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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2 장


5


응상은 허청허청 걸음을 옮겼다. 어이없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며 하숙집뒤뜰에 들어서서 찌걱이는 계단을 밟으며 2층으로 올라갈 때에야 아침에 흐르르한 좁쌀밥 한그릇을 먹었을뿐이라는것을 상기하였다. 금시라도 푹 꼬꾸라져 어녕 일어서지 못할듯싶은 허탈감을 느끼며 계단우에 맥없이 서있다가 고미다락의 문을 열었다.

캄캄한 방안에 들어선 그는 뙤창밑에 얹어논 성냥을 손더듬하여 쥐고 불을 켰다. 순간 방안을 둘러본 응상은 흠칠 몸을 떨었다. 지적을 깐 방 한쪽에 웬 낯선 사람이 비스듬히 누워있는것이였다. 등잔불을 집어들고 조심스레 그쪽을 비쳐본 응상은 《아.》하고 나직이 부르짖었다.

인기척을 느낀 계시경이 흠칠하며 눈을 들어 응상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응상이냐?》

시경은 몸을 일으키며 알릴듯말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버님!》 응상은 목메인 목소리로 이렇게 부르고 더는 뒤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계시경의 메마른 얼굴은 따뜻한 인정미를 표현하는것조차 상실한듯 광솔빛으로 굳어져있는데 그사이 어금이들이 빠진듯 량볼이 움퍽하게 패워있었다. 계시경 또한 억이 막혀 둘째를 뻔히 쳐다보았다. 본시 약하두하게 생긴 모상이였지만 그의 얼굴에서 혈색을 한점도 찾아볼수 없는것이 가슴아픈 모양이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응상이 조심스레 물었다.

《널 데리러 왔다. …》

시경은 맺고끊듯이 투박하게 말했다.

《그래요?》

응상의 갸르스름한 얼굴은 일순 하얗게 질리는듯 하였다. 말없이 풍로에 숯불을 지폈다. 시경은 집에서 싸보낸 떡개며 지짐, 삶은 밤이 한보따리나 있었지만 아들이 해먹고 사는 꼴을 보려고 가만있었다.

《시장하시겠어요.》

잠간사이에 밥을 잦힌 응상은 신문지우에 남비를 내려놓고 좁쌀밥을 무둑히 두사발 퍼놓았다.

찬이란 종발에 담은 간장과 무장아찌가 전부였다.

《자, 어서 드시자요.》

응상은 수저를 밥사발에 얹어놓으며 부친을 쳐다보았다.

《오냐, 어서 들자꾸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시경은 수저를 들지 못한채 파리한 아들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이윽고 그는 《아참, 네 에미랑 며늘애가 싸보낸게 있는걸 깜박 잊었댔구나.》하고는 보꾸레미를 풀어헤쳤다.

《어이구, 제 좋아하는 녹두지짐이랑 삶은 밤이 다 있군요.》

응상은 손바닥만 한 지짐짝을 한입에 꿀떡꿀떡 넘기고 집에서는 좋아하지 않던 메떡도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그러는 아들의 정상을 어웅하여 지켜보던 시경은 두눈을 재게 슴벅거렸다.

저녁을 치르고나자 계시경은 두무릎우에 량손을 얹고 말을 꺼냈다.

《네 정상이 말이 아니구나. 이렇게 끼식을 때가지구야 몸을 보전이나 하겠느냐. 웃마을 경훈이가 그리된게 우연치 않다. 두말말고 내려가야겠다.》

응상은 대꾸하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왔다.

《아버진 주무세요, 전 좀 할 일이 있어서. 곤하시겠는데 어서 주무십시오.》

응상은 때묻은 솜두루마기를 한쪽에 펴놓고 목침을 내놓는다. 아버지쪽에 불빛이 가지 않게 공책으로 등잔불을 가리워놓고 무릎을 꿇고앉아 책을 들여다본다. 이따금씩 두눈을 감고 웅얼웅얼하기도 했다.

《네 지금 배우는 글이 뭐라는거냐?》

어이없는 기색으로 아들을 건너다보던 시경은 조용히 물었다.

