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7 회


제 3 장


마음속의 빛은 밝다


10


화력발전소에서는 20일에 한번씩 탄광주재들을 교대시켜 한달에 열흘은 집에 돌아와 가정생활을 할수 있게 하였다.

김일로가 령창탄광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선것은 저녁무렵이였다. 외지에서 집에 돌아온 사람이면 대체로 만사를 제쳐놓고 집부터 먼저 발길이 돌려진다. 스무날동안이나 사랑하는 안해며 귀여운 자식들과 헤여졌던 그 그리움의 정이 오죽하랴. 기다리는 사람들 또한 마음이 먼저 앞서 목이 빠질 지경이 되군 한다.

오늘 탄광주재로 나갔던 4명의 주재원들이 전원 돌아왔다. 신통하게도 그들의 나이는 40대전후들이였다. 그 나이면 꿀물같이 단 가정생활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릴 때이다. 그래서인지 연료과장에게 그간 사업정형을 보고하고는 담배 한대 나눠피울 짬이 없이 모두 오금에 바람이 일어 집으로들 달려갔다.

유독 김일로만은 별로 할일이 없으면서도 이일저일 간참하고 여기저기 발전소구내를 어정거리다가 해가 져서야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에 간대도 그에게는 반겨맞을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그는 열쇠를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예전처럼 썰렁했다. 스무날 전에 탄광으로 떠나면서 펴놓아두었던 밥상도 그대로였고 부엌바닥에 되는대로 놓여있는 실내화도 그 자리에 있었다. 본가집으로 간 안해가 그사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는것을 보여주는 풍경이였다. 쉬이 돌아올 잡도리가 아니였다. 아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김일로는 길게 한숨을 내그으며 을씨년스러운 방안공기를 피해보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토방돌우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가 몹시 썼다. 가정생활자체가 그렇게 쓴것이다.

안해는 김일로가 이번 탄광주재로 떠나기 전날 그렇게 가정생활에 무관심한 사람인줄 몰랐다고 앙탈질을 하다가 딸애를 데리고 본가집으로 가버렸었다. 안해의 본가집은 여기서 2백리밖인 안주시였다.

김일로는 화력발전소에 경제선동을 나왔던 안주시의 극장 성악배우인 김영란을 알게 되였던 10년전의 일을 서글픔속에서 되새겨보았다.

그것은 실로 우연적인 교제라고 할수 있었다. 또 어찌 보면 연분이런듯 그 시작자체가 잘 째인 연극의 한 대목같은감이 들었다. 그때 김영란은 전력생산자들을 축하하여 발전소문화회관무대우에서 독창을 하였는데 모두의 찬사속에 련속 네번이나 재청을 받았다. 그 네번째 지명을 받았을 때 그는 관람석에 대고 화력발전소의 로동계급과 함께 2중창을 부르겠으니 누구든 올라와달라고 청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일로가 흥분된 마음을 안고 무대로 달려나갔다. 이미 가수의 고운 목청과 노래에 열정을 기울이는 진실한 태도, 아릿다운 자태 등에 깊이 심취되고 넋마저 홀리워있던 그였다.

노래선정의 권리가 김일로에게 부여되였다. 그는 제꺽 《같이 가자요》를 선정했다. 그것 역시 미리 마음속으로 준비해둔것이였다. 김영란도 생긋 웃으며 선뜻 동의해주었다.

《좋아요!》

곧 반주가 울리고 두사람은 한쌍의 원앙새런듯 어깨나란히 노래를 시작했는데 첫소절에서 벌써 안삼불이 기막히게 잘 맞는다는것을 당자는 물론 관객들도 놀라움에 싸여 알게 되였던것이다.


언제인가 나를 보고 함께 가자 하더니

오늘은 잊은게지 저 혼자 가는걸봐


그들은 서로가 오랜 기간 함께 배우생활을 해온듯이 마주보며 흥취나게 노래를 불렀다. 2중창은 관중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김일로는 그 노래 한곡으로 관람자들과 전문가들로부터 가수의 천품을 타고났다는 호평까지 받게 되였다. 공연이 끝나자 무대뒤에서 공연을 총지휘하던 예술단 성악과장이 김일로를 직접 찾아와 대뜸 예술단 성악배우로 올 의향이 없는가고 물었다. 마침 예술단에서는 김영란과 호흡을 맞출 상대가 없어 물색중이라는것이였다.

