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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한명의 란신이 반란을 일으키고
두 장수는 역적을 소멸하려 자원하다


도사가 옆방으로 들어가더니 보검 한개를 들고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삼십년전에 금수산 선인이 날 찾아온적이 있었네. 그때 내 그와 함께 산경치를 구경하고있는데 갑자기 한줄기 상서로운 빛이 산정수리에 비치더군. 그래서 선인과 함께 올라가보니 청룡 두마리가 바위우에 있다가 나를 보고 달려들지 않겠나.

불시에 당한 일이라 더 생각할새가 없이 내가 손에 들고있던 청려장으로 룡의 머리를 한번 쳤더니 룡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바위우에 검 두개가 놓여있더군. 집어보니 하나는 요괴를 치는 참사검이요, 하나는 역적을 치는 참룡검이라 참사검은 금수산 선인이 가지고 참룡검은 내가 가졌네.

이 칼은 보기 드문 신비한 검인데 내 오늘 자네에게 주겠으니 이 검으로 나라위해 부디 큰공을 이루기 바라네.》

황운이 두손으로 정히 받아보니 장검의 길이는 삼척이 남고 검광은 서리발치는데 검자루에 붉은색으로 새긴 《참룡검》이라는 글자에서 은은한 빛이 흘렀다.

너무 기뻐 황운이 무릎을 꿇으며 사례하였다.

《스승의 은혜를 입어 신비한 도술을 배우고 또 오늘은 천하의 보검을 얻었사오니 소자의 평생소원이 다 풀리는것 같소이다. 스승의 이 은혜를 소자가 어찌 잊을수 있겠나이까.》

《이제 국운이 불행하여 역적의 란을 만나 성상이 위급하고 나라가 위험에 빠졌으니 그대는 때를 잃지 말고 나라위해 대공을 이루고 죽백에 이름을 남기고 가문을 빛내이라.》

보검을 몸에 지닌 황운은 마침내 도사와 리별하여 태명산을 내리게 되였다.

혈혈단신 자기를 품어주고 천하제일의 재주를 배워준 잊지 못할 도사에게 황운은 마음속 진정을 담아 허리를 깊이 숙이였다.

《소자가 스승을 슬하에 모시고 배운지 수년인데 이제 리별하자고 하니 마음속에 쌓인 무궁한 이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지 모르겠나이다.

맹세컨대 기어이 나라와 가문의 원쑤를 쓸어버리고 소원을 이룬 후 다시 뵈오리다.》

황운을 정답게 바라보는 도사의 얼굴에도 석별의 정이 력력하였다.

《십년후에 시운이 변할것이니 그때 다시 돌아오너라.》

《십년후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오이까?》

황운이 놀라며 되물었다.

《그때 가면 다 알게 되리라.》

도사가 구태여 설명을 하려 하지 않기에 황운은 더 묻지 않았다.

《부디 건강하시여 뜻을 이룬 소자가 다시 뵙게 하시오이다.》

눈물속에 도사와 리별한 황운은 참룡검을 몸에 지니고 태명산을 내렸다. 가라말도 정든 산을 내리기 싫은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산기슭에 당도한 황운이 산을 올려다보니 절벽우에 백발을 날리며 손을 저어주는 도사의 모습이 점으로 보이였다. 다시한번 허리를 굽혀 도사를 향해 인사를 하고난 황운은 가라말에 뛰여올랐다.

(내 기어이 뜻을 이루고 스승을 뵈오리라!)

황운은 참룡검을 으스러지게 틀어쥐며 가라말의 배허벅을 들이찼다. 가라말이 호응- 하며 네굽을 안고 하늘로 몸통을 솟구치더니 기운차게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말을 재촉하여 황운이 황성에 이른것은 그로부터 이틀후였다.

황운이 문적원 황금대에 이름을 등록하는데 우상 리엄이 황운의 름름한 기상을 보고 특별히 불러세워 무슨 재주가 있는가고 물었다.

《특별한 재주는 없사오나 방금 변란이 닥친 이때 나라의 백성된 몸으로 어찌 편안히 잠을 자며 밥을 먹으리까. 그래서 불원천리하고 달려왔을뿐이옵니다.》

이날 등록정형을 보고하면서 리엄이 황운에 대해 주달하니 임금이 기뻐하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한편 설소저도 청룡산 도사에게서 도술을 배운지 삼년세월이 흘렀다.

그 나날에 도사에게서 천지조화의 재주를 다 익힌 설소저이건만 자만하지 않고 더더욱 재주련마에 애쓰고있었다. 도사는 그러는 소저를 지극히 사랑하며 요구성을 더 높이고 하나라도 더 배워주기 위해 왼심을 썼다.

