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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 3 장


마음속의 빛은 밝다


6


명윤희는 기업소창립절에 있은 녀자축구경기이후 다섯번째로 청년돌격대가 일하는 정양소건설장으로 이동리발을 나가는 길이였다.

그는 오늘 아침출근길에서 앞서 걸어가는 당비서를 보았다.

당비서는 나이에 비해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걸음걸이가 빨랐다. 오죽 빨랐으면 당비서에게 모터찌클이라는 별호가 붙었겠는가. 하루는 누구인가 그 빠른 걸음걸이에 호기심을 갖고 물었더니 당비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별게 아니요. 어릴 때 붙은 습관이지. 사구리라는 내 고향마을은 리소재지에서도 30리나 떨어져있는 산골막바지였소. 그러니 소재지학교까지 지각하지 않고 가자니 달릴수밖에, 돌아올 때도 어둡기 전에 집에 들어서려고 또 달리고… 해방직후에야 어디 산골마을에까지 학교가 있었소. 결국 하루 60리씩 매일 마라손을 한셈이지, 허허. …》

그때 그 소리를 전해들은 명윤희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어릴 때의 습관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화력발전소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한어깨에 다 짊어지고있는 당비서에게는 늘 시간이 모자랄것이다. 그래서 뛰고뛰고 또 뛰는것이 아니겠는가.

윤희는 당비서앞으로 달음박질해갔다.

《비서동지, 안녕하십니까?》

리성복은 빠른 걸음을 멈추고 윤희에게로 돌아섰다.

《비서동지, 오늘은 꼭 시간을 내서 리발소에 오십시오.》

《어- 벌써 머리깎을 때가 됐나?》

리성복은 보위색작업모자를 벗어 머리를 만져보았다. 모자에 차분히 잠재워진 머리카락이 더부룩이 손에 잡혔다.

《머리깎은지가 20일이 넘었습니다.》

《벌써? 응, 내 시간을 내서 리발소에 가지.》

윤희는 당비서의 말을 믿지 않았다. 늘 이렇게 약속하고는 감감 잊군 하여 윤희의 속을 태운 일이 어디 한두번인가.

《이젠 리발소에 오시겠다는 당비서동지의 말은 콩으로 메주쑨대도 곧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허허, 내 윤희동무에게 단단히 신용을 잃었군. 할수 없지. 어디로 나간다?… 오, 그렇지. 어제 보니 돌격대에 머리 긴 동무가 더러 있더구만. 리동혁이 더 더부룩해. 나도 돌격대에 나가겠으니 이동리발을 나가주오.》

윤희는 그러지 않아도 돌격대에 이동리발 나가려던 참이였다.

《그럼 돌격대에서 만나자구.》

리성복은 이렇게 약속하고는 가던 길을 총총히 재촉했다.

윤희는 출근하자 바람으로 계획심사로 성에 간다는 계획과장의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이동리발》이라는 나무표쪽을 문에 걸어놓고 돌격대로 나가는 길이다.

아침출근시간에 당비서가 하던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당비서는 돌격대에도 머리 긴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유독 리동혁의 이름을 꼽았다. 리동혁은 녀자축구경기일로 명윤희의 눈밖에 난 사람이다. 그는 기업소창립절날 돌격대의 우승을 위해 명윤희를 속여 그를 축구경기 전반전에 참가 못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런 일로 하여 돌격대는 보장팀을 누르고 우승의 영예를 지녔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손해는 리동혁이 톡톡히 보았다. 다정했던 이들의 사이가 랭전으로 변한것이였다.

명윤희는 축구경기전에 기사장인 아버지와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도 다 리동혁을 위한것이였다. 아버지는 딸에게 경기에서 세꼴만 넣으면 뭐나 다 해주겠다고 했다. 윤희는 리동혁의 어머니를 모셔올 자동차를 부탁했다. 그런데 리동혁이 도리여 뒤다리를 붙잡았으니…

경기가 끝난 후 두손잡고 빌어도 시원치 않겠는데 비위좋게도 머리를 마저 깎아달라고 찾아왔다. 윤희는 그를 내쫓았다. 그러면서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그루를 박았다.

