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 회


광막한 우주에 내 찾는 별 어디런가

구천에 닿은 뜻 결심품고 떠났으나

닿는 곳마다 식민지노예의 설음과 모욕

몸부림치며 숨져가던 나그네신세


한없이 은혜로운 어버이수령님 품속에서

재생의 활력을 받아

유전학의 상상봉에 올라섰으니

돌이켜보자

그대 지칠줄 모르는 의지

다함없는 사색과 탐구의 흔적을


전 편
집없는 나그네


제 1 장


1

…나는 때늦게 길을 떠난 나그네였다. 갈길은 아득한데 해전에 차비하고 떠난 사람들은 까마득히 앞서서 장달음을 놓고있었다. 그들을 따라앞서자고 줄곧 뜀박질을 치다보니 나는 일생동안 잠시도 한눈을 팔새가 없었다.…

과학원 원사, 박사였던 유전학자 계응상은 생존시에 친지들과 벗들에게 자신의 지난 생활을 회고하며 자주 이런 말을 뇌이군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할 만도 했다.

그가 자필로 남긴 자서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나는 1899년부터 1911년 3월까지 약 12년간 평북도 정주군 신안면 수동리 물곬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촌서당을 마쳤을 때 계응상의 나이는 이미 19살이였던것이다.

응상이 일곱살났을 때였다고 한다. 뒤산에서 소를 먹이던 그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놓아먹이던 소는 남의 집 보리밭에 기여들어 파릇파릇 돋아나던 봄보리를 적지 않게 축냈다.

소동이 일어났다. 성이 독같이 오른 계시경(응상의 아버지)은 당장 응상을 요정낼듯이 물푸레나무회초리를 꺾어들고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집 둘째가 서당에 댕기는 서켠집 맏아이를 쫓아 뒤재로 넘어갑데다. 》

방아간집 로친이 주어섬겼다.

《그럼 그녀석이 웃멀루 갔겠군요.》

계시경은 부리나케 뒤재를 넘어 웃마을로 찾아갔다. 서당집뜨락에 들어선 그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반쯤 열어놓은 미닫이문사이로 아이들 글읽는 소리가 왱왱 청승맞게 울려나오는데 응상이 퇴지끝에 무릎을 꿇고앉아 웅얼웅얼하고있었다.

제법 턱방아를 찧으며 동냥글을 외우는 모양이 어찌나도 열심인지 부친이 가까이 다가선것도 감감 모르고있었다.

눈 한번 깜박거리지 않고 의젓하게 앉아있는 둘째아들 응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계시경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이날 저녁에 집안식구들이 두리반상에 빙 둘러앉아 밥을 먹고나자 정색하고 말을 꺼냈다.

《둘째는 글공부를 시켜야갔다. 식솔이 열둘이나 되지만 모두 눈뜬 쇠경들이라 난데서 편지 한장이 와두 뜯어볼 사람이 없구나. 어디 사람살이가 됐느냐?》

이튿날 아침 계시경은 응상을 앞세우고 등에는 강미로 좁쌀 한말을 지고 웃마을 서당훈장 김진사한테 찾아가 둘째아들을 학생으로 받아달라고 당부했다.

따비밭 여라문두락을 소작으로 붙이면서 농한기에는 숯을 구워 정주고을에 내다팔며 생계를 유지해가는 집안에서 이만한 결심을 내리는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흔하디흔한 15전짜리 고무신도 사신을 형편이 못되여 온 집안이 사철 왕얽이짚신을 신고다니는것이 고작이였으므로 응상을 가문에서 처음으로 서당에 보내면서도 붓 한자루, 종이 한장 사주지 못하였다.

응상은 서당출입을 한지 한주일도 채 되지 않아 《천자》를 뗐다.

《족보를 들춰봐도 과거급제는 고사하고 촌관리 하나 해본 사람이 없는 집안에 저런 〈선비〉가 나오다니.》

집안식구들은 저마다 기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응상이 하나 호사시킬 여력은 물론 그럴만한 겨를도 없었다. 응상은 남들처럼 가마밑을 긁어 멀건 죽물에 타서 먹대용으로 썼고 산에 올라가 죄리나무잎을 따다가 차곡차곡 접어서 망짝을 지질러놓았다가 그우에 단나물꽃으로 만든 붓으로 글을 썼다.

