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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4 회


제4장. 믿음


5


책임비서 류준권은 몹시 바쁜 몸이지만 자정이 지난 깊은 밤이면 건설장에 나갔다. 조명이 대낮처럼 환한 현장은 밤에도 잠들줄 모른다.

로체조립장에서 용접불꽃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린다. 변압기실, 유압뽐프실, 정련로대차실, 로조종실 그 어디라 없이 돌격대원들이 쉴새없이 움직인다.

블로크를 지고 혼합물맞들이를 들고 뛰여다닌다.

류준권은 그들속에 슬며시 끼여들어 맞들이도 맞들었고 블로크를 지면서 땀을 흘렸다. 쉴참이면 그들과 담배도 나누어피우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공사가 진척될수록 형편은 점점 어렵고 힘들었다.

류준권은 오직 일밖에 모르는 건설자들을 위해 후방사업을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어느날 기업소구내식당들을 돌아보고 오는 류준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전기로건설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일이 힘들수록 종업원가족들은 식량이 부족하고 생활이 어려운 속에서도 성의껏 음식을 마련해가지고 현장에 나왔다. 온 강선이 달라붙어 건설장을 지원해주고있다.

그런데 구내식당 식사질이 말이 아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보다 더 떨어지는것 같았다. 건설이 힘든것만큼 후방사업을 더 잘해야겠는데.… 무슨 원인인지 모르겠다.

류준권은 오는 길로 후방부지배인과 경리일군을 만났다. 그의 추궁을 받은 나이지숙한 후방부지배인이 대책을 세우겠다고 사업수첩에 적고있는데 작은 키에 목이 바툼한 경리일군이 싱긋이 웃으며 한마디 하는것이였다.

《요즘 구역적으로도 그렇고 전국적범위에서 지원물자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그것을 전기로건설과 련관된 직장들, 청년돌격대에 순번으로 돌아가며 공급해줍니다. 그러다보니 구내식당들에는 좀…》

《?…》

그제야 원인을 알게 된 류준권은 어이가 없어 그 일군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럼 후방일군들은 할일이 없겠구만. 거참, 마침입니다. 현장에 일손이 모자라는데 래일부터 모두 전기로건설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딴 의견이 없습니까?》

경리일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류준권은 조용히 타일렀다.

《구역적으로도 그렇고 온 나라가 도와준다고 해서 후방일군들이 손을 털고 나앉아서야 되겠습니까. 물론 부족하고 긴장한것만은 사실이요. 그러면 가족세대들이 무엇이 다 풍족해서 지원하는줄 압니까? 부모처자이고 혈육이기때문이 아니겠소. 동무들이야 종업원들의 생활을 책임진 어머니와 같은 위치에 있지 않소. 그런 자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구내식당에 된장이 모자라 소금국을 먹인단 말이요. 영양제식당도 그렇지.

기름도 고기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식당마다 영양카로리분석표는 화려하게 그려놓았더군. 로동자들이 그걸 보구 뭐라고 하는줄 압니까. 눈요기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눈요기하는.…》

경리일군의 밭은 목은 아예 자라목이 되고말았다.

《잘못했습니다. 구내식당과 영양제식당들의 질을 높이겠습니다.》

《언제까지면 되겠소?》

《열흘안팎으로 하겠습니다.》

《빠르지 않소. 5일간의 시간을 주겠소. 부지배인동무가 책임지고 련합기업소산하 후방부, 농축산반일군들의 긴급협의회를 열고 해결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려고 하자 류준권이 다시 찾았다.

《요즘 야간정양소에서 이동정양을 하고있는것 같던데 알고있습니까?》

《예.…》

《어제 정양소소장동무를 비롯한 직원들이 자전거에 음식을 해싣고 전기로건설장에 나가는걸 만났댔습니다.

알아보니 정양소에 다니는 시간이 아까워 로동자들이 정양을 하지 않겠다고 하기때문에 이동정양을 한다더구만.…

새로 임명된 녀소장동무가 일을 찾아 이악하게 잘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자전거에 싣고 다니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자동차로 운반조직을 해줍시다. 차가 없으면 내 승용차를 리용하시오.》

《인차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체로 온실도 짓고있다는데 잘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X


밤이 이슥하도록 김성남은 현장지휘부책상에 마주앉아 기술서적과 설계자료를 번지고있다.