《영어라구 하는건데 서양사람들 글이예요.》

《그건 해서 뭘한다드냐?》

《큰 공부를 하자면 필요해서 그래요.》

《큰 공부? 그럼 넌 아직두 작은 공부를 하고있단 말이냐?》

《…》

응상은 듣는지마는지 그냥 책을 번지며 그것을 들여다보고있다. 이내 책에 심취된 응상은 곁에 부친이 앉아있다는것도 잊은듯싶었다. 그 거동이 어찌나도 직심스럽고 열심인지 더는 말시킬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시경은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못해 피곤에 몰려 소르르 잠들고말았다. 얼마나 잠들었댔는지 시경은 이상한 소음을 듣고 스르시 눈을 떴다. 등잔불은 켰는데 어둠속에서 석석하는 소리가 났다. 눈의 초점을 모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부가 끝난 모양인데 응상이 어둠속에서 방구석에 떠다논 세면물에 베수건을 적셔서는 벗어붙인 웃동이며 아래동아리를 열성스레 문대고있었다.

이 추운 방에서 겨울을 나는 비방은 저렇게 알몸뚱이를 찬물로 찜질하는데 있단 말인가! 시경은 다시한번 긴 한숨을 내쉬였다.

발끝걸음으로 소랭이의 물을 밖에 내다버린 응상은 나갈 때처럼 기척없이 들어와 헌 두루마기자락을 뒤집어쓰고 옆자리에 누웠다. 응상은 벌써 풀풀 코바람을 내불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는것이였다.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약식요- 약-식-》 구성지게 밤거리를 울리던 청승맞은 약식장사의 웨침소리도 끊어지고 《뚜거덕, 뚜거덕…》 이따금 포석을 울리며 지나가던 말발굽소리도 사라지고 바람소리만이 처마끝을 은은히 울리고있었다.

하나 계시경은 더는 잠들수 없었다. 《드르렁-드르렁》 응상이 코고는 소리는 마치나도 박풍재를 대톱으로 켜는 소리를 련상시켰다. 물곬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아무리 고된 일을 한 날에조차 저렇게 메가도 모를 지경으로 잠들어본적이 없다. 얼마나 긴장한 하루를 보냈으면 저렇게 세상천지가 뒤흔들려도 끄떡하지 않을 지경으로 잠드는걸가.

그는 아들이 공부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허나 그가 보건대 둘째는 무거운 짐수레를 끌고 목적한 마루턱에 오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을 오르는 일군같았다. 과연 1년 365일도 아니고 수년동안을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고 랭방에서 자며 하루도 편한 날없이 저렇게 지낸다면 사람이 쓰게 되겠는가.

응상은 집에 있을 때보다 몸이 반쪽이 되였다.

정말 저러다가는 양창술이 말마따나 미치광이가 되고말것이 아닌가.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 새벽녘이 되여서야 잠이 들가말가했는데 옆에서 기척소리가 났다. 펀듯 눈을 떠보니 응상이 귀전에서 종소리가 울리기라도 한듯 벌떡 일어나는것이였다. 손으로 어루더듬어 바지저고리를 주어입은 그는 무슨 글인가를 웅얼웅얼 입속으로 되뇌이면서 밖으로 나가는것이였다.

시경은 슬며시 일어나 소리나지 않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뜨락에 나선 응상은 심호흡을 하고 체조를 하더니 처마밑에 세워둔 자전거를 끌고 뒤문으로 빠져나가는것이였다. 벌써 신문배달을 나가는듯 하였다.

시경은 두루마기를 입고 슬밋슬밋 밖으로 나섰다. 마당에는 서리가 하얗게 깔리고 바람끝이 찼다. 랭한방에서 제대로 덮지도 못하고 한밤을 지새여서 그런지 온몸이 우들우들 떨리였다. 그러나 시경은 두루마기자락을 여미며 더듬더듬 아들이 사라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시장철 이런 푸름새벽이면 둘째가 저 골목을 거쳐 거리를 내달리리라 생각하니 그저 누워있을수가 없었다. 빈방에 누워있느니 이렇게 밖에 나와 떠는편이 나을것만 같았다.

여기저기서 물지게소리가 나고 콩나물장사들이 멜채에 콩나물광주리를 메고 흐능청거리며 지나갔다. 처음에는 《콩나물이요.》하고 잠이 채 깨지 않은 음성으로 늘어지게 뽑더니 걸음이 빨라지자 《콩나물, 콩나물, 콩나물 사구려-》하고 점점 더 재게 발을 놀린다.

《찌릉찌릉》 신호종을 울리며 자전거가 달려왔다. 시경은 슬며시 집모퉁이로 비켜섰다. 배달부가 행길옆으로 획 지나가며 팔을 휘두르는것 같더니 햇듯한것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쪽으로 눈길을 보낸 시경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종이비행기같이 접힌 신문지가 배달부의 손끝에서 획 날아 담장너머 벽돌집아래층 뙤창으로 날아들어갔다.

