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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2 장


3


첫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섣달중순경 어느날이였다. 정주역에서 낮경에 경의선 완행렬차를 탄 계시경은 이튿날 정오가 채 되기도 전에 서울역에 내리였다. 창술이 촌늙은이의 서울려행을 도와준다고 친절하게 종이장에 그려준 략도가 염낭에 들어있었으나 손님들의 물결에 떠밀리워 역구내를 나선 시경은 어벙벙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를 종잡기 어려웠다.

얼씬얼씬 쉼없이 눈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에 얼이 나간 시경은 괴나리보짐을 등에 지고 한옆에 비켜서있다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을 부르는 마차군에게 정주고을 네거리쯤 생각하고 수창동 16번지를 찾아가자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허술히 물었다.

병아리 채가려는 독수리처럼 손님사냥에 눈알이 핑핑 돌아가던 마차군은 이건 또 웬떡이냐는듯이 히쭉 웃고는 《예- 수창동이야 제가 손금처럼 환히 꿰뚫고있지요. 어서 마차에 오르시지요. 잠간사이에 데려다드릴테니까요.》라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씨는 또 얼마나 정이 뚝뚝 흐르고 간살스러운것이였으랴.

시경은 서울에도 인심좋은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마차를 세워놓은 역전마당으로 주춤주춤 다가서는데 웬걸 머리를 빡빡 깎고 따깨모자를 삐딱하니 쓴 그 친절한 마차군은 삯을 먼저 내라고 손을 내미는것이였다.

촌늙은이의 초라한 형색을 재삼 깐깐히 뜯어본 마차군은 이런 촌바우손님한테는 미리 돈을 옭아내야 랑패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것도 자그만치 50전을 내라는것이였다.

시경은 너무도 억이 막혀 마차군을 뻔히 쳐다보았다. 50전이면 좁쌀 반말값이다. 수창동이 아무리 멀기로서니 서울장안바닥이 아니겠는가.

한데 그곳까지 빈몸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얼른 잠간 태워다주고 막벌이군 하루품삯을 옭아내려고 하니 촌사람의 눈으로 볼 때 이것만 보아도 서울이란데는 산 사람 생눈알 뽑아갈 곳이 분명하다고 보았다.

그래도 촌에서는 아직 장거리에 다녀오다가 발탈나면 지나가는 달구지군에게 부탁하여 십리건 이십리건 돈 한푼 물지 않고 가는데까지 타고갈수가 있다.

계시경은 머리를 휘휘 젓고 혀를 차면서 물러섰다. 마차군은 제꺽 낮추 붙으면서 삯을 30전을 내면 집앞까지 데려다주겠노라고 했다. 시경은 말도 하기 싫다는듯이 팔을 내젓고는 덮어놓고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밀려가는 번화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벌이를 하는셈치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수창동을 걸어서 찾아가자고 마음먹은것이다.

그는 로자를 한푼이라도 아껴쓰려고 집에서 미시가루를 한되박 해가지고 오다가 끼때가 되면 한웅큼씩 먹고는 랭수 한사발을 먹는것으로 굼때군 했다.

시경은 고의저고리안섶에 꿰맨 돈이 제대로 있는가를 손으로 어루만져보고는 빳빳한 종이돈을 감촉하고야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잠시라도 방심하고있다가는 몇푼 안되는 려비마저 털리여 객지에서 막심한 고생을 하기가 여반장일것 같은 위구를 느꼈던것이다.

그는 저녁해가 산너머로 뉘엿뉘엿 사라질무렵에야 수창동막바지에 자리잡고있는 돌기와집에 이르렀다. 정작 둘째가 들고있다는 하숙집에 당도하고보니 그가 마음속으로 그려본 사치한 양옥집도 아니요, 덩실한 기와집도 아닌 수수한 ㄱ자형돌기와집이였다.

