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8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2 장


4


응상은 늘 밤이 깊도록 학교에 남아있다가야 하숙집으로 돌아온다.

하루수업이 끝나면 화강석으로 지은 중학교본청사와 얼마간 사이를 두고있는 목조단층건물에서는 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리덕구선생의 지도하에 동식물표본을 만들기도 하고 개구리로부터 시작해서 백쥐, 토끼 등을 해부했고 현미경으로 동식물조직편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지난해 초가을 어느날 북악산절간의 로승이 예고도 없이 불쑥 학교장실에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교장의 팔소매를 잡고 생물실험실이라는데로 가보자고 강짜를 부렸다.

이때 실험실에서는 학생들이 북악산에서 잡아온 구렝이를 커다란 유리병에 넣고 액침을 하고있는중이였다. 아마도 자기네 절간에 드나드는 교인이 헐레벌떡 찾아와 대웅전의 수호신을 학생들이 잡아갔다는 말을 듣고 도포입고 목탁을 두드리며 맨머리바람으로 황급히 찾아온 모양이였다.

소동이 일어날것을 념려한 학교장은 수업중이기때문에 돌아볼수 없다고 딱 잘라맸다. 하자 로승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제 발로 실험실을 향해 돌진하듯이 걸어갔다. 그가 문을 벌컥 열고 실험실로 들어섰을 때 공교롭게도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이는 실험대우에서는 북악산의 수호신이 마지막경련을 일으키며 액침병에 늘어지고있는중이였다.

두눈을 흡뜨고 이 광경을 주시하던 로승은 목탁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삼세중생이(전세, 현세, 래세의 목숨가진것들을 이르는 말.) 다 동포일진대 그를 함부로 살생하는 무도무법한 행위는 천하에 용납 못할 야만의짓이며 이런자는 저승에 가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것이라고 엄숙히 예언했다. 특히 간악한 살인생들을 키우는 리덕구야말로 영낙없이 지옥에서 끓는 기름가마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것이라고 지껄이였다.

허나 리덕구는 눈섭 한오리 까딱하지 않으며 방금 알콜속에 담가놓은 북악산구렝이가 숫놈인것이 유감이라고, 이제 사람까지 해쳤다는 암놈마저 잡으면 자기는 그것을 기어이 단지에 넣어 곰을 해먹고 몸보신을 하여 장생불로하겠노라고 했다.

극적인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스승의 행동을 종교재판에 의하여 모닥불에 불타죽으면서도 지동설의 승리를 확신한 죠르다노 부르노와 같이 용감무쌍한 투사로 여겼다.

악페와 구습이 절벽같이 사람들의 앞길을 가로막고있던 그때로서는 리덕구의 이러한 행동도 개명의 큰문을 두드리는 선각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였던것이다.

그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엄엄하여 무뚝뚝한 인상을 주었다. 하나 일단 교단에 나서기만 하면 온몸이 불길처럼 타올라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는것이였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가르칠 때에는 마치나도 자신이 그 법칙들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발견한듯이 흥분하고 격동되여 수업시간이 끝난것조차 모르고 강의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다음강의를 하기 위하여 교실로 들어서는 교원을 보고서야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하건만 그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자기의 가슴속에 꽉 차있는 지식의 반에 반도 퍼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교실을 나서군 했다.

그는 생물실험실소조원들중에서 계응상을 남달리 아끼고 사랑하였다. 한것은 응상이 상급반학생들중에서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는 학생이기도 했지만 그에게서 자기가 그토록 바라던 과학자에게 필요불가결한 자질이라고 할수 있는 예리한 관찰력과 생물학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이 움트고있는것을 보았기때문이다.

간해 여름방학때 응상은 한책상에 나란히 앉은 짝패학생과 함께 그의 고향인 강화도에 간다고 떠났었다. 그런데 응상이 한주일만에 불쑥 학교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병들어 죽은 누에와 누에알들을 가지고와서 리덕구한테 내놓으며 현미경으로 관찰해보겠다는것이였다.

