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5 회


제 3 장


마음속의 빛은 밝다


8


리성복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가?… 그는 머리맡에 손을 뻗쳤다. 몇번이고 더듬거려서야 탁상시계에 손이 가닿았다. 시간은 새벽 4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공장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군.)

역시 이 시간에 자리를 털고일어나 화력발전소구내를 한바퀴 돌아보는것이 그의 습관된 새벽일과였다. 리성복이 몸을 일으키려고 뒤척이였으나 손발이 굳어진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른해지는 몸은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땅속으로 잦아들었다.

그는 어제 밤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신열에 시달렸다. 그러다 겨우 든 새벽잠마저 악몽에서 헤매였다.

화력발전소의 수만메터나 되는 승수관과 과열관에서 일시에 증기가 새여나와 발전기실은 온통 증기바다가 되여버렸다. 그 뿜어져나오는 증기를 막지 못하면 발전소는 끝장이다.

리성복이 증기속으로 막 뛰여들려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덜미를 붙잡는것이였다. 돌아보니 서재필이였다. 그는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아무말없이 와락 리성복을 밀쳐버렸다. 리성복은 어쩔새없이 발전기실밖으로 나자빠졌다. 그사이 서재필이 증기속으로 뛰여드는것이 아닌가. 리성복도 서재필을 부르며 그의 뒤를 따라 증기속으로 뛰여들어갔다. 뜨거운 증기는 순간에 두사람을 삼켜버렸다. 리성복은 뜨거운 증기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빨리 조종실로 달려가 증기변을 막아야겠는데 눈앞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열은 그의 몸전체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듯 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서재필을 불렀다. 뿜어져나오는 증기소리만 귀청을 째는듯 들려올뿐 응답하는 서재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리성복은 서재필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한치한치 조종실란간을 톺아올랐다. 목에서는 겨불내가 나고 손발은 까드라들어 더는 움직일수가 없었다. 아, 서재필도 구원하지 못하고 이렇게 가는가.

《서동무! 죽어서는 안되오!》

리성복은 흐려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서재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이때 터져나오던 증기가 멎고 발전기실을 꽉 채웠던 증기가 순간에 없어지는게 아닌가. 리성복이 조종실란간으로 올라서니 서재필이 이미 조종실에 들어가 증기변을 막고 문밖에 쓰러져있었다.

《서동무! 죽어선 안되오. 내가 동무한테로 가니 조금만 참아주오.》

리성복이 쓰러져있는 서재필에게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왜서인지 그와의 거리는 자꾸만 멀어졌다.

《서동무!》

리성복은 초인간적인 힘을 내여 벌떡 일어났다.·

꿈은 깨여졌다. 온몸에 식은땀이 쫙 내돋았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는 머리맡에 놓인 전화기를 끌어당겼다. 발전소지령실을 찾아 밤새 별다른 일이 없다는것을 확인하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가졌다. 했으나 어째서 꿈에 난데없이 서재필이 나타났는지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는 몇달사이 처음으로 무서운 꿈을 꾸었다. 그것은 몸상태가 매우 약해졌다는것을 말해준다.

며칠전부터 심근경색이 도져 고생하는 그였다. 어제도 불편한 몸으로 마감단계에 이른 정양소건설공사장에 나가 돌격대원들과 함께 어울렸다. 오후시간부터 혈압이 급격히 오르면서 심장부위에 동통이 오기 시작했다. 돌격대원들이 얼굴색이 좋지 않다며 들어가 쉬라고 거듭 당부했으나 리성복은 일없다며 식당마감타일작업을 지휘하다 쓰러졌던것이다.

공장병원의사들이 달려와 구급대책을 세워서야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병원원장은 적어도 열흘은 집에서 절대안정치료를 받을것을 리성복에게 재삼 강조했다. 할수없이 며칠간이라도 안정치료를 받겠다는 다짐을 받고 집에 들어왔다.

날이 밝아 아침해빛이 환히 비쳐들었다. 리성복은 누운채로 앞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눈길을 박았다.

중복날이였다.