그후 리동혁이 어느 서툰 리발사의 도움을 받았는지 어딘가 흉하게 깎은 머리를 버젓이 들고 윤희앞에 나타났다. 그 거동을 봐선 동무가 아니고도 머리깎아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하는 고자세였다. 윤희는 아무 반응도 안 보였지만 속으로 웃었다. 머리의 절반은 전문가의 솜씨(윤희의 솜씨였다)가 다분히 엿보였는데 한절반은 비전문가의 솜씨라는것이 헨둥하게 알리는 반제품짜리머리로 여겨졌기때문이였다.

(시간을 끌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상고머리를 깎아달라고 조르더니 잘도 됐지. 어디 한번 망신해보라지.)

윤희는 다섯번씩이나 돌격대에 이동리발을 나가면서도 리동혁의 머리에만은 손을 대지 않았다. 결국 리동혁이 명윤희로부터 리발제재를 받은셈이였다.

사실 윤희는 세번째 리발때는 제재의 도수를 낮추려고 했다. 한것은 리동혁의 속깊은 마음에 감동되여서였다.

처음 돌격대에 이동리발을 나갔을 때 리동혁은 그앞에 나타나지도 못했다. 윤희는 점심식사하러 가면서 리발도구와 숫돌을 그 자리에 둬두고 갔었다. 내심은 리동혁이 어떻게 나오는가 보자는것이였다. 그전에 리동혁은 매번 점심시간이면 윤희 몰래 리발도구를 갈아놓군 했던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된 명윤희는 그의 인간됨에 감동되여 서로 친숙해지게 되였다. 그 친근감은 리동혁이 옛 사관장인 서봉철과의 우정을 귀중히 여겨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나라의 동력인 전기에 대한 애착이 보다 강하다는것으로 하여 더 돋보인데서 우러나온것이였다. 전기의 속성인 빛을 갈망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참다운 발전소로동계급이랴. 언제인가 리발할 때 그의 웃옷에서 손바닥만 한 수첩이 떨어졌는데 윤희는 살짝 주어서 훔쳐본적이 있었다. 그 수첩장갈피에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사랑을 받는 서정시 《어머니》, 《나의 조국》등이 멋부린 글씨로 적혀져있었다. 한참 번져가는데 이런 내용의 글도 적혀있었다.

《세상에 녀인들의 직종을 노래한것은 많은데 유독 리발사의 노래가 없는것이 유감이다. 내 언젠가는 꼭 리발사의 노래를 지어 사랑하는 그대에게 드리겠노니, 기다려다오. 어여쁜 리발사처녀여!》 윤희는 참 재미있는듯 몇번이고 그 글줄을 읽어보았다. 그러느라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혹시 자기를 념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닌지, 발전소에 처녀리발사가 나 내놓고 또 누가 있단 말인가. 희떠운데는 있어도 그의 인간됨을 보아서는 한자한자 의미를 담아 박아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윤희는 무엇에 놀랐는지 귀바퀴까지 꽈리빛이 되여 자기를 질책했다.

(엄마, 내 왜 이럴가. 누구를 념두해두고 쓴 글이라는것도 모르는데 그 동문 엉터리야. 리발사의 노래가 없긴 왜 없다고 그래. 예술영화 〈처녀리발사〉를 보지 못한게지. 그래가지고도 리발사의 노래를 짓겠다구 흥.)

한켠으로는 속에 없는 글을 써놓고 일부러 수첩을 떨구어놓지 않았을가 하는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여하튼 리동혁은 엉큼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는 유쾌한 사나이였다. 어디 이 일뿐인가. 언젠가는 잘 갈아놓은 가위에 종이쪽지가 끼워있었는데 그 쪽지에는 이런 글이 씌여있어 웃음절반 감동절반 받은적이 있다.

《동무가 면도날이면 난 면도칼의 날을 세워주는 숫돌이요. 면도칼은 숫돌을 떠나서는 제구실을 못합니다. 동무의 숫돌로부터.》

읽어볼수록 비유가 신통하다는 생각에 윤희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숫돌이 되겠다?! 표현은 좋은데…)

그때부터 윤희는 내색하지 않고 그가 진정으로 숫돌이 되는가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요즘 노는 꼴을 보면 숫돌은커녕 막돌도 못될것 같았다.

