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5 회


제 4 장


전류는 흐른다


8


2호발전기회전자축가공을 책임지고 대안으로 갔던 석남흥이 회전자축가공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도착한 즉시로 대보수직장이 달라붙어 여느때 같으면 한주일도 더 걸리던 발전기조립을 단 삼일에 끝내는 혁신을 일으켰다. 리성복은 작업장에서 로동자들과 침식하며 그들을 힘있게 고무했다. 어느덧 2호발전기는 시운전을 할수 있게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였다. 이제 며칠후에 진행하게 될 시운전은 온 발전소로동계급의 관심사로 되였다.

발전기조립이 끝났으나 리성복은 발전기조립장을 떠나지 못하고 몇번이고 미진된것이 없는가 확인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좌측벽에 걸려있는 벽시계는 밤 9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기 바쁘게 다급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리성복이 전화받습니다.》

수화기로는 야간생산지휘를 나온 생산부기사장의 긴장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비서동지, 4호발전기를 세워야 할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소?》

리성복이 놀라서 물었다.

《예. 500톤의 석탄을 싣고 령창탄광을 떠난 기관차가 고장으로 대건역에 멎어섰습니다. 견인기들이 모두 탄광에 나가있어 화차를 끌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밤중으로 석탄이 들어오지 못하면 부득를 4호발전기를 세울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탄광지원돌격대에 나가있는 리동혁이 동발목을 끌어내리던 도중 위험에 처한 동지들을 구원하고 심하게 다쳤다고 합니다. 그래 탄광병원에서 구급처치를 하고 기관차에 실려 후송되여온다고 합니다.》

(리동혁이 다치다니?!)

리성복은 뜻밖의 소식에 얼굴이 컴컴해졌다. 그의 눈앞에 돌격대의 랑만가 리동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 보나 늘 앞장에만 서있군 하던 그였다.

리성복은 흐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기사장동무에겐 알렸소?》

《사무실에 전화를 하니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 찾아보오. 토론해서 대책을 세웁시다.》

리성복은 다시 병원원장을 찾아 급히 승용차를 타고 대건역으로 나가 리동혁을 마중해올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그는 송수화기를 놓기 바쁘게 기사장방을 찾아 내려갔다.

(발전기를 세우다니? 농촌들에서 지금 탈곡이 한창인데… 아니, 그렇게는 못해!)

리성복이 기사장방에 들어서니 그도 방금 생산부기사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는지 난처한 기색으로 전전긍긍하고있었다. 지금처럼 전기사정이 긴장한 때 발전기를 세운다는것도 말이 아니고 또 그렇다고 15리밖에 있는 석탄을 등짐으로 져올수도 없는 일이고… 방도가 묘연했다.

오랜 침묵끝에 리성복이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기사장동무, 이렇게 합시다. 대건역에서 여기까지 화차를 인력으로 밀어옵시다!》

《어떻게 100톤급화차들을 15리씩이나?…》

기사장은 아연해진 얼굴로 리성복을 바라보았다.

《적위대를 비상소집합시다!》

리성복은 결심이 서자 지체없이 전화로 적위대대장을 찾았다. 그는 현재 정양생활을 하고있는 혁신자들외 적위대원모두를 회관앞마당에 즉시 집결시킬데 대한 비상명령을 내렸다.

30분도 못되여 수백명의 적위대원들이 공장문화회관앞마당에 정렬하였다. 그들속에는 찾지 않았지만 스스로 달려나온 정양생들도 있었다. 회관앞마당은 그들이 든 홰불봉과 전지불로 하여 대낮같이 밝았다.

리성복은 활활 타오르는 홰불봉을 들고 대오앞에 나섰다.