짝패의 고향인 강화도 마니산기슭의 농가들에서는 누에를 많이 치고있었다. 땅이 척박한 고장이여서 농사가 안되여 누에고치를 따서 판 돈으로 식량을 마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한데 넉잠 자고난 누에가 갑자기 진물을 줄줄 흘리며 모조리 죽어가고있었다.

농민들은 누에를 치는 동안은 부정탄다고 상가집에도 가지 않고 버린 음식도 삼가하고 부디 병나지 말고 단단히 고치를 틀게 해달라고 부적을 만들어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해 누에병에는 백가지 비방이 모두 무효였다.

죽은 누에를 삼태기로 쓸어내던 한 아낙네가 렴치불구하고 짝패네 집에 와서 병든 누에를 고쳐달라고 애원했다. 짝패는 오성중학이 무슨 공부하는데라는것을 설명하면서 자기네는 그런것과는 인연이 없는 학생들이라고 하였지만 그 녀인은 막무가내로 사정을 봐달라고 간청하는것이였다.

《우리 집 애기누에부터 좀 살려주어요.》

울상을 한 아낙네를 본 응상은 가슴이 저려왔다. 그의 고향집에서도 봄가을이면 웃방에 덕대를 매고 누에를 친다. 낟알 사먹는데 보태쓰겠다고 애면글면 키우던 누에들이 일시에 녹아날 때마다 어머니는 그 얼마나 애섧어했던가!

응상은 무작정 녀인을 따라섰다. 그가 찾아간 이웃집 사랑방 잠박마다에는 퉁퉁 부어오른 누에들이 무리로 쓰러져있었다. 병든 누에들을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해부를 해보았지만 발병원인을 찾지 못한 그는 죽은 누에며 누에알들을 싸가지고 부랴부랴 서울로 달아올라와 끼니도 잊고 현미경앞에 붙어있었다.

먼동이 훤히 터오는 어슴새벽이였다. 응상이 리덕구네 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내의바람에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간 리덕구는 두눈이 둥싯하여 물었다.

《웬일이요?》

《선생님, 죽은 누에의 몸뚱이에서 실토리모양의 작은 세균들을 발견했습니다. 흥미있는건 생생한 누에알들에도 어떤 알들에는 실토리모양의 세균이 들어있다는 점입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거요?》

《농민들이 개인종란장에서 사왔다는 누에알들에 특히 그런 병균이 많습니다. 이건 병이 난 누에는 알때부터 실토리모양의 세균을 가지고있다는 근거를 줍니다. 그리고 또…》

응상은 열정적으로 말을 이었다. 리덕구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응상은 현미경을 트렁크에 넣어가지고 강화도로 서둘러 내려갔다. 응상의 예측은 실험을 통하여 확증되였다. 병균에 오염되지 않은 누에알들을 깨워서 키우면 병이 나지 않고 알때 병균을 보유하고있던 누에는 크면서 영낙없이 병이 생겨 죽는것이였다.

응상은 이러한 사실을 마을사람들에게 알려주고 병균이 없는 누에알을 사다쓰게 하고 병균이 섞인 알을 팔아먹는 종란장경영자들한테서 배상금을 받아내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의 덕분에 누에를 치는 어머니와 고향사람들도 얼마간 도와줄수 있게 된것이 그는 무등 기뻤다. 후날 그가 다름아닌 누에를 연구하는 학문에 일생을 고스란히 바치게 된것은 애당초 어떤 높은 리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렇듯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기쁘게 해주고싶은 심정이 크게 작용했기때문이다.

응상의 이러한 소행은 리덕구를 은근히 놀래웠다. 문헌조사를 해본데 의하면 프랑스의 저명한 화학자 파스퇴르가 19세기 70년경에 누에에서 이와 같은 세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프랑스사람들은 뽕나무를 황금나무라고 불렀다. 이 나무에서 따내는 잎으로 누에를 키워 비단을 짜는 누에고치를 거두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누에병이 무섭게 번지기 시작하여 프랑스의 양잠업은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화학자인 파스퇴르가 양잠지대에 나가 누에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끝에 처음으로 이 병원체를 발견하였다. 또한 누에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까지 찾아냄으로써 프랑스의 뽕나무들은 다시 황금나무로 되였던것이다.

