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6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9


기사장방에는 협의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로 빼곡이 차있었다. 평시에는 그렇듯 넓어보이던 방이 오늘은 비좁게만 느껴졌다.

기사장방에 들어설 때 두사람은 서로 먼저 들어가라고 싱갱이질을 했다. 끝내는 리성복이 지용수를 앞세우고 들어갔다. 오늘 협의회를 주관할 사람은 지용수였던것이다.

지용수는 앞자리에 앉아 청중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낯익은 사람들이였다. 그들을 향해 느슨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보인 지용수는 기사장에게 말했다.

《자, 시작합시다.》

명인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루는 문제가 심중한것이여서 그런지 방안은 처음부터 긴장한 분위기를 띠였다. 사위는 물뿌린듯 조용했다.

《여기 앉아계시는 동지들도 알다싶이 우리 발전소의 2호발전기는 지금 멎어서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5월 17일 2호발전기를 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전력생산의 동음을 울리겠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정의 맹세를 다졌습니다. 그후 우리 기업소는 그 관철을 위한 대책으로서 발전소의 유능한 기술자, 기능공들로 5월17일보수지휘부를 꾸리고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복구하기 위한 문제를 가지고 거듭되는 론의를 벌렸습니다. 그런 과정에 용접의 방법으로 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방안이 나왔고 그 기술적담보를 위해 사심없는 노력을 기울여 적지 않은 성과도 이룩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조직한 기술협의회에서 토론될 문제가 바로 용접의 방법으로 어떻게 균렬을 제거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여기에 앉은 모든 동지들이 적극적으로 기술협의회에 림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명인국이 개회사격의 발언을 끝내자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이 간단히 설치한 연탁에 나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상황에 대해 콤퓨터화면상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콤퓨터화면에 현시된 회전자축의 균렬부위에 집중되였다.

석남흥은 침착하게 하나하나 납득이 가게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재필아바이가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우리 보수지휘부는 여기에 신심을 가지고 이 사업에 달라붙었습니다. 그간 성과도 많았습니다. 거듭되는 론쟁과 론쟁끝에 우리가 얻은 결론은 용접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것입니다.

우리 보수지휘부의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은 지금껏 서로 다른 두가지 론거를 세우고 제가끔 의견안을 내놓고 격렬한 토론을 진행해왔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서로가 갈라져앉았습니다. 왼쪽에 앉으신분들은 동질의 용접봉으로 용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분들이고 오른쪽에 앉으신분들은 이종강용접을 주장하는분들입니다. 이 두가지 주장이 다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하나의 목적에 지향된 의견들인것만큼 서로가 기탄없이 자기 주장의 기술적타당성을 론증해주기 바랍니다.》

석남흥이 이야기한것처럼 기술협의회에는 이종강용접을 주장하는 편과 동질의 용접을 주장하는 편으로 서로 갈라져앉아있었다. 누가 나서서 자리를 배정해주지 않았지만 서로가 약속이나 한듯 그렇게 앉았던것이다. 협의회는 시작부터 열기를 띠고 진행되였다.

먼저 창문쪽에 앉은 동질의 용접을 주장하는쪽에서 금속실험실장이 일어났다. 그는 두툼한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시작부터 열을 올렸다.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재질이 34크롬, 니켈3, 몰리브덴으로 이루어진 합금강재질이라는것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입니다. 난 이종강용접을 주장하는 저 열조종실장동무에게 한가지 묻고싶습니다. 그래 실장동무, 용접의 일반적원칙이 뭐요?》

금속실험실장은 반대켠에 앉은 열조종실장을 향해 물었다. 열조종실장은 갓 쉰고개를 넘긴 과묵하면서도 진중한 사람이였다. 그는 열조종실에서 20여년을 일해온 이를테면 열조종분야에서는 그 어떤 문제도 막히지 않는 실력가였다.

금속실험실장도 그와 동년배였다. 그는 성대가 높고 어떤 문제든 제 주장을 세울 때면 피대를 돋구기가 일쑤이다. 오늘도 그는 지명권을 주지 않았어도 첫 토론에서 자기의 높은 목청으로 이종강패들을 눌러버릴듯 기세를 올렸다.

열조종실장은 침묵으로 자기 주장을 세웠다. 이쯤되자 금속실험실장은 연탁을 향해 열변을 토했다.

