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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회


제 4 장


전류는 흐른다


2


북창화력발전련합기업소로 기술심의를 나갔던 지용수는 평양으로 돌아가고있었다. 그를 태운 승용차가 영천시가에 들어서자 지용수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영천화력발전소에 들렸다 가기요.》

승용차는 영천화력발전소로 향한 소로길로 돌려졌다.

지용수는 2호발전기복구를 위한 기술협의회에 참가하여 서재필에게 면박을 당한 이후 다시는 영천화력발전소로 발길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서재필이 내놓은 용접안의 과학적담보를 위한 2차기술협의회에도 부국장을 내려보냈던것이다. 그런 그가 부득이 영천화력발전소로 찾아가는것은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얼마전에 편지 한통을 받았다. 편지는 서재필의 아들 서봉철이 써보낸것이였다.

《국장동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영천화력발전소 특수용접작업반 서재필의 아들 서봉철입니다. 이렇게 초면에 서신으로 저의 심정을 아뢰여 미안합니다.

국장동지, 전 지련희동무를 사랑합니다. 련희동무도 저를 사랑합니다. 며칠전에 국장동지가 저의 아버지에게 써보낸 편지를 저도 보았습니다.

전 그때에야 두 집 아버지들사이에 서로 쉬이 넘을수 없는 계선이 가로놓여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편지를 받아본 아버지는 당장 련희동무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했지만 전 아버지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국장동지가 편지에 쓴것처럼 전 그 어떤 리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련희동무와 사랑의 약속을 한것은 아닙니다. 전 련희동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국장동지, 우리가 맺은 사랑에 티끌만큼이라도 그 어떤 사심이 슴배여있다면 전 국장동지에게 이 편지를 쓸 체면도 없을것이고 또 아버지의 요구에 반대의사를 표명하지도 못했을겁니다. 전 우리들의 결합에 두 집 부모들의 의사가 전혀 무시되여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량부모들이 다 자식들의 사랑문제에서 서로가 리상적인 대상을 선택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응당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인 우리들에게도 사랑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장동지, 우리들의 진정한 사랑이 량집 아버지들의 좋지 못한 관계때문에, 단지 그 리유로 서로 갈라져야 한다는 이 비극적인 사실앞에서 저의 확고한 립장을 밝히고저 이렇게 펜을 든것입니다.

저는 련희동무의 뜻이 저와 같은 이상 절대로 우리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아량있는 성의를 베풀어줄것을 진심으로 바랄뿐입니다.…》

편지를 읽어본 지용수는 아연해졌다.

(뭐 아량있는 성의를 베풀어달라구? 담도 크다.)

그는 일이 이렇게 번져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용수는 자기가 써보낸 편지를 서재필과 그의 아들이 본다면 자연히 련희를 멀리할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껏 마음을 놓고있은것도 사실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봉철의 반대의사가 담긴 편지를 받아보고야 자기 생각이 오산이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던것이다.

(지독한 사람들이군. 그래 자존심도 없나? 하긴 자존심 같은건 론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지. 괘씸한 사람들…)

지용수는 부아통이 터지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서재필에게 그만큼 알아듣게끔 편지를 써보냈는데 그것이 도리여 우환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는 서재필의 불순한 의도가 깔리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편지를 쓴 품새를 보니 서봉철은 보통내기가 아닌것 같았다. 그는 담도 크고 배짱도 있어 편지 한장에 쉬이 물러설 용렬한 청년이 아닌게 분명했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을게 아니라는 생각이 펀듯 들었다.

(일이 더 찌그러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사람처럼 바빠난 지용수는 일을 바로잡을 궁리를 짜냈다. 그 궁리란 딸을 평양으로 데려와 당사자인 서봉철과 떼여놓는것이였다.

사실 련희는 현실체험을 더 해야 되였다. 기한전에 현실체험지에서 소환하는것도 안될 일이였다.

지용수는 이 문제에서는 친구인 리성복의 도움을 받을셈이였다. 리성복이 련희를 친딸처럼 여기는터여서 친구의 사정을 외면할 사람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용수는 영천화력에 도착한 길로 리성복을 찾아 그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마침 리성복은 방에 혼자 있었다. 뜻밖에 나타난 지용수를 보고 리성복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온다는 기별도 없이 어떻게 왔나?》

《북창화력에 기술심의를 내려왔다 가던 길에 들렸네.》

지용수는 서류가방을 책상우에 놓으며 리성복과 마주앉았다. 보매 리성복은 2차기술심의때 부국장을 대신 내려보낸 일때문인지 좀 언짢은 기색이였다. 그래도 지용수는 심중한 문제를 토의하려고 온것인만큼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척 하며 허물없는투로 입을 열었다.

《자네 시간이 있겠지.》

품을 놓고 이야기해야 하므로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타를 꺼내 책상우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요구가 그렇다면 시간을 내야지!》

리성복은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해나섰다.

