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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 4 장


전류는 흐른다


9


서재필은 온밤 뜬눈으로 새웠다. 입원실창가에 걸린 환한 달빛이 그가 있는 방을 넌지시 들여다보고있었다. 달빛을 마주하고 누운 서재필은 절로 마음이 울적해졌다.

갑자기 일손을 놓아버린 왼손은 자꾸만 뭔가 잡지 못해 안달이다. 당장 2호발전기시운전을 앞두고 침대에 편안히 누워있자니 속이 답답해나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로동의 보람을 한껏 누려가는 지금에 와서 일손을 놓으면 당장이라도 죽어버릴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굴곡많던 지나온 생을 조용히 더듬어보게 하였다. 어린시절 아버지없는 애라고 동네아이들에게 놀림받던 일이며 아버지를 내놓으라고 애꿎은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자꾸 쥐여뜯어 어머니도 울리고 자기도 울던 일, 전후 마음도 육체도 가장 어려운 때 자기의 집에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셔주던 리당위원장의 모습, 환희로 넘치던 기쁨과 감격… 림종의 시각 아들의 손을 꼭 잡은채 남기고간 어머니의 당부.…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으나 서재필은 어머니앞에 떳떳한 아들로 나서지 못하였다. 매해 추석날이면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 속죄의 심정으로 술을 부으면서도 들끓는 시대의 한복판에 과감하게 뛰여들지 못하고 쥐꼬리만 한 용접기술을 놓고 코대를 세웠으니…

화력발전소조업식때 영광의 자리에 서지 못한 아쉬움을 한 인간의 개인적감정에서 찾고 마음에 서리가 일도록 그 일을 옹치고 살아왔으니 지금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게 다 고양이낯짝만큼이나 속통머리가 좁은 용렬한 처사로 여겨졌다.

그때 일을 두고 사람의 한생에 쉽게 차례질수 없는 행운을 놓쳐버렸다고 땅을 치며 통분해한 일도 얼굴 뜨겁게 생각된다. 그래 만사람이 고대하는 그 영광의 순간을 어찌 행운으로 볼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있는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태우며 부강조국건설에 헌신한 사람이면 그 영광의 자리는 얼마든지 차례질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서재필은 한생을 마무리할 나이에 이른 오늘에 와서야 이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허나 그 깨달음뒤에는 서재필이 알게 모르게 힘을 주고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리성복이였다.

서재필이 병원에 입원하여 한달가까이 리성복은 다섯번이나 면회를 왔다. 3일전 면회온 리성복의 손을 잡고 서재필은 발전기동음이 듣고싶어 죽을 지경이니 함께 데려가달라고 어린애처럼 사정했었다. 그런것을 리성복이 별의별 좋은 말을 다하여 겨우 안심시켜놓았다.

리성복은 떠나면서 이제 며칠 있으면 2호발전기시운전이 진행된다고 귀뜀해주었다. 오늘이 바로 2호발전기시운전을 진행하는 날이다.

서재필은 날이 푸름푸름 밝자 입원대기실로 나갔다. 출근시간전에 당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걸걸한 목소리를 들어야 마음의 안정을 느낄것 같았다.

서재필은 송수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전화받습니다.》

수화기공명통으로 처녀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제 서재필입니다.》

서재필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자기 소개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지련희입니다. 아버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이크, 그 처녀로구나!)

서재필은 흠칫 놀라며 귀가까이 댔던 수화기를 뗐다. 그는 지용수국장의 편지를 받고 아들에게 지련희를 단념하라고 욱박질렀던 일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들은 바위처럼 떡 뻗치며 아버지의 의향을 따르려하지 않았다.

서재필은 아들에게 더는 자기의 주장을 내려먹이려 하지 않았다. 한켠으로는 섭섭한 감정도 없지 않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들의 처사에 공감도 갔다. 사랑에는 굴레를 씌울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량부모들이 제아무리 옳고 그른 시비를 따져도 사랑하는 당자들은 자기 기준으로 그 시비를 받아들이기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때부터 가끔 공장구내길에서 지련희를 만나면 별스레 쑥스러워져 올곧게 인사를 받군 했던것이다.