김일로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즉석에서 거절해버렸다.

《희떱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난 한생을 전력생산자로 살리라 결심한 사람이랍니다. 배우동무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극장무대의 화려한 조명불빛은 우리 전력생산자들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지 않습니까. 난 그것이면 만족합니다.》

사내싸면서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력생산자들이 부러울만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답이였다.

아마 그의 의미심장한 말이 김영란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듯 했다. 헤여지면서 그는 김일로에게 수집게 속삭였다.

《오늘의 2중창을 잊을수 없을것 같아요. 무대우에서 조명만 받으면 그 화려하고 눈부신 빛을 창조하는데 열정을 기울이고있을 동무가 계속 생각날것 같고… 이제부터 전 또 짝패가 없는 외토리가수가 되겠지요?》

김일로는 가슴이 터질듯 했다. 이 아름다운 가수가 완곡한 말로 자기에 대한 호감을 고백하고있다는것을 대뜸 깨달았던것이다. 놀라운 일이였다. 자기는 별로 크지 않은 키에 앙바틈한 체격을 가진 수수한 보통로동자에 불과하지 않는가. 주저없이 무대로 달려나온 사내다운 대담성때문이였을가? 아니면 그의 말처럼 단지 외토리가수로 남을 일이 한탄스러워서?…

어쨌든 그후부터 그들사이에는 서로 편지가 오가기 시작했고 반년만에는 김영란이 화려한 극장무대를 떠나 여기 영천화력발전소로 자원해오는 파격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자기는 아무래도 생활의 2중창을 김일로와 함께 창조해야 할것 같다는것이였다. 물론 김일로자신이 불같은 사랑의 호소를 편지때마다 그에게 퍼부은 결과이기도 했었다.

그들은 곧 결혼했다. 처음 그들이 만난 곳은 공장문화회관의 크지 않은 무대였지만 앞으로 꾸려갈 결혼생활무대는 평양의 대극장무대보다 더 크고 화려할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들이 처음 만나 부르던 노래의 선률처럼 노상 아름다운 메아리로 울리지는 않았다. 김일로의 성격은 휘발유 한가지였다. 결혼후 몇년이 지나서부터 그 성격의 도화선에 불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안해의 역증도 날이 감에 따라 높아졌다. 김일로는 그러는 안해에게 처음엔 눈을 부라리고 다음엔 버럭 성을 냈고 도수가 넘자 주먹행사까지 하려들었다.

안해는 남편의 행동에 처음엔 눈감고 다음엔 귀를 막고 나중엔 몸을 떨었다. 음악의 아름다운 선률을 타고 생활해오던 안해가 남아다운데가 있어보이면서도 길들이지 않은 가라말처럼 거친 김일로의 행동에 호흡을 맞출수 없으리라는것은 자명한 일이기도 하였다. 안해의 꿈은 소박하다고는 하지만 내용에 들어가서는 지나칠만큼 화려했다. 안해는 남편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대교향곡의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를 바랐다. 자기는 남편의 지휘봉에 따라 행복한 가정의 연주가가 되고… 허나 남편은 지휘봉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 얼치기지휘자였다. 지휘자가 얼치기니 연주가는 하는수없이 불협화음을 낼수밖에 없었다. 안해가 꿈꾸어오던 행복한 가정이라는 교향곡의 악보는 그렇게 한장한장 떨어져나가다가 나중에는 아주 갈가리 찢기고말았다. 끝내 안해는 남편을 더 리해하려고 하지 않고 딸을 데리고 본가집으로 가버리는것으로 생활의 2중창이라는 무대막을 닫아버렸던것이다.

김일로는 토방에 앉아 담배 두대를 연거퍼 태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대문이 열리며 초급당비서가 들어섰다.

김일로는 뜻밖인지라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돌아왔구만. 방으로 들어가자구.》

리성복은 김일로를 반갑게 대해주며 제먼저 방에 들어가려 했다.

