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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1 장


2


서당에서는 수학을 비롯하여 자연과학의 지리, 현대력사와 같은 과목을 배워주는것이 아니라 구학문이라고 일컬으는 소학, 대학, 론어, 맹자들을 가르쳤다.

서당훈장은 한때 서울의 어느 아문에서 일을 보면서 문객으로 있었던 쉰댓살쯤 난 선비였다. 매끈한 몸매에 이마는 반쯤 벗어지고 둥글납작한 해쓱한 얼굴에는 량반티가 자르르 흘렀다. 그러나 잔주름이 얽힌 눈언저리에는 지울길 없는 우울의 인이 깊이 새겨져있었다.

죽지부러진 새라 할가.

동네어른들이 조용히 주고받는 말을 들어보면 그는 세도문벌이던 민씨가문의 자손으로서 국록을 후히 받아먹으며 문집이나 내고 시나 읊으면서 세상경난을 모르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국권이 연기처럼 스러져버리자 그는 주인없는 구종의 신세가 되고말았다. 그렇다고 비분의 눈물을 뿌리며 칼을 보짐에 싸들고 초산아성에 들어가 류린석의 휘하에서 왜놈들과 싸워볼 용기도 없었고 《일진회》패거리들처럼 바람따라 돛을 달만큼 타락하지도 않았다.

하여 인생 60을 눈앞에 두고 초야에 묻힌 몸이 되여 서당훈장으로 잔명을 부지하는 가련한 서생이 되고말았다.

이날이때까지 몸종이 들여다주는 밥상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밥을 먹고 침모가 펴주는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깨여나서는 떠다주는 놋양푼의 더운물로 세면을 하고 입혀주는 옷을 입고 열어주는 문을 지나 견마잡이가 대령한 말을 타고 바깥출입을 하던 사람이라 몰락한 이때에도 필요하여 문을 열기는 하지마는 닫을줄을 몰랐고 정갱이를 거두고 건너야 할 내가에 이르러서도 누구이든 업어건네주기 전에는 어느때까지나 내뚝에 우두커니 서있는것이였다.

어느날 공부가 끝나자 서당훈장 김진사는 시름에 겨워 중얼거리는것이였다.

《우리 집 뒤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는데 어찌했으면 좋겠는지 모르겠구나.》

《그래요.》

응상은 나이든 학생들과 더불어 훈장네 집으로 찾아갔다. 방안에 들어가본 응상은 아연해졌다. 언땅이 풀리면서 뒤도랑이 내려앉아 담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질것 같았다. 이 지경이 되도록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은 훈장의 처사가 어이없기도 하였다.

《이제 담벽을 치고 산자를 엮어 흙질을 해야겠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자 김진사는 걱정에 싸여 중얼거렸다.

《그러면 일군은 어데서 구하며 산자는 어데서 가져온단 말인고.》

《걱정마십시오. 그건 우리가 다 할테니까요.》

학생들은 훈장을 서당으로 모셔다놓고 해지기 전에 뒤담벽을 털어내고 흙을 이겨 다시 발라놓았다. 훈장의 안해는 늦은목너머 먼 친척네 집에 갔다는데 날이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김진사는 빈방에 홀로 앉아 이웃집에서 차려다준 저녁상을 멀거니 내려다보며 한숨만 쉬고있다.

동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응상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스름속에 묻히는 훈장네 집은 괴자눅눅하였다. 창문은 눈을 감았고 굴뚝은 숨을 거두었다.

《이제 사모님이 돌아오지 않으믄 밤이 새도록 불이 켜지지 않을게야.》

《배고프지두 않을가?》

《좀 있으믄 거문고소리가 날테니 보라구.》

정말 얼마 안있어 무덤속같은 집에서 느리고 무거운 거문고의 음향이 탄식인양 울려나오는것이였다. 끊어질듯, 사라질듯 아득한 창공으로 자취도 없이 흩어지는 그 소리는 서서히 끈질기게, 둔하면서도 폭넓게 밀려오며 한없이 처량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것이였다.

《권문세가를 떨치던 가버린 시절을 애석해하는거야.》

누군가가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옛 추억이란 달콤한 법이니까.》

《하지만 추억을 먹고 살수는 없잖아.》

동무들은 스적스적 제집으로 흩어져갔다. 그들의 발걸음소리는 밤이슬이 축축히 내리는 달구지길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러구있니. 가자꾸나.》

서켠집 창술이가 시틋해서 재촉하는 소리이다.

《먼저 가.》

응상은 눈물이 그렁하여 젖어드는 거문고소리에 잠긴채 움쩍하지 않았다. 그는 김진사가 잃어버린 지난날의 생활이 어떤것인지 상상할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태평스럽고 호화롭고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운것이였음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었다. 망국은 지난날 하는 일없이 국록을 가장 많이 받아먹으며 질탕스레 살아온 무맥한 사람들에게 돌이킬수 없는 치명상을 입힌듯 하였다.

이른봄의 으스산한 새바람이 지꿎게 불어치는 날이였다. 두루마기를 여며입고 햇풀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뒤산으로 지척지척 걸음을 옮기는 김진사의 전신에서는 기운이 말짱 빠져달아난듯 하였다.

조막돌에 발끝이 채이기만 해도 푹석 꺼꾸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 같았다. 그렇게도 그는 온몸의 근육이 개개풀리여 그림자처럼 걷고있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묵은 새풀무데기에 기신없이 주저앉은 그는 잠겨드는 연약한 목소리로 웅얼거리였다.