《동무들! 지금 석탄을 싣고오던 기관차가 고장으로 대건역에 멎어섰습니다. 오늘 밤중으로 석탄이 들어오지 못하면 4호발전기가 멎게 됩니다. 우리는 앉아서 석탄을 기다릴수 없습니다. 적위대원동무들! 우리는 이 한몸이 기관차바퀴가 되여서라도 석탄을 무조건 오늘 밤중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내 결심은 대담하게 화차를 우리 힘으로 밀고오자는것입니다.》

리성복의 호소에 적위대원들이 적극 호응해나섰다. 거대한 불바다가 대건역으로 나진 철길옆도로로 물결쳐갔다.

11월초에 들어서자마자 례년에 없이 일찌기 이해의 첫눈이 내렸다. 바람이 불고 싸락눈이 마구 휘뿌려졌다. 사람들이 추켜든 홰불도 향방없이 너펄거렸다. 밤하늘을 자욱하니 메우며 쏟아져내리는 좁쌀알같은 눈은 산악같이 떨쳐나선 이 흐름을 멈춰세워볼듯 점점 기승을 부리며 쏟아져내렸다. 너무도 이르게 닥쳐온 이 추위를 예견못한 사람들이여서 입은 옷은 덧옷이나 걸쳤을뿐이였다. 그러나 누구도 추위에 몸을 떨지 않았다. 가슴들이 달아오른 사람들이여서 시간이 흐를수록 내짚는 보폭이 빨라졌다. 리성복과 명인국이 앞장에서 힘있게 대오를 이끌어나갔다.

대건역에 도착한 리성복은 적위대대장을 불러 중대별로 화차를 분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대군관인 적위대대장은 지금껏 다져오고다져온 전투력을 과시할 때가 왔다는듯 자신만만해 말투도 행동도 군대식으로 절도있게 명령을 집행해나갔다. 중대는 4개로 구성되였고 즉석에서 부직간부들로 중대장을 임명하였다.

첫번째 방통은 리성복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여 끌게 되였고 다음은 기사장, 부기사장과 적위대대장이 한방통씩 맡아 끌게 되였다. 화차가 서있는 대건역홈은 그야말로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졌다. 처음 발전소사람들이 인력으로 화차를 끌겠다고 달려왔을 때 역일군들은 눈이 휘둥그래졌었다. 무게가 100톤이나 되는 화차를 지척도 아닌 15리구간을 어떻게 끌고가겠는가, 어벌두 크지…

리성복은 중대원들이 자기 위치를 차지하자 홰불을 높이 쳐들고 말했다.

《동무들, 힘을 내기요. 전투에서도 선두가 쓰러지지 않고 전진하면 후렬은 따라서기마련이요. 그러니 내 구령에 맞춥시다. 하나, 둘, 영차!》

수십명이 쩌렁쩌렁 울리는 리성복의 구령에 화답했다.

《하나, 둘, 영차!》

철길에 얼어붙은듯 서있던 화차들이 움씰했다. 리성복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차 구령을 쳤다.

《하나, 둘 영차!》

드디여 화차바퀴가 구을기 시작했다. 리성복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화차에 들이대고 힘껏 밀었다. 선두화차가 움직이자 뒤따라 다른 차량들이 동시에 구을러가기 시작했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첫걸음떼기가 힘들지 일단 발동만 걸리면 그 힘은 무한하다. 얼마쯤 왔을가. 리성복은 이미 대오가 지쳤다는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쉬여서는 안된다. 이제 서버리면 주저앉고만다. 이런 때 무엇이 필요한가. 리성복은 머리를 쳐들고 앞을 바라보았다. 열생산직장에서 뿜어나오는 화광이 눈에 보였고 발전기동음이 들려왔다. 저것이다, 리성복은 힘껏 웨쳤다.

《동무들! 발전소가 지척이요. 저 발전기소리가 들리지 않소. 4호발전기가 석탄을 애타게 기다리고있소. 자, 용기를 냅시다. 영차!》

그가 목이 터져나가라 웨친 호소가 은을 냈다. 속도가 떠지던 화차는 그 구을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고 구령에 화합하는 목소리도 배로 커졌다.