심부름군처녀가 계시경을 맞아주었다. 그는 시경이 응상을 찾아왔다는것을 알자 각별히 친절하게 굴었다.

《먼길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어요. 어서 올라가셔요. 집의 아드님은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심부름군처녀는 앞장서서 뒤뜰로 돌아가는것이였다. 처녀는 몸채뒤에 붙어있는 사다리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응상씨의 방은 저 2층 끝방이예요. 이 집 뜨락청소며 겨울눈치기를 해주기로 하고 든 방이지요.》

처녀는 재빠른 걸음으로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것이였다. 시경은 란간을 두손으로 잡고 찌걱이는 계단을 밟으며 조심스레 따라섰다. 이마를 낮추고 컴컴한 다락방에 들어서자 뙤창으로 희미한 빛이 흘러들었다.

《이 방이예요. 조금만 앉아계셔요.》

나는듯이 아래로 내려간 처녀는 불을 담은 질화로를 올려다주고 담배통과 대통까지 놓아주는것이였다. 시경은 조용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2층처마밑에 자리잡고있는 이 방은 방이라고 하기보다 흔히 함실이라고 부르는 고미다락이였다.

눈에 띄는것은 문곁에 놓인 자그마한 남비와 풍로, 낡은 지함에 담아놓은 숯덩이들이였다. 그옆에 쌀자루 같은것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비틀어놓은 아구리를 풀어헤치고 자루안을 들여다보니 노르끼레한 매좁쌀이 반자루가량 들어있었다. 창밑에는 손때묻은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는데 그우에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고맙게도 심부름드는 애된 처녀가 뜨거운 물을 담은 쇠통까지 올려다주었다.

《이걸 솜두루마기밑에 넣고 발을 녹이셔요.》

《우리 애가 이걸루 몸을 덥히며 자는 모양이구만.》

《예, 지난 겨울에두 이 물통 하나 가지구 겨울을 났는걸요. 그래두 자기 전엔 꼭 운동을 한답니다.》

심부름군처녀 오녀는 창턱에 걸어놓은 베천을 눈으로 가리켰다. 계시경은 컴컴한 낯으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굴이 동그스레하고 눈이 큰 그 처녀는 궁금해서 묻는대로 응상이 사립오성중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된 사연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당시 서울장안에는 중학교가 여라문개쯤 있었다. 그러나 대개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학교인데다가 월사금이 여간만 비싸지 않았다. 사립오성중학은 한달에 월사금이 4원정도로서 적은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데 비해서는 퍽 나은편이였다. 또한 학과목도 서당을 다니다가 신학문을 배우는 학교로 단꺼번에 넘어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알맞춤히 정해져있고 교직원들도 모두 조선사람들로서 비교적 민족정신이 강한 학교라고 한다.

누구의 연줄을 타고 응상이 서울에 올라오자 오성중학교입학시험을 치르자고 했댔는지는 알수 없었다. 같이 올라온 정주고을의 풋내기친구와는 서울역전에서 헤여졌다. 품속에 지니고 온 려비가 다른 그들은 서로 옹색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던것이다.

응상은 우선 안국동에 자리잡고있는 한 하숙집을 찾아갔다. 서울바닥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객사한 친우가 거처하고있던 하숙집주인네 딸 최미애란 처녀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주인집로친을 만나본 응상은 실망하여 돌아서고말았다. 그 집 딸은 좋은 혼처자리를 만나 며칠전에 시집을 갔다는것이였다. 더구나 그 로친은 응상이 정주에서 고학하러 올라온 젊은이란 말을 듣자 몸서리를 치면서 들여놓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 집 주인로친이 싸리비로 힘겹게 마당을 쓸어내고있는데 웬 젊은이가 나타나 《어디 편치 않으신 모양이군요. 제가 좀 쓸어드리지요.》라고 하면서 앞마당뿐아니라 뒤뜰까지 말끔히 쓸어놓았다. 젊은이의 거동을 유심히 눈여겨보고있던 주인로친이 넌지시 물었다.