(벌써 날자가 이렇게 갔는가?)

리성복은 달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채 머리속으로 속구구해보았다. 이제 2호발전기의 동음을 울릴 날까지는 기간이 얼마 없다. 그새 용접안의 과학적담보가 마련되여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용접의 방법으로 제거하자는 결정이 채택되였으나 용접작업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며칠전에 2호발전기회전자축을 공무직장에 운반하여 균렬간 부위를 15센치메터가량 절단하는 작업을 성과적으로 마쳤다. 그 공간에 용접물을 먹여 육성시켜야 하는것이다. 거기에 특수용접봉만도 수많이 들것으로 보고있었다. 그런데 용접봉이 해결되자면 아직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문제로 기사장과 기술발전부기사장이 성자재국에 몇번이나 다녀왔었다. 용접봉이 해결되면 즉시에 용접작업에 들어갈수 있는 만단의 준비는 이미 갖추어졌다.

남은것은 용접공으로 누구를 선출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용접안의 성공여부는 용접공의 고급한 기능과 높은 열의에 크게 관계된다. 누구나 그 적임자로 서재필을 꼽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화력발전소적으로 용접급수가 가장 높은 사람은 서재필이다. 또 그는 2차기술협의회때 자기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을 해내겠다고 만장앞에 선포하기까지 했다. 리성복도 서재필의 제의를 적극 찬성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을 성과적으로 해낼것이다.

그러나 정식 임명하는 형식은 갖추어야 했다. 하여 어제 저녁 생산총화뒤끝에 용접공선출문제를 결정하기로 토론되여있었다.

병으로 쓰러지는통에 그 회의에 참가하지 못한 리성복은 그 문제도 궁금해났다. 그는 서재필이 용접공으로 선출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안았다.

리성복의 뇌리에는 앞으로 남은 기간에 해야 할 일들이 연줄연줄 떠올랐다. 5월17일보수지휘부가 작성한 계획안을 보면 용접기일은 최소한 한달보름으로 잡았다. 용접이 끝나는 차제로 회전자축을 대안중기계까지 운반해 가공해야 하는데 그 기일을 한달로 보았다. 가공공정이 끝나면 보름을 가지고 시운전을 진행하기로 되여있었다. 이 세가지 공정이 치차처럼 맞물려돌아간다면 2호발전기는 계획한 날자에 동음을 울릴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책상머리에서 세운 계획이다. 만일 어느 한공정이라도 제기일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그 후과는 만회할수 없는 일로 번져간다.

리성복은 무거운 중압감에 싸여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화력발전소의 전체 일군들과 로동계급을 대표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숨죽은 2호발전기를 공장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겠다고 충정의 맹세를 다졌다. 그 맹세를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것을 그는 심장으로 느끼고있었다. 이것은 비단 초급당비서 한사람의 생각인것이 아니라 전체 종업원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이런 때 앞채를 메고 뛰여야 할 자기가 집안에 누워있자니 가슴이 답답해 견딜수가 없었다.

어제 밤 왕진왔던 병원원장 박진은 그 병은 최대의 안정이 요구된다며 전화코드까지 뽑아버렸댔다. 리성복이 종업원들의 건강을 위하여 해당 기관과의 합의끝에 원래의 진료소를 병원으로 승격시킨 후 건설의 첫째가는 대상으로 정하고 큼직하게 새로 지은 건물의 첫 주인이 바로 50초반의 진중한 박진이였다. 영천화력발전소에서 리성복에 대한 불만과 노여움을 품고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가 단연 첫자리였다. 리성복이 심근경색을 앓고있다는것을 잘 아는 그는 매일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엄격한 요구조건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단 한번도 실현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할수없이 박진이 당비서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것 또한 제대로 된적이 거의 없었다. 금시 열생산직장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면 건설장에 나갔을것이라는 대답을 듣게 되고 그리로 달려가면 어느사이 석탄하차장에 갔다는 대답만 얻어듣기때문이였다. 박진은 전화코드를 뽑는것으로 지금까지의 노여운 봉창을 다할 잡도리같았다.

