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3장. 완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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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계획위원회 일군과 함께 내려온 아버지가 초고전력전기로건설공사를 중지하라고 했고 김성남지배인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박영재는 놀랐다. 서승민과 함께 설계실에 올라왔던 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와 김성남지배인과의 관계를 잘 알고있었으며 그것을 매우 귀중히 여겼었다. 하기에 대학졸업후 강선에 내려가 지배인을 도와주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군말없이 받아들였고 기꺼이 따랐던것이다.
그렇게 가깝던 그들사이에 어떻게 되여 그런 엄청난 불일치가 생긴것인가.…
돌이켜보면 설계가 시작된 초기부터 그 마찰은 이미 시작되였었다.
아버지는 나라의 어려운 경제형편에서 대부로 전기로 한기만이라도 다시 들여오려고 하였다.
기업소의 일부 일군들과 기술자들도 그것을 념두에 두고있었기에 지배인이 자체로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하자고 나서자 성에서 하는 일을 좀더 기다려보자고 제기까지 했던것이다.
그러나 김성남지배인은 집에 들어갔던 로기술자들을 모두 데려내왔으며 그들과 함께 설계를 시작하였다.
설계는 진척되였다.
길지 않은 그 나날에 있었던 아름다운
그런데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법적추궁까지 했다는것은 정말 생각밖의 일이였다.
박영재는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하여 의혹을 품게 되였다.
아버지의 처사가 리해되지 않았다. 박영재는 집으로 갔다. 등교로 왔다간지 얼마 안되는 아들이 불쑥 나타나자 문을 열어주던 리순금은 눈이 둥그래졌다.
《웬일이냐? 이밤에…》
예순이 지났으나 굽실굽실한 카트머리에 혈색이 좋은 얼굴이며 몸이 풍만한 순금에게서는 남편의 뒤바라질을 하면서 걱정없이 살아온 녀인의 체취가 다분히 풍기였다. 그에게 걱정이 있다면 남편의 의사를 거역할수가 없어 제강소로 내려보낸 외아들
몇해째 합숙생활을 하고있는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가정을 이루지 않은것이 순금에게 있어서 큰 걱정거리였다.
이러한 순금에게 오늘
《어머니, 아무 일도 없어요.…》
《아니, 이 어머니눈은 속이지 못한다. 너 선희하고 다투지 않았니?》
《참, 어머니두… 별소리 다…》
박사원등교때부터 왜서인지 자주 생각에 잠겨있고 선희말은 일언반구도 내비치려 하지 않은 아들이였다.
필경 그들사이에 다툼정도가 아닌 큰 곡절이 있었다는것을 모성적인 감각으로 느끼고있는 순금이다.
남편은 선희가 대학공부를 못한것이 흠이라고 섭섭해하고있지만 순금의 견해는 달랐다. 오히려 공부한 녀자들이 자존심을 내세우며 건방질수 있다는것이다. 녀자는 어디까지나 녀성답고 남편을 잘 내세우고 가정을 제대로 이끌어나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였다.
선희에게서 단지 우려되는것은 성격이 개방적인데다가 너무 세차서 어찌보면 항간에서 말하듯이 아들이 잡혀살지 않겠는가 하는것이다.
그 우려는 선희가 자기 목표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러한 순금이였기에 아들의 기색이 좋지 못한것이 그 곡절때문일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자기가 품고있던 속생각을 털어놓았다.
《선희때문에 마음쓸건 없다. 처녀가 없어 장가 못 가겠니? 좋은 대상자는 얼마든지 있다.》
박영재가 듣다못해 한마디 했다.
《선희는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는 훌륭한 처녀예요. 무슨 일이 있다면 다 내탓일뿐입니다.》
《에구, 벌써부터 편역을 들면서… 너희들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슨 숨박곡질을 하는지 원.…》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 마음놓으십시오. 난 그 일때문에 온게 아니예요.》
이때 초인종소리가 은은히 울려왔다.
순금은 서둘러 나갔다. 문을 열어주는 소리와 함께
박상근은 뒤따라 들어와 맞은편 팔걸이의자에 가앉는 아들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붙여물었다. 제강소에 내려갔을 때 박사원등교때문에 이미 하고있던 설계를 아예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였다고 하던 아들이 다시 설계실에 있는것을 보고 온 박상근이다. 몹시 축간것을 보면 그사이 고심이 많았다는것이 알린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부엌에서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박상근은 들이켰던 담배연기를 서서히 내뿜었다.