서재필은 후더운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나았다. 그래,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이 잘되느냐?》

《예, 그 기계도 오늘 시운전을 하게 됩니다.》

《용쿠나!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래, 당비서어른은 계시냐?》

《예, 바꾸어드리겠습니다.》

서재필은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붙인채 리성복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조금있어 리성복이 나왔다.

《서동무입니까?… 밤새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일없습니다. 편안히 잤는걸요. 사실은… 솔직한 심정에서 말합니다만… 저도 시운전에 참가하고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재필의 간절한 요구가 담겨진 말마디들은 쿵쿵거리는 심장의 박동과 함께 사뭇 떨렸다.

《서동무 심정은 알만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운전은 꼭 성공합니다. 시운전이 끝나면 내 서동무에게 먼저 알려주겠으니 기다리십시오.》

뜨거운 진심이 어린 목소리가 수화기공명통으로 절절하게 울렸다.

서재필은 더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어도 마음이 지척이면 2호발전기의 동음을 들을수 있다고…

《비서동지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다른 생각말고 병치료에 전심해주십시오.》

서재필은 천천히 입원실로 돌아왔다.

…2호발전기시운전이 진행되는 발전기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 문제는 성에서도 크게 관심사가 되는것이여서 부상과 그아래 일군들이 내려왔다. 그들중에는 과학기술국장 지용수도 있었다.

서재필이네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을 계획했던 날자보다 절반이나 앞당긴것으로 하여 시운전도 그만큼 앞당겨졌던것이다. 이미 회전자축용접이 끝난 후 용접부위에 대한 기술검사가 진행되였는데 용접물에 내부기포나 잔균렬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이 확인되였다.

오전 10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관심속에서 2호발전기시운전이 진행되게 되였다. 시운전의 총지휘는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이 하기로 되여있었다. 시운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2호발전기조작실의 넓은 공간을 꽉 채우고 서로 키돋움하며 무수한 계기들의 동작상태를 살피였다. 그들중 대부분이 회전자축가동의 안전성을 굳게 믿고있었다.

하지만 지용수의 뇌리에는 만약의 경우라는 우려심이 떠날줄 몰랐다. 아무리 용접을 잘했다고 해도 21톤이나 되는 회전자축은 분당 3 600회의 고속으로 발전기타빈을 돌린다. 그 상상할수 없는 거대한 속도의 부하를 용접부위가 꽤 견디여낼수 있겠는가, 어쨌든 4만까지 전력부하를 걸어봐야 알수 있는것이다.

지용수는 오늘 아침 영천화력발전소 시운전에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생각을 키웠다. 사실 지용수는 1차협의회때 서재필에게서 면박을 당한 후 다시는 영천화력에 발길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허나 그 결심은 일순간의 감정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때가 일렀다. 영천에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친구를 믿고 떠맡긴 자식이 아버지가 부디 바라지 않는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있을줄이야… 그래 그 사랑하는 자식만은 지키자고 영천땅에 다시 걸음했건만 그는 믿었던 딸에게서 거절을 당했다. 그때 지용수는 이루 다 헤아릴수 없을만큼 허무감에 사로잡혀버렸었다. 딸은 낳아준 품이 아니라 길러준 품으로 돌아갔다.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가.

친구인 리성복도, 사랑하는 딸 지련희도 모두 지용수, 자기를 멀리하고있다. 자기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은 다가오지 말라고 손을 내젓는것만 같았다.

지용수는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는 리성복과 오랜기간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있다. 사람의 한생에서 반생이라 할수 있는 그 짧지 않은 세월 순탄한 레루우를 달리는 기관차의 방통처럼 맞물려 이어지던 자기들의 관계가 지금에 와서 전복사고직전에 이른것이다.

