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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회


제 3 장


마음속의 빛은 밝다


2


서재필은 오래간만에 특수용접작업장 휴계실에 들어섰다. 아직은 이른 출근시간이여서 휴계실은 텅 비여있었다. 감회깊은 눈길로 휴계실의 곳곳을 둘러보았다. 9개의 철함들이 ㄱ자로 주런이 놓여있고 휴계실 한가운데는 철판으로 만든 책상이 있다. 그 책상 량켠에 긴 걸상이 놓여있었는데 그것들도 철로 만들었다. 누군가가 들어와도 대뜸 용접공들이 사는 집이라는것이 알릴수 있게 모든것이 철로 용접하여 만들어진것들이다.

휴계실은 예전과 꼭같았다. 서재필은 사람들의 엉치에 다슬리여 하얗게 반들거리는 긴 걸상에 조용히 앉았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 걸상에 앉아서 작업지령을 받았고 작업총화에도 참가했다. 또 이 걸상에 곰처럼 웅크리고앉아 의견도 많이 부렸고 기능공재세도 하였다. 이제는 그 일도 옛일로 되여버렸다. 오늘부터 그는 이 걸상에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작업지령을 받아야 한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부풀고 어깨 또한 뻐근하게 무거워진다.

서재필은 가만히 눈을 감고앉아 마음속으로 속다짐했다.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는것만큼 일하는 본새도 다르고 사람들을 대하는 품도 달라야 해. 아들이 아버지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해.)

서재필은 아들과 함께 작업반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밤사이 앉은 휴계실의 먼지를 말끔히 걷어냈다.

청소가 끝난지 얼마 안있어 특수용접공들이 전원 출근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온 서재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쉰고개를 갓 넘긴 작업반장은 조회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동무들, 오늘 우리 작업반에 또 한명의 용접공이 배치되여왔습니다. 그분이 바로 서재필아바이입니다. 우리모두 열렬한 박수로 축하해줍시다!》

고작 9명이 쳐대는 박수소리가 극장관람석에서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작업반원들은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병사처럼 서재필을 떠받들었다.

서재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했다. 서서히 머리를 드는 그의 눈가에 축축히 눈물이 어려있었다. 어찌 눈물이 고이지 않으랴. 그전엔 앞뒤로 등을 돌리고 넌 너고 난 나다고 남의 기쁨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고 남의 슬픔에 손을 걷어올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 그땐 다는 몰랐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고 진정한 정이 무엇인가를… 공장밖을 나가 외톨밤신세가 되여서야 그 사랑, 그 정이 그리워 울었던 서재필이 아니였던가.

서재필은 진정 고마움에 겨워 목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서로 돕고 이끌면서 힘껏 일해봅시다!》

또다시 박수소리가 울렸다. 그들속에는 서봉철도 있었다. 그는 오늘처럼 아버지가 돋보이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제일로 좋아하는 시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를 읊었다.

봉철은 시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라고 생각했다. 시의 주인공처럼 봉철이도 어린시절 아버지자랑하기가 부끄러워 동네아이들이 자기 집에 모셔진 기념사진을 자랑할 때면 홀로 장성강에 나가 울었다.

오랜 로동경력을 가진 로력혁신자들의 집에는 발전소조업식때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이 벽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모셔져있다. 하지만 봉철의 집에는 기념사진이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봉철이 우리 집에는 왜 기념사진이 없는가고 묻자 아버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때는 정말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봉철은 군사복무시절 시 한편을 보고 아버지의 생각이 나 울었었다. 그 시가 바로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였다. 그는 중대오락회시간에 이 시를 읊어 전우들의 대절찬을 받았다. 제대되여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공장예술소조공연무대에 올라 이 시를 랑송했다.

그는 시를 랑송할 때마다 아버지가 시의 주인공처럼 떳떳이 아버지자랑을 할수 있게 일해주기를 원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는 제대되여 돌아온 아들에게 용접면과 용접고대를 넘겨주고 자기는 낚시대를 쥐고 장성강반으로 나갔다.

봉철은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실망이 컸었다.

(아 아버지, 아버지는 이 아들에게 무엇을 넘겨주시렵니까?)

그 아들의 애타는 하소연을 아버지는 뒤늦게야 헤아려주었다. 아버지는 늦게나마 인생의 종착점을 낚시터가 아니라 전력생산으로 들끓는 발전기로 돌린것이였다. 오늘부터는 용접고대를 억세게 틀어쥐고 한생을 련마해온 용접기술로 발전기의 동음을 지켜갈것이다. 봉철은 마음속으로 시의 주인공처럼 로동자인 아버지를 소리높이 자랑했다.

작업반장은 서재필에게 3호발전기 승수관용접을 할데 대한 작업지령을 주었다.

