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1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2 장


7


중학교졸업식은 모교의 본청사 오른쪽에 길게 자리잡고있는 단층교사에서 가지게 되였다. 이 집은 수업을 할 때에는 판자로 가운데를 막아 세개의 교실로 쓰고 연예공연이나 활동사진을 돌릴 때에는 간벽을 뜯어내고 통칸으로 쓰게 되여있었다.

수업시간이면 이쪽끝칸에서 강의하는 소리가 저쪽끝칸에서 복습하는 학생들의 귀에까지 들리고 이쪽에서 학생들이 창가를 부르는 소리가 저쪽에서 교원이 고함을 치는 소리와 뒤섞여 소란하기 그지없으나 다른 교실이 없기때문에 별수없이 그냥 리용하고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편한 점이 있는 반면에 간벽을 뜯어내면 한꺼번에 전교생이 모여 여러가지 모임을 할수 있는 회장으로 쓸수 있어 없어서는 안될 교사이기도 했다.

졸업식장입구에는 솔문을 해세우고 량좌우에는 청춘과 꿈을 상징하는 푸른기를 꽂고 오색테프를 줄줄이 늘이였다. 앞가슴에 종이로 만든 꽃송이를 단 졸업생들이 솔문으로 들어서자 좌우켠에 주런이 늘어서있던 하급생들이 웃고떠들며 꽃보라를 뿌렸다. 그뒤에는 양복이며 조선옷을 입은 각색옷차림의 학부형들이 둘러서서 손벽을 쳤다. 땅에 철철 끌리는 꼬리치마에 공단조끼를 입고 쪽진 머리에 은비녀를 꽂은 부자집마나님들도 보였다.

벌의 집같이 응성응성하던 회장은 조용해졌다.…

《…다음은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계응상학생이 답사를 하겠습니다.》

듬직한 체구에 대모테안경을 낀 교감이 연탁앞에 나서서 소개를 하자 장내는 술렁거렸다.

《저 학생이 졸업시험에서 단연 1석을 차지한 학생이라오.》

《정주산골 숯쟁이 아들이라는군.》

학부형들속에서 이렇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응상은 어떻게 발이 놓이는지조차 감각하지 못하며 연탁앞으로 나섰다. 간밤에 하숙방에서 밤새워 연설원고를 준비하느라고 했지만 정작 연탁앞에 나서니 당황하여 무슨 말을 먼저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응상은 스승들이 앉아있는 앞좌석으로 시선을 보냈다. 근엄한 자세로 앉은 리덕구는 어서 마음놓고 하고싶은 말을 하라는듯이 두눈을 끔벅이였다.

《여러분.》 응상의 연설은 첫마디부터 떨려나왔다.

《우리는 오늘 졸업식이 끝나면 정든 모교와 존경하는 스승들과 하급생들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의 적지 않은 동급생들은 이날로써 배움과의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됩니다. 중학교졸업으로 학생시절이 끝나기때문입니다. …》

여기까지 말한 응상은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목이 꽉 메여와 더는 뒤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졸업이 래일의 일로 남아있을 때만 해도 그 무엇인가 앞날에 대한 한가닥의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졸업식에 부닥치고보니 미래에 대한 환상은 산산이 깨여지고 무자비한 진실만이 현실이라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던것이다.

응상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뒤흔들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며 젖은 음성으로 다음말을 터놓았다.

《과연 이것으로 잊지 못할 학창시절과 영원한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가요?》

《흑.》하는 흐느낌소리가 졸업생들속에서 터지자 그것은 어느결에 팽팽하게 긴장된 회장을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학생들은 모두 목놓아 흐느껴우는것이였다. 학부형들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교장이며 교감, 총무, 교원들도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그래도 남다른 특전을 지녔다고 할수 있었다. 한창나이에 중학은 고사하고 소학도 못 다니고 까막나라에서 헤매이는 사람들이 그 얼마인가.

그러나 글눈이 트일수록 지성과 감정의 눈도 더욱 밝아지는듯 하였다. 이제야 그들은 세상물정을 터득하게 되였으며 학문을 탐구하는 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것을 명백히 알게 된것이다. 그런데 졸업생들의 대부분이 이날을 계선으로 해서 가혹한 생활의 진창속에 뛰여들게 된것이다.

그들중에 배불리 먹고 좋은 옷 입으며 공부한 학생은 몇명 되지 않았다. 너나없이 무명으로 지은 양복에 짚신도 마다하지 않고 하루 삼시도 먹지 못하고 공부하였다.

그래도 학창시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이제 그들을 기다리고있는 험악한 생활의 길에 비하면 지나간 학창시절은 얼마나 화려한 선물이였는가.

응상은 목이 메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가 졸업가를 선창했다.


아우들아 잘있거라 정든 교실아


온 장내가 노래를 합창했다.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장내를 흔들었다. 울음소리에 젖은 노래소리는 오열하며 높이 울려퍼졌다.


내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자


노래는 끝났으나 무엇이라고 이름할수 없는 비통하고 쓰라린 감정이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내고있었다.

