게 왼손을 틀어 신호하였다.

조명걸이 자기의 부하장수들에게 짤막하게 지시를 주자 길이 확 트이면서 긴 창을 두서너개씩 잔등과 배허벅에 얽어맨 백여마리의 황소들이 우르르 쓸어나왔다. 몸집이 커다란 황소들의 뒤에는 기름방치를 손에 든 군사 한명씩 붙어있었다.

도원수 설연이 다시한번 신호를 하자 군사들이 기름방치에 불을 달아 소꼬리에 갖다댔다. 이미 소꼬리에도 기름을 발랐던지라 볼이 확 달렸다. 볼에 덴겁한 황소들이 적진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향한 창날과 황소의 커다란 뿔이 그대로 무서운 도깨비방치나 같았다.

미친 소의 무리가 진앞으로 돌진해오자 기세등등해서 전진해오던 적의 행렬이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굉장한 속도로 질풍같이 달려간 미친 소들의 몸에 얽어맨 창들이 그대로 적의 가슴팍을 꿰지르고 성난 소들이 달려가던 그 기세로 자기의 커다란 뿔로 적군사를 들이받았다. 적군사들의 창자가 꿰지고 몸뚱아리가 허공으로 뿌려졌다. 적의 전투서렬은 삽시에 수라장이 되고말았으니 염라대왕의 지옥의 기름가마인들 이보다 더 끔찍하랴.

《이건 또 웬 미친 소들이냐?

아이쿠, 설연이 저놈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귀신이로구나!》

진권이 외마디비명을 지르는데 이번에는 황소가 휘저어놓은 진중을 향해 조명걸의 오천철기군이 맹호같이 달려나왔다.

진걸이 전장을 둘러보니 사방에 온통 발해군사뿐이라 빠질 길이 보이지 않는데 불현듯 동쪽켠에 빈 구석이 보였다. 이는 조환과 왕연이 도원수의 지시대로 미리 포위를 풀어 길을 열어놓은것이였다. 진걸이 그 길을 바라보고 진권을 앞세우고 군사를 빼내여 동쪽길로 몰아갔다.

장대에 올라 진권이 동쪽길로 빠져나가는것을 주시하는 도원수 설연의 눈가에 잔물결이 일었다.

곧 징을 울려 부대를 거두고 전장을 정리하게 한 다음 다시 대군을 통솔하여 북나팔을 울리며 그뒤를 침착하게 따르게 하였다.

꼬리에 볼이 달린 미친 황소들에게 되게 곤경을 치르고 변변한 싸움도 못해보고 아까운 군사만 잃은 진권이 동쪽길의 포위가 풀려 천방지축 달아나는데 그앞에 발해군장수 마맹달이 기다리고있을줄 어찌 생각했으랴. 얼마 가지 못했는데 진권의 앞에 성문장 마맹달이 군사들을 휘동하여 사면에서 쳐들어왔다.

《이 길로는 못 가겠구나!》

아부재기를 치며 락심해있는 진권에게 진걸이 다가왔다.

《제운구로 갈수밖에 없나이다.》

진권은 그 말을 쫓아 동쪽길로 가지 못하고 할수없이 북쪽의 제운구로 군사를 돌리였다.

진권이 간난신고하며 허둥지둥 제운구에 들어서는데 길이 여러갈래로 나서는지라 어데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또다시 비명을 질렀다.

《길이 여러개이니 어데로 가야 한단 말인가.》

진권이 어쩔줄을 몰라 머밋거리며 진걸을 돌아보는데 불쑥 한 대장이 벽력소리 내지르며 그 한가닥 소로길에서 창을 쳐들고 달려나왔다. 우군장 서하수가 거느린 발해군사들이였다. 진걸이 창황중에 창을 들고 막아나섰다. 비호같이 질주해오던 서하수가 그 기세로 나는듯이 달려들어 진걸이 탄 말을 찔러 엎지르니 진걸이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어느새 군사들이 왁 달라붙어 진걸을 결박하였다.