《응상이, 자넨 뭣하러 한학을 배우나?》

《예?》

아연실색하여 김진사를 바라본 응상은 북받치는 련민의 정을 누를길이 없었다. 초점없는 어두운 눈매로 산너머 먼 창공을 바라보는 스승의 얼굴에는 형용하기 어려운 구슬픈 안개가 끼여있는듯 하였다.

작금년에 정주일경에는 신식소학교들이 련달아 서고 마을마다 야학이 생기는 반면에 서당은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김진사는 오불관언하고 한학만을 끈덕지게 붙들고있었다. 한데 이제 와서 보니 그 역시 세차게 밀려드는 개화의 물결앞에 무력하고 허약한 존재라는것을 여실히 드러내고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설사 그러할지라도 한학은 김진사가 일생동안 숭상해온 학문이요, 기력이 쇠진한 요새에도 매일같이 서당에 나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있는것이 아닌가.

《선생님은 왜 한학을 배우셨나요?》

당돌한 반문인줄 알면서도 응상은 묻지 않을수 없었다.

《나 말인가. 허허.》

김진사는 허거프게 웃고만다. 착잡한 심정을 달리 표현할수 없는것이 서거운 모양이였다. 그가 살던 한창시절에는 과거급제하고 음풍영월하는 량반만을 사람값으로 쳤으니 그도 남들이 하는대로 옛 법도를 따랐을뿐이였던것이다.

긴 한숨을 내쉰 그는 종작없이 중얼거리였다.

《사악한 섬나라 오랑캐의 무리들만 아니였더면 이 몸이 어찌 이렇게도 버림을 받을고, 천심도 무심코나.》

그의 무릎우에는 뼈만 남은 가는 손이 축 늘어져있었다. 응상은 못볼것을 본듯 슬며시 고개를 돌려버리였다. 느닷없이 김진사한테서 《소학》을 배울 때에 느꼈던 환희의 감정을 돌이켜보고는 우울해졌다.

이제는 그에게서 때없이 옛시절을 못 잊어하는 서글픈 넉두리를 듣는것이 가슴답답하기만 했다. 그에게서 보탬이 될만 한 지식뿐만아니라 힘이 될만 한 말을 더는 기대할수 없는것이 슬프기도 했다.

자기에 대한 제자의 이런 소홀한 태도를 감득한 김진사는 노염기도 없지 않으나 맥빠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런데 군은 어째서 한학에 매달리고있는고.》

응상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것은 김진사가 서당을 열고 학생들에게 한학만이 진서라고 가르치면서도 한학을 무엇때문에 배우느냐고 묻는 심정이나 다를바 없는것이였다.

응상이 보건대 김진사는 그 무슨 제나름의 일가견을 가지고 한학을 가르치는것이 아니였다. 그도 이제 아무리 정성스레 빌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게 한다 해도 옛시절이 다시 돌아올수 없다는것을 모를리 없었다.

다만 구복이 원쑤여서 팔자에 없는 이노릇을 하고있는것이였다. 하기에 그는 스스로도 개탄하여마지 않는 일에 어쩔수 없이 얽매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는것이였다.

마찬가지로 계응상에게 열려진 배움의 길도 이 길밖에 없었다. 철모르고 왱왱 《동몽선습》을 따로외우고 《론어》, 《맹자》를 익힐 땐 재미도 없지 않아 글공부란 그저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했으나 서당공부 12년에 한학을 무불통달했지만 허무맹랑하기 그지없었다. 옛사람들은 과거급제하고 벼슬길에 오르자고 유학을 습득하노라 애를 썼지만 시체세월엔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때로부터 달포가 지나 시름시름 앓던 김진사는 덜컥 자리에 눕고말았다. 갓쓰고 때묻은 두루마기를 입은 고을의 고려의가 찾아와 금, 목, 수, 화, 토 오행을 론하고 갑을병정 륙갑을 펴면서 넉두리를 치다가 독한 초약을 달여먹였으나 병나서 한삭을 채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고보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며 기신없이 걸어다니던 그때부터 그의 몸에는 뿌리깊은 병이 박혀있었던 모양이다.

김진사를 물곬 뒤산에 묻고나자 서당문은 자연히 닫기고말았다.

저녁해가 공심산뒤로 넘어갈무렵 뉘집에서인지 탁배기를 얻어먹고 거나해서 집에 돌아온 계시경은 집안식구들을 아래방으로 다 불러다놓고 낯이 희벗하여 말했다.

《둘째를 공부시킨 보람이 있구나. 오늘 아래웃동리어른들이 모여서 의논이 있었는데 아무래두 서당문을 닫아서는 안되겠다구 하는구나. 그런데 동네좌상어른이랑 모두들 응상이를 서당훈장으로 천거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냐. 내 대에 와서야 우리 가문에 론어맹자를 도통하고 동리대서를 도맡아보는 식자있는 선비가 나타났구나.》

계시경은 숯쟁이네 집에서 촌훈장이 나온것을 개천에서 룡난것만큼이나 기뻐하여마지 않았다.

《그럼 래일 당장 서켠집에 건너가 돈을 꾸어서라도 두루마기두 사구 명주바지저고리며 조끼두 지어야겠구나.》

응상의 어머니는 의관을 차려줄 걱정부터 했다.