계응상은 비록 파스퇴르보다 40여년이나 늦게 그 병원체를 발견했지만 이것은 그에게 과학적재능이 있다는 명백한 근거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응상은 틈만 있으면 경성부립도서관을 찾아가 일반독자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고문서열람실에 들어박혀 세나라시기로부터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양잠업이 발전해온 로정을 집요하게 추적해들어가더니 얼마후 그의 손에서는 《현대생물학》, 《유전의 세계》와 같은 책들이 떠날줄을 몰랐다.

젊고 정열이 불타는 그는 일본어를 습득하자 생물학부문의 외국문헌들을 무섭게 탐독해나갔다. 응상을 데리고 외국생물학잡지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부립도서관을 찾아간 덕구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한겻이나 걸려 네댓권의 잡지를 들추면서 필요한 자료를 뽑아내는 사이에 응상은 수십권을 헐하게 보아제끼는것이였다. 빠르기도 했거니와 어느것 하나 놓치는 법이 없이 세밀하기도 했다.

《선생님, 이걸 좀 보십시오.》

응상은 유전학자 도야마의 론문이 발표된 잡지를 펼쳐보이며 몹시 흥분하여 말했다.

《이 학자는 멘델이 발견한 유전의 법칙을 누에에서 재확인하고있군요. …》

리덕구는 응상이 그 론문에 관심을 두는 까닭을 인차 간파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하나의 론문을 읽어도 그것을 그 어떤 귀중한 목적과 결부시키고있는것으로 하여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돌리지 않는 평범한 문헌에서조차 류다른 희열을 맛보고있다는것만은 짐작할수 있었다.

리덕구는 가슴을 울렁이며 제자의 마음속에 깃을 펴는 사색의 갈피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있었다. 밤도 깊어 생물실험소조원들이 뿔뿔이 흩어져갈무렵이였다.

《응상군, 이리 와앉으시오.》

리덕구는 응상을 열기가 식어가고있는 난로가로 조용히 불렀다. 응상은 의아한 생각을 금치 못하며 주춤주춤 난로가로 다가섰다. 실험복을 벗어 옷걸이에 건 리덕구는 자못 심각한 기색을 지었다.

《내 응상군한테 벌써 전부터 묻고싶었는데 군은 앞으로 우리 중학을 마치고는 무엇을 하려오?》

《글쎄요.》

응상은 선뜻 입을 열수 없었다. 전도문제에 대해서는 그 역시 존경하는 리덕구와 벌써 전부터 의논하고싶었다. 그 또한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게 될 이 문제에 대해서 한두번만 생각한것이 아니였던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답을 하자니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그는 나직하나 또박또박 힘주어 대답했다.

《저는 앞으로 유전학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유전학을?》

《예. 》

《군은 자기가 헌신하려고 하는 과학이 어떤것인지 알고있는가?》

《알고있습니다.》

응상은 맺고끊듯이 응대했다.

《무엇을 말인가?》

리덕구는 엄엄한 기색으로 물었다. 응상은 놀라움에 차서 스승을 보았다. 누구보다도 그의 재능을 아끼고 귀중히 여겨주는 스승에게서 이런 랭철한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그러나 리덕구는 여전히 굳어진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으며 재촉했다.

《자네가 유전학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를 아는가 말일세.》

응상은 의혹에 찬 눈길을 리덕구에게서 뗄수 없었다. 이때까지 그가 알고있던 스승의 모습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랭정한 다른 인간으로 급변한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그의 결심이 굳건한가를 엄하게 따지고드는것이였다.

언젠가 리덕구는 학생들에게 생의 목표를 찾은 사람은 그의 생에 있어서 신대륙의 발견과 같이 거대한 사변을 맞이한것이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었다. 한데 그가 너무도 헐하게 한생토록 걸어갈 길에 대하여 말하는것이 못미더워 그러는것인가.