그 배달부는 잇달아 언듯 자전거를 세우는듯 하더니 몸을 뒤로 제끼고 접은 신문을 돌멩이를 던지듯 2층창문으로 던지는것이였다. 하자 신문은 빠금히 열어논 뙤창으로 화살같이 날아들어가는것이였다.

그러나 배달부는 내던진 신문지가 뙤창으로 날아들어가는것을 돌아보지도 않고 잽싸게 자전거를 몰아가다가 절칵 길옆에 자전거를 세우더니 기계다리처럼 잰걸음으로 3층건물계단을 달아올라가는것이였다.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가던 계시경은 흠칠 놀랐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문대면서 계단을 두세개씩 뛰여내려 자전거에 뛰여오르더니 신호종까지 울리며 내닫는것은 둘째 응상이 아닌가!

시경은 가슴이 멍클하여 선자리에 못박힌채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그는 아들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하숙집고미다락으로 올라가 풍로에 숯불을 지폈다. 얼마후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귀에 익은 가벼운 발자국소리가 나고 잇달아 방문이 열리며 둘째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계시경은 고개를 돌리였다.

《신문배달을 하고오느냐?》

《예, 간밤에 춥지 않았나요?》

《괜찮다. 새벽에 그렇게 뛰여다니고나면 학교에 가서 공부가 제대로 되기나 하느냐?》

《괜찮아요.》

응상은 건숭으로 대꾸하고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바가지에 담아놓았던 시래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계시경은 피끗 그 바가지에 눈길이 갔다. 낯익은 바가지다. 이태전 응상이 제 누이네 집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설 때 로친네가 보자기에 싸보낸 그 바가지가 분명하다.

계시경은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저렇게 죽자 하고 제 좋아하는 일에 달라붙고있는 둘째를 어떻게 돌려세워 다른 일을 시킬수 있단 말인가.

억지공사로 응상일 촌으로 데리고 내려간다면 그것이 아들에게도 좋을수 없으며 아들이 좋아하지 않는 일에 마지못해 끌려다니는 꼴은 부모눈에도 좋게 보일리 만무하다.

조반을 치르고나자 응상은 귀를 기울였다.

《동태 사구려, 펄펄 뛰는 동태요-》

《콩나물, 콩나물 사구려-》

콩나물장사가 저쪽골목에서 마지막사구려소리를 지를 때면 학교갈 시간이 되는 모양인지 응상은 서둘러 보자기에 책을 싸면서 말했다.

《오래간만에 서울 올라오셨는데 오늘은 장안구경이나 하시지요.》

《금강산두 식후경이라구 그럴 생각이 쇠통 없구나. 난 낮차루 내려가련다. 실은 널 데리러 올라왔다만 그만두겠다.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고 공부하는 널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방해해서야 되겠니? 옛다.》

시경은 저고리안주머니에 귀중히 간수했던 돈 5원을 내놓았다.

《네 차림새가 말이 아니구나. 이걸루 뜨뜻한 목도리라두 하나 사서 감구 다니려무나.》

말없이 늙은 아버지를 쳐다보는 응상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핑하니 돌았다. 시경은 한순간 뙤창으로 흘러드는 해빛을 눈주어 바라보았다.

《우리가 집에서 못 먹구 못 입어두 다달이 몇푼씩이라도 부쳐줄테니 무명으루 지은 학생복일망정 꿰진건 입지 말어라. 그리구 끼니만은 번지는 일이 없두룩 해라. 그러다간 사람이 쓰게 되겠느냐.》

《고마워요.》 응상은 두손으로 아버지가 종이에 정성스레 싼 돈을 받았다.

《그렇지만 아버지, 사람이 마음을 고여야지 겉치레나 해선 뭘하겠어요.》

후날에 알려진것처럼 응상은 아버지가 준 돈 5원과 몇달에 한번씩 부쳐주는 얼마 안되는 돈을 깡그리 모아 외국어사전을 비롯한 귀한 책들을 사는데 고스란히 들이밀었던것이다.

또한 속대가 박힌 그의 말은 이튿날로 집에 내려간 계시경이 집안식구들과 이웃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글쎄 둘째녀석한테 돈 몇푼 쥐여주면서 목도리라두 하나 사감으라고 했더니 사람이 마음을 고여야지 겉치레나 해선 뭘하겠나요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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