《제가 시집올 때 명주 열댓자 가져온게 있잖나요. 그거라두 보태쓰자요.》

맏며느리가 곁에 앉은 남편(응상의 형) 응관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며시 비쳤다. 계시경은 염소수염을 쓰다듬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맏며느리뒤에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있던 응상의 처는 귀뿌리가 빨개서 어쩔바를 몰랐다.

그가 구습을 쫓아 나이 열여덟에 세살이나 아래인 응상이한테 시집을 온지도 네해가 되였다. 그새 그들사이에는 아들딸 오누이가 태여났고 맏아들애는 벌써 아장거리며 걸어다녔으나 여적 시할아버지, 시부모와 시형내외, 시누이들이 욱실욱실하는 집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오던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서당훈장의 사모님으로 불리우게 된다고 생각하니 몸둘바를 모르게 된것이리라.

물곬 동켠집 둘째 응상이 년소한 나이에 서당훈장으로 천거된것은 이 고장에서는 보기드문 일이였다. 그러나 외지에서 훈장을 초빙해올수 없는 형편에서 어릴적부터 신동이라고 불리운 응상일 내놓고 그 누구를 훈장으로 내세울수 있으랴. 이제는 아래웃동리에서 동켠집을 하대하여 숯쟁이네 집이라고 부르던 사람들도 더는 그렇게 처사하지 못할것이다.

이렇게 놓고볼 때 이날 저녁은 계시경의 집안이 물곬에 가마를 붙인 이후 처음으로 당한 큰 경사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응상은 난감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는 이미 구학문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한지 오랬다. 그가 십여년세월 배운 한학은 중국의 요순시대이래 천하를 다스리는 법과 《삼강오륜》을 비롯한 인륜도덕 등 세상만사에 능통하기 위한 진서라고 하지만 개명한 세상리치를 해득하는데는 너무나도 고루한 학문이라는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숯구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한생을 살아가기에는 깨여나기 시작한 지능이 너무나도 아까왔다.

이제라도 도회지에 나가 신학문을 파고들면 무엇인가 자기의 지혜를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참다운 일을 붙들것만 같았다.

한데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전도를 새롭게 개척해보려고 하는 그에게 서당훈장을 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 어드렇느냐. 그렇게 하지?》

계시경이 응상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좀 생각해보겠어요.》

그는 부모와 일가족들에게 실망을 던져줄가보아 적당히 응대해버렸다.

《생각은 무슨 생각이란 말이냐. 다른 궁린 말구 곧 동네어른들을 찾아뵙구 서당방두 잘 손질허두룩 해라. 김진사 부인이 자기네 사랑채를 그냥 서당방으루 쓰게 해달라는 소청이더구나.》

그러나 응상은 여전히 눈꼬리가 까부장하여 어둠이 내린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아래목 한쪽에 앉은 응상의 어머니 윤씨와 맏며느리는 무슨 말인가를 소곤소곤 주고받았다.

응상의 갸름한 얼굴에는 점점 더 허서분한 기색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듯 자세를 바로가졌다.

《아버님, 지금은 세월이 변했어요. 재너머 큰골에서두 아이들을 고을에 새로 생긴 신식학교에 보내지 않나요. 그런데 저만이…》

응상은 말끝을 흐리였다. 계시경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손우형 응관이 슬며시 동생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할말이 있어도 집안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이니 괜히 아버지한테 어거지쓸 생각을 말라는 암시였다.

차츰 검붉어지는 남편의 얼굴을 얼핏 쳐다본 윤씨는 재빨리 부자간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여보! 19살에 서당훈장이라니 놀라지 않겠수. 좀 생각할 겨를을 주시구려. 그리구 응상아.》

윤씨는 사공 배머리 돌리듯 제꺽 아들한테로 말을 돌리였다.

《너두 그렇지. 동네어른들이 모여서 작정한 일인데 어련하겠니.》

부자간에 성미가 꼭같이 불같아서 불꽃이 튕길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삽삽하고 경우빠른 윤씨가 있어 이 집에는 언제나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흐르는듯싶다.

《둘째야.》

계시경은 응상이 글공부깨나 한다고 동네사람들한테 떠받들리우게 되자부터 버릇이 궂혀졌다고 생각되여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그래 너두 개명한답시구 상투를 자르구 하이칼라머리를 넘기면서 신학문을 배운다구 돌아치는 녀석들 꽁무니를 따라다닐 작정이냐. 그런데 섭쓸리면 덤턱스러운 산골바우티는 벗겨지겠다만 기생오래비처럼 맨망스러워지기가 십상이느니라.》

시경은 마른 호박잎을 쓱쓱 손바닥에 비벼 곰방대에 쟁여서 질화로에 대고 빨았다. 씁지근한 호박잎담배연기를 풀썩풀썩 내뿜던 그는 곰방대를 화로전에 탁탁 털었다.

응상은 빈대피 발린 옆벽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아버지는 완고하다기보다는 정직하고 근면한 농군이였다. 그는 카톨릭교도 불교도 임금도 믿지 않았다.

50평생을 두주먹을 부르쥐고 농사를 지으면서 그가 얻은 유일한 교훈은 이 세상에서 덕을 보는 일중에 제 오륙을 놀리는것보다 믿음직스러운것은 없다는것이였다.

지난해 웃마을 배부자가 마을에 나타나 작인들을 불러다놓고 개장변에 널린 백사지를 일구어먹을 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일구어먹으라고 혼감스레 굴었다.