응상은 그동안 외국문헌들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인류발생이래 유전학이 걸어온 장구한 로정을 무거운 성돌을 옮겨놓듯이 힘주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인간은 기원전 6천년전부터 인공적으로 식물의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나무중에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있다는것을 가려보고 암나무꽃에 수나무의 꽃가루 묻혀주기를 사람의 손으로 하였던것이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의 비밀을 밝혀낸 다음에 생물체의 본성을 인간의 의지로 좌우한 이 첫 사실은 인간의 생활과 함께 과학의 씨앗도 심어지기 시작했다는 뚜렷한 증거로 되는것이다.

태고의 원시인들은 개를 서로 교잡하여 잡종을 만들었으며 고대의 철학가 플라톤은 아포로지에 말과 나귀의 잡종 노새에 대하여 기록하고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두말할것없이 유전학으로써 취급할수 있는 정도의 학문적인 내용을 가진것이 아니였다. 생물들에 대한 연구가 학문적인 체계를 가지고 취급하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즉 18세기에 들어서서부터이다.

18세기 중엽 로씨야의 뻬쩨르부르그과학원에서 내놓은 현상론문 《식물의 성에 대하여》에 스웨리예의 린네가 응모하여 상을 받았는데 그는 당시 이 부문 학계에서 큰 론제로 되고있던 식물에 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상세히 연구하고 식물에 성이 있다는 확고한 결론을 내리였다.

세계에서 처음 학문으로써 유전학적으로 교잡실험을 한것은 켈로이터이다. 그때 벌써 그는 잡종강세현상이 있다는것을 밝혔다.

18세기는 려행가 콜롬부스나 마젤란과 같은 대담한 사람들을 낳았으며 뛰여난 수집가, 분류가들을 낳은 세기였다. 가난한 신부였으며 자습가의 아들인 린네는 계통학의 뛰여난 재능을 지닌 정력가로서 누구의 방조도 없이 동물, 식물, 광물들을 분류하였으며 특히 식물은 과, 강, 속, 종으로 갈라놓았다.

이러한 관찰시기는 생물학발전력사에서 필요불가결한 단계였다. 미지의 생물세계를 깊이 탐구하기 전에 그것을 추적하고 연구하고 분류하여야 하였는바 이 거창한 위업은 린네와 같은 수많은 뛰여난 천재들의 완강한 노력에 의하여 이룩되였다.

과학의 력사는 인류를 경탄시킨 세기의 기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막우에 꽃이 피여나듯이 전례없는 발견으로 나타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유전의 법칙 또한 세상에 태여나기 전에 그것을 도출할수 있는 자료들은 생물학에 대한 생생한 관심을 가진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하여 서서히 축적되고있었다.

18세기 중엽에 산 나이트는 100여년이 지나 멘델이 유전의 비밀고를 여는 열쇠로 삼은 그런 완두를 가지고 교잡실험을 진행하여 서로 다른 완두를 교잡하면 우량계통이 나온다는것과 잡종강세현상이 있다는것을 밝혔다. 이것은 멘델의 그 유명한 완두교잡실험결과와 같은것이였다.

곳쓰도 19세기 초엽에 완두를 가지고 교잡실험을 진행하여 멘델이 본것과 꼭같은것을 관찰하였다. 그러나 나이트나 곳쓰는 멘델보다 수십년 또는 100년이나 앞서 완두를 가지고 교잡실험을 진행했지만 단지 결과만 얻었을뿐 수적으로 분석하고 법칙을 도출하지는 못하였다.

1830년 네데를란드의 하렘과학원에서는 식물들을 인공수정하여 새로운 종이나 변종을 실험적으로 만들수 있는가, 또는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유용한 식물이나 관상식물을 만들수 있는가라는 현상론문을 거액의 상금을 걸고 모집하였다. 빠리과학원, 영국왕립과학협회, 뻬쩨르부르그과학원들에서는 앞을 다투어 생물과학실험론문들을 발표했고 전문적으로 생물을 과학실험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수는 벌써 수천을 헤아리였다.

