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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 회


제4장. 믿음


7


박상근은 안해와 함께 안과전문병원으로 갔다.

입만 내놓고 얼굴에 온통 붕대가 감겨있어 아들을 알아볼수가 없었다.

간호원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알아본 순금이 아들의 가슴에 와락 얼굴을 묻으며 흐느꼈다.

박상근이 안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아일으키며 말렸다.

《여보, 그만하오.…》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들은 박영재가 오히려 그들을 위안하려고 애쓴다.

《치료를 받고나면 인차 낫겠는데.… 너무 걱정마세요.》

순금이 푸념처럼 중얼거린다.

《인차 낫는다는게 무슨 소리냐, 자칫하면…》 박상근이 버럭 말꼬리를 잘랐다.

《여보, 무슨 쓸데없는 소릴…》

박영재가 조용히 속삭이였다.

《너무 근심마세요.… 모든게 다 잘될거예요.… 참 아버지, 전기로건설은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음, 공정기일대로 잘되고있다.》

박상근은 붕대한 아들의 부상자리를 더듬어보며 나직이 물었다.

《몹시 아프겠구나.》

잠시 말이 없던 박영재가 무겁게 입술을 뗐다.

《아프지 않아요.… 그저 아버지와 성남아저씨가 호흡이 잘 맞지 않는것이 더 가슴아플뿐이예요. 제 걱정은 마시고 초고전력전기로건설때문에 애쓰고있는 성남아저씨를 잘 도와주십시오!》

《원,녀석두…》

박상근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온 얼굴에 붕대를 감은,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앞에 서있었으나 어쩐지 그의 얼굴을 쳐다볼수가 없었다.

철판으로 로밑바닥을 하겠다는 그들의 발기를 눌러버린것은 자기였다. 그러나 아들은 그것을 위해 자기 한몸을 위험속에 서슴없이 내대지 않았는가.…

아들이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눈빛보다 더 예리한 정신의 빛이 렌트겐선처럼 자기 마음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것만 같았다. 자식앞에서도 떳떳치 못한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제딴에는 도와준다는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지장만 주고있으니 도대체 무슨 원인인가.…

박상근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내 인차 제강소에 나가겠다.… 그러니 아무 걱정말고 치료를 잘 받거라!》

안해를 남겨두고 입원실을 나서던 박상근은 문곁에 서있는 처녀가 낯익어보여 걸음을 멈추었다.

《선희가 아니냐?!…》

처녀는 머리를 깍듯이 숙이며 인사를 한다.

고개를 쳐드는 그의 눈이 축축히 젖어있었다.

아들이 사랑하는 처녀, 어찌보면 그에게도 미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영재가 설계에서 손을 뗀 후 그들이 몹시 다투었고 남남처럼 되다싶이 했다는것을 비스듬히 알고는 있었으나 별로 놀랍게 생각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영재가 걱정되여 눈물이 그렁해서 서있는 선희를 보니 가슴이 쩌릿해진다.

《어서 들어가보아라.… 영재가 몹시 반가워할게다!…》

그는 입원실문을 열고 주춤거리는 선희의 등을 떠밀어 들여보내고난 다음 의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금은 입원실로 들어서는 처녀를 보고 놀라서 두눈을 껌뻑거렸다.

혹시 잘못 보지나 않았는지 해서… 분명 키가 쭉 빠지고 인물이 훤한 선희였다. 드문히 아들을 보려고 제강소에 내려갈 때마다 만나군 하였지만 별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들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음을 느꼈을 때는 오히려 잘되였다고, 처녀가 없어 장가 못 가겠는가고 하며 딴 처녀를 보라고까지 했던 그였다.

순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렇게 찾아와주니 정말 고맙구나!… 영재야, 누가 왔나 봐라, 선희가 왔어! 선희가…》

영재는 이미 느끼고있었다. 선희의 이름을 들으니 눈앞이 환해지는것 같았다. 오래동안 흐려있던 하늘에 해가 솟은듯이.…

영재는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선희에게로 다가갈듯 두손을 들어 허우적거렸다.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선희!》

그 목소리가 어찌나 정겹고 다정했는지, 그 모습이 얼마나 열렬하고 가슴을 쳤던지 선희는 와락 달려가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막혔던 뚝이 터진듯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그의 옷을 뜨겁게 적시였다.

《울긴… 애들처럼 …》

이렇게 말하는 영재의 목소리도 젖어있었다.

《영재동지… 저를… 저를…》

선희는 용서해달라고 하려다가 말을 삼켜버렸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영재는 손으로 처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어루만져주었다.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로와 선희는 더 눈물이 나왔다.

리순금은 그 순간 자기가 영재의 어머니이긴 하지만 자리를 피해야겠다는것을 느꼈다. 어쩐지 섭섭한 마음과 함께 은근한 기쁨이 가슴속으로 따뜻이 흘러드는것을 의식하며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어머니가 나간것도 느끼지 못하며 말없이 정을 나누었다.

한동안 시간이 흘러서야 선희는 그를 침대에 눕히고 그옆에 조심히 앉았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것을 그때야 비로소 느꼈다. 그들은 또다시 자기들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선희!… 날… 용서해주겠어?…》

선희는 더 참을수 없어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붕대를 한 그의 얼굴 가까이로 향기로운 입술을 가져갔다.

누가 듣기라도 하는듯 조용히 속살거렸다.

《난… 난… 영재동지를 영원히 사랑해요!》

오래동안 서로 사랑하며 지내왔으나 선희에게서 처음 듣는 사랑의 고백이다.