그러나 솥거멍도 늘 있는것이 아니였고 죄리나무잎도 사철 딸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응상은 자그마한 모래함을 만들어놓고 고른 모래우에 손가락글을 쓰고는 지우고 또 글을 쓰고는 지웠다.

그는 어느 한때도 학용품타령을 해본적이 없었다. 불만스러운것이 있었다면 석유가 발라 밤늦도록 마음껏 책을 볼수 없는것이였다.

마을 한가운데로는 사철 맑은 물이 정답게 흘러내리는 시내가 있었다. 그때문에 이 마을이름을 물곬이라 부르게 됐는지 모른다.

시내 이쪽에 사는 응상이네 집을 동켠집이라고 불렀고 시내 저쪽에 사는 첫집을 서켠집이라고 하였다. 서켠집은 자작으로 부치는 골개논도 서너정보 가지고있어 물곬아근에서는 그중 잘사는 집이였다.

그 집에서는 응상이보다 두살 우인 양창술이란 사내아이가 서당에 다니였다. 창술이는 명주바지저고리에 공단조끼를 입고 삼시 고운 밥을 먹으며 향내 풍기는 참먹과 벼루, 족제비털붓과 백로지로 맨 공책을 책보에 싸가지고 서당에 다니였다.

그러나 응상은 쇠코잠뱅이에 짚신을 신고 점심도 못 싸가지고 서당출입을 했다. 여섯살날 때까지도 옷이라고는 팔소매와 바지가랭이 없는 통주의밖에 걸칠수 없다나니 가세를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하기에 동네사람들은 타발많은 아이들의 성화를 받을 때면 의례히 이렇게 말하군 했다고 한다.

《동켠집 둘째를 좀 보려무나. 쇠코잠뱅이에 깡조밥만 먹으면서 서당에 당겨두 삼시 고운 밥만 먹고 공부하는 서켠집 창술이보다 얼싸하게 공부를 잘하지 않느냐. 그러게 글공부란 뜨뜻한데서 배불리 먹어야만 잘되는게 아닌 모양이다.》

응상은 한해사이에 한학의 입문서들이라고 할수 있는 《천자》, 《계몽편》, 《동몽선습》들을 어렵지 않게 뗐다. 서당훈장 김진사는 물곬서당에 신동이가 나타났다고 은근히 자랑해마지 않았다.

응상이 15살에 잡힌 해 마가을 어느날이였다. 집안식구들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벼락나들이를 갔다온 계시경이 불쑥 말을 꺼냈다.

《이젠 둘째도 상투를 틀 때가 되였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님도 둘째 친손주를 보구야 눈을 감겠다는구나. 그래서 내 어제 좋은 연줄을 만나 예서 삼십여리 떨어진 버들골에 다녀왔다. 며느리될 새 애기 선을 봤는데 건강하구 무던하겠더라. 이달 마감장날에 성례를 치르기로 날까지 잡아놓고와서 부친님께도 여쭈었느니라.》

아래목에 새우처럼 등을 꼬부리고앉은 조부도 가쁜숨을 몰아쉬며 하얀 턱수염을 흔들었다. 웃목 한쪽에 쪼그리고앉은 응상의 갸르스름한 얼굴은 해쓱하니 질리였다.

동네에서는 내남없이 사내아이 열살을 넘기기 바쁘게 장가를 보낸다. 열다섯살부터는 혼기를 놓친 쇤총각으로 치부하고 놀려주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응상은 장가들 생각이 꼬물도 없었다. 서당출입에 재미를 붙인 그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더 잘해볼가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여 마른침을 꿀꺽 넘기며 한마디 했다.

《아버님, 제 하던 서당공부나 마저 하고 장가를 가게 해주십시오.》

귀가 절벽인 조부에게 얼핏 눈길을 주었던 시경은 눈섭을 쭝깃하고 응상을 건너다보았다.

