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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10


련희는 여느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는 오늘밤 서봉철과 함께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필요한 치차가공을 위해 자력갱생직장으로 가기로 되여있었다.

기사장방에 갔다가 뜻밖에 아버지를 만난 련희는 그길로 서봉철을 찾아갔다. 서봉철은 마침 용접작업을 마치고 땀투성이가 된 얼굴로 작업장을 나오다가 련희를 만났다.

《련희동무가 어떻게?…》

봉철은 마치 오래 헤여졌다 뜻밖에 만난 친구처럼 그를 반겼다. 련희는 땀이 흐르는 봉철의 얼굴을 곱게 흘겨보고나서 자기의 흰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자, 땀을 좀 닦아요.》

《됐소. 그 흰눈같은 손수건으로 내 얼굴을 문지르면 대번에 검정수건이 될게요.》

봉철은 이렇게 말하며 목에 두른 기름때 묻은 수건으로 얼굴을 뻑 문대였다. 그 바람에 얼굴이 꺼멓게 수염자리가 났다.

그 모양이 우습강스러워 련희는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봉철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웃었다.

《봉철동지, 우리 아버지가… 내려오셨어요.》

련희는 수집은 웃음을 지으며 봉철을 바라보았다.

《그렇소? 참 오늘 기술협의회를 한다고 했지. 기쁘겠구만.》

《봉철동지, 치차소재가공을 래일로 미루면 안되겠어요? 저녁에 아버지가 큰어머니집에 오시겠다고 해서…》

《그럼 래일로 미루지 뭐. 그런데 동무 아버지가 우리 사이를 아시면 뭐라고 하실가?》

봉철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아이, 난 몰라요.》

련희의 얼굴은 딸기빛으로 변했다. 며칠전 그에게서 정식 사랑의 고백을 받던 일이 상기되여서였다.

그것은 해상작전이 있은 직후였었다.

련희는 그날에 받아안았던 감동과 자각으로 하여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끝내는 그렇듯 고민하던 그 절단기의 리상적인 칼날각도를 찾아내고야말았다.

련희는 그길로 서봉철을 찾아갔다.

《봉철동지, 이젠 됐어요. 칼날각도를 찾아냈단 말이예요!》

련희는 자기도 모르게 지금껏 펴놓고있던 용접봉심선절단기도면을 내흔들며 환성에 가깝게 부르짖었다. 그때 봉철은 특수용접작업반휴계실의 철판으로 만든 책상에 역시 철제품인 긴걸상에 앉아 부속품을 줄칼로 다스리다가 너무 기뻐 벌떡 뛰쳐일어났다. 그바람에 걸상이 쾅 나자빠졌다. 그래도 봉철은 도면부터 덥석 움켜잡았다.

《어디?… 어디?》

거의 탐욕스럽게 도면을 눈으로 훑던 봉철은 드디여 함마같은 주먹으로 철판책상을 탕 치면서 《됐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련희는 토끼처럼 화뜰 놀라며 두손을 가슴에 모두어쥐였다. 봉철은 그 모양이 우스워 한바탕 웃어댔다.

그리고는 련희의 손을 와락 틀어잡았다.

《련희!》

련희는 마치 불이라도 황황 뿜어나오는것 같은 봉철의 두눈을 보았다. 절로 심장이 화닥닥 뛰였다. 그 눈빛에서 그저 성공이라는 환희만이 아닌 자기의 온 존재를 통채로 빨아들일듯싶은 뜨거운 애정의 분출을 본것이였다. 련희는 당황하여 그의 거친 손아귀에서 아직은 햇고사리처럼 만문하고 연약한 손을 뽑으려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봉철의 숨소리는 황소처럼 높았다. 련희의 얼굴도 온몸의 피가 죄다모인듯 뜨겁게 타들었다. 그는 봉철에게 애원하다싶이 속삭였다.

《제발… 손을 놓아줘요. 이러다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그래도 봉철은 놓을념을 안했다. 그의 온몸에서 홧홧 내뿜어지는 단열에 자기의 작은 몸이 금시라도 녹아버릴것만 같았다.

아찔해진 련희의 머리속을 파고들며 여느때와는 전혀 다른 봉철의 숨찬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련희, 난… 난… 동무가 좋소. 동문… 응?》

봉철의 손아귀는 점점 더 으스러지게 그의 손을 조였다. 그 손길을 타고 봉철의 더운 피가 그대로 련희의 몸에 흘러드는듯 했다.