그 한마디 말속에 모든것이 다 담겨져있었다.

온 우주를 통채로 받아안은듯 했다.

눈은 비록 보이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미래의 자기들의 모습이 환하게 안겨왔다. 영영 앞을 보지 못한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재동지, 기뻐하세요. 철판으로 만드는 로바닥이 완성되였어요. 이제 인차 기초우에 조립한다고 해요!》

《벌써?… 참 놀라운 기적이구만!》

《영재동지의 희생적인 노력이 있었기때문이지요.》

《아니요.… 지배인동지와 자동화직장 제관공들의 공로지! 난 그저… 참, 제일동무랑 다 잘있소? 전극자동승강장치설계를 하느라고 몹시 힘들겠는데.…》

《떠나올 때 만났댔어요. 설계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당부하더군요! 조인철동지도 전투적인사를 보낸다고…》

《!…》

영재는 그런 훌륭한 친우들이 곁에 있는것이 더없이 기쁘고 행복했다.

《선희, 요즘 몹시 바쁘겠는데 어떻게 시간을 냈소?》

《인철동지랑 돌격대동무들이 떠밀었어요. 며칠 말동무도 해주면서 간호를 해주라고…》

코마루가 찡해났다.

마음같아선 선희와 이야기도 나누고 그의 간호도 받으며 함께 있고싶다.

그러나 영재는 도리머리질을 했다.

《내가 전기로건설에 참가하지 못한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선희까지 그러면 안되오. 여기에 어머니가 있지 않소!》

선희는 그의 말을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마음을 푹 놓고 치료를 잘 받으세요. 제가 영재동지 몫까지 합쳐서 일하겠어요.》

《고맙소, 선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그와 헤여진 선희는 곧장 의사실을 찾아갔다.

영재의 부모님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던 녀안과과장이 그가 들어서자 말을 끊었다. 어쩐지 심각한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해서 옆에 다가온 선희의 손을 꼭 잡기만 한다. 온몸이 긴장해진 선희는 묵묵히 앉아있는 박상근에게 얼핏 눈길을 주고는 과장에게 조심히 물었다.

《선생님! 환자의 눈이 어떻습니까?》

귀밑머리가 희슥한 안과과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선희를 쳐다보았다.

《동문 환자와 어떻게 되는?…》

순간 선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기를 바라보는 영재의 부모님들에게 속삭이듯 나직이 말했다.

《절 용서하세요!…》

선희는 과장선생에게로 돌아섰다.

《전 , 그의… 안해예요!》

《?!…》

박상근과 그의 안해는 뜻밖의 일에 놀라와 서로 마주 쳐다볼뿐 아무소리도 못하였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있는 선희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다.

녀과장이 리해된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시부모되시는분들께도 말씀드렸지만 상태는 몹시 나쁩니다. 각막이 녹아없어지고 시신경만 겨우 살아있어요. 우리가 최대로 노력하겠지만… 만약의 경우 실명될수도…》

선희는 깜짝 놀라 고운 눈을 치떴다.

《실명이라니요?…그럼 눈을 볼수…》

선희는 차마 마지막말을 입에 올릴수가 없었다. 의사선생은 묵묵히 병력서만 내려다본다.

《?…》

그가 앞을 보지 못하다니?…

선희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것 같은 착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큰 눈을 감았다 떴다.

의사선생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다가 서서히 선명해진다.

그럼 나를 영영 보지 못한단 말인가? 설계는 어떻게 하고… 붉게 타는 쇠물노을도 조업식도 다?…

문득 검은색안경을 끼고 거리에 나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팔을 앞으로 내밀고 허우적거리는 영재의 모습이 가슴아프게 안겨온다.

아니다. 내가 그처럼 사랑하는 그가 눈을 보지 못하다니? 절대로 그럴수 없다, 그럴수가.… 그러면?… 언듯 하나의 생각이 번개쳤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선희는 미처 상상해볼 사이도 없었다. 출선구에서 쏟아져나오는 쇠물마냥 북받치는 련민의 감정을 도저히 막을수가 없어 불쑥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에게… 제 눈을 줄수는 없습니까?》

《?!…》

선희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제서야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느껴보며 스스로도 놀라와 눈이 둥그래졌다. 하지만 조금도 후회되지는 않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급작스러운 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선생님!… 저같은건 전기로건설에 있으나마나한 존재이지만 그는 없어서는 안될 기술자예요, 선생님! 그래서…》

《!…》

박상근과 그의 안해는 너무도 감동되여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목이 꽉 메여왔다. 부모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용단을 그가 결심하고나선것이다.

역시 선희는 강철을 끓이는 처녀, 강선의 처녀였다.

순금은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선희야!… 내 며느리야!》

선희를 붙안고 눈물을 흘리고난 어머니가 녀의사에게로 돌아서며 단연히 말했다.

《과장선생님! 제 눈을, 이 에미의 눈을, 나야 이젠…》

《어머니! 그건 안돼요!》

선희가 어머니를 막아나섰다.

이것을 지켜보는 의료일군들의 눈에도 물기가 축축히 어려올랐다.

인간이기에 이처럼 아름다와질수 있다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황홀하여서…

안과과장이 언제 실명이라는 소릴 했던가싶게 잘라말했다.

《이러지들 마세요. 환자치료는 우리가 맡은 혁명임무예요. 우리가 결심하고 하겠으니 모두들 안심하고 돌아들 가세요. 우리가 꼭 그의 눈을 보게끔 회복시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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