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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1 장


3


발씨 익은 길이건만 응상은 낯선 길을 걷는듯 허둥지둥 아래마을로 걷고있었다. 그는 자기가 리성을 잃을 정도로 격동되고 흥분했다는것을 뒤늦게야 감득했다. 그는 방금 그리도 오래동안 몸에 젖어있었던 서당시절과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한것이였다.

그는 길섶의 새풀무더기에 털썩 주저앉아 서당방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불빛을 하염없이 내려다보았다. 어둠속에 잠길락말락 가물거리는 그 한점의 불빛은 그 무엇인가 애타는 마지막당부를 그에게 속삭이는듯 하였다. 그래도 저 집은 배움에 대한 그의 첫 갈망을 충족시켜준 한없이 소중한 처소가 아니였던가.

응상의 눈가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작정한지 오래인 리별이 이다지도 아프게 가슴에 파고드는것은 그가 뛰여들려고 하는 새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때문이였는지 모른다.

그의 집은 침침한 어둠속에 잠겨 숨마저 죽이고있는듯 하였다. 검둥개만이 달려나와 낑낑거리며 다리에 감겨돌았다. 사랑방으로 들어간 응상은 손으로 어루더듬어 자리에 누웠다.

일에 시달린 안해는 진아이를 옆에 끼고 업어가도 모를 지경으로 거친 숨을 내쉬며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응상은 배를 내놓고 자는 맏자식한테 포대기를 덮어주고 자리에 누웠다.

빈대가 따끔거리고 벼룩이 스멀거렸다. 응상은 몸을 뒤채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밤따라 마주앉으면 함께 집을 뛰쳐나가자고 두눈을 번뜩이며 이야기하던 경훈의 열띤 모습이 눈앞에 암암했다.

그라도 곁에 있었으면… 응상은 몸을 뒤채이며 신음하듯 한숨을 내쉬였다.

이튿날 아침이였다. 응상은 흙물이 벌겋게 배인 무명잠뱅이를 걸치고 집뒤 화중밭에 올라가 쇠스랑으로 두엄을 펴나갔다.

맏아들과 맞잡고 작두질을 하고 뜨락에 나선 계시경은 화중밭에서 수걱수걱 일을 하는 응상을 못마땅하게 올려다보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반상을 물리고날 때까지 둘째는 들어오지 않았다. 계시경은 부엌에서 시어머니시중을 드는 둘째며느리에게 일렀다.

《아애비보구 들어와 조반 먹으래라.》

그러나 응상은 안사람들이 설겆이를 끝낼 때까지도 화중밭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부친이 숯가마를 덮으려고 능아골로 올라간 다음에야 그는 집으로 내려왔다.

《왜 그러느냐.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느냐?》

윤씨는 개다리소반에 조반을 챙겨주며 각근히 물었지만 응상은 두눈을 슴벅거리며 중얼거렸다.

《일은 무슨 일이 있갔어요.》

《그런데 왜 나가라는 서당에는 나가지 않구 시무룩해서 그러느냐.》

《원참 어머니두, 집일 하는게 나빠요?》

《에구, 무슨 애가 독심을 품구 혼자 속을 쓰며 그러느냐, 살 내리겠구나.》

윤씨는 한숨을 내쉬였다. 아침밥을 뜨는둥마는둥하고 토방에 나앉아 정신이 들지 않는 하늘을 멍하니 노려보던 응상은 휭하니 집을 나섰다.

동네어른들이며 아버지의 눈에 얼씬거리고싶지 않아 슬며시 참대갈퀴를 들고 뒤산으로 올라갔다.

와락와락 솔가래기를 긁어 바지게에 듬뿍이 진 그는 아버지가 점심먹고 밭에 나갔으리라고 여겨질 때가 되여서야 집으로 내려왔다.

오후 곁두리때나 되였을무렵이였다. 누런 옷을 입은 우체부가 자전거를 타고 째릉째릉 신호종을 울리며 물곬로 잡아들었다. 마을어귀의 썩바위옆에서 자전거를 세운 우체부는 길옆에서 밭을 갈고있는 늙은이에게 길을 묻더니 훌쩍 안장우에 올라서서 발디디개를 재게 놀리며 동켠집으로 곧장 찾아오고있었다.

별안간 골안의 개떼가 자발스럽게 짖어댔다. 뒤밭에서 쇠스랑질을 하고있던 응상은 째릉째릉 신호를 울리며 자기 집으로 달려드는 자전거를 띠여보자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삼태기를 내려놓고 황급히 집으로 내려갔다. 그가 기억하건대 10여호가 들어앉은 물곬마을에 누런 옷을 입은 우체부가 찾아오기는 이번이 세번째이다.

첫번째는 세해전 이른봄 어느날, 마을어귀의 대추나무집 할아버지가 긴 봉투를 가지고 그에게 찾아온 일이였는데 응상도 이때 난생처음으로 편지라는것을 쥐여보았다.