(아, 오늘은… 부탁이예요. 지금은 말 못하겠어요!)

그래도 봉철은 타는듯 한 눈길을 처녀의 얼굴에서 떼지 않았다. 끝까지 뿌리를 빼고야말 기상이였다.

사내들이란 미욱하기 짝이 없다. 처녀들의 심장이 저들처럼 큰줄 아나부지?… 련희는 끝내 봉철이 간절히 바라는 그 한마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좋아, 침묵은 무언의 대답이라고 했지. 난 믿겠소.》

봉철은 그제서야 련희의 손을 놓아주었다. 어찌나 꽉 쥐였던지 피가 돌지 않는것 같았다.

련희는 호-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는 봉철을 차마 마주볼수가 없어 달아오른 얼굴을 두손에 묻은채 휴계실을 뛰쳐나갔다. 발길이 닿는대로 막 달려갔다. 아직도 손이 얼얼했다.

련희는 자기가 이미 서봉철의 굳센 손아귀에 꼼짝없이 잡혔다는것을 인정했다. 가슴은 터질듯 환희로 부풀어올랐고 또 마음 한켠으로는 딱히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이상야릇한 예감이 안개처럼 서려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오늘일이 즐겁기만 했다.

련희가 숨차게 멎어선 곳은 장성강반의 버드나무숲이였다. 그는 이곳에서 봉철과 함께 해상작전에 참가했었다. 아, 그날에 울리던 풀피리소리며 그와 함께 부르던 2중창이 지금도 귀 쟁쟁히 들려온다.

그 잊지 못할 추억을 되살리며 련희는 장성강반을 거닐었다. 비로소 련희도 자기의 심장속에 서봉철에 대한 남다른 감정이 이미전부터 싹터올라 아지를 무성히 펼치기 시작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걸가? 그의 남아다운 배짱, 혁명적군인정신이 체질화된 강의성, 호남아다운 인격과 무른 인정… 이 모든것이 때없이 피부를 뚫고 심장을 뒤흔들군 하여 잠마저 이루지 못하게 하는것이 사랑이 아닐가?!…

련희를 바래워주러 나왔던 서봉철이도 그날의 일을 상기했는지 좀 붉어진 얼굴로 처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련희동무, 난 용접봉심선절단기를 성공시키고는 정식으로 동무 아버지를 만나겠소. 좋지?》

련희는 고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가보겠어요.》

《응, 가서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오.》

련희는 봉철의 바래움의 눈길을 받으며 큰어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련희에게서 그의 아버지가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리성복의 안해 백옥녀는 몹시 기뻐했다.

《련희야, 아버지가 오셨는데 한상 잘 차리자꾸나.》

백옥녀는 손님맞을 준비를 서둘렀다. 우선 닭부터 잡았다. 련희 아버지가 닭고기국물에 띄운 만두를 특별히 좋아한다는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백옥녀는 련희를 팽이돌리듯 들볶았다.

《련희야, 세면장에 있는 두부를 가제보에 물기없이 꼭 짜거라.》

련희는 성수가 나서 큰어머니의 지시를 따랐다.

《뭐니뭐니해도 만두속엔 남새거리가 들어가야 제격이지.》

백옥녀가 남새밭에 나가 부루며 쑥갓, 풋배추를 뜯어오는 사이 련희는 부엌에 앉아 열심히 밀가루반죽을 했다. 이제는 곱게 만두를 빚으면 된다. 큰어머니처럼 만두송이를 곱게 빚어야겠는데… 어느결에 주시해보았는지 백옥녀가 또 잔소리를 했다.

《련희야, 만두송이는 좀 커야 먹을맛이 있단다.》

《아이참, 내 만두송이는 자꾸 미워만지네.》

《하긴 미운게 더 맛있다고 하더라.》

《호호…》

닭고기는 석탄불에 익혀낸지도 오래고 이제 팔팔 끓는 닭고기국에 만두송이를 살짝 넣으면 그만이다.

련희는 점점 어둠이 서려오는 창밖을 근심스러운 눈길로 내다보았다. 협의회가 길어지는 모양이였다. 그는 큰아버지방에 전화를 걸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리성복과 지용수는 밤 9시가 훨씬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백옥녀는 마당에까지 나와 지용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련희 아버지, 정말 오래간만이예요.》

《형수님, 그간 안녕하셨소?》

지용수는 백옥녀를 형수라고 각근히 불러주었다. 리성복과 지용수는 나이상으로 같았다. 하지만 생일달수를 계산하면 리성복이 다섯달 앞선다. 그런것으로 하여 젊었을 때는 네가 형이냐, 내가 형이냐 즐거운 다툼질이 많았다. 나이가 동갑이래도 달수는 어쩔수 없어 지용수는 백옥녀를 깍듯이 형수라고 부르는것이였다.