《모르면 내 말해주겠소. 용접에서 일반적원칙은 동질의 용접봉으로 용접해야 재질의 세기와 경도를 만족시키고 잔류응력도 해소시킬수 있다는거요. 그런데…》

이때 이종강을 주장하는쪽에서 누군가가 불쑥 일어나며 금속실험실장의 말을 중단시켰다.

《실장동지! 여기에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질의 용접봉으로 용접하면 고온열처리를 하여 내부잔류응력을 해소시켜야 하는데 3번메달에서 고온을 주면 회전자단락환은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실장을 반박한 사람은 현대화실장이였다. 금속실험실장은 또다시 열을 올렸다.

《그래 현대화실장동무가 그걸 몰라서 묻소? 단락환을 뽑아내고 권선을 해체하면 그만이 아니요.》

《어느 세월에 단락환을 뽑고 권선을 해체합니까?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동질의 용접으로는 우리가 결의한 날자를 보장할수 없습니다.》

이쯤되자 동질의 용접을 주장하는쪽에서 또다시 자기 주장을 내세웠다. 금속실험실의 최기사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빠른 길을 택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종강용접은 고온열처리를 필요로 하지 않기때문에 시간은 단축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니켈용접봉으로 이종강용접을 하는 경우 용접봉의 재질류동한계와 세기한계가 원재질보다 떨어지는것은 어떻게 막겠습니까? 방도가 있으면 납득이 가게 설명해주십시오.》

서로 엇갈린 주장은 끊기지 않고 계속되였다.

집행석에 앉은 리성복당비서와 지용수국장 그리고 기사장은 모두 이들의 론쟁을 유심히 들으면서 제나름대로 어느 방법을 택할것인가 속구구해보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지용수국장은 특별히 귀를 강구고 두 주장을 식별해보느라 정신을 집중했다. 두 주장이 다 용접의 방법으로 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하자는것이다. 다만 방법상이 서로 다를뿐이다. 동질의 용접주장도 이종강용접주장도 다 자기 론거가 있다.

뭐니뭐니해도 안전성이 담보되여야 한다. 동질의 용접이 이종강쪽보다 믿음직스러운데가 있긴 한데 어쨌든 그것도 용접의 방법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담보가 철저히 안받침되지 않으면 용접의 방법은 어느것이든 불가능하다고 지용수는 생각하고있었다. 헌데 용접안의 안전성, 즉 과학적담보는 론하려조차 하지 않으니…

지용수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동질의 용접이든 이종강용접이든 여기 모여앉은 사람들은 용접안의 성공여부를 전제로 하고 오늘협의회에 참가한 모양이였다. 선후차가 뭔지도 모르고 윽윽거리는게 꼭 이도 안나온 주제에 콩밥을 먹겠다고 덤비는 격이였다.

이제는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잠간 동안이 생겼을 때 리성복이 석남흥에게 물었다.

《기술발전부기사장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어느쪽이요?》

지금껏 석남흥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가운데서 그냥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5월17일보수지휘부책임자였다. 그러니 그의 견해가 중요하게 작용할것이다.

마침내 석남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을 봉하고 석남흥을 주시했다. 이제 그가 어느쪽을 지지하겠는가? 수십쌍의 눈동자들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무겁고도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전 이종강용접을 주장합니다.》

사위가 삽시에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웅성거렸다. 그가 5월17일보수지휘부조직이후 지금껏 두 주장의 싸움을 관조적으로 지켜보았을뿐 어느쪽을 지지하는가고 시끄럽게 캐묻는 사람들에게 《서로 격렬하게 론쟁하느라면 승패가 나겠지요.》 하며 자기 주장을 감추어왔던것이다.

그를 바라보던 지용수가 물었다.

《부기사장동무, 이종강을 주장하는 론거는 뭐요?》

《예, 지금까지 론쟁하는 과정에 다 이야기됐지만 이종강이든 동질이든 다 자기 특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질의 용접방법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만약 동질의 용접봉으로 용접하는 경우 고온열처리는 필수적인바 그 과정에 권선을 태울수 있습니다.

방금전에 현대화실장동무도 말했지만 동질의 용접으로는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종강용접은 고온열처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금속실험실장동문 용접봉의 재질류동한계와 세기한계에 대해서 걱정했는데 고니켈용접봉으로도 얼마든지 보장할수 있습니다.》

지용수가 기술발전부기사장의 발언에 다른 질문을 하지 않자 동질의 용접을 주장하는쪽에서 몇마디 반문을 들이댔다. 그때마다 석남흥은 정확한 대답으로 눌러버렸다. 결국은 이종강용접을 주장하는쪽이 우세해지고말았다.

