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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4 장


2


계응상박사와 면식이 있는 사람들도 간혹 그를 과학이외의 다른 생활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사는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계응상에 대한 완전히 일면적인 견해이다. 그는 자기가 유구한 력사를 가진 조선의 아들이라는것을 어느 한때도 잊은적이 없었다.

비록 머리를 깎고 중학교를 다니고 일본으로 건너가 10년동안 공부를 했지만 민족적지조만은 털끝만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왜놈들이 창씨개명을 요구할 때에도 그는 끝내 부모가 지어준 자기의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자기의 첫 과학론문을 발표할 때에는 본명을 조선식으로 밝힐수 없게 되자 k라는 략자를 달지언정 절대로 가쯔라라는 일본식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k자는 부모가 지어준 그의 성명의 머리글자를 영어로 표시한것이기도 했지만 보다는 그것이 조선(코레아. 당시)이라는 영문의 첫글자와 일치하기때문이였다.

계응상이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해에 3. 1운동이 일어났고 그후 3년이 지나 또다시 간또대지진사건이 터졌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이때 일본땅에서는 조선사람을 색출하여 찔러죽이고 불태워죽이는 야만적인 행위가 벌어졌다.

몸서리치는 살인광풍은 일본본토는 말할것 없고 계응상이 도꾜정치영어학교를 거쳐 우에노잠사전문을 마치고 건너가있던 규슈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조차 그는 하숙집으로 돌아오면 여느때나 조금도 다름이 없이 고향에서 가지고 온 조선바지저고리를 입고 공부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어느날 도꾜에서 간신히 빠져나와 응상을 찾아왔던 한 친우는 하숙집에서 바지저고리를 입고있는 계응상을 보고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레둘레 살피며 말했다.

《자네 환장하지 않았나? 이 스산한 때에 조선바지저고리를 뻐젓이 입고있다니, 나 잡아죽이쇼 하고 광고를 하는게 아닌가.》

《난 정신이 똑똑하네. 도꾜에서 지진이 인다고 내 정신까지 흔들리겠나.》

응상은 어엿이 대답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무모하기도 했지만 용감한 행동이 아닐수 없었다. 그는 민족적량심을 팔아 학문을 사는 그런 류의 학생이 아니였다. 3. 1인민봉기때 조국의 부모형제들의 투쟁에 호응하여 정치영어학교 조선인학생들이 들고 일어날 때 응상은 들뛰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며 밤새워 조선독립을 피타게 부르짖는 구호를 도맡아 썼던것이다.

계응상은 일본규슈제국대학 본과에 입학시험을 치르어 가장 높은 성적으로 합격되였다. 그러나 대학학무과에서는 우에노잠사전문과 같은 실업전문을 졸업한자는 관립대학 본과에 입학시킬수 없으니 선과에라도 들어 수업을 받겠으면 받으라고 딱 잘라매는것이였다.

이 대학에는 본과와 선과가 있는데 본과에는 5년제 중학과 2년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증서가 있는 학생만이 입학자격을 가지게 되여있었다. 선과에는 이러한 정규학교과정을 체계적으로 밟지 못한 학생들을 받아들여 공부시키되 졸업할 때에는 본과학생들에게 주는 학사증이 아니라 수료증을 주었다.

그런데 조선에서 3년제 사립중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건너와 2년제 실업전문을 마친 그가 졸업증서를 내놓을수 없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당시 조선인학생으로서 이런 엄격한 교육제에 응할만 한 정규학교 수료자가 몇몇이나 되였으랴.

응상은 이런 입학규정이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며 설사 자기가 시험을 쳐서 합격해도 본과에서 수업할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굳이 입학시험을 쳤고 실력으로써 본과에 들수 있다는것을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일종의 억누를수 없는 반발심을 안고 학무과를 찾아가 발표된 무시할수 없는 높은 성적을 내대고 본과입학을 요구했다. 일본에서도 잠학부가 있는 대학은 이 대학뿐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도 응상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서 이 대학을 거치는것은 중요한 의의를 가졌던것이다.

허나 학무부장은 신성한 교육기관에 찾아와서 떼를 쓴다고 어성을 높여 응상을 꾸짖었다. 이때 학무부장과 응상이 주고받는 말을 유심히 듣고있는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시 일본유전학계의 1인자로 손꼽히는 다나까 요시마로박사였다.