《그래, 공사를 어떻게 하고있니?…》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계속 내밀고있습니다. 저도 설계와 기술준비에 다시 달라붙었습니다.》
아버지가 알고있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는 마지막말에는 공사를 중지하라고 한 아버지에 대한 은근한 반발이 스며있다.
박상근은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태연히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의견이 있다는거냐?》
단도직입적인 아버지의 물음에
언제한번 아버지의 의사를 거역한적이 없었고 설사 제가 잘했다고 하여도 말대꾸조차 하지 못했던 그였다.
한순간 머밋거리던
《그렇습니다. …》
《?!…》
박상근은 어쩐지 이 순간 아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자랄 때 누이들속에 끼워 녀성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대학시절에도 샌님처럼 암전하여 제 할 소리도 변변히 못했는데 그동안 제강소에 내려가있더니 배짱이 자란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대견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할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김성남 그 사람이 제 마음대로 공사를 벌려놓았으니 공사를 중지시킬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듣고있던
《그렇지만 못한다고 하던 설계도 완성되였고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하자는 결심이 확고해진 오늘에 와서까지 그들을 믿지 못하는 그것이 정말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건설승인을 받기 위해 자기 할바를 다한 지배인동지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상근은 아무말없이 다시 담배를 붙여물었다.
《아버지, 현실을 외면하려고만 하시지 말고 아래에 내려오십시오. 제강소에 내려와 로동자, 기술자들속에 깊이 들어가보십시오. 그러면 강선의 숨결을 느껴보게 될겁니다.》
《…》
박상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인
묵묵히 방안을 거닐기만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버지, 이제라도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국가계획에 물리도록 힘써주십시오!》
아들의 말은 절절하였다. 박상근은 쏘파에 가앉으며 애꿎은 담배만 피웠다. 담배연기만이 복잡한 그의 마음처럼 엉켜돈다.
《그건 나 혼자 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조만간에 무슨 지시가 있을테니 더는 그 말을 꺼내지 말자.》
《…》
아래방에서 귀동냥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앉아있던 리순금이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이젠 그만들 하고 식사를 하세요. 벌써 두번이나 국을 덥혔수다.》
박상근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저녁이나 먹자.》
아버지를 따라 내려온
《왜 먹지 않냐? 네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인데…》
《올 때 먹고왔어요.》
《?…》
더운물로 입가심을 하고난
《전 강선에 가야겠어요.》
순금은 깜짝 놀라며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에구, 열시가 넘었는데 무슨 큰일이 있다구… 래일 아침 일찌기 가면 되지 않니?》
《아니, 가야 해요. 지금 강선에선 밤낮이 따로 없어요.》
《?!…》
아들이 떠나는것을 바래준 박상근은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멀리 은하수가 흐르는 강선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제강소에서 만났던 한 녀인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 김성남과 헤여진 그가 숙소의 자기 방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조심히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나이지긋한 녀인이 들어왔다. 좀전에 설계실에 올라갔을 때 난로곁에 앉아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던 녀인이였다. 머리가 희슥하고 년세는 많아보였지만 옷차림이라든가 몸가짐새가 세련되고 인상적이였었다. 자식에게 점심밥을 가져왔다든가 그러루한 일로 찾아온 어머니겠거니 하고 무심히 보았었다.
그런 녀인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잠시 망설이던 녀인이 자기는 지배인 김성남의 어머니라고 소개하였을 때 박상근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김성남의 가정래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박상근이다.
그의 어머니는 수십년전 굴뚝사건이후에 한번 만난적도 있었다.
박상근은 의문이 가득찬 눈길을 그 녀인에게서 떼지 못하였다. 아들을 구원해주어 고맙다고 눈물이 글썽하여 말하던 성남이 어머니, 그 젊은 시절의 모습은 어디로 다 가고 고령이 되여 제강소에, 내앞에 나타난것인가. …
박상근이 권하는 의자에 앉으며 녀인이 찾아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인생말년에 세상 떠난 남편과 아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고 하였다.