《자넨 무엇하는 사람인가?》

《시골에서 공부하러 온 젊은이입니다.》

《하숙은 정했나?》

로친은 어느모로 보나 사람이 참해보여 물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왜?》

《주인집어머니!》

젊은이는 문득 두눈에 간절한 빛을 띠우고 청했다.

《댁의 고미다락을 저한테 좀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공짜루 말인가?》

《예, 저는 집이 가난하여 한푼의 돈도 몸에 지니지 못하고 서울에 올라온 사람입니다. 그대신 제가 매일 댁의 장작을 패드리고 뜨락도 깨끗이 거두어드리겠습니다.》

《흥, 염체 좋은 젊은이구만.》

주인로친은 빈정거렸지만 젊은이의 정상이 하도 가긍하고 사람도 괜찮아보여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되여 우연히 고미다락일망정 몸담을 거처를 정한 응상은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짐을 풀어놓았다.

며칠후 그는 시험을 친다면서 아침밥을 해먹었는지 말았는지 하고는 학교로 갔다. 남들은 중학시험을 치른다고 새 양복을 해입힌 자식을 앞세우고 별식을 한임씩 해이고 학교로 가고 돈많은 유지들은 학교에 거액의 희사금까지 내는데 응상은 촌에서 입고 올라온 무명바지저고리에 조끼입고 왕얽이짚신신고 먹통에 붓 한자루를 들고 중학교로 갔다.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정성스레 집오래청소를 하고있었다.

《오늘은 그만두게나. 그래 시험은 잘 쳤나?》

주인로친이 말을 걸었다.

《그저 그렇게 쳤지요.》

《한데 왜 그렇게 기운이 없이 대답하나, 자신이 없나?》

《방이 나붙는 날 가봐야 알게 되겠지요.》

《그야 그럴테지.》

이튿날 아침 응상은 신문사송달계에 찾아간다고 일찌감치 집을 나갔다가 저물녘에 풀이 죽어서 돌아왔다. 송달계원은 신문배달을 해보겠다고 찾아간 응상을 깔끔한 눈초리로 훑어보더니 자전거를 탈줄 아는가고 물었다. 고지식한 응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그는 자전거를 탈줄 알기는 고사하고 만져보지도 못했다.

하자 송달계원은 두말하지 않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응상은 끈덕지게 눌러앉아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대신 신문을 100부가량이라도 배달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고학생이면 그 누구나 이른아침 200~300부의 신문을 배달하는것이 조기운동처럼 례사로운 일로 되고있는데 그에게는 이런 간단한 행운마저도 차례지지 않았다.

일거리를 찾아 종일 거리에 나가있던 그는 10전짜리 막국수 한그릇도 사먹지 못한듯 랭수 한사발을 들이키고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것이였다.

2월 하순 아직도 바깥날씨는 겨울이나 다름없이 맵짰다. 이런 날 고미다락에서 빈속으로 어떻게 한밤을 새운단 말인가.

딱한 그 정상을 련민의 정을 품고 바라보던 오녀는 저녁설겆이를 마치고나자 주인집에서 먹다남은 찬밥 한술을 올려다주었다.

오녀는 일요일 아침마다 경마장에 나가 경마관리인을 만나보라고 일러주었다. 주인로친네 당오래비가 경마를 차려놓았는데 언젠가 그가 집에 와서 이야기판을 펴는걸 들으니 경마장의 야외 말전시장에서 말관리할 사람을 그시그시 채용해쓴다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안면은 물론 신통한 변통수도 없는 응상은 오녀가 일러주는대로 일요일 아침에 경마장으로 찾아갔다. 해질녘에 응상은 희색이 만면하여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일요일마다 경마장에서 말관리하는 일을 맡아보기로 약정이 됐다는것이였다.