그는 원래 신입생들의 입학시험에 관여하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잠학부에 동원되여 입학시험지채점을 하던 한 교원이 그에게 특출하게 시험을 친 한 학생의 시험지를 보여주었었다. 수험전과목 100점만점이였다.

자기가 지도하는 학부에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데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두고있던 다나까 요시마로는 그 시험지의 임자 이름을 기억해두고있었다. 한데 학무부에서 문제로 삼고있는 학생이 다름아닌 그 시험지의 임자가 아닌가.

《학무부장선생! 나 좀 봅시다.》

자그마한 키에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두눈에 영채가 떠도는 다나까 요시마로는 학무부장을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다나까는 선채로 물었다.

《그 학생의 이름이 계응상이지요?》

《옳습니다.》

《내 이번에 그 학생의 시험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틀림없이 수재형의 학생입니다.》

《모르는바 아닙니다.》

《그런데도 꼭 필요한 졸업증사본이 첨부되여야만 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내가 그의 학력을 보증하겠습니다.》

학무부장은 경의를 표시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는 시틋한 기색을 짓고 랭정하게 뇌까렸다.

《실은 그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전혀 다른 문제, 정치적문제때문에 그러는것입니다.》

《아, 조선인이라는 그것때문에 말입니까?》

다나까 요시마로는 입가에 고소를 머금었다.

그는 자기네와 같은 대학에서 내지인인가 외지인인가를 문제삼아 수험응시자들에게 제재를 가하려고 하는 교육행정일군들의 근시안적인 처사에 대하여 혐오감을 품고있었다. 이러한 차별행위야말로 인간의 지성에 대한 야만적인 폭거로 될뿐만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그들로하여금 일본을 증오하고 반대하도록 가르치는 결과밖에 얻어지는것이 없다고 확신했다.

자기의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다나까의 격한 표정을 랭담하게 직시하던 학무부장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그런것도 전혀 문제로 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중요한건 그가 일본에 건너와서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행동을 하다가 도꾜 히비야경찰서신세까지 졌다는 점입니다.》

《흠.》 다나까 요시마로는 두눈을 재게 깜박이며 미간을 찌프렸다.

《부장선생은 조선인들이 일으켰던 3. 1봉기때 그 학생이 관여했다는걸 념두에 두고 그러는거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론의거리로도 되지 않습니다. 대학은 학생들의 과거생활을 들추는 형사기관이 아닙니다. 우리 대학에서 저런 수재들을 입학시키지 않는다면 씻을수 없는 수치로 된다는걸 명심해주기 바랍니다. 실지로 도량이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은 호통을 치지 않지요.》

응상이 학무부대기실의자에 앉아있는 그 시각 옆방에서는 두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며칠후 그 론전이 어떤 방향으로 깊어졌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응상에게는 규슈제대 농학부본과에 입학했다는 입학통지서가 전달되였다. 이렇게 된데는 다나까 요시마로박사의 주장이 크게 작용했으리란것을 미루어 짐작키 어렵지 않았다.

응상은 축축한 해무가 밀려든 이국의 도시를 깊은 생각에 잠겨 걷고있었다. 그는 일본대학들중에서 하나밖에 없는 잠학부에 처음으로 입학한 조선사람으로 되였다. 이것은 그가 우리 나라 잠업계에서 가장 먼저 고등교육을 받게 된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응상은 미상불 자기가 이 대학 잠학부에서 조선을 대표하게 되였다는것을 각별히 깊이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이때부터 계응상은 자신의 학업이 그자신의것이기 전에 조선의것으로 되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날카롭게 감득했다.

그는 대학이 자리잡고있는 후꾸오까교외에서 눅거리로 들수 있는 하숙방을 하나 얻었다. 주인집은 홍당무우, 배추, 파와 같은 남새농사를 짓는 순박하고 근면한 농민이였다. 딸 하나를 두고 고적하게 살아가는 주인내외는 대학생이 자기 집 웃층에 드는것을 좋아하였다.

별로 쓰지 않는 방을 세내고드니 용돈도 생기게 되여 좋고 집을 거두는 품도 얼마간 덜어주어 좋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계응상의 마음에 드는것은 집주인이 조선사람이라고 차별을 두지 않고 인간인간으로 따뜻이 대해주는것이였다.

응상이 처음 찾아왔을 때 주인내외는 꾸밈없이 말했다.