로바닥을 철판식으로 할수 있겠는가 하는 과학기술적타당성을 찾기 위해 몇밤을 밝히고있는 그였다. 무엇인가 잡힐듯 하면서도 머리속에서 뱅뱅 맴돌기만 할뿐이다.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난 김성남은 팔다리를 힘껏 뻗쳐 크게 기지개를 하고는 움쭉 일어나 방안을 천천히 거닐다가 아픈 머리도 쉬울겸 건설현장으로 나갔다.

방송차에서 노래 《강선의 노을》 이 힘차게 울려온다.


아 그날의 그 사랑

아름다운 노을속에 어리여오네


들을수록 제강소에 바치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헌신과 로고가 안겨온다. 올해초 어느 발전소건설장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지금 강선의 로동계급이 공화국창건 60돐까지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발전소건설을 앞당겨끝내고 제강소에 전기를 많이 보내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진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지.…

김성남은 마음속으로 되뇌이였다.

장군님,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은 념려마십시오. 우리는 공화국창건 60돐까지 기어이 첫 쇠물을 뽑아내고 꼭 장군님을 제강소에 모시겠습니다!…

강철직장생산현장에서는 일반전기로의 전호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혼합기며 진동기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했더니 마침 휴식시간이다. 남자들은 소대별로 갈라져 무릎싸움을 하고있었다.

런닝그바람의 조인철이도 무릎을 삐죽하게 들어올리고 껑충껑충 뛰며 열을 올리고있다. 서로 부딪치고는 넘어질듯 비칠거린다. 응원하던 처녀들이 새된 소리를 지르며 웃는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락천적으로 생활하는 그들이기에 한달로 예견했던 기초까기를 단 15일동안에 해제낄수 있었으며 새 기초타입에서도 놀라운 속도로 일을 축내고있는것이다.

김성남은 금시 들어오는 조인철에게 목에 걸쳤던 수건을 쥐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번지르르하게 내돋은 땀을 닦고있던 인철이가 수건으로 몸에 달라붙는 모기를 쫓아버리고있다.

여름이여서인지 조명주위에는 모기와 부나비들이 뽀얗게 감겨돈다. 잠간 앉아있는 사이에도 앵앵거리며 얼굴과 팔을 띠끔띠끔 쏘아댄다.

여직까지도 훌훌 쫓고있는 인철을 보며 김성남은 부지중 미소를 지었다.

《모긴 왜 때려잡지 않고 쫓아버리나!》

김성남의 물음에 조인철이 익살을 피우며 말했다.

《때려잡으면 영영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몹시 졸릴 땐 모기한테라도 쏘이고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음… 그러니 모기들이 오히려 도와주는셈이구만. 졸지 말라고 따라다니며 쏘아주니 말이요, 하하.…》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던 돌격대원들이 와- 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는 웃음이여서 더욱더 락천적인것으로 돌려온다.

이 한마디 롱담 아닌 롱담속에서도 김성남은 그들의 강의한 의지를 찾아보았다. 미국놈들과 불순세력들이 제강소현대화를 기어이 막아보려고 하면할수록 더 완강하고 억세게 맞서는 강선의 의지가 아니겠는가.

공사가 진척될수록 부족한것이 많고 걸린것도 많았지만 제일 걸린것은 역시 시간이였다.

로밑바닥문제가 해결되지 않다보니 로동체조립도 못하고있다. 이제 보조설비까지 조립완성하자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하기에 제관공들은 밤낮을 이어 용접불꽃을 날리고있다. 용접집게가 뜨겁게 달아오르면 물소랭이를 가져다놓고 번갈아 식히며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앉아서도 능히 할수 있는 용접을 일어서서 하였다. 불같은 사람들이다.

생각에서 깨여난 김성남은 불빛이 비치지 않는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선희를 띄여보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너 영재와 화해했니?》

선희는 머리를 가로젓는것으로 대답한다.

《음… 그러니 아직도… 그래 이젠 결별했다는거냐?》

역시 머리만 끄덕이며 대답이 없다.