조심스레 편지를 뜯어 참지에 한문과 국문을 섞어쓴 글을 읽어본 응상은 한동안 입을 열수가 없었다. 어느 무연탄광을 개발하는데 알선인부로 끌려갔던 대추나무집 둘째아들이 객사했다는 비보였던것이다.

두번째는 간해 봄 썩바위 뒤켠집에서 쑥떡을 해놓고 청하여 내려가보니 뻘건 띠를 두른 편지를 내놓으며 읽어달라는것이였다. 편지를 뜯어보니 군영림창에서 보내온 벌금고지서였다.

달포전에 앞쪽으로 수그러지는 집을 버티려고 산에 올라가 나무 한대를 찍다가 산림간수한테 들켰는데 그 자리에서 손도장을 찍으라고 하여 찍어놓은것이 5원짜리 벌금고지서가 되여 날아든것이였다.

단돈 15전이 없어서 고을에 장보러 나갔다가도 랭면 한그릇 사먹지 못하고 이십리길을 허위허위 돌아오는 집에서 그 큰돈을 어떻게 물어낸단 말인가? 썩바위집에서는 근심이 태산같아 땅이 꺼지게 한숨만 내쉬였다.

응상은 보기가 딱하여 오래간만에 대하는 그렇게도 좋아하는 쑥떡조차 입에 댈 마음이 없었다. 편지를 읽어줄 때마다 번번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되자 응상은 뉘집에서 또 편지를 읽어달라고 찾아올가봐 은근히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누런 양복쟁이가 그의 집에 찾아온단 말인가.

응상은 두근덕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고 집모퉁이에 멈칫하고 섰다가 마당으로 나섰다. 무뚝뚝한 우체부는 응상을 힐끗 쳐다보더니 옆구리에 멘 가죽가방을 열고 《서울서 온 서신이요.》하고 편지 한장을 던져주고는 자전거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달아나는것이였다.

응상은 시퍼런 일부인이 찍힌 누런 봉투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난생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최미애》라는 녀자로부터 서울 안국동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삼촌, 그거 뭐나?》

삽짝뒤에 숨어있던 통주의를 입은 조카애가 고추알을 흔들면서 조춤조춤 다가왔다. 응상은 잠뱅이자락을 잡아당기는 조카애를 돌아볼새없이 편지를 내리읽었다.

《저는 경훈씨의 마지막유언을…》

눈물로 얼룩진 편지의 구절구절을 읽어내려가는 응상의 가슴은 갑자기 미여지는듯 하였다. 애타게 기다리던 박경훈이 한강변에 대인 너벅선에서 짐을 부리우고 돌아오다가 어이없게도 널다리에서 발을 헛디디여 강물에 거꾸로 박혀 숨을 거두고말았다는것이였다. 모름지기 여러해동안 빈약한 식생활을 한탓으로 갑자기 빈혈이 왔던 모양이라고 한다. 최미애란 녀자는 경훈이 들었던 하숙집주인네 딸이였다. 그는 애절한 심정을 또박또박 편지에 담았다.

《응상씨, 저는 경훈씨를 남몰래 동정하고 사모해왔어요. 범처럼 무서운 아버지의 눈길이 두려워 그이와 따뜻한 이야기 한번 변변히 나누어본적이 없지만 소박하고 뜻이 깊은 그이를 진심으로 존경해왔어요. 그에게는 송금쪽지 같은건 말할것 없고 편지 한장 보내오는데가 없었어요.

언젠가 저는 경훈씨에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가고 물었어요. 그이는 낯을 붉히며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더군요. 헌데 후에 알고보니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도회지에 나가 고학을 한다고 그의 집에서는 경훈씨와의 혈연관계마저 단절했더군요. 하지만 마지막길을 간 그의 소식만은 전하지 않을수 없어 그이가 비명을 당하기 전에 응상씨에게 써놓은 편지와 함께 이 글을 보냅니다.…》

응상은 비분강개한 심정을 어떻게 삭일지 몰라하며 죽마고우가 유언처럼 그에게 남긴 편지를 읽어보았다.

《응상군, 나는 지금도 문득 보짐을 싸매고 락향하여 마을에 야학이라도 열고 위태로워진 우리모두의 장래에 대하여 고향의 벗들에게 매일밤 밤새워 이야기하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누를길이 없네.

지금 우리 사람들은 그믐밤중에 깊이 자고있는거나 다름없어. 밖에서 무엇이 들이닥치는지 알지도 못하고 삼강오륜의 구습만을 신주모시듯 하고있고 돈냥이나 있는 사람들은 제 배만 부르면 태평세월이니 이 얼마나 개탄할노릇인가.

촌에 묻혀살다가 도회지에 올라와보면 그 누구보다도 이런 감정을 날카롭게 느끼게 되네.