《자, 한대 태우면서 이야기하자구.》

지용수는 리성복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기도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는 몇모금 길게 들이빨아 내쉬며 천천히 이야기서두를 뗐다.

《난 이번길에 련희를 평양으로 데려가려고 하네.》

리성복은 두눈이 화등잔만큼 커졌다. 그는 의문이 가득 실린 눈으로 지용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련희는 현실체험중인데 무슨 리유로 데려가려고 하나?》

《리유야 있지. 이보게, 하나 묻자구. 우리 련희와 서재필의 아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걸 자넨 알고있나?》

지용수는 에두름이 없이 직판 물었다.

《알고있네. 언젠가 련희가 이야기하더군.》

리성복은 새삼스러울것도 없다는듯 흔연히 대답했다.

《그래 자넨 뭐라고 했나?》

지용수는 성급히 물었다. 뭔가 일이 상서롭지 않게 번져간게 아닐가 하는 불안에 목이 다 말라들었다.

이때 긴장해진 방안분위기를 깨치는듯 전화종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리성복이 전화를 받으려 하자 지용수가 먼저 송수화기를 들었다놓으며 《실례지만 어서 내 물음에 대답해주게.》하고 말했다. 그것으로 하여 분위기는 자못 더 팽팽해졌다.

리성복도 남의 방에 와서 주인행세를 하려는 지용수의 처사에 못마땅함을 느끼며 주저없이 의사를 표명했다.

《서봉철은 훌륭한 청년이니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변치 말고 영원히 사랑하라고 고무를 주었지.》

《자네가?…》

지용수의 온몸은 일시에 굳어져버렸다. 그는 리성복이 자기의 물음에 속죄의 심정에 싸여 어물쩍 넘겨버릴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 꺼리낌없이 그들사이의 관계를 적극 지지해주며 고무까지 해주었다니… 과연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왜, 내 잘못 말했나?》

리성복이쪽에서 오히려 이상스럽다는듯 한 어조였다. 지용수는 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는것을 의식하며 울컥 노여움을 터뜨렸다.

《여보, 성복동무, 섭섭하구만. 자넨 우리 련희를 남같지 않게 여긴다면서 그 애의 앞길에 대해선 너무 생각지 않는것 같네구려. 난 자네를 믿고 련희를 여기 화력발전소로 내려보냈는데…》

지용수는 너무 섭섭하여 말끝도 채 맺지 못한채 반쯤 타버린 담배를 재털이에 우직하게 꺼버렸다. 그는 리성복이 련희의 문제에 이렇게 성의없이 나올줄은 정말 몰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딸애를 여기로 내려보내지도 않았을것이다. 그래도 눈도 채 뜨지 못하고 어머니를 여읜 딸애를 위해 친부모가 되여준 그 마음이 고마와 이 길로 떠나보냈건만… 그렇지만 지금껏 그가 련희에게 쏟은 남다른 정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너무도 뜻밖의 일에 머리가 다 핑 돌았다. 어쩌면 자기 친딸이상으로 손때를 묻힌 련희를 옆집자식처럼 여기는가. 이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식어졌다는건가. 그럴수도 있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산천만 변할텐가. 여기까지 생각이 치달아올라가자 리성복을 어제날처럼 믿은것을 끝없이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마저 듣게. 서봉철은 처녀라면 누구나 반할만 한 좋은 청년이네. 인격으로나 또 기술적측면으로나 누구든 본받아야 할 그런 청년이란 말이네. 난 련희가 눈이 바로 배겼다고 보네.》

리성복의 설복이 지용수의 귀에 마이동풍격이였다.

《자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난 그의 아버지를 알아도 잘 아네. 자넨 지내보지 못해 다는 몰라. 그는 겉과 속이 다른 무서운 사람이네.》

지용수는 한손을 마구 휘저어대며 자기 주장을 세웠다. 그 말이 어떤 아픔을 건드렸는지 리성복은 갑자기 두손바닥으로 책상을 힘껏 눌러짚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겉과 속이 다르다구, 자넨 서재필에게 죄를 졌어! 일생 갚지 못할 죄를 말이야. 그러구도 뭐가 어쨌다구.》

《뭐라구?》

지용수도 맞받아 일어섰다. 두사람은 성난 황소마냥 마주섰다. 방안 분위기는 다치면 터질듯 팽팽해졌다.