이처럼 생물과학에 대한 연구의 열의가 비상히 높아지고있는 가운데 후날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하여 멘델의 대리석상이 건립된 체스꼬의 부르노에서 수도원의 목사였던 그레고리 요한 멘델이 여가를 리용하여 터밭에서 완두를 가지고 8년나마 흥미있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그는 225회의 인공수정을 진행하여 1만수천종의 잡종을 얻어냈으며 유전의 기본법칙들을 밝히고 이러한 흥미있는 연구결과에 대하여 1865년 《식물잡종의 연구》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으나 그 당시에는 누구 하나 관심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단 한사람, 도이췰란드의 식물학자 네겔리가 상술한 책을 읽고 멘델한테 편지를 보내여왔는데 그마저도 멘델의 론문은 불충분한것이 많으며 더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랭담하게 평가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나 폭케라는 사람이 자기의 론문가운데 멘델의 론문을 간단히 인용한 외에 그 누구도 멘델의 론문에 대하여 주의를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멘델의 론문을 접수한 영국왕립과학원에서도 그것이 가지는 중대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근 35년동안이나 금고안에 묵여두고있었다.

멘델은 실망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는 수도원에 있으면서 부근의 공업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식물학정교원이 되려고 몇번이나 국가시험을 쳤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하지만 멘델은 자기의 발견이 만사람의 인정을 받으리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입버릇처럼 《나도 이제 때가 올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 그는 때가 오는것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신장병으로 신고하다가 62살에 사망하고말았다.

만약 그때 식물학정교원시험에서 멘델에게 불합격을 준 시험관이 장수하여 1910년 부르노시에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찾아와 멘델이 세계생물학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여 대리석상을 제막하는것을 볼수 있었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하였겠는가. …

유전학연구에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게 된것은 20세기가 시작된 첫해에 각이한 나라의 세 과학자에 의하여 거의 동시에 멘델의 법칙이 발견되고 그것이 현대생물학의 기적의 열쇠로 될수 있다는것이 알려진 때로부터였다. 1907년 생물학자 모르간이 초파리에서 유전자의 본체인 염색체를 발견한것은 물리학에서 원자의 구조를 밝힌것이상으로 생물체의 본질을 밝히는데서 큰 의의를 가졌다.

유전학자들은 자기들의 손안에 들어온 유전의 실체를 검질기게 거머쥐고 1대잡종의 생물들을 육종하는 길에 들어섰으며 인공적으로 유전인자들을 변화시키는 돌연변이를 시도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이 부문에서 첨단을 걷는 과학자들은 유전학을 파고드는 여기에 생물학의 미래가 있다는것을 확신하고 연구사업에 박차를 가하고있었다. 아직은 어느 문헌에도 인간이 바라는 새로운 생물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발표한것은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문헌들을 보는 과정에 그것은 먼 장래의 일이 아니며 미구하여 례사로운 일로 되리라는것을 강하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세계생물학은 위대한 변혁의 문어구에 서있는듯싶었다.

각국의 생물학자들의 연구업적을 더듬어볼수록 응상은 초조한 심정을 누를길이 없었다. 유전학을 학문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켈로이터때는 그만두고라도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시기부터 헤아려도 그들과 우리사이에는 근 반세기라는 거리가 놓여있는것이다.

《때가 좀 늦긴 했지만 저는 이제라도 부지런히 길을 재촉해서 그들을 따라잡으렵니다. 결심하고 달라붙기만 하면 꼭 해낼것 같습니다.》

응상이 말을 마치자 리덕구는 《흠.》하고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제자의 젊은이다운 열정에 탄복하여마지 않았다. 그가 수업후에 틈만 있으면 도서관으로 달려간것이 헛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가 과연 남들이 수세기동안 이룩한 과학적업적을 외토리로 떠나가지고 자기 당대에 달성할수 있겠는가. 현재의 형편 같아서는 응상이같이 자연과학에 일생을 바쳐보겠다는 젊은이도 흔치 않다. 얼마전에 총독부 학무국에서 내려온 일본관리는 이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망조사를 하였다. 한데 그들의 태반이 어학이나 법학, 의학, 예술을 지망하고 자연과학을 하겠다는 학생은 불과 30프로미만에 불과했다. 이러한 자료를 손에 쥔 일본관리는 자라나는 반도의 젊은 층들을 거머쥐는것은 시간문제라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지 않는가. 어학이나 법학, 예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인것이므로 일제의 관권앞에 복종하지 않을수 없는 그런것으로 되고말것이라고 여겨버렸던것이다.