윤희가 점심식사를 하고 나오니 리발도구는 그때처럼 선들선들하게 날이 서있었다. 분명 리동혁의 솜씨였다. 한번만 더 지켜보자.

두번째 이동리발때도 윤희는 그를 지켜보았다. 이번에도 리동혁은 말없는 성실성을 발휘했다.

이쯤되자 윤희의 생각도 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희는 녀자축구경기일을 두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리해할탓이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나를 경기장밖으로 빼돌린것은 스스로가 창안해낸 창안품은 아닐것이다. 그 땅크같은 돌격대장이 우리 두사람의 관계를 리용해 꾸며낸 흉물스러운 작전안이지 리동혁의 머리로써는 생각지도 못해. 그러니 리동혁은 주동인물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저 시키니까 마지못해 했을수 있다. 장본인은 조직하고 지시를 준 그 강병수야. 그러고도 버젓이 두번씩이나 머리를 깎았지. 다음번엔 안될걸!)

명윤희는 다음번이동리발을 기다렸다. 이번에 나가면 리동혁의 머리를 그새 못 깎은 봉창까지 합쳐 성의를 다 보이리라 좋게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동리발을 나가기 며칠전에 리동혁에 대한 뛰뛰한 소문이 윤희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에게 다른 단골리발사가 생겼다는것이였다. 그건 할말이 없지만 그 뒤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 단골리발사는 윤희보다 리발을 더 잘한다는것이다. 그는 영천시내에 있는데 리동혁이 리발할 때가 되면 꼭꼭 합숙으로 찾아오며 리동혁은 또 리동혁이대로 그를 바래워 20리밤길도 마다않고 걷는다는것이였다.

바래워주는것도 뭐라나. 화가 나는것은 윤희자신보다 그가 기술이 높다는 그 점이였다.

(얼마나 잘 깎기에 남까지 비유하면서 그럴가? 어디 한번 보자!)

윤희는 그달음으로 돌격대로 나가 리동혁의 머리모양을 먼발치에서 훔쳐보았다. 보니 그닥 시원치 않았다. 리발사들은 머리깎은 형태만 보고도 그 수준을 알수 있다. 리동혁의 머리형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택부터가 틀렸다. 그는 파도형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

(모를 일이다. 그처럼 멋있다는 단골리발사의 수준이 저 정도인가?)

윤희는 네번째 이동리발을 나갔다. 그는 위치를 2층홀에 잡았다. 돌격대의 절반인원은 1층간막이를 쌓고 나머지인원은 2층골조를 축조했다. 2층홀이면 1층을 내려다볼수 있는 2층중간위치여서 사사모사 편리했다.

리동혁은 2층홀에서 빤히 내려다보이는 1층에서 간막이를 쌓고있었다. 묘하게도 1층에서는 2층홀이 올려다보이지 않았다.

그날 리동혁은 또다시 새로운 극을 연출해 윤희를 아연케 했다. 첫순서는 돌격대 대장 강병수가 해야 옳을것이다. 하지만 대장은 윤희의 제재항목에 든 사람이여서 제명되였다. 윤희는 2층에서 골조축조를 하고있는 돌격대막냉이 순남이를 찾았다. 순남은 제가 어떻게 되여 첫 리발순서에 들었는지도 모르고 히벌쭉해있었다.

윤희가 한창 머리를 깎는데 리동혁과 축조소대 싱검둥이고수머리가 재담이나 하듯이 재미있게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듣노라니 그 재미있는 이야기의 주제는 리동혁의 단골리발사에 대한 것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윤희가 알고싶던 문제여서 그는 바싹 귀를 강구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찰칵찰칵 가위소리를 누르며 들려왔다.

《여, 고수머리. 우물안의 개구리란 말 알지? 우리 리발사가 바로 우물안의 개구리거던. 시야가 넓지 못하다보니 저만 잘났다고 으쓱해서…》

그 말은 귀에 거슬렸다. 생각같아선 뒤에서 남의 소리를 하는 저 능구렝이에게 물이라도 콱 쏟아주고싶은 심정이였다.

