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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 회


제3장. 완강성


6


2008년 2월에 들어와 초고전력전기로의 기본설계가 완성되였다.

김성남은 건설을 위한 기술과제제안서를 작성하여 성에 올려보냈다.

성의 비준을 받고 그것이 내각을 통해 정식 국가계획에 물려야 공사를 시작할수 있는것이다.

…기술과제제안서를 받은 박상근은 생각이 복잡했다. 3년이 걸려도 못한다던 설계를 단 넉달동안에 기본적으로 완성했다는것이 놀라왔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는 즉시 제강소에 나가있는 서승민을 불렀다. 급하게 달려온 그가 숨돌릴 틈도 없이 박상근이 다그쳐물었다.

《설계를 검토해보았소?》

《예, 검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온병에서 더운물 한고뿌를 부어 천천히 마셨다. 귀밑머리에 내려앉은 서리가 녹으면서 땀같은 물방울이 볼우로 흘러내린다.

서승민은 손수건으로 볼을 훔쳤다.

《우선 로용량이 문제입니다. 세계적추세에 떨어집니다. 제강소가 뭐 야장간인줄 아는 모양입니다. 원료장입도 천개를 열고 기중기바가지로 쏟아넣어야 합니다. 제진장치도 그렇고 중요한 부분인 전극자동승강장치는 아직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외에 많은 부분설비들과 기계요소들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각 직장과 부서들에서 동원시킨 비전문가들이 설계한 수천매에 달하는 도면의 과학기술적담보를 누가 할수 있겠습니까. 또 설계가 제대로 되였다고 하는 경우에도 자재와 설비도 걸리는데 시공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오죽했으면 외국기술자들이 제강소형편에서는 10년이 걸려도 초고전력전기로를 제작할수 없다고 했겠습니까. 9월 9일까지는 이제 6개월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런 내용을 지배인과 이야기해보았소?》

서승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사람과는 맞서고싶지 않았지만 말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 식의 초고전력전기로라는겁니다. 참,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박상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니 서동문 설계의 기술적담보도 없고 그들의 기술과 능력으로는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할수 없다는거요?》

《그렇습니다, 아직은…》

《음-》

그의 눈앞에 김성남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설계는 어떻게 둘러맞췄는지 넉달동안에 해놓았다. 하지만 그런 주먹구구식설계를 가지고 건설했다가 큰 사고가 나는 날에는…

젊은 혈기에 물덤벙술덤벙하는 그를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제지시켜야 한다.

마음대로 하라고, 의리가 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돌아선 박상근이였지만 이 결정적시각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자신임을 통절하게 느꼈다.

그는 서승민과 함께 제강소로 내려갔다.

마침 월생산총화를 하는중이였다.

대기실에서 한동안 기다리던 그들은 총화가 끝나고 일군들이 흩어져가자 김성남을 만났다.

박상근은 서류가방을 열고 기술과제제안서를 책상우에 내놓았다.

《설계의 과학기술적담보도 없거니와 파악도 없는 큰 대상건설에 투자할수 없소.

그러니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그만두어야 하겠소!》

김성남이 침착하게 반문했다.

《설계에 과학기술적담보가 없다는건 도대체 누구의 견해입니까?

ㅌ설계사업소 기사장동무도 검토해보지 않았습니까?》

제강소기술력량을 가지고는 설계를 못한다고 말했다가 동문 제강소현대화를 도와주러 왔는가, 훈시질하러 왔는가 하면서 그런 사람은 필요없다고 김성남이한테 무시당했던 서승민이였다.

그 감정이 아직 가셔지지 않았던 그는 랭랭하게 말했다.

《난 이미 지배인동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로체설계를 완성하였다고하지만 문제점들이 허다합니다. 그것을 다시 반복해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중요한 보조설비들의 설계도 아직 미완성에 있습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검토를 한 당사자로서 설계에 대한 과학기술적믿음성을 담보할수 없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기술과제제안서를 내려다보는 김성남을 한참이나 지켜보고있던 박상근은 그루를 박아 말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만두는게 좋을거요. 지금 성에서 본격적인 작전을 벌리고있소. 그것이 락착되면 대부에 의하여 전기로를…》

김성남은 더 듣지 않고 책상우에 놓여있는 기술과제제안서를 끌어당겨 사업수첩우에 올려놓으며 박상근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젠 모든걸 알만 합니다.… 정 그렇다면 우리 결심대로 건설을 내밀겠습니다!》

《?…》

박상근은 그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더는 좋은 말로 어루만져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지배인동문 모든 건설을 계획에 물려야 시작할수 있다는 법질서를 그래, 모른단 말이요? 더우기 성에서 승인도 하지 않은것을!…》

《…》

그가 침묵을 지키자 박상근은 다시 엄하게 소리쳤다.

