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8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4 장


4


계응상은 졸업야회에 참가하고 밤이 깊어서야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주인집내외는 그때까지도 자지 않고 응상을 기다리고있었다.

문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주인내외는 겨끔내기로 축하의 인사를 했다.

《응상군, 1석의 성적으로 농학사가 된걸 축하해요.》

《자, 오늘은 우리 집 아래방으루 내려가 이야기라도 나누자요.》

《감사합니다. 그동안 정말 페를 많이 끼쳤습니다.》

집주인의 꺼칠한 손에 이끌려 아래방으로 들어선 응상은 다시한번 놀랐다. 상우에 국수며 김치, 록두나물과 같은 조선음식이 소박하게 차려져있는것이였다.

《집에 계신 부모님들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성의가 부족하여 응상에게 괴로움을 끼친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사과의 말을 하는것이였다. 주인내외도 한때 형언할수 없는 빈궁에 시달리며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고 지금도 몇두락 안되는 남새밭에서 나오는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수 없어 몇푼 안되는 하숙비를 보태쓰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 된것이다.

《어서 들어요. 된장이나 간장 같은게 없으면 조선음식이 아니라는데.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는 마늘조차 없어서 안됐어요. 》

주인집내외는 응상의 친부모의 심정을 다문 얼마라도 대신해주려고 각별히 마음을 쓰는것이였다.

졸업야회를 치른 뒤여서 더는 음식을 입에 대고싶지 않았지만 주인내외의 성의를 물리칠수 없어 응상은 물고기회꾸미의 국수를 달게 들었다.

응상이 대학연구원에 떨어지게 되였다고 말하자 주인내외는 제일처럼 더욱 기뻐했다. 이윽고 주인집아주머니가 웃방으로 올라가더니 자그마한 나무함을 들고 내려왔다.

그는 그것을 응상이앞에 조심스레 내놓았다.

《자, 약속을 지켰어요. 이젠 이걸 내놓아도 일없겠지요?》

그것은 응상이 대학공부를 하는 4년동안 고향에서 온 편지들을 주인집아주머니가 간수해두었던 함이였다. 응상은 편지함을 소중히 받아들었다. 그러나 떨리는 손으로 나무함을 한동안 어루만질뿐 선뜻 열어볼 념을 내지 못했다.

《한가지만 묻고싶어요.》

주인집아주머니는 마른침을 삼키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응상군은 고향에 계신 부모처자들이 그립지 않아요?》

《…》

갑자기 응상의 얼굴에서 피기가 싹 가시고 입가에는 미소인지 애수인지 모를 가는 주름살들이 잡히였다. 주인집아주머니는 응상에게 무례하다고 할만치 모진 말을 했다는것을 감득한듯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안요. 지당한 질문입니다. 나는 그렇게도 모진 인간입니다.》 응상의 목소리는 갈려나왔다. 고개를 돌려 어둠이 깃든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는 그의 눈에는 쓰라린 고통의 빛이 얼른거리였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흘러내리는 울안에서는 유자나무잎새가 밤바람에 살랑거리고있었다. 그 잎새사이로 엿보이는 새별은 유난히도 초롱초롱 빛났다.

고향집에서도 새벽에 문을 열고나서면 첫눈에 띄군 하던 유정한 별이였다. 때없이 고향의 밤하늘을 펼쳐보이는 새별! 언제면 그 별빛을 이마에 얹고 고향의 들길을 훨훨 걸어볼것이냐. 응상의 가느스름한 얼굴에는 애타는 갈망의 빛이 련련히 흘러넘치고있었다.

《이제는 고향에두 한번 다녀와야 하잖아요?》

주인내외는 어색한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말머리를 돌렸으나 흐려진 그의 기분을 돌려세울수는 없었다. 응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벽가에 놓인 발풍금앞에 다가앉았다.