리덕구는 련민의 정이 어린 측은한 눈매로 응상을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군이 일단 그 길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남의 뒤꽁무니나 따라가다가 말자고 하는 일이 아니겠지?》

《물론이지요.》

《그렇단 말이네. 한데 지금 발전된 나라들에 현대적으로 꾸려진 유전학연구소들을 누가 뒤받침해주는지 아나?》

《…》

리덕구는 갈린 목소리로 계속했다.

《수천만딸라의 자본을 가진 자본가들이 그들의 연구성과를 획득하기 위해 황금을 쏟아붓고있네. 하지만 군은 오늘 낮에도 단돈 10전이 없어서 눅거리우동 한그릇 사먹지 못하고 빈 창자를 움켜쥐고 실험실에 앉아있지 않았나.

배고프고 헐벗는건 초인간적인 의지로 이겨낸다고 하세, 사실 그것이야말로 타협할수 없는것이지만. 그러나 군과 같은 인재를 전국 방방곡곡에서 낱낱이 찾아내여 선진과학지식을 섭취하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만은 잠시도 지체할수 없는 일일세.

그런데 그걸 누가 해주겠나. 우리 오성중학같은것이? 천만에, 이런것만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네. 하지만 이런 중학이라도 도처에 세워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제들도 마음껏 공부하도록 한다면 얼마나 큰힘이 되겠나.

자네같은 사람은 외국에 류학을 보내여 단기간내에 발전된 과학과 기술을 배워가지고 오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누가 뒤받침해주겠나. 제 나라가 있다면 몰라도 망국노의 십자가를 등에 진 가련한 신세에 어떻게 그런 곳에 가볼 꿈을 꾸겠나, 응?》

응상은 깊이 숙였던 머리를 천천히 들고 지지리 타드는 가슴을 바이 어쩌지 못하며 반문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울며불며 최후가 오기를 기다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우국지사처럼 열변들만 토하지 말고 저마다 필요한 일을 한가지씩이라도 해야 할게 아닙니까.》

불을 토하듯 부르짖던 그는 불현듯 뭉클해오는 가슴을 부여안은채 석상처럼 굳어져버렸다. 스승의 커다란 두눈에 눈물이 찰랑찰랑 고여있는것을 띠여보았던것이다. 그것은 금시 상혈진 눈가장자리를 넘어 칼칼한 볼편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는것이였다.

《용서하게.》

응상의 두손을 덥석 부여잡는 스승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그는 도저히 로파심을 집어던질수가 없었다. 기대가 클수록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을 어떻게 눅잦혔으면 좋을지 몰랐다.

여러해전이긴 하지만 그 역시 응상이와 같은 팽배한 포부와 희망에 넘쳐 유전학에 발을 들여놓았던 젊은이였다. 그는 어느모로 보나 학문을 연구하는데서도 응상이보다 비할바없이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었다. 한데 어찌하여 그는 일개 사립중학의 교원의 직책에 머무르고 말았는가.

그는 응상과 같은 굳은 결심을 지닌 젊은이가 나타난것이 진정 기뻤다. 그만은 자기와 같은 패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가 응상에게 한 말은 그에게보다 패배감에 싸여 주저앉고만 자신의 지난날에 퍼붓는 부르짖음이였다는것을 어찌 알수 있으랴.

응상은 스승의 가슴속에 서려있는 이러한 깊은 사연을 알리 없었지만 그가 심혼을 기울여 붙안고 몸부림치는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후덥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난로불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더 넣을 장작도 없었고 이제 몇가치 넣어야 다시 피여나기도 글렀다. 두사람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무거운 기분을 털어버리지 못한채 묵묵히 밖으로 나섰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