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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0 회


제 5 장. 천리마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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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전력전기로의 내화벽돌축조와 수랭관의 수압시험도 성과적으로 끝나고 전극자동승강장치와 자동화설비들이 하나하나 조립완성되여갈수록 박상근의 마음은 초조하여졌다.

전기로조업에서 매우 중요한 주변압기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조업날까지는 이제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과연 유진섭이 해낼수 있겠는지.…

보통변압기도 아니고 특수변압기를 개조하여 그 능력을 두배로 끌어올린다는것은 보통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 기술적방도를 찾지 못하고있는 변압기문제를 수수방관할수가 없어 박상근은 서승민과 함께 현장지휘부로 갔다. 박상근의 의견을 대변하듯 서승민이 심중하게 말을 뗐다.

《변압기의 용량이란 철심과 권선에 의하여 규정됩니다. 그런데 그 용적을 확대함이 없이 그 능력을 배나 올린다는것은… 늦은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시간을 끌지 말고 한대의 변압기를 들여오는것이 옳은 방책일것 같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설사 외교경로를 거쳐 변압기를 들여온다 해도 조업날자는 보장할수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하는 김성남의 어조에는 아직까지도 다른 나라에 기대를 거는데 대한 경멸이 짙게 어려있었다.

그러나 서승민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자기대로 고집스레 주장했다.

《현상태에서는 조업기일보다도 초고전력전기로를 조업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이 문제가 중요한것입니다. 전문공장도 아닌 제강소에서 집채만 한 대형변압기를 해체하여 그 능력을 높여보겠다는건 모험입니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수도 있고…》

김성남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잘랐다.

《조업날자는 위대한 장군님께 맹세드린 우리 강선로동계급의 의지입니다!》

《…》

박상근의 생각은 깊어졌다. 김성남이 말한것처럼 조업기일은 장군님께 맹세드린 날자이다. 책임일군으로서 그것을 놓고 흥정할수는 없다.

호미난방이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하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며 저절로 한숨이 나갔다.

그의 생각을 누르며 김성남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서승민동무에게 진심으로 권고하고싶은것이 있습니다. 따로 만날수도 있겠지만 내친김에 말합시다.

제힘을 믿으십시오. 제힘을 믿지 못하게 되면 할수 있는것도 못하고 남을 쳐다보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 이런 결함은 지난 시기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특히 외교사업으로 해외로 많이 나다닌 서승민동지이기에 진심으로 말합니다. 유진섭동지는 꼭 해냅니다. 우리 믿읍시다!》

《…》

김성남은 그길로 부상과 함께 완공단계에 이른 전기로동체조립장을 돌아보았다. 이때였다. 그들의 앞으로 리규택과 사색이 된 김소연이 황황히 달려왔다. 김성남은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모, 웬일이예요?》

김소연은 조카를 보자 눈물부터 앞섰다.

《글쎄 흑… 어머니가…》

김성남은 가슴이 섬찍했다. 병원에서 오는 걸음이 분명하다.

《그 어머니가 어떻게 되였습니까?》

리규택은 현장의 분위기를 살피더니 지배인을 조용한 곳으로 이끌고가서 그 녀인이 지배인의 친어머니라고 말해주었다.

《예? 우리 어머니라니?…》

너무도 뜻밖의 일에 놀라 눈만 슴벅거리던 김성남은 믿어지지 않는지 고모에게로 성급히 몸을 돌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

소연은 볼우에 흘러내린 눈물을 훔쳤다.

《죄다 사실이다.… 그분은 성남이의 친어머니야.…》

그래도 김성남은 리해되지 않아 머리를 흔들며 웨쳤다.

《그 어머님이… 나의 친어머니란 말입니까?!… 그런데 왜 지금까지…》

《에구, 나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리규택이 머리를 수그렸다.

《지배인! 날 용서하라구.… 난 이미 알고있었수다.… 전기로건설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도 간절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

그러자 옆에 서있던 박상근도 한마디 했다.

《사실 나도 알고있었네.…》

《?…》

그제서야 김성남은 며칠전 안해와 그 어머니에 대한 별스러운 감정을 이야기나누던 일이 상기되며 마음이 괴로왔다.

리규택이 버럭 소리쳤다.

《이러고있으면 어쩐단 말이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지!》

김성남은 무슨 정신으로 급히 달려와 멎은 승용차에 올랐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차를 타고가며 두서없이 하는 고모의 말을 통해 성남은 모든것을 알게 되였다.

