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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도원수는 대군을 이끌어 진군하고
장수들은 출전하여 용맹을 뽐내다


드디여 출정의 시각이 도래하였다.

창과 칼을 든 장수들이 갑옷투구를 떨쳐입고 군마에 올라 임금이 앉아있는 황금대를 주시하고있고 그 뒤에는 군사들이 자기 대장의 지휘기에 알맞는 군복차림을 하고 대오를 나뉘여 정렬해있었다. 북소리 둥둥- 울리고 뿔나팔소리 뚜뚜- 울리는 속에 비룡에 오른 도원수 설연이 진중에서 구보로 달려나왔다. 머리엔 쌍봉자투구를 쓰고 몸에는 룡린쇄자갑을 입고 허리에는 룡린검을 비껴찼다. 설연과 조금 떨어져 금빛투구에 엄신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참룡검을 든 부원수 황운이 여유작작하게 준마를 몰아갔다.

황금대앞에 이른 설연과 황운이 말에서 내려 대우로 올라가 임금앞에 이르러 한무릎을 꿇고 군례를 하니 임금이 반색하며 황금잔에 어주를 내여주며 어서 들라고 권하였다.

두 장수가 황공해하며 동시에 아뢰였다.

《어찌 신하가 먼저 들수 있겠나이까. 페하께옵서 먼저 드시오이다.》

임금이 손을 내저었다.

《사양하지 말고 어서들 들라. 짐은 경들을 믿고 대군을 맡겼으니 도적을 평정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오면 그때에 이 잔을 들어 마시리라.》

두 장수가 거듭 사양하니 임금이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권하였다.

《경들은 짐이 크게 믿는 나라의 성벽이니 너무 사양말고 어서 들라. 경들이 들지 않으면 짐이 섭섭하지 않겠느냐.》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이 임금의 은혜에 감격하며 눈시울을 덥혔다. 술잔을 단숨에 쭉 들이키니 임금의 희색이 만면하고 대신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군사들이 창과 칼을 추켜들며 와와- 함성으로 화답하였다.

황금대에서 내려온 도원수 설연이 출발령을 내리니 이십만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임금이 어가를 휘동하여 성문밖에까지 나와 떠나는 대군을 바래주었다.

행군에 앞서 도원수 설연은 령을 내려 다시금 장수들의 임무를 분담한 다음 대오를 출발시켰다.

부원수 황운은 남주작 홍윤과 북현무 강수천, 원문장 염성태, 성문장 마맹달을 지휘하여 십만군사를 거느리고 대오의 맨 앞장에서 전진하고 우백호 서하수, 후군장 맹학신은 오만정병을 거느리고 후군이 되여 뒤를 막으며 나아갔다. 왼손엔 해빛을 가리우는 봉미선을 들고 오른손엔 총효기를 잡은 도원수 설연은 남은 장수들과 오만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중군이 되여 대오의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발해국을 상징하는 시누런 바탕에 날아가는 룡을 새긴 교룡기의 좌우에 도원수기와 부원수기가 선두에서 펄럭이였다. 각 부대들의 장수기와 오방고초기, 오방신기가 춘풍에 가볍게 날리고 소고수들은 북을 두드리고 취타수들은 뿔나팔을 불어댔다. 대오의 앞에서 뒤로, 뒤에서 다시 앞으로 새뽀얀 먼지를 일쿠며 번개같이 내달리는 전령수, 순령수들의 말탄 모습도 이채롭지만 기패관의 선창에 따라 창과 칼을 하늘로 솟구치며 《백승불패, 백승불패!》하고 웨치는 하늘을 찌를듯한 군사들의 광경은 볼수록 장관이였다.

한방의 방포소리가 울리자 이십만군사가 일제히 움직이는데 그 대오가 두부모 자르듯 정연하기 그지없고 자그마한 빈 구석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 대장의 령에 따라 한사람같이 움직이면서 때때로 창과 칼을 하늘로 치솟구면서 구호를 웨쳐댔다.