하루는 도사가 소저를 불러 물었다.

《지금 란신역적들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신세에 놓여있거늘 그대가 비록 녀자의 몸이지만 세상에 나가 나라위해 역적을 멸하고 공을 세워 부친도 구함이 어떠냐?》

《?!》

사연을 다는 알수 없었으나 도사의 선견지명을 이미 알고있는 소저인지라 공손히 머리를 수그렸다.

《소녀를 사랑하셔 술법을 가르치신 스승의 그 은혜를 갚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소이다.》

도사가 웃으며 보검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검은 내가 젊었을적에 스승에게서 넘겨받은 룡린검이네. 이 검에 내가 그대에게 할 말이 다 담겨있으니 부디 나의 뜻을 거스르지 말기를 믿네.》

소저가 정히 검을 받아들었다.

《스승의 당부를 골수에 새기고 소녀 비록 아녀자이지만 나라위한 길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겠나이다. 부디 소녀를 믿어주소이다.》

도사의 두눈에 실웃음이 어렸다.

《그럼 래일 떠나거라.》

이튿날 소저는 도사의 바래움을 받으며 청룡산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소저가 남복차림에 보검을 차고 운랑과 함께 산을 한창 내리고있는데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요란한 벽력소리 울리더니 한 괴물이 뛰쳐나왔다. 털빛은 백설같고 눈은 방울같은것이 짐짓 날아다니는 룡이였다. 소저를 향해 사정없이 달려들 자세였다.

소저가 맵짜게 소리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네가 정녕 청룡산 룡이라면 어이하여 청룡산 도사의 제자도 몰라보는가!》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달려들던 그 괴물이 떡 멈춰서서 소저를 이윽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긴장해서 검을 빼들고 틈을 주지 않고있던 소저가 이상히 여겨 자세히 괴물을 바라보니 앞에 앉아있는것이 다름아닌 한번 구르면 십리를 달리는 준마가 아닌가. 기뻐하며 준마에게 다가가니 준마가 주둥이를 소저의 손에 묻고 흥흥거렸다. 소저는 준마의 이름을 《비룡》이라 달아주었다.

이어 운랑과 함께 소저가 비룡에 오르니 비룡이 기운차게 네굽을 내뻗쳤다.

황성으로 가는 도중에 호주에 들린 소저가 운랑을 집에 떨구고 비복들더러 집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니 운랑과 비복들이 저저마다 소저가 또 멀리 떠나감을 슬퍼하며 눈물을 머금었다.

《내 이제 음양을 바꾸어 남자로 변신함은 막부득이함이라. 우로는 나라를 위하고 아래로는 아버님을 위함이니 어찌 평생소원을 속에 품고 속절없이 집에 앉아 허송세월하랴.

너희들은 가사를 돌보면서 성공한 나의 소식을 기다리라.》

남복차림에 룡린검을 차고 비룡을 몰아 호주를 떠난 소저는 그날로 황성에 당도하였다.

형형색색의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황금대로 밀려가고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라 황금대에 이른 설소저는 이름을 고쳐 《설연》이라 하고 문적원에 등록하였다.

우상 리엄이 소저의 날렵한 몸을 훑어보며 특별히 불러세워 무슨 재주가 있느냐고 물었다.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나라가 위급한 이때에 힘을 다해 도적을 평정하고 나라앞에 드리운 구름을 가셔내는것은 마땅한 도리인줄 아옵니다. 어찌 집안에 편안히 있으리까.

그래서 불원천리하고 왔사오니 외람되오나 자원출전함이 소자의 소원이옵니다.》

신통히도 황운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 소저를 리엄은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황운과는 달리 체격이 호리호리하고 용모가 처녀애처럼 곱살하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상은 다른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리엄이 흥분하여 그에 대해 아뢰니 임금도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튿날 임금이 문무대신들을 모두 거느리고 황금대에 자리를 정하고 문적원에 등록한 장사들의 재주를 시험하면서 우상 리엄에게 근엄하게 일렀다.

《경은 이번 재주시험을 평가하여 도원수를 정하라!》

리엄은 눈에 잔웃음을 지으며 생각하였다.

(이번 재주평가에선 분명 황운과 설연이 떼놓은 당상이라 단연코 도원수는 그 두사람으로 정해야 할것이니라.)

잠시후에 장사들의 재주겨루기가 시작되였다.

문무백관들이 어가를 시위하여 좌우로 쭉 벌려서있고 기치창검이 하늘을 찌를듯 수풀처럼 늘어서있는 련무장은 일찌기 보지 못한 위세와 엄숙함이 흘렀다.

