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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황공자는 태명산에서 도술을 배우고

설소저는 남복하고 길을 떠나다


설소저의 눈에 서늘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그래, 오늘밤중으로 떠나가자.》

《이밤중으로 떠난단 말이오이까?》

운랑이 전혀 딴 사람이 된 소저를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그러니 어서 차비하고 떠나야 해.》

소저가 일단 결심을 내린 이상 운랑은 행장을 꾸릴수밖에 없었다.

평시에는 부드럽고 조용한 편이지만 일단 마음먹으면 끝장을 보고야마는 소저의 성미를 운랑은 잘 알고있었다.

《아씨의 결심이 정녕 그러하다면 소녀는 당장 떠날 차비를 하겠나이다.》

운랑이 서둘러 행장을 준비하는 사이에 소저는 비복들을 모두 뜨락에 불러냈다.

《사세부득하여 오늘밤에 난 집을 떠나련다.

그러니 너희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집을 지키면서 선산을 잘 돌보거라. 래일 아니면 모레쯤에는 양씨댁에서 들이닥칠것이니 너희들은 내가 어디로 갔는지 그저 모른다고만 대답해라.

서로 죽지 않으면 다시 만날 날이 꼭 있을것이니 아무쪼록 내 말을 명심하고 그대로 실행하길 바란다.》

비복들이 울면서 한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씨의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부디 몸 조심하소이다.》

그날 밤 자정무렵 설소저는 운랑과 함께 남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북해까지는 천리길이고 세상에 나서 아직 그런 먼길을 걸어보지 못한 소저였으나 한시바삐 이리같은 양철의 마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 한가지 생각으로 한필의 하늘소에 의지하여 운랑과 함께 길을 다그쳤다.

며칠이 지나 그들이 당도한 곳은 청룡산이였다.

문득 설소저의 뇌리에는 어머니가 청룡산에 기도하여 자기를 낳았다는 말이 생각나 운랑과 함께 청룡산의 커다란 선돌바위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도를 하였다.

《이 세상 천지에 청룡산은 명산이라 일컫는데 사람들이 믿는바가 크다 하리다.

오래전에 우리 어머니가 청룡산 신령의 덕을 입어 이몸이 세상에 태여났은즉 그 은혜를 갚고자 했건만 산이 낮고 바다가 얕은가, 이몸이 전생에 무슨 죄악을 입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멀리 리별하고 어머니마저 잃고 또다시 천고에 없는 원통함을 당했으니 혈혈단신 이몸이 어디에 몸을 붙이고 살아가랴.

일신이 의탁할 곳 바이 없어 북해의 아버지를 찾아가오니 청룡산 신령은 설씨문중의 이 녀아를 정성다해 보살펴주옵소서.》

소저의 량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이하여 대바르고 청렴결백한 아버지가 북해로 귀양갔는지, 무엇때문에 양철이 이미 정혼한 자기와 황공자를 갈라놓지 못해 그리도 승악을 부리는지, 앞으로 자기앞에 또 어떤 불행이 닥쳐오고 자기 앞날이 어떠할지 가늠할수 없는 설소저였다. 그저 세상은 왜 이리도 공평치 못하고 사람들은 왜 이리도 모질가 하는 생각만 갈마들뿐이였다.

기도를 마치고 두번세번 절을 한 다음 일어서서 돌아서던 설소저는 깜짝 놀라 《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얼결에 동가슴을 부여안았다. 등뒤에 백발의 낯모를 웬 로인이 서있었기때문이다.

비록 백발을 머리에 얹었으나 얼굴은 아이처럼 천진하고 눈은 샘같이 맑았다. 처음엔 소스라치듯 놀랐던 소저는 이 깊은 산중에 웬 늙은이가 있을가 하고 생각하다가 자기를 빤히 투시해보는 로인의 맑은 두눈을 보고 여느 사람같지 않아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소자는 팔자가 기박하여 동서로 떠돌며 북해로 가던 길에 이곳에 이르러 산신령에게 공양하던중이오이다. 하온데 로인장은 어디에 사시며 무슨 일로 이곳에 이르셨나이까?》

로인의 얼굴에 티없는 웃음이 어렸다.

《난 이 산중에서 할일없이 다니는 한가한 늙은이라 우연히 이곳에 왔노라.