서재필은 용접도구를 메고 발전기실로 들어갔다. 심장의 박동이 발전기의 동음처럼 높뛰였다. 아, 얼마나 듣고싶었던 동음인가. 잊으려고 애를 써도 자꾸만 귀가에서 웅웅거려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였다. 얼마전에 장성강반에서 석남흥이와 헤여지고 발전소쪽으로 씨엉씨엉 걷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문득 죽기 전엔 발전기의 동음을 귀가까이에서 들어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울었던 서재필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처럼 여겨오던 발전기앞에 다시 섰으니 정말이지 다시는 발전기와 헤여지지 않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리라 마음다졌다. 발전기도 옛 주인을 다시 만난 기쁨의 표시런듯 기운차게 자기의 동음을 시위했다. 그는 자기를 친근하게 맞아준 작업반사람들에게 인사하듯 발전기에 대고 다시는 헤여지지 말자고 약속의 인사를 나누었다.

서재필은 용접고대를 쥐여보았다. 왜서인지 손이 떨렸다. 그는 용접면을 쓰고 용접고대를 터져나간 승수관에 슬쩍 대였다. 뿌직- 용접아크가 일었다. 순간 낚시에 고기가 물렸을 때 느끼던 그런 쾌감이 온몸에 쭉 퍼져나갔다.

서재필은 숙련된 솜씨로 승수관을 용접했다. 역시 서재필은 서재필이였다. 오래동안 손에 고대를 쥐여보지 못했지만 단 몇분새 자기의 특수한 용접기법을 되찾은것이다.

서재필의 왼손은 귀신 한가지라고 용접공들도 탄복했다. 그는 용접고대를 떼고 망치로 용접부위를 탕탕 두들겨 슬라크를 까냈다. 용접물이 얼마나 골고루 먹었는지 이게 분명 용접부위가 옳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검사해보나마나 합격이다.

서재필은 하루종일 힘든줄 모르고 용접기술을 과시했다. 터진 승수관을 열군데나 때붙였다. 그러면서도 저녁시간이 되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아들이 어떤 처녀를 선보이겠는지 해가 중천에 뜬 낮부터 궁금해났던것이다. 처녀를 데려와도 제발 제 어머니처럼 남자번지개를 데려오지 않기를 바랐다.

서재필은 자기 로친을 녀복차림의 남자로 인정한지 오랬다. 녀자라면 불에 구워낸 쇠물처럼 노긋노긋한데가 있어야지 로친처럼 압연기에서 갓 연신한 쇠줄처럼 꺾이면 꺾이였지 굽어들지 않는 그런 쇠줄은 해서 무엇하냐 말이다. 남자라면 몰라두… 하긴 괜한 걱정이다. 아들녀석은 자기와는 성격이 너무 대조적이여서 그 어떤 강쇠줄도 그앞에서는 굽어들지 않고 못 견딜것이다.

서재필은 하루작업총화가 끝나기 바쁘게 아들의 거동을 살폈다. 아들은 공구함에 공구를 넣지도 못하고 어디론가 바삐 나가버리는것이였다.

(녀석두, 꽁지에 불이 달렸군.)

서재필은 저마다 자기네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는 작업반원들의 성의를 굳이 사양하고 집으로 바쁜 걸음을 했다.

서재필이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로친이 누렁강아지보다 먼저 뛰여나왔다.

《수고했수다.》

오금녀는 상냥하게 령감을 마중했다.

(허,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없던 노죽까지 부리면서.)

《그래 봉철인 안 오우?》

《데려온다는 처녀와 함께 오겠지. 내 눈치없이 젊은것들을 앞세우고 오겠소.》

서재필은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음식냄새가 물씬 코를 찔렀다. 벌써 방 한가운데는 둥근상이 묵직한 음식그릇을 떠이고 듬직하게 앉아있었다. 서재필은 슬쩍 밥상보를 들쳐보았다.

(이크, 굉장히 차렸는걸. 통닭두 있구 송편도 있구. 며느리가 귀하긴 귀하다.)

로친이 언제 따라들어왔는지 포장지안에 넣어있는 아직 입어보지 못한 실내복 한착을 꺼내들었다.

《자, 이걸 갈아입으시우. 작년 년말총화때 봉철이 받은 상품인데 색갈이랑 잘 어울릴거우다. 처녀가 오거들랑 의젓하게 앉아있어야 하우. 그저 내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돼요.》

《챠, 또 훈시요? 내가 선을 보는것 같구려.》

《됐수다. 시집가풍은 시아버지인품에 있다질 않소. 잔말말구 이 옷이나 갈아입으라구요.》

《이런 성화라구야.》

서재필은 엊그제 입은 내의를 벗고 연초록내의를 갈아입었다. 아래내의를 채 갈아입지 못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며 강아지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크, 왔수다. 빨랑빨랑 갈아입으시우.》

서재필은 불맞은 황소마냥 황황히 아래내의를 다리에 끼느라 복닥소동을 피웠다. 바쁘면 가랭이가 셋으로 보인다고 한쪽다리는 쑥 들어갔는데 다른쪽다리는 밸밸 꼬였다.