《무슨 말대꾸질이냐? 법도가 그러니 달리 어쩌지 못해. 벌써 동리에선 우리 집에서 총각환갑을 쇠련다구 말들이 난다.》

계시경은 딱 잘라맸다. 두무릎사이에 어깨가 잠긴 조부는 덮어놓고 머리를 끄덕였다. 응상의 얼굴에는 실망의 먹구름이 비끼였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는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이 애야.》

어머니 윤씨가 부친의 뜻을 쫓는게 상책이라는듯 눈짓을 했다. 응상은 가슴언저리에 드리웠던 머리태를 어깨너머로 홱 던지듯 넘기며 또 한마디 했다.

《제발 어린 자식의 소청을 들어주십시오. 마음에 없는 일을 저지르면 꼭 불행한 일이 생긴다 하옵니다. 전 정말 그 일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응상의 살구쪽같은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니 고이였다.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으냐. 이젠 달리 못해!》

시경은 짱소리가 나게 눌러놓았다. 응상은 얼굴을 푹 숙이였다. 이쯤되고보면 아무리 발버둥쳐야 소용이 없다. 앞산이 무너져내려 평지가 되면 됐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수가 없게 된다.

응상은 밤잠을 자지 않고 두눈이 또릿하여 어떻게 하면 마음에 없는 조혼을 면해볼가 하고 머리를 썩였다.

자정이 깊어갈무렵에 그는 무릎을 치며 일어나앉았다. 벼루를 꺼내여 먹을 갈고 참지를 꺼냈다. 그는 여라문살나서부터 동네편지를 도맡아 써주기 시작했다. 족보와 비문도 써주고 《천자》며 《동몽선습》과 같이 서당에서 많이 보는 책을 통채로 한질씩 베껴써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고한 값으로 얼마간의 용돈을 선사받은 덕에 필묵이며 참지도 사쓸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무릎을 꿇고앉아 방바닥에 펴놓은 참지에 달필로 한자를 써내려갔다. 아버지가 자기와 성례를 치르기로 언약을 맺었다는 버들골 강씨네집에 보내려고 작정하고 쓰는 편지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제가 이번에 긴히 서신을 띄우는 까닭은 귀댁의 딸을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올시다. 도의가 있고 량심이 있는 한 어찌 인륜대사를 기만으로 굼때겠나이까. 사실 소년은 날 때부터 불치의 전간병을 타고나 겉은 멀쩡하지만 발작이 일어나면 육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처지올시다. 하거늘 금지옥엽같이 키운 딸을 어찌 이런 불우한 소년한테 주어버리겠나이까.

잔치날 신부의 집에서 말타고 온 신랑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신랑이 말에서 내릴수 없고 말에서 내릴수 없게 된 신랑은 돌아가지 않을수 없사오니 성례를 치르는 날 대문을 닫아걸고 나들이를 가면 불행을 면할수 있고 소년도 못할짓을 아니할수 있을가 하옵니다. …》

이튿날 아침 응상은 어머니한테서 신부네 집주소를 알아가지고 편지에 받을 사람의 주소를 똑똑히 써서 품속에 넣었다.

조반을 먹고난 응상은 어머니에게 필묵사러 고을에 좀 다녀오겠다고 이르고는 휭하니 집을 나섰다. 단참에 정주고을로 나간 응상은 네거리에 자리잡고있는 우편국으로 찾아갔다.

빨간 벽돌로 지은 우편국앞에는 가로 째진 작은 입을 벌리고있는 무쇠로 부은 쇠통이 무뚝뚝하게 서있었다.

미닫이유리문을 조심스레 열고 우편국에 들어간 응상은 우표 한장을 사서 편지에 붙여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편지를 어떻게 우체통에 넣어야 할지 그냥 무쇠통에 집어넣어도 제대로 가겠는지 미타하여 멀찍이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얼마후 저쪽리발소에서 나온 안경쟁이가 옆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여 우체통에다 집어넣고 유유히 지나가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응상은 주춤주춤 그리로 다가가 손에 쥔 봉투를 무쇠통에 나있는 작은 입안으로 밀어넣었다.

네거리의 청인송방에서 필묵을 사든 응상은 다소 마음의 위안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편지는 어김없이 버들골 강씨네 집으로 배달될것이고 그렇게만 되면 그 집에서도 혼사를 물리려고 그가 귀띔해준대로 행동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여길것이다. 하여 그는 아버지의 령을 거역하지 않고도 조혼의 굴레에서 벗어날수 있으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잔치날이 림박해오자 동켠집에는 일가친척들이 모여들었다. 집안식구들은 아침부터 관례를 시키겠다고 응상이를 서당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조용한데서 혼자 공부하기를 즐기는 응상은 부산스런 분위기가 언짢아 슬그머니 몸을 빼여 뒤산으로 올라갔다.