진걸이 결박당하는것을 본 진권이 당황망조하여 어쩔바를 몰라한다.

앞에도 뒤에도 좌우에도 온통 발해군장수들이 군사를 끌고 무섭게 질주해오니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신세에 빠진 진권이였다.

어디선가 도원수 설연의 야무진 목소리가 진권의 귀전을 때렸다.

《진권과 양철부자는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

진권의 뒤를 쫓던 아군의 장수 마맹달이 소리에 응하며 장창을 들고 내달아 그의 등을 찌르니 진권이 말에서 나떨어졌다. 마맹달이 돌아서서 던진 오라가 순식간에 진권의 몸뚱아리를 칭칭 감았다.

뒤이어 서하수의 손에 양철이 잡혀 끌려왔다. 애비가 잡히는것을 본 양달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죽을둥살둥 정신없이 도망하는데 어데선가 획 포승끈이 날아와 양달의 목을 걸어챈다. 좌군장 우시춘이 던진 포승끈이였다. 양달까지 사로잡으니 적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스스로 무기를 놓고 항복하였다. 드디여 싸움은 발해군의 대승리로 막을 내렸다.

도원수 설연이 령을 내려 대오를 수습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고주성에 입성하여 성우에 발해국을 상징하는 교룡기를 세우고 성안을 평정하게 하였다. 항복한 군사들은 다 용서하여 농사와 가사를 돌보라고 내보내주니 그들모두가 도원수의 은혜에 감지덕지해하며 연신 절을 하였다.

조정에 승전을 알리는 첩보를 띄운 설연은 그길로 조명걸을 회원부의 회주성에 보내여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량식과 재물을 내주어 위로하니 회원부의 백성들이 너나없이 좋아하였다.

역적무리들의 반란을 평정한 도원수 설연은 이어 진권과 진걸, 양철부자를 함거에 싣고 대군을 거느리고 개가를 올리며 황성으로 향하였다.

임금이 도원수의 첩서를 받고 희색을 띠우고 부원수 황운더러 어주와 음식을 가지고 도중에서 도원수를 영접하라 하였다.

설연의 대군이 황성을 향해 출발한지 이틀째 되는 날 정오무렵 황명을 받고 중도에서 기다리던 황운이 맞아주었다.

《도원수의 지모와 용맹으로 횡포한 역적무리들을 멸하고 나라를 평정하였으니 장군의 공이야말로 죽백에 드리을 대공이오이다. 성상께서 보내신 이 어주를 받으소서.》

어주를 받는 도원수 설연의 손이 가볍게 떨리고 황운을 바라보는 그 눈에 련모의 정이 남실거렸다.

《아니 할 말씀이오이다. 부원수가 아니였다면 성상은 물론 종묘와 사직이 어찌될번 했소이까.

장군은 세상에 없는 영웅남아이고 천하에 드문 충신이옵니다.》

두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우시춘과 서하수, 조명걸과 염성태며 출전장수들이 차례로 황운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도원수를 도와 역적무리들을 멸한 그대들의 공을 무슨 말로 다하리오.》

《그건 다 싸움을 승전으로 이끈 도원수의 공로이옵니다. 그리고 부원수가 성상을 구원했기에 오늘의 승리가 있은것이 아니오이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여 황운에게 진심으로 사례하는 우시춘의 진정의 목소리였다.

이어 임금이 내린 어주와 음식이 대오에 전달되였다. 웃고 떠들며 즐겁게 마시고 먹는 군사들의 그 모습에 산천도 감심했는지 화창하기 이를데 없는 봄날이였다.

대오는 다시 황성으로 향했다.