먼저 황금대우에서 나붓기는 황룡기를 가리키며 흠차관이 큰소리로 웨쳤다.

《장사들중에 지모가 뛰여나고 용맹이 범같은자 있거든 이 황룡기아래 나서라!》

장사들의 무리속에서 한사람이 황룡기아래 나선다.

엄신갑을 입고 도채와 창을 든 그 장사가 땅에 엎드려 네번 절을 하더니 오십보밖에 세워놓은 오추마우에 한번 몸을 날려 올랐다. 하더니 쏜살같이 내달으며 도채와 창을 쓰는데 그 솜씨가 번개같다. 구척의 키에 고리눈을 한 그 장사는 융부랑중 우시춘이였다.

임금이 번개같은 그 재주에 칭찬을 보내는데 무리속에서 한 나어린 장수가 황룡기아래 이르러 땅에 엎드려 네번 절을 하더니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창검을 들고 가라말을 팔십보밖에 세우고 몸을 한번 날려 말우에 오른다. 좌우로 내달으며 검을 휘두르는데 검광이 온몸을 가리우고 살기가 하늘을 찌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과 금빛색이 온 련무장을 진동하였다.

좌중에서 《야!》하는 감탄소리 멈출줄 몰랐다.

임금이 희한한 재주에 연신 탄성을 지르더니 즉시 그 장사를 앞으로 불렀다.

신장이 칠척이요, 목소리는 웅장하고 기운은 엄숙하고 눈은 어글어글한게 짐짓 영웅의 기상이고 한시대의 호걸이라 임금이 여간 기뻐마지 않으며 장사의 성명을 물으니 그 장사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신은 룡주사람 황운이라 하옵니다.》

임금이 어주를 내여주며 연신 찬사하는데 불쑥 황룡기아래에 한 소년장사가 큰 소리를 내지르며 뛰쳐나왔다. 임금을 향해 앞선 장사들처럼 인사하고 갑옷과 투구를 갖춘 후 왼손에 창을 들고 오른손에 보검을 들고 백보밖의 룡마에 한번 몸을 날려 오른다. 번개같이 창을 휘두르다가 검을 들어 좌우로 춤추고 말을 동서로 내달으며 재주를 시위하는데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요, 말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룡이라 검광이 해를 가리우고 위풍이 하늘에 사무치니 보는 사람들의 갈채소리 끊길줄 몰랐다.

임금이 크게 놀라며 즉시 불러들이는데 신장은 륙척이 채 안되고 얼굴은 보름달같으며 두눈은 가을철 호수마냥 시원하고 복숭아같은 발그레한 량볼엔 봄날의 기운 력력하고 가는 허리는 춘풍에 흐느적이는 버들가지같다. 온몸에 풍기는 봄날의 기운을 거둔다면 온 얼굴에 천지조화를 품고있는듯, 흉중에 천하재주 다 숨어있는듯 장하기 그지없었다.

임금이 어주를 내여주며 성명을 물으니 소년장사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소신은 호주사람이오며 이름은 설연이라 하오이다.》

임금이 다시한번 칭찬하고나서 리엄더러 계속하여 재주와 지모를 시험하라 하였다.

련이어 검법과 창법, 궁술과 격술 등 온갖 무술시험이 벌어졌는데 그 모든 시험에서 황운과 설연의 재주를 당할자 한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장기쪽의 차와 졸같은 헨둥한 차이를 이루었다.

시험이 끝난 후 임금이 황운과 설연을 다시 불러 나이를 물었다.

설연이 먼저 나섰다.

《소신은 당년 나이 열여덟이옵니다.》

황운의 대답도 꼭 같았다.

《소신의 나이는 금년 열여덟이옵니다.》

임금이 놀라며 백관들을 둘러보았다.

《두 장수가 신통히도 룡천부사람이고 나이가 꼭 같도다. 세상에 이런 우연도 있는가.》

흠차관이 나서며 아뢰였다.

《룡천부에는 령험하기로 소문이 난 청룡산이 있고 그와 이웃한 현덕부에는 태명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천하리치를 도통한 유명한 도사들이 있다고 하오이다. 그 도사들이 키워낸 제자중에 훌륭한 인재들이 선대때에도 많았다고 하던데 오늘 보니 과시 그 말이 헛소리가 아닌듯 하오이다.

분명 이들도 그 도사들의 제자인것 같소이다.》

임금이 머리를 끄덕거리는데 설연이 한걸음 나서며 또박또박 아뢰였다.

《신들은 견마의 직분을 다하여 페하의 근심을 덜고 나라의 원쑤를 멸하겠소이다.》

임금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영웅이 있으니 도적을 멸하기는 여반장이로다!》

임금은 그자리에서 설연은 도원수로, 황운은 부원수로 봉하는 교지를 내렸다.