풀밭에 누워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책을 읽던 그는 정오가 썩 기울어서야 더위를 덜어보려고 개울가에 내려가 목욕을 하고 스적스적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두 눈매는 총기가 있수다. 색시를 얻는다고 목욕재계까지 한걸 보니 과히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만.》

응상은 그 말과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싫어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맏누이와 이모는 신랑이 마침 목욕까지 하고 들어왔다고 좋아서 해죽거리며 웃방으로 끌어들여 면빗으로 감은 머리를 빗기는것이였다. 길게 땋아늘였던 머리를 모아붙여 상투를 틀자는것이였다. 응상은 팔을 내저으며 이마살을 찌프렸지만 피할 길이 없었다.

내키지 않은대로 상투를 틀고 동곳으로 꽂을 때까지는 참고 견디였으나 망건을 씌우고 골을 켜는데는 비명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골을 켠 자리는 살이 거멓게 죽고 살쩍이 묻어나 피가 내돋히였다.

한데 이 광경을 지켜보던 누이들은 참을성이 많은걸 보니 말 잘 듣는 고운 색시를 얻어올 징조라고 얼려추어주며 손벽들을 쳤다.

머리우에 망건을 씌운 후에 새옷을 갈아입히고 쾌자까지 걸치우자 집안식구들이 빙 둘러서서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것이였다.

《관례를 시켜놓은즉 신랑맛이 나는구나!》

《원 저런, 시뿟해있으니 볼 모양이 없다. 좀 웃으려무나, 웃어.》

허무맹랑한 일에 시달린 응상은 머리가 휘휘 내둘리고 진저리가 났다.

혼행길을 떠나는 날 새벽이였다. 간밤에 늦도록 복새를 당하여 선잠이 든 그는 동이 터올무렵에야 단잠이 들었다. 집안식구들은 창문이 회붐해올무렵부터 모조리 일어나 분주히 드나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들이 연방 웃방으로 달려올라와 이불을 제끼고 일으켜 앉혔으나 응상은 눈섭끝에 무겁게 매달린 잠을 털어버릴수가 없어 모로 곤두라졌다. 계시경이 달아올라가 새우처럼 꼬부리고누운 응상의 등허리를 철썩하고 내리치며 호령질을 해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는 시쁘둥하여 누이가 떠다주는 옹배기물에 세면을 하고 베수건으로 얼굴을 문대였다.

응상이 신랑차림을 하고 뜨락을 나서자 또다시 동네사람들이 오구구 모여들었다. 그들은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싫다싫다해두 정작 하늘소에 올라앉으니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지?》

《와 그러지 않겠수, 색실 데려온다는데.》

하지만 응상은 배심이 든든하여 견마잡이가 앞서서 이끄는대로 하늘소잔등에 실려 건들건들 몸을 흔들며 끌려갔다.

《이제 오리나무 세그루가 가지런히 서있는 저 재등만 넘어서면 인차 신부네 집이니라.》

급히 걷는 하늘소를 따라 바삐 쫓아오던 큰아버지가 숨가삐 중얼거렸다.

《자, 여기 내려서 한숨 돌리며 행장을 수습하고 넘어가자꾸나. 》

풍습에 따라 신랑집 첫날 둘러리로는 아버지가 갈수 없기에 버들골가까이 사는 큰아버지를 데려다 앞세우고 길을 떠났다.

응상은 하늘소에서 내려 개울물에 발을 잠그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걷잡을수 없이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의 계교가 들어맞으리란걸 의심치 않았다.

편지를 받은 신부네 집에서는 영낙없이 대문을 닫아걸고 나들이를 갔을것이다. 그 누가 불치의 배안의 병신한테 딸을 주려고 할것인가. 그런데 웬일인지 마음이 불안하여 견딜수 없었다. 차라리 쉬지 않고 그냥 재등을 넘어가 한시바삐 괴로운 마음의 철쇄에서 풀려났으면 싶기도 했다.