지용수는 오래간만에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보니 협의회때 있었던 불쾌한 감정이 가뭇 사라져버렸다. 그는 마치 제집에 온듯 주인을 뒤에 두고 제 먼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예나 오늘이나 별반 달라진것이 없었다. 두칸짜리방에 전실도 작았다. 지용수는 언제부터 리성복에게 이젠 나이도 많은데 년로보장을 받기 전에 집을 크게 지으라고 권고했다. 화력발전소에서도 당비서의 집을 새로 짓자고 몇번이나 터를 닦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리성복은 발전소의 로동자들이 다 큰 집을 쓰고살 때 생각해보자고 밀막아버렸다는것이다. 지난해에는 평양의 창광거리와 꼭같은 세칸짜리 살림집을 수십동이나 지어 로동자들에게 배정하면서도 당비서가 받은 집을 열생산직장의 작업반장에게 양보했다는것이다.

정말이지 큰 기업소 당비서의 집치고는 너무도 소박했다. 부엌에서는 백옥녀와 련희가 재빠르게 팔팔 끓는 닭고기국에 만두송이를 집어넣고있었다.

지용수는 열려진 부엌문에 서서 두사람을 흥그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련희야, 손 델라. 조심히 넣으렴.》

백옥녀가 친딸에게 가르치듯 다심한 어조로 하는 말도 별스레 친근감을 느끼며 들려왔다. 련희도 마냥 기쁜지 큰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넓지 않은 부엌을 뱅글뱅글 돌았다.

리성복과 지용수가 방안에 앉기 바쁘게 저녁상이 차려졌다. 구수한 닭고기국냄새가 방안공기를 후덥게 해주었다.

《자, 형수님도 올라오시우.》

지용수가 부엌에 대고 말했다.

《허- 그새 만두국을 끓였나? 우리 로친이 자네 식성을 잊지 않았구만.》

리성복이 흐뭇해하며 밥상에 마주앉았다.

《자, 들자구!》

리성복이 지용수에게 수저를 쥐여주며 권했다.

《가만, 다 식이 있는 법이네. 형수님, 빨리 들어오시우. 이러다 목젖 넘어가겠수다.》

《예, 들어갑니다.》

백옥녀는 김이 문문 나는 국사발을 들고 방안에 들어섰다. 지용수곁에 백옥녀가 앉고 리성복의 곁에 련희가 앉았다. 단란한 가정 그대로였다.

지용수는 가방에서 목이 긴 술병을 꺼냈다.

《자, 오늘은 내 형수님께 한잔 부읍시다.》

《아이구, 난 입에 대지도 못해요.》

백옥녀는 술을 붓기도 전에 앞질러 두손을 내저었다. 지용수는 그러거나말거나 자기앞에 놓인 흰 유리잔에 찰랑찰랑 술을 부었다.

《당신두… 한잔 받구려.》

리성복이 안해를 부추겼다.

지용수는 두손으로 정히 술잔을 들어 백옥녀에게 권했다. 백옥녀는 황송해하며 술을 받았다.

《형수님, 고맙수다. 내 평생 형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겠습니다.》

《원, 련희 아버지두. 은혜는 무슨 은혜라고…》

《아닙니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저 애를 형수님에게 맡길 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구만요.》

지용수는 절로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세월은 류수같이 흘러 눈도 채뜨지 못하고 엄마젖을 찾아 울어대던 련희가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였으니 어찌 그 지나온 나날들이 감회깊지 않으랴!

백옥녀도 간신히 술을 입에 댔다 떼고 흘러간 옛일이 추억되여서인지 앞치마로 눈굽을 찍었다. 이제는 칠혹같이 까맣던 백옥녀의 머리에 흰서리가 다분히 내렸고 둥실하던 얼굴에도 세월의 년륜인양 잔주름이 수없이 생겼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지용수의 뇌리에는 지난 일들이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되였다.

…리성복의 안해와 지용수의 안해는 해산예정일이 같은 달이였다. 리성복은 벌써 두번째 자식을 본다. 하지만 지용수는 첫자식을 두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것이다.