첫 쇠물을 뽑는 날 떳떳이 만나고싶어 지금까지 아들앞에 나서지 못했다면서 조업의 그날에는 어린시절 성남이를 구원해주었고 그동안 잘 이끌어준 부상동지를 꼭 만나 고마움의 인사를 하자고 별러왔다고 말하던 녀인.
그 녀인의 절절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것 같다.
《난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입원하였던 성남이 아버지가 병원에서 뛰쳐나오던 일이며 부상어른이랑 용해공들이 도와나서 산소취입법을 성공시키던 나날들이… 그 누굴 쳐다보지도 않았고 모든걸 제힘으로 해냈지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서로 위해주고 도우면서 아무리 일하고 또 일해도 힘든줄 모르던 시절이였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성남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누구보다 가슴을 치며 그가 못다한 일을 끝까지 하겠다고 대학으로 떠나간 부상어른이 아니였습니까.…
그때로부터 세월은 퍼그나 흘러갔습니다. 강산이 변하고 우리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렸어요. 그때 일을 알고있는 사람도 이젠 몇명 남지 않았고 그나마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졌습니다. 하지만 모든걸 제힘으로 해제끼며 달리던 천리마의 그 넋이야 어찌 변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기술자들이 현대적인 전기로를 하겠다고 나섰구 성남이랑 젊은 기술자들도 따라나선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 살아온 부상어른은 아버지세대들처럼 살려는 젊은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반대해나서는겁니까? 저세상에 가있는 성남이 아버지가 이 일을 안다면 아마 땅을 차고 일어났을것입니다.
난… 그것이 너무도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아 이렇게…》
머리를 푹 수그린 박상근은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성남에게 잘못이 있으면 타일러주고 모르는게 있으면 가르쳐도 주면서 전기로를 기어이 건설할수 있게 마지막까지 도와달라고, 아들과 떳떳하게 만나고싶은 늙은이의 소원을 풀어달라고 눈물이 글썽해서 그 녀인이 말할 때 전기로건설문제로 얼음처럼 차겁게 얼어붙었던 박상근의 가슴은 봄눈녹듯 스르르 녹아내리는것 같았다.
그때의 충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박상근은 앞뒤를 생각할 사이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였었다. 수십년전 그때처럼…
남편의 사색을 방해할가보아 안해가 조용히 잠자리에 든지도 오래되였지만 박상근은 강선쪽의 하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다.
은하수도 서켠으로 퍼그나 기울어져갔고 거리의 가로등도 꺼진지 오래건만 박상근의 눈앞에 제강소의 전기로건설장이 떠올라 사라질줄 모른다.
그가 돌아본 전기로건설실태는 락관적이 못되였다. 부족하고 없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앞으로 이 모든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또 어떻게 건설해나가려 하는것인지?…
당장 그만두라는 엄한 추궁앞에서도 끄떡없이 착암기를 틀어잡고있던 김성남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초고전력전기로건설자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건설을 중지하라고 한것이 너무도 안타까와 찾아왔던 아들이며 성남이 어머니!
첫 쇠물을 뽑는 조업의 그날 아들과 떳떳이 상봉하겠다던 그 녀인의 믿음과 희망은 얼마나 소박하고 아름다운것인가.…
그런데 나는… 나는 어찌하여 제힘으로 하겠다는 그들을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고있는것인가.·
수십년전 그 녀인의 부탁은 들어주었어도 오늘날의 그 절절한 부탁은 내 과연 들어줄수 있겠는지.…
X
벽시계의 바늘이 11시 30분을 가리켰다.
《에구, 이러다간 늦어지겠다.》
김소연은 여러가지 소박한 음식을 싼 큼직한 꾸레미를 들고 서둘러 일어섰다.
《철이야, 넌 저 비닐장통을 들어라.》
《예!》
철이가 좋아라고 문옆에 놓인 장통을 들려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할머니, 무거워요.》
《어휴, 언제면 구실을 하겠는지 원, 쯔쯔.》
밖에 세워놓은 손달구지에 음식꾸레미를 싣고난 소연은 다시 들어와 묵직한 비닐장통을 들었다. 집에서 담근 막걸리였다.
《할머니! 나두 같이…》
그렇게 무거워보이던 장통을 쉽게 들어올리는 할머니를 눈이 올롱해서 쳐다보던 철이가 저도 같이 들겠다고 매달린다. 든다는것이 오히려 짐스럽다. 그래도 그러는 손자가 기특해서 그런대로 함께 들고나와 손달구지에 실었다.