기승을 부리며 날치던 싸락눈보라도 이 철의 대오를 당해내지 못하고 멀리로 달아나버렸는지 날씨는 잠풍해졌다. 밤, 잠들수 없는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전기, 오로지 전기, 이 하나를 놓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생의 희열을 느끼는 전력생산자들은 정녕 밤, 밤을 모르는 사람들이였다.

동혁이 발전소병원에 실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명윤희는 며칠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병원에 찾아가볼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가 주저주저하며 도로 들어왔다. 못난 뿔이 잔뜩 돋은 명윤희의 자존심이 끝내 그 걸음을 허락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속이 타서 호- 한숨을 내그었다. 왜서인지 한번 터지기 시작한 리동혁과의 관계는 무르익는 유자열매처럼 점점 더 뻐그러지기만 한다.

명윤희는 그 원인이 전적으로 자기에게만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고무줄도 너무 세게 당기면 끊어진다고 녀자축구경기때 자기를 속인 일을 두고 몇달째 제재의 도수를 높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남자인 리동혁이쪽에서도 꼭같이 나와야 옳은가? 리동혁이 어머니를 모시러 가면서 리발을 해달라던 청을 매정하게 잘라버린것은 백번 미안한 일이다. 그때 그가 어머니소리를 한마디만 비쳤어도 마음을 달리 할수 있었는데!

그 일을 두고 리동혁은 길가에서 자기를 만나도 먼저 외면하고 지나친적이 몇번이나 된다. 그때마다 명윤희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언제까지 그러는가 두고보자는것이였다.

그 찰나 리동혁이 탄광지원돌격대로 령창탄광에 나갔다.

탄광지원돌격대환송식때 명윤희는 그 장소에 있었다. 그때 그는 자동차적재함에 올라 누군가를 찾는듯 긴목을 빼들고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는 리동혁을 보았다. 혹시나 그가 자기를 찾지 않는가 하여 막 달려가려던 명윤희는 한자리에 주춤 멈춰섰다. 한발 먼저 지련희가 리동혁을 만나고있었다.

명윤희는 아쉬운대로 돌아서지 않을수 없었다. 한것은 지련희가 근간에 와서 자기들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것을 알고있겠는데 이제 그 앞에 나타나면 처녀가 자존심없이 먼저 총각에게 화해를 청하는것으로 보일것 같아서였다.

탄광지원돌격대가 떠난 후 지련희가 《동혁동진 네가 나타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하고 말했을 때에야 명윤희는 자기를 맹꽁이라고 후회했다. 사람이 하도 랑만적이다보니 어딘가 희떠운데는 있지만 리동혁의 성실성만은 절대적으로 믿는 그였다.

명윤희는 이제 며칠 안있어 이동리발차로 령창탄광에 나가게 되여있었다. 그는 탄광에서 리동혁을 만나면 서로의 옹쳤던 마음도 풀고 리발도 멋지게 해주리라 맘먹었다. 그런데 리동혁이 병원차에 실려 명윤회가 찾아가려던 길을 반대로 먼저 올줄이야.…

명윤희는 병원에서 리동혁이 자기를 제일먼저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였다. 괘씸하고 분했다. 아니, 영원히 찾지 않을가봐 겁이 났다. 또 한편으로는 리동혁이 오늘날 영웅적사나이처럼 떠받들리다보니 자기같은건 저쯤 밀어놓지 않았는가 하는 억측까지도 품게 되는것이였다.

이런 때 리성복당비서가 느닷없이 리발소에 척 나타나 청했다.

《머리 좀 깎을가?》

명윤희는 그만 눈이 올롱해졌다. 그렇게 따라다니고 약속을 받아내여도 붙잡을수 없고 와주지 않던 당비서동지가 제발로 찾아오다니 이게 웬 조화람? 슬쩍 곁눈질해보니 머리칼도 별로 길지 않은것처럼 보였다.

《어마, 해가 서쪽에서 뜨는게 아닙니까?》

리성복은 히죽히죽 웃으며 리발의자에 척 앉았다.