병원에 도착한 김성남은 곧장 어머니가 있는 입원실로 올라갔다.

흰 위생복을 입은 의사들과 간호원들이 구급대책을 하느라고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지배인이 들어서자 담당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환자는 혼수상태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습니다.… 맥박도 거의 멎었고.…》

그 말을 확증하는듯 유리병의 액체가 멎었다가는 이따금 한방울… 한방울… 똑… 똑… 떨어진다. 생명의 마지막박동처럼.…

신옥은 그처럼 그립던 아들이 온것도 모르고 눈을 감고있다.

김성남은 조심조심 곁으로 다가섰다. 침대우에 누워있는 낯익으면서도 생소한 녀인의 모습을 보았다. 평양에 갔다오던 길에 태워다준 인상깊은 녀인, 설계실에서 반갑게 다시 만났던 그 고마운 녀인이 분명했다. 사무실에 찾아와 순간이나마 맥을 놓고 앉아있는 자기에게 힘을 주던 이 녀인이 정녕 나의 어머니였단 말인가! 그런줄 몰랐을 때에는 스스럼없이 어머님이라고 존대해불렀건만 정작 친어머니라고 하니 어째선지 낯설어보이고 어머니란 부름이 입안에서 맴돌뿐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문득 아득히 흘러간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치원교양원의 손을 잡고 마당에 나섰을 때 밖에서 기다리고있다가 와락 달려와 자기를 품에 끌어안던 녀인, 간식봉지를 안겨주며 왜 굴뚝우에 올라갔는가고 물으면서도 왜서인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정겨운 녀인이 정녕 어머니였다는것을 커서야 느낀 성남이였다.

대학시절 주소불명의 소포를 받던 일이며 결혼식때 보내준 정성어린 기념품이 생각났다.

그랬다! 그것은 소리없는 어머니의 사랑이였다!

그는 생각 못했어도 어머니는 늘 아들을 생각하고있었다. 태양이 소리없이 이 땅을 얼싸안듯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그의 몸 가까이에 닿아있었으리라!…

가슴아프게 떠오른다, 나에겐 어머니가 없다고, 어머니는 죽었다고 소리치던것이…

아, 성남은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얼마나 생각이 많으셨으랴.…

얼마나 마음이 괴로왔으랴.… 제강소일이 걱정되여, 이 못난 아들을 걱정하시여 사사로운 감정을 누르고 조용히 찾아온 어머니!

어머니란 다 이런 녀인들인가!…

김성남의 두눈에 눈물이 핑그르르 돌며 고여올랐다. 그는 침대곁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이적 목소리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조용히 불렀다.

《어-머-니!》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유리병에서 떨어지기를 멈추었던 액체가 다시 똑똑 떨어지기 시작한것이다. 어머니란 그 부름소리가, 그처럼 기다리며 듣고싶었던 아들의 목소리가 꺼져가던 생명의 등잔에 기름을 부어준듯 다시 피여오른것이다.

안신옥의 감겨진 눈이 파들파들 떨리더니 스르르 눈을 떴다. 어머니와 아들은 한순간 마주보았다. 순간이 백년이런듯…

성남은 다시한번 고요히 불렀다.

《어머니!… 제가… 성남이가 왔습니다!》

얼마나 그립던 아들이였던가!… 얼마나 듣고싶던 어머니란 부름이였던가!…

봄바람에 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처럼…

눈에 고여오른 눈물이 쭈르르 귀가로 흘러내렸다. 안신옥은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성남아!… 내… 아들아!》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성남은 어머니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메마른 손바닥을 뜨거운 눈물로 적시였다. 신옥은 다른 한손으로 아들의 머리며 얼굴을 어루쓸었다, 강보에 싸인 애기를 애무하듯 다시는 영영 헤여지지 않으려는듯…

성남은 머리를 쳐들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는 투정질하던 유년시절의 아이적 목소리로 나무랐다.

《어머니! 강선땅에 오셨으면 아들집에 오셔야지, 어쩌면 그럴수가 있습니까? 예? 어머니!… 어머닌 저를 알아보셨겠는데…단 한마디라도 말할 기회가 그렇게도 없었단 말입니까?》

안신옥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저었다.