《창문이 남새밭쪽으로 나있어 조용하긴 하지만 겨울에 불을 때지 않는 방이여서 그게 걱정이외다.》

무뚝뚝하긴 하지만 푸수한 체모에 매듭이 툭툭 불거진 그들의 손을 보니 고향집 부모생각이 났다. 제손으로 땅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서나 가식을 모르는 진심으로 쉬이 통하는듯싶었다. 주인내외의 소탈한 태도에 마음이 누긋해진 응상은 롱조로 응대했다.

《화로를 애인삼아 안고지내면 되겠지요.》

2층방은 누비돗자리 4장을 깐 자그마한 방이였다. 짐을 풀어놓고 방안을 간단히 정돈해놓은 응상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올려다놓아준 자그마한 책상앞에 다가앉아 몇해만에 처음으로 고향집에 소식을 전하려고 편지지를 꺼내놓았다.

세해전 이맘때 도꾜 히비야경찰서에서 정주헌병대로 이송되였다가 한달만에 놓여나와서야 그는 고향집에 들릴수 있었다.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집을 나선 아들이 정주헌병대에 갇혀있다는 통고를 받은 아버지는 얼마나 놀랐으랴. 흔히 촌사람들이 신식공부를 하면 재구를 치기 십상이라고 하는 말은 듣긴 했지만 시경은 그말이 무슨 의미를 담은것인지 몰랐을것이다. 한데 정작 제 아들이 난데없이 정주헌병대에 갇혀있다는 통고를 받은 아버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을것이다.

면회실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응상이 좋아하는 팥밥에 달래무치개와 붕어졸임을 내놓고 덤덤히 앉아있던 부친의 모습은 얼마나 무거웠던가. 그러나 응상이 감옥에서 놓여나와 집을 찾아갔을 때 부친은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들이 지각있는 청년으로 자랐다는것을 리해한탓도 있었지만 3. 1운동때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어데 있는가. 그것이 죄목으로 되여 고향으로 송환되였다면 부끄러울것도 없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무리 촌구석에서 숯굽고 농사나 지어먹는 부친이였지만 그런것쯤은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던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응상은 부친이 자기를 자립적인 어엿한 성인으로 대해준다는것을 느끼였다.

《그래 장차로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이젠 네게 달린 식솔이 자그만치 셋씩이나 되는구나.》

아버지는 넌지시 이렇게 비칠뿐이였다. 그가 고향집에 내려가 얼마간 농사를 짓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사이에 그의 안해는 또다시 둘째아들을 낳았던것이다.

《예서 한 시오리가량 떨어진 덕다리메골어귀에 좀 손질을 하면 허술한대로 가마붙이구 살수 있는 집 한채가 있느니라.

세 집 식구가 한집안에서 우글우글하니 조련치 않구나. 아무래도 세간을 내얄가부다. 그래서 네 댁네를 그리루 내여 딴살림시키자구 하는데 네 생각이 어드렇느냐?》

아버지는 조심스레 아들의 의향을 떠보고있었다. 응상은 고개를 푹 숙이였다. 가정사정을 보면 한시가 급했다. 이제는 단 한달도 집을 떠나 혼자 돌아갈 형편이 못되였다.

그런데 바야흐로 본격적인 과학탐구의 대문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때에 가정살림에 포로되여 주저앉고만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로 될것인가.

《아버님!》

응상은 애타게 갈망을 담아 말했다.

《차비하고 떠난 길을 중도에서 그만들수는 없습니다.》

《음.》 고집스럽게 입을 꼭 다물고있는 응상을 건너다보던 계시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만하다. 이왕 떠난 길이니 끝까지 가보는게 옳은 일이다.》

이날 저녁, 응상의 안해는 오래동안 바재이다가 한마디 하는것이였다.

《당신이 다시 공부하러 가도 어쨌든 전 애들을 데리고 덕다리메골로 내려가겠어요.》

응상은 착잡한 심경에 싸여 안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줄창 남편없이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언제 한번 자기의 생각을 터놓아본적이 없는 안해였다. 그러니 이것은 안해가 그에게 하는 첫 부탁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시집살이가 괴롭소?》

《아이참, 그런게 아니예요.》

《그럼 저 어린것들을 데리고 혼자서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겠소.》

《마찬가지예요.》

《무엇이 말이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안해는 울먹이며 말했다. 응상은 측은한 눈매로 안해를 보았다. 집안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안해가 심덕이 후하고 마음이 비단결같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남달리 한정없는 시집살이에 매여있어도 언제 한번 눈살을 찡그려본적도 없다고. 그러나 어찌 그의 안해인들 딴살림을 나서 제살림을 하고싶지 않으랴.