응상군, 젊었다고 해서 앞날이 많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일세. 생은 영원한게 아니란 말일세. 나는 지금 도무지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을 털어버릴수가 없네.

케케묵은 한학의 구렁텅이에서 한시바삐 헤여나오게. 자네같이 총명한 사람들이 새 학문 터득하기를 제 목숨 구하듯이 하고 분분초초를 아껴가며 문명한 과학을 제것으로 만들면 우리 나라의 자랑이 되고 저저마다 이렇게 한가지씩만 기발처럼 추켜들고나간다면 결코 우리는 망하지 않을걸세, 래일에 대한 희망을 품을수 있을거란 말일세.

그런데 자네같은 수재가 아직 생활의 목표도 없이 두메산골에서 썩고있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타서 견딜수가 없네. 이 편지를 받거든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이리로 달려오게. 더는 그런 숨막히는 분위기속에서 머무적거릴 때가 아니란 말이네. 이제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길을 떠나게.》

편지를 거머쥔 응상은 잠뱅이자락을 너펄거리며 웃마을로 씽씽 걸어갔다. 그는 눈물이 얼룩진 그 편지를 경훈이 아버지의 발부리에 내던지며 부르짖고싶었다.

자, 보시라요, 당신은 제 자식을 목졸라죽인 살인자예요. 하루 두끼 좁쌀밥을 먹고 두세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류혈적으로 학문을 파고든 제살붙이를 아끼고 떠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신학문바람이 나서 패가망신시킨다고 천대하여 이 지경이 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산림채벌허가를 받겠다고 산림간수며 순사들을 청해다가 음주대접을 하며 질탕치듯 놀아댄 그 돈만 아들에게 부쳐주었어도 자식을 잃지는 않았을거예요.

완고한 법도와 돈밖에 모르는 무지막지한 행동이 결국은 무슨 일을 저질렀습니까.

북받치는 울분을 걷잡지 못하며 경훈네 뜨락에 다달은 응상은 무뚝 걸음을 멈추었다.

(죽어 싸지, 싸. 부모말 안 듣구 집을 뛰쳐나간 불효막심한 놈은 그렇게 될수밖에 없어.)

그의 눈앞에는 울고불고하던 끝에 이런 넉두리를 짓씹어댈 주인내외의 모습이 너무도 방불히 떠올랐다. 그런 몸서리치는 지청구를 들어내기에는 응상은 너무도 다정다감한 젊은이였던것이다.

그는 때마침 깽깽이걸음을 치며 밖으로 나온 경훈이 동생에게 편지를 쥐여주고는 황황히 돌아섰다. 달갑지 않은 심리적고통이 두렵기도 했거니와 다지고있는 결심이 조금이라도 흔들릴가보아 념려돼서였다.

응상의 발길은 저도 모르게 수양버들 늘어선 내가로 옮겨졌다. 한때 경훈이와 함께 즐겨 거닐던 곳이였다. 그들은 풀벌레 씨르륵거리는 이 내가에서 서로의 기약할수 없는 불안한 장래를 두고 끝날줄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며 은하수가 기우는줄도 몰랐다.

《사람이란 현재보다 래일에 살아야 장래가 있다고 보네.》

그날 경훈은 날카로운 턱을 쳐들고 흥분하여 이렇게 말을 뗐다.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야 한단 말일세.》

응상은 자기의 친우가 무엇때문에 불쑥 이런 말을 꺼내는지 몰랐지만 론쟁조로 말을 붙였다.

《거야 삶의 욕망을 지닌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품을수 있는 생각이 아닌가.》

《흥, 누구나라구? 그래, 우리 생활에 밟아두 꿈틀거리지 않는 그런 무맥한 인간이 없단 말인가? 남한테 제집을 뺏기우고도 멀뚱해서 앉아있고 무참한 모욕을 당하고도 죽었소 하고 눈도 못 뜨는 버러지만도 못한자들이 말일세.

일생동안 바재이기만 하다가 고 모양, 고 꼴로 늙어죽는 똑똑바보도 없지 않네.…》

응상은 경훈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열찬 목소리로 부르짖는가 하는것을 짐작하고는 낯을 붉혔다. 함께 길을 떠나자고 설득시키다못해 끝내 응상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게 되자 이렇게까지 빗대고 말했던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경훈의 말이 지나친 모욕으로 느껴질만큼 접수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절절한 자기 일로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너무도 부족했었다.

발밑에서는 나보라는듯 거울같은 내물이 온갖 재롱을 피우며 조알조알 흘러내리고있었다. 허나 응상은 미간을 찌프리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먼 하늘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향촌의 내가에 더는 가지런히 앉을수 없는 벗의 모습을 그릴수록 그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더욱더 가슴에 사무쳐오는것이였다.

(여보게, 자네는 무엇이 두려워 아직도 그 자리에서 서성거리고있나?)

그는 해가 서산머리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도 번열에 타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며 내가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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