《난… 너에게 죄를 졌다!… 어린 너를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성남은 어머니의 초들초들 말라드는 입술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어머니! 전 다 리해합니다!… 이제 전기로를 건설해놓고 떳떳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찾아뵙자고 했는데…》

《고맙다!… 성남아!…》

어머니와 아들은 지금까지 못다 부른 어머니! 성남아!라는 정다운 부름을 말끝마다 붙이면서 다정히 속삭였다, 이 세상엔 자기들밖에 없는듯…

사람들은 어머니와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상봉을 눈물겹게 바라보고있었다.

《성남아… 너 생각나느냐?… 내 그때… 유치원에…》

《참 어머니도, 생각나지 않구요!》

《성남아,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던지…생각나니?》

《그럼요.… 어머니는 굴뚝에 왜 올라갔댔는가고 물으셨지요. 그래서 난 천리마를 탄것처럼 제강소를 내려다보고싶었다고 대답했어요!》

신옥의 입가에 한가닥 미소가 가냘프게 피여났다.

《옳다!… 네가… 그렇게 말했지!…》

안신옥은 그때 일을 다시 생각하는지 미소를 띄운채 아들을 쳐다보았다.

이때 문이 조용히 열리며 영실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인기척소리에 눈길을 돌린 안신옥은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며느리와 손자, 손녀들의 모습을 알아보고 일어나려는듯 몸을 움직거렸다.

《할머니!》

아이들이 할머니의 손을 잡는다.

《설송아!… 설금아!…》

이미 낯을 익혔던 아이들이 할머니품에 안겼다. 그것을 보는 리영실의 눈에도 눈물이 가랑가랑 어려올랐다.

《어머니! 어쩌면…》

안신옥의 눈귀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혔다가 주르륵 주름을 타고 흘러내린다.

《며늘애야… 날… 용서해다오.…》 이렇게 말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뜬 신옥이 침대곁에 둘러서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일별해보았다.…

옆에 다가서는 부상의 얼굴에 그의 눈길이 가멎었다.

어린 성남이를 구원해주었던 그때처럼 고마움이 한껏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부상어른… 난… 이젠 여한이 없수다.… 아들도 만나고… 손자, 손녀들과 며느리… 또 이렇게 좋은분들이…》

신옥은 더 말을 못하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입가에 안연한 미소를 지었다. 이 시각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머니였다.

시부모님들의 권고로 재가한 녀인, 아들의 배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찾아오지 못하고 속을 썩인 안신옥은 연약한 녀인이였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였다. 오랜 세월 멀리에서 아들을 지켜보았다. 아마도 제강소현대화가 순조롭게 진척되였더라면 안신옥은 영영 강선으로 오지 못할수도 있었다. 못난 자식 더 생각한다고 시련을 겪고있는 아들을 도와주려고 달려왔다. 첫 쇠물이 쏟아질 그날을 위해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참고견디였다.

그랬다, 녀인은 연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김성남은 어머니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어머니의 그 유정한 목소리를 다시, 또다시 듣고싶었다.

녀의사가 준비해놓았던 비상주사를 놓았다.

안신옥은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안깐힘을 다해 베개밑에서 깨끗한 손수건에 싼것을 꺼내 아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 성남은 조심히 손수건을 헤쳤다.

누렇게 색이 바랜 자기의 돌사진과 천리마휘장이다.

《!…》

안신옥은 오래도록 아들을 지켜보았다, 아들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가려는듯.…

《성남아, 난 너에게 이것밖에는… 그걸 잘 건사하거라.… 그리고… 나를 저 달마산우에 묻어다오.… 이제… 전기로에서 쇠물이 쏟아지면 난… 죽어도 원이…》 마지막말을 맺지 못하고 안신옥은 눈을 감았다, 영원히…

그의 작은 입술은 약간 벌려져있었다, 무엇인가 못다한 말을 더 하려는듯.…

유리병의 액체가 떨어지기를 멈추었다.…

안신옥은 이렇게 갔다, 강선사람들의 가슴속에 성스러운 부탁을 남기고.…

김성남은 눈물을 거두었다.

어머니가 주고간 천리마휘장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성남은 알았다,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에 어머니가 왜 이 휘장을 주었는가를.…

그렇다, 천리마의 넋, 강선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아버지가 생전에 바라던 지지 않는 강선의 노을을 위해 한생을 바쳐가라는 부탁이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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