《자넨 서재필이라는 인간의 가슴에 칼을 박은 사람이야!》

《뭐? 칼을 박았다구? 허-》

지용수는 어이가 없어 허구픈 탄식을 터뜨렸다. 그러거나말거나 리성복의 입에서는 기관단총의 련발사격같은 말마디들이 거침없이 튀여나왔다.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듣소. 이미 세월은 흘렀지만 화력발전소조업식때 공장당위원회에서는 서재필동무도 조업식에 참가시키라고 했는데 동무는 그를 이동작업지에 떨구었소. 바로 자네가! 그러다나니 서재필동무는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을수 있는 기회까지 놓치게 되였소. 동무는 지난날 서재필동무와의 감정적마찰이 있었다고 하여 그에게 별로 긴요치도 않은 작업과제를 주어 떨굼으로써 그 영광의 자리에서 빼놓았단 말이요. 어쩜 사람이 그럴수가 있소. 난 오늘에 와서야 동무가 무서운 인간이라는것을 느꼈소. 서재필동무때문에 동무가 당한 피해가 뭐나 말이요. 그는 정당한 행동을 했소. 그게 바로 로동계급의 올곧은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그래 서재필동무의 마음속깊이에 간직된 한생의 소원이 한갖 당신같은 사람때문에 짓밟힐 리유가 뭐요? 서동문 지금껏 풀길없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혼자 묵새겼는데 도리여 자네가… 정말이지 내가 다 분하오!》

리성복은 지용수에 대한 억한 심정을 숨기지 않고 터놓았다. 그는 지용수가 이렇게까지 변할줄은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옛 격언에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고 때린 사람은 다리를 꼬부리고 잔다고 했는데 이건 도리여 피해를 입힌 사람이 물속에 빠진 사람의 꼭뒤를 누르는 격으로 짓밟으려고 했으니 어디 될 말인가. 리성복은 이것이 분해났던것이다.

지용수는 그대로 할 소리가 있었다.

《난 자네에게서 지나간 일을 들추는 소리나 듣자고 온게 아닐세. 자넨 그때 일을 다는 몰라.》

《변명하지 말게. 자넨 이제라도 서동무에게 사죄를 해야 하네.》 리성복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용수를 다몰아댔다. 지용수는 생각지 않았던 된벼락인지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렸다.

《됐네.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겠으니 자넨 더 상관하지 말게.》

《상관하지 말라구? 서동문 우리 화력발전소종업원이고 난 그의 정치적생명을 책임진 당비서네. 내 친구로서 충고하네. 자넨 지난날의 그 편협한 처사를 반복하여 이제 다시한번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한을 남기지 않기를 바라네. 지금 서재필동무는 아들과 함께 2호발전기회전자축용접기일을 단축하자고 고열속에서 힘겨운 용접전투를 벌리고있네. 그래 이런 불같은 사람들의 가슴에 또 아픈 상처를 남겨야 하겠나? 그러니 제발 그대로 돌아가주게! 그것이 동무를 위해서나 또 련희를 위해서도 좋을거네.》

《위협인가?》

지용수는 토라진 심사로 내쏘았다.

《자넨 어제날의 지용수가 아니구만. 사람이 왜 그리 옹졸한가, 내 이 말만은 하지 않자고 하다가 하네만 며칠전 서재필동문 날 만난 자리에서 이젠 그 일을 잊겠다고 했네. 보게, 얼마나 도량이 넓은 처사인가 말이야. 그러니 이번에 내려왔던 길에 서동무를 만나 흉심을 터놓기 바라네.》

리성복은 절절한 어조로 그에게 호소했다. 그는 지용수가 그렇듯 뜨겁고 열렬했던 지난날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했으나 지용수의 가슴속에서는 리성복에 대한 고까운 감정만이 부걱부걱 끓어올랐다. 그는 그래도 리성복이 친구의 의리를 귀중히 여겨 련희를 아버지품으로 돌려보낼줄 알았다. 그런데 도리여 기를 쓰고 떼내려 하니 이것이 과연 친구의 의리를 지키는것인가. 련희는 지용수에게 하나밖에 없는 귀한 자식이였다. 하다면 그 귀한 자식의 운명문제에 아버지로서의 권한을 이렇게도 행사할수 없단 말인가. 아니, 련희는 내 피줄이니 응당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이다.

지용수는 설사 그가 누구일지라도 이 문제에서는 아버지이상 진정을 붓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여보게, 내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부탁하네. 제발 련희를 데려가게 해주게. 자네도 딸을 가진 부모가 아닌가, 응?》

지용수는 한풀 꺾인채 거의 사정하다싶이 호소했다.