그러나 지용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용접의 방법으로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그자체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참 담들도 크지. 하긴 미욱한 놈이 곰잡는 격인가? 만약 용접의 방법을 택했다가 천번중 한번의 사고라도… 아니, 발전기의 사고는 무서운 폭발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최대의 안전성이 담보되여야 한다.)

지용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의 뇌리에는 3 600회전에 견디지 못하고 발전기회전자축이 부러져나가는 무서운 환영이 섬찍하게 떠올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저 고무풍선처럼 붕-뜬 사람들을 가라앉혀야 한다.

《조용들 하오!》

지용수는 엄엄한 목소리로 청중을 제지시켰다. 오늘 기술협의회를 주관할 사람이 바로 지용수국장이라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용수는 지금껏 한마디도 자기 견해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런것만큼 그의 발언은 기술협의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그는 틀지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5월17일보수지휘부에 망라된 동무들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지금껏 두가지 주장을 세우고 서로 격렬하게 론쟁을 벌렸는데 다 자기식의 견해가 섰다고 봅니다. 하지만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 있고 시운전시 정상가동을 보장할수 있다는 과학적인 담보는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 과학적담보가 확고히 선 다음에 어느 방법을 택하겠는지 하는것이 론의되여야 합니다. 방금 기술발전부기사장동무가 설명한것처럼 균렬부위는 부하모멘트가 가장 많이 받는 3번메달부분입니다. 아무리 용접을 잘한다고 해도 용접물로 육성시키는 조건에서 내부잔류응력을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내부기포나 균렬이 전혀 없이 용접이 진행될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 이런 두꺼운 시편의 용접을 누가 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련속 물음을 던졌지만 지용수의 표정은 반론을 허용치 않는 엄한 빛으로 굳어져있었다. 그의 눈길이 문득 창문쪽 마지막자리에 송구스럽게 앉아있는 서재필에게 멎었다. 서재필은 머리를 수그리고 듣는둥마는둥 한본새로 앉아있었다. 그것이 지용수는 다행스러웠다. 서재필은 5월17일보수지휘부 성원도 아니며 또 동질이든 이종강이든 어느쪽도 아닌 관조자이다. 다만 용접기능이 가장 높고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안을 발기한 사람일뿐인것이다. 또 그의 지식으로는 이 론쟁의 마당에 뛰여들 엄두도 내지 못할것이다.

지용수는 그에게서 눈길을 떼며 보다 엄엄하게 위세를 돋구며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중히 결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화력발전소의 생산공정은 고속, 고열, 고압을 동반하는 그야말로 최대의 안전성이 요구됩니다. 그래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걸 모릅니까? 철저한 과학적담보가 없이 무작정 용접의 방법을 택했다가 사고라도 생기면 그 후과는 상상할수 없는 엄중한 결과를 초래할것입니다. 그 책임을 누가 질수 있는가?》

지용수는 책임이라는 문구의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것인가를 강조하듯 거기에 력점을 찍었다. 협의회장은 개미가 기여가는 소리도 가려들을만큼 조용해졌다.

지용수는 슬쩍 리성복을 곁눈질해보았다. 얼굴이 검붉게 이지러진것이 무던히 속이 끓어오르는 모양이였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여기에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소. 그래 사고요, 책임이요 하는 소리나 하자고 내려왔는가!》 하고 면박을 줄 기색이였다. 그러면서도 가까스로 자제하듯 입을 꽉 다물고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지용수 자기야말로 성의 과학기술을 책임진 국장으로서 용접안이 아무리 현실적인 방안이라도 자기의 수표가 없이는 실행될수가 없는것이다.

이때 석남흥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용수는 얼른 그를 제지시켰다.

《가만, 기사장동무에게 언권을 줍시다.》

그다음 자기옆에 앉아 묵묵부답으로 있는 기사장을 불렀다.

《동무의 견해는 어떻소?》

기사장은 머밋머밋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도 견해가 지용수국장과 같았다. 지금 그에게 절실히 요구되는것은 용접의 방법으로도 정상가동시 안전을 기대할수 있다는 과학적인 담보였다. 그것만 있으면 주저할게 없었다. 그렇다고 이 협의회장소에서 국장의 견해를 내놓고 지지해줄수도 없었고 또 공장자체의 힘으로 회전자축균렬을 복구하겠다고 밤낮없이 전투를 벌리는 공장사람들의 체면을 깎을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공장의 기술관리를 책임진 기사장으로서 자기 견해를 밝히지 않을수 없었다.