마침내 지용수는 머리속에 서재필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흘러온 모든 일이 그와 련결되지 않는것이란 하나도 없다. 지용수는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자기와 서재필이 물과 기름이라면 그것을 담고있는 그릇은 지련희이다. 그리고 리성복은 이 그릇에 담긴 물과 기름을 어떻게 해서든지 섞어놓으려 하고있다.

며칠전에도 리성복은 지용수에게 서재필의 면회를 가달라고 부탁했다. 했으나 그는 그럴 용기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아 그만두었다. 마음속으로는 딱히 죄의식이라 찍어 말할수 없는 불안감이 얼기설기 엉켜돌았다.

지용수도 한생을 전력생산에 바친 일군이다. 그래서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 못지 않게 고심도 했다. 그런 그가 서재필이 내놓은 용접안은 어째서 반대했는지 그리고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복구가 완성된 이 마당에는 어떻게 코를 내밀었는지 자신도 알수가 없었다. 이제 2호발전기시운전의 성공여부에 모든것이 결정된다. 자기 한생의 의미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시운전에 의해 명백해질수 있는것이다.

지용수는 근심어린 얼굴로 조작판에 붙어있는 진동계기에 정신을 집중했다. 조작공들이 석남흥의 지시에 따라 2호발전기의 전력부하를 4만으로 올리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침착하게 조작대의 각이한 스위치들을 능란하게 조작하면서 전력부하를 최대한 올렸다. 조작판의 수십개가 넘는 각종 계기들이 저마끔 정상눈금으로 치달아오르고있다. 조작실의 분위기는 다치면 터질듯 팽팽해졌다. 계기들의 눈금을 주시하는 석남흥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곁에 서있던 리성복이 손수건으로 그 땀을 닦아주며 느슨한 웃음을 짓는것이 보였다. 침착하라는 의미일것이다.

진동계기바늘은 정상계기점을 향해 힘겹게 치달아오르면서 애처롭게 떨고있었다. 초긴장의 순간이 한초한초 흘러갔다.

사람들은 가슴을 조이며 진동계기를 지켜보고있었다. 진동계기바늘이 차츰 떨기를 멈추고있었다. 발전기동음만 울려올뿐 누구도 일언반구없다. 드디여 진동계기의 바늘이 30미크론에서 멎어섰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공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위는 얼어붙은듯 조용하다. 너무도 벅찬 성공의 희열에 그만 억이 막혀버렸는가?… 아니면 성공이 믿어지지 않아서?…

이때였다. 조작실 맨 끝에서 시운전을 지켜보던 서봉철이 끝내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웨쳤다.

《성공이다!》

그제서야 정신을 버쩍 차린 조작공들이 앉은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섰다. 조작실은 삽시에 환희의 바다로 뒤설레였다. 사람들은 기쁨에 울고웃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리성복의 얼굴에도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진액같은것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는 혼자 울고있는 서봉철에게 다가가 말없이 와락 끌어안았다.

《비서동지!》

서봉철도 리성복의 품에 힘껏 안겨들었다. 리성복은 이 순간에도 서재필을 생각했다.

(서동무, 기뻐하오. 우린 끝내 2호발전기를 살려냈소. 장군님께 올린 맹세를 지켜냈단 말이요!)

그의 눈앞에는 지금 이 시각도 우리 로동계급을 찾아 그 어느 험한 길을 걷고계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리운 영상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리성복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러 마음속 진정을 담아 삼가 아뢰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우리 영천화력발전소 로동계급은 숨죽었던 2호발전기를 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이 시각 첫 전기생산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제힘을 굳게 믿습니다. 앞으로 오늘보다 더 어려운 시련과 난관이 겹쌓여도 웃으며 헤쳐나갈 신심이 넘칩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발전소사람들은 흥분된 마음을 도무지 진정할줄 몰랐다.

지용수는 그냥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속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는 자기가 혼자라는것을 의식했을 때 무서운 고독감을 느꼈다.

(아, 나는 어째서 저 사람들처럼 성공의 기쁨을 맛볼수 없는가?)