《그만하고 일어들 서거라.》

큰아버지는 두루마기고름을 고쳐매며 엄하게 일렀다.

《뚜거덕 뚜거덕…》

하늘소는 돌깔린 언덕길을 다우쳐 올라갔다.

《달랑달랑…》 방울소리도 잦은가락으로 울리였다. 탁 트인 재등에 올라서자 앞바람이 귀바퀴를 스쳤다. 순간 응상은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이 그의 생활의 길에 나타난 이 괴로운 일들은 글공부에 깊이 빠져있는 그에게 무거운 굴레를 씌우는것밖에는 아무것도 가져다주는것이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였던것이다.

《아, 부디 강씨네 집 대문이 닫겨있었으면.》

그는 간절한 소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펀득 눈을 뜬 그는 아연실색하였다. 등롱을 든 젊은이들이 재등까지 길마중을 나와있는것이 아닌가.

《원로에 오시느라고 수고들 하셨습네다.》

마중군들은 길옆으로 비켜서서 굽신굽신 절을 하고 신랑 좌우켠으로 갈라서서 등롱을 추켜들고 따라섰다.

응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이 집에서 편지를 받아보기만 했으면 무슨 소동을 일쿠었겠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량추녀에 세발 곱새를 드리운 초가집앞에는 동네사람들이 오구구 모여들어 복새를 일구었다. 이 집이 강씨네 집인듯 했다.

《신랑 온다!》

누군가가 쨍쨍한 목소리로 웨쳤다. 마당에는 강씨네 일가가 주르르 나와서있었다. 창황중에도 응상은 가슴을 조이며 신부네 식솔들의 기색을 살폈다. 웬일인지 색다른 기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 왔습네다.》

마중군이 견마잡이한테서 고삐를 받아쥐며 큰소리를 질렀으나 응상은 안장우에서 엉뎅이를 뗄념을 하지 않았다.

《뭘하느냐. 어서 내리거라.》

나직하나 엄하게 재촉하는 큰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야 응상은 실심하여 하늘소에서 내렸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무렵, 응상은 둘러리를 앞세우고 결혼식장으로 꾸민 안방으로 안내되였다.

쪽도리를 얹고 초록색저고리에 붉은색 갑사치마를 입은 신부가 머리를 푹 숙이고 버선발을 곱게 내디디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보통키에 실한 몸매인데다가 화장은 진하게 하지 않았어도 얼굴에 발기우리한 빛이 환히 내돋히였고 손은 눈에 띄게 커보였다. 나란히 앉은 신랑신부는 어른과 아이가 앉은것 같았다.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본 아낙네들은 새들거리며 찧고까불었다.

《신랑은 약하두 하면서 애리애리하구 신부는 덩실한게 빈대부부 같수다레.》

《그래두 눈매는 총기가 있수다. 색시품에서 크느라면 미끈해지지 않겠수.》

응상은 어떻게 결혼식을 치르었는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다만 난생처음 입에 댄 술을 석잔이나 연거퍼 먹고 청실홍실 드리운 술잔을 주고받은 일들이 꿈속에서처럼 어렴풋이 느껴졌을뿐이였다.

이제는 모든것이 결판났다. 례식을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편지에 대한 애타는 기대를 버릴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고대하던 편지의 내막은 그에 대한 마지막흥미마저 사라진 때에야 드러나게 되였다.

정중한 분위기속에서 례식이 끝나고 흥그러운 기운이 떠도는 가운데 술잔이 오갈무렵에 마을좌상인듯 한 늙은이가 장삼자락을 거둬붙이며 문득 목청을 돋구었다.

《쥔아주머니, 거 농짝안에 깊숙이 간수했던 편지를 꺼내오시우다.》

하자 부엌으로 나드는 새문턱에 서있던 신부의 어머니가 쭈르르 미끄러지듯이 웃목으로 올라가 붕어자물쇠를 열고 백통뒤주안에서 편지 한장을 꺼내왔다.

사람단련에 한절반 얼이 빠져 아무 생각도 없이 어벙벙해 앉아있던 응상은 낯익은 편지봉투를 띠여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이마에 주름살이 조록조록하고 턱이 뾰족한 그 늙은이는 좌중을 둘러보며 앵앵거리는 목청을 길게 뽑았다.