경마장 말관리란 번호순으로 말뚝에 매여논 말 여덟마리를 서로 싸우지 않게 돌보는 일이였다. 마침 그가 관리하는 말중에서 3마리가 경마에 나갔는데 그중 제주도말 3호를 끌고나갔던 신사가 우승을 하여 기분좋은김에 팁으로 1원을 주었다. 뜻밖에 횡재를 한 응상은 삯전 50전과 공짜로 생긴 1원까지 합치면 한주일을 먹고지낼수가 있었다.

중학시험결과를 발표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였다. 응상은 오녀에게 저자보러 가는 길에 오성중학에 들려 마당의 게시판에 내다붙인 방을 보아달라고 당부하였다. 처녀는 선뜻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촌구석에서 난생처음 서울 올라와 시험을 친 가난한 젊은이의 《과거시험》결과가 흥미있기도 했거니와 마침 그 중학교는 저자보러 가는 길옆에 자리잡고있었던것이다.

바구니를 옆에 끼고 장거리로 총총히 걸어가던 오녀는 중학교앞을 지나다가 불현듯 걸음을 멈추었다. 인력거를 탄 명주바지저고리, 마차를 타고온 양복쟁이, 가마를 탄 녀인들이 앞을 다투어 학교마당으로 밀려들어가는것이였다.

오녀는 조춤조춤 학교마당으로 들어갔다. 방이 나붙은 게시판앞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있었다. 벌써 락제국을 먹었는지 비죽비죽 우는 애도 있고 말안장에 앉아 하인을 시켜 방을 보게 하고는 합격이라고 알리자 오구구 모여든 아이들에게 짤락돈을 줌으로 뿌려주는 두상태기도 있었다.

중학교 서무계원인듯 한 안경낀 사나이가 붓으로 쓴 참지를 들고나와 게시판에 나붙은 방을 목청돋구어 불러주고있었다.

《자, 그럼 합격자를 시험성적순위로 불러드리겠습니다. 1석에 김왕규, 왕규군의 조부께서는 이번에 무려 천여원의 거금을 우리 학교에 희사하셨습니다.》

투덕투덕 앞줄에서 박수치는 소리가 났다. 수군수군하는 말소리도 일었다. 왕규의 조부인즉 서울장안에서 손꼽히는 갑부로서 그의 외손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천치라고 수군거리며 개탄조로 한마디씩 하는것이였다.

《시험성적을 공정하게 한다는건 말뿐이지 돈만 내두르면 바보두 1석을 차지하니 어떻게 인재를 골라내겠소.》

《하는 꼬락서닐 보면 애손목 잡구 돌아가구싶지만 악페가 판을 치는 세월에 재능을 첫째루 꼽는 학교가 어디 있소. 울며 겨자먹기루…》

서무계원의 길게 뽑는 목소리는 계속되였다.

《2석 최치권, 치권군의 부친께서는 우리 학교의 진흥을 위해 이번에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보기 드문 서양현미경을 희사하시였습니다. 이 현미경은 지금 학감실에 보관되여있는데 앞으로 자연과목강의를 참관하시는 학부형들은 현대문명의 기적중의 하나인 이 현미경을 보시게 될겁니다.》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현미경이란 무엇하는거라오?》

《현대문명의 기적같은 기계라지 않소.》

《쳇, 신성한 학교가 거금희사요, 현미경이요 하는 돈과 물건짝에 롱락당하니 이거야 어디 됐소.》

《개차반이군!》

《세상이 그 꼴이니 학교라구 별천지겠소.》

격분을 참지 못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여보슈!》

걸걸한 목소리가 맨뒤에서 사람들의 머리우를 거쳐 앞대우에 올라선 안경쟁이한테로 날아갔다.

