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26 회


제3장. 완강성


7


안신옥은 이틀째 자리에 누워있었다. 년로한 몸으로 몇달동안 무리한탓에 몸살이 온것이다. 입술이 부르트고 뼈마디가 송곳으로 찌르는듯 했다. 오슬오슬 춥고 떨리면서 입맛까지 잃었다.

소연은 머리맡에 지키고앉아 팔다리도 주물러주고 깨죽도 쑤어주면서 있는 정성을 다하였다. 겨우 입맛을 돌리고 몸이 한결 거뜬해지자 신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구완을 하던 소연이 놀라며 나무랐다.

《왜 벌써 일어나시오?》

《설계실에 나가려고… 부분설계가 마감단계에 있겠는데…》

소연은 신옥의 말꼬리를 자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유, 형님이 안 나간다고 설계가 안될것 같소.》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다. 신옥은 외출복을 입겠다고 허둥거렸다.

소연은 형님의 그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춰서지도 않은 몸으로 어떻게 나간단 말인가.…

《형님이 그러시면 오히려 설계에 지장을 줄수 있어요.》

신옥은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건 무슨 소린가, 응?》

《생각 좀 해보시라구요. 그 몸을 해가지고 나갔다가 쓰러진다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설계원들이 병원에 간다, 의사를 데려온다 야단일테니 방해가 된다 그 말이예요.》

신옥이 들었던 옷을 내려놓았다.

《그럴가?…》

《그러니 며칠 더 몸조리를 잘하고 나가시라요.》

《…》

그래서 겨우 안심시켜놓았는데 밤일을 하고 들어온 선희가 다시 들쑤셔놓았다.

부엌에서 밥을 먹고 방에 들어온 선희는 아래목에 누워있는 안신옥의 따뜻한 이불밑에 손을 밀어넣으며 문안했다.

《큰어머니, 좀 나았어요?》

《오냐, 네 어머니가 잘 돌봐준 덕에 이젠 다 나았다, 오늘 아침엔 밥이랑 먹구…》

선희는 그를 먼 친척벌 되는 큰어머니로 알고있다. 선희는 사귄지 몇달 안되는 신옥을 친어머니 못지 않게 믿고 따랐다.

아직 적지 않은 일군들이 반신반의하고있는 때 전기로설계를 도와주겠다고 온것자체가 녀인의 높은 정신세계와 고결한 성품을 말해주었던것이다.

그 어머니가 돋보일수록 설계에서 비렬하게 물러선 박영재에 대한 환멸감이 더해져 은근히 가슴이 아팠다. 안신옥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선희가 얼핏 벽시계를 쳐다보고나서 일어났다. 옷걸이에서 솜옷을 벗겨드는 딸을 보며 소연이 물었다.

《좀 자지 않고 어딜 가려니?…》

《10시부터 초고전력전기로건설공사를 시작해요!》

누워있던 안신옥이 몸을 일으켰다.

《그래?! 어디다 건설하니?》

《내가 일하던 1호전기로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세운대요!》

《그럼 선희는?…》

《난 건설을 위해 조직하는 청년돌격대에 나가겠다고 했어요!》

옆에서 듣고있던 소연이 이마에 주름살을 모았다.

《원, 가만히 앉아서 스위치나 넣던 네가 건설일을 꽤 해내겠니?》

선희가 걱정말라는듯 생긋 웃었다.

《어머닌 그저, 나뿐아니라 우리 조작공들이 다 나가요. 아이, 벌써 아홉시군요, 난 빨리 가야 해요.》

선희가 솜옷을 입는것을 보자 안신옥이 일어나며 이불을 밀어제꼈다.

소연의 가느스름하던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왜 또 일어나세요?》

《나두 선희와 같이 나가겠어, 공사시작을 한다는데…》

《에그, 그래도 그렇지, 안돼요.》

선희가 공사장에 갔다와서 그 정형을 이야기해주겠다고 말렸으나 안신옥은 흩어진 머리칼을 뒤로 쓰다듬어 넘기며 고집스레 말했다.

《1호전기로 해체하는걸 마지막으로 보구싶네.》

그 목소리가 어찌도 절절하고 의미심장했던지 소연은 가슴이 스르르했다.

1호전기로는 오빠와 형님이 연구완성한 산소취입법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로이다.

그 사연깊은 전기로를 오늘 해체하는것이다.

이 순간 소연은 형님의 가슴속에서 쇠물처럼 뜨겁게 고패치며 끓어오르는 감정의 분출을 그 무엇으로도 막아낼수 없다는것을 절감하였다. 아니, 형님을 막아나서지 못할뿐아니라 자기도 따라가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었다. 소연은 제 먼저 솜옷을 벗겨들었다.

