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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2 회


제 4 장


전류는 흐른다


5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작업은 그사이 하루도 중단없이 진행되였다. 래일이면 회전자축용접이 전부 끝나게 된다.

오금녀는 한시간전부터 동구밖까지 나와 령감과 아들이 퇴근해오길 기다렸다. 그들이 2호발전기회전자축용접을 시작한 때부터 언제 한번 마음을 놓지 못한 그였다.

지금 온 발전소의 기대와 관심이 자기 집에 쏠려있다. 요즘은 집대문 돌쩌귀가 불이 달릴 정도이다. 공장후방과에서는 영양보충을 해주라고 고기며 닭알, 펄펄 뛰는 메기를 몇번에 걸쳐 가져왔고 공장병원 원장선생은 서재필의 건강이 념려되여 수시로 찾아와 혈압도 재고 진찰도 하며 약을 주고간다. 그새 당비서집에서 보낸 토끼곰이며 닭곰을 가지고 련희가 세번이나 왔다갔다. 기술발전부기사장집에선 단고기엿을, 기사장네는 찰떡을 쳐가지고 찾아왔었다. 정말이지 온 발전소의 지성이 넘친 지원물자들은 그릇이 모자라 담을데가 없을 정도이다.

자기가 서재필과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이웃들의 관심속에 떠받들린적이 있었던가?… 오금녀는 자기가 지나칠 정도로 낮추어 보아왔던 령감의 금새가 이렇게까지 높아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과 담을 쌓고사는듯 한 령감의 속통머리에 걸핏하면 짜증을 냈고 무슨 팔자에 저런 꼬쟁이령감이 태웠는지 모르겠다고 한탄도 적잖게 했었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 짜증과 한탄이 신통하게 고를수 없는 감사의 말과 찬탄으로 뒤바뀌여졌다. 큰일하는 령감과 아들덕에 길거리에 나서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령감칭찬, 아들칭찬에 이어 자기까지 곁들어 칭찬받으니 말이다. 그통에 오금녀의 어깨는 저도 모르게 으쓱 올라갔다.

며칠전 된장을 사러 식료상점에 갔을 때도 숱한 발전소녀자들이 저마다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줄도 서지 않고 맨선참 된장을 사는 특혜를 지녔다. 판매원도 저울대가 버쩍 들리게 된장을 담아주었다. 그럴수록 오금녀는 인생말년에 새 출발을 한 령감과 혁신자인 아들의 뒤받침을 잘하는것이 발전소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자기의 영예로운 임무라고 거듭거듭 다짐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푸짐한 저녁상을 준비해놓고 이렇게 마중나온것이다.

동암리사무소쪽에서 령감이 아들의 부축임을 받으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오금녀는 반색하며 뛰여갔다. 령감의 낯색이 별스레 창백했다. 하긴 하루이틀도 아닌 수십일간 고열속에서 동이채로 땀을 쏟으며 용접작업을 진행하자니 성한 사람인들 견디여내랴. 아들의 얼굴에도 지친 기색이 엿보였지만 젊은 혈색만은 여전하다.

오금녀는 아들과 함께 령감을 부축여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필은 밥술을 뜨는둥마는둥하고 자리에 누웠다. 온몸의 기운이 땅속으로 쑥 잦아드는듯 했고 심장도 뜨끔뜨끔 아파난다. 그는 며칠전부터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였다. 아침에 서재필을 진찰해본 원장이 펄쩍뛰며 이런 상태로는 용접을 할수 없다고 선고했다. 서재필은 그러는 원장의 손을 잡고 절절하게 말했다.

《원장선생! 내 걱정을 마시우. 난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야 할 몸이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이라구 함부로 맥을 놓겠소. 당조직에서 믿어주구 온 발전소가 우리를 지켜보고있는데… 내 몸 가지고 너무 떠들지 마오. 당비서동지가 알았다간 큰일이요.》

《서아바이, 아바이의 심정은 리해됩니다. 하지만 일을 더 하자고 해도 몸이 건강해야 할게 아닙니까. 아바이의 건강을 책임지고 돌보는건 제가 받은 당적분공입니다.》

《!…》

서재필은 자기에 대해 그처럼 마음써주는 당비서의 진정이 헤아려져 속으로 뜨거운것을 삼켰다. 바로 그런 믿음이 서재필을 오늘까지 이끌어왔던것이다.

반듯이 누워있는 령감에게로 슬그머니 다가온 오금녀는 령감의 팔다리를 사근사근 주물러주었다.

