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3장. 완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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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시작되면서 김성남은 건설현장에 붙어살았다. 침식을 아예 강철직장안에 새로 꾸린 현장지휘부로 옮겼다.
전기로를 해체한 돌격대원들이 기초를 까내고있다. 방송선전차에서 울려나오는 힘찬 음악선률에 맞추어 쩡-쩡- 맵짠 함마질소리가 울려퍼진다.
일군들속에서 공사기일도 긴박한데 원래의 기초를 그대로 리용하자는 의견도 없지 않았으나 김성남이 일축해버렸다. 해방후부터 지금까지 기술혁신으로 전기로용량이 늘어날 때마다 보강리용한 기초이다보니 재료력학적인 믿음도 없었다.
할바엔 낡은것을 모두 들어내고 새 세기에도 손색이 없는 만년대계의 창조물로 건설하고싶었던것이다.
수천립방에 달하는 낡은 기초를 정대로 까내는 작업은 헐치 않았다. 건물안이라고는 하지만 철대문들을 다 열어놓은 상태여서 몹시 추웠다. 그래도 돌격대원들은 내의바람으로 함마를 휘둘렀다.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입에서는 흰김이 헉헉 뿜어나온다. 낡은 기초를 한달동안에 까치워야 새 기초를 타입하고 그 우에 로동체를 조립할수 있다.
돌격대원들은 남들이 다 자는 밤에도 공사장을 뜨지 않았다. 손에 피멍이 들도록 함마를 휘둘러 이제는 퍼그나 까냈다. 한메터, 두메터 깊이 들어갈수록 바닥에서 물이 차올랐다. 양수기를 설치하고 물을 퍼올렸다.
공사장에 나온 김성남은 돌격대원들속에서 정대를 잡고있는 선희와 조인철이를 띄여보고 그리로 다가갔다. 1호전기로를 해체하자 작업반장이였던 조인철은 돌격대중대장으로 임명되였다. 선희의 손도, 그의 손도 다 붕대투성이이다.
《인철동무, 힘들지?… 내가 좀 해보자구!》
그가 안된다고 뻗치는것을 억지로 함마를 빼앗았다.
《언제 함마질을 해보았습니까. 잘못하면 허리를 상할수 있습니다.》
《일없소. 나도 젊어서는 건설에 동원되여 해보았지.》
조인철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모르겠습니다.》
웃옷을 벗어 땅에 놓은 김성남은 손에 침을 뱉고 함마자루를 틀어잡았다.
《선희야, 정대를 단단히 잡아라!》
《걱정마세요.》
김성남이 함마를 어깨우로 쳐들었다가 힘껏 내리쳤다.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팍- 튀여났다. 여러번 휘둘러서야 밤알만 한 콩크리트쪼각이 떨어져나갔다. 마치도 자체로는 절대로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하지 못한다고 뻗치는 사람들의 집요한 고집처럼 완강했다. 어디 해볼테면 해보자! 누가 견디는가.
김성남은 함마를 더 높이 추켜올렸다. 세번… 일곱번… 숨이 차고 손바닥이 얼얼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내돋는다. 선희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안되겠어요. 그러다 쓰러져요.》
《쓰러… 지기… 까지야 뭘…》
오십번을 휘두르고서야 함마질을 멈추었다. 선희가 주는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성남은 머리를 흔들었다.
헐치 않다. 돌격대원들의 손이 성한데가 없다, 터지고 찢기고… 이렇게 하다가는 기한을 보장하기는커녕 다 쓰러지고말것 같다. 다른 방법이 없겠는가?… 발파를 하면? 김성남의 눈길이 천정이며 강철직장안의 설비들에 가멎었다. 조금만 울려주어 금이 가게만 해도 한결 나을것이다. 김성남은 조인철의 름름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초까기가 보통이 아니구만. 인철동무, 발파생각을 좀 해보았나?》
조인철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발파 말입니까? 군사복무할 때 공사를 하면서 많이 해보긴 했는데…》
그가 더 말하려는데 현장에 나와있던 리규택이 어느새 귀동냥으로 듣고나서 소리쳤다.
《정신이 나가지 않았나? 건물안에서 발파하면 파편에 설비와 건물이 상할수 있소.》
주견이 강한 그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김성남이 그의 체면을 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있는데 조인철이 우긴다.