작인들은 저마다 허리를 굽신거리며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계시경은 그 말을 털끝만치도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네. 공짜가 있다는걸 믿는 사람은 귀신단지를 믿는거나 같애.》

너도나도 백사지를 일구었지만 계시경은 그 일에 눈꼬리조차 돌리지 않고 수걱수걱 작권을 받은 땅에만 두엄을 져날랐다.

《숯쟁이란 할수 없구만. 새까마니 앞을 내다볼수 있나.》

내놓고 시경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개장변을 넘겨다보지 않았다. 그는 고을에 장보러 갔던 길에 행길에서 돈 50전을 주은적이 있는데 그때에도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돈잃은 사람이 없는가고 성가실 정도로 묻던 끝에 임자를 찾아 돌려주고야 마음이 놓여 집으로 돌아왔다.

자기한테 공짜돈이 떨어진다는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것처럼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로 여기고있었던것이다.

계시경의 이런 생각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작인들이 백사지를 제 논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자갈을 춰내고 진흙을 져다부어 벼를 꽂게쯤 되였을 때 덜컥 군청에서 관리들이 내려와 그 땅을 몽땅 배부자네것으로 등록해버리고말았던것이다.

《헛참, 내 서울 다녀오는 사이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지작도를 보구 그렇게 측량해버리지 않았겠나. 이제라두 송사들 해보게.》

배부자는 아닌보살하며 작인들을 동정하는 기맥조차 보이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작인들은 계시경의 처사가 백번 옳았다는것을 깨달았지만 헛되이 쏟아부은 시간과 로력을 되찾을수는 없었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자기나름의 사는 본새라면 본새라고 할수 있는 계시경의 굳어진 생각은 그 누구도 꺾지 못했다. 이렇듯 제나름의 철석같은 견해를 지닌 아버지에게 어떻게 서당훈장질을 못하겠노라고 할수 있단 말인가.

응상은 막막해오는 가슴을 풀어헤칠 길이 없었다. 아침밥상을 물린 계시경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어리골에 올라가 산탁에 쟁여놓은 참나무를 두드려보니 댕댕 소리가 나더라. 오늘은 일찌감치 올라가서 숯막에 불을 지펴넣어야겠다. 응상인 떨어졌다가 서당으루 가거라.》

시경은 도끼를 허리에 차고 집을 나섰다. 응관인 쟁기들이며 점심보자기를 둘러메고 더벅더벅 부친의 뒤를 따랐다.

한가마의 숯을 구워내자면 부친과 두형제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토막친 참나무를 낮전에 가마안에 들여쟁이고 불을 달아놓았다가 묻고오기도 바쁘다. 그래도 응상이만은 이날부터 동네어른들을 만나보고 서당손질을 하라고 떨구어놓는것이였다.

그러나 응상은 묵묵히 그들을 따라섰다. 둘째의 인기척을 느낀 계시경은 고개를 홱 돌려 응상을 바라보았다.

《내 말을 못 들었느냐?》

《저두 오늘은 어리골에 올라가겠어요.》

응상은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아버지를 마주보았다.

《남아있으라믄 남아라. 아무려믄 너 하나 없다구 숯구이를 못하겠느냐.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엊그제까지 얼굴이 새까매서 숯을 굽던 사람이 훈장감투를 쓰고 동네아이들을 가르치려든다구.》

《우리가 뭐 남의 눈치보구 삽니까.》

《?!》

계시경은 전에없이 당돌하게 응대하는 아들을 내려다보다가 좋을대로 하라는듯 팔을 홱 내젓고는 앞서서 걸었다.

등에 바지게를 진 응상은 형과 나란히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두살터울인 응관과 응상은 모양이 신통히도 같았다. 동리사람들은 형제간을 삭갈려보기가 일쑤였다.

응관이도 어렸을 때는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네살때 이웃마실방에 가서 《심청전》을 한번 듣고와서는 집안식구들에게 한마디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응상이처럼 소고삐를 집어던지고 서당으로 찾아가 동냥글을 배울 겨를조차 없었다. 다섯살 말할 때부터 하루종일 새우등을 해가지고 손바닥이 새까매지도록 새끼를 꼬았고 갈퀴를 들고 뒤산으로 올라가 솔가래기를 긁어와야 했으며 소꼴을 베고 돼지풀을 뜯어야 했다.

나이는 이제 스물한살밖에 나지 않았으나 등이 구붓하여 긴팔을 늘어뜨리고 걷는 거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30살에 났다고 해도 곧이들을것이다.

그는 동생이 동네사람들로부터 재동이라는 말을 듣는것을 여간만 대견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무팔러 고을에 내려갔다올라올 때에는 부스럭돈으로 동생한테 먹도 사다주고 붓이며 연필도 사다주었다. 응상이 난생처음 만져본 공책이며 고무신도 응관이 한푼두푼 모아서 사다준것이였다.

밤이면 그는 서당에 갔다온 응상이 광솔불밑에서 벼루에 먹갈아놓고 쓰는 붓글을 눈에 익히며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그러는 새에 그는 천자를 어렵지 않게 떼였다.

그도 먹고 사는것이 이렇게까지 몰리는 형세가 아니였더라면 글재주를 남못지 않게 터득했을것이다. 키도 홀싹하고 몸매도 호양한 얼핏 보면 쌍등이같아보이기도 하는 형제는 새풀이 우죽삐죽 돋힌 오솔길을 따라 더벅더벅 걷고있었다.