명인국은 몇번 헛기침을 한끝에 매 말마디들을 저울질해보며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지금 2호발전기의 동음이 멎음으로 하여 우리 발전소는 나라에 큰 손실을 주고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최단시일에 2호발전기를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용접안을 심중히 대하며 그 과학적담보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성공하면 이것은 대단한것입니다. 그 성공의 여부는 과학적담보를 안받침하는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5월17일보수지휘부가 이 문제에 모를 박고 다시 토론을 벌려야 한다고 봅니다.》

명인국의 이마에는 어느덧 송골송골 땀이 내돋았다. 그 몇마디 안되는 말을 고르느라고 진땀을 뽑은것이였다. 어쨌든 그는 국장쪽으로 기울어지는것 같으면서도 발전소사람들의 의사 역시 무시하지 않는 애매한 대답을 할수 있은것이였다.

청중은 그의 말을 어떻게 리해할지 몰라 다시한번 웅성거렸다. 유독 매우 불쾌한 낯으로 그를 유심히 쏘아본것은 리성복이였다. 명인국이 서두는 요란하게 뗐지만 쥐여짜면 지용수와 같은 견해였기때문이였다. 명인국에 대한 노여움과 실망이 조수처럼 그의 가슴에 밀려왔다.

처음 5월17일보수지휘부를 조직할 때도 기사장은 생산계획때문에 책임자의 중책을 맡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책임자로 기술발전부기사장이 선정되였던것이다.

물론 현행생산이 중요하다는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5월17일보수지휘부에 대한 그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그저 몇번 들려 사이다나 당과류를 보장해주는것으로 면무식이나 해오고있었다.

리성복은 언제부터인가 기사장에 대한 기대가 차츰차츰 허물어지는것을 의식하고있었다. 서재필을 자의로 내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부터일것이다. 그것이 지금 그의 밥도 죽도 아닌 어정쩡한 발언으로 재삼 확인된셈이였다.

석남흥이 또다시 언권을 요구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국장동지나 기사장동지가 이야기한것처럼 철저한 과학적담보는 무시할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우리에게 용접안을 과학적으로 담보할수 있는 그 어떤 과학기술적수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과학적수치에 대비할수 없는 풍부한 경험이 있습니다.》

석남흥은 잠시 말을 끊고 청중속에서 누군가를 찾아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길이 한모양새로 앉아있는 서재필에게 가 멎는것으로 보아 그의 지지를 못내 바라는 모양이였다. 했건만 서재필은 눈을 바닥에 내리깐채 한번도 들지 않았다.

《그래 그 경험이란게 뭐요?》

지용수국장이 호기심이 동했는지 성급히 물었다. 석남흥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여기에 앉아계시는 서재필아바이의 경험입니다. 아바이는 북창화력발전소에서 일할 때 부러져나간 발전기회전자날개를 용접의 방법으로 재생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른 오늘까지 그 회전자날개는 한번의 사고도 없이 만가동으로 돌아가고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것이겠습니까? 2호발전기회전자축도 얼마든지 용접의 방법으로 복구할수 있으며 그 안전성도 담보할수 있다는것을 명백히 시사해주고있습니다. 국장동지, 우리가 믿고있는 그 과학적담보란 바로 이것입니다.》

청중은 박수갈채를 울릴만큼 흥분되여있었다. 모두의 눈길이 뒤좌석에 앉아있는 서재필에게 쏠렸다. 경탄과 호감의 시선들이였다. 리성복은 내심 흡족했다. 이쯤되면 과학적담보를 입버릇처럼 외우는 지용수국장도 할말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그는 끄떡도 없이 흔연히 받았다.

《그건 아주 좋은 경험이요. 하지만 발전기회전자날개와 회전자축은 그 두께에 있어서 너무도 많은 차이가 있소. 여기에 서재필동무도 참가했소?》

리성복은 지용수가 이미 서재필이 기술협의회에 참가하였다는것을 알면서도 천연스레 묻는것이 언짢았다. 뭔가 다른 빈구석을 노린다는것이 뻔했기때문이였다.

이것을 알리 없는 명인국이 귀에 대고 참가했다고 귀뜀해주었다.