《저… 비서동지!》

김일로는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문앞을 막아섰다. 집은 스무날이나 비여있어 그 꼴이 말이 아니였다. 그의 심정을 충분히 넘겨짚은듯 리성복은 앞을 막아선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알고있소, 위생검열을 온건 아니니까. 자, 들어가자구.》

리성복의 어조는 무겁고도 심중했다. 이쯤되자 김일로도 더 뻗쳐댈수가 없었다.

리성복은 곰팡내가 나는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은 곳곳에서 굳어졌다. 가정살림 10년이면 구살림이나 같은데 변변한 가장집물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니 안해가 본가집으로 갈수밖에… 기름기라고는 영 돌지 않으니…)

그는 방한가운데 뎅그라니 놓여있는 밥상에 아픈 눈길을 주었다. 상우에는 밥사발 두개에 찬공기가 놓여있었는데 찬공기에는 양념장이 누렁지처럼 말라붙어있었다. 아마 김일로가 탄광으로 떠나면서 되는대로 먹고 펴놓은 상이 그대로 스무날동안 보존되여있었을것이다.

그의 눈길이 이번에는 창문옆에 걸려있는 전자벽시계에로 돌려졌다. 그래도 시계의 시간은 꼭 맞아있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자기 의무에 성실한것은 전자벽시계밖에 없는듯싶었다. 그옆에 걸려져있는 월력은 7월달을 가리키고있었다.

리성복은 월력의 어느 한곳에 눈길을 박았다. 7월 25일 날자에 빨간색연필로 진하게 동그라미를 긋고 그밑에 《아버지생일》이라고 씌여져있었다.

그는 눈을 흡떴다. 오늘이 7월 24일이니 래일이 7월 25일 바로 김일로의 생일날이 아닌가. 딸이 아버지의 생일을 손꼽아기다리며 달력에 표시해놓은게 분명했다.

그는 김일로를 돌아보았다. 김일로는 당비서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얼굴에 그늘을 잔뜩 짓고 서있었다. 리성복은 탄광에서 스무날이나 고생하다가 돌아와 안해와 고운 딸이 없는 썰렁한 빈집에서 생일을 맞이할 김일로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났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내그으며 김일로에게 물었다.

《처가집이 안주시라고 했지?》

《예.》

《주소는 어떻게 됐소?》

《송학리 4반입니다.》

리성복은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벽시계는 찰칵찰칵 밤 9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그는 좀 늦은감이 있어도 그길로 안주시를 다녀올 결심이였다.

《일로동무, 우선 탄불부터 살리오. 방안온기가 썰렁하니… 난 가겠소.》

리성복은 이 말만 남기고 그의 집을 나섰다. 그는 그길로 승용차대기실로 나갔다. 마침 운전사가 퇴근하려던 참이였다.

《미안하오 운전사동무, 급히 다녀올 일이 생겼소.》

쉰고개를 갓 넘긴 운전사는 군말없이 승용차에 올랐다. 10년세월이나 승용차를 몰면서 차주인을 따라 소 갈데 말 갈데 다 다녀본 말없이 성실한 운전사였다. 승용차는 안주시 송학리를 향해 쏜살같이 밤길을 달렸다.

리성복이 김일로의 처가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훨씬 지난 뒤였다. 마당에서 컹컹 개짖는 소리에 대문을 열고 나온것은 칠순이 다된듯싶은 김영란의 아버지였다. 아닌밤중에 웬 손님인가 하여 가까이 다가서는 그에게 리성복은 자기 소개를 했다.

《제 이 집 사위가 일하는 화력발전소 초급당비서입니다. 이렇게 곤한 잠을 깨워 정말 미안합니다.》

그제서야 로인은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이럴수가…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어서요! 얘 영란아, 아애비 발전소에서 당비서어른이 왔다!》

로인의 안내를 받으며 방안에 들어서던 리성복은 자기를 피해 황황히 웃방으로 뛰여들어가는 김영란의 모습을 보았다. 순간 그는 마음이 싸늘해지는것을 느꼈다.