잎떨어진 앙상한 나무들만이 듬성듬성한 산은 볼품이 없었다. 철새들이 자취를 감춘 때라 참새들이 제 세상인듯 분주히 지저귀고 먼 산골짜기 어디선가 까마귀떼들 우짖는 소리가 골안을 흔들어놓고있었다.

솨아- 산발을 내리훑는 바람소리는 짐승떼가 잡관목을 설겆으며 달아내려오는듯 하였다.

《형님!》

응상은 불쑥 입을 열었다.

《왜?》

응관은 고개를 돌렸다.

《난 서당훈장을 그만두겠수.》

응관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앞서걷는 아버지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오솔길은 우중충한 골짜기로 이리구불 저리구불 기여올라갔다. 아버지는 왼쪽에서 급하게 흘러내린 산릉선을 에돌아가고있었다. 형의 갸름한 얼굴을 지그시 건너다보던 응상은 재빨리 말했다.

《난 서울가서 공부 좀더 할라우.》

《그게 진정이냐?》

《예.》

응상의 나직하나 결심어린 말을 들은 응관은 고개를 수굿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는 동생이 대처에 나가 공부를 더 하고싶어하는 기미를 눈치챈지 오랬다. 그러나 동리서당훈장으로 천거된 이날에 와서까지 응상이 이렇게 제 주장을 내세울줄은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는 생각이 깊어졌다.

응상은 그동안에도 서당을 다니느라고 농사일에 몸을 깊숙이 잠그지 않고있었다. 응관은 그것을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 자신이 배우고싶어도 배울수 없는 처지를 생각하여 어떻게 하나 동생이라도 어엿이 내세우리라 속다짐해온 그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도 쉰고개를 넘어서자 전같지 못하였다. 자연히 가정의 무거운 짐은 응관의 어깨우에 실리우고있었다.

응상이 훈장노릇을 하면 가세가 좀 펴이게 되리라 생각했던 응관이였다. 동생과 제수만이라도 딴살림을 차리고 나가면 숨쉬기가 한결 나아질것만 같았다. 한데 동생은 제수와 아들딸 오누이를 자기한테 떠맡기고 훨훨 떠다니며 공부를 하겠다는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고싶은 일을 제 마음대로 못하는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는것이다. 동생이 저렇게 마음을 도사려먹고 나선 이상 더는 마음잡아 살아가기가 어려우리란게 뻔했지만 응관의 가슴에는 갑자기 묵직한 돌덩이가 털썩 내려앉은듯 뻐근해지는것이였다. 한참동안 덤덤히 걸음을 옮기던 응관은 중얼거렸다.

《그 일은 아버지하고 의논해야 하지 않겠니?》

응상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말해보나마나 아버지에게 그 애길 한다는것은 자는 범의 수염을 뽑는 격이 되기가 십상일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 소동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가 자기의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이를 아버지에게 토설하지 않을수는 없을것이 아닌가.

숯가마에 이른 삼부자는 참나무삭정이를 수북이 모아놓고 모닥불을 피웠다. 량다리를 벌리고 불앞에 앉아 곱은 손을 녹이며 호박잎담배를 두툼하게 한대 말아피운 계시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마안에 참나무토막들을 걸써 들여놓구 불을 달자꾸나.》

따라일어선 형제는 두꺼비집같이 생긴 숯가마에 참나무와 아카시아토막들을 차곡차곡 세워넣기 시작했다.

《이제는 숯구울 나무도 동이 나가니 야단났구나. 이른봄에 못해두 세가마는 구워내야 모자라는 농량값을 받지 않갔느냐.》

계시경은 이해의 마수거리 숯가마에서 몇섬의 숯이 나오겠는가를 속궁냥해본다. 그들은 가마안에 나무토막들을 빼곡이 세운 다음 참나무아지들과 마른 솔가지들을 안아다가 무둑하게 덮어놓았다. 시경은 가마 채움이 끝나자 앞장서서 흙을 이겨 발라나갔다. 잠시도 쉴새가 없었다.

숯가마우에 흙을 되게 이겨바르고 아궁에 불을 지펴넣었을 때에는 세사람 다 녹초가 되여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쓰러지듯 아궁앞에 주저앉은 응상은 말할 기운도 없었다.

가마안에 불이 당기자 욱욱 불바람소리가 나고 굴뚝으로 시누런 연기가 꾸역꾸역 터져나왔다. 응관은 지게끝에 매달고온 베보자기를 펼쳐놓고 고구마를 잉걸불에 묻었다. 소르르 잠이 들었던 응상은 펄쩍 깨여났다.

《자, 요기를 좀 하구 저쪽능아골로 들어가서 한가마 더 하자꾸나.》

아버지는 노르끼레하게 익은 고구마를 응상의 손에 놓아준다. 응상은 뜨거운 고구마를 이손저손으로 옮겨쥐며 껍데기를 벗기였다. 후후 불면서 입천정을 데이며 겨울난 고구마를 구워먹는 맛은 꿀맛이였다.

고된 로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음식의 진미를 헤아릴줄 안다고 할것이다.

장차 객지에 나가 공부를 하자면 고구마 몇알로 점심을 에우고 노란 호박죽을 꿀같이 먹으며 저녁끼니를 치르는 이 생활도 다시 없는 호사스런 사치로 추억되리라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도 없지 않았다.