《여보, 내 눈두덩이에 치약을 좀 발라주오.》

서재필이 과로한 용접작업을 하고난 날이면 눈이 쏟아져나올듯 아파한다는것을 오금녀는 알고있었다. 그때마다 《박하치약》을 눈두덩이에 바르면 씨원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좋아했었다.

오금녀는 한생을 용접공남편과 살다나니 치약을 써도 《인삼치약》보다 《박하치약》을 더 많이 썼다. 그는 령감의 주름진 눈두덩이에 조심조심 치약을 발라주었다. 서재필은 시원한 박하향기를 기분좋게 들이마시며 오금녀에게 말했다.

《여보 로친, 오늘 낮에 연료과에 있는 김일로가 처와 함께 후방물자를 가지고 작업장에 나왔드랬소.》

요즘은 서재필이 로친네를 대하는 품이 딴 사람이 된듯 하다. 저녁이면 잠자리에 누워 로친에게 하루 있은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해주군했다. 구태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하루종일 남정네들을 공장에 내보내고 오죽이나 적적하랴 하는 다심한 관심에서 오는 지극히 로친을 위하는 마음일것이다. 그전엔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다. 그전엔 속에 자물쇠를 닫아걸고 누워도 심통머리 바르지 않게 모로 돌아눕군 하던 령감이다. 하지만 근간에 와서 그는 돌연 딴사람으로 변했다. 우선 말투부터 달라졌다. 처음 령감이 《여보 로친.》이라고 다정히 불러주었을 때 눈물이 쏙 나와 아들앞에서 허둥거리기까지 한 오금녀이다. 령감은 젊어서 못다 준 정 죽기 전에 다 봉창할 셈인지 하루하루 늙어가는게 아쉬울만큼 화락하니 자기를 위해주느라 극성이다. 뭐니뭐니해도 로친의 정이 제일이라는것을 늦게나마 깨달은것 같았다.

오금녀도 그러는 령감이 고마와 이렇게 령감과 조용히 마주앉는것을 락으로까지 여기게 되였다.

오금녀는 령감의 말을 기쁘게 받았다.

《그렇수? 내 알기엔 그 집 처가 본가로 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랬었지. 그러던것을 당비서가 밤길 수백리를 찾아가 모셔왔다더군. 이젠 깨가 쏟아지게 잘사는가보우.》

《령감이 그걸 어떻게 아우.》

《부부2중창 안삼불을 보면 알지.》

《그래요? 그 멋진 2중창 불렀수?》

《불렀지.》

《무슨 노래 했수?》

《거 뭐라더라?… 오, 〈우리는 로동자부부〉. 참 듣기 좋더구만.》

두내외는 젊은 부부들도 부러울만치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아들은 볼일이 있다면서 공장으로 다시 나가고 집안엔 두사람뿐이였다.

《거 정말 좋은 노래를 불렀군요. 령감, 그 노래 내 한번 불러보라우?》

《뭐, 로친이? 그 노래 알기나 하면서 그러오?》

《알다마다요. 그 노래 내 몇번이나 불러봤는지 아우.》

서재필은 놀란 눈길로 로친을 새삼스러운듯 바라보았다. 결혼식날에 로친이 마지못해 부른 딱딱한 노래를 내놓고는 여적 들어본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럴것이다.

《요즘 그 노래 텔레비죤에서 방영되는것도 다 들었수다. 그 노래 사연이 깊은 노래인줄 령감은 아오?》

서재필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며 로친을 바라보았다.

《글쎄 우리 장군님께서 어느 한 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면서 공장기동예술선동대의 공연을 몸소 보아주셨다오. 그때 로동자부부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장군님께서 친히 박수까지 쳐주시며 재청을 하시였다질 않소. 난 그 소식을 듣고 우리 장군님께서 어째서 재청까지 요구하셨겠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았수다. 뭐겠수, 우리 장군님께서 로동자부부의 행복한 모습을 보실 때 제일 기뻐하신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수다. 우리 장군님처럼 로동계급을 사랑하시는분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에 내 얼마나 긍지에 넘친줄 아우. 령감도 아들도 로동계급이 아니요.》

오금녀는 눈굽을 훔쳤다. 서재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로친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금껏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로친이 돋보이기는 처음이다. 이런 좋은 로친의 속을 바질바질 태운 후회감에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심정같아서는 로친앞에서 무릎을 꿇고앉아 머리를 조아리고싶다.

(여보 로친, 고맙구려.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인데 난 딴 세상에서 사는 사람처럼 살아왔으니… 정말 면목이 없소. 로친이 말했듯이 우리 장군님께서 로동계급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기에 한편의 노래를 들으시고도 로동자부부의 행복상을 담은 노래여서 그토록 기뻐하시며 재청까지 요구하신 그 가슴뜨거운 사연 내 오늘에야 알았으니… 내 아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보란듯이 살겠소. 진정이요.)