그는 자신을 끝없이 타매했다. 그는 자기자신만을 위한 생은 그것으로 끝나지만 조국과 인민을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한 생은 영원하다는것을 이 순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바로 그 영원한 생의 아득한 높이에 서재필이 서있었다. 자기는 국장으로서의 지위는 높아도 인간으로서는 견줄 도리가 없는 발바닥에 나딩굴고있는것이였다.

지용수는 머리를 푹 떨군채 사람들속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는 2호발전기 주위에 모여 웃고 떠드는 사람들과 마주서기 저어하며 주춤거렸다.

그의 심중을 헤아려본듯 리성복이 그를 찾았다.

《국장동무!》

지용수는 민망스러워 그를 마주볼수 없었다. 목소리가 절로 갈려나왔다.

《난 이 자리에 서있을 면목이 없는 사람이네.》

지용수는 엄습해오는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난 동무의 심정을 리해하오.》

《…》

리성복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가지 기쁜 일이 국장동무를 기다리고있네. 자, 어서 자력갱생직장으로 가자구. 련희와 서봉철이 완성한 용접봉심선절단기 시운전이 있네. 련희를 축하해주어야지!》

지용수는 리성복에게 이끌려 자력갱생직장으로 갔다. 거기서도 2호발전기시운전의 성공적인 소식이 전해져 막 끓고있었다.

련희가 만사람의 기대와 관심속에 가동스위치를 넣었다. 서봉철은 자체로 수집한 각종 형태의 파철판을 용접봉심선절단기에 밀어넣었다.

《쿠-웅, 쿠-웅…》

용접봉심선절단기는 둔중한 동음을 울리며 1미리의 편차도, 변형도 없이 미끈한 용접봉심선을 련속 절단해냈다. 시운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저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쟀다. 용접봉심선절단기는 1분에 50대의 용접봉심선을 한대의 오작도 없이 절단해냈다. 시운전은 성공적이였다. 모여섰던 사람들이 저마다 용접봉심선소재를 만져보며 좋아라 어쩔줄 몰라했다. 그들은 서봉철과 련희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딸은 가슴뿌듯이 차오르는 긍지감과 무한한 행복으로 얼굴이 발그레하니 익어있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사람들 뒤켠에 서있는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보았는지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련희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였다.

《련희야, 정말 용타!》

지용수는 진정 감심된 목소리로 딸을 축하해주었다. 딸은 끝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것이였다. 아니, 자기가 딸의 아름답고 진실한 정신세계속으로 들어선것이였다.

뒤미처 서봉철이 다가와 깊이 머리숙여 인사했다.

《제 서봉철입니다.》

지용수는 체격이 미끈하고 갱핏한 얼굴에 박달나무처럼 강단이 느껴지는 서봉철을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며칠전까지도 자기옆에 서있는 이 청년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다. 허나 지금은 얼마나 이상한가. 그렇게도 소원하던 그 감정이 씻어버린듯 없어졌으니… 볼수록 끌끌하고 믿음이 가는 모습이였다. 지금 서봉철과 련희는 아버지인 자기 지용수의 축복을 받고싶어 나란히 서있는듯 하다.

(그래, 축복해줘야지. 헌데 무슨 말로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가?)

지용수는 한동안 갑자르다 용기를 내여 말했다.

《난 너희들이 오늘처럼 보람있게 인생길을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뜻이 깊고 의미가 깊은 축복이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서봉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나서 저만치 서서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리성복에게로 다가갔다.

《고맙네. 내 평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병원부터 들리겠네.》

《그래주게. 서동무도 기뻐할걸세.》

두사람은 뜨겁게 손을 맞잡았다.…

지용수를 바래우고난 리성복은 즐거운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명인국이 들어왔다. 리성복이 부른것이였다.

명인국은 며칠새 얼굴이 수척해졌다. 그는 2호발전기복구문제를 놓고 당위원회에 찾아와 자기 비판을 심각히 하였다. 그는 자신의 결함을 솔직히 터놓았다. 극단한 보신주의에 빠져 자신의 공명을 위해 한 인간의 깨끗한 량심을 저울질해보았다. 그리고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기술실무수준을 따라세우지 못하고 낡은 경험주의에 매달려 자리지킴을 해왔다. 그래 이런 사람을 시대가 부르는 실력형의 일군, 완강한 투지와 정열로 부닥치는 난관을 과감히 뚫고나가는 공격형의 일군이라고 어떻게 말할수 있는가.