《에- 조용들 합세다. 오늘 경사를 맞는 강씨가문에서 물곬의 으뜸가는 재동이를 사위로 맞아들이게 되자 희한한 일들이 생기게 됐수다. 며칠전엔 버들골이 생긴이래 처음으루 배달부가 와서 편지를 강씨집에 전해주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네다. 에-》

그 늙은이가 뒤말을 꺼내지 못하고 갑자르자 벌써 주기가 올라 탕건을 벗어놓고 맨 상투바람에 술을 마시던 중년의 사나이가 말을 가로챘다.

《형님, 이젠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한집안식구들처럼 허물없는 사이가 되였는데 우물쭈물할꺼 있겠수.

사실 저 편지가 날아들자 동리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번갈아 받아쥐고 기웃거려봤지만 도무지 편지사연을 해득해볼수가 없었수다. 그래서 분분히 토의하던 끝에 편지를 농안에 소중히 간수해두었다가 잔치날 상받는 자리에서 글 잘하는 신랑보구 읽어달래는것이 현명지책이라고 생각했습네다. 자, 어서 그 편지를 신랑한테 주소. 내 생각이 어드렇소. 여보 강서방, 동리사람들앞에서 재동이신랑자랑두 할겸 이게 좋지 않소?》

편지는 얼결에 응상의 손에 쥐여졌다. 얼근하게 취한 큰아버지도 웬 영문인가 하여 얼떠름해서 조카를 쳐다볼뿐이다. 그는 그 편지가 응상이 보낸것인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오히려 느슨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어서 읽으라는듯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응상은 억이 막혀 입이 떼여지지 않았다.

《허허, 신랑이 신부한테 신식으로 편지를 보낸 모양이구만요. 그래두 큰 비밀이 아니거던 좀 읽어보구려.》

상투쟁이가 재촉했다. 무안을 탄 응상은 얼굴이 확 달아올라 떠듬떠듬 중얼거렸다.

《이 서신은 별다른게 아니옵니다. 문안을 올리고 약정한대로 아무날 아무시에 혼행길을 가겠으니 맞아달라는 사연밖에는 다른것이 없습니다. 고을이 가까운 우리 마을에서는 요새 성례를 치르기 전에 이렇게 하는것이 례의로 되였습니다.》

응상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을 어물쩍 주어섬겼지만 잠착해서 그의 말을 귀담아들은 사람들은 그럴법하다는듯 고개들을 연방 주억거리였다.

신부네 집에서 하루밤을 지낸 응상은 이튿날 아침에 신행길을 떠났다. 앞에는 신부를 태운 가마가 서고 뒤에는 안장에 올라앉은 응상이 말이 흔들리는대로 몸을 맡기였다.

행렬이 신부네 식솔들의 배응을 받으며 자욱을 떼자 응상은 《후유.》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동네끝에 사랑채가 달린 량통집이 한채 자리잡고있는데 그앞을 거쳐 재등으로 올라가게 되여있었다.

길떠나기 전에 장모가 지나가는 말처럼 이르기를 동네에서 밥술이나 먹으며 한유하게 놀아치는 건달군들이 늘 이 재등아래집에 숨어있다가 마을에서 처녀를 데려가는 신랑을 달아매여 혼맹이 나가게 만들기가 여반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잔치집들에서는 어뜩새벽에 신행길을 떠나보내는것이 례사라는것이였다. 그런데 부담마도 없는 조촐한 집 신랑이야 관대하게 넘겨보내주겠지라고 하였었다.

일행은 초라한 동리에 웬 그따위 날당패가 있으랴 하고 심상하게 여기며 길을 재촉했다. 하여 마음놓고 기와집 사랑방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게 섰거라!》하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탈바가지를 쓴 괴한들이 와르르 달려나왔다.

신랑이 채찍을 얹을새도 없었다. 길을 가로막는 우악스런 사나이가 대바람에 팔을 뻗쳐 응상을 끌어내리자 패거리들이 그를 떠들고 사랑으로 끌어갔다. 후행으로 따라선 사람들은 아예 범접을 못하게 했다.

신랑을 사랑방 한가운데에 털썩 동댕이치듯 내려놓자 황소탈을 쓴자가 소고삐를 응상의 다리목에 걸고 횡하니 어깨에 둘러메는것이였다. 응상은 벌렁 나자빠졌다.