《자, 빨리 가자!》
손달구지를 끌고 마당을 지나는데 철이가 터밭쪽을 가리켰다.
《할머니! 저기 시금치!》
《?!…》
가을에 씨를 뿌린 시금치들이 파릇파릇 돋아나고있다. 올해에는 터밭 앞줄에만 꽃씨를 뿌리고 몽땅 남새만 가득 심었다. 마늘, 쑥갓, 부루, 배추, 무우… 소연은 전기로건설자들에게 싱싱한 남새료리를 대접해주자며 형님과 함께 즐겁게 남새씨를 뿌리던 일이 생각나 빙그레 웃었다.
김소연은 손달구지를 끌고 대문을 나섰다. 뒤에서 철이가 민다.
형님이 하루도 빠짐없이 설계실에 나가는걸 보며 생각이 깊어졌던 소연이였다. 수십년전에 강선을 떠나갔던 형님이 다시 찾아와 건설을 도와주고있는데 이 땅에 태를 묻고 자라난 자기가 집구석에 앉아있다는것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형님을 따라나선것이다.
설계실이며 선희가 일하는 청년돌격대 로기술자들이 있는 기술공정실에 번갈아 찾아갔었다.
소연이뿐이 아니였다. 온 강선땅의 녀인들이 남편과 자식들을 도와나섰다.
《어머니, 함께 가자요.》
길에 나서는데 남편이 돌격대에서 일한다는 젊은 녀인이 음식꾸레미를 들고와서 손달구지에 싣고는 함께 끌었다. 한참 가느라니 아들이 자동화직장에서 전기로동체를 제작한다던 중년의 녀인이 달려와 음식구럭을 실었다. 이렇게 가느라면 잠간사이에 손달구지가 넘쳐나게 차오르고 뒤에서 밀던 철이는 쫓겨나 옆에서 깡충깡충 뛰여간다.
또 다른 녀인이 손달구지를 끌고나온다. 또 싣고… 끌고 밀고… 제강소 정문까지 가는 사이에 여러대의 손달구지행렬이 생겨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였다.
자기 자식과 남편, 형제, 이웃, 한식솔과 같은 전기로건설자들을 위해서이다. 정문에 서있던 경비원들도 지원자행렬이 나타나자 호각을 불며 지나가던 자동차들을 세우고 우선적으로 통과시켜준다. 인사까지 하면서…
어깨가 으쓱해서 정문을 통과한 녀인들은 서로 헤여지며 인사를 나눈다.
돌격대가 일하는 강철직장으로, 로체제작을 하는 자동화직장, 보수직장으로 갈라져간다. 저들의 심장이 가리키는 곳, 가고싶은 곳으로…
소연의 손달구지에 실었던 녀인들도 음식그릇을 내리워 이고 제 갈곳으로 갔다. 소연이 앞에서 끌고 철이가 밀면서 달랑달랑 가고있느라니 뒤에서 오던 웬 사람이 말을 건넨다.
《어머니, 수고하십니다. 꼬마도 좋은 일을 하는구나.》
그는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뭘요, 다 제 사람들을 위해서이지요.》
지원물자를 싣고 다니느라면 그런 인사를 늘 듣군 하는 소연인지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도 그렇지요. 모두 생활이 넉넉치 못하겠는데 이렇게들 도와주니…》
《원, 별말씀을 다. 제강소의 전기로가 끓어야 가정의 작은 가마도 끓고 우리가 잘살게 아닙니까!》
《!…》
언젠가 지배인이 유진섭아바이의 집에 갔을 때 들었다고 하는 말이다. 그 말속에 강선녀인들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정말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제강소에 다닙니까?》
소연이 자랑스레 말했다.
《예, 돌격대에서 일하지요. 1호전기로 조작공을 하다가…》
《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강선희라고…》
《아니, 그럼… 지배인동무 고모님이 아닙니까?!》
그제야 소연은 손달구지를 멈추고 돌아섰다.
《누구신지?…》
《제… 책임비서입니다.》
《에구, 책임비서어른을 몰라보고… 아무 말이나 막 해서…》
《아닙니다. 제강소의 전기로가 끓어야 가정의 작은 가마가 끓는다!… 정말 좋은 말입니다!》
그래도 소연은 송구해서 말을 못했다.