《지배인동무, 너무 흥분하지 말고 리성적으로 사고하시오!

국가계획에 물리지 않고는 건설을 할수 없소!

이것은 사회주의계획경제질서이고 어길수 없는 국가의 법이요!

내가 말할건 이게 다요.》

《…》

그들이 돌아간 후에도 김성남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자리에서 일어설줄 몰랐다.

설계가 완성되면 그들도 리해하고 협력하리라 믿었는데 갈수록 더 험산이다.

정녕 우리 힘과 기술로 건설할수 없는 초고전력전기로란 말인가? 전기로건설을 그대로 내밀겠다고 소리쳤지만 부상의 마지막말이 자꾸만 떠오르는것을 어쩔수 없다.

사회주의경제는 철저히 계획경제이다.

그 법을 어기고 자의대로 건설을 시작해도 그렇고 만일 실패하는 경우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것을 모르지 않는 그였다.

김성남은 손을 뻗쳐 담배갑을 집었다. 빈곽이다.

재털이에 무드기 쌓인 꽁초가 아프게 눈을 찌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가만히 앉아서 언제 성사될지 모를 외국의 전기로를 막연하게 기다려야만 하는가?

그날 밤 지배인방 창문가에 밤늦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X


성에 올려보냈던 기술과제제안서가 부결되였다는 소문은 온 제강소에 퍼졌다.

이것은 붙는 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였다.

모두가 앞으로의 일만 지켜볼뿐이다.

설계실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며칠전부터 리규택은 기술준비때문에 공정실에 가있었고 부분설계를 결속하고있던 설계원들은 손맥을 놓고 난로주변에 앉아있다. 젊은 축들은 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보고있는데 이따금 머리를 들고 창밖을 내다보고있는것을 보면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다. 설계실 한옆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는 안신옥의 마음은 괴로왔다.

누구인가 후- 하고 긴숨을 내보낸다.

《지배인은 어떻게 하려는것인지…》

《지배인이라고 용빼는 수가 있겠나? 성에서 승인도 하지 않은것을…》

《그래두 하자구 결심했던바엔 냅다 밀어볼판이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 이 사람, 우에서도 다 타산해보고 한 처사겠지. 하지 말라는걸 했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법앞에 자네가 나설텐가?》

《별거 없어. 우에서 하자는대로 응하는 수야. 그게 제일 등탈없지. 부상이 들여온다는 새 전기로가 제강소에 척 들이닥치면 애써 해놓은 설계는 어떻게 한다는건가?》

안신옥의 가슴은 칼로 어이는듯 했다. 몇달간 함께 살아온 그들이다. 온 제강소가 도와나서고 설계원들이 신심에 넘쳐 설계를 할 때에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성수가 났는데 이런 일을 닥치고보니 맥이 풀리고 온몸이 쑤셔나면서 당장 쓰러질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맥을 놓고 앉아있을수 없는 신옥이였다.

성남이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그 짧고도 벅찬 나날들이 가슴에 사무치게 안겨왔다.

그는 설계원들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이보라구, 자네들은 여기 강선땅에 태를 묻고 이 고장물을 마시며 자란 사람들일테지? 손들을 한번 펼쳐보라구. 연필을 너무 쥐고있어 손가락에는 떡살이 배기고 팔소매끝은 닳아졌지. 오래동안 앉아있어 무릎은 강직이 올 지경이고… 그렇게 불같이 설계를 하던 자네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섭섭하구만, 정말 섭섭해.》

누구인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했다.

《하두 답답해서 해보는 소리였지요.》

덤덤히 앉아있는 그들을 일별하던 안신옥이 입술을 뗐다.