그러는 원장에게 리성복은 섭섭한 소리를 했다.

《여보 원장동무, 누워 전화도 못하면 산사람 죽으라구 묶어놓는것과 뭐가 다르오. 그건 날 위한 일이 못되오.》

《그렇다면 날 원장자리에서 해임시켜주십시오. 더는 못해먹겠습니다!》

박진은 요지부동이였다. 할수없이 리성복은 낮추 붙었다.

《내 그사이 원장동무한테 빚진게 많은데 제발 용서해주오. 다음번부턴 꼭꼭 병원에 가서 검진받는 질서를 어기지 않겠소. 정말이요. 그러니 이번만은 사정 좀 봐주오.》

박진은 기가 막힌듯 허허 웃고나서 드디여 한발 물러섰다.

《에이, 나도 모르겠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하루 다섯번은 초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알겠소, 알겠소!》

그렇게 전화사용을 허용받은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지금 그의 답답한 마음을 달랠수 있는것은 그래도 전화뿐이였던것이다.

리성복은 원장이 세워준 하루전화사용 다섯번회수를 10분도 안되는 사이 다 써버렸다. 그는 지령실로부터 시작하여 열생산직장, 전기직장, 운탄직장, 하차직장 이런 순서로 전화를 걸어 현생산실태를 료해하였다. 그래서인지 뒤목이 뻣뻣해나며 심장부위에 뜨끔 뜨끔 아픔이 일기 시작했다. 몸은 아파났지만 마음은 한결 개운해졌다.

(이제는 무엇을 더 알고싶더라? 그래, 기사장을 찾아 용접공선출문제를 알아봐야지.)

리성복은 교환수에게 기사장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기사장은 사무실에도 생산지령실에도 없었다. 생산현장에 나간 모양이였다.

그는 다시 기술발전부기사장을 찾았다.

《부기사장동무요? 내 당비서요.》

수화기공명통으로는 석남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서동지, 병은 어떻습니까?》

《많이 나았소. 부기사장동무, 어제 저녁에 용접공선출문제가 토의되였소?》

《예, 행정총화뒤끝에 기사장동지방에서…》

석남흥이 채 말을 맺기 전에 리성복이 재차 물었다.

《그래 누가 선출됐소?》

《책임용접공으로는 특수용접작업반 반장 최수일동무가 선정되였고 보조용접공으로는 서봉철동무가 선출되였습니다.》

순간 리성복은 미간을 찌프렸다.

《어째서 서재필동무가 빠졌소?》

《저 전화상으로는… 제 댁으로 가겠습니다.》

《아니요, 사무실에서 기다리오. 내가 가겠소.》

리성복은 송수화기를 놓았다. 반쯤 기대여누웠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심장이 뛰고 혈압이 올랐다. 그는 서재필이 당당하게 선출되리라 믿고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리해할수가 없었다. 용접안을 발기한 사람도 서재필이고 공장적으로 용접급수가 제일 높은 사람도 서재필이다. 그는 나이는 들었지만 몸도 건강하고 기력도 정정하다. 그가 용접에서 제외될 리유는 하나도 없다.

리성복은 속에 불이 당겨 참을수 없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안해 백옥녀가 옷을 입는 남편을 퀭한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정신있어요? 그 몸으로 어딜 간다고 그래요?》

리성복은 안해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백옥녀는 그러는 남편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여보, 제발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안정하세요. 어제 병원원장선생님이 말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병은 최대의 안정이 기본이라고 말이예요. 지금 그 얼굴이 얼마나 해쑥한지 알기나 해요?》

리성복은 아닌게아니라 머리가 휘 돌고 다리도 후들거렸으나 안해의 손을 조용히 밀어버렸다.

《그러지 마오, 나야 당비서가 아니요. 수천명의 종업원들이 이 당비서의 얼굴을 바라보고있는데 누워있을수가 없구려. 이렇게 누워있자니 병이 더해지는것 같소. 발전기의 동음을 듣는게 내 병치료에는 더 좋단 말이요.》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은 마치 자기의 불찰로 병치료중에 있던 당비서가 일부러 공장에 나오기나 한듯이 바빠하며 리성복을 맞아주었다.