《형님, 같이 가자요!》

안신옥이 얼핏 그를 쳐다보았다. 두 녀인의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그리고 리해하였다.

《응, 함께 가자구!》

어째서 말리던 어머니가 가자고 따라나서는지 알수 없었던 선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참, 앓는 큰어머니가 어떻게 걸어요?》

《그래서 내가 가지 않니. 어쩐지 나두 1호전기로를 해체하는걸 마지막으로 보고싶구나!》

《?!…》

세 녀인이 모두 솜옷을 떨쳐입자 방안에서 놀이감을 가지고 장난하던 철이가 울상을 지었다.

《할머니, 나두 갈래요. 흥…》

《추워서 못 가. 집에 있거라.》

《응, 싫어. 큰할머니랑 다 가면서…》

안신옥은 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빙긋이 웃었다.

《데리고가자구. 아이와 장독은 엄동설한에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어. 새로 건설하는 현대적전기로의 미래의 주인인데… 어서 옷을 입어라.》

철이가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소리쳤다.

《야, 큰할머니가 제일이야!》

소연은 형님의 옷차림을 거들어주었다. 양말도 두툼한것으로 두컬레나 신으라고 잔소릴 했고 동신발안에는 털깔개를 넣어주었으며 털수건을 제일 두툼한것으로 둘러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세 녀인은 강아지처럼 깡충거리며 좋아하는 철이를 앞세우고 문을 나섰다. 시원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가운데 신옥이 서고 량쪽에서 선희와 소연이 부축해주었다. 맑은 하늘에서는 따뜻한 해빛이 호듯호듯 쏟아져내린다. 담장밑의 음달진 곳에는 바람에 날려와 쌓인 눈무지가 월동하는 백곰처럼 웅크리고있었지만 양지쪽의 살구나무아지에는 누릿한 새움이 뾰족뾰족 머리를 쳐들고있다, 소리없이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며…


X


아침에 출근한 박영재는 먼저 밀대를 빨아 바닥을 닦고나서 책상에 마주앉았다. 기술과의 능력있는 사람들은 거의다 초고전력전기로설계와 기술준비에 동원되였고 생산보장에 필요한 일부 성원들만이 남아있다.

설계를 인계하고 통신등교에 갔다온 영재도 지금까지 기술과에 출근하면서 론문을 완성하고있다.

박사원 담당교수선생은 그의 학위론문초고를 보고나서 매우 가치있는것이라고, 잘 완성하자고 힘을 주었었다. 거기에 서승민의 관심이 컸었고…

하지만 그의 마음은 살얼음우를 걸어가는것처럼 불안하기만 하였다.

사실 그 불안은 설계에서 물러선 순간부터 그의 가슴 한구석에 깃들었었다. 박사원등교와 론문집필이라고 했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없는것 같았다. 기술과는 물론 그를 알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것처럼 느껴졌다.

더우기 사랑하는 처녀에게서 변절자라는 루명을 쓰고 사랑도 그렇게 할 인간이라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결별과도 같은 선언을 받고보니 그 정신적타격은 컸었다.

등교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그 불안은 애써 지우려고, 감추려고 해도 굴러가는 눈덩이마냥 점점 커가기만 했다.

합숙관리원이 자주 오던 처녀가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물었을 때에도 요즘 이동작업이 제기된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스스로 얼굴이 벌개졌었다.

그사이 전기로구입작전이 락착되지 않았는지 궁금하여 서승민을 몇번 찾아갔었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론문이나 잘 완성하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위안을 느끼며, 더우기는 초고전력전기로운영과 관련한 론문이라는것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책상에 마주앉군 하였다. 그러나 마치도 바늘방석에 앉아있는것 같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동원된 성원들이 설계실로 올라가지 않고 부서에 모여 흥성거린다. 공사를 시작하는 날이여서 모두가 참가한다는것이다.

공사를 시작하다니?!

론문과 관련하여 몇가지 자료를 가지고 찾아왔던 서승민은 지배인이 올려보낸 기술과제제안서가 부결되였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길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그가 있든말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이따금 흘끔흘끔 곁눈질한다.

사람들의 눈길과 마주치기 저어되여 과학기술통보를 꺼내놓고 뒤적거렸다.