《거 시험치구 1석, 2석 할것 있소? 기부금 낸 순서나 주르르 발표하구려.》

야유가 너무 지나치다는듯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지만 속시원히 말 잘했다는듯이 어깨들을 들썩이며 껄껄 웃기도 했다. 서무계원은 소리친 사람을 넘겨다보려는듯이 코에 건 안경을 벗어쥐고 한동안 앞을 내다보다가 군기침을 몇번 하고 다시 안경을 낀 후 말아쥔 합격자명단을 멀찍이 들고 목청을 돋구었다.

《에- 3석에 계응상, 정주 산골에서 짚신신구 나타난 보기 드문 수재. 수험 전과목 100점 만점입니다.》

오녀는 귀가 번쩍 띄였다.

《실은 계응상이란 산골청년이 1석으로 합격했답네다. 우리 나라에두 숨은 인재들이 있긴 있거던요.》

학교내막을 아는듯싶은 중절모 쓴 양복쟁이가 여느 사람들도 다 들으라는듯이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마다 목을 빼들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사립오성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나타난 짚신쟁이수재를 어디 한번 보자는듯.

모인 사람들의 심리를 간파한듯 안경쟁이는 손에 든 두루말이에서 시선을 떼며 곱씹어 말했다.

《계응상군! 학부형이나 본인이 이 자리에 와있으면 대답해주시오.》

《예.》

아뿔싸, 그만에야 오녀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얼결에 제가 답변을 하고야말았다. 모여선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오녀한테 쏠리였다. 오녀는 모닥불을 들쓴듯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처녀요? 아니, 응상군은 남자요. 그런데?》

안경쟁이는 의아하여 물었다. 오녀는 귀뿌리가 빨개서 사정이 있어 본인이 오지 못하고 그가 든 하숙집 하녀인 자기가 대신 들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아 가까이에 서있던 사람밖에 듣지 못했다.

《뭐라구 했소?》

안경쟁이가 귀를 돌려댔다. 오녀곁에 서있던 중절모 쓴 양복쟁이가 처녀를 대신하여 큰소리로 전했다.

《이 처녀는 계응상군이 들고있는 하숙집 하녀랍니다. 응상군이 일요일엔 벌이를 하려구 경마장에 말보러 가기때문에 처녀가 대신 방이 나붙은걸 보아주러 들렸답니다.》

《허어… 그렇군.》, 《흠.》

무거운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오녀는 그 시각에도 자기가 중학에 첫째가는 성적으로 입학했다는것도 전혀 모르고 말똥을 쳐내며 변덕스러운 경마군들의 지청구를 듣고있을 응상을 생각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씹어삼켰다. …

《아버님.》

오녀는 목이 메였다.

《집의 아드님의 생활은 너무도 눈물겨워 차마 옆에서 지켜볼수가 없어요. 한주일에 한번씩 경마장에서 버는 돈푼이나 가지고는 학비도 되지 않아요. 등잔불 켜는데 쓸 석유 살 돈두 없어서 어떤 땐 뙤창으로 흘러드는 달빛에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기도 해요. 그래서 자전거를 배워 신문배달도 시작했어요. 처음엔 하루 200장씩 받아오다가 이제는 300장씩 받아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밥 먹기 전까지 신문을 집집에 배달하지 않으면 그날루 신문사송달계에 배달원을 갈아채우라구 전화가 날아가요. 어떤 때 보면 공부하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새우처럼 한두시간 눈을 붙이고는 송달계에서 내준 자전거를 끌구 새벽거리루 달려나간답니다.…》

주인로친네가 안방에서 《오녀야!-》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오녀는 《예-》하고 응대하며 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시경도 주인로친한테 인사를 하려고 따라내려갔다. … 얼마후 다시 다락방에 올라온 그는 암담한 생각에 잠겨 무릎을 두팔로 그러안은채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나는것 같아 펀뜻 깨여보니 어느덧 뙤창이 먹지를 붙인것 같이 깜깜했다. 밤이 퍼그나 깊어진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때까지도 응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계시경은 《후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밀려드는 졸음에 몸을 맡긴채 또다시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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