임금이 성밖에 높다랗게 설치한 장대우에서 도원수가 거느린 이십만대병이 전진하는 모습을 감개무량히 굽어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십리밖에까지 나와 떠나가는 대오를 바래워주었다.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이 거느린 이십만군사가 호호탕탕 전진하여 회원부의 회주에 당도한것은 황성을 떠난지 엿새만이였다. 대군이 지나가는 크고작은 고을들과 부락, 촌락들에서 고을관장들과 관속들, 각양각색의 백성들이 저저마다 떨쳐나와 역적도당을 소탕하러 출전하는 군사들을 진심으로 맞아주었다.

회주성을 앞에 두고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은 산천지형을 세세히 살피고 목책을 세워 진세를 이룬 후 격서를 성안으로 보내였다.

반란을 일으켜 회원부지역을 차지한 진권은 황성으로 진격하려고 회주성에 웅거하여 군량을 저축하고 군사를 조련하며 힘을 기르고있었다. 바야흐로 황성으로 진격하려고 척후를 파견한 진권이 소식을 기다리고있는데 문득 척후장이 황황히 뛰여들어왔다.

《발해국조정에서 사신을 파하여 죄를 따지는 격서를 보내왔나이다.》

진권이 벌떡 호피안석에서 일어서며 격서를 받아 떼여보았다.

《천하병마 도원수 설연과 부원수 황운은 대역부도한 진권에게 이 격서를 부치노라.

네가 조정의 대신으로 부귀영화와 권세가 륭숭하였고 또 성상이 너를 지극히 사랑하였거늘 그 은혜 망극함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분골쇄신하여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함이 신하의 옳은 도리로다.

허나 권력에 환장이 된 너는 오히려 륭숭한 부귀영화와 권세를 부족히 알아 불측하고 흉악한 야심을 품고 무엄하게도 룡상을 노리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 죄는 하늘이 설사 열백번 무너지고 땅이 천만번 뒤집힌다 한들 절대로 용서할수 없는 대역부도죄이노라.

천하역적 네가 일으킨 반란으로 하여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강산은 위기에 처했으며 성상은 침석이 편치 못하거늘 어찌 발해국의 산천이 널 용서하며 성상의 자식들인 신하들과 백성들이 치를 떨지 않겠느냐!

이 발해국의 하늘을 이고 도저히 함께 살수 없는 천하역적 네놈을 가차없이 징벌하고저 드디여 의협남아들인 우리가 정예로운 대군을 출동하여 왔도다!

이제 우리가 증오와 분노로 충천한 대군으로 한번 치면 네놈은 바람앞의 등불이요, 낭떠러지에 몰린 짐승의 신세라 네 깊이 생각하여 후회가 없도록 하라!》

진권의 벌쭉귀가 후두두 떨리기 시작하였다. 격서의 글줄속에 맥박치는 의기와 비수마냥 찌르는 지탄에 속이 켕기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짐짓 앙천대소하다가 물었다.

《설연이란 놈은 웬 놈이고 또 황운이란 놈은 어떤 자식이냐?》

척후장이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였다.

《발해국에 파견한 우리 군사들의 말에 의하면 룡천부에서 나타난 장사들이라고 하는데 나이는 비록 열여덟밖에 안되지만 천하의 장수들이라고 입을 모아 떠든다고 하옵니다.》

진권이 흠칫하더니 인차 쓰겁다는듯이 뇌까렸다.

《구새먹은 나무통같은 발해국에 무슨 천하장수가 있겠는가. 분명 이름을 한번 내고싶어 찾아온 애녀석들이겠지. 젖비린내 나는 애놈들이 제 죽는줄 모르고 여길 찾아왔구나.》

다음날 아침 진권의 령에 따라 성문을 활짝 열어제낀 좌군장 진걸이 거드름을 피우며 군사를 끌고 성밖으로 나와 진을 쳤다. 싸움대형으로 군사를 벌려세운 진걸이 부하장수를 시켜 아군의 진중에 도전을 걸었다.

