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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2 장


2


서당공부를 그만두고 정주고을에 나가 영업을 해보겠다고 돌아치는 양창술이는 한해사이에 촌티를 쭉 벗었다. 그는 상투를 뚝 잘라던지고 하이칼라머리를 넘긴데다가 까만 쎄루직으로 양복을 해입고 반짝거리는 소가죽구두까지 신었다. 응상이보다 두살 우이니 23살밖에 나지 않았으나 벌써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였다. 그런데 본처가 나이들고 살이 빠져 보기 싫다고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정주고을에 기생을 첩으로 두고 작은집까지 마련해놓고 산다는것이였다.

중절모에 봄가을외투까지 한손에 걸치고 읍으로 나가던 창술이는 길옆에서 조밭김을 매고있는 응관에게 《형님, 수고합니다.》하고 제법 틀지게 인사를 한다.

《아, 창술인가.》

응관은 밀짚벙거지를 흙묻은 손등으로 밀어올리며 마지못해 응대했다.

《내 래일아침차루 서울 좀 다녀오겠네.》

한성 다녀온다는 말을 마치나도 웃마을에 나들이 갔다오겠다고 하듯이 천연스럽게 지껄인다. 나는 이렇게 남 못 가는 서울도 이웃집 다녀오듯 척척 다닙니다, 형님은 아무래두 선산을 잘못쓴게 분명하외다, 철들기 전부터 밭고랑을 타고 땀동이를 흘리지만 그 모양, 그꼴이외다레, 거드름을 피우는 그의 자태는 이렇게 냄새를 피우는것 같았다.

《내 이웃에 사는 정의를 생각해서라두 이번에 서울 올라가면 꼭 응상이를 찾아보겠네.》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나. 고학을 한다니 어느 외진 골목에서 하숙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는 모양인데 궁금하기 그지없네.》

《고지식하구 변통수 없는 사람이니 하루 한끼 먹으면서두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을걸세. 뭣하러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지. 사람이 한세상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 원 참…》

가는 웃음을 치며 뇌까린 창술은 《자, 그럼.》하고 중절모를 약간 들어올리며 굽석해보이고는 팔자걸음으로 팔을 휘휘 저으며 산굽이를 에돌아가는것이였다.

계응관은 두눈을 쪼프리고 양창술이 사라진 산굽이를 생각에 잠겨 망연히 바라보았다. 창술이와 응관이는 한날에 태여난 동갑내기이다. 그러나 그 누가 그들을 동갑또래라고 하겠는가. 아무리 보더라도 응관은 창술이보다 10년은 더 늙어보인다.

창술이는 물곬의 골개논들을 소작주고 편안히 앉아먹고사는 부모덕에 이날이때까지 호미자루 한번 쥐여보지 않고도 호사스럽게 지내고있다.

창술이 응관을 형님이라고 하는것은 나이차이가 있기때문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창술이 철들기 전부터 응관이 어른들축에 끼워 일을 하며 먼저 숙성하고 나이도 지숙해보이기때문에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을수 없게 된것이다.

한골안에서 새빨간 피덩이로 함께 태여난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정해졌다. 응관은 어려서부터 그 무엇을 하든, 씨름을 하든, 글쓰기를 하든, 무릎싸움을 하든 창술이한테 져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 가세가 허락치 않아 서당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동생한테서 한자두자 배운 글귀도 창술이보다 몇배 더 많이 알고있다.

그러나 응관은 가랭이 달린 잠뱅이를 입을 때부터 코수염이 더부룩이 자라는 이날이때까지 뼈쏘게 일하지만 예나 다름없이 제 밥술을 겨우 벌어먹는 형편이다. 그러나 창술이는 일을 아나, 글귀를 터득한게 있나, 아는것이란 먹고 노는것밖에 없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응관이보다 몇배 더 풍청거리며 잘살고있다.