방금전에 기도문사연을 들으니 몸을 의탁할 곳이 없다고 하는데 내 마음이 다 추연해지더군.

그래, 그대가 비록 남복을 입었으나 기도문의 내용을 들어봐도 용모를 봐도 녀자가 분명한데 어인 일로 이리 되였나? 》

소저는 진실해보이는 로인의 그 웃음에서 그의 선량한 마음을 엿보고 저도모르게 마음속 슬픔을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로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소녀는 북해에 귀양간 아버지를 찾아가는중이옵니다. 사내라면 재주를 키워 원쑤를 갚고 나라 위해 공을 세우련만 녀자의 몸이다나니 어쩔수 없나이다.》

로인의 눈에서 순간 반짝 빛이 발산한다.

《그렇다면 그대 부친의 성함이 설영이 아닌고? 그리고 그 황사정이란 황현이 맞는고?》

설소저의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로인장께서 우리 아버님을 아시나이까?》

대답대신 로인이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운명의 희롱인가, 내 어찌 사십년만에 설영의 녀아를 만났는고?》

어리둥절해있는 설소저를 바라보는 로인의 눈가에 이름할 길 없는 회억의 빛이 흘렀다. 하더니 다시 온화한 기색을 띠우고 또박또박 그루를 박으며 입을 열었다.

《이자 그대가 한 말은 옳은 말이 아니로다. 녀자라고 왜 남자보다 못하랴.

예로부터 충의와 효도는 남녀가 따로 없다 했거늘 부친을 찾아 북해로 가기보다는 여기 산중에 거처하면서 때가 오면 충의를 발휘하는게 어떠하냐?》

소저는 이 로인이 아버지의 스승인 청룡산 도사라고 확신하며 무릎을 꿇었다.

《도사님의 명성을 소녀는 어릴적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었소이다.

오늘 이렇게 하늘의 인연으로 뵙게 되였으니 천만번 다행인줄 아나이다.

도사님의 그 말씀 들으니 소녀의 생각이 짧았던것 같소이다. 소녀 비록 녀자의 몸이지만 도사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재주와 도술을 배워 부모님들의 원한을 풀고 나라의 간신들을 멸하겠나이다.

소녀의 어리석은 식견으로 존귀하신 도사님을 몰라보는 죄를 범하였으나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소녀를 거두어주시면 백골이 진토되여도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도사가 소저의 어깨를 잡아일으켰다.

《그만 일어나라. 때가 되면 그대의 재앙은 물러갈것이니 그러자면 재주를 배워야 하느니라.

그대의 소원이 정녕 그러할진대 내 무엇을 사양할소냐.》

도사는 소저와 운랑을 인도하여 산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산봉우리에 올라 막상 산을 부감하느라니 밑에서는 다 몰랐던 산의 웅장함과 아름다운 경치에 소저는 저도모르게 《야!》하고 탄성을 질렀다.

푸른 소나무, 잣나무숲이 울창하고 그속에 백학이 보금자리를 정하고있었으며 보지 못한 기이한 꽃들이 활짝 피여나고 그윽한 향기가 온 산중에 짙게 풍겼다. 빽빽한 수림사이로 나무로 지은 나지막한 집이 보였다.

소저일행이 그 집앞에 이르니 청의동자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도사가 소저와 운랑에게 한칸 방을 가리켰다. 소저와 운랑이 문열고 들어서니 비록 방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정갈하였으며 향기가 은은하여 마음에 꼭 들었다.

이후로 소저는 도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재주를 익히고 도술을 배워나갔다.

도사의 신기한 법술은 물론 천문지리와 고금의 병서들, 각종 무예를 비롯하여 이 세상의 온갖 재주를 다 배우려는 소저의 각오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원체 령리하고 이악한 소저가 마음먹고 달라붙으니 그의 재주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으며 그를 배워주는 도사도 녀자의 몸으로 힘들고 어려운 재주를 막힘없이 수련해나가는 그 의지와 재능에 혀를 찼다.…

설소저에게 속히우고 만사람들앞에서 깨깨 망신을 당한 양철은 조침을 불러 눈알이 빠지도록 욕설을 퍼부었다.