서재필의 옆좌석에 앉아있던 특수용접작업반 반장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서아바이, 국장동지가 찾습니다.》

서재필은 그제서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동무, 한가지 몰읍시다. 회전자날개와 회전자축의 두께가 얼마나 됩니까?》

《…》

서재필은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지만 지용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듯 한동안 끙끙 갑자르더니 뜨직이 입을 열었다.

《저… 한마디로 회전자의 날개와 회전자축의 금속재질은 서로 같아도 그 두께에서는 내 보기엔 한 열배는 차이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국장동무의 질문은 그 상태에서 회전자축을 용접한다 해도 그 안전성을 담보할수 있겠는가 그 말씀이겠습니다?》

지용수는 자기 의도대로 서재필이 끌려온다고 여겼는지 고개를 크게 끄덕여보였다. 서재필은 정면으로 지용수국장을 바라보며 좀 엄한 목소리로 준절하게 말하는것이였다.

《국장동무, 난 용접기능공이지 기술자는 아닙니다. 나도 한가지 물웁시다. 동무가 입버릇처럼 외우는 그 과학적담보란 과연 어떤것입니까?》

《…》

지용수의 입은 떡 얼어붙었다. 예견치 않았던 질문이였다. 아니, 가차없는 반박이였다. 그는 서재필의 입에서 그런 반문이 튀여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칼끝같은 신경이 뒤목으로 쭉 뻗쳐올라왔다.

서재필의 말은 그냥 이어졌다.

《국장동무, 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발전소기술자들중에 국장동무의 과학기술수준과 견줄만 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사실 과학적담보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과학적담보는 국장동무가 우리에게 물을게 아니라 국장동무자신이 우리에게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서재필은 만만치 않은 어조로 지용수의 정통을 면바로 찔렀던것이다. 그는 결코 말할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였다. 입이 무거운만큼 일단 터지면 짭짤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난 60이 지났지만 다시 공장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어떻게 하나 제힘으로 2호발전기를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겠다고 뛰고 또 뛰는 기업소일군들의 수고에 감동이 되여 늦게나마 처신을 바로하자고 들어온겁니다. 그래서 난 공장사람들이 믿어준다면 그 용접을 내가 직접 하겠다는것을 정식 제의합니다!》

모두 충격이 커서인지 협의회장은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였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일제히 터진것이였다.

지용수는 한동안 고막이 멍해졌다. 그토록 열정적인 격려의 박수소리였던것이다. 그의 망막속으로 선참 쫙쫙 박수를 치기 시작한 리성복의 흥분된 얼굴이 뛰여들었다. 수치감과 함께 까닭모를 배반감이 가슴을 에이였다. 그래도 자기는 한개 성의 국장이 아닌가. 아니, 거의 유일하다고 할수 있는 그의 오랜 옛친구가 아닌가. 그 국장을, 친구를 어떤 난처하고 딱한 궁지에 몰아넣고있단 말인가?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때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책을 덮고 나가버려야 하는가? 아니, 그건 더 얼굴뜨거운 일이다. 나야 이 기술협의회를 주관해야 할 성국장이 아닌가. 아무리 그 모욕이 뼈아프다고 해도 인내성있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지용수는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했다. 마음속에서는 가라말같은 감성과 얼음장처럼 찬 랭정한 리성이 서로 승부없는 싸움을 벌리고있었다. 싸움은 끝났다. 리성이 감성을 이겼던것이다.

지용수는 표표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자 서동무가 나에게 좋은 조언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기술협의회는 그 열기가 고조된만큼 일련의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고 자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벌써 몇번째 강조하지만 그 어떤 기술협의회이든 최대의 안전성이 담보되였을 때라야 그 방안이 인정받을수 있습니다. 누가 용접을 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그 안전성담보가 됐을 때 론할 문제인것입니다.》

지용수는 더는 과학기술적담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존심에 관한 문제였다. 하여 그는 과학적담보를 안전성담보로 슬쩍 고쳐부르는것으로 자기의 체면을 유지했다. 물론 마지막말은 서재필이 듣고 마음속에 깊이 새기라고 우정 강조한것이였다.

《기사장동무, 오늘 협의회는 이만합시다!》

지용수는 선자리에서 책을 덮었다. 그는 들어설 때처럼 도고한 자세로 방을 나갔다. 자세는 꼿꼿했지만 마음은 공허감으로 텅 비여있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