도원수 설연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적진앞에 이르러 진세를 살펴보았다.

적진중앞에 제법 으시대며 나서는 적장들의 모습이 언뜻거리고 위세를 돋구느라 적군사들이 창과 칼을 쳐들고 목청을 돋구어대니 살기등등해보였으나 대오가 산만하고 정연하지 못하고 빈 구석이 많았다.

도원수 설연은 좌군장 우시춘을 불러 부하장수들을 거느리고 나가 싸우라는 령을 내렸다. 우시춘이 물러나 부장 륙목에게 명령하여 싸우라 하였다.

륙목이 창을 꼬나들고 적진으로 내달아 큰소리로 웨쳤다.

《적장은 어서 나와 자웅을 결정하자!》

적진에서 진걸의 부장 진흥이 달려나왔다. 서로 어울린지 수합만에 진흥이 륙목을 베고 그 머리를 창에 꿰들고 호통쳤다.

《적진중에 나를 당할자 있거든 어서 나오라!》

도원수 설연이 애석해하며 진중을 돌아보았다.

《뉘 가히 적장을 소멸할고?》

우시춘의 진중에서 한 소년장수가 장창을 비껴들고 뛰쳐나왔다.

륙척키에 얼굴이 동그스름한게 갓 스물이나 잡혔을가 말가한 꽤나 애돼보이는 장수였다. 질풍같이 달려나가 진흥과 어울리더니 단 사오합만에 창이 번뜩하더니 진흥의 머리를 베여들고 본진으로 돌아왔다.

도원수가 그 장수를 불러 성명을 물으니 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소장은 우시춘의 부장 조명걸이오이다.》 하는것이였다.

도원수가 술을 주어 위로하고 조정에 천거하여 그에게 중랑장벼슬을 내리도록 하였다.

진걸이 진흥의 죽음을 보고 분노하여 장수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제장중에 누가 나가 조명걸을 베고 진흥의 원쑤를 갚겠는가?》

한 장수가 대검을 쳐들고 말을 내달으며 소리쳤다.

《소장이 나가리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벌써 앞으로 내달아 아군진중앞에 이르러 호통친다.

《진흥을 죽인 장수는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모두 보니 진걸의 선봉장 은륭이였다. 키는 팔척이고 얼굴이 시꺼먼데 곰처럼 거쿨진 몸에 대검을 들고 거들먹거리며 눈알을 부라린다.

아군진중에서 조명걸이 대노하여 나는듯이 말에 오르니 도원수 설연이 당부하였다.

《적을 너무 가볍게 보지 말라!》

《알았소이다.》

장창을 비껴든 명걸이 적진중앞에 이르러 은륭을 향해 꾸짖었다.

《이름도 없는 소졸이 감히 큰소리를 치도다!》

은륭이 앙천대소한다.

《어린 아이가 어찌 어른을 상대한다더냐.》

서로 싸워 십여합이나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더니 은륭이 한꾀를 생각하고 한손으로 대검을 들고 다른 손으로 철퇴를 잡아 명걸을 쳤다. 명걸이 날쌔게 피하고는 철궁을 쏘아 은륭의 말을 꺼꾸러뜨리니 은륭이 말에서 떨어지거늘 그때를 놓치지 않고 명걸이 은륭의 머리를 베들고 말우에서 춤을 추며 본진으로 돌아왔다. 도원수가 칭찬하며 은륭과 진흥의 머리를 기대에 매달고 승전고를 울리니 진걸이 가슴을 쥐여뜯다가 제가 직접 나섰다.

《우리 명장 두사람이 죽었으니 내가 직접 출전하여 조명걸을 죽이고 두 장수의 원쑤를 갚으리라.》

말을 끌어내여 오르려는데 문득 한 대장이 만류하며 나섰다.