《내 천리마시대에 있었던 애기를 하나 하라나…》

그에게서 천리마전설이랑 자주 듣군 하던 젊은 설계원들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안신옥이 머리를 쳐들었다.

《자네들도 알고있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기로에 산소취입법을 받아들일 때의 이야기네.…》

안신옥은 기억을 더듬어 그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새로 복구하여 설비들이 신통치 않은 전기로에 산소취입법을 도입하다가는 폭발사고를 일으킬수 있다고 성과 제강소의 일부 일군들이 완강하게 반대해나섰다. 로가 폭발하고 강철생산이 멎는다면 그 엄중한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고…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손을 놓고 주저앉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발기자인 현장기사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당위원장과 용해공들이 적극 지지해나섰다. 수령님께서 불러오신 천리마를 타고 남들이 한걸음 걸을 때 열걸음, 백걸음을 내달리자면 보수주의, 소극성을 불사르고 대담하게 새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현장기사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가도 다시 뛰쳐나와 기어이 산소취입법을 성공시켜놓고야말았다.…

이야기를 마친 신옥의 두눈은 축축히 젖어있었다. 설계원들은 그날의 천리마기수들에 대하여 생각하는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두볼이 훌쭉 꺼진 애젊은 설계원이 신옥에게 조심히 물었다.

《저… 산소취입법을 도입했다는 그 현장기사는 아직도 우리 제강소에 있습니까?》

뜻밖의 물음에 한순간 주저하던 안신옥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없네. 과로한데다가 불치의 병까지 겹치다나니 인차 세상을 떠났지. …》

《…》

무거운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그 침묵을 깨뜨리며 누군가가 말했다.

《참, 어머닌 그때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계십니다.》

《어떻게 잊을수 있겠나. 그때 제강소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나와 같을걸세. …》

《그때사람들은 정말 무서운것이 없었고 배짱이 여간 아니였습니다.》

《그게 바로 천리마정신에서 나온것이 아니겠나.》

《!…》

설계원들은 안신옥이 어째서 그 이야기를 해주었는가를 짐작하였고 잠시나마 동요하고 주저했던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설계도판앞으로 갔다.

그들이 제자리에 가앉은 뒤에도 안신옥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음은 아들에게로 가있다. 그전 같으면 자주 설계실에 올라왔으련만 부상이 왔다간 후로는 볼수가 없다.…

신옥은 부상과 성남이의 친분관계를 잘 알고있었다.

굴뚝에 올라갔던 성남이를 구원해주었을 때 그를 만나 고맙다고, 친조카처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였던 신옥이였다. 그후 성남이의 일이 잘되여가는것을 지켜보며 언제인가는 그를 만나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또 하리라 벼르고 벼르던 신옥이다.

그런데 어째서 성남이가 하려는 일을 막아나서는것인가?… 제힘으로 현대적인 전기로를 건설하겠다는것이 옳은 일이 아니란 말인가.… 내 생각이 이럴진대 성남이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혹시 맥을 놓고 주저앉은것은 아닌가?

마음같아선 한달음에 달려가 아들을 위로해주고싶다. 너무 걱정말라고, 힘을 내야 한다고, 아버지처럼 살아야 한다고…

순간 안신옥은 흠칫 놀랐다. 내가 어떤 자격으로, 무슨 권리로 성남이에게 말을 해준단 말인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그래도 마음은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지꿎게 아들에게로만 쏠린다. 그 마음이 어찌도 강렬했던지 안신옥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설계실을 나와 층계를 내렸는지… 터벅, 터벅…

바람에 휘뿌려지는 눈가루가 온몸에 들씌워지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지배인실문패가 붙은 문앞에서 안신옥은 언듯 정신을 차리며 놀랐다.

아니, 내가 어째서 여기로 왔는가? 어째서?

한갖 지원나온 평범한 녀인에 불과한 내가 아닌가.

하지만 돌아서기에는 너무도 늦었다. 문을 열었다. 위험에 처한 병아리를 품어주려고 내닫는 어미닭처럼 성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생각에 잠겨있던 지배인이 머리를 들었다.

《아, 어서 오십시오.》

김성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마주 걸어왔다. 안신옥을 이끌어 쏘파에 앉히고 함께 앉았다.