《착암기로 폭파구멍의 깊이와 각도를 조절하면 파편이 멀리 가지 못하면서도 콩크리트를 울려 금이 가게 할수 있습니다.》
리규택은 말문이 막혔는지 한동안 두눈만 슴벅거리다가 《어쨌든 사고를 치면 큰일날줄 알게.》 하고 툭 내쏘고는 자리를 떴다. 김성남이 조인철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손으로 어깨를 툭 쳤다.
《바로 그거요! 인철이, 폭파기술자들과 잘 토의해보고 대담하게 해보라구. 어쨌든 규택아바이말대로 사고없이 해야 하네.》
조인철이 배심좋게 씩 웃었다.
《무슨 방법으로든 제기일내에 해놓겠으니 마음놓으십시오!
아, 강철도 녹이는 우리가 그까짓 푸석푸석한 콩크리트를 까내지 못하겠습니까!》 조인철이 손에 든 함마를 주먹처럼 흔든다. 역시 강선의 청년다운 대답이고 행동이다.
《좋아, 그럼 믿겠소.》
이때였다. 물을 퍼내던 양수기의 동음이 갑자기 멎었다. 조인철이 그쪽에 대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요?》
《흡입구가 고장난것 같습니다. 물을 빨지 못하는걸 보니…》
《?…》
양수기가 멎자 기초밑에서 솟구쳐올라오는 물이 분초를 다투며 불어난다.
천정기중기는 쇠물남비를 물고 련속조괴기에 쇠물을 붓고있다. 기중기를 기다려 육중한 흡입구를 들어내다가 수리하느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는지 모른다. 그 기간에도 물은 계속 불어날것이고 기초가 잠기게 되면 작업은 부득불 중지된다. 그러니 물속에 들어가 고장원인을 찾아야 한다.
어쩔 사이없이 김성남은 첨벙 물속에 들어섰다. 거의 동시에 조인철이 함마자루를 집어던지며 뛰여들었다. 여러명의 돌격대원들이 따라나섰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은 뼈속까지 얼어드는듯 찼다.
김성남이 흡입구쪽으로 가려는데 조인철이 앞을 막아나선다.
《지배인동지가 그러면 우린 뭐가 됩니까? 빨리 나가주십시오.》
김성남이 버럭 소리쳤다. 《젠장, 언제 그런 체면을 생각할새가 있나. 빨리 흡입구를 수리해야지!》
《?!…》
어쩔수 없었던 그들은 깊은 웅뎅이에 설치한 흡입구에 자맥질해들어가 고장난 부위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곳으로 다가간 김성남은 한아름이나 되는 고무호스를 들어주기도 하고 벤찌나 나사틀개를 쥐여주었다. 돌격대원들은 번갈아 차거운 물속에 들어가 흡입구고장원인을 찾았고 끝내 수리해놓고서야 물에서 나왔다.
뽐프가 다시 돌아가고 물이 콸콸 쏟아져나갔다. 퍼그나 차올랐던 물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에서도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빨리 휴계실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옷을 말리우라구.》
김성남이 그들의 등을 떠밀자 조인철이 벙글거렸다.
《우리야 피가 한동이씩 되는 젊은 사람들인데 뭐랍니까? 이제 함마질을 하고나면 몸도 저절로 녹고 옷도 마릅니다. 그러니 지배인동지, 어서…》 김성남이 먼저 함마자루를 집어들며 소리쳤다.
《뭐라구? 그럼 난 그 축에서 제외된다는건가? 자, 내 본때를 보여주지. 이제부터 함마경기를 해보자구, 옷도 말리울겸…》
웃옷을 벗은채로 아이들 머리만 한 함마를 한손으로 어깨우에 추켜올리며 싱글거리는 지배인을 조인철이 만만치 않게 바라보며 서있다.
《지배인동지가 지면 우리들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마 인철동무가 해야 할걸!》
웃음이 터진다. 누구인가 소리친다.
《동무들! 지배인동지와 중대장동무의 함마경기요, 함마경기!》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한데 어울려 퍼지며 강철기둥을 울린다. 그들은 승벽내기로 함마를 휘둘렀다.
돌격대원들과 함께 땀을 흠뻑 흘리고난 김성남은 선희가 내미는 옷을 받으며 그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언제나 명랑하던 얼굴에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선희는 대답대신 머리만 가로흔든다.
《그러니…》
언제인가 선희의 이야기를 듣고
박사원등교를 끝내고 돌아오면 다시 설계에 착수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동창생들인 조인철이며 병원에서 뛰쳐나와 설계를 하고있는 리제일이도 그렇고 수많은 청년들이 전기로건설에 자기들의 열정을 바쳐가고있는데
조인철에게 발파문제를 강조하고 현장지휘부에 들려 옷을 갈아입은 김성남은 중요한 전기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행정청사에 있는 기술공정실로 향했다.