등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날 조인철이 찾아와 눈알이 쑥 빠질 지경으로 다몰아댔다. 등교에서 돌아왔으면 인차 설계에 달라붙어야지 그 모양으로 있는가고, 너도 강선사람이 옳은가, 기치는 들지 못할망정 설계는 왜 중도에서 줴버렸는가, 병원에 입원했던 리제일이 다시 뛰쳐나와 영재가 맡았던 설계를 하고있고 년세 많은 한 어머니는 아직도 설계실을 도와주고있다. 온 강선이 부글부글 끓고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등교요, 학위론문이요 하면서 빈둥거리고있으니 이게 어디 제정신이 있는 사람의 행동인가, 대세의 흐름을 두눈으로 똑바로 보고있다면 이제라도 설계에 달라붙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영영 결별이라고 선포했었다.

어느날엔가는 설계가 중지되고 전기로를 들여오는 문제가 결정될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호미난방격으로 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런데 오늘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것도 우에서 승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영재는 아픈 머리를 뒤로 젖히고 천정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하는가?

시간이 되자 기술과장이 보고있던 문건에서 눈을 뗐다.

《모두 공사장을 돌아보고와서 자기 사업에 착수합시다. 그리고 매 직장과 부서들에서 예비인원을 뽑아 청년돌격대에 보내야 합니다. 여기엔 자원적인 원칙도 있지만 과에서 지정해줄수도 있으니 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럼 강철직장으로 갑시다. 참, 박영재동무는 잠간 남으시오.》

《?…》

부서사람들이 공사장으로 나가고 단둘이 남자 과장이 안경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영재동문 어쩌겠소? 돌격대에 나가겠소, 아니면… 설계와 기술준비에 동원되겠소?》

너무도 뜻밖의 질문에 당황해진 박영재는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수그렸다.

자기가 이렇게 난처한 립장에 빠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물론 못할 일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한 기사가 자기가 설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돌격대에 나가 기초를 까고 콩크리트타입을 한다는것은 얼굴뜨거워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도중에서 그만둔 설계와 기술준비에 다시 머리를 들이민다는것은…

그의 속생각을 넘겨짚은듯 과장이 랭담하게 말했다.

《너무 타산이 많으면 큰일을 못하네. 좌우간 잘 생각해보라구. 자, 우리도 공사장에 나가기요.》

박영재는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서며 깊은숨을 내쉬였다.


X


공사는 강철직장건물안에서 시작되였다. 1호전기로출선구가 있는 아래켠에는 수많은 인원이 들어설수 있는 넓은 구역이 있었다. 한때는 전기로들에서 녹여낸 쇠물을 길죽한 형타에 부어 조괴하던 작업장이였다.

그후 련속조괴기가 도입되면서 그 자리가 필요없게 되자 여러가지 대형설비나 자재를 보관하는 장소로 리용되고있다.

공사는 1호전기로해체작업부터 시작되였다. 해체작업의 첫 공정은 길이가 8메터나 되는 전극부분품을 로속에서 들어내는것이였다.

천정기중기 한대로 들어올리려면 전극부분품이 건물천정에 닿아 뽑아내기 힘들기때문에 돌격대원들은 기중기 두대로 량쪽에서 동시에 물어올려 한쪽을 기울이면서 뽑아내는 대담한 방법을 썼다. 불을 끈 로체우에 올라간 돌격대원들이 전극부분품에 쇠바줄을 걸고있었다.

강선희는 이상야릇한 감정에 잠겨 로해체를 지켜보았다. 옆에 서있던 련심이 근심스레 그의 손을 건드렸다.

《아이… 난 막 가슴이 떨려요.》

《애두 참… 별소릴 다…》 라고 했으나 그의 가슴도 왜서인지 두근거렸다. 오래동안 자기가 조종해오던 전기로를 해체하니 마음이 이상하게 서글퍼진다.

천정기중기가 전극부분품을 물고 뽑으려는 순간이였다. 로체안턱에 부분품이 걸리면서 아츠러운 굉음이 울렸다.

《어마나-》

련심이 선희의 팔을 꽉 틀어잡으며 눈을 꼭 감았다. 자칫하면 로가 통채로 넘어질수 있는 정황이 조성되였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선희의 가슴도 짜릿해났다.

자기 위용을 한껏 뽐내며 서있던 전기로가 갑자기 사람들이 달라붙어 쇠바줄로 꽁꽁 비끄러매고 해체하려고 하자 깜짝 놀라 내지르는 고함소리처럼 들려왔다.

《선희동무,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요? 선희동무야 날 잘 알지 않소. 이 사람들을 제발 좀 말려주시오.》

선희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얼마나 정들었던 전기로였던가.…

때로는 전극을 부러뜨려 눈물이 찔끔 나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전기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풀떡풀떡 투정질을 하였고 용해시간을 질질 끌며 애를 먹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전기만 잘 먹여주면 배부른 황소처럼 조작하는대로 고분고분 영각소리같은 동음을 웅- 정답게 울리던 전기로였다. 수십년세월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해 정말 많고많은 쇠물을 녹여낸 말없이 공을 세운 전기로가 아니던가!

