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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회


제 5 장. 천리마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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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소 외진 곳에 위치한, 한적하고 조용하던 구내변전소는 불도가니마냥 끓기 시작했다.

전기수리, 동력보수직장, 동력과에서 제일 유능한 기술자, 기능공들이 다 모여들었다. 더우기 대형변압기를 1대밖에 보내주지 못한 ㅊ전기공장에서 많은 전기자재를 싣고 고급기능공들이 달려와 더욱 흥성거렸다.

허리에 안전띠를 맨 연공들이 쇠바줄을 메고 변압기우로 올라갔다. 호각소리가 울리고 부하를 건 기중기차의 기관소리가 힘차게 들린다.

변압기뚜껑을 열고 철심과 권선, 절연물을 들어냈다.

박상근은 김성남과 함께 현장에 나왔다. 변압기개조작업을 도와주고싶었던것이다.

작업복을 입고 비닐안전모를 쓴 박상근은 붐비는 사람들속에 끼워 무엇인가 도와주려고 애썼으나 오히려 방해만 되였다.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하고 전기부속품들을 제 위치에 놓지 않아 혼돈을 주었다.

어쩐지 호흡이 맞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어려워하면서 곁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박상근은 묵묵히 현장을 뜨지 않았다.

변압기알맹이를 다 들어내고 개조작업을 하려는데 갑자기 하늘에 검은구름이 덮이며 비방울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만약경우를 생각하고 준비해두었던 비닐박막을 가져다가 변압기우에 씌웠다. 처음엔 소나기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도 멎을줄 모른다. 대줄기같은 비가 비닐박막우에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박상근은 원망스럽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좋은 날은 다 보내고 일을 벌려놓은데 대한 천벌처럼 생각되였다. 전기에서 습기는 금물이라는데 이제 얄궂은 비때문에 절연저항이 뚝 떨어지게 되면 어쩐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다.

수리공들은 자기들은 찬비를 맞으면서도 변압기안에는 단 한방울도 떨어질세라 비닐박막을 뻗쳐잡고있다. 그밑에서 유진섭과 기능공들은 권선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자기의 실책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없다. 차라리 욕이라도 콱- 해주었으면 속이 시원할것 같다. 말없이 성실하게 수걱수걱 제 할일만 하고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눈굽이 뜨거워진다.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 나는 어찌하여 이런 사람들을 믿지 못했던가.

박상근은 그들과 함께 비바람에 날아갈듯 펄럭거리는 비닐박막을 잡아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눈에 뜨이는대로 일손을 도와주었다. 그를 바라보던 김성남은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조용히 말했다.

《여기 일은 걱정말고 들어가십시오.》

《고맙네. 내 생각은 말고 어서 작업이나 하자구.》

《참, 그러다 감기에 걸리면…》

소박한 그 말속에 스며있는 따스한 인정이 박상근의 가슴속에 흘러들어 마음이 후더워진다. 찬비를 맞아도 춥지 않다.

날이 어두워졌어도 비는 조금도 멎지 않았다. 점점 더 기승스럽게 쏟아졌다, 초고전력전기로건설자들의 의지를 시험해보려는듯…

그래도 생활은 역시 생활이였다. 변압기와 련결하여 쳐놓은 비닐박막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전등이 환하게 켜졌고 식탁과 의자들을 가져다놓았다. 구내식당에서와 가족들이 성의껏 준비한 음식들을 연방 날라왔다. 변압기기름냄새만 차넘치던 비닐박막안에 구수한 음식냄새가 풍기였다.

오래간만에 일해서 그런지 박상근은 시장기를 느꼈다. 김성남이 김이 문문 나는 고기국과 밥그릇을 그의 앞에 먼저 놓아주려고 하자 황황히 사양했다.

《이러지 마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나. 수고한 동무들에게 먼저…》라고 하면서 유진섭이앞에 음식그릇을 밀어놓았다.

속을 덥히기 위해 먼저 술 한고뿌씩 쭉 낸 다음 음식을 들었다. 별맛이였다.

박상근은 외국에도 적지 않게 다녀보았고 큰 연회석상에도 많이 참가했으나 이처럼 맛있게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는것 같았다. 용해공시절 땀을 흠뻑 흘리고난 다음 점심에 영양제식당에서 달게 먹던 음식맛을 다시 느껴보는듯 했다.

식사를 하고난 박상근은 수고한 사람들에게 권하려고 안주머니에 넣었던 고급담배곽을 꺼냈으나 죽탕이 되여있었다.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기능공이 비닐봉지에 꽁꽁 싸넣은 잎담배를 꺼냈다.

《이걸 피워보십시오!》

《고맙소!》

박상근은 그가 주는 종이에 잎담배를 말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무지 말수가 없었다. 종이가 찢어지고 탄탄히 말리지도 않는다. 잎담배 마는 방법을 다 잊어버린것이다. 하긴 마라초를 피워본지도 수십년이 넘었다.

그것을 건너다본 김성남은 조용히 웃으면서 잎담배를 솜씨있게 말고는 그채로 넘겨주었다.

박상근은 오래간만에 피워보는 독한 마라초에 개키워 기침을 깇었다.