유진섭은 건설이 시작된 때로부터 지금까지도 이제 건설하게 될 초고전력전기로의 전력계통문제를 우리 실정에 맞게 해결하느라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리고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현장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고 유진섭만이 책속에 파묻혀 기술서적과 씨름을 하고있었다.
김성남은 그가 권하는 의자를 그의 옆에 끌어당겨 앉으며 책상우에 무드기 쌓여있는 책들을 쳐다보았다. 오래된 책인지 어떤것들은 누렇게 퇴색되고 보풀이 일어 책제목이 희미하게 보인다.
김성남은 유진섭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국가계획에 물리지 못하는 경우 두대의 대형변압기와 필요한 전기설비들을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걸릴것 같습니다.》
유진섭은 자기앞에 펼쳐놓은대로 있는 책만 내려다볼뿐 말이 없다. 서뿔리 자기 속생각을 내비치지 않는 전기처럼 조용한 그였다. 무슨 생각인가 깊이 하고있던 유진섭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나직이 입을 뗐다.
《변압기는 현재 제강소에 여유로 가지고있는것을 개조하여 그 능력을 올리는 방법으로 하는수밖에 없습니다.》
김성남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근 두배나 올려야 하겠는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지금 그 가능성을 찾느라고 하는데 아직…》
《음…》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성남은 말머리를 돌렸다.
《초고전력전기로건설에서 중요한것은 우리의 전력조건에 맞게 전력계통을 해결하는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두터운 학습장 하나를 뽑아든 유진섭은 몇장 번지며 훑는것 같더니 머리를 들었다. 빨간 연필로 여러군데 밑줄을 그어놓은것이 눈에 뜨인다.
《전 초고전력전기로의 전력계통과 전기설비들의 정수를 결정하는데서 고임피단스조업방식을 받아들이자고 합니다. 지금 세계야금공업추세도 바로 이것이고…》
그의 말을 들으며 김성남은 류달리 보풀이 일고 누렇게 퇴색된 과학기술사전에 눈길을 주었다.
김성남은 호기심이 동해 그것을 자기앞으로 끌어당기며 유진섭에게 물었다.
《그 방식의 우점은 무엇입니까?》
김성남이 당겨놓은 책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유진섭은 설명했다.
《전력소비가 적고 전극 부러지는 현상을 대폭 줄일수 있으며 그밖에도 소음공해를 약화시킬수 있는 등 좋은 점이 많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 제강소들에서 그 조업방식을 받아들였거나 과학연구기관들에서 체계화한 문헌자료는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나라에서는 미지의 기술이겠구만.… 힘에 부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해내야지요. 그런데 이것을 도입하자면 거품슬라크조업방식에 대한 연구를 선행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전기가 아니라 야금학과 관련된것이여서…》
김성남은 박영재가 쓰고있다는 론문이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술사전뚜껑을 번지였다.
《그 문제라면 제게 생각되는것이 있습니다. 그저 전기문제만 내밀어주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무심히 책 앞장에 쓴 글들을 훑어보던 김성남의 눈길이 한곳에 가서 뚝 멎었다.
꺼지지 않는 강선의 노을을 위하여 유진섭동무에게
김철우
196X년 X월 x일
《?!…》
김성남은 놀라운 표정으로 유진섭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아버지이름에 눈길을 주었다. 그 글자들을 하나하나 보고 또 보았다.
자기가 태여나기 전에 아버지가 썼을 그 글자들, 아버지의 숨결과 맥박이 력력히 느껴지는 그 필치! 비록 퇴색되고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 필치에서 김성남은 아버지를 보는듯 했다. 아버지와 마주앉은듯 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 하고 마음속으로 불러보았다. 불시에 가슴이 쩌릿이 젖어든다.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 유진섭이 조용히 말했다.
《그렇수다. 그 책은 지배인 부친이 나에게 준것이지요. 지금도 눈에 선하우다. 공부를 잘하여 훌륭한 기술자가 되길 바란다며 그 글을 써주던 부친의 모습이… 그 책은 지금까지 내 인생의 좋은 길동무가 되여주었수다!》
《!…》
인생의 좋은 길동무! 여기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담겨져있는것인가.