그 어떤 애틋한 정회를 더듬는듯 쪼프린 눈을 앞벽의 어느 한점에 박고있던 응상은 조용히 풍금을 타기 시작했다. …

묵은 락엽밑에서 흘러내리는 시내물의 속삭임인듯 도란도란 정겹게 울리던 선률은 억제할수 없는 기쁨을 내뿜기도 하고 애수에 잠겨 잔잔히 흐르기도 했다. 주인내외는 희한해하는 눈매로 계응상을 바라보며 풍금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그들은 응상이 입밖에 내여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비애의 격류를 가슴뜨겁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경탄해마지 않았다.

사소한 인간적인 감정도 무자비하게 짓밟고 올라서는 그의 행동에는 목적달성을 위해 무섭게 매진하는 강의한 성품이 엿보였던것이다. 일본사람들은 거리에서 남한테 지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배를 갈라 죽는것을 마땅한 의로 여기는 독한 민족이라고 자부하고있었다.

그들의 집들에는 어느 집이나 출입문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빈 방을 하나씩 남겨두는데 그 방은 그처럼 죽음으로써 수치를 씻는 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사람모두가 계응상과 같은 사람이라면 이들은 얼마나 강인하고 의지가 굳센 민족인가.

주인집내외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주인집에서 편지함을 안고 자기 방으로 올라온 응상은 남포등을 켜놓고 그앞에 다가앉았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을 지그시 누르고 한동안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정작 편지함을 열어보자니 가슴이 떨렸다. 그는 마치나도 시한탄을 해체하는 사람과 같이 불안하고 초조한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편지함뚜껑을 열었다. 그안에는 여러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맨우에 놓여있는 보통편지를 먼저 집어들었다. 일부인이 찍혀진 활자를 보니 이태전에 응관형한테서 보내온 편지였다.

낯익은 필적을 보니 가슴이 설레였다. 흐려오는 눈길을 모으며 글줄을 더듬었다.

《네가 집에 다녀간지도 벌써 세해가 지났다. 소식 한장 없지만 그동안에도 동생이 얼마나 피나게 공부를 하고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표 한장 살 돈도 아쉽겠지. 그렇지만 너무도 종무소식이니 무정한 생각이 드는구나.

아주 영 우리를 잊어버린게 아닌가 하는 의혹조차 들 때가 있다. 한해에 한번씩은 몰라도 이태에 한번씩은 소식을 전해줘야 할게 아니냐. 소식은 없지만 부고가 오지 않으니 살아있는가부다 할뿐이로구나. …

며칠전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숨을 거두시기 전에 일가친척들이 모두 찾아와 마지막작별인사를 드리였다. 조부께서는 말을 못하시게 된 뒤에도 내내 손가락 두개를 펼쳐보이며 그냥 둘째손주를 보고싶다고 하시더라.

집에 눌러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연 타향에 나가있는 혈육에게 남다른 정이 가게 마련이지만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간절한 모양이더구나. …》

응상은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리 귀중한 혈육이라도 나이들면 어차피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지만 어릴 때부터 극진히 위해주던 할아버지가 다시 볼수 없는 세계로 영영 가버렸다고 생각하니 산란해지는 마음을 걷잡기 어려웠다. 나는 혈육의 정도,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례의풍습도 저갈데로 가라고 밀어던진 부랑막심한 불효자식이 되고만것이 아닌가.

집에 다녀올 때 겨우 운신하는 몸을 일으키여 지척지척 담장밖에까지 나와서서 그가 산굽이로 돌아갈 때까지 장승처럼 서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때 벌써 그의 할아버지는 그를 다시 만나보지 못하리라고 예감했던가.