명인국은 스스로 기사장자리를 양보하는것이 현명한 처사이고 화력발전소의 장래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며칠전 정식 사임을 제기했었다.

리성복은 그 사임을 심중히 받아들였다. 명인국의 심중을 환히 꿰뚫고있는 그였다. 그의 결심이 하루이틀에 내려진것이 아니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했다. 고민도 많았고 자책도 컸을것이다.

리성복은 그와 함께 고민하고 방도를 찾기 위해 모대기였다. 명인국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였다. 그는 발전소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한 일군이였다. 하다면 그에게서 부족한것은 무엇인가.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에 자신을 부단히 따라세우지 못한것이다. 그랬다, 능력은 있으나 실력은 부족했던것이다.

리성복은 해당 기관과 합의하고 그를 인민경제대학 재직반에 보내기로 하였다. 어제 그의 대학입학이 비준되여 입학통지서가 내려왔던것이다.

리성복은 아무말없이 책상빼람을 열고 입학통지서를 꺼내놓았다.

《기사장동무, 자 받소!》

《?…》

명인국은 뜻밖의 일이라 눈이 휘둥그래져 리성복을 바라보았다.

《많이 배워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소.》

명인국은 선뜻 입학통지서를 받아들수가 없었는지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의 눈에 핑 눈물이 고여올랐다.

《허, 기쁜 날에 그건 뭐요? 어린애처럼!》

리성복이 짐짓 롱을 던지자 명인국은 울먹울먹 부르짖었다.

《당비서동지, 정말… 부끄럽습니다. 비서동지밑에서 오래동안 함께 일하면서도 어째서 혁명에 유익한것을 배우지 못했는지… 저도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할일이 얼마나 많은 우리들이요.》

그랬다, 할일은 어제도 많았고 오늘도 많았지만 래일은 더 많아질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국가건설구상을 받들어 그이의 초강도강행군길에 자신을 따라세우자면 계속 배우고 배워야 하며 뛰고 또 뛰여야 한다.

《자, 어서 받으라구. 그러다 늦어지겠소.》

그제서야 명인국은 그 늦어지겠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달은듯 무겁게 입학통지서를 받아들며 흥분하여 속삭이다싶이 했다.

《꼭 기다려주십시오. 저도 이 전기를 떠나서… 빛을 떠나서 못살 사람입니다.》

《허허… 그렇지요. 우린 누구나 빛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살지요.》

그다음 이마를 쳤다.

《아차, 내 깜빡 잊고있었군. 시운전이 끝나면 서재필동무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리성복은 다급히 송수화기를 들고 적십자병원을 찾았다.

《적십자병원 입원실접수입니까? 제 영천화력발전소 초급당비서 리성복입니다. 내과 1호동 서재필환자를 만나려고 합니다.》

뒤미처 수화기공명통으로는 직일의사의 상냥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예, 지금 옆에서 대기하고있습니다. 바꾸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럼?…》

리성복의 자책감은 실로 컸다.

(그러니 서재필은 시운전소식을 기다려 온 하루 전화곁에서 기다렸구나. 허, 이런 실책이라구야. 제 기분에 둥떠 돌아쳤으니!…)

다시금 수화기공명통이 울리기 시작했는데 리성복은 서재필의 석쉼한 목소리를 제꺽 가려들었다.

《비서동지!》

《서동무, 시운전이 성공했습니다. 자, 창문을 열겠으니 수화기로 발전기동음을 들어보십시오.》

리성복은 송수화기를 들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자 발전기의 힘찬 동음이 쓸어들어왔다. 리성복은 송수화기를 높이 들었다. 2호발전기의 힘찬 동음이 전화선을 타고 힘찬 노래가락처럼 서재필에게 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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