김성남은 천리마가 날아오른 강선이라는 성스러운 이름과 더불어 맺어진 아버지와 로기술자들의 참된 의리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아버지에 대한 의리를 귀중히 여겨 그 책과 함께 변함없이 오늘까지 걸어온 유진섭아바이! 아버지와의 관계는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은 그의 깊은 마음이 느껴져 저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아, 이런분을 무시하고 저버렸던
김성남은 새로운 눈으로 책상우에 쌓여있는 책들을 훑어보았다. 우리 나라와 외국의 현대과학기술통보자료들, 여러 나라의 기술원서들과 사전들, 어느 책이건 보풀이 일고 품을 들여 탐구한 흔적이 어려있다. 하나하나 탐독하며 발취해놓은 학습장들이 차곡차곡 쌓여져있다.
기술공정실 그 어느 책상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지난 세기 공장대학졸업생들이다. 이제는 70고령에 올라섰는데 세계야금첨단기술을 명석하게 터득하고있고 그것을 초고전력전기로에 구현하려고 애쓰고있는것이다. 언제보나 로기술자들은 두터운 기술서적들을 펼쳐놓고 자자구구 연구하고 필기하며 론쟁을 했다. 출퇴근할 때도 기술협의회장에서도 그들의 손에서는 늘 책이 떨어질줄 모른다.
그 지칠줄 모르는 정열은 어디서 샘솟는것인가.
김성남은 희미하게 보이는 그 글자들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꺼지지 않는 강선의 노을을 위하여!
바로 이것을 위해 아버지가 길지 않은 인생을 값있게 살려 했으며 바로 이것을 위해 로기술자들은 오늘도 그 시절처럼 지칠줄 모르는 정열로 현대과학기술을 탐구하고있는것이고 그 어떤 타산과 주저도 없이 초고전력전기로건설에 뛰여드는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으로 하여 그들의 인생 말년은 꺼지지 않는 강선의 노을처럼 아름답게 타오를것이라고 믿었다. 자기의 인생도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김성남은 뜨거운 눈길로 유진섭을 바라보았다.
유진섭은 어줍은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했다.
《언제한번 지배인과 마주앉아 다 이야기하자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구실을 잘하지 못하다나니 지배인 부친의 말을 입에 올릴 체면이 못되였지요. 그리고 부친앞에도 죄스러웠고… 이제 때가 오면 이 책을…》
유진섭은 말끝을 맺지 못하였다.
김성남은 책뚜껑을 소중히 덮었다.
《아바이, 앞으로 저에게서 사소한 결함이라도 나타나면 아들처럼 생각하고 채찍질해주십시오!》
《원, 지배인두, 무슨 말을…》
후더워지는 마음을 안고 공정실을 나선 김성남은 기술과로 향했다. 영재에 대한 생각으로 저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박영재이다. 그도 머나먼 인생길을 저들처럼 걷게 해야 한다.
기술과에 가보니
X
며칠전에 있었던 1호전기로 해체작업의 뜨거운 열기는 박영재로 하여금 다시한번
쩌렁쩌렁 울리던 취주악대의 나팔소리, 머리가 희슥한 로기술자들의 신심에 넘친 모습, 공화국창건 60돐이 되는 9월 9일에 첫 쇠물을 기어이 뽑자고 주먹을 흔들며 열변을 토하던 조인철이며 돌격대원들, 요란한 박수소리, 힘차게 웨치는 구호소리가 강철직장에 메아리쳤다.
그야말로 펄펄 끓는 전기로였다.…
박영재는 자기가 그 사품치며 끓는 쇠물에 의하여 밀려떨어진 슬라크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처럼 친근하던 합숙관리원이며 취사원들, 한부서사람들과도 마주서기가 주저된다. 머리를 쳐들고 다니기가 부끄럽다. 도대체 자기를 강선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는것 같다.
공사가 시작되는 날, 설계를 하겠는가 아니면 청년돌격대에 나가겠는가 결심하라고 하던 기술과장도 아무 말이 없다. 자기같은 존재는 있으나마나라는듯…
이제 인차 모든 일이 바로잡힐것이라고, 그러면 설계에서 손을 뗀 자기를 리해할것이라고 믿고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내가 과연 우리 시대 청년기술자가 옳은가?
나는 왜 강선으로 내려왔는가?
사실 제강소에 내려온것도 아버지의 권고가 있어서였고 새로 들여오는 강철공장을 운영하는 과정에 현대야금기술을 원만히 갖춘 일군으로 발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나에게 무슨 신념이 있고 주견이 있을수 있었겠는가.
새 전기로를 들여온다는 소리에 현혹된것도, 하던 설계마저 줴버린것도, 그로 인한 선희와의 결별도 다 신념이 없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것을 새로 시작하자.