두집 세대주들은 이제 태여날 아이들이 모두 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도 그럴것이 리성복의 첫자식도 딸이였다. 그러니 첫딸을 둔 아버지들 모두가 그러하듯 다음번자식은 아들이였으면 하는 욕망이 굴뚝같기마련이다.

아들에 대한 지용수의 갈망도 리성복과 다를바 없었다. 그에게도 그릴만한 사정이 있었다.

결혼하여 5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는 일로 지용수와 그의 처는 남모르게 마음을 많이 썼다. 그러던 이들부부에게 자식이 생겼으니 환성이라도 올릴만큼 기쁜 일이였다. 지용수는 안해와 함께 군병원에 갔었다. 그때 처녀시절부터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는 유능한 의사는 안해의 병약한 몸을 진찰해보고나서 두번째자식을 보기가 힘들것이라는 불길한 진단을 내렸던것이다.

안해는 몹시 실망하는 기색이였다. 아들을 보고싶어하는 남편의 욕심을 잘 알고있는 그였던것이다. 하지만 지용수는 대범하게 자식 하나라도 다른집 열자식 못지 않게 잘 키우자고 안해를 위로했다.

그러면서도 해산달이 다가올수록 지용수는 바싹 긴장해졌다. 하나밖에 볼수 없는 자식이여서 이제 태여날 자식이 아들이여야겠다는 생각이 꿈에서도 그려볼만큼 간절했던것이다.

먼저 리성복의 안해가 순산했다. 지용수는 그것을 축하해주러 병원에 달려갔다. 하지만 축하는 해주었으나 섭섭하게도 딸이였다.

(저 친구 또 수고해야겠군.)

그로부터 열흘후 지용수의 안해도 해산진통이 느껴져 부리나케 군병원에 입원했다. 지용수는 더럭 겁이 나 산부인과 치료실앞에 놓인 긴걸상에서 떠날줄 몰랐다. 안해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그의 뼈를 깎는것만큼 아프게 들려왔다. 안해의 진통은 이틀사흘 멎지 않았다.

지용수는 긴걸상에서 꼬박 3일을 새웠다. 시간이 갈수록 산부인과의사들의 거동과 얼굴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지용수의 온몸을 감싸안았다. 그의 곁에는 리성복이 그림자처럼 붙어 그를 위로해주었다.

나이지숙한 과장은 산모의 몸상태로는 순산을 기대할수 없다고 실망에 가깝게 이야기했다.

지용수는 울상이 되여 과장선생의 손을 꼭잡고 사정하다싶이했다.

《저, 과장선생님! 과장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저의 처야 이번이 마지막기회이지 않습니까?》

산과과장은 그러는 지용수가 충분히 리해가 된듯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있으니 산모는 꼭 순산할거예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이 나갔다. 또다시 몇시간이 흘렀다.

지용수와 리성복은 복도에서 서로 오락가락하며 산모의 순산을 애타게 기다렸다.

군병원에서는 협의회를 열고 지금상태에서는 산모를 도병원에 후송할수 없으니 왕진차로 도병원의 유능한 산부인과 박사선생을 모셔오도록 긴급대책을 세웠다. 의사들의 표정이나 거동을 봐서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두시간은 실히 걸려 나이지숙한 박사선생이 병원에 도착했다. 지용수는 로숙하고 침착해보이는 박사선생에게 실날같은 기대를 걸었다.

박사선생이 수술장에 들어간지 세시간만에 산모는 드디여 몸을 풀었다.

새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성이 들려왔을 때 지용수와 리성복은 만세라도 부를듯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새생명은 고고성을 터쳤지만 산모의 생명이 위급했던것이다.

긴장한 치료전투가 련 삼일동안 진행되였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기술로는 산모의 생명을 구원할수 없었다.

어머니의 생명과 바꾼 새생명의 고고성… 그것을 듣는 순간 지용수의 가슴은 갈가리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지용수는 눈물속에 강보에 싸인 딸을 받아안았다. 아, 그리도 자식을 고대하던 안해가 딸의 얼굴도 못 보고 눈을 감다니… 지용수의 품에 안긴 새생명은 엄마의 젖을 찾아 빨간 입술을 벌린채 피가 나게 울어댔다.

아버지도 울고 딸도 우는 눈물겨운 광경앞에 병원에서는 심중한 론의를 벌렸다. 아버지의 인정과 애정이 그 아무리 뜨겁고 강렬할지라도 지금은 저 갓난아기의 요람이 되여줄수는 없다. 나라에는 이런 아기들을 지켜주고 키워주는 사랑의 품이 얼마든지 있다.