그 심정을 읽은듯 로친이 주름살을 쭉 펴고 살뜰히 말한다.

《령감, 내 그 노래 불러보라우?》

《그래주오. 뭐라더라… 옳지, 군중심사말이요. 내 평가해주지. 》

《좋수다. 이건 령감을 축하해서 부르는 노래우다.》

(원, 로친두. 그러지 않은들…)

오금녀는 뻐기며 말했다. 한번 본때있게 불러볼 심산이다. 서재필은 웃방을 넌지시 건네보고나서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봉철이는 공장에 나갔겠지?》

《아까 나갔수다. 큰일을 제낀다면서… 오금이 근질거려 견딜라구요.》

《그럼 한번 불러보우. 옆집에서랑 듣고 웃지 않게 조용조용!》

《알겠수다!》

오금녀는 령감의 다리를 주물던 손을 멈추고 머리속으로 가사며 곡상을 떠올리느라 애썼다. 령감은 지그시 눈을 감고 로친의 노래를 기다린다. 오금녀가 일어서려는것을 령감이 부디 말려서야 할수없이 앉은 자리에서 감정을 잡아 노래를 불렀다.


구락부요 상점이요 같이 들려서

저녁마다 로동의 자랑 가득히


로친은 제법 흥취를 돋구어 노래를 곧잘 불렀다. 평시엔 게사니처럼 꽥꽥거리는 거센 청이 어떻게 됐는지 울림통을 살짝살짝 두드리며 뽑으니 듣기가 참 좋다. 역시 노래는 감정만 잡으면 음치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래는 서재필의 마음을 후덥게 해주며 그냥 이어지였다.


아- 우리는 로동자부부

로동속에 사랑이 젊어간다오


그랬다. 보람찬 로동의 하루를 보낸 이 저녁이 얼마나 좋은가. 또 얼마나 긍지높은 인생인가. 아들은 로동자인 아버지를 둔 자랑을 소리높이 웨치고 로친은 로동자의 행복한 생활을 노래하지… 그 세월과 함께 서재필과 오금녀의 정도 아까운 시절 다 갔다 아쉬워말고 젊은것들 모르게 슬금슬금 꽃피워가니 말이다. 이것이 사는 멋이 아니고 뭔가.

《잘 부르누만!》

서재필은 후더운 정이 싸인 목소리로 로친을 추어올렸다. 로친이 그 나이에 잘 불렀으면 얼마나 잘 불렀으랴. 그 노래 한곡에 그사이 쌓였던 피로가 봄눈처럼 스르르 녹아내리는듯 하다. 로친도 그러길 바래 없는 노죽을 부렸을것이다.

서재필은 로친의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슬며시 잠이 들었다.

한편 집을 나선 봉철이는 부지런히 걸었다. 그때 어머니는 대문까지 따라나오면서 걱정어린 어조로 말했었다.

《힘들겠는데 자질 않고 어딜 가느냐?》

《어머니, 난 일없어요. 공장에 또 좀 나갔다 와야겠어요.》

봉철이 어머니에게 한 말은 사실이였다. 그는 공장에 나가서 래일 할 작업준비상태를 재삼 확인하고 주요하게는 련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오늘 점심참에 자력갱생직장 통계원처녀를 만나 련희동무에게 저녁 8시 장성강으로 나와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처녀는 발쭉 웃으며 그러겠다고 고개를 까딱이였다. 그 웃음은 온 발전소의 관심사가 되여 지켜보는 회전자축의 용접을 담당한 봉철의 부탁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용기가 있다는 무언의 감정표현이였다.

봉철은 회전자축용접을 시작한 이후 련희를 두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로서는 매일이라도 만나고싶었지만 련희쪽에서 반대했다. 한것은 과도한 육체적부담속에서 어려운 용접작업을 하는 그에게 짬이 있으면 밤시간밖에 없다. 사실 그 밤시간을 뺏을수 있는 사람은 련희뿐이다. 지난번 련희는 봉철의 충분한 휴식을 위해 오늘 저녁엔 꼭 만나자는 쪽지편지를 받고도 응하지 않은적이 있었다. 오늘도 그가 약속된 장소에 나오겠는가는 두고보아야 할 일이였다.