《비서동지, 앓는데 이렇게 걸음을 하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여기 앉으십시오.》

석남흥은 의자를 권한다, 보온병에서 더운물을 따라놓는다 하면서 부산을 피웠다. 리성복은 그냥 선자리에서 따졌다.

《석동무, 어째서 서동무가 락선됐습니까?》

《우리 5월17일보수지휘부에서는 용접공으로 서재필아바이를 선정했드랬습니다.》

《그런데?》

《기사장동지가 반대했습니다. 서재필아바이가 나이도 들고 손에서 용접기를 놓은지도 오랜데다가 공장에서 퇴직하기 전에 눈병을 앓기까지 했기때문에 그 무겁고도 책임적인 용접을 감당해낼수 없다면서 특수용접작업반장을 선출했습니다.》

리성복은 한동안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모든게 짐작이 갔다. 기사장이 서재필을 탐탁하게 보지 않고있다는데 문제가 있는것이였다. 서재필이 공장에서 퇴직한것도 기사장때문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가 무슨 일로 기사장의 눈밖에 났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그의 년로보장문제를 성급히 당위원회에 제기한 사람이 기사장이였던것이다.

그때 리성복은 기사장의 말을 믿고 본인을 만나보지도 않은채 그의 년로보장문제에 동의를 주었다. 그 일로 서재필은 리성복을 사람문제처리에서 심중치 못한 당일군으로 평가하게 되였고 공장과 등지게 되였다.

한동안 무겁게 생각을 굴리던 리성복은 석남흥에게 물었다.

《부기사장동무생각은 어떻소?》

《전 기사장동지의 주장이 주관적이라고 봅니다. 서재필아바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기술적으로나 능히 회전자축용접을 담당할수 있습니다.》

《5월17일보수지휘부일군들의 생각은 어떻소?》

《저와 같은 의견입니다.》

석남흥은 딱 잘라 대답했다. 리성복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을 서재필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려던 자기의 생각이 백번 옳았다는것을 더 굳게 확신하게 되였다.

《알겠소, 내 기사장동무를 만나겠소.》

리성복은 석남흥의 방을 나와 기사장의 행처를 찾아 여기저기 다녔다. 기사장은 전기타빈보수직장에 나가있었다.

뜻밖에 현장에서 당비서를 만난 명인국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어제 저녁 당비서는 정양소건설장에서 쓰러져 집으로 실려갔던것이다. 그는 어제 밤 병원원장을 전화로 찾아 당비서의 병상태를 물어보았다. 병원원장은 이 상태로는 며칠간 자리에서 일어날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지 않아도 명인국은 전기타빈보수직장을 돌아보고 당비서의 집으로 면회갈 차비였다.

《비서동지, 병상태가 심하다는데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괜찮소. 기사장동무, 내 할말이 있으니 조용한 곳으로 갑시다.》

리성복은 제먼저 전기타빈보수직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명인국도 그를 따라 들어섰다. 사무실에는 마흔을 갓 넘긴 통계원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깍듯이 인사했다. 그는 눈치있게 사무를 보던 문서를 걷어가지고 문을 꼭 닫고 나갔다. 사무실에는 두사람만이 남았다.

먼저 리성복이 기사장에게 물었다.

《기사장동문 왜서 서재필동무를 용접에서 제외시켰습니까?》

리성복의 물음은 날카로왔다.

명인국은 사실 당비서를 만난 순간 속으로는 흠칫 놀랐었다. 분명 서재필이 용접공선출에서 락선된 문제때문에 애써 침상에서 일어났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의 예측은 옳았다. 지금 당비서는 결이 나서 서재필이 무슨 일로 빠졌는가 따져묻고있지 않는가. 이럴줄 알고 변명은 아니지만 자기식의 론거를 세워는 놓았다. 그 론거가 당비서를 납득시킬수 있겠는가는 두고보아야 알 일이다. 만일 정 리해하려 하지 않으면 지용수국장에게 밀판이다. 마음 한켠으로는 당비서에 대한 미안한 감정도 없지 않았다. 당비서가 현장에서 쓰러져 집으로 실려간새 일을 처리했다는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랬다. 당비서가 협의회에 참가했더라면 추천문제가 달리됐을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참 일은 맹랑하게 되였다. 서재필이라는 인간을 놓고 서로 막역한 친구사이에 그 평가기준이 량극처럼 판이했다. 공정한 의미에서 서재필에 대한 명인국의 견해는 지용수국장과 다를바 없었다.