《장군은 아직 참으소서. 소장이 비록 재주가 없사오나 조명걸의 목을 베여 휘하에 드리고 동생의 원쑤를 갚으리다.》

돌아보니 부하장수 구륭인데 그는 은륭의 형으로서 키가 구척이고 몸통이 아름드리통나무같고 팔뚝시 하나가 딴 사람의 다리통만 하였다.

진걸이 크게 기뻐하며 제가 직접 북을 울려 싸움을 돋구니 구륭이 진앞으로 내달으며 소리쳤다.

《은륭을 죽인 장수는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명걸이 새별눈을 번뜩이며 말에 오르려는데 도원수가 만류하였다.

《장군은 두번이나 대공을 세웠으니 또 어찌 출전하리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한 장수가 뛰쳐나가 구륭과 접전하는데 이는 원문장 염승태의 부하장수인 한청이다. 도원수를 위시한 아군의 장수들이 긴장해서 싸움을 주시하였다. 누가 말릴새없이 한청이 젊은 혈기에 뛰쳐나갔지만 그의 검법이 그닥 시원치 않아서였다. 아니나다를가 수합만에 한청이 구륭의 칼에 찔려 말에서 떨어졌다.

구륭이 한청을 찔러죽이고 머리를 베여 본진으로 돌아가 진걸앞에 놓았다.

《이런 장수는 수백이라도 소장이 한칼에 베이기를 어찌 근심하리까.》

진걸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군사들의 사기를 돋구라고 요란스레 북을 두드리게 하였다.

한청이 수합만에 구륭에게 목숨을 잃는것을 본 도원수 설연의 낯색이 어두워졌다. 즉시에 군중에 엄한 령을 내렸다.

《한청이 젊은 혈기에 령을 듣지 않고 출전했다가 죽음을 청하여 적군의 사기를 올려주었으니 차후에 령없이 출전하는자 있으면 선참후계하리라!》

설연이 우시춘을 돌아보았다.

《장군이 나가 구륭을 잡으라!》

우시춘이 칠십근 장창을 꼬나들고 말에 올라 진앞에 나가 싸움을 돋구니 적진중에서 구륭이 덩지 큰 몸을 흔들며 맞받아나왔다.

우시춘이 랭소하며 창을 들어 구륭을 가리켰다.

《보잘것 없는 너는 나의 적수가 아니니 빨리 돌아가 진걸을 내보내라. 만일 죽는것이 두렵지 않다면 내 창을 받으라!》

구륭이 얼굴이 시뻘개서 대검을 들고 무섭게 달려들었다. 거쿨진 두 장수가 서로 접전하는데 수십합이 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덧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였다.

진걸이 새끼품은 암범마냥 사납기 그지없는 우시춘의 절륜한 용맹과 무예를 보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구륭이 우시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것이 확연하였다.

진걸은 문득 간사한 꾀를 생각해냈다. 령을 내려 기를 눕혀뜨리고 머리와 꼬리를 바꾼 다음 한일자 장사진을 치고 징과 북을 울리게 하였다. 우시춘의 맹렬한 공격에 수세에 몰렸던 구륭이 저의 진이 변함을 보고 뱀같이 길게 늘어선 장사진을 향하여 말머리를 돌려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싸우던 구륭이 말머리를 돌리고 달아나자 한창 열이 올라 싸우던 우시춘이 고리눈을 치뜨고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다급히 뒤쫓았다.

《적장은 달아나지 말고 내 창을 받으라!》

싸움을 주시하던 도원수 설연은 문득 적진이 한일자 장사진으로 변하고 그와 동시에 구륭이 달아나는것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저 분명 뒤쫓아오는 우시춘을 유인하여 사로잡으려는 적의 술책이였다. 만약 우시춘이 적의 꼬임에 걸려 저속으로 뛰여들면 장사진을 쳤던 적군이 순식간에 원진으로 변하여 시춘을 포위할것이다. 적의 술책을 모르고 뒤쫓아가는 우시춘이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수 있었다. 도원수 설연은 급히 징을 올려 우시춘더러 돌아오라는 령을 내렸다.

