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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3 회


제 4 장


전류는 흐른다


6


리성복은 아침해가 미륵령에 빠끔히 얼굴을 내밀무렵 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싣고 떠나는 기관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서재필이와 봉철이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마지막용접을 진행하는 날이였다.

령창탄광으로 탄광지원돌격대를 뭇고 떠나올 때 리성복은 서재필과 약속을 했었다. 회전자축용접이 끝나는 날 석탄을 가득 싣고 내려와 축하해주겠다는것을, 탄광을 떠나기에 앞서 발전소에 전화를 걸어보니 서재필이 아침 일찍 출근하여 작업준비를 하고있다는것이였다.

리성복은 서재필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이름할수 없는 련민의 정을 느꼈다. 그는 용접면을 틀어잡은 서재필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려 마음이 뒤설레였다. 한시라도 빨리 달려가 투박한 그의 손을 힘껏 잡아보고싶었다.

리성복은 기관차가 더디게 달리는것만 같았다. 차창밖으로 멀어져가는 령창탄광쪽을 바라보느라니 석탄이자 전기고 전기자 석탄이라고 오직 전력증산을 위해 힘겹게 동발목을 끌어내리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돌격대원들의 모습이 서물서물 가깝게만 안겨들었다.

돌격대원들은 자기들의 땀과 노력이 슴배인 증산된 세 차량의 석탄을 실은 화차를 발전소로 떠나보낼 때 저마다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집에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저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달라, 2호발전기회전자축용접에 땀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우리 몫까지 합쳐 인사를 해달라고 당비서에게 부탁했다.

리성복은 한아름에 다 안기에는 너무도 아름찬 불덩이같은 부탁을 안고 발전소로 돌아가는것이였다.

화력발전소의 탄광지원돌격대는 그간 많은 일을 해놓았다. 그들은 미륵령에 전투장을 정한지 보름사이에 수백립방의 동발목을 찍어냈다. 이틀전 탄광지원돌격대로 후방물자를 가지고 올라왔던 탄광지배인은 상차장에 쌓아놓은 산더미같은 동발목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그는 탄광지원돌격대의 일솜씨에 탄복하고나서 그길로 탄광에 내려가 화선식정치사업으로 탄부들의 열의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는 돌격대의 전투력과 헌신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발전소에 바쳐가는 서재필과 봉철의 투쟁모습을 적극 따라배울데 대해서도 강조한 모양이였다. 이로 하여 리성복이 발기한 탄광지원돌격대의 로력적위훈은 온 탄광마을을 감동케 했으며 덧붙여 발전소의 보배덩이로 떠받들리우는 서재필의 이름과 함께 2호발전기의 복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것은 2호발전기의 복구자 높아진 석탄생산량이라는것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때문이였다. 그런 사정으로 며칠전 지배인은 생산총화뒤끝에 《신들메를 바싹 조여야겠소. 지금 서재필아바이가 용접하는 2호발전기회전자축만 성공하면 석탄을 무한히 요구하겠는데 그때 가서 벌벌 기지 말구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소.》 하고 말했다고 한다.

동발목이 보장되면서부터 령창탄광의 석탄생산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막장마다 전투속보판에는 《화력발전소에 더 많은 석탄을!》, 《주인구실을 다하자!》 등의 표어들이 나붙어 탄부들의 심장을 끓게 했다. 오늘도 령창탄광은 그전에 비해 더 많은 석탄을 실어 화력발전소로 떠나보냈던것이다.

리성복은 차창밖으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단가슴을 식히며 흐뭇한 눈길로 풍요한 가을풍경을 바라보았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은 끝간데없이 펼쳐졌고 산골특유의 층층다락밭엔 누렇게 익은 강냉이가 무겁게 매달렸다. 논에는 산골짝마다 흘러내리는 실개천을 젖줄기로 봄내, 여름내 살찌워진 벼이삭들이 총총히 여물어 미풍에 흐느적이였다.

기관차가 어느 산간역을 지나는지 한창 무르익어가는 들크무레한 산열매향기가 가을바람에 실려 물씬물씬 풍겨왔다. 리성복의 흥그러운 마음에 곡조를 더해주듯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울린다.

이제 석탄을 싣고 발전소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은 연료과장 김일로일것이다. 김일로는 한달전에 연료과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를 연료과장으로 추천한 사람도 다름아닌 리성복이였다. 먼저 과장이 년로보장으로 집으로 들어가고 새 과장을 임명할 때 론의가 많았다. 화력발전소에서 연료과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발전소의 신입로동자도 알고있는 사실이여서 더 말해 무엇하랴. 행정일군들이 이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있을 때 당비서가 기사장을 찾아왔다.