리성복은 끝내 자기의 심정을 리해하려 하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련희를 친딸이상으로 사랑했다. 어찌 그렇지 않으랴. 낳아준 정보다 길러준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련희와 영희는 한 어머니의 젖을 물고 쌍둥이처럼 자랐다. 련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리성복부부는 어머니없는 그가 애처로와 친딸 영희를 꾸지람했다. 출장길에 색다른 물건을 사도 련희생각부터 먼저 했다. 그렇듯 애지중지 키워온 련희가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평양으로 떠날 때 쉬이 헤여질수 없는 애절한 정때문에 몰래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던가. 평양출장길에서 련희가 보고싶어 한달음에 달려가 힘껏 안아주고싶어도 친아버지와 무던한 이붓어머니에게 더 정을 주라고 마음을 다잡군 했다. 련희가 다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화력발전소로 현실체험을 내려왔을 때에는 멀리 떠나갔던 친딸이 돌아온것만큼 기뻐했다. 언제인가 련희가 친아버지처럼 믿고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서봉철과의 사랑관계를 터놓았을 때 그 고백을 심중히 받아들인것도 그였다. 서봉철의 인간됨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 그는 련희에게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라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래 이 모든것이 그 어떤 의무감이나 책임감에서 출발된 인위적인 정이란 말인가? 아니다. 리성복이 련희에게 쏟은 정이야말로 친구의 의리심과 인정이 화합된 가장 순결하고 가장 깨끗하고 가장 량심적인 인간사랑의 정이였다. 이러할진대 그 진실한 정을 몰리해하는 지용수의 심장은 과연 어떤 심장인가. 피가 뛰고 열이 있다면 이다지도 랭랭할수 있단 말인가?

리성복은 다시금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다.

《여보게, 난 련희를 친딸이상으로 생각하고있네.》

《?…》

지용수는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리성복을 이상야릇한 눈길로 바라보며 마음속에 한가득 고인 억울한 생각을 터뜨리지 못해 모지름썼다.

(성복이, 자넨 달라졌어. 그래 련희는 부득부득 잡아두려 하면서 제딸은 어째서 평양에 떨구려 하나? 난 그래도 친구의 의리를 지켜 영희를 평양에 떨구기 위해 신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는데… 대답해주게. 그래 이것이 진정으로 련희를 위한 큰아버지의 사랑이란 말인가? 제 자식은 아끼면서 친구의 자식더러는 당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라? 그 말이 과연 심장에서 나온 소리가 옳긴 옳은가, 옳은가 말이네!)

지용수는 친구의 의리로서는 너무도 응당한 일을 생색내듯 자랑하기 싫어 영희소식만은 속에 묻어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련희를 위해서도 어지간히 할말은 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네가 우리 련희를 친딸처럼 여겨왔듯이 나도 영희를 남처럼 생각해본적이 없었네. 참 그렇지, 영희어머니에게 일러주게. 영희의 졸업배치지가 평양으로 락착지어졌네. 영희어머니도 기뻐할걸세.》

리성복은 화뜰 놀랐다. 그는 최근에 일에 다몰리다나니 금성정치대학졸업반인 영희를 몇달동안이나 만나보지 못했다. 그는 딸의 졸업배치에 신경쓸 생각도 없었거니와 또 그럴 시간도 없었다. 그런 일로 하여 안해와 다투기도 했었다. 그런데 딸의 평양배치가 락착지어졌다니 어찌된 일인가?

(지용수가 오그랑수를 쓴게 분명해. 그뒤에는 안해가 서있고!…)

리성복은 그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사유는 어떻든지간에 자기는 지용수를 타매할 그 어떤 도덕적권리도 없게 되여버린것이였다. 그는 한동안이 지나서야 겨우 물었다.

《영희의 배치문제로 자네가 뛰였겠지?》

《뛰기야 뭐. 그저 친구의 의리를 봐서 여기저기 좀 선을 놓았지.》

리성복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기를 건네보는 지용수의 얼굴에 비낀 속대사를 읽었다.

(난 자네를 위해 있는 힘껏 뛰였네. 그런데 자넨 뭔가? 련희문제를 그렇게 처신할수가 있나 말일세. 체면이라는것도 있어야지. 그래 련희나 영희를 평양처녀로 만들어 쌍둥이자매처럼 가까이에서 살게 하면 좀 좋은가 말이야.)

지용수는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리성복은 이것이 지용수가 자기에게 내댄 마지막주패장이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그러나 결코 물러설수 없는 그였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당과 조국의 리익이라는 고상한 원칙을 버리고 리해관계에 부합되는 인정에만 끌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더구나 자기는 사람들을 옳게, 진실하게, 충직하게 살도록 이끌어야 할 당일군이 아닌가.

리성복은 큰 숨을 내쉬고 생각하는바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좋네. 그러나 난 수고한 자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수는 없네. 왜냐면 우리 딸이 평양에 떨어지는것이 이 아버지가 바란 뜻이 아니기때문이네. 이보게, 련희를 데려가는 문제는 아버지도 나도 요구는 할수 있지만 강박할수는 없다고 보네. 그러니 결론권은 련희에게 주어 그의 결심대로 해주는게 옳은 처사라고 생각하네.》

《좋네. 내 련희를 만나겠네.》

두사람의 론쟁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지용수는 리성복이 련희를 평양으로 데려가는 문제에선 그런대로 한걸음 양보했다고 생각되여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의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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