기치창검이 번뜩이는 대오의 선두에는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이 말을 타고 나란히 나가고있었다. 황성으로 보무당당히 행군하는 그들을 각 주의 자사들과 현의 승들, 수많은 백성들이 저저마다 떨쳐나와 손을 들어 맞아주고 환영해주었다. 두 장수를 앞세운 군사들이 기세충천하여 창을 하늘로 쳐들고 장검을 빼들고 와- 와- 함성을 올렸다. 군사들이 울리는 승전의 북소리, 뿔나팔소리 하늘땅을 진동한다. 해빛도 류달리 따스하고 산천도 류달리 푸르르고 바람새도 류달리 부드러웠다.

설연의 대군이 황성에 이르니 임금이 문무백관을 다 끌고 성문밖에까지 나와 맞아주었다.

임금이 도원수 설연의 두손을 부둥켜잡고 목이 메여 부르짖었다.

《경의 충의지심으로 역적을 멸하고 강산을 회복하였으니 그 공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도원수 설연이 한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나이 어리고 재주 불민한 이몸이 성상의 대해같은 은총을 입어 도원수가 되여 출정하였나이다. 허나 역적 진형의 욕이 옥체에 미치게 하였사오니 신의 이 죄를 어찌 용서받을수 있겠나이까.

요행 성상의 복으로 역적을 사로잡고 황성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성상을 욕보인 죄는 신이 역적을 막지 못하여 생긴 불미스러운 일이옵니다. 또 이번 란리에 무고한 백성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으니 신의 그 죄는 만번 죽어도 용서받을수 없는 대죄옵니다.

엎드려 빌건대 성상께옵선 신의 죄를 다스리여 천하의 불충한 신하들을 징계하옵소서.》

도원수 설연의 뺨으로는 진정으로 쏟는 눈물이 비오듯 흐르고있었다. 나라앞에 그토록 커다란 공을 세우고도 스스로 죄를 청하는 그 모습앞에 문무백관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으며 속으로 반성하였다.

(내 과연 도원수처럼 저러한 충의지심을 지니고있었던고?!)

임금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경은 안심하라. 이는 국운이 불행하고 짐이 덕이 없는탓에 간사한 도적이 저의 강포함을 믿고 무죄한 생령을 해함이로다. 백여년 종묘사직이 짐의 대에 이르러 거의 마치는가 했더니 다행히도 경의 충정으로 역적들을 소탕하여 보존하였으니 이는 다 경의 공이로다.

경의 공이야말로 세상에 있어본적 없고 천추에 길이 전해갈 공적이거늘 어찌 그러한 말을 하여 짐으로 하여금 마음이 불안케 하느뇨.

경은 나라와 선조들앞에 그리고 백성들앞에 떳떳하니 어서 빨리 일어나라.》

도원수 설연이 황공함을 금치 못해하며 일어서니 좌중에서 박수소리 요란히 울려나왔다.

임금이 친히 잔을 들어 가득 부어주며 도원수에게 권한 다음 다시 출전한 장수들에게 차례로 어주를 내여주었다.

이윽고 도원수 설연이 임금을 호위하여 각 진의 장수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서서히 대오를 전진시키는데 임금의 얼굴엔 시종 희색이 만면하였다. 그뒤로 종실의 대신들과 백관들이 후군이 되여 나아갔다.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이 수백명의 장수들과 이십만군사를 거느리고 어가를 옹위하여 행군하는 모습은 볼수록 장관이였다.

황성에 입성한 임금은 문무신하들의 축하를 받은 후 먼저 도원수, 부원수를 위하여 처소를 별도로 정해주었다.

창순궁을 내여 도원수 설연에게 주고 또 돈화궁을 내여 부원수 황운에게 주고 궁녀중의 제일가는 미인을 선발하여 두사람에게 주니 그 미인들의 이름은 동리화, 설중매로서 당년 나이 열일곱살이였다.

설연, 황운 두 장군이 은혜에 사례하고 내전에 찾아가 문안하니 황후가 또 궁녀들에게 명령하여 향기로운 술을 주어 위로하였다. 두 장군이 머리를 숙여 은혜에 사례하고 각기 자기의 궁으로 돌아오니 벌써 동리화와 설중매가 궁중에서 기다렸다가 두 장군을 맞이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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