《설씨계집이 감히 나를 속여 만사람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니 이는 다 네가 일을 태만한탓이로다! 내 너를 죽여 수치를 씻어야 마땅하나 아직은 용서하겠으니 어떤 수를 써서라도 설씨계집을 잡아 내 집에 끌어오라!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 네놈을 용서치 않고 가차없이 죽여버릴테다!》

《소인이 이번에는 어떻게 하나 일을 성사시키겠소이다.》

혼맹이가 빠진 조침은 덮어놓고 머리를 조아렸다. 양씨댁을 나서는 그의 잔등은 물에 빠진 쥐를 건져놓은듯 화락하니 젖어있었고 여위고 꺽두룩한 몸은 후줄근하기 짝이 없었다.

조침은 그길로 설소저가 사는 호주로 향했다.

설씨댁에 이르러 소저만나기를 청했으나 이미 몸을 피한 소저가 어데 있으리오. 설씨댁사람들에게 소저가 간곳을 물었으나 하나같이 어데로 갔는지 모른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조침은 눈앞이 아뜩했다.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면 조폭하고 심술사나운 양철이 용서하지 않을것은 너무도 빤드름했다. 잔뜩 우거지상이 되여 집에 돌아와 처자를 대하고보니 앞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더욱 중중첩산이였다. 조침은 괜히 화술만 련거퍼 들이켰다. 온밤 조침은 머리통을 싸쥐고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앓았다.

(내 일찍부터 금전에 미혹되여 양철의 수족노릇을 하다가 끝내는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누나. 이젠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옆에 누워 자는줄 알았던 안해가 칠석날 까치대가리처럼 때이르게 머리털이 다 빠진 조침의 삐죽한 머리의 숫구멍을 만지작거리며 따가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뭘 그다지 풀이 죽어 그러세요? 차라리 도망치자요!》

안해의 말에 조침이 눈을 번쩍 떴다.

《엉, 도망?! 어디로?》

《금전만 있으면야 아무데나 가서도 떵떵거리며 살수 있지 않나요.》

조침이 손을 들어 머리칼 한오리도 없는 숫구멍을 긁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하긴 그래. 금전만 있으면야 부처님도 웃는 세월이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가?

싸움에서도 급할 땐 삼십륙계 줄행랑이 상책이라 했지. 헌데 도망칠바엔 그 대중정나리를 한번 더 골려먹어야겠어.》

그의 머리에 한 계교가 떠올랐다. 이튿날 조침은 양철을 찾아갔다.

《설씨가 불의의 화를 당하여 잔뜩 겁에 질려 방안에 꾹 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소이다. 게다가 성격이 예민해져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려 비복들조차도 그가 있는 방으로 감히 드나들지 못한다고 하나이다.

또 린근의 사람들을 발동하여 집주변을 주야로 지키게 하니 비복들과 린근 백성들이 설소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있다고 하옵니다. 그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신세라 이때를 타서 천금을 뿌려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인심을 모으면 일을 성사시킬수 있나이다.》

《그래 어떻게 성사시킨다는거냐?》

삐뚜름히 앉아 조침이 주어섬기는 말을 흥심없이 듣던 양철이 물었다.

《다름아니라 소인이 설씨의 집을 방비하는 사람들에게 천금을 주어 흩어지게 하겠으니 래일밤 양공자가 은밀히 교자를 가지고 하인들을 이끌고와서 설씨를 겁칙하소서. 소인이 그때를 당하여 근처의 백성들과 더불어 내응하면 설씨 하나쯤 앗아오기는 손바닥뒤집기나 같사오이다.》

본래 우직스러운 양철이다. 머리속엔 온통 설소저를 취할 생각뿐인지라 사리를 살피지 못하고 조침의 그 말을 곧이믿고 그자리에서 천금을 선선히 내주며 부디 일을 성사시키기만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천금을 받아쥐고 양씨댁을 나서며 조침은 코웃음을 쳤다.

《흥, 또 나한테 속았지!》

부리나케 집에 돌아오니 그새 안해가 짐을 다 꾸려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조침은 그날밤으로 천리밖 남해부와 린접한 후기신라땅으로 솔가도주하였다.

조침과 약속한 다음날 밤 양철은 아들 양달에게 하인들을 딸려 호주의 설씨댁으로 떠나보냈다.

설씨댁에 이른 양달이 학의 모가지 되도록 밭은 목을 빼들고 기다렸건만 조침은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덧 푸름푸름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더 참지 못한 양달이 제잡담하며 하인들더러 집에 쳐들어가 설씨를 겁칙하라고 호령했다.