《젠장, 로친은 어서 나가우.》

《알겠수다.》

오금녀는 방안문을 닫고 바삐 나가버렸다. 어느 사이 아들이 뒤에 달덩이같은 처녀를 꿰차고 부엌문앞에 서있는것이였다.

《어머니, 함께 일하는 동무입니다.》

봉철은 한옆으로 비켜서며 처녀를 소개했다.

《어머니, 안녕하십니까?》

처녀는 숫저운 눈길로 오금녀를 바라보며 살풋이 고개숙여 인사했다.

《어서 들어오너라. 령감, 뭘하우?》

방안에서 바빠난 사람은 서재필이였다. 내의는 제대로 입었는데 발에 찰떡이라도 밟혔는지 떡 굳어져 도무지 문열고 나갈수가 없었다.

(이거라구야. 선은 꼭 내가 보는것 같군. 저 로친 나는 왜 찾노? 데리고 들어올게지.)

오금녀가 방문을 열었다. 서재필은 꿈쩍 놀라며 장승처럼 떡 버티고 서있었다.

《아버님 , 안녕하십니까?》

처녀는 얼굴이 타는 노을빛이 되여 서재필에게 인사했다.

《예예, 어서 들어오시우.》

서재필은 혀까지 굳어져 처녀에게 황송스레 머리를 조아리다싶이 했다. 오늘은 왜 자기가 이렇게 오새가 없어졌는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아참, 귀한 며느리감이라니 너무 반갑고 고마운김에 정신이 뻥뻥해졌어.)

령감이 노는 꼴을 보고 법도를 벗어나 자기가 주관할 결심이 섰는지 로친이 눈을 찔 흘기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 애들아, 들어가자!》

오금녀는 아들과 처녀를 량손으로 밀며 방안으로 올라왔다.

《앉아라!》

처녀는 오금녀가 이끄는대로 밥상에 마주앉았다. 가장의 지위에서 밀려난 서재필도 어정어정 뒤따라 앉았고 봉철이도 처녀곁에 점잖게 앉았다.

이번에도 오금녀가 독판치기를 하며 먼저 물었다.

《체네 이름은 뭔가?》

《지련희입니다.》

처녀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오금녀를 쑥스럽게 마주보며 대답했다. 처녀를 뜯어보는 순간 오금녀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뉘집 부모들이기에 저렇듯 환한 딸을 낳았누.)

떠오른 보름달마냥 환한 얼굴에 떡가루처럼 뽀얀 살결, 사슴처럼 어진 눈, 봉선화꽃잎같은 입술 등 모든 생김생김이 곱게만 빼물었으니 흠잡을데란 도무지 있어보이지 않았다. 방안이 다 환해지는것 같았다.

(나이찬 아들을 두어서 너무 좋게만 보게 되는게 아닐가?)

오금녀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어 령감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다를가 령감도 눈이 둥그래져 흘끔흘끔 며느리감을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던 두 내외는 어느결에 눈길을 맞추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고받는 눈길속에는 《인물은 찬성이요! 헌데 이런 달덩이같은 처녀가 어디서 나타났소.》하는 의문점도 실려있었다. 아무리 속생각을 굴려보아야 동암리에서 살고있는 처녀같지는 않았다. 이미 발전소처녀들이나 동암리처녀들은 며느리갈망병에 걸린 두 로인내외의 손안에 철저히 장악되여있었던것이다. 하기야 제사 주민등록을 담당한 사람이 아닌 이상 줌안에서 새여나갈수도 있을것이 아닌가. 별걸 다 가지고 신경을 도사리지. 물어보면 그만인걸 가지고…

《그래 집은 어딘가?》

오금녀가 련희에게 바투 다가앉으며 물었다.

《평양입니다.》

《평양?!》

오금녀도 놀랐고 서재필도 놀랐다. 두쌍의 눈길이 이번에는 아들에게로 쏠렸다. 봉철은 왜들 놀라는가 하는 표정으로 련희를 소개했다.

《련희동문 김책공대를 졸업했고 지금은 우리 화력발전소에 현실체험을 내려왔습니다. 이 동무가 바로 저와 함께 용접봉심선절단기를 제작합니다.》

서재필과 오금녀는 긴장해진 표정을 풀지 못한채 고개만 끄덕이였다.