누가 뭐라지 않아도 숨 한번 크게 내쉬여보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살아가는 소박한 안해의 정상이 새삼스레 가슴에 마쳐왔다. 지금도 응상의 눈에는 덕다리메골로 내려와 혼자서 소작살이를 하며 애들을 키우느라고 고생하는 안해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아, 내가 무엇때문에 일찌기 장가를 들어가지고 남까지 속을 푹푹 썩이게 만드는가. 왜 그때 결단을 내려 마음에 없는 성례를 물리치지 못했는가!)

응상은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저주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딴상을 차려들고 사랑방으로 들어와 자기를 소심하게 쳐다보던 안해의 모습이 지꿎게 떠오른다.

《여보! 당신은 언제면 제집에서 남들처럼 살아보실래요?!》 안해의 눈길에는 이런 애타는 갈망이 연연히 어려있었다. 안해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초가삼간을 지어놓고 제땅에서 농사지으며 자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며 사는것을 무상의 행복으로 그려보고있었다.

그 역시 정든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소박하고 단란하게 살고싶었다. 이제는 타향살이에 몸살이 났다. 해돋기 전에 이슬을 차며 밭으로 나가 괭이질을 하고 곁두리가 되면 갓짠지에 안주하여 들큼한 탁배기를 배불리 먹고 해지면 농부가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식곤에 취해 일찌기 단잠을 자고싶었다.

전에없이 남의 땅을 부치던 고된 농사일조차 뼈저리게 그리워졌다. 그러나 응상은 돌연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편지를 썼다.

《그리운 부모님! 드디여 저는 잠사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마 부모님은 이젠 그만큼 공부를 했으면 더 바랄것이 무엇인가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저는 물곬에서 죄리나무잎에 숯덩이로 글을 쓰던 그날들을 돌이켜보며 제가 얼마나 높이 올라섰는가를 자각하고는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저의 전후좌우에서 학구의 길을 재촉해가는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잠업이라는 학문을 탐구하는 길에서 제가 톺아오른 곳까지 도달한 사람은 우리 나라에서 저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어떤지 아십니까. 유능한 학자들이 가르치는 대학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생물학을 전문과목으로 배우고있고 그우에는 또 그 수백명중에서 선발된 재사들을 자본가들이 뽑아다가 돈을 뭉테기로 쥐여주며 리속이 나는 연구사업을 시킵니다. 또한 서양사람들은 제가 첫발을 들여놓은 학문을 과학으로 연구하는지 100년이 넘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돈많은 유족한 집 자식들은 애써 배우지 않아도 거저 차례지는 행복에 만족하여 힘겨운 탐구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 살아가는데 경황이 없다고 아예 높은 봉우리는 올려다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마다 제 살 궁냥만 하기에 급급한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나요?

제가 집을 떠날 때는 이런 잠사전문을 나와도 상당한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조국을 위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될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것을 가슴뿌듯이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아버님, 부디 용서하여주십시오. 저는 앞으로 10년은 더 타향살이를 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여 제가 성공하고 돌아가는 그날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거리에 나가 우체통에 편지를 집어넣은 응상은 느릿느릿 하숙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비도 오지 않으면서 하늘은 찌뿌둥하게 흐려있는데 차디찬 바람만이 으스산하게 불어쳤다.

고개를 짓수굿하고 걸어가던 응상은 멈칫 하고 길섶에 서버렸다. 얼굴이 까밋까밋한 총각애가 몇발작앞에 있는 허접쓰레기무지앞에 쪼그리고앉아 무엇인가를 연신 때묻은 앞자락에 문대이며 빨아먹고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먹다버린 복숭아였다. 얼마나 먹고팠으면 저러랴.

응상의 눈앞에는 불현듯 고향에 들렸을 때 집뒤 개울가에 돌가마를 걸어놓고 싱아찜을 해먹던 두 아이의 가는 목이 암암히 떠올랐다.

《아바지, 먹어봐, 맛있어.》

때묻은 손으로 시큼한 싱아찜을 내밀던 오누이의 가는 손이며 그것을 입에 넣고 볼이 미여지게 먹던 애들의 모습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다. 응상은 흐려오는 눈길을 들며 소년한테로 다가갔다. 내자식이 남이 먹다버린 복숭아를 빨아먹는걸 본다면 아버지인 내 가슴이 얼마나 쓰라리랴!