그러자 신하들속에서 웅성웅성하는 가벼운 소음이 일었다. 그 소음을 타고 선조성의 간의 엄광이 설레발을 치며 난딱 나섰다. 온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페하! 한낱 설연과 황운의 재주만 보시고 아무런 경험이 없는 백면서생인 그들에게 대군의 중임을 맡기시다니 너무 황당하오이다. 》

임금의 언성이 높아졌다.

《뭣이, 경은 무슨 말을 하자는거냐?》

엄광이 서슴지 않고 제 생각을 털어놓았다.

《신은 장수들과 군사들이 설연과 황운을 숫보고 군령을 듣지 않을가 근심스럽소이다.》

나이가 어린 두 사람에게 나라의 군사중임을 맡긴데 대한 대신들과 관료들의 우려와 불안, 당혹감을 대변하여 제기하는 의견인듯싶었다.

임금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릇 사람의 재주는 로소귀천이 따로 있지 않도다!

국가대사를 우선으로 놓고 결정한 문제인데 감히 허튼 망발을 늘어놓는 이런 불경한 신하를 어찌 조정에 둔단 말인가. 당장 엄광의 벼슬관직을 삭탈하라!

금후로 두번다시 이런 말을 하는자 있으면 그 누구를 불문하고 가차없이 목을 베리라!》

삽시에 좌중엔 어마어마한 분위기가 나돌았다. 엄광의 의견에 내심 좋아라 맞장구를 치던 대신들과 문무신하들이 몸을 옹송그리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엄광이 우들우들 떨며 죄를 청하는 모습이 신하들의 눈에 비껴들었다.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임금이 다시 장수들을 불러 모이게 하고 그들의 앞에 설연, 황운을 내세우고 어주를 내여주고는 모든 장수들이 차례로 나와 그들앞에서 군례를 하게 하였다.

이어 임금은 제상을 갖추어 신령에 제를 지내는 의식을 벌리도록 하였다.

임금이 친히 백관들을 거느리고 하늘과 땅, 해와 별의 제신들에게 제를 지내고 이어 축문을 읽었다.

《모년월일에 발해국 주상은 하늘과 땅에 제사하나니 짐이 밝지 못한 까닭에 충신들과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여 간신소인배들이 살판치게 하였나이다. 그로 하여 언감생심 대역부도한 간신역적무리가 의리를 저버리고 회주에서 반역하였나니 생령들은 도탄에 빠지고 종묘사직은 위험에 처하였나이다.

란신역적무리의 그 죄악은 천지에 사무치고 사해에 가득찬지라 특별히 설연을 도원수로 봉하고 황운을 부원수로 삼아 대군을 거느려 역적들을 소멸하고 종묘사직을 보존케 하려고 하오니 원컨대 천지신명은 삼가 굽어살펴주옵소서.》

임금이 향불을 피우며 제문을 읽고 제를 마친 후 설연을 장대에 올려앉히고 도원수의 인수와 부월을 내여주며 분부하였다.

《국가의 흥망과 종묘사직의 안위가 오로지 도원수에게 달려있도다.

충성을 다하여 국가를 보존하고 인덕을 베풀어 장수와 군사들을 보살피며 역적들을 소멸하여 공적을 죽백에 드리워 후세에 전해지도록 하라.

만일 각 부와 주, 현의 절도사, 자사, 승을 비롯한 관리들중에 령을 쫓지 않는자 있거든 두말없이 선참후계하라.》

또 황운에게 부원수의 부월과 천리준마를 하사하였다.

뒤이어 도원수의 지휘기에 임금이 직접 《천하병마 발해국 도원수 서북정순무안찰사 설연》이라 쓰고 이어 부원수의 지휘기에 《천하병마 발해국 부원수 겸 참모사 황운》이라는 글을 써넣었다.

임금이 이십만군사를 내주며 련무장에 나아가 군마를 연습하다가 좋은 날을 택하여 행군함을 재촉하니 도원수 설연이 아뢰였다.

《어명대로 실행하겠나이다.》

곧 이백명의 장수들과 이십만의 정예군을 거느리고 군사연습을 하는데 부원수 황운으로 제1대로 삼고 황신기를 세워 중앙에, 좌군장 우시춘으로 제2대로 하고 청신기를 가지고 좌청룡을 삼아 동쪽에, 제3대 우군장 서하수로 백신기를 가지고 우백호로 삼아 서쪽에, 제4대 거기장군 홍윤으로 홍신기를 가지고 남주작을 삼아 남방에, 제5대 표기장군 강수천으로 흑신기를 가지고 북현무를 삼아 북쪽에, 제6대 선부랑중 염성태로 청도 원문장으로서 동쪽사이에, 제7대 창부랑중 맹학신으로 백호기를 세워 후군장으로 뒤쪽에, 제8대 융부원외랑 마맹달은 성문장으로 서남간에, 제9대 선부원외랑 륙합은 별장으로 남쪽에 진을 치도록 하였다.