《기사장동무, 내 신통한 사람을 골랐는데 어디 보겠소.》

기사장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만난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입니까?》

《그런데 공짜로는 안되오. 기사장동무의 마음에 들면 무엇으로든지 보상을 받아야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난 원체 공짜를 모르는 사람인걸요. 어디서 데려옵니까?》

기사장은 리성복의 롱을 자연스럽게 받아주며 애끓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데려오긴 어디서 데려오겠소. 우리 발전소사람이지.》

《?…》

기사장은 지금껏 고르지 못한 사람을 당비서가 흔연스레 골랐다니 의문스러우면서도 궁금도 했다.

《난 김일로동무를 추천하오.》

《예, 김일로동무라니요?》

기사장은 저으기 놀라하며 화등잔만큼 눈이 커졌다.

《왜, 믿음이 안 가오? 난 그 동무를 믿소! 그 동문 책임성도 높고 사업능력도 있는 사람이요. 내 료해를 해보았는데 이젠 성격이 딴 사람이 됐다는거요. 가정살림도 잘하고… 그러니 직책을 맡겨봅시다.》

리성복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만큼 책임성이 강하고 사업수완이 있는 사람도 드물다는것을 기사장이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사실말이지 그의 성격적인 결함과 복잡한 가정문제만 아니였대도 기사장은 선참 김일로를 선출했을것이다. 그러니 뜻대로 되여가는셈이였다. 이와 함께 역시 사람을 보는데서는 리성복을 따를 사람이 없을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좋습니다. 비서동지가 보증한다니 나도 찬성입니다. 그 친구 믿음만 주면야 본때나게 일할겁니다, 원체 휘발유같은 사람이니까요. 하하.》

이렇게 되여 연료과장은 김일로가 임명되였다.

리성복은 기관차가 화력발전소에 도착하기 바쁘게 곧장 2호발전기회전자축용접이 한창인 공무직장작업장으로 달려갔다. 작업장에는 두대의 용접기에서 일어나는 불꽃이 맹렬하게 뿜어오르고있었다. 기사장과 5월17일보수지휘부 성원들, 공장의 당, 행정부서의 일군들이 나와있었다. 그들은 석탄먼지를 잔뜩 뒤집어쓴채로 작업장에 불쑥 나타난 리성복을 놀라움과 존경의 눈길로 맞이했다.

《비서동지,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기사장 명인국이 리성복의 곁으로 다가오며 인사했다.

《기사장동무도 수고했소. 그래 언제쯤이면 용접이 끝날것 같소?》

《지금 네시간째이니 이제 몇분후이면 끝나게 됩니다.》

리성복은 말없이 긴장한 빛이 어린 얼굴로 용접작업장을 지켜보았다. 주머니를 더듬거리는 그의 손에 빈 담배곽이 잡혔다. 기사장이 얼른 자기 담배를 꺼내여 리성복의 손에 쥐여주었다.

리성복이 라이타를 켜드는 순간 갑자기 작업장을 울리던 용접아크소리가 뚝 멎어버렸다. 이상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주위에 모여선 사람들 역시 약속이나 한듯 몸들이 굳어져 귀를 강구었다.

긴장한 몇초가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또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용접아크소리,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숨소리들이 새여나왔다. 리성복은 허거픈 웃음을 떠올렸다. 용접봉을 다 태우고 새것으로 교체하느라 아크소리가 잠시 멎은것을 너무 긴장하던 나머지 어떤 사고로 착각했던것 같았다.

그런데 용접아크소리는 또다시 멎어버렸다. 거의 동시에 가슴을 섬찍하게 만들며 누군가의 다급한 부르짖음이 모두의 고막을 때렸다.

《아버지, 정신차리세요.!》

틀림없이 서봉철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어떤 사고가 났다는것을 의식하고 사람들이 욱- 작업장안으로 쓸어들어갔다.

선참으로 달려들어간 리성복은 땅바닥에 나른히 쓰러져있는 서재필을 보았다. 그는 전기에라도 감전된듯 꼿꼿한 시선을 발전기회전자축에 겨누고있는데 손에 꽉 틀어쥔 용접고대에서는 아직도 파르스름한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피뜩 스쳐보니 2호발전기회전자축용접은 이미 완전히 마무리되여있었다.

리성복은 서재필을 와락 그러안으며 부르짖었다.

《서동무, 정신차리오. 서동무!》

마침 공장병원 원장이 치료가방을 들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사람들속을 막 헤집고 환자앞에 무릎을 꿇은 원장은 재빨리 구급대책을 취하느라 서둘렀다.