한데 그는 그런 추연한 눈길을 감촉도 하지 못하고 헌헌히 길을 떠나오지 않았던가. 두번째 편지는 안해한테서 보내온 편지였다. 그가 가정을 이룬 후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지도 어언 십년이 가까와오지만 그는 안해에게 편지를 따로 해본적이 없었고 안해 또한 그에게 편지를 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게 놓고보면 이번 편지는 그의 안해가 그에게 난생처음 써보내는 편지라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안해는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녀자였다. 미상불 본가 마을로 찾아가 글자나 익힌 어느 선달한테 당부하여 편지를 써보낸 모양이였다. 붓글로 고투를 써가며 한자와 한글을 섞어서 내리쓴것만 보아도 그렇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가 집을 떠난 후 몇달 안있어 덕다리메골로 이사를 했다는것, 량추녀에 세발곱새 드리운 초옥일망정 제 집을 쓰고사노라고 했다. 애들을 데리고 딴살림을 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남의 손을 빌려서까지 편지를 써보낸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소식은 그가 정주헌병대에서 놓여나와 집에 들렸다 떠난 후 안해에게 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는것이였다.

꼽아보니 그때로부터 6년이 지났으니 그 아이도 어느새 다 커서 쾅쾅 뛰여다니게 되였다.

바라지 않던 자식이 자꾸만 늘어나는게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무럭무럭 커간다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집어든 편지는 주소도 이름도 전혀 낯선 곳에서 온 두툼한 등기편지였다. 경기도 강화군의 어느 외진 섬마을의 문성희라는 녀자한테서 온것이였다. 고개를 기웃거리며 피봉을 뜯었다. 또박또박 우리 글로 박아쓴 속지를 뽑아 읽던 응상은 《아》하고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것은 고국을 떠날 때 그가 그리도 찾으려고 애쓰던 리덕구선생이 자필로 쓴 편지였던것이다.

《응상군, 자네가 이 편지를 받아볼 때에는 나는 이미 이 세상과 하직한 몸이 될걸세. 내가 홀연히 서울에서 백수십리 떨어진 외진 섬으로 건너간것은 나를 둘러싼 숨가쁜 분위기에서 벗어나 병원도 학교도 없는 외진 섬에서 어지러운 세상의 티끌에 오염되지 않은 소박한 사람들과 함께 내딴의 리상을 실현해보려는 남다른 지향이 있었기때문이였네. 내가 이런 꿈을 지닌것은 빅또르 유고의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랑만주의에 심취된탓이였는지 아니면 예민한 나의 감정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부정의에 대한 도피였는지 어쨌든 내가 선친이 물려준 그 집을 팔아치우고 서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질식되여 숨막혀 죽든가 고층집에서 떨어져 투신자살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네.

나는 인천부두에서 련락선을 타고가다가 초지진에 내려 곧장 정족산성에 올랐네. 우리 조상들의 출중한 지혜의 창조물인 8만대장경의 일부를 돌아보기도 하고 병인양요때 양놈들을 통쾌하게 요정낸 양헌수장군의 전승비며 척화비도 감회깊이 돌아보았네.

그럴만큼 나의 마음에는 여유도 있었고 새로운 신심에 넘쳐있었지. 내가 건너간 섬은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십여리나 떨어져있는 외딴섬이였네.

물녘에 자리잡고있는 배군네 사랑채에 몸을 붙이고 비좁은 사랑방에서 섬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편안했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면 마을을 돌아보며 앓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기도 했네.

섬에서 신의사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었길래 선주들도 별수없이 나한테 오군 했지. 나한테는 돈과 재산은 없었지만 부러운것이 하나도 없었네.

선창에 나가면 배군들이 배칸으로 불러들여 조개회에 사발술을 권했고 끼니가 떨어진 집에서는 허물없이 눌러앉히고 밥대신 갈게볶음을 뚝배기에 무둑히 담아주기도 했네. 원두막에 들리면 아무때고 개구리참외를 먹고싶은대로 먹을수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모래불에 뒹굴며 구운 감자로 끼니를 에우기도 했네.

그러나 이 땅엔 그 어떤 무인고도에도 별천지가 없었네. 하루는 배군들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한 어부를 나한테로 메여왔네.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는 사이에 선주놈이 젊은 어부의 새색시를 겁탈했네.