갑자기 밤손님을 맞이한 집안식구들은 펴놓았던 침구류들을 한켠으로 밀어놓느라 부산을 피웠다. 리성복은 그러는 주인들에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담배생각이 났으나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김일로의 딸애를 보고는 꾹 참았다. 지독한 담배고질인 김일로도 이 딸애앞에서만은 절대 흡연금지라고 했다. 귀한 자식의 건강에 자그마한 해라도 줄가봐서였을것이다. 그렇듯 자식에 대한 사랑이 곡진한 김일로가 가정에 대한 애착이 없다니…

리성복은 가늘게 한숨을 내긋고나서 마주앉은 로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버님, 우선 자기 사람의 생활 하나 책임지지 못한 이 불민한 당비서를 욕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이러지 마시우. 비서어른이 왜서 이 밤길을 찾아왔는지 다 압니다. 우리 부모들의 잘못이 크지요. 예로부터 출가외인이라고 받자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일단 시집이라고 갔으면 좋든싫든 정붙이고 사는게 옳지 않소. 그런데 저년이 제 남편한테 무슨 한을 품었는지 죽어두 안 가겠다고 딱 뻗치니… 사위녀석두 그렇지요. 녀편네 하나 휘여잡지 못하는게 무슨 사내우? 내 그래서 욱박 질러두보구 얼려두봤지만 저 애가 말을 듣나요. 비서어른이 욕 좀 해주시우.》

로인은 구원자라도 만난듯 리성복에게 사정하다싶이했다.

《그렇다면 제 따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리성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방으로 올라갔다. 방 한켠구석에 김영란이 고개를 외로 돌린채 잔뜩 토라져앉아있었다.

《허, 이거 방안이 별로 썰렁하다.》

녀인의 모습에서 풍기는듯 한 싸늘한 랭기를 두고 비유한 롱이였다.

김영란은 몸을 더 바싹 도사리는 품이 그 어떤 감언리설로도 자기를 돌려세우지 못한다는 일종의 시위같았다. 그래도 물러설수 없는 리성복이였다.

《기왕 먼길을 달려왔는데 어쨌든 할말이야 하고 가야지, 그렇지 않소?》

《…》

《그래 김일로와 못살겠다는 리유가 뭔지 그것만이라도 들어보기요.》

《…》

김영란은 여전히 눈을 새침하게 내리깐채 말이 없었다.

《허, 말을 못하는걸 보니 리유가 없는 모양이다. 혹시 김일로가 싫다고 한건 아니요?》

《비서동지!》

비로소 김영란의 입이 열렸다. 리성복을 향해 곧추 쳐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그가 항변하듯 부르짖었다.

《저라고 왜 가정의 행복을 바라지 않겠습니까. 저도 아이를 잘 키우고 남편을 보란듯이 내세우고싶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끌고나가야 할 세대주가 그 모양이니 전들 어쩝니까? 탄광주재랍시고 밤낮 집을 나가 살다보니 가정에 애착이 없는데다가 제가 애써 마련한 가장집물을 자꾸만 들고나가니… 이거야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가정의 행복은커녕 저같은걸 안해로 여기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걸핏하면 성을 내고 집을 나가버리고… 더는 그렇게 못삽니다, 못살아요!》

김영란의 흐느낌소리가 높아졌다. 리성복은 그의 말을 묵묵히 다 듣고나서 말했다.

《행복이란 가정의 울타리를 높이고 물건이나 쌓아두는데 있는게 아니라 부부간에 서로 끝없이 사랑하고 리해하는 과정에 이루어지는거요.》

《그 사람은 언제 한번 절 리해해준적이 있는줄 압니까? 이제는 리해라는걸 바라지조차 않아요.》

《내 생각엔 그렇소. 리해해주기를 바랄것이 아니라 먼저 리해해줘야 그 리해도 받을수 있는거라고 말이요. 그런 의미에서 여담삼아 내 장가들던 이야기나 할가?》

김영란은 다시 외면하였으나 까딱 움직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온몸이 귀가 되여 듣고있다는것이 알렸다. 리성복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시작했다.