《비서동지, 저도 많은걸 생각하고 결심한 문제입니다.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은 기술도 높아야 하지만 정신육체적열의 또한 높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그는 나이도 많고 또…》

명인국은 채 말끝을 맺지 못했다. 리성복이 자기가 하다만 뒤말을 짐작한듯 날카롭게 따져물었던것이다.

《또 무엇입니까?》

《…》

명인국은 할말이 채 준비되지 않은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었다.

사실 명인국은 용접공선출문제에서 중뿔나게 자기 주장을 세울 생각은 없었다. 원체 당비서가 서재필을 지목하고있다는것을 모를바 없는 일이여서 만일 협의회에 참가한다면 당비서의 안을 따를셈이였다. 하지만 협의회를 시작하기 1시간전에 지용수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던것이다. 참 공교로운 전화가 아닐수 없었다. 수화기공명통으로는 언제나 그러하듯 배포유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심리를 꽉 틀어쥐고 귀맛을 슬슬 돋구는 국장의 청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부국장동무를 통해 협의회소식을 들었소. 용접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다 먹은 떡이라고 손맥을 놓아서는 안되겠소. 이제부터 중요하다는걸 명심해야 하오. 만일 용접시 자그마한 실수가 어떤 후과를 초래하겠는가 하는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고 보오. 그래 용접공선출문제는 토의됐소?… 뭐라구, 현장에서 쓰러졌다구? 음… 여보, 기사장동무가 있으면서 당비서를 그렇게 혹사시키면 되겠소. 이젠 나이가 있지 않소. 참… 그러게 빨리 지배인을 임명해야 한다고 성에서도 말이 있었소. 그래그래,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질 않소. 그렇지, 영천화력발전소야 성적으로도 일이 잘되는 발전소로 인정받고있지. 기사장동문 누굴 선출할셈이요. 용접공 말이요. 뭐라구, 내 그럴줄 알았소. 기사장동무, 용접안의 성공여부가 용접공의 고급한 기능, 그보다는 높은 책임성에 있소. 난 반대요. 일전에 당비서동문 용접공선출문제는 성에서 간참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구만. 하지만 앞으로 책임은 용접공보다 우리 일군들이 진다는것을 명심해야겠소. 솔직한 심정에서 난 서재필이라는 인간을 믿지 않소. 물깊이는 건너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질 않소. 난 그의 인간됨을 알고도 남음이 있소. 그리고 나이가 있지 않소. 내 보기엔 특수용접작업반 반장도 기능급수가 8급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렇지, 젊은 사람이 젊은 사람이지. 그렇다고 서재필의 공로가 어디 가겠소. 그럼 그렇게 하오. 목적은 최대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데 있다는것을 명심하오.》

명인국은 지용수국장과 나눈 장시간의 전화내용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바를 쉬이 깨달았다. 아직도 국장은 마지못해 용접안을 대하며 만일의 경우 물러설 자리를 봐두고있다는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제 임명되게 될 지배인문제에 대해서 은근히 암시를 던지며 괜히 불투명한 사람을 믿었다 랑패를 보지 말라는, 충고라면 충고라 할수 있고 당부라면 당부라 할수 있는 말을 했다. 하여튼 자기를 위해주는 마음도 엿보였다. 서재필의 자질을 그렇게 높이 사주지 않는데는 두사람이 일맥상통한 점이 있었다. 명인국이 보건대도 서재필은 저만 저라고 기술코대를 세우고 걸핏하면 남을 걸고들고 필요하다면 제 결함도 남에게 뒤집어씌우기 잘하는 고약한 사람으로 인정되여있었다. 전화마감에 지용수는 발전소에 용접할 사람이 없어 부디 그런 사람을 책임적인 용접에 참가시키겠는가고 그루를 박아 말했다. 이쯤되고보니 명인국도 지용수의 의향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리성복의 목소리는 그 어떤 위압감을 담고 준절하게 울렸다.