고기잡이에서 돌아와 이 사실을 안 젊은 어부는 격분을 참지 못해 선주를 찾아가 항의했네. 그런데 선주놈은 오히려 제편에서 감히 주인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펄펄 뛰면서 장도칼을 휘두르다가 어부의 가슴을 찔렀네. 이 사건으로 섬은 들끓었네.

어부의 상처는 깊지 않았네. 그러나 응급처치를 한 나는 어부들과 함께 선주의 집으로 찾아갔네.

이런 분별없는 만행이 징벌을 받지 않는다면 섬사람들이 어떻게 마음놓고 살아갈수가 있겠나.

그런데 오만무례한 선주놈은 뻔뻔스럽게도 아닌보살하면서 오히려 피해를 입은 어부와 그를 동정해나선 우리를 법에 고소하겠다고 하는것이 아니겠나. 어부들은 그자의 버릇을 고쳐주지 않을수 없었네.

우리는 선주놈을 꿇어앉혀놓고 피해자인 어부에게 거액의 치료비와 피해보상금을 지불할데 대한 문서에 도장을 찍게 하고야말았네.

그런데 선주놈은 군경찰서에 찾아가 내가 어부들을 선동하여 자기의 재산을 강탈했다고 고발했네. 어느날 군경찰서에서 순사들이 배를 타고 무리로 섬에 쓸어들어 어부들과 함께 나를 체포했네. 놈들은 가짜증인까지 내세워 나의 죄행을 강제로 인정케 하고 3년징역을 선고했네.

세상에 이런 어망처망한 날조가 어디에 있겠나.

고지식한 이 선비는 척추가 부러지도록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판결을 거부했네. 뒤늦게야 나는 진실여부가 법적판결의 근거로 되는것이 아니라 누가 값진 뢰물을 고여올리는가에 모든것이 달려있다는것을 깨달았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네. 놈들은 송장이 다 된 나에게 더는 옥밥을 먹일 필요가 없다는걸 간파하고 가석방하여 내놓았네.

응상군, 내 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네. 벌써 죽음의 나래가 내 육신을 감싸고있네.

고맙게도 섬에서 알게 된 한 녀인이 나의 단벌 나들이옷을 깨끗이 빨아놓았네.

멀지 않은 땅속으로 가는 길차비로써는 너무 과남하지 않은가.

하나밖에 없는 나의 귀중한 응상군, 나의 인생은 여지없이 찢기고 산산이 부서지고말았네. 나는 실패했네.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 고뇌를 안고 저세상으로 가는것이 무엇보다도 괴롭네.

그러나 자네는 꼭 성공하는 사람이 되게. 조금도 주춤거리거나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매진하게. 내가 자네에게 부탁할것은 이것뿐일세. …》

문성희는 덕구선생과 섬에서 알게 되여 길지 않은 기간 그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던 소박한 녀성이였다.

눈물로 얼룩진 그의 편지에는 스승이 응상에게 편지를 내놓은 이튿날 저녁 병상에서 몸부림치다가 숨을 거두고말았다는 비통한 소식이 담겨져있었다. …

응상의 눈에서는 돌이킬수 없는 깊은 자책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 하나밖에 없는 잊을수 없는 스승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준 때로부터도 어언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 내 무엇때문에 조국에서 보내오는 편지들을 모조리 덮어놓게만 했던가. 괴로운 자책감이 가슴을 허비였다. 그의 스승은 제자의 앞날을 위해 선친의 유산마저 깡그리 기울여주었건만 그는 스승이 비참한 시련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위로의 편지 한장조차 보내지 못하고말지 않았는가.

세상에 이처럼 의리도 없고 도덕도 없는 행위가 어데 있겠는가. 응상은 그 무엇으로도 자기를 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무참한 인간적참패를 당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 스승이여! 고이 눈을 감으시라. 내 기어이 스승이 그리도 바라마지 않은 조선의 자랑이 되여 백배천배의 보답을 하고야말겠나이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