선희는 눈물이 그렁해서 속삭이였다.

《전기로야, 리해해다오. 네가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야. 이제 다시 너의 정신과 기백을 그대로 닮은 현대적인 전기로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란다. 그러니 섭섭해하지 말고 잘 가거라, 나의 사랑 전기로야!》

그제야 전기로는 리해가 되는듯 조용해졌다.

안전혁띠를 두르고 쇠장대를 쥔 조인철이 날래게 로우에 올라갔다.

전기로의 마지막숨결인양 채 식지 않은 로안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확확 풍겨올라왔다. 돌격대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쇠장대로 걸린 부분을 조심히 든장질하여 돌렸다. 전극부분품은 쉽게 뽑혀져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선희는 조인철이 결혼식을 언제 하겠는가고 묻던것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박영재와 결별을 선포하고 헤여진 뒤 그를 잊자고 모진 마음을 먹었으나 때없이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선희였다. 박영재도 공사에 참가했는지…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X


해빛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방안은 넓고 훈훈했다.

방 한가운데 자리잡은 큰 밤색책상우에는 여러대의 전화기가 놓여있고 여러가지 문서들과 자료가 무드기 쌓여있다.

밤색책상과 엇갈려 가로놓인 보조책상앞의 장쏘파에 몸을 맡긴 부상 박상근은 이번에 해외로 나갔던 해당부서 부국장에게서 그 정형을 듣고있었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개별의자에는 기술국일군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 나라의 야금집단유한공사는 세개의 큰 강철공장을 가지고 년간 100만톤이상의 강철을 생산하는 련합체입니다. 전기로공정은 D그룹으로부터 구입한 초고전력전기로입니다. 예비면담에서 상대측은 자금상환담보가능성이 확정되는 경우 우리 나라 전력조건에 맞는 초고전력전기로 한기를 제작하여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박상근이 그의 말머리를 잘랐다.

《전기로형식은 어떻게 합의했소?》

《로형식과 상업거래는 기술대표단이 강철공장들을 돌아보고나서 토의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로형식을 결정하지 못했단 말이지.… 하긴 그게 급한건 아니요. 문제는 거래형식이요. 즉시지불상업거래인가 아니면 대부인가 하는것이지.》

《제가 초보적으로 문의한데 의하면 상대측에서는 전기로를 제작하여주는 대신 자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1차원료를 우리 나라에서 해결하려는것 같습니다. 그 문제도 다음번면담에서 토의하겠습니다.》

박상근은 수긍한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했으나 명확한 결론은 하지 않았다. 책임일군이 서뿔리 나서서 결론해치우면 아래일군들의 자립성이 약해진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박상근은 이번에 벌리는 외교작전을 어떻게 하든 기어이 성공시켜 미국것들의 비렬한 음모책동을 파탄시키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먼저 해당부서를 통해 조용히 예비접촉을 한것이다. 이때 책상우의 전화기에서 신호소리가 울렸다. 박상근은 심상한 표정으로 송수화기를 들었다.

한동안 전화를 받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요? 1호전기로를 해체했단 말이요? 누구의 승인을 받고? 자체결심이라구. 알겠소.》

전화가 끝났으나 박상근은 송수화기를 귀에 댄채 한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쏘파에 앉은 두사람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마주보며 머리를 기웃거린다.

박상근이 천천히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강선에서… 1호전기로해체를 시작했다고 하오.…》

《예?》

두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쪽에서는 전기로구입을 위한 작전을 토의하고있는데 다른쪽에서는 건설을 시작했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였다.

부국장이 쓰거운지 입을 쩝쩝 다셨다.

《승인도 받지 않고 큰 공사를 시작하다니? 이건 나라의 계획경제질서에 대한 란폭한 위반입니다, 위반…》

기술국일군도 옳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기업소의 특수성을 내걸고 쩍하면 올리받치기를 잘하는 제강소일군들을 가만놔두면 안됩니다.》

박상근은 아래일군들앞에서 자기 감정을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에서는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김성남이 그 사람이 어쩌면 그럴수가 있단 말인가.

설계를 하겠다고 할 때에도, 기술과제제안서를 올려보냈을 때에도 일군들과 심중하게 토의하고 몇번이나 좋게 말해주었는가. 자기는 그를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하였다.

여러차례 충고도 주었었고 인간적으로 절절한 호소도 해보았다. 마지막에는 엄하게 하기 힘든 말까지 해주었음에도 안하무인격으로 승인도 받지 않고 일을 벌려놓다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운 심정이다. 이제는 별수 없다.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