그래도 좋았다. 불꽃이 튀여나는 전기로앞에 앉아 쇠물에 마라초를 붙여물던 구수한 그 담배맛이다. 그 시절처럼 음식맛도 담배맛도 사람들도 다 친근하게 안겨온다. 물에서 밀려났던 고기가 다시 물속에 돌아온듯 마음의 평온이 느껴진다. 되돌아올수 없는, 영원히 흘러가버린 그 시절이 되살아나는듯 했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였던가. 일을 하고 또 해도 힘든줄 모르던 그 시절, 서로 돕고 이끌며 화목하던 시절, 수령님께서 불러오신 천리마의 시대가… 고난도 시련도 웃음으로 넘기며 부르던 랑만에 넘친 노래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우리는 자랑찬 사회주의건설자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


X


변압기개조공사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불리한 속에서도 보름이 채 걸리지 않고 끝났다. 그래도 김성남은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이제 가압시험을 이겨내야 한다.

가압시험을 하는 날 기업소 책임일군들과 기술자들이 다 모여들었다.

그동안 공사장에 자주 나와살다싶이 한 박상근과 서승민의 얼굴도 보인다.

유진섭은 한생 전기와 겨루어보았다. 전기란 조금도 용서가 없고 무자비하다. 0 아니면 1, 즉 좋으면 통과요, 나쁘면 그 자리에서 벼락을 치며 된욕을 보게 되는것이 전기인것이다.

주변압기에 송전할 시각이 다가올수록 유진섭은 긴장하여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기도 하고 때로는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자기가 설계하고 시공하여 조작하게 되는 가압시험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고압전기가 투입되였다.

순간 웅- 하는 동음소리가 울렸다. 그에게는 그것이 폭탄소리처럼 들려왔다.

공업주파수의 고유진동에 따라 변압기에서는 《웅-》하는 동음이 여전히 지속되고있다. 유진섭은 청음기를 변압기본체에 댔다. 고르로운 내부진동소음이 귀맛좋게 들린다. 유진섭은 기쁨에 겨워 속삭이였다.

《성-공-입니다!》

와- 함성이 터져올랐다. 정말 큰 문제를 해결했다고 일군들과 기술자들이 유진섭을 둘러싸고 축하해주었다. 박상근은 그에게 다가갈념을 못하고 감동과 회오가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큰 건물처럼 높이 올려다보이는 거대한 주변압기, 자기의 창조물곁에서 떨어지고싶지 않아 쓸어보고 만져보며 어쩔줄 몰라하는 유진섭의 모습을… 그의 주름진 너부죽한 얼굴에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기쁨을 다 받아안은듯 환희로운 미소가 어려있었다.

한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지을수 있는 그런 미소였다.

공장대학출신인데다가 소심한 성격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고 동정하였던 자기였다.

박상근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아니다, 유진섭은 성공하였다. 자기의 성실한 땀이 깃든 창조물로 하여 사회와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존재로 되는것,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행복, 가장 값높은 발전이고 성공이 아니겠는가.…

박상근은 많은 사람들속에 있으면서도 무인도에 홀로 서있는듯 한 느낌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내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박상근은 이 시각 자기자신을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성에 소환되여 올라온 후 언제한번 현장에 나가 로동자들과 어울려 마라초도 말아피우고 구내식당에서 음식도 함께 나누며 무릎을 마주하고 이야기해본적이 있었던가.…

책임일군들이나 만나 협의회나 하고 유람식으로 현장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는 대접을 받고 올라오는 관료가 되고말았다.

현장의 뒤떨어진 설비와 기술만 보았을뿐 장군님께서 바라신다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려는 로동계급의 높은 정신력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나니 그들과 같이 호흡할수 없었다. 물우에 뜬 기름방울처럼… 결국 도와주고싶어도 도와주지 못했고 도와준다는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였다. 로용량문제며 로밑바닥, 주변압기, 내가 시도했던 모든 작전이 죄다 실패로 끝나지 않았던가.… 가슴아프지만 부결된 기술과제제안서를 가지고 내려왔을 때 일이 생각난다. 솔직히 그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그들의 고심어린 설계를 한장이라도 들여다보려 했었던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눈보라치는 겨울에도, 불볕이 내려쪼이는 여름에도 야전차의 운전대를 직접 잡으시고 최전연초소로, 공장과 농촌으로 병사들과 인민들을 찾아가신다.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그들의 지혜와 재능을 찾아주시고 그들을 믿고 고락을 함께 나누고계시지 않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장군님의 사상과 뜻대로 일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타매로 가슴이 아프다. 인생말년에 이렇게 후회가 많을줄이야.…

그럴수록 로동자, 기술자들과 어울려 허물없이 이야기도 나누고 웃기도 하는 김성남이 돋보이였다. 그들을 믿고 대담하게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시작한 김성남이 부러웠다. 이제는 마감단계에 이른 전기로건설!

그렇다, 모든것은 일군들이 어떻게 자기 사람들을 믿고 결심하고 작전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믿음은 성공을 낳고 의심은 실패를 가져온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는것이 가슴아프면서도 다행스러웠다.

박상근은 자기옆에 서서 완성된 변압기를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있는 서승민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기술문제와 외교활동에서 자기의 모사였던 서승민, 그래서 해외작전이 제기되면 늘 그를 내세웠고 성에 소환하려고까지 했었다.

박상근은 그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여보게 서승민동무, 우린 인생말년을 헛되게 사는것 같소. 제힘을 믿지 못하면 할수 있는것도 하지 못하고 남을 쳐다본다는 말이 옳지. 정말 생각이 많아지오. 우리에겐 확실히 천리마정신이 없었소, 천리마정신이.… 괴롭지만 우린 그걸 인정하고 늦게나마 제 넋을 가지고 여생을 살아야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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