《옳지 않습니다. 기사장동무, 내 언제부터 묻고싶었는데 동문 어째서 서재필동무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까? 사실 그는 기사장동무의 그릇된 처사로 더 일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소에서 퇴직했더랬습니다.》

명인국은 정통을 찔리웠으나 짐짓 놀랜듯 반문했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지 마시오.》

리성복이 엄하게 소리쳤다. 거의 분노에 가까운 어조였다.

《기사장동문 서재필동무가 공장에서 퇴직하는것은 본인의 요구이고 또 눈병을 앓기때문에 용접을 할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알고보니 그건 기사장동무의 억측이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빨리 퇴직할 의향이 없었고 또 눈병을 앓은것은 더욱 아니였습니다. 동무때문에 발전소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처리되였으니 이게 어디 될일입니까? 그는 인생 말년에 전기와 떨어져 살수 없기에 늦게나마 고마운 조국을 위해 힘껏 일해볼 결심품고 다시 공장으로 나왔습니다. 하물며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용접안이야 그가 내놓은게 아닙니까? 그런데 동문 어째서 그의 가슴속에 끓어넘치는 공장애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기사장동무의 그 편협한 처사로 우리 발전소가 손해를 본다고 할수 있습니다. 아니, 더 큰 범주로 보면 우리 혁명의 전진에 저해를 주었다고도 말할수 있습니다.》

《뭐라구요? …》

명인국은 억울한듯 야속한 표정으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그래, 어떤 사람들에 의해 저 발전기가 돌아가고 전기가 생산되는지 동문 너무도 모르고있소. 저 서재필동무처럼 전기와 한생 인연을 맺고 누가 보건말건 묵묵히 아낌없이 구슬땀을 바쳐가는 불보다 뜨거운 충정에 의해 순간도 멈춤없이 전기가 생산되지 않겠소. 그런 보석같은 인간을 내세워주고 그들의 창발성을 적극 계발시키자고 이 당비서가 있고 기사장이 있는게 아니겠소. 그래 이런 사람들을 외면하고 누굴 믿고 전기를 생산하겠소. 어디 말해보오.》

마디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가슴을 쿡쿡 찌르는 소리였다.

명인국은 어느 사이 목덜미로 줄줄 흘러내리는 땀도 씻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소리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서재필을 그토록 믿고 내세워주려고 마음을 쓰는 당비서가 잘 리해되지 않았다. 자기가 선출한 용접반장도 서재필을 거의 따를만큼 용접기술이 높고 책임성 또한 높았다. 그런 사람을 두고 굳이 년로보장으로 집에 들어갔던 사람, 그것도 육체적으로 로화가 온 사람을 부디 내세울 필요가 있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당비서의 의견을 일축해버릴 용기는 없었다.

명인국은 괜히 지용수의 말을 듣고 이 일에 중뿔나게 나섰다는 후회로 속을 앓았다. 어제 저녁 5월17일보수지휘부성원들은 일치하게 서재필을 책임용접공으로 선출했었다. 그런것을 자기가 냅다 우겨 그안을 취소시켰던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이렇듯 당비서의 추궁을 받을줄은 몰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일이 어떻게 되든지 그들의 의견을 따랐을게 아닌가.

리성복의 준절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명심하시오. 인간에게 믿음을 주고 활력을 북돋아줄줄 모르는 인간은 동무처럼 맹종맹동하는 행동을 하게 되오. 자신을 깊이 반성해보는것이 좋겠소.》

리성복이 언제 방에서 나갔는지 명인국은 알지 못했다. 우릉거리는 발전기의 세찬 동음이 일으키는 진동만이 한본새로 그의 가슴을 압박하듯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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