내가 하던 설계를 다시…
순간 얼굴이 뜨거워났다. 공사를 시작한 오늘에 와서 무슨 체면으로 설계실에 들어선단 말인가.…
압연직장에 갔던 박영재가 돌아오자 기술과장이 지배인이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 지배인이 무엇때문에 나를…
박영재는 무거운 걸음으로 현장지휘부에 갔다.
벽에 걸린 공정계획표앞에 서있던 김성남이 방에 들어서는 박영재를 띠여보고 돌아섰다.
《저… 별로 하는 일이…》 그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자 김성남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하고는 자기도 마주앉았다. 묵묵히 박영재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부터 아저씨라고 부르며 몹시 따르던
그런데 이렇게 대오에서 떨어지게까지 만들었으니…
김성남은 묵묵히 박영재를 바라보았다.
풀이 죽어 축 처진 어깨, 고뇌어린 얼굴, 더부룩한 머리.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쟁쟁하던 그였는가.… 설계에서 제기되는 어려운 기술적문제들을 도맡아풀었고 자기가 하고있는 설계를 밀고나가면서도 다른 설계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밤을 새워가며 도와주었지.…
그런데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순간이나마 마음속 동요를 가져오게 하였는가. 바로 그것을
《이렇게 마주앉은 기회에 내 말 좀 하자.… 솔직히
이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김성남은 한동안 걸음을 옮기다가 영재앞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동안 초고전력전기로운영과 관련되는 론문을 쓴다고 하던데 그래 그것이 우리의 넋이 깃든 초고전력전기로를 위한것이냐 아니면 외국의 전기로를 위한것이였느냐?》
《…》
김성남은 심한 자책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는 그를 한동안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뗐다.
《생각 좀 해봐라. 리규택, 유진섭아바이들이 너처럼 현대과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인가? 아니야. 또 너처럼 젊지도 않아.…
설계실에 지원나와있는 그 어머니는 아들집에서 편히 휴식할줄 몰라서 이 추운 겨울에 설계실에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나? 모름지기 그 어머니도 로기술자들처럼 천리마기수였을것이다.
그들에게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샘솟게 하고 흔들림없이 곧바로 나가게 하는것은 과연 무엇이겠나. 바로 천리마정신이야.
너에겐 이것이 부족해. 한동안 그들과 침식을 같이했어도 영젠 이것을 보지 못했어.》
《…》
한순간 대오에서 떨어졌던 뼈저린 후회로 고심하는
《나도 한때
《…》
이 시각
박영재는 머리를 쳐들었다.
《전… 청년돌격대에 나가겠습니다!》
《그건 안돼.》
《예?》
그러니 난 돌격대에 나갈 자격마저 없단 말인가.… 그래도 할말은 없다.
잠시 그의 기색을 살피던 김성남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돌격대에 나가겠다고 결심한건 잘한 일이야. 로동속에서 잘못을 씻겠단 말이지?… 하지만
《?!…》
박영재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 설계는 자기가 하다가 그만둔것이다. 병원에서 뛰쳐나온 제일이가 불편한 몸으로 그것을 설계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제일이와 함께 대학에 갔었고 제강소에도 함께 내려왔다. 그런데 이제 무슨 낯으로 제일이앞에, 줴버렸던 그 설계도면앞에 나선단 말인가.…
《지배인동지, 전 그 신성한 설계에 손을 댈수 없는
《알만하다니까, 알만해. 자기 결함을 진심으로 뉘우치면 되는거야. 앞으로 실천을 통해
《!…》
그를 쳐다보던 김성남이 빙긋이 웃었다.
《선희도 한번 만나봐야지. 대담하게 찾아가 용서를 빌줄도 알아야 해. 잘못하다간 선희를 잃어버릴수도 있어.》
《…》
현장지휘부를 나서는
그래, 선희를 만나자! 나의 모든 잘못을 허심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빌자, 용서를.…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나에게 그를 만날 자격이 있는가?
힘있게 걸음을 내짚는 그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강선으로 내려왔을 때의 몹시 지친듯 한 아버지의 모습이 선희의 모습을 가리우며 떠오른다.
과연 아버지가 다시 하게 되는 구입작전이 정당한 일일가? 제강소에서 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나올가?…
비록 기술과제제안서를 부결시킨 아버지이지만 공사를 시작한 강선의 의지를 알게 된다면 늦게나마 성남아저씨를 지지해나서리라고 박영재는 믿고싶었다.
그러나 왜서인지 발걸음은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