징소리가 울리자 우시춘이 길길이 날뛰는 말을 멈춰세우고 진으로 돌아왔다. 우시춘이 의아해서 도원수에게 들이대였다.

《소장이 구륭을 다 잡아 한청의 원쑤를 갚게 되였는데 도원수께선 어이하여 징을 울려 물러서라 하였나이까?》

도원수 설연이 담담한 어조로 대척하였다.

《내 적장의 용맹과 검법을 보니 장군의 적수가 못되느니라. 헌데 진걸이 문득 진을 변화시켜 장사진을 치니 이는 장군을 유인하여 잡으려는 간교한 술책이 분명하므로 내 징을 울려 장군을 돌아오라고 했노라.》

우시춘이 도원수의 선견지명에 감심하여 사례하고 물러났다.

시춘을 잡으려던 계교가 뒤틀려지자 진걸은 너무 아쉬워서 발을 탕탕 굴렀다.

《다 잡아놓은 범을 놓치다니?!》

진걸이 다시 우시춘을 잡을 계교를 내고 구륭을 내보냈다.

구륭이 아군의 진앞에 이르러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무수히 퍼부었으나 도원수 설연의 령에 따라 우시춘이 종시 나가지 않으니 구륭이 맹랑해서 진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진걸이 구륭을 또 내보내면서 싸움을 돋구어 우시춘을 유인하라고 하였다.

구륭이 응낙하고 대검을 비껴들고 말을 내몰아 아군의 진앞에 이르러 우시춘을 야료하며 그의 부아를 돋구었다.

《어제 못한 싸움을 오늘 다시 결판짓자. 자신없으면 일찌감치 목을 드리우고 항복하라!》

우시춘이 채찍을 들어 구륭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너같은 비린내나는 아이와 맞붙는것은 내 수치로다. 그러니 너는 돌아가 진걸을 내보내라!》

아무리 도전해도 우시춘이 응하지 않으니 구륭은 또 그냥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구륭이 돌아와 우시춘의 말을 전하니 진걸이 대노하여 말에 오르며 흰소리를 쳤다.

《내 이제 방자한 저 자식을 어떻게 잡아오나 보라!》

진걸이 직접 출전하자 우시춘이 고리눈을 부릅뜨고 풍우같이 맞받아나갔다.

두 장수의 칼과 창이 쟁- 쟁- 부딪치고 서리발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사생결단하고 서로 어울린지 이십여합이 되도록 승부를 결정하지 못하는데 진걸이 문득 패하여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우시춘이 진걸의 꾀임을 알지 못하고 눈을 부릅뜨고 뒤따랐다.

《네놈이 비겁하게 꼬리를 사리니, 그래가지구두 장수야?!》

아군진중에서 도원수 설연이 그 모습을 보고 물러나라는 징신호를 울렸다. 그러나 오직 진걸을 목벨 한가지 욕망에 들먹이는 우시춘에겐 그 소리가 귀에 들릴리 만무하였다.

우시춘이 한참 뒤쫓다가 보니 진걸과 구륭은 보이지 않고 사면에 적병이 중중첩첩으로 에워싸고 화살과 돌을 비오듯 날리는것이 아닌가. 우시춘이 계교에 속은줄 알고 창을 들어 동쪽을 가리키며 서쪽을 대적하고 남쪽을 막아 북쪽을 제어하며 무려 백여합을 싸웠으나 능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필사의 각오로 우시춘이 좌충우돌하는데 문득 서남쪽에서 먼지가 자욱히 일어나며 아군의 한 대오가 웬 장수를 선두에 내세우고 나는듯이 달려오는것이였다. 순식간에 적진의 장수들과 군졸들의 목이 그 장수가 이끄는 발해군에 의해 추풍락엽마냥 떨어져나갔다.