《원장선생, 빨리 손 써주오!》

리성복이 소리쳤다. 원장은 서재필이 쓰러진것이 마치 자기 잘못이기라도 한듯 얼굴이 까맣게 질려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의사의 표정이며 그의 재빠른 손놀림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서재필이 정신을 차린것은 잠시후였다.

《서동무!》

누군가 그를 안타까이 부르고있었다. 서재필은 자꾸만 눈앞을 가리우는 뿌연 안개속을 헤치며 목소리의 임자를 찾기 위해 모지름을 쓴다는감이 헨둥하게 알렸다.

《서동무, 제 당비서입니다.》

리성복은 서재필을 반쯤 안고 목메여 불렀다. 그제서야 서재필은 몸부림치며 힘겹게 눈을 떴다.

리성복의 근심어린 눈길이 자기를 내려다보고있었다. 탄광으로 떠났던 그사이 몸이 몹시 축간데다가 석탄가루에 검실검실해진 그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서재필은 다시금 눈앞이 흐려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얼마나 보고싶던 모습인가. 얼마나 기다려온 사람인가!…

서재필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당비서동지, 난… 해냈습니다!》

머리가 휘휘 돌고 온몸은 천길땅속으로 자꾸 잦아드는것 같았으나 자기가 끝내 성공했다는 행복감으로 그는 시름없이 웃었다. 그러면서도 격한 눈물이 샘솟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는 발전소사람들의 믿음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거의 필사적으로 육체적과로를 이겨내면서 용접전투를 승리로 결속한것이였다.

머리우에서 리성복의 목멘 말이 울려왔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열렬한 박수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으며 서재필은 아득한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져내렸다. 또다시 의식을 잃은것이였다.…

리성복은 그 순간 무언가 심장에 쿵 마쳐오는것이 있었다. 이렇듯 고지식하고 성실한 인간에게 자기가 준것이란 믿음 하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믿음은 이렇듯 화력발전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기적을 낳는 지혜이고 열정으로 되였고 또 비상한 의지와 투지가 되여 서재필로 하여금 쓰러지지 않고 끝끝내 발전기를 살려내게 한 힘의 원천으로 되게 하였다.

아, 고마운 사람!… 그는 고맙다는 인사말보다 더 크고 뜨거운 말을 도저히 고를수 없었다.

문득 머리속에 이런 시구절이 떠올랐다.


탐내지 않더라 로동계급은

동전 한잎도

고급한 생활의 층계를 오르는 사다리도

탐내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령님을 위한 생각으로 한생을 잇고

수령님을 위한 생을 가다듬는

그런 복된 삶이 부러워!


언젠가 서봉철이 공장문화회관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쩡하게 울리며 읊은 시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의 한구절이였다. 리성복은 뜨거워지는 마음으로 서재필과 그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봉철동무, 동문 세상에 대고 소리높이 자랑해야 하오. 이런 훌륭한 아버지자랑보다 더 큰 자랑이 또 어데 있겠소.)

성공의 희열로 웃고 떠드는 사람들속에는 기사장 명인국도 있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어울릴수 없었다. 그만큼 명인국은 자책감이 너무도 컸다.

(내가 과연 그들앞에 어떻게 머리를 들수 있단 말인가. 설사 저 사람들이 나를 용서해준다 해도 난 일생 자신에 대한 환멸감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명인국, 넌 과연 누구를 위한 사람이냐?…)

이 순간 그는 얼마전 당비서와 탄광지원문제를 놓고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때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던 질문이 되새겨졌다. 어찌하여 남의 손끝에 의하여 조종되는 꼭두각시로 변했는가 하는 의혹이였다. 그것이 갑자기 명백해졌다. 자기 리익을 위한 일이라면 낯뜨거운줄 알면서도 상부의 그릇된 요구에 동조하고 아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결국 다른 사람의 량심까지도 서슴없이 짓밟기 시작한것이 결국은 문제의 그 꼭두각시로 변신하게 만든것이였다. 아, 자신을 위해서만 필요한 사람, 그것이 바로 이 명인국이라는 구차스러운 존재가 아니였던가?!

괴로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머리를 들던 명인국은 서재필의 눈길과 마주치자 흠칫 굳어졌다. 뜻밖에도 서재필은 자기를 향해 느슨히 웃음짓고있었다.

(아니, 아니야. 잘못 보았어. 때려도 시원치 않을 놈에게 미소를 보내주다니… 그저 그의 얼굴이 그렇게 보였겠지. 내가 감히 그에게서 웃음을 바라다니?!…)

온몸이 타는듯 한 부끄러움에 명인국은 슬며시 그 자리를 피했다.

서재필은 발전소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속에 떠받들려 곧 중앙병원으로 후송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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