도원수 설연이 장수들을 거느리고 장대에 높이 앉아 이십만군사로 신호에 따라 앉거나 서며 전진하거나 물러서는 용병의 일반동작인 좌작진퇴법을 연습하는데 호령이 엄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이십만대오가 한사람이 움직이듯 정연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십만대군이 추켜든 기치창검은 해빛을 가리우고 북소리, 뿔나팔소리,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임금이 도원수의 용병술을 시험코자하여 중대성 사인인 엄맹을 진중에 보내였다. 엄맹은 선조성 간의 엄광의 형이다. 엄맹이 진중에 들어가려 하니 수문군졸이 막아섰다.

엄맹이 대노하여 소리쳤다.

《내 성상의 조서를 받고 왔거늘 뉘 감히 막으리오.》

막무가내로 원문을 헤치고 들어가니 원문장 염성태가 크게 놀라 도원수 설연에게 보고하였다.

도원수 설연이 보고를 받고 령을 내려 가차없이 엄맹을 결박하여 진문밖에 꿇리우고 성문장 마맹달을 향해 호령하였다.

《군률은 임금의 명이라고 해도 쫓지 못하는 법이거늘 대장의 령이 없이 제멋대로 출입하여 군법을 어지럽혔으니 마땅히 군법대로 처형하리라!》

임금에게 표를 올려 죄를 청한 후에 즉시 엄맹을 베여 군중에 조리돌림하고나서 다시 그 사실을 상주하니 임금이 펄쩍 놀라 침통해마지 않았다.

누가 벌써 기별하였는지 엄맹의 모친이 그 소식을 듣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뛰여와 울며 상소하였다.

《설연이 군법에 빙자하여 어명을 가볍게 여기고 우리 아들을 죽였으니 이 얼마나 원통하오이까.

이는 다른 까닭이 아니라 맹의 동생 광이 설연의 도원수 봉하심을 간하였으므로 설연이 한을 품고 복수함이오이다. 그러니 이렇게 덕이 없고 편협한 사람에게 어찌 도원수의 중임을 맡길수 있으며 또 그런 조폭한 장수가 어찌 반란적을 소멸하며 대군을 총독할수 있으리까.

바라건대 페하는 설연을 처벌하여 조정의 기강을 회복하시고 우리 아들 맹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사이다.》

그러지 않아도 군법을 실행하여 엄맹의 목을 베였다는 도원수 설연의 보고를 받고 아연해있던 임금이였다. 나이가 어리고 애리애리한 몸의 그 어느곳에 그런 담과 배짱이 있는지 정말 놀라왔다. 임금은 과연 대군을 통솔할만 한 도원수다운 단호한 결단이라고 감탄하면서도 엄맹의 죽음이 맹랑하고 립장이 난처하였다. 임금은 그의 동생인 엄광에게 이미 내렸던 벌을 취소하는것으로 엄맹의 모친을 위안하기로 작정하고 흔연히 대척하였다.

《이는 군률의 엄함을 보인것이지 어찌 짐을 경멸함이겠는가.

그대신 아들 엄광의 벌을 거두고 다시 본직무에 종사하도록 하겠노라.》

엄맹의 모친에게 아들의 장사비용을 듬뿍 주어 돌려보내게 한다음 임금은 설연을 불러들였다.

《경이 용병함은 귀신도 미치지 못할바라 짐이 어찌 도적을 근심하리오.》

어주를 내여주며 칭찬하니 도원수 설연이 황공해하며 용서를 빌었다.

《신이 외람되게 중임을 맡아안고 페하의 은총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저 사소한 사정을 돌아보지 않고 엄맹이 군률을 어겼기에 가차없이 처벌하였소이다. 비록 군률의 엄함을 과시하였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성상의 덕에 흠집을 남기였으니 죄를 다스리소서.》

임금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딴 생각 말고 경은 어서 물러가라. 짐이 어찌 경의 군법 다스림을 저해하랴. 엄맹이 군법을 알지 못하고 그릇되게 군률을 범하였거늘 어찌 그 한사람때문에 대군의 군령을 허술히 대하리오.》

모든 장수들과 군졸들이 그 말에 다 황공해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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