(참자, 이제 더 험악한 말이 나오면 그땐 못 참아!)

재담수들의 연기는 끊기지 않았다.

《형님이 윤희동무의 왼발차기에 걸려 측선밖으로 횡 날아났다는게 사실이요?》

《누가 그래?》

《사람들이 다 그러지요. 그리고 내 보기에도 형님의 그 머리모양새를 보면 대뜸 알지요. 그게 뭐예요. 윤희동무에게서 깎을 때는 미끈했는데 지금은 털다만 까치둥지같애요.》

윤희는 그만 웃고말았다.

《뭐 털다만 까치둥지. 여, 싱검둥이, 뭐가 어드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탕탕… 내가 왜 머리를 기르는지 알아? 이번엔 신식머리를 깎아보자는거야.》

《누구한테서요?》

《…》

상대방은 대본을 까먹은듯 제꺽 대답하지 못했다.

《너 몰라서 물어?》

《정말 모르는데?…》

《내게 기딱찬 단골리발사가 생겼어.》

《정말이요?》

《정말 아니문. 가서 몰탈 가져와.》

잠시 재담은 멎었다. 싱검둥이가 몰탈을 가져왔는지 다시 재담은 이어졌다.

《물론 녀자리발사겠지요?》

《처녀야.》

《그래요?》

《한번 들어보겠어? 챠, 정말 기딱차게 머리를 잘 깎아.》

리동혁은 극의 절정에 오른듯 잠시 동안을 두었다. 윤희는 리발을 중지했고 순남이도 키득거렸다.

《리발사는 첫째도 둘째도 인상이 좋아야 단골손님들을 많이 가질수 있지?》

《그건 나두 알아요. 그 리발사인상이 어때요?》

《꽃에 비기면 함박꽃이요, 달에 비기면 보름달이지. 척 의자에 앉으면 머리안마부터 시작해. 백옥같은 흰 열손가락끝에 힘을 주고 머리신경들을 자극시키는데… 좀 있다가는 두손바닥으로 머리를 슬슬 비벼대지. 그쯤되면 머리가 거뜬해지고 스르르 졸음이 오네.》

《그래서요?》

《그다음은 머리를 깎기 시작하는데 사각사각 가위질소리는 자장가 한가지야. 그렇게 한절반 잠에 취해있느라면 어느새 머리를 다 깎았는지 내 앞에 손거울을 주면서 어디가 미흡한가 물어보네.》

《그 리발소에는 큰 거울이 없는가부지요?》

《싱검둥이, 앞질러 툭툭!… 있어두 대판거울이 있어. 손거울은 가까이에서 세부적인것을 보라는게야. 그다음엔 머리를 감겨주지. 세면대야에 머리를 들이밀면 어느새 향긋한 물비누를 묻힌 손이 내 머리에 와닿지.》

《가만, 형님. 그건 우리 식이 아니지 않아요?》

《무식하다구야. 이젠 우리의 봉사수준도 부쩍 높여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우리 리발사를 보고 우물안의 개구리라고 하는게야. 마저 들어. 어디 그뿐인줄 알아? 머리를 빨아주고는 눈에 거품이 들어갈세라 날래게 수건으로 물을 닦아주지. 그다음엔 에…》

《또 있어요?》

《듣기나 해. 더운 김이 나오는 거 뭐라더라?》

《건발기요?》

《응, 건발기로 머리를 말리워주지. 그리고 머리기름을 발라주고 고착제로 머리형태를 딱 고정시켜주네. 어때, 멋있지? 이런 처녀리발사가 나의 단골이야!》

《챠, 멋있는데. 영천시 리발사겠지요? 헌데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요.》

《멀긴, 여기서 5분 가면 돼. 어딘가 하면 동암리관리위원회리발사야.》

《체 , 촌리발사군요.》

《여, 농촌리발사라구 숫보지 말아. 요즘 농촌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아?》

《그럼 나도 형님따라 한번 가봐?》

《그러자면 일을 잘해야 돼. 그 동문 혁신자만 받아준단 말이야. 가서 벽돌을 날라와!》

리동혁의 단골리발사에 대한 재담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이거라구야! 웃지 않고는 못 견딜 재담이였다.