숯가마안에서는 점점 더 웅글은 소리가 울려나오고 돋아나다만 굴뚝에서는 시누런 연기가 목이 메게 터져나온다. 골짜기에 퍼져나가는 맵쌀한 연기내를 맡으며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이런 순간이야말로 숯쟁이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만족스럽고 즐거운 시각이다. 이제 저 굴뚝에서 쏟아져나오는 연기가 파르스레한 빛을 띠게 되면 진흙으로 숯가마의 숨구멍들을 모조리 막아치우게 될것이다.

그렇게 며칠동안 푹 익히면 숯가마를 제껴놓고 쇠소리나는 숯을 싸리섬에 차근차근 꺼내담게 될것이다. 그마적에는 산비탈에서 흥겹게 참나무를 베고 가마에 들여세우던 일들도 까마득히 잊혀지고 눈앞에 펼쳐진 흙진주같은 숯의 장관에 탄성을 지르게 될것이다.

응상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로동의 결실을 흐뭇이 그려보는 이때야말로 아버지에게 가장 말하기 어려운 일로 여기고있는 자기의 장래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처럼 생각되였다.

《아버지!》

침착하게 말문을 열려고 하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첫마디부터 떨려나왔다.

《왜 그러느냐?》

계시경은 꼬리가 길게 잡히는 눈매를 아들에게 던지였다.

《저, 전 좀더 큰일을 해보고싶습니다.》

《큰일이란 도대체 무슨 뜻이냐?》

심상치 않은 기미를 느낀듯 시경은 두눈을 슴벅거렸다.

《제가 하자고 하는 일은.》

응상이 다시 말문을 열기는 했으나 무엇이라고 다음말을 이었으면 좋을지 몰랐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여도 자기 가슴속에서 뒤끓고있는 생각을 아버지에게 납득시킬수 있는 신통한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처에 나가 공부를 하여 크게 된 사람이 근처에 있다면 그런 사람을 본보기로 들어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는것이 더없이 쉬우련만 물곬일경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하긴 웃마을에서 서당에 다니다가 세해전에 신학문을 배우겠다고 서울로 올라간 응상의 둘도 없는 친우 박경훈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는 집을 떠난 이후 오늘까지 편지 한장 없이 종무소식이다.

풍문에 들려오는 소식은 그가 서울 어느 골목집에 하숙을 정하고 짐군노릇을 하며 고학생활을 하고있다는것이였다. 그러니 무엇이라고 아버지를 설득시킬수 있단 말인가.

허나 이제 아버지를 설복하지 못하면 밤마다 꿈꾸어온 모든 일이 허망한 일로 될듯싶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하였다. 그는 나무가지로 사그라지는 불무지를 조심스레 헤집었다.

《아버님은 제가 서당을 나오자 글방훈장까지 하게 됐다구 기뻐하지만 제 마음은 웬일인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남을 가르치자면 우선 제자신이 만사에 능통한 현인이 되여야겠는데 그러기는 고사하고 세상에 손꼽히는 시골뜨기로 되고있다는 생각뿐이예요.》

응상은 번열에 타는 심정을 절절하게 터놓느라고 했지만 계시경은 둘째를 뻔히 바라보기만 했다. 내친김이라 응상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두 일전에 물곬하늘루 낮추 떠서 와르릉거리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셨지요? 내가에 매놓았던 우리 집 누렁소는 고삐를 끊구 미친듯이 뛰구… 나두 활랑거리는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었어요. 전 그 비행기에 우리네와 다름없는 사람이 앉아있는걸 보구 몸서리를 쳤어요. 그 비행기에 타고있는 왜인들이 아무리 문명하다구 해두 300년전엔 범백제도를 우리 조선사람들한테서 배워가지 않았나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거냐?》

아궁앞에 가까이 앉은 계시경은 불기운에 익은 얼굴을 들며 물었다. 그만하면 네가 유식해졌다는것은 알겠다, 그런데 네가 이 애비한테 청을 들자는건 한마디로 뚝 찍어 말하면 무엇인가고 하는것이였다.

응상은 정색했다. 순박한 아버지앞에서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은듯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하며 머리를 들었다.

《저는 서당훈도질을 못하겠습니다. 서울에 올라가 시체학문을 더 터득한 다음에 일생 종사할 업을 찾아볼가 합니다.》

둘째의 말을 잠착히 듣고있던 계시경의 눈에는 차차 노기가 서려올랐다.

《물론 네 설도가 옳을지 모른다. 허지만 눈을 떠야 별을 볼게 아니냐. 하루 삼시 목구멍으로 넘길 량식마저 떨어져 굶기를 밥먹듯 하는 우리 집 형편에서 어떻게 너를 대처에 공부시키러 보낸단 말이냐. 물곬 아래웃동리에서 유독 우리 집만이 숯쟁이란 말을 들으면서두 여직껏 이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처사를 너도 모르지야 않겠지?》

응관은 동생의 난처한 처지를 옆에서 지켜보다못해 고개를 푹 수그리고 한숨만 내쉬였다. 응상도 손에 쥔 부지깽이로 어려운 한자들을 땅바닥에 그리며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계시경은 열이 올라 말을 이어나갔다.