《이 애야.》

그는 저도 모르게 소년의 팔을 잡아흔들었다.

《당장 그걸 내버려라, 내버려.》

소년은 흠칠 놀라 응상을 쳐다보며 팔을 뿌리쳤다.

《놓으라요, 왜 그래요?》

《저리 가자. 내 복숭아를 사주마.》

그는 소년을 과일매점으로 데리고가 선뜻 먹음직스러운 복숭아 한구럭을 사서 쥐여주었다.

《어서 실컷 먹으려무나, 응.》

영문을 몰라 얼떠름해서 응상을 쳐다본 소년은 두눈만 깜박깜박 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가슴에 안은 과일구럭이 제것으로 된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안심치 않아하는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본다.

《너 몇살이냐?》

응상은 갈린 음성으로 물었다.

《일곱살.》

《일곱?!》

응상은 말꼬리를 흐리마리해버렸다. 고향집에 두고온 맏아들의 나이가 벌써 일곱에 났다는 생각이 든 동시에 그 애도 이 아이 못지않게 천덕꾸러기로 자라난다는것을 눈앞에 보는듯이 감득했던것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는 그의 갸르스름한 얼굴에는 여느때없이 깊은 수심이 깃들었다. 응상이 하숙비를 물려고 1전 에누리없이 말가놓은 돈이 20전이나 축이 났다는것을 깨달은것은 기모노에 하까마를 입은 주인집아주머니가 뜨락에서 반색하며 맞아들이는것을 본 때였다.

며칠후 응상은 주인집아주머니에게 하숙비를 내놓으며 자못 신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주머니, 저에게 중요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뭔데요?》

주인집녀자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매우 어려운 부탁입니다.》

응상은 힘겹게 말을 꺼냈다.

《저, 다른게 아니구 이제부터 저한테 오는 편지는 모두 주인집아주머니가 건사했다가 제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내주실수 없는지요.》

《무슨 말인지요?》 주인집녀자는 응상의 말뜻을 리해할수 없는듯 곱채여 물었다.

《앞으루 저한테 오는 우편물은 편지든 전보든 몽땅 아주머니가 간수했다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내달라는거지요.》

《예?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을? 어쩌다가 고향에서 보내오는 편지는 꼭 전하지 않으면 안될 급한 소식들이겠는데… 그리구 기다리는 애인의 편지두 있지 않겠수.》

《물론 그럴수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특별히 부탁하는게 아닙니까.》

주인집녀자는 그의 말이 진실인가를 확인하려는듯이 응상을 뻔히 쳐다보았다. 응상의 얼굴에는 그 어떤 랭정하고도 침착한 빛이 깃들어있었다. 그것은 범속한 인간의 감정을 초월한 사람에게서만 엿볼수 있는 류다른것이였다.

《그렇게 하지요. 계상의 편지를 간수했다가 주는거야 어려울게 없지요. 하지만 너무도 보기 드문 일이여서…》

《그럼 그렇게 믿겠습니다.》

응상은 주인집녀자의 의문에 찬 시선을 피하며 대범하게 뇌이였다.

주인집녀자는 남편이 밭일을 끝내고 돌아오자 젊은 하숙생이 당부하던 리해할수 없는 말을 뇌이였다.

《아무래도 곡절이 있는 젊은이 같아요. 어쩌면 수만리 타향에 와있으면서 부모처자들이 보내는 편지를 묵여두겠다고 할가요?》

《몰래 집을 뛰쳐나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일이지. 그의 집에서는 계군이 공부하는걸 리해하는 사람이 없단 말이요.》

주인집남자는 안해가 자기다반우에 받쳐 들여온 차잔을 집어들며 확신성있게 말했다.

《하지만 집에서 보내오는 편지에는 부모와 일가족들속에서 불상사가 생겼다는 소식도 있을수 있잖아요.》

《여보, 남의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돌리다간 머리털이 일찍 센다오. 그저 그쯤 알고있구려. 이게 우리 섬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라니까.》

《원참 당신두, 말조차 못하겠구려. 하두 희귀한 일이여서 물어본게 아니요.》

녀주인은 샐쭉하여 남편을 흘겨보았으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어찌하랴. 뭇사람들은 랭철한 계응상의 처사에 깃든 남모르는 쓰라린 눈물을 리해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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