《이게 무슨 야만의짓들이요?》

고함을 질러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어느새 탈바가지를 쓴 젊은 패들은 호랑이형국의 탈을 쓴 괴수를 아래목에 모시고 좌우켠에 줄느런히 늘어섰다.

《여봐라, 동리 신주님의 승낙도 없이 처녀를 훔쳐가는 저놈을 되우 쳐라.》

《예이-》

일제히 허리를 굽신하는 개, 고양이, 쥐탈을 쓴 패거리들은 옛말에 나오는 도깨비들 같았다. 개탈을 쓴자가 다듬이방맹이를 한손에 거머쥐고 성큼 나섰다. 응상은 몸서리를 쳤다. 어디선가 신랑을 달궈먹다가 아예 정신을 잃게 하여 다시 깨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풍문까지 생각났다. 괴수가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문초했다.

《이놈, 네 엊저녁 신부의 버선을 어느쪽부터 벗겼느냐?》

《냉큼 아뢰여라.》

졸개들이 일제히 목청을 돋구었다. 응상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엊저녁에 난 피곤해서 옷도 벗지 못하고 자버렸소.》

그것은 곧이곧대로였다. 집을 떠날 때 그의 형은 응상을 조용히 불러앉히고 신방에 들어가거들랑 신부의 옷을 어떻게 벗기며 마지막으로 초불은 어떻게 끄는가에 대하여 차근차근 애기해주었지만 그는 난생처음 하늘소잔등에서 들볶이우고 까다로운 례식을 치르느라고 볶이워 신방에 들어갔을 때는 녹초가 되여버리고말았다. 하여 색시고뭐고 겉옷을 벗어메치고는 정신없이 이불우에 곤드라졌다가 아침에야 깨여났던것이다.

《저녀석을 이실직고할 때까지 되우 쳐라.》

괴수가 고함을 지르자 《예잇!》하고 탈바가지들이 일제히 주억거리는 동시에 황소탈을 쓴자가 박달방치로 응상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딱.》

무지한 방치찜질에 응상은 《아이구.》소리를 질렀다.

《곧이곧대로 아뢰라.》

추상같은 웨침이 사랑채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거짓을 모르는 응상은 같은 말을 되뇌이였다.

《사실대로 말해서 난 정말 모르오.》

하자 박달방치가 연방 날아들었다. 할수 없이 응상은 거짓토설을 했다.

《어이구, 오른쪽버선부터 벗겼소.》

좌중에서 와그르르 웃음통이 터졌다. 신랑이 무슨 대답을 하나 하고 창구멍으로 들여다보던 아낙네들도 애개개소리를 질렀다. 원래 왼쪽버선부터 벗기게 되여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응상은 그걸 가릴 형편이 못되였다. 이 날당패들이 박달망치로 복숭아뼈를 어떻게 빗때려놓았는지 뼈가 부스러진듯 정신이 아뜩아뜩했다. 그러나 신랑을 달아먹는 묘기는 신랑이 비명을 더 높이 지르게 하여 신부집에서 푸짐한 상을 차려오게 하는데 있는것이다.

뒤늦게야 알고 응상의 가시어머니가 망태기에 술병이며 안주꿍지를 안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렇게 되자 탈을 쓴 패거리들은 더욱 기가 올라 소고삐를 보짱에 걸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천반에 꺼꾸로 매달린 응상은 사색이 되였다.

《여보게들, 제발 그만하게. 상우에 올려놓았던 닭까지 통채로 가져왔네.》

장모가 황급히 상을 차리고 놋잔들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놓아서야 비로소 그들은 응상을 풀어놓아주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신랑을 달구어먹다가 살인이 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했다. 우리 나라 5백년유래지 고풍이라고 하는 이 몸살나는 신랑 달아먹는 야만적인 행위의 덕분에 응상은 집에 돌아와 온몸에 퍼지는 장독으로 한주일을 몸져누워 앓았다.

하마트면 이 허무맹랑한 옛 악습덕에 다리병신이 되여 박사는 고사하고 서울공부도 하지 못하고 비참한 운명의 내리막길로 굴러떨어질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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