눈굽을 넘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는 따가운 눈물을 말없이 훔치던 응상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는 은백양나무가 총총히 들어선 조용한 학교후원으로 돌아갔다. 웬일인지 응상은 가슴이 후련하도록 통곡하며 슬픔을 터놓고싶었다. 제아무리 잠재우려고 해도 뒤설레이는 마음을 눅잦힐수가 없었다.

《아, 이것으로 끝장이란 말인가!》

응상은 등뒤에서 리덕구가 소리쳐부르는것도 감감 느끼지 못한채 정신없이 걷고있었다.

《응상군.》

갈린 음성으로 크게 부르는 소리에 응상은 펀듯 머리를 들었다. 덕구는 련민의 정이 어린 눈으로 응상을 지그시 건너다보았다.

《선생님, 전 래일 고향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뒤짐을 지고 무겁게 한걸음 내짚는 리덕구의 눈에 어두운 빛이 어리였다. 응상은 말을 이었다.

《믿음을 저버린다고 욕하시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내친 걸음을 여기서 멈추고싶지는 않습니다.》

리덕구는 부옇게 흐려있는 보라빛하늘을 망연히 올려다보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졸업후 몇사람의 장래는 결정되였다. 영등포제사공장 경영주의 아들과 점포주인의 막내, 중앙우편국 서무계장의 맏아들, 경기도청 서기네 딸, 동《경방단》장네 아들들은 일본으로 류학을 가게 되였다. 그들중에는 졸업시험에서 50석이하에 든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는것이 아니다. 장차 일본사람들한테 붙어서 한자리 하자고 간판을 얻기 위해 가는것이 아니면 멋부리며 돈팔아먹자는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애써 배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장차 무엇을 하게 될지 기약할수 없는 생활전선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석이나 다름없는 둔재들은 선발이나 된듯이 류학을 가게 됐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재능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을 학문의 상좌에 앉혀야 재능이 장려가 되고 지식을 숭상하게 될것은 너무도 당연한 리치가 아니겠는가.

리덕구는 이러한 신념으로부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귀애하고 내세워주는것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너무도 온당치 않은 일이 너무도 의당한 일로 판을 치고있다. 과연 이같이 불합리한것을 제도적으로 담보해준다면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것이 어찌 소중히 여겨지고 빛내여질것인가. 자신이 몸바쳐 하고있는 교육사업이 허무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계응상은 난생처음 순결한 감정을 유린당한 무참한 기색을 짓고있었다. 그는 너무도 순박했다. 정열로 충만된 청춘을, 선량한 진리를 고스란히 믿었다.

《세상은 이런것이구나.》하고 개탄해마지 않으며 비로소 범진리를 새삼스레 깨닫게 된것이 실책이였다.

이 세상은 원래부터 이렇게 돼먹었던것이요, 다르게 되였더라면 잘못이라고 지탄할만큼 꺼꾸로 되여있었던것이다. 다만 그만이 굳이 그것을 믿지 않고 진실대로 보지 않으려고 했을뿐이였다.

남들은 너무도 일찌기 터득한 진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그때문에 그의 실망은 남달리 크고 뼈저린것이였는지 모른다.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이였던가요. 중학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걸 모르지 않았지만 웬일인지 이같이 되리란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절대로 귀담아듣지 않았지요. 어쨌든 뼈심을 들여 피나게 공부를 하기만 하면 내가 바라는 길루 나가는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단 말입니다. 선생님,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까? 너무도 어리석고 암둔했단 말인가요.》

응상은 가슴을 치며 부르짖듯이 물었다.

리덕구는 퍼진 눈을 들어 허공을 노려보았다. 대꾸할 말을 어녕 잊은듯 한대중 그 자리에 서고만 있었다. 이윽고 그는 《후우-》하고 막혔던 가슴을 터치며 말했다.

《청춘기에 사는 사람이 선의를 지니고 세상을 대하는게 무엇이 나쁘겠나. 군에겐 아무 죄도 없네. 성실한 노력과 지혜를 믿는거야 인간의 성정이 아닌가.》

《아니요. 그런것 같지 않아요. 정직하고 근면하게 살면 복을 누린다는건 성실한 인간들을 낚아내기 위한 홀림낚시같아요. 전 오늘 이걸 똑똑히 깨달았어요.》

응상의 가슴속에 얹혀있던 보짱이 끊어져내리였다. 마음속에 보검처럼 간직했던 귀중한 모든것이 일시에 무색해졌다. 그의 순결은 여지없이 짓밟혔다.

리덕구는 자기의 제자가 중학과정안에서는 터득할수 없는 쓰라린 생활의 진실을 가슴속에 새겨넣고있다는것을 감득했다.

그들은 수창동네거리에 이르렀다. 덕구는 침울하게 물었다.

《기어이 떠나겠소?》

《떠나겠어요.》 응상은 힘주어 대답했다. 예리한 그의 눈에는 매섭고 싸늘한 그 무엇이 비끼는듯 하였다. 뱀처럼 차겁고 싸늘한 사회의 검은 배속을 들여다보고 몸서리는 칠지언정 결코 달리는 살수 없다고 부르짖는것 같았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