《저 사람들 화력발전소에 잘못 오지 않았어요? 연극극장에 가면 제격이겠는데, 하하…》

《그러게 말이예요. 호호…》

윤희는 웃었으나 속은 랭랭해졌다. 그는 리동혁에 대한 제재를 해소시키고 그 화살을 돌격대장에게 돌리려던 자기의 안을 단호히 취소시켰다.

(리동혁, 이제 보니 천성적인 거짓말쟁이였구나. 허풍쟁이! 그리고도 리발사의 노래를 짓겠다구. 흥, 숫돌은커녕 막돌도 못될 장돌뱅이!)

윤희는 동암리관리위원회리발사를 알아도 잘 안다. 그는 몇달전에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동암리에 배치받아온 애숭이리발사였다. 요 며칠전에도 머리모양새가 까다로운 관리위원회회계원의 머리를 두시간이나 붙들고 씨름하다가 끝내 완성시키지 못해 눈물까지 흘린 풋내기이다.

윤희는 리동혁의 단골리발사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의 머리형태를 보고 혹시 동암리리발사의 솜씨가 아닐가 의심은 했었다. 그 의심이 오늘은 사실로 증명되였다.

(그래가지고도 날보고 우물안의 개구리라구?)

이 일로 하여 애써 취소되였던 리동혁의 리발제재는 다시 시작되였다.…

정양소건설장에 도착한 명윤희는 눈이 훌 뒤집어질 지경으로 놀랐다. 그가 네번째로 이동리발을 나왔을 때 돌격대는 2층축조를 진행하고있었다. 20일전이였다. 그런데 그 20일사이 정양소건물은 자기의 자태를 완전히 드러낸것이였다.

윤희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여기저기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돌격대의 전투력이 여간 아니구나. 저 덩지 큰 건물을 두달도 안되는 사이에 완성시키다니.)

정양소건물에 들어서니 돌격대원들은 한창 내부미장공사를 진행하고있었다. 돌격대원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들의 머리를 곱게 다스리러 찾아온 리발사라며 반가운 인사를 보냈다.

그는 1층홀에서 돌격대장 강병수를 만났다. 돌격대장은 생기기는 처녀처럼 곱살하나 일단 사업에 들어가서는 호랑이였다. 그는 돌격대의 명예를 위해서는 불속도 서슴없이 뛰여들 투신적인 사나이였다. 그런 그였기에 보장팀의 녀자축구를 이기기 위해 리동혁과 함께 비도덕적인 행위도 서슴없이 실행하였던것이다.

그는 기업소창립절날 녀자축구경기가 있은 후부터는 윤희를 별스레 살갑게 대해주었다. 도덕적으로 떳떳하게 우승하지 못한 자책감이나 미안한감의 표현이라고 윤희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강병수는 오랜 구면친구라도 만난듯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 리발사동무가 또 나왔구만. 이렇게 찾아와주어 정말 고맙소!》

《고맙긴요. 제 본분인걸요.》

윤희는 강병수가 그럴수록 매양 쌉쌀한 표정으로 그를 대했다. 그 엉터리수에 깜빡 속은 분풀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강병수는 너스레에 가깝게 말했다.

《오늘 이동리발의 첫 손님으로 누굴 보낼가? 마음나는 사람을 찍으시오.》

《첫 순서는 당비서동지예요. 비서동지를 찾아 3층홀에 올려보내주세요.》

윤희는 더 긴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이미 점찍어두었던 이동리발장소로 올라갔다.

그는 이번 이동리발장소를 3층으로 잡았다. 사실은 돌격대원들이 1층부터 3층까지 쫙 널려 미장작업을 하는 조건에서 전번처럼 2층홀에 잡아야 적당했다. 하지만 전번리발때 기분없던 일을 생각하면 2층홀에는 가기도 싫었다. 그는 3층으로 올라가면서 제발 리동혁을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리동혁은 다시는 윤희앞에 나타나지 못할것이다. 아마 순남이가 그 엉터리없는 재담내용을 리발사가 일일이 엿들었다고 리동혁에게 고해바쳤을것이다. 그러니 무슨 체면으로 얼굴을 내밀수 있단 말인가.