응관은 이날이때까지 창술이같은 인간은 장차 어떻게 벌어먹고 사나 하고 걱정했었다. 그러나 사정은 그와 반대로 창술이 그의 사는 꼴을 비난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러고보면 그의 운명은 그의 대에서부터 시작된것이 아니고 부모의 대에서부터 아니, 할아버지나 증조, 고조할아버지대에서부터 시작된것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대에 땅을 잃고 아버지대에 고향떠나 타향에 와서 사는탓에 그도 달리 될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러니 그의 집안은 어느 대에 가서나 허리를 펴고 살아볼것인가. 악에 받쳐 호미질을 하며 밭고랑을 타고 나가는 응관의 얼굴은 험상하게 이그러졌다.

서울에 올라갔던 양창술이는 보름만에야 집으로 내려왔다. 논판에서 삯김을 매다가 동네사람들한테서 창술이 온지 한 사날 된다는 말을 들은 계시경은 그 바람으로 서켠집에 찾아갔다.

창술은 사랑에서 낮잠을 자다가 내의바람으로 일어나서 시경을 맞았다.

《어서 들어오슈. 그러지 않아두 저녁곬에 찾아가려던 참이였수다. 내 서울 올라가서 응상일 만났댔어요.》

창술은 연방 잠내 풍기는 잔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우리 응상일 만났댔다구요?》

시경은 작은아들벌되는 젊은이가 하품을 짝짝하며 발을 쭉 뻗고 방자하게 노는 꼴이 보기 사나왔지만 아들소식을 알아왔다고 하는 바람에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내 서울장안의 중학교란 학교는 줄뒤짐을 했지요. 마침 일이 될 때라 아는 집 젊은일 통해서 응상이 수창동 언덕배기 돌기와집에 하숙을 하면서 사립오성중학교에 다닌다는걸 알아냈지요.》

노상 술먹은것처럼 벌건 낯에 볼살이 늘어진 창술이는 숱한 다리품을 놓은 끝에 응상이를 찾았다는 말을 빨래줄 늘여놓듯 하고나서 덧붙였다.

《응상이 신색이 말이 아닙데다. 한시바삐 데려오지 않으면 사람 배리겠습니다. 약한 몸에 정거장에 나가 짐을 부리면서 한겻씩 중학에 나가 공부하는데 하루 서너시간씩이나 자는지마는지 원. 해 긴 여름철에 아침저녁 두끼를 먹으니 사람꼴이 되겠습니까.

저녁이라두 한끼 사먹이자구 거리에 나가자구 하니까 시간이 없어서 나갈 짬이 없다구 피탈하면서 책만 들여다보더군요. 그래도 몇해만에 고향친구를 객지에서 만났으면 이야기두 나누구 거리구경두 시켜주는게 인사겠는데 그 무슨 책장을 씹어먹으며 두눈 감구 중얼중얼하는 모양이 반정신나간 사람 같드군요.

헤여질 때 내 일간 내려갈테니 집에 전할 말이 없는가구 물었더니 자기가 수창동 아무 번지에 산다는걸 절대루 집에 알리지 말아달라구 몇번이구 부탁합데다. 부탁할건 그것밖에 없다나요.

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네 절간의 중인가, 도리깨아들인가. 집에서는 젊은 안해와 누깔 새까만 새끼들이 자나깨나 기다리고있는데 밤낮 이러구만 있으면 어쩔셈인가〉구 들이댔더니 눈 꺽 감구 응답두 하지 않더군요.