《내가 덕산기계공장에서 전공으로 일할 때였소. 그때 나는 합숙신세를 지고있으면서 생활위원장을 했었지. 합숙생들의 생활을 료해하던중 난 한 처녀에게 관심을 두게 되였소. 공장회계원을 하는 처녀인데 전재고아였지. 아이가 태여난지 한달만에 전선에 나갔던 아버지는 전사했고 그의 어머니마저 미국놈폭격에 잘못됐다더군. 그때부터 외할머니가 그 피덩이같은 손녀애를 맡아안고 동냥젖을 먹여 키웠다오. 그래 부모들의 얼굴조차 모르고 지금껏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난 불쌍한 처녀였소. 은근히 동정이 가더군. 무척 가냘파보이는 몸매랑 차분한 성격이며 아련한 말씨며가 나에겐 남처럼 생각되지 않더란 말이요. 생활에서 흔히 부부오누이란 말을 쓰는데 그건 왜 그런고 하니 사람은 자기처럼 생긴형을 고와하기때문이요. 어찌보면 내 누이동생같기도 했소. 그래서 내 눈에 비쳐진 처녀는 고왔지만 그 이상의 감정은 없었소. 글쎄 사랑은 동정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고 그저 뭔가 도와주고싶은 생각만 앞섰을뿐이지.

하루는 휴식일이였는데 그 처녀가 집에 갈 차비를 하더군. 한창 봄철이여서 할머니의 일손을 도우러 가는게 분명했소. 어쩐지 나도 함께 가고싶었소. 그래 〈옥녀동무, 집에 남자손이 필요하겠는데 내가 가서 도와줄가?〉하고 물었소. 그 처녀는 아무말없이 수집게 웃기만 하더군.

한 50리쯤 걸어서야 처녀가 사는 동네에 닿았는데 마침 그 할머니가 터밭에서 씨붙임을 하고있었소. 반기는 할머니에게 다가간 처녀가 귀속말로 나를 소개하더군. 난 인사삼아 할머니에게 물었소.

〈할머니, 올해농사가 잘될것 같습니까?〉

할머니는 허리를 펴며 이렇게 말하더군.

〈해비침률이 높아야 곡식이 잘 자란다네. 임잔 전공이라지. 그래, 전기가 많아야 나라가 잘살게 되지. 전기도 빛과 같아.〉

의미가 깊은 말이였소. 비록 촌늙은이로 살아오지만 나라를 먼저 위하는 그 마음에 머리가 숙어졌소. 할머니는 나이가 많았지만 부지런히 곡식을 가꾸고 집짐승을 길러 사회주의대건설장에 지원하군 한다는것이였소. 이렇게 시작된 처녀에 대한 관심은 나로 하여금 점차 그 처녀를 사랑하게 만들었소. 서로가 결코 버릴수 없는 나라고 생각되였을 때 우린 결혼했소.

결혼식상을 받던 날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오. 할머니가 차려준 상은 정말이지 소박하기 그지없었소. 그날 할머니는 나와 손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소.

〈옥녀야, 이 할미를 용서해라. 애비에미 얼굴도 모르고 자란 너의 잔치상만은 남부럽지 않게 잘 차려주려고 했는데… 날 용서해라. 그리구 임자두 우리 옥녀를 많이 사랑해주게. 부부간에 정이 깊으면 빈몸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수 있지만 정이 비면 재물을 산같이 쌓아두었대두 오래 못살아.〉 …》

리성복은 자기 처자랑을 한바탕 늘어놓은듯 하여 게면쩍기도 했지만 바로 그 할머니의 말만은 김영란이 가슴에 새기기를 바랐다.

《내 여기로 오기 전에 일로동무를 만나보았는데 그도 자기 잘못을 심각히 뉘우치고있더군. 잘 생각해보오.》

리성복은 이 말을 남기고 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비서동지!》 하는 목멘 부름이 등을 때렸다. 돌아보니 온 얼굴이 눈물로 얼룩진 김영란이 맨발로 허둥지둥 따라나왔다. 그는 마당에 어푸러지듯 주저앉았다. 오열로 하여 그의 잔등은 몸부림치듯 들먹이기 시작했다.

리성복은 가슴이 훈훈해났다. 드디여 김영란도 마음속에 밝은 빛을 안은것이다. 성복은 서둘러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됐소. 그만 일어나오, 어서 떠날 차비를 해야지. 일로동무가 집에서 기다리오. 래일이 그의 생일이 아니요.》

…얼마후 영란과 그의 딸을 태운 승용차는 영천화력발전소로 나는듯이 달렸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