《사람이란 제 푼수에 맞게 살아야 하느니라. 먼데 단 냉이보다 가까운데 쓴 냉이가 낫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사람들을 웃기지 말아. 헛된 생각을 말고 제격에 맞는 착실한 일을 하면서 차차 높은 공부를 하면 좋지 않느냐.》

너무나도 지당한 말이였다.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하는것이 가장 확실하고 믿음직한 생활로 보였을것이다. 그를 12년씩이나 서당공부시킨것만 해도 과남한 일이 아니였는가. 그때문에 그의 집 살림살이가 나날이 더 궁해지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허나 세상물정에 눈이 뜨고보니 그는 자기가 얼마나 한심한 촌뜨기이며 구습에 물젖어있는 인간인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만약 자기가 현재의 처지에 발을 묶이운채 주저앉는다면 영영 아버지처럼 숯쟁이의 운명에서 더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서서히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가는걸 뻔히 알면서도 그 심연에서 헤여나오려고 몸부림쳐보지도 않는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에 있으랴.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무슨 말로 집을 나서겠다는 뜻을 설득시킬수 있겠는가. 응상의 생각은 착잡했다.

《자, 그만큼 쉬였으니 이젠 능아골로 넘어가자꾸나.》

계시경은 자리에서 움쩍 일어나 시적시적 앞서걸었다. 응상은 바지게뒤에 삼바줄이 꼬랑지처럼 질질 끌리는것도 모르고 더벅더벅 그들의 뒤를 따라섰다.…

저녁 술을 놓기 바쁘게 응관은 불달아놓은 숯가마를 돌아보려고 공심산막치기로 올라가고 계시경은 추긴 벼짚단을 웃방에 올려다놓고 발뒤꿈치에 신날을 걸고 끙끙 힘을 써서 조이며 짚신을 삼고있었다.

베틀을 들여놓은 건너방에서는 두 동서가 등잔불심지를 돋구며 날실을 걸고있고 윤씨는 처마밑에서 나무절구에 보리를 찧고있었다. 엇비듬히 비쳐드는 달빛에도 윤씨의 머리우에 보리까락이 허옇게 씌운게 헨둥히 알린다. 응상은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밤에는 서당에 동리청년들이 때없이 모여 이야기판을 펴놓으며 웃고떠든다. 종일 말동무도 없이 집에서 일만 하던 젊은이들은 서당방에 가야 저마끔 주어들은 말들을 한마디씩 지껄여보기도 하고 세상돌아가는 형세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시비도 해본다.

응상도 서당에 가야 웃어도 보고 속에 품은 생각을 헤쳐놓기도 한다. 이날 저녁에도 응상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웃마을 서당으로 향해졌다.

남포등을 환히 켜놓은 서당방에서는 씨름판이라도 벌어진듯 와와 하고 떠드는 소리가 귀솔게 울려왔다. 응상은 웬일인가 하여 토방우에 올라서서 비스듬히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먼지가 보얗게 인 방안의 광경을 엿본 응상은 아연해졌다.

서켠집 창술이가 훈장이 늘 앉군 하던 앞자리에 올방자를 틀고앉았는데 어디서 주어왔는지 머리우에는 정자관까지 척 올려놓고 엄엄한 기색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한쪽손에 버드나무회초리를 든 그는 두눈을 까뒤집고 앞자리에 무릎꿇고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으르딱딱거렸다.

《이 촌무지렁이같은 놈들아! 네놈들이 감히 어디라구 낯짝을 쳐들구 훈장님을 쳐다보느냐, 응?》

량어깨를 솟울사 하고 꼿꼿한 자세를 취한것이라든가 착 내려깔았던 눈을 치뜨고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얼굴표정이라든가 그의 행동거지에는 신통히도 응상의 태도를 련상시키는것이 있었다. 어린 학생들가운데서는 벌써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여나왔다.

《야, 이 고두쇠야.》

창술이 목청을 돋구어 길게 뽑자 《예이-》하고 상투를 틀어올린 웃마을청년이 절구통같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간드러진 목소리를 지어내며 머리를 조아린다.

《네 이놈, 10년세월 글공부를 시켰어두 하늘천, 따지두 모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천치가 아니고 무엇이냐. 종아리를 걷어올리구 이리 썩 나서거라.》

《훈장님,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우리 집에 씨암닭 한마리 있는거라두 통채루 튀여서 진지상에 올릴테니 제발 너그럽게 보아주사이다.》

《헤헤, 씨암닭이라구?》

창술의 입이 갑자기 헤벌어졌다. 학생들도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하자 《훈장》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걷잡기 어려운듯 정자관을 벗어메치고 벌렁 나가누우며 《하하하… 하하하… 》하고 온몸을 흔들며 웃어댔다.

서당방은 란장판이 되고말았다. 이제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는 김진사도 없어지고 매일같이 한자를 써가지고 오라는 성가신 분부도 없어졌다. 그러니 놀기 좋아하는 창술이세상이 되고만것이 아닌가.

응상은 안색을 흐리였다. 그는 평소에도 양창술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 창술이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듯싶었다. 그는 늘어진 볼에 개기름이 번지르하게 흐르는 창술의 낯짝만 보아도 기분이 흐려졌고 별치 않은 일에도 온몸을 흔들며 《하하하…》하고 웃어대는 모양을 보고는 혐오감을 느끼였다.

무엇이 그리도 만족스럽고 만사에 무사태평할수 있단 말인가. 방자하고도 라태한 태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이러한 처세야말로 먹고 사는 근심이 없고 재촉할 일이라고 아무것도 없는 유족한 생활에서 흘러나온것이 분명했다.

그에게는 서당공부도 유한 생활을 메꾸기 위한 놀음놀이나 체면치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였다. 한데 귀치 않던 서당공부마저 끝장이 났으니 저렇게 기뻐할수밖에.