도차지가 하인들을 이끌고 집안으로 돌입하였는데 집안엔 설씨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다만 비복 십여명만 있을뿐이였다. 헛물을 켜고 나온 도차지가 두서없이 섬기는 말을 들은 양달이 불그락푸르락거리며 제가 직접 돌입하여 온 방안을 참빗으로 훑듯이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허사였다. 늙은 하인 하나를 문초하였더니 아씨가 집을 나간지 대엿새가 지났다는것이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민 양달이 하인들을 끌고 조침의 집으로 헐레벌떡 달려가보니 그의 집 또한 텅 비여있었다. 드나드는 사립문짝은 다 떨어져나가고 방안과 마당에는 쓰지 못할 물건짝들과 오물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저희 집의 천금을 꿀꺽 삼킨 조침이 뒤가 켕기니 온 식솔을 끌고 어디론가 달아난게 틀림없었다.

《칼탕쳐 죽일 자식, 우릴 속였구나.》

조침에게 속히운 그 밸풀이를 양달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 애비한테 해댔다.

양철이 너무도 분하여 길길이 올리뛰였다. 그 즉시 군졸들과 하인들을 사면팔방에 내몰아 조침을 잡으라 하였으나 천리 지경밖에 도망한 사람을 어디로 간줄 알고 잡으리오.

나라안에 다시한번 양철과 양달은 웃음가마리가 되고 개코망신을 당하고말았다.

《양씨부자가 수천금 재물을 헛되이 뿌려 만인의 웃음을 자아냈도다!》

이구동성으로 터치는 그 말 한마디에 조소와 야유, 비웃음과 깨고소함이 다 담겨졌거늘 양철부자는 벙어리 랭가슴 앓듯 알알해할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나라의 권세를 한손에 흠뻑 걷어쥐고 충신들을 조정에서 내쫓은 진권은 이제는 임금도 눈아래로 보이였다. 이무렵 조정의 제일가는 벼슬인 정당성의 대내상으로 있던 대야수가 로환으로 전혀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였다. 앓는 몸으로 그럭저럭 조회에 참가하던 대내상이 운신조차 못하자 진권은 형식상으로나마 유지하던 신하의 법도를 뱀이 허울을 벗듯이 완전히 집어던지고 안하무인으로 놀아댔다. 오래전부터 반역할 흥계를 품고 기회를 엿보던 진권은 대내상이 조회에 전혀 참여 못하는 기회를 타서 로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냈다.

본래 진권에게는 서북방 변경의 십여만 정예군사를 총괄하는 진걸과 진형이라는 사나운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진형은 이른바 흉중에 손오의 병법을 품고있고 몸에는 천하의 용맹을 지녔다고 일컫는자였다. 드디여 뱀의 허울을 벗어던진 진권은 변방을 시찰하겠다는 상주문을 올리고 변방을 행차한다는 구실로 진걸과 진형을 은밀히 찾아가 만났다.

이미전부터 만단의 거사준비를 갖추고있던 진걸과 진형이 진권의 흉악한 모의에 쌍수를 들었다. 진권은 그들의 수하에 있던 십만군사를 휘동하여 춘삼월 십일에 회원부의 회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성에 웅거한 진권은 스스로 《회왕》이라 칭한 다음 진걸을 좌군장으로 삼고 오만 병마를 총독하여 회주성에 진을 치게 하고 진형을 우군장으로 삼고 삼만의 군마를 총독하여 달주에 진을 치게 하였으며 양철을 후군장으로 삼고 이만을 총독하여 복주에 주둔하게 하였고 자기는 중군장이라 하고 회주성에 그냥 틀고앉았다.

이어 진권의 령에 따라 진걸과 진형이 이미전부터 준비시키고있던 심복장수들에게 련락을 띄우니 삽시에 그 수하에 수십만의 군사와 사백명의 장수가 모여들었다.

진권은 먼저 반란군을 회원부지역을 평정하는데 내몰았다.

반란군의 사나운 기세에 회원부지역의 크고작은 고을들이 물먹은 담벽마냥 맥없이 무너졌다. 스스로 손을 들고 찾아와 인장을 바치며 진권의 신하가 될것을 다짐하는 관장들도 있었다. 사방 삼백여리의 회원부는 잠간새에 진권의 세상으로 변하였다.