《더 늙기 전에 처녀장가 들어보자는거야.》

그것 또한 신비한 일이였다. 당비서한테서 언제한번 들어보지 못한 롱담이기때문이였다. 명윤희는 허리를 부여잡고 까르르 웃었다.

《아유- 그럼 내가 새신랑 단장해주는셈이겠네!》

《그래그래, 새신랑처럼 말쑥하지 않으면 어떤 처녀가 따르겠나. 솜씨를 보이라구.》

명윤희는 《처녀》라는 말을 《사람들》로 들었다. 당일군은 외모부터가 단정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법이다.

한동안 사각사각 리발기를 놀리였을 때 리성복이 불쑥 생각난듯 말했다.

《내 오늘 가발을 쓴것 같은 사람을 보았는데… 윤희가 병원엔 이동리발을 잘 안 나간다는 신소가 있어.》

《어마, 누가 그런 허망창한 신소를?…》

《리동혁이라구 미끈절싹한 총각이 있어. 윤희는 아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롱같았지만 명윤희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그는 거울속에서 당비서가 능청스러운 눈매로 자기를 쳐다보는것을 발견하고 얼굴마저 확 달아올랐다. 어째서인지 당비서의 표정이 차츰 흐려졌다.

《실은 나무랄데 없는 총각이야. 탄광지원돌격대에서 동지들을 구원하고 왼쪽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더군. 생각했던것보다는 괜찮아.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다리가 완쾌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야 한다는거야.》

명윤희는 가늘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희, 래일 오후시간에 짬을 낼수 있겠나?》

《네, 시간을 내겠어요.》

명윤희는 더 생각해볼것 없이 선뜻 대답했다. 묻지 않아도 가발을 쓴 리동혁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달라는 부탁임을 제꺽 깨달았던것이다. 혹시 당비서동지가 우리들의 미묘한 관계를 눈치채지는 않았을가? 그래서 종래로 있어본적 없는 이 뜻밖의 리발소출입도 계획하지 않았을가.

《꼭 그래달라구.》

잠시후 리성복의 머리가 점점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명윤희는 고개를 들어달라고 말하려다말고 흠칫 리발기를 멈추었다. 당비서가 시름을 던듯 끄떡끄떡 졸고있었던것이다.

눈물이 쑥 나왔다. 리성복의 터갈라진 입술, 훌쭉하니 패인 볼편, 볕에 까맣게 탄 얼굴… 전기생산을 위하여 얼마나 드달려다니고 밤을 패였으면 저리도 못쓰게 되였을가. 벌목장에서 여러날 통나무를 메여날랐고 돌아와서는 쉬지도 못하고 또 직접 석탄화차를 어깨를 들이밀어 끌어왔다고 한다. 그러니 언제 눈 한번 붙여보았으랴.

명윤희는 자기네 당비서가 리발의자에서나마 잠시 꿀같은 쪽잠에 들기를 바라며 이윽토록 리발기를 놀리지 못했다.

그날 밤 그는 이리저리 궁싯거리다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동혁을 만날 가슴설레는 래일이 빨리 와주었으면 하는 초조감에 눈이 새록새록해진것이였다.

살그머니 세면장에 나간 그는 리발도구들을 갈기 시작했다. 문득 돌격대로 처음 이동리발을 나갔을 때 리동혁이 남모르게 리발도구를 갈아주던 일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언제인가 잘 갈아놓은 면도칼에 감아놓았던 쪽지편지내용도 떠올랐다. 리동혁은 쪽지편지에 윤희동무는 면도칼이고 자기는 그 면도칼의 날을 세우는 숫돌이라고 적어넣었었다. 지금 그에게는 그 쪽지편지가 없다. 하지만 그의 심장속에는 정으로 쪼아박듯 그 글자들이 깊이 새겨져있었다.…

다음날 오후 명윤희는 공장병원으로 리동혁의 이동리발 겸 면회를 갔다. 리동혁은 키브스를 한 왼쪽다리에 붕대를 감은채 반쯤 누워있었다. 그는 어색해하며 명윤희를 맞으면서도 버릇대로 희떱게 씩뚝거렸다.