병원에서는 지용수에게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만이라도 육아원에 보내는것이 어떤가 하는 의향을 비쳤다. 처음 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엄마의 품마저 잃은 딸애를 아버지의 품에서까지 떼여놓을수 없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하지만 인차 아버지의 애정만으로는 어머니의 젖도 물어보지 못한 딸애를 키울수 없음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지용수는 어쩔수없이 동의했다.

안해의 장례를 치르고난지 며칠후 리성복이 지용수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막 방으로 들어서던 지용수는 화석처럼 굳어졌다. 뜻밖에도 딸애가 리성복의 안해 백옥녀의 가슴에 안겨있는것이 아닌가. 백옥녀는 한가슴에 두 어린 생명을 포근히 안고있었다. 딸애는 진정 고마운 녀인의 품에 안겨 만시름을 잊고 모금모금 젖을 빨고있었다.

《이게 뭐요? 형수, 어쩌자구… 어쩌자구?》

백옥녀는 방긋 웃어보였다.

《애기걱정은 마세요. 전 젖이 많답니다.》

《젖이 문제요? 제 딸애의 치닥질만 해도 숨가쁘겠는데 우리 애까지… 이러면 안됩니다. 난 이렇게 못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백옥녀의 얼굴에 노여움 비슷한 빛이 떠올랐다.

《이 앤 제 딸이예요, 동서가 제게 맡긴… 제 딸이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녀인은 명주포단에 싸인 딸을 지용수에게 안겨주었다.

지용수는 딸애를 정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딸애는 젖을 배불쑥 먹고 잠에 취해있었다. 목이 컥 메였다.

(아가야, 넌 진정 친엄마를 만났구나. 그래, 친엄마다. 이 아버진 더는 너의 운명을 두고 고심하지 않으련다. 저렇게 살틀하고 마음 고운 엄마가 있는데 내게 무슨 걱정이 있겠니. 아가야, 어서 무럭무럭 자라 너를 키워준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렴. 부탁한다!)

이렇게 되여 두 집 딸은 쌍둥이처럼 자랐던것이다.

지용수의 눈에는 어느 사이 뜨거운것이 축축히 고여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리성복내외를 고맙게 여겼다. 아직은 그 고마움을 천분의 일도 갚지 못했다. 아니, 죽을 때까지도 갚지 못할것이다. 어머니가 되여준 고마움을 어떻게 값으로 계산하랴.

그래서 이곳에 내려올 때마다 죄스러움에 마음이 조여드는 지용수였다. 이번에도 협의회때 불쾌한 일을 당하고는 그길로 평양에 훌 올라가버리려 했다. 하지만 내려오기도 쉽지 않은 걸음에 그렇게 떠나간다는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여서 큰맘먹고 찾아온것이였다. 더구나 일전에 백옥녀가 부탁한 딸 영희의 문제가 성사되였음을 알려주기도 해야 했다.

련희와 쌍둥이처럼 자란 리성복의 딸 영희는 지금 금성정치대학 졸업반에서 공부하고있다. 몇달전 백옥녀는 지용수에게 전화로 딸의 배치문제를 부탁했었다. 그는 자식들문제에 너무 무관심한 남편에 대한 의견을 한바탕 늘어놓고 딸을 평양에 배치해줄수 없는가고 조심스레 물었다.

지용수는 그 부탁을 심중히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아도 련희를 키워준 그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던 지용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리성복을 믿고 대학을 졸업한 딸을 맡겼으니 그 친구의 딸을 위해 뛰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던것이다.

그래서 영희의 배치에 남다른 신경을 썼는데 마침 평양에 배치된것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내려온 길이였다.

지용수는 백옥녀의 성의가 깃든 저녁상을 말끔히 비웠다.

《자네 식성이 보통 늘지 않았구만.》

리성복은 반반히 비운 지용수의 밥그릇을 넘겨다보며 웃었다.

《형수님이 해준 밥인데 어련하겠소. 형수님, 정말 잘 먹었수다.》

지용수는 배를 슬슬 어루쓸며 푸접좋게 웃었다. 련희가 얼른 일어나 고뿌에 더운 물을 떠가지고 들어왔다.

《응.》

지용수는 딸에게서 물고뿌를 받으며 리성복을 돌아보았다.