얼마나 검술이 뛰여난지 그 장수가 한번 나타나는 곳에 삽시에 적의 주검이 한벌 쭉 깔렸다. 우시춘을 구원한 발해군의 장수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적의 장수들과 군졸들을 숨돌릴새 없이 한칼에 료정내는데 그 용맹스러운 위세와 뛰여난 검술앞에 적들의 진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종횡무진하며 삼대베듯 적들을 무찌르는 발해군의 장수는 부원수 황운이였다.

저들군사를 사면에 매복시키고 우정 패한척 달아나는것으로 우시춘을 유인하고 이제는 그물안에 든 고기라고 쾌재를 부르던 진걸은 저의 배후에 갑자기 황운이 거느린 발해군이 벼락같이 나타나 뒤통수를 답새기자 눈알이 뒤집혀졌다.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마냥 눈알을 떼룩거리던 진걸은 삽시에 무너진 진을 일별하고나서 분노하여 자기 군사들을 돌려세워 황운을 공격하라고 소리쳤다. 이미 적의 포위에서 벗어난 우시춘이 황운에게 적이 쏠리는것을 띄여보고 그를 도우러 뛰여들었다.

맞은켠에서 창을 휘두르며 적을 풀대베듯 쓸어버리는 우시춘을 발견한 황운이 용기백배해서 성난 사자마냥 적진을 누벼나갔다. 곧바로 우시춘을 향해 덤벼드는 구륭에게로 뛰여간 황운은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황운의 검이 허공에서 춤추니 구륭이 미처 피할새없이 통나무같은 그의 목이 썩둑 베여져 머리가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진걸이 구륭이 말에서 떨어지는것을 보고 노기가 북받쳐 창을 꼬나들고 황운에게 달려들었다.

황운이 짓쳐나오는 진걸의 창을 칼등으로 막으면서 서로 어기는데 언제 검으로 찔렀는지 진걸의 말이 앞다리를 꺾으며 꼬꾸라지고 진걸은 대여섯보밖에 뿌려졌다. 황운이 말을 돌려가지고 땅에서 뒹구는 진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엉겁결에 황운의 검을 피한 진걸이 혼비백산하여 몸을 솟구쳐 수십보를 달아났다.

겨우 목숨을 건지고 성안에 들어온 진걸은 락심천만하여 정신이 다 얼떨떨해졌다.

황운의 뛰여난 무예앞에 넋을 잃은 진걸은 간담이 서늘해져 목을 움츠렸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왜서 갑자기 싸움판이 이렇게 번져졌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설연이 군사를 쓰는것이나 황운의 무예가 상상을 초월하였던것이다. 그들이 발해국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타난 장수들인지 생각할수록 진걸은 마치 무서운 악몽속을 헤매인듯 한 느낌이였다.

이는 사실 도원수 설연의 계략이였다.

징을 울려 물러나라고 신호했건만 듣지 못하고 진걸을 정신없이 추격하는 우시춘이로 하여 싸움의 형세는 불리해질수 있었다. 우시춘이 목숨을 잃는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아군의 예기가 떨어질수 있었다. 하여 도원수 설연은 급히 부원수 황운에게 우시춘을 구원하고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형세를 역전시키라는 령을 내렸던것이다.

황운이 우시춘을 구원하고 또 진걸을 깨뜨리고 구륭의 머리를 베여들고 진중으로 돌아오니 도원수 설연은 여간 기뻐해마지 않았다.

이번 싸움을 통하여 도원수의 지략과 부원수의 무예는 천하에 당할자 없다는 신뢰와 공경의 마음이 장수들과 군사들의 마음속에 슬며시 깃들었고 출중한 두 장군이 있어 반드시 승전하리라는 확신이 바위처럼 들어앉게 되였다.

도원수 설연은 그날밤중으로 진을 옮겨 회주성아래에 부대를 주둔시켰다.