두내외의 속생각은 약속이나 한듯 한곬으로 흘렀다.

(평양처녀가 무얼 보고 한갖 로동자인 저녀석과 친해졌을가? 저 처녀야 현실체험이 끝나면 평양으로 훌 떠나버리겠는데 그러면 우리 아들은?… 가만가만, 혹시 일생을 함께 할 그런 길동무가 아니라 그 무슨 기계인지 만들면서 사업상관계로?… 그래, 단순한 우정관계일수도 있어. 에이, 시라소니같은 녀석. 하필 사귈 처녀가 없어서 바라두 못볼 평양처녀를 사귀다니, 쯧쯧…)

한동안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방안을 떠돌았다. 서재필은 미리 부모는 뉘시며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 형제들은 있는가 등등 알아볼것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그 모든게 싹 흥심이 없어졌다. 며느리감이 아닌담에야 뭣때메 처녀를 번잡하게 들볶으며 괜히 왼심을 쓸텐가.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당황했는지 아들이 얼른 련희에게 눈짓했다. 저들끼리는 암호체계가 되여있는것 같다.

그 눈짓에 련희는 한옆에 놓인 가방에서 목이 긴 고급술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반쯤 일어난 자세로 서재필에게 술을 부었다.

《아버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서재필은 옴해있던 생각에서 깨여나 앉음새를 바로했다.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그는 슬쩍 로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서 지령을 달라는 신호였다.

《자, 어서 쭉 내시우. 체네가 부어주는 술을 처음으로 받으니 감개무량해서 목이 메는게 아니우?》

오금녀는 막대기같은 령감의 인사불성을 비호하며 슬쩍 롱까지 걸었다.

(저 로친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서. 시집가풍은 시아버지인품이라고 말은 잘하면서…)

서재필은 속이 뒤틀렸으나 아차, 며느리감이 될 처녀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다시 펀뜩 들어 군말 한마디 못하고 술을 쭉 들이켰다.

《자, 음식이 식겠다. 어서 들어라.》

오금녀는 련희의 손에 수저를 쥐여주며 후더분한 어조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이 송편을 맛봐라.》

오금녀는 련희가 볼수록 마음에 들어 열심히 음식을 권했으나 속은 알찌근하기 그지없었다. 이날이때껏 저런 얌전한 처녀가 며느리로 들어왔으면 하고 꿈에서도 얼마나 그려보던 자기였던가. 처녀의 인물이며 성격이며가 다 마음에 들었다. 저 앉음새를 보나 또 잘 익은 사과껍질을 벗겨내듯 사각사각한 그 말씨로 보나 그저 눈에 쏙쏙 들어왔다. 아들도 뭐가 그리 좋은지 그저 싱글벙글 웃으며 련희쪽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련희는 평양처녀가 아닌가. 아무리 아들이 미끈절싹 잘났어도 평양처녀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 영천화력발전소에 내려올리 만무하다. 설혹 처녀가 지금은 마음을 그렇게 먹었다 해도 인차 변하기 쉬울수 있고 보다는 그의 부모들이 저렇게 알뜰히 기른 딸을 지방에 내놓아두자고 할는지?…

그럴수록 오금녀는 아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젠 느껴본지 오래나 오금녀의 견해대로 본다면 처녀총각시절에는 사랑을 해도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한다는것이다. 그러다 찬서리를 맞아봐야 그 맛이 어떤가를 알게 되는데 그때 가선 이미 때가 늦는다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의미깊은 교훈이기도 했다.

두내외는 아들이 그 교훈을 망각하지 않게 다시금 신칙해주리라 속다짐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련희가 밥상을 거두려고 일어섰다. 오금녀는 굳이 말렸다. 꼭 며느리가 될 처녀라면 둘이 살틀히 손잡고 부엌이 좁다하게 와락와락 설겆이를 하고싶었다.

오금녀는 아쉬워도 련희를 떠나보내리라 마음먹었다.

《아서라, 내 치우지 않으리. 봉철아, 날도 저물었는데 어서 련희를 바래주거라.》

봉철은 그 말을 기다렸던듯이 제먼저 움쭉 일어서며 련희에게 눈짓했다. 어서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이다.

아들이 노는 모양을 보며 오금녀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저 시절엔 곁에 부모들이 있는것도 귀찮은 모양이지? 단둘이 함께 있을 때가 아주 그냥 좋은게다. 하지만…)

두내외는 문밖에까지 따라나와 젊은이들을 바래웠다. 그러면서 점도록 어둠속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꼭 줌안에 들었던 봉황새가 하늘로 훨 날아간듯 한 허우룩한 심정을 바이 달랠길 없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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