《이보게, 이렇게 다 큰 딸을 맡겨 미안하네. 사실 련희는 우리 집보다 여기 큰아버지의 정을 더 중히 여긴다네. 그러니 친딸처럼 여기고 련희의 문제에 신경을 써주게.》

그는 영희의 배치문제를 자기가 성사시킨것이기라도 한듯 자부심이 넘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할게 있나. 련희는 아버지나 큰아버지가 관심하지 않아도 제발로 얼마든지 걸어나갈수 있네. 내려온지 몇달 안되는새에 벌써 새기계제작에 달라붙어 성과를 내고있네.》

련희는 큰아버지곁에 앉아 거북스러운지 머리를 숙이고있었다. 지용수는 그 새 기계제작소리에 약간 불쾌한감도 없지 않았다. 그 기계를 서재필의 아들과 공동으로 제작한다니 무엇인가 께름직하게 생각되였다. 그래 올라갈 때 따끔히 말해주리라 마음먹고있던 참이였다. 그 감정은 그 감정이고 어쨌든 련희가 제구실을 한다니 아버지로서는 흡족한 마음 감출수가 없었다.

《그게 다 자네 덕이지. 자네가 곁에서 친딸처럼 관심해주니 그렇지 제 혼자서야 어림도 있을라구.》

지용수는 은근히 리성복을 춰올렸다. 그 말속에는 오늘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딸에 대한 관심을 더 들여달라는 곡진한 당부가 깃들어있었다.

《련흰 내나 자네가 걱정 안해도 얼마든지 자기 앞길을 개척해나갈거네.》

《그러면 좀 좋겠나. 어쨌든 요즘 젊은것들이란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헤덤비는게 탈이네. 그러니 자네가 잘 신칙해주기 바라네. 그리고 영희문제는…》

이때 백옥녀가 지용수의 말을 꺾으며 딴전을 부렸다.

《련희 아버지, 잔에 부어놓은 술이야 다 마셔야지요.》

이런 자리에서 말할게 못된다는 신호였다.

《마셔야지요.》

지용수는 반나마 채워진 술잔을 들어 쭉 마셨다.

《자네 술도 늘었구만, 응?》

《늘었지. 형수님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구 또 기분나쁜 일도 있고해서… 그래도 취하진 않았네.》

《자네 협의회일때문에 그러나?》

리성복이 놓치지 않고 의미심장한 어조로 물었다.

《됐네.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할게 못되네. 식사가 끝나면 따로 만나 이야기하세.》

저녁식사는 끝났다.

리성복과 지용수는 상에서 나앉고 백옥녀와 련희는 상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두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방으로 올라갔다. 웃방에 척 들어서면서 눈에 띄우는것은 한쪽벽을 꽉 채운 장서였다. 책은 장서뿐이 아니였다. 창문쪽에 놓은 량수책상에도 무득하니 쌓여있었다.

지용수는 장서로 다가가 뒤짐을 지고 책들을 훑어보다가 어느 한곳에서 눈길을 박고 책 한권을 꺼내며 말했다.

《자네 그새 책이 많이 늘었구만. 당일군치고 이만큼 책부자도 쉽지않네. 늘그막에 박사론문이라도 쓸 작정인가?》

지용수는 책을 펴들다말고 넌지시 물었다.

《왜 당일군은 박사가 되면 안된다는 법이 있나?》

리성복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지용수는 긍정을 표하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다음말을 이었다.

《좋지, 세상에 책부자만큼 큰 부자는 없다더군. 헌데 책읽을 짬은 있나?》

《짬이 있을게 뭔가. 정말 시간이 없어 죽겠네. 읽을 책은 많은데 어디 시간이 허용되나. 이삼십년전에 배운 지식을 가지고서는 발전하는 현실을 따라서지 못한다는거야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내 이즈음에 와서 절박하게 느끼는바이지만 당일군이 과학을 외면해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다는것이네. 요즘 세계적인 판도에서 과학기술갱신주기가 2년도 짧다니 우리도 가만 앉아있을수야 없지 않나. 그래서 대담하게 전자도서열람실을 건설할 결심이네.》

지용수는 과학기술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리성복의 이 측면만은 높이 사주고싶은 생각이였다. 그도 그릴것이 성의 과학기술을 책임진 국장으로서 앞으로 영천화력발전소를 성적인 본보기단위로 내세워 전력공업부문의 과학기술수준을 한계단 추켜세울 욕심도 없지 않았다.