봉철은 련희가 오늘까지도 나오지 않으면 체면을 불구하고 당비서의 집을 찾아들어갈 판이였다. 까짓거 핑게댈 일이 없어서…

봉철이 련희를 만나려고 하는것은 그간 만나보지 못한 회포나 나누자는것만이 아니였다. 며칠전 친구들을 통해 련희동무의 아버지가 발전소에 내려왔었는데 딸을 만나고는 훌쩍 가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뭣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새 련희동무의 표정이 말이 아니라는것이다. 친구들은 모르지만 봉철은 련희 아버지가 무엇때문에 왔으며 또 련희가 무슨 일로 얼굴에 그늘을 짓고 다니는지 잘 알고있었다.

(련희동무의 아버지는 내가 써보낸 편지를 받고왔을것이다. 내 그릴줄 알았어. 일이 터졌는걸.)

오늘은 밤이 열둘이라도 련희를 만나 그의 마음속 괴로움을 함께 나누리라 굳게 결심하고 공장에 들려 일을 본 후 강변으로 나온 봉철이다.

구월 보름이라 장성강변에 보름달이 환히 떴다. 달뜨는 밤이면 언제나 그러하듯 장성강물은 온통 진귤빛으로 변해버렸다. 달빛도 빛이지만 발전소 열생산직장에서 뿜어나오는 화광이 달빛은 물러가라는듯 세차게 타번지고있다. 그 화염에 장성강물은 쇠물처럼 절절 끓는듯 넘실거린다. 장쾌한 불바다였다.

봉철은 언제 그 광경에 경탄을 금할새가 없었다. 오늘은, 오늘만은 련희가 약속을 지켜줄가 하는 조바심에 마음은 울렁이기만 했다. 정말이지 오늘 밤은 그를 꼭 만나고싶다. 그는 마음속으로 제발 나와주었으면 하고 몇번이고 빌며 버드나무 우거진 강변으로 헛기침까지 하며 다가갔다. 저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초롱처럼 눈을 밝혔는데 자세히 보니 밤고기군이였다. 봉철은 이젠 밤도 이슥해졌는데 집에 들어가 자기나 할것이지 웬 고기잡이냐고 속으로 눈먼 욕을 했고 밤고기군은 자기대로 이밤에 젊은것들이 웬 련애질 하겠는가고 투덜거리는듯 서로가 헛기침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봉철은 버드나무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련희동무.》하고 불렀다. 몇번이고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다. 벌써부터 속이 단가마처럼 바질바질 탄다. 그래 이번엔 손을 입에 대지도 않고 련희를 불렀다. 그 부름에 약이 바싹 오른 사람은 밤고기군이였다. 아마 다 잡았던 고기를 놓쳐버린듯 뭐라고 쑹얼거리며 낚시도구를 걷었다. 방해군을 피해 자리를 옮기려는것 같았다. 봉철은 그러거나말거나 오직 눈에는 련희의 모습만 꽉 차있다. 몇번이나 불렀어도 련희는 대답이 없다.

(요 맹꽁인 오늘 안 나오는구나. 혹시 마음이 변한게 아닐가?)

속에서 별의별 오만가지생각이 오갔다. 그러던 봉철은 용기를 가다듬고 당비서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서봉철은 버드나무숲에서 나와 동뚝에 올라섰다. 그러던 그는 동뚝우에 서있는 웬 사람을 보고 흠칫 놀랐다. 놀람은 순간에 사라지고 반가움이 그의 온몸을 휩싸안았다. 그가 바로 지금껏 애간장을 말리며 찾고찾던 련희였던것이다.

《련희동무!》

봉철은 꿈속에서도 부르고싶었던 그 정다운 이름을 환희에 겨워 불렀다.

《늦어 안됐어요. 오다가 자력갱생직장에 들려 중번교대동무들에게 도면을 주고 오느라고…》

《그렇소? 그래 기계제작은 잘되오?》

《걱정마세요. 이제 2호발전기시운전과 함께 용접봉심선절단기시운전도 진행할수 있어요.》

련희는 여느때처럼 살풋이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생각했던것처럼 슬픈 인상은 아니였다. 봉철이가 용접에 동원되면서부터 련희는 기계제작을 혼자서 도맡아한다. 며칠전 퇴근길에 자력갱생직장에 들려보니 기계제작이 많이 진척됐다는것이 눈에 띄게 알렸다. 하긴 련희가 없었던들 봉철의 힘으로는 될일이 아니였다. 우선 기사장의 동의를 얻지도 못했을것이다. 그런것을 련희가 기사장을 돌려세워 다시 시작되게 되였고 련희의 기발한 착상으로 기계제작이 완성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던것이다. 결국 자연히 주객이 바뀌여 봉철이 조수격이 되였던것이다.