류준권이 손을 내저었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어디로 가시는지 어서 갑시다.》
《먼저 기술공정실에 들려서…》
《오, 로기술자들에게 말입니까? 그것 참 잘합니다. 나도 그리로 가는 길인데, 그럼 이것도 좀 실읍시다!》
류준권은 무엇인가 불룩하게 넣은 손가방을 손달구지에 올려놓고 채를 잡았다.
《자, 어서 갑시다!》
《그만두십시오. 무겁지 않습니다.》
《원, 고모님두 좋은 일을 혼자서만 하겠습니까? 나도 좀 해봅시다. 허허.》
류준권이 사람좋게 웃자 소연이도 웃고 철이도 캐득거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행정청사옆에 다달은 그들은 음식꾸레미를 들고 2층의 기술공정실로 올라갔다.
마침 점심시간이였다.
로기술자들은 방가운데 서로 마주 잇대여 붙인 책상앞에 빙 둘러앉아 밥곽을 열고있었다.
《아직 식사전이니 마침이구만.… 우리도 한축 끼웁시다!》
류준권은 가지고온 가방에서 음식그릇들을 꺼내놓았다. 그는 무엇인가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있는껏 싸들고 나와서 공정실 아바이들과 함께 나누군 했다. 그것은 단순히 로기술자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였다. 공장일을 위해서라면 년로한 몸으로 밤을 패워 일하면서도 어려운 생활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는 그들이다. 하여 류준권은 그들과 자주 자리를 함께 하였다. 아바이들이 싸온 음식을 허물없이 맛보기도 하면서 생활형편을 가늠해보았고 조용히 후방과와 토의하여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군 하였다.
책임비서와 소연이 준비해온 음식까지 차려놓으니 무슨 잔치상처럼 풍성했다. 소연이 큼직한 고뿌에 막걸리를 차례로 다 부어놓자 류준권이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고모님도 여기 오십시오. 그리고 꼬마도…》
소연은 사양하지 않았다.
모두들 막걸리를 먼저 쭉 들이켰다. 리규택이 입술을 훔치며 빈 고뿌를 내밀었다.
《고모님, 나 한고뿌 더 주시우. 시큼달짝한게 맛이 좋구만!》
유진섭이 넌지시 한마디 했다.
《규택동무야 술 한말 지고 가라면 못 가도 마시고 가라면 다 마시는 술군이지, 허허.》
《어이구, 말두 마우. 요즘처럼 바빠선 어디 술마실새나 있소?》
리규택이 두번째 막걸리를 쭉- 마시는것을 건너다보며 류준권이 빙긋 웃었다.
《하긴 지난해 대동강가에서 만났을 때 보니 술 서너병을 맹물처럼 마시더군요. 헌데 유진섭아바인 한고뿌 더 안하십니까?》
고뿌를 상우에 놓으며 유진섭이 손을 흔들었다.
《난 술을 많이 못합니다.》
《이게 뭐 술입니까? 청량음료지요.》
《난 술이든 청량음료든 한고뿌면 됩니다.》
《그래도 들리는 말엔 진섭아바이도 술을 좀 한다던데요?》
《때와 장소가 적당하면 좀 하긴 하지요.》
사람들이 입에 손을 가리고 허허 웃었다. 류준권이 철이의 손에 삶은 닭알을 쥐여주고나서 말했다.
《이제 전기로공사가 끝나면 공정실아바이들을 초청하여 한턱 내겠습니다. 그때 마음껏 마시고 한번 푹 취해봅시다! 허허.》
소연은 가볍게 따라 웃으며 유진섭을 바라보았다.
손달구지를 끌고 파철적재장으로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젠 성쌓고 남은 돌이 되였구나 하는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러던 그가 새전기로건설에서 중요한 전력문제를 맡았다고 하니 소연은 자기 일처럼 기뺐다. 기쁜 일은 이것뿐이 아니였다. 설계에서 물러섰던
언젠가 성남이가 선희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소연은 딸과 박영재사이에 있었던 일을 놓고 마음이 아팠었다. 큰 고생을 모르고 자란
쇠물을 다루어서 그러는지 한번 아니라고 하면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요지부동이다. 참 앞으로 그들의 일이 어떻게 되겠는지… 소연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