다음날 새벽일찍 도원수 설연은 성의 남쪽으로 십리가량 떨어진곳에 위치하고있는 동악산으로 비룡을 몰아갔다.

산의 정점에 올라 지형을 굽어보니 회주성의 남쪽으로 뻗은 길이 협소하고 군사들이 도처에 둔치고있는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 남쪽길을 따라 백수십여리를 가면 미주성이였다. 미주성은 지세가 험한 천험요새라 할수 있지만 사면이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여있어 고립무원한 성이였다. 도원수 설연은 적들을 그 미주성에 몰아넣을 타산이였다. 머리를 끄덕이던 도원수 설연은 회주지형도를 내여 유심히 살펴보다가 하늘의 날씨를 가늠해보았다. 한 계교를 생각한 설연은 산을 내렸다.

이날은 춘삼월 이십일이다.

도원수군막에 장수들이 령을 받으러 모여들었다.

그들을 둘러보며 도원수 설연은 오늘밤 자정에 성을 공격하되 패주하는 적들을 미주성에 몰아넣을 자기의 작전안을 피력하고나서 구체적인 임무를 분담하였다.

《좌군장 우시춘은 령을 받으라. 그대는 일천군을 거느리고 회주성을 지나 동남으로 오십리를 가면 좁은 길이 있으리니 산아래에 매복하라. 진권이 패하면 그리로 갈것이니 그대는 기다렸다가 실수없이 진권을 공격하라!》

우시춘이 머리를 조아리며 군령을 받았다.

《알겠소이다.》

도원수 설연은 우군장 서하수에게 또 령을 내렸다.

《우군장 서하수는 삼천군을 거느리고 회주성의 동남쪽으로 사십리를 가면 백운동이 있으리니 그곳에 매복하였다가 진권이 쫓기여 그리로 가면 마른 나무와 풀더미에 불을 놓아 적진을 혼란시키고 진권을 답새기라!》

제4대 거기장군 홍윤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는 삼천군을 거느려 회주성 남쪽으로 곧바로 삼십리를 가면 큰 강이 있고 물우에 배다리가 있으니 매복했다가 진권이 배다리에 오르거든 일시에 치라!》

제5대 표기장군 강수천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는 삼천병을 거느리고 회주성 남문밖에 매복했다가 진권이 패하여 그리로 가면 일시에 들이치되 밤이 어두워 분간치 못하면 기치를 보아 치라!》

제6대 원문장 염성태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는 일천병을 거느리고 회주성 남으로 곧추 십리를 가면 동악산이라는 큰산이 있거늘 이 산우에 매복했다가 일시에 기병하여 진걸이 가는 길을 막으라!》

제7대 후군장 맹학신을 불러 령을 내렸다.

《그대는 일천군을 거느리고 성밖에 매복하였다가 성안에 불이 일어남을 보아 성문을 깨치고 조명걸과 협공하라!》

제8대 성문장 마맹달을 불러 명령하였다.

《그대는 삼천군을 거느려 동문밖에 매복하였다가 부원수의 기치를 보아 호응하라!》

제9대 중랑장 조명걸에게 명령하였다.

《그대는 삼천군을 거느리고 회주성북문밖에 매복하였다가 성안이 소란할 때 놓치지 말고 쳐들어가 기대에 등롱을 달아 부원수와 호응하되 진권이 만일 성밖으로 도망하거든 등롱의 불을 끄고 청룡의 기치를 세워 백성을 안정시키라!》

나중에 설연은 부원수 황운을 불러 명령하였다.

《부원수는 활을 잘 쏘는 군사 륙천을 거느리고 진권의 군사복색과 같이 하고 각각 화전 다섯씩 가지고 성아래에 대령하소이다.》

임무를 분담한 도원수 설연은 장수들을 둘러보며 다짐두었다.

《승패는 각 장수들이 자기의 임무를 실수없이 실행하는데 달려있거늘 모든 장수들은 명령을 어기지 말라. 만약 령을 어기는자 있으면 리유불문하고 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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