그럴 마음이 있는것이 아니였건만 응상은 《어험.》하고 큰 기침을 하며 서당방으로 성큼 들어섰다. 웃고 떠들던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당황하여 황급히 자세를 바로 가지며 응상을 뻔히 쳐다보았다.

《훈장님, 이제야 오시나이까.》

양창술은 두손을 배언저리에 모아붙이고 사뭇 정중한 어조로 뇌까리며 허리를 굽혔다. 수그렸던 머리를 든 창술의 얼굴은 천연스러웠다. 그의 입에서는 술내가 확 풍기였다.

응상은 눈섭 한오리 까닥하지 않고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지그시 건너다보았다. 동리청년들은 긴장한중에도 야릇한 눈초리로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창술의 얼굴에는 여유있는 묘한 미소가 알릴듯말듯 흐르고있었다.

《자, 한대 피우십시오.》

창술은 응상이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염낭에서 《아사히》한갑을 꺼내여 굽신거리며 앞으로 내밀었다.

《훈장님, 골연을 피우는건 식후 일미이죠.》

창술은 말끝마다 님자를 개여올렸다. 응상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창술을 건너다보았다.

그는 양창술이 롱조로 이런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롱치고는 너무도 야유가 심하다. 창술은 늘 응상의 일거일동을 걸고들었다.

《술도 안 마셔, 담배도 안 피워, 계집도 달가와하디 않아. 첫날밤 신방에 들어가서도 세상모르고 잠만 잤다니까 도대체 무슨 재미에 사나, 엉?》

응상은 창술이와 말씨름을 하기도 역겨웠거니와 그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것조차 아까왔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훈장네 책궤에서 빌려온 책들이 들려있었다.

하여 《샌님 샌님.》하고 수작을 붙이려던 창술은 응상이 대꾸를 하지 않아 싱겁게 물러나고말았다. 응상이는 서당에서 재동이로, 창술이는 놀음판에서 으뜸가는 소리군으로 그들은 제가끔 제나름의 소문을 내며 제멋대로 살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술이 지꿎다할 지경으로 응상을 시까스르며 접어드는것이다. 마치 나도 응상이때문에 서당공부 못한다고 말밥에 오른 묵은 분풀이를 만장중에서 해대려는듯이.

그러나 응상은 창술을 더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앞자리로 걸어나가 몸을 돌렸다. 주의깊은 눈매로 동무들을 죽 둘러보던 그는 힘주어 언명했다.

《난 서당훈장을 하지 않겠다. 내가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것은 너희들도 잘 알것이다. 내자신이 사람들을 가르치기에는 아는것이 너무도 적기때문이다.》

학생들은 아연하여 응상을 바라보았다. 롱말로 넘겨버리기에는 응상의 표정이 너무도 심각했던것이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잠시후 응상은 구슬픈 안색을 지으며 부르짖듯이 말했다.

《난 웬일인지 이렇게 사는것이 숨막히도록 안타깝다. 저녁마다 모여앉아 한담이나 하고있으면 무엇이 되겠느냐 말이다. …》

《하하하…》

좌중의 심각한 분위기는 갑자기 터져나온 창술의 웃음소리에 흐트러지고말았다. 응상의 낯색은 검붉은빛으로 번져가더니 이내 하얗게 질리고말았다. 창술이도 웃음을 거두었다. 그는 입가에 쓰거운 빛을 띠우고 뇌까렸다.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가, 괜히 사람을 놀래우지 말라구. 인생은 즐기라구 있는거다. 괴롭히라구 있는건 아니란 말야.》

몸가짐이며 늘어진 말투까지도 그는 우리모두의 운명이란 이미 락착지어진것이니 쓸데없이 버둥거려야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러니까 창술형은 아무리 공부를 해야 소용이 없으니 애전에 손씻고 나앉자는거요?》

《그럼 넌 과거급제해서 원님이라도 될것 같으냐?》

창술은 코웃음을 쳤다. 응상은 분노를 느꼈지만 그 무슨 말로써도 창술을 납득시킬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오직 말없는 세월만이 그들의 론쟁에 대한 공정한 판결을 내릴수 있을것이다.

응상은 의분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자기 마을의 래일을 걸머진 몇몇 젊은이들속에 만연되고있는 라태와 침체의 분위기를 무엇으로 깨뜨렸으면 좋겠는지 바이 알길이 없었다. 그는 흐려진 눈매를 들어 동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잘들 있게. 난 다시는 서당에 나오지 않겠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서당을 나섰다. 학생들은 열려진 장지문사이로 내다보이는 아득한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응시했다. 그제서야 그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확실히 깨달은듯 하였다.

《이젠 끝장일세.》

좀전까지 창술이와 맞장구를 치던 쇠득이가 낯이 벌개서 침울하게 중얼거리였다. 물곬서당이 생긴지도 어언 수십년, 딱딱하고 메마른 한자를 앵무새처럼 졸졸 따라외우는데 역증이 나기도 했지만 정작 그것마저 자취를 감춘다면 이 산골마을이 얼마나 고적해지겠는가.

《젊은 훈장이라구 야비하게 조롱하니까 왜 화를 내지 않갔어?》

누군가가 창술이에게 성난 눈총을 보내며 역증을 썼다.

《한심해, 뚱딴지같은 원님소린 또 뭔구.》

《모르면 가만이나 있어. 그래서 그러는줄 알어? 응상인 벌써부터 딴데 마음을 두고있단 말이야.》

《딴데란건 뭐야?》

《대처루 신식공부 가겠단다.-》

서당방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는 한동안 그칠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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