봉철은 이런 보배덩이 같은 처녀를 알게 되였고 알뿐아니라 오늘은 일생의 길동무로 될 련희를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심정이다. 그는 쇠물처럼 끓어오르는 눈빛으로 련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고마움의 정을 가득 느끼며 련희가 말했다.

《힘들겠지요. 아버님의 건강은 어떠해요?》

《힘들어하는것 같소. 이젠 나이가 있지 않소. 오늘은 내가 부축여 집으로 돌아왔소. 하지만 아버지는 견디여낼게요. 오늘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버지가 뭐랬는지 아오?》

봉철은 련희 가까이로 다가서며 잠시 동안을 두었다. 그리고는 진귤빛이 물든 장성강물결을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진 〈봉철아, 내 오늘 용접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내 젊은 시절도 지금처럼 살았으면 영웅이 되고도 남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참, 돌이켜보면 후회가 막심하다. 하지만 늦게나마 제할바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사는 맛이 나는구나.〉 하시면서 또 뭐랬는지 아오?》

봉철은 이야기를 끊고 다시 련희를 바라보았다. 련희는 봉철의 이야기에 한껏 심취되여있었던지라 어서 이야기를 해달라는듯 조르는듯 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있다.

《어서 말해줘요.》

《그러시며 〈봉철아, 너 요즘도 그 처녈 만나니?… 난 널 믿는다. 처녀야 나무랄데 없지. 아니, 이모저모로 얼싸하지. 난 그 집 아버지가 써보낸 편지도 이젠 탓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야 매한가지니까. 그러니 네 결심이 선 이상 잘 조처해 량부모얼굴에 흙칠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시지 않겠소.》

봉철의 꾸밈없는 이야기에 련희는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봉철동무의 아버지가 자기들의 관계에 너그러운 승낙을 보냈다는 고마움에서가 아니였다. 한것은 한생을 전기와 함께 살아오면서도 그 전기와 떨어져살수 없는 몸이여서 년로보장으로 집으로 들어갔지만 발전소와 숨결을 함께 하고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용접안을 내놓았고 오늘은 년로한 몸이지만 젊은 사람들도 힘에 부친 용접작업을 하느라 애쓰는 서재필아바이의 모습이 영웅의 군상처럼 안겨와 끝내는 눈물을 쏟았다. 이런 성실한 인간을 몰리해하는 아버지에 대한 야속함이 그들먹이 차올라 또 한차례의 눈물을 쏟았다.

(아, 아버지, 아버진 서재필아버님에 대해서 너무도 몰라요. 아버지도 어릴 때 나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센 힘이 전기라고 말했지요. 하다면 그 전기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아버지는 모른단말이예요? 왜 전기와 떨어져서는 순간도 살수 없는 이 사람들을 외면하는가 말이예요. 나도 이젠 그 사람들과 숨결을 함께 하고저 결심한 몸이니 제발 이 딸의 앞길을 막지 말아주세요. 예, 아버지!)

련희는 딸을 영원히 잃은듯 허청거리며 떠나가신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고 또 불렀다.

봉철이도 마음속으로 련희와 함께 울었다. 그는 련희에게 자초지종 묻지 않았어도 그의 마음속에 차있는 고충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해야 할지 몸만 달아올랐지 입은 얼어붙은듯 떼지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하고싶은 말이 그득그득하건만… 한동안 울먹이던 련희가 마음이 진정되는지 봉철에게 물었다.

《래일이 마지막용접이라지요?》

《그렇소. 래일이면 회전자축용접이 끝나게 되오. 아버지도 견디여낼게요.》

련희는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그의 몸 가까이로 다가들며 말했다.

《봉철동무, 난 믿어요. 우리 2호발전기의 동음이 울려퍼지는 그날엔 떳떳하게 부모님들앞에 나서자요.》

《련희, 고맙소. 난 련희만 곁에 있다면 무서울것이 없다고 생각했소. 우리 영원히 저 발전기동음을 지켜가는 전력생산자들로 삽시다.》

《그래요. 나도 빛을 떠나서는 한시도 못살아요.》

그들의 결심이 옳음을 증명하듯 발전기의 동음도 여느때없이 크다. 그 동음소리에 심장의 박동소리를 맞추듯 그들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가슴은 후련하고 래일에 대한 부풀어오르는 기대감이 강렬하게 타오른다.

그들은 영원히 전기와 함께 살아갈 굳은 결심을 길지 않은 말로 약속했다. 그 약속의 무게를 가슴뿌듯이 느끼며 래일에 있게 될 마지막 용접작업을 위해 그들은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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