《그래, 그래. 전자도서열람실건설만은 나도 두손을 들어 찬성이네. 전자도서열람실이 완공되면 성적인 보여주기사업도 크게 벌리겠네. 요즘 일군들은 현행생산에 빙자하며 전략적인 기업소발전문제엔 신경을 쓰지 않는게 탈이란 말이야. 그런 측면에선 영천화력발전소가 앞장섰다고 보네.》

지용수는 책을 다시 제 자리에 꽂아놓으며 탁자쪽으로 다가와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반대켠에는 리성복이 앉아있다.

두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둔 팔걸이의자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담배를 피웠다. 저녁식사때 즐거운 기분은 어디다 건사했는지 둘다 얼굴표정이 무거웠다.

지용수가 일부러 리성복의 마음을 눅잦혀놓으려고 책부자며 전자도서열람실문제를 꺼내며 속에 없는 소리를 했다는것을 리성복이 모를리 없었다. 서로가 마음속에 그득히 할말을 묻어두고있는터여서 드디여 터쳐놓을 때가 되였다고 두사람은 생각하고있었다.

먼저 말을 뗀것은 지용수였다.

《이보게, 생각할수록 오늘일이 불쾌하구만.》

지용수는 자기에게 불쾌감을 준 당사자가 리성복이라도 되는듯 섭섭한 어조로 말했다.

《뭐가 불쾌한가?》

《몰라서 묻나?》

그는 언성을 높였다. 협의회장에서 풀지 못한 분풀이를 리성복앞에서 다 털어놓을 심산으로 울기에 차서 말했다.

《서재필이 무슨 권한으로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면박을 주는가 말이네. 한갖 년로보장자가 말이야.》

《너무 흥분하지 말게.》

《흥분하지 않게 됐나? 그래 날 이 꼴로 만들려고 협의회를 조직했나? 나도 2호발전기를 복구하자고 내려온 사람일세. 그래 용접안에 믿음이 가지 않는데 어떻게 동의하라는건가, 엉?》

첫시작부터 대화는 날이 선 칼날처럼 무섭게 오갔다.

《용접안보다 서재필이 더 믿음이 가지 않아 그러겠지.》

《그렇게 비꼬지 말게. 서재필이 뭐길래 거기에 박수까지 보내나? 그래 자넨 서재필을 더 믿나, 친구인 이 용수를 더 믿나?》

지용수는 그만 열이 올라 탁자까지 두드리며 따졌다. 그는 서재필을 인간적으로도 또 기술적으로도 믿지 않았다.

영천화력발전소건설당시 지용수는 설계분과에서 일했는데 서재필은 그의 설계에 따라 용접을 하는 일개 용접공이였다. 한번은 3호발전기과열관용접때 서재필이 용접한 부분에서 오작사고가 났다. 과열관용접이 설계의 요구대로 진행되지 못했던것이다.

서재필은 사고의 원인이 잘못된 설계에 있다고 완강히 자신을 변호했다. 그 설계의 담당자는 지용수였다.

이 일로 하여 설계자와 용접공사이에는 의견충돌이 있었다. 서로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고심의과정에 설계자도 용접공도 잘못이 없다는것이 판명되였다. 그럼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로부터 얼마후 휴가를 받고 들어갔던 설계실 사도공이 나와서야 이 문제가 그의 실수로 초래된 일이라는것이 밝혀졌다. 지용수는 서재필에 대한 고까운 감정을 풀고 그를 만나 사죄할 생각이였다. 하지만 서재필은 잘못은 사도공에게서만 찾아볼게 아니라 설계담당자의 무책임한 일본새에도 문제가 있다고, 책임은 다같이 져야 한다고 당위원회에 의견을 말했던것이다.

지용수는 참을수 없었다. 그래 그와 대들이판을 벌렸다.

《서동문 옳지 않소. 그래 잘못된 일이야 바로잡으면 될걸 무슨 의견을 제기한단 말이요. 그렇게 사람을 잡아야 속이 씨원하겠소?》

《여보 설계원동무, 로동자라구 너무 무시하지 마시오. 난 이번 사고를 놓고 설계원동무를 다시 보게 됐소. 그래 사도공동무만 책임을 지고 동문 손털고 나앉으면 그만이요? 상벌은 일미리의 편차도 없이 정확해야 한다고 보오.》

서재필은 쓰거운듯 힝 가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지용수는 두달간의 무보수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정말이지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었다. 두달간의 무보수로동에서 오는 물질적손해에 대한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보다는 그 일로 흐려진 자신의 명예심과 우월감이 심히 손상당한것으로하여 울기가 나도록 분통이 터졌다. 사실 이 거창한 발전소건설장에서 한점 티없이 위훈의 탑을 쌓고저 낮이고 밤이고 뛰고 또 뛴 그였다. 그런데 수치스럽게도 무보수로동이라는 입에 올리기도 얼굴뜨거운 벌을 그것도 한갖 용접공의 올곧지 않는 심통머리때문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꼭 황소에게 물린 격이였다. 그는 자기의 일생에서 다시는 이런 수치가 없을것이라고 단정했다. 하기야 세상에 서재필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다시야 그런 인간과 맞다들겠는가. 될수록이면 피하는것이 상책이다.