《도대체 네가 찾는 사람이란 어떤 인물이냐?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웅호걸? 이제 와서 보니 넌 영재의 발꿈치에도 못 따라갈… 그래두 뭐 강선처녀라구?》

《…》

김성남은 격해진 마음을 애써 누르며 조용히 타일렀다.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은 없어. 본의아니게 결함을 범할수도 있고 나약하게 행동할수도 있지. 그래서 인간이 아니겠니.… 결함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니.… 자기 결함을 제때에 찾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가가 중요한거야. 지금 영재는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고치기 위해 애쓰고있어. 그런데 넌 그에게 힘을 주고 신심을 줄 대신 배척하고있으니 어디 됐는가 말이야. 쇠물을 끓이는 처녀같지 않구나.》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만 내려다보고있는 선희를 얼핏 쳐다보고난 김성남은 다시 입을 뗐다.

《결함이 있다고 외면한다면 그건 자기만을 위한 리기적인 사랑이야. 사랑한다면 아량이 있어야지.… 진실하고 참된 사랑이란 결함이 있다고 저버리는것이 아니라 잘 도와주고 이끌어주는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믿음이고 그 믿음이 사랑을 지키는게 아니겠니!》

《!…》

선희는 얼마전에 우연히 영재를 만났던 일이 생각나 호- 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사실 공원에서 그와 헤여진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자기의 타매를 허심하게 진심으로 받아들이던 영재의 모습이 눈앞에 꽉 차올라 걸음을 제대로 걸을수 없었다. 그 순간 선희는 흠칫했다. 여전히 자기가 영재를 사랑하고있다는것을 온몸으로 느꼈던것이다.

그럼에도 그와 마주서면 자꾸 모질어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랬다.

영재를 너무도 사랑하고 믿고있었기에 자그마한 결함도 용서할수 없었다. 가슴이 아팠었다.…

선희는 《작업시작!》이라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한번 깊은 숨을 내쉬였다. 그를 한동안 지켜보고있던 김성남은 언젠가는 그들도 화해할 날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3호전기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기로는 한창 용해중에 있었다. 방열복을 입은 용해공들이 빙빙 돌아가며 곽삽으로 보조원료를 퍼넣고있다. 그때마다 퍼런 불길과 함께 불찌가 탁탁 튀여나온다.

그들속에 어울려 한바탕 땀을 흘리고난 김성남은 누구인가 권하는 독한 마라초를 말아 슬라크에 붙여물고는 로안을 들여다보았다. 거의 다 익어가는 쇠물이 풀떡풀떡 솟구치고있었다. 전기로안은 쇠물이 내뿜는 열기로 이글거린다.

그 어느때보아도 아름답고 황홀한 주홍빛쇠물이다. 그 순간 번쩍, 성남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초고전력전기로의 용해온도나 일반전기로의 용해온도나 다를바 없지 않는가.… 다만 용해시간이 다를뿐이다. 하다면 밑면에 주는 온도는 별반 차이가 없지 않겠는가. 더우기 기술자료에 의하면 초고전력전기로의 내화물손실이 일반전기로보다 적다고 하는데 그만큼 열복사가 약하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밑굽온도?… 두전기로의 밑굽온도를 측정하여 대비해본다면…

피우던 담배를 슬라크무지에 던지고난 성남은 다시 곰곰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그처럼 단순한걸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하고있었는지 어이가 없었다. 하긴 모든 미지의 문제들도 발견해놓고보면 단순한것이 아니겠는가.…

우선 ㅎ제철소의 초고전력전기로의 밑굽온도를 측정하자.

현장지휘부에 올라가 영재를 부르려고 전화기에 손을 가져가던 김성남은 얼결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벽 두시였다.…

아침일찍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조직사업을 하고난 김성남은 박영재를 조용히 만나 자기가 생각한것을 말해주었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너무도 명백한 리치앞에 박영재는 탄성을 올렸다.

《그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착상을…》

지배인에게서 어제 저녁 3호전기로 현장에 나갔던 이야기를 들으며 박영재는 얼굴이 뜨거워났다. 지배인이 전기로앞에서 그것을 구상하고있을 때 자기는 책상에 앉아 콤퓨터와 씨름하고있었으니 참.…

《지배인동지! 이제 당장 ㅎ제철소에 가겠습니다.》

《!…》

믿음이 어린 눈길로 영재를 바라보며 김성남은 생각에 잠겼다.

용해온도가 최대로 올랐을 때 로밑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혼자서는 더우기 안된다. 그렇다면 누굴 더 보내야겠는데…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혼자선 안돼. 그럴것없이 나와 함께 가자구!》

영재가 안된다고, 제 혼자 가겠다고 뻗치였으나 김성남의 고집을 당해낼수가 없었다.

고온측정계기와 보안경을 준비한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슬며시 승용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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