《아니, 나야 단골리발사가 따로 있는데 괜한 수고를 하는게 아니요.》

(아직도 단골리발사소리람. 하여튼 그 데설궂은 성격은 못 고치겠는가부지.)

명윤희는 속으로 웃음집이 흔들거리는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짐짓 새침하게 내쏘았다.

《동혁동무가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단골리발사는 리발견습을 끝내고 도에 리발사자격증을 받으러 갔답니다. 아직은 무급리발사예요.》

그러자 리동혁은 벙글거리며 한수 더 떴다.

《아마 그 동문 리발사자격증만 받으면 도급 아니면 중앙급리발사로 소환될거요. 이제 보오. 1년이면 그 동무가 이 영천시일판에 소문이 자자하게 나는걸.》

명윤희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럼 어쩌나? 그 동무가 정말로 소문날 때까지 동혁동문 머리깎을 생각을 못하겠는데. 어때요? 그때쯤 되면 동혁동문 우리 처녀들처럼 머리태를 늘이게 될게고 거기다가 갑사댕기까지 척 매면… 아이, 보기 좋겠네!》

그만 리동혁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내가 졌소. 기다렸소, 윤희동무. 우리 당비서동지가 어제 와서 동무를 보내주겠다더니 그 약속을 지켜주었구만. 이렇게 병원침대에서 동무를 대하니 얼굴이 뜨겁소.》

리동혁은 실지로 얼굴이 벌개져 진심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명윤희는 생긋이 웃으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상처가 아프지요?》

《아프지. 밤이면 쿡쿡 찌르는데 막 죽을 지경이요. 하지만 참을수 있소.》

리동혁은 다리를 매만지며 숨김없이 말했다. 명윤희는 죄스럽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상처에 조심히 손을 가져갔다. 그가 탄광으로 떠날 때 자기가 바래주었더라면 이런 사고가 없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발전소의 속보판은 물론 만나는 사람마다 리동혁의 훌륭한 소행을 두고 입이 닳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고있다. 그것을 어찌 누구나 발휘할수 있는 평범한 일로 볼수 있단 말인가.

수십메터의 가파로운 경사지로 살같이 날아내리는 동발목, 그밑에서 일하는 돌격대원들, 눈깜짝할새면 모든것이 끝장날수 있는 위기일발의 순간 그 날아내리는 동발목을 향해 비호처럼 날아드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리동혁이였다.

명윤희는 이런 사나이를 몰리해했던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그는 원탁우에 면회식료품을 올려놓은 다음 리발도구들을 꺼냈다. 어제 밤 리동혁을 생각하며 밤새 날을 세운 리발도구들이였다. 그는 리동혁이 바라던대로 훌륭한 단골리발사가 되여줄 결심이였다.

명윤희는 리동혁에게 편안한 리발자세를 마련해주기 위해 침대끝에 비닐박막을 펴고 그의 등에 이불도 고여주었다. 리동혁은 명윤희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자 아픔이 저절로 사라지는것 같았는지 비죽이 웃었다.

명윤희는 빗으로 더부룩한 그의 머리를 차분하게 빗어주었다. 그리고는 리발기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리발기소리는 귀맛좋게 들려왔다. 명윤희에게는 뭉청뭉청 깎아지는 쓸모없는 머리칼도 어째선지 소중하게 생각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리동혁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혁동무, 난 일생 동무의 단골리발사가 되겠어요. 반대없겠지요?》

그의 마음속 속삭임에 리동혁도 기껍게 화답하는듯 했다.

《윤희, 난 한생 동무에게 머리를 맡길셈이요. 좋지?》

사각사각 리발기소리는 두 청춘남녀의 속삭임인듯 입원실안을 살틀히 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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