가겠다구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배웅두 안해주구 문가에 서서 잘 가라며 한마디 하구는 돌아앉아 괴상한 꼬부랑말을 번집데다. 내참, 거리에 나서니 도깨비한테 홀렸다나온것 같기두 하구, 조였던 목이 풀려진것 같기두 한게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습데다. 난 그렇게는 숨이 컥 막혀 단 하루도 못살겠드군요. 내 사실대루 말하는데 응상일 그대루 놔뒀다간 진짜루 정신이 돌겠습데다.》

계시경은 기가 막혀 두눈만 껌벅거렸다. 의지가지없이 도회지에 나가있는 아들걱정으로 엷어진 그의 가슴은 총나간다 활나간다 하고 탕탕 내지르는 창술의 말에 여지없이 찢기였다. 마음이 황급해진 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거 우리 애가 입긴 뭘 입었습데까? 하숙방에 덮개같은게 있는지.》

《집에서 보내주지 않았는데 있긴 무에 있겠나요. 몸에는 먹물들인 무명양복을 걸치구있는데 벽에는 집에서 입구 다니던 쇠코잠뱅이랑 고의적삼이 걸려있구 방구석엔 때가 다닥다닥한 당목두루마기를 개여놓은걸 보니 오동지섣달에두 그걸 덮구 자는 모양입디다. 한마디루 사람사는 꼴이 아니더군요. 내 돌아오면서 응상군을 만났던 일을 돌이켜보구 몸서리를 쳤수다. 원, 태를 끊은 고향에서 엉뎅이를 붙이구 서당훈장질을 하면 천자 뗐다구 떡해다 대접해, 소학을 마쳤다구 모셔다가 청주를 권해줘, 돈푼이나 모아가지구 가서 공부를 하면 어때서…》

창술의 수다스런 말을 잠착히 앉아 끝까지 다 듣고난 계시경은 속이 한줌만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지 않아도 동리좌상들은 응상이 서당훈장을 그만두고 집을 나가자부터 공부를 지내 하더니 머리가 돈 모양이라고들 하면서 뒤소리들을 하고있었다. 허물없는 이웃들도 응상이행동을 하나하나 상기해보고는 도저히 리해할수 없다는듯 머리들을 끼웃거렸다.

집에 돌아온 시경은 창술이가 서울가서 웅상이를 만났던 전말을 들은대로 안해와 맏아들에게 이야기하고 곰방대에 호박잎써레기를 말아피우며 속이 아릿해서 중얼거렸다.

《고생해서 싸지. 부모말 안 듣구 제멋대루 나돌아가다간 별수 있나.》

하지만 속으로는 단 하루도 둘째를 생각지 않은 날이 없었다. 찬바람이 나오고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윤씨는 더 말할것 없고 계시경도 자주 산너머 먼 남쪽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것이였다. 밤새 북풍이 지동치듯 불어치고 들창문이 덜렁덜렁 하는 소리에 온밤을 뜬눈으로 새운 계시경은 조반을 먹고나자 집안식구들에게 속심을 터놓았다.

《아무래도 내가 서울에 올라가서 응상일 당장 데려와야겠다.》

윤씨는 더 말할것 없고 응관이며 며느리들도 경풍을 하도록 놀래여 시경을 쳐다보았다. 이날이때까지 기차를 타고 나들이를 다녀본적이 단 한번도 없는 그가 결단을 내려 서울까지 다녀오겠다고 할 때에는 응상이때문에 얼마나 남모르게 속을 태웠는가 하는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버님, 제가 다녀올테니 집에 계십시오.》

응관도 몸이 달아올라 성급하게 말했다.

《그만두어라. 내가 직접 다녀와야지 안되겠다. 아무러면 촌늙은이라구 서울 다녀오지 못한다는 법이야 있겠니?》

둘째 걱정으로 늘 잔근심이 많던 윤씨도 어리벙벙하여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의 처사가 숯쟁이네 집 가정형편으로는 너무도 엄청난 행동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왕복차비만 하여도 봄량식마련하겠다고 숯팔아 꽁져둔 돈을 말짱 들이밀어야 할 형편일뿐더러 정작 아들한테 찾아간다고 하면 빈손으로 갈수는 없는노릇이였다. 그간 아들이 신세진 집에 인사치레도 하고 내여와야 할것이다.

그러나 가세가 아무리 허락치 않는다고 해도 서울에 올라가 아들을 데려와야만 제때에 둘째를 구원하리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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