그후 지용수는 발전소기술발전과장으로 임명되였다. 그때 그는 대안전기공장에 두달간 이동작업을 책임지고 나가있었는데 그속에는 서재필도 속해있었다. 그땐 이렇다할 충돌이 없이 두사람관계가 무탈히 흘러갔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허나 그 불쾌하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만나지 않을줄 알았던 서재필을 그가 들고나온 용접안때문에 그것도 중앙기관의 국장이라는 관직과 한갖 년로보장자라는 아득한 격차차이건만 서로 너나들이했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였다. 처음 지용수는 서재필이 용접의 방법으로 2호발전기를 복구하자는안을 내놓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리머리를 저었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에 앞서 용접안자체가 도무지 신빙성이 없어서였다.

후에 기사장의 말을 들으니 그는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공장에서 퇴직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무슨 바람이 들어 중뿔나게 시키지도 않는 일을 들고다니는가?… 모든게 미심쩍고 께름하기만 했다. 게다가 당비서까지 그와 짝자꿍이니 모를 일이였다.

한동안 말이 없던 리성복이 타다만 담배불을 재털이에 비벼끄며 말했다.

《난 용접안도 믿고 또 서재필도 믿네.》

《?…》

지용수는 어안이 벙벙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리성복은 무언가잠시 바재이더니 결심이 선듯 툭 털어놓았다.

《이 사람 용수, 자넨 변했네. 자네도 이 화력발전소에서 일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무슨 근거로 서재필동무를 믿지 못하겠다는건가?》

《근거는 있네. 자넨 그의 인간됨을 너무 모르고있네.》

《인간됨, 그래 그의 인간됨이 어떻다고 그러나. 자네 눈에 비낀 서재필의 모습과 내가 알고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는걸 알아야 한다고 보네.》

《그래 서재필이 뭔가, 자네의 눈엔 그가 그토록 흘륭해보인다니 구태여 이 문제를 가지고 론할 필요는 없네. 하지만 그가 훌륭하다고 용접안도 훌륭해지지 않는다는것을 명심하게.》

지용수는 만만치 않게 자기 주장을 고집하려들었다.

《잘 알아두게. 서재필을 믿고 안 믿고 하는것은 우리 당위원회의 사업권한이니 더는 간참하지 말게.》

리성복은 단호한 결론을 지었다.

그의 맵짠 결론에 더 뭐라고 반박할 론거를 찾지 못한 지용수는 씩씩 황소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좋네, 그건 자네 말이 옳네. 하지만 용접안은 그 과학적담보가 없이 절대로 승인할수 없네!》

《위협인가?》

《아니, 이건 엄연한 사실이네. 내 명백히 말하지만 용접안은 모험일세!》

《모험이라구? 좋네, 우린 물러서지 않겠네. 자네가 우려하는 그 과학적담보도 우리가 내놓겠네.》

서로 작두날같은 말들이 오갔다.

련희는 부엌에서 가슴을 조이며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말다툼에 귀를 기울였다. 웃방 사이문짬으로 서재필아바이에 대한 말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련희는 서봉철을 통해 아버지가 이제 얼마 안있어 2호발전기복구를 위해 다시 공장으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간간이 들려오는 말에 귀기울여보면 아버지는 서재필아바이에 대한 감정이 아주 나쁜것 같다. 그러는 아버지를 큰아버지는 질책하고… 련희의 가슴은 알수 없는 불안으로 조여들었다. 먼저 떠오르는것이 퇴근길에서 서봉철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하던 말이였다.

《내 용접봉심선절단기를 끝내고는 동무 아버지를 만나겠소. 좋지?》

그렇게 만난다면 아버지는 어떤 낯으로 그 동물 대할가? 애초에 만나주지도 않을는지 몰라?!…

큰어머니는 혀를 차며 오래간만에 온 련희 아버지를 노엽힌다고 큰아버지만 질책했다.

한참만에야 서로가 분기를 삭였는지 웃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한결 가라앉은듯 했다.

어느덧 밤도 이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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