역모를 알리는 봉화가 황성에 잇닿고 패전의 소식이 눈날리듯 조야에 퍼지니 온 나라가 그야말로 죽가마 끓듯 하였다.

임금이 크게 놀라 즉시 조회를 열고 대신들을 모여놓고 의논하였다.

《진권이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여 반란을 일으켰도다.

진권이 하나라면 모르겠는데 그 동기들인 진형과 진걸이 무예가 출중하고 수하에 정예군사 십여만을 거느렸으니 무슨 계책으로 강적을 파할고?》

문무대신들이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꾹 다물고 묵묵부답이였다.

서로의 눈치만 보며 침묵하는 신하들을 둘러보며 임금이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짐이 덕이 없어 역적의 란을 당했으나 이 숱한 신하중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려는자 한명도 없단 말인가. 장차 종묘사직을 어찌 보존하리오.》

어느덧 임금의 눈에서 비애의 눈물이 슴새나왔다.

정당성의 좌윤 고연이 그 침통한 기색을 눈치보며 나섰다.

《지극히 생각해보건대 지금 조정안에는 뛰여난 지모를 가진자 없고 밖에는 특출한 용맹을 가진 장수가 없사오니 어찌 적을 대적할수 있겠나이까.

엎드려 바라건대 페하께옵선 조서를 내리여 각지에 있는 현명한 재사와 영웅들을 모으셔야 할줄 아옵니다. 그러면 산속에 묻혀있는 재사들과 영웅들이 반드시 나올것이니 그들에게 병권을 맡기시면 어찌 도적을 소탕 못하고 진권을 잡지 못할가 근심하리까.》

다른 방책이 없는지라 임금은 고연의 말을 쫓기로 하였다.

임금은 즉시 조서를 내렸다. 이어 중대성의 우상인 리엄에게 명령하여 문적원 백사장에 황금대를 차리고 사방에서 모여드는 영웅들을 례의로써 맞이하라는 지시를 주었다.

이무렵 나라에 변고가 생긴것을 알지 못하고 황운은 태명산 도사에게서 여전히 도술을 배우는데 전념하고있었다. 이제는 도사의 신비한 술법을 다 배워 그 재주는 천하에 대적할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하루는 도사가 황운을 불러 정색하여 물었다.

《간밤에 천문을 보았느냐?》

《이상하게도 련일 구름이 가득하여 자세히 보지 못하였나이다.》

《오늘밤엔 하늘이 맑을것이니 자세히 살펴보라.》

《알았소이다.》

그날밤 황운이 하늘을 우러러보니 삼태성가운데의 왼쪽별이 자리를 떠나 살기를 띠고있는데 자미성을 침범하여 광채를 잃고있는것이 아닌가.

황운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이는 분명 좌상 진권이 반역하여 성상을 침노함이로다!)

저도모르게 숨소리가 가빠지고 두주먹이 불끈 쥐여졌다.

이때 도사가 찾는 소리가 들려 황운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천문을 보니 어떠하더냐?》

황운의 목소리가 분노로 떨리였다.

《삼태성중에 왼쪽별이 자리를 떠나 살기가 가득하오이다. 이는 필경 진권이 불측한 흉심을 품고 반역하여 옥좌를 침범하려고 하는게 분명하오이다.》

도사가 빙그레 웃음을 띠우더니 황운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무엇을 뜻하는지 황운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황운은 덥석 머리를 수그리며 무릎을 꿇었다.

《소자의 가문은 대대로 발해의 봉록을 먹으며 살아왔거늘 제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나라를 받드는 충의지심이야 남보다 못하리까. 하물며 우리 집안의 불공대천의 원쑤인 진권이 대역부도죄를 범하였으니 그놈은 소자의 원쑤이자 곧 발해의 원쑤이오이다. 그러니 소자가 이제 세상에 나가 역적의 머리를 베고 나라를 구원하여 성상의 은혜를 갚사옴이 응당한 본분이 아니겠소이까.

그러나 소자의 몸이 만리밖에 있고 또 몸을 보신할 무기가 없사오니 날개없는 봉황의 신세와 다를바 없은즉 어찌 한스럽지 않겠나이까.》

도사가 껄껄 웃었다.

《하늘이 영웅을 내렸을적에야 반드시 조물주가 응하는 법이라 어찌 병쟁기 없음을 원망하느뇨.》

황운이 어안이 벙벙해서 도사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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