윤희는 3층로대로 나갔다. 정말 경치가 볼만 했다. 여기서는 전력생산으로 들끓는 화력발전소를 한눈에 환히 바라볼수 있다. 좌측으로 돌아서니 장성강반풍치가 시원히 안겨들었다.

장성강벌버드나무숲에서 매미합창대의 울음소리가 귀맛좋게 들려왔다.

기분이 상쾌하여 이윽토록 바깥풍치를 부감하던 윤희는 로대 가까이에 리발의자를 놓고 리발준비를 갖추었다. 윤희는 당비서를 기다렸다.

이때 등뒤에서 투닥투닥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당비서동지로구나.)

반가운 표정으로 뒤돌아보던 윤희는 순간에 새파래졌다. 눈앞에는 리동혁이 벙글거리며 서있는것이 아닌가.

《대장동무는 당비서동지가 일이 있어 운수과에 갔다면서 첫 리발순서로 날 찍었소.》

윤희는 홱 돌아서며 벌처럼 내쏘았다.

《동무는 바다고 난 우물안의 개구리인데 우물안이 넓다 하는 개구리한테서 리발을 할게 있어요? 어서 그 기딱찬 단골리발사한테나 가보세요.》

《허, 롱담한걸 가지고 뭘 그러오. 롱담없는 말은 소금 안 친 음식이라지 않소.》

리동혁은 떡판같은 비위살을 부리며 리발의자에 척 앉았다.

《난 롱담없는 짠말을 더 좋아해요. 어서 일어나요!》

《윤희동무, 내 시간이 없어 그러는데…》

《시간? 시간은 나도 없어요. 동무말고도 리발할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이쯤되자 능글스럽던 리동혁의 얼굴에 일순 구름이 끼였다. 그는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부리부리한 눈을 콩크리트바닥에 그루박고 무뚝뚝히 앉아있었다. 윤희도 만만치 않게 의자곁에 딱 버티고 서있었다.

《좋아, 다시한번 묻겠소. 정 머리깎아줄 마음이 없소?》

《없어요!》

물음도 심중했고 대답도 단호했다.

이때 밖에서 돌격대대장이 소리쳤다.

《여, 동혁동무! 머리를 못 깎았어? 당비서동지가 빨리 운수과로 오라누만. 이사짐을 실으러 갈 차가 기다리고있소.》

《예, 알겠습니다!》

동혁은 마침 잘됐다는듯 불쑥 의자에서 일어나 로대아래로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는 다시 윤희에게로 다가와 황소처럼 떡 버티고 서며 거칠게 말했다.

《동문 너무 매정하구만. 그래 당장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데 이렇게 더부룩한 머리모양으로 가야 속시원하겠소? 그래도 꼭 동무한테서 머리를 깎고 어머니를 만나고싶어 체면도 불구하고 왔는데… 좋소. 내 다신 동무의 신세를 지지 않겠소!》

그는 씽하니 계단을 뛰여내려갔다. 세괃게 내닫는 그의 발자국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윤희의 가슴은 싸늘하게 얼어들었다. 《다신 동무의 신세를 지지 않겠소.》하는 말마디가 찾아온 손님더러 가라고 쫓는 소리이상으로 혹독하게 들린것이였다. 이상했다. 자기는 어째서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데 대해 이렇게도 분하고 안타깝고 더럭 겁까지 나하는것일가?

잠시후에야 윤희는 리동혁의 어머니가 오신다는 말이 상기되였다. 그러자 마음이 아릿해났다.

(에이, 미욱쟁이! 그렇다면 진작 그 말부터 할게지.)

그는 로대로 달려나갔다. 머리를 짓수그리고 걸어가는 리동혁의 모습이 아프게 안겨왔다. 이제라도 두손 모아 《동혁동무! 서세요. 머리를 깎고 가세요!》하고 소리치고싶었다.

(저 더부룩한 머리를 보시면 어머니가 얼마나 가슴아프실가. 동혁동문 나에게서 머리를 깎고 어머니앞에 자랑하려 했을거야. 그런데 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멀어져가는 리동혁을 바라보는 윤희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하니 고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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