김성남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몹시 수척해진 녀인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설계실을 얼마나 진심으로 도와주었던가. 그런데…

《어머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친어머니를 대하듯 그 목소리가, 그 표정이 어찌나 부드럽고 살뜰했던지 안신옥은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굽이 젖어왔다. 신옥은 자꾸 약해지려는 마음을 강잉하게 다잡으며 나직이 입을 뗐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걸 나무람마시우. 사실은… 전기로건설이 승인되지 않았다고 하길래…》

《!…》

김성남은 가슴이 뜨거웠다.

그 일때문에 얼마나 마음쓰셨으면…

자리에서 일어선 김성남은 보온병의 더운물을 고뿌에 부어 녀인에게 권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어서 더운물을 좀 드십시오.》

아무런 사양도 없이 소중히 받아든 안신옥은 무슨 귀중한 생명수이기라도 한듯 마실념도 못하고 하염없이 고뿌만 내려다본다.

그랬다! 그것은 단순한 더운물이 아니였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들에게서 받아보는 육친의 정이였다! 부드러움이였다, 그리움이였으며 희망이였다!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이제 모든 일이 다 잘될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머님도 찾아오셨고…》

안신옥은 목이 꽉 메여와 물을 넘길수 없었다.

그 말을 듣고싶었다. 그 말을 해주고싶었다.

그러니 우리 성남이가 주저앉지 않았구나! 맥을 놓지 않았어.

안신옥은 기뻤다. 이제 무슨 말을 더 해줄수 있단 말인가, 무슨 말을 더…

이젠 가야지… 가야하구말구… 가야 해.

하지만 왜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고싶지 않다. 그처럼 그립던 아들과 조용히 만난 기회에 무슨 말이든 끝없이 하고싶다, 지금까지 가슴속에 소중히 묻어두었던 하많은 사연들을…

아니야,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 얼마나 많은 일이 성남이앞에 놓여있는가.

안신옥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김성남이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참, 지원자들과 설계원들이 어머님이 들려주는 천리마전설을 자주 듣군 한다던데… 그 전설을 어떻게 알고계십니까?》

안신옥은 갑자기 숨이 꺽 막히는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땐 이름을 물어보더니 이젠 또… 성남이가 무슨 기미를 알아차린것이 아닌지…

신옥은 유심히 바라보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더운물 한모금을 마시고나서 숨을 돌렸다.

《젊어서 한땐… 나도 강선땅에서 살았수다.… 그때 사람들은 누구나 다 그 전설을 알고있었구… 애들에게 즐겨 이야기해주었지요.…》

《아, 그렇습니까.… 하긴 저도 할머님이 들려주는 천리마전설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안신옥은 또다시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성남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천리마전설을 이야기해주었을 시어머님과 함께 아들이 태여나면 쇠물집의 대를 이을 훌륭한 야금일군으로 키워달라고 유언을 남기던 남편의 모습이 안겨왔다. 아버지처럼 부닥치는 난관을 억세게 뚫고나가야 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쳐오르는것을 겨우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천리마정신으로 살면 못해낼 일이 없지요!》

《!…》

성남이가 무슨 말인가 더 할듯 한 눈치이고 이제 조금만 더 앉아 이야기를 하느라면 자신을 걷잡지 못한다는것을 의식한 안신옥은 성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좀더 앉아 이야기하시다가…》 김성남이 따라일어서며 만류하자 신옥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지 않아도 지배인이 바쁜 몸인데…》

《…》

김성남은 문밖까지 녀인을 바래주고나서 방에 들어왔다.

창문가에 다가가 눈바람속으로 멀어져가는 녀인의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녀인이다.

말은 얼마 하지 않았어도 그가 남기고간 여운은 컸다. 솔직히 말해 부상이 왔다간 후 김성남의 마음은 등나무줄기처럼 엉켜있었다.

찾아와 조언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긴 어길수 없는 국가의 법을 놓고 무슨 말을 해줄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당비서를 만나고싶은것도 참고있는 자신이 아니였던가.…

이러한 때 그 어머니가 찾아온것은 그에게 큰 힘이 되였고 고무가 되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치고있었다.

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겨울은 마지막추위를 하려는지 세찬 바람을 터친다. 우- 우- 소리를 지르며 기승을 부린다. 우중충한 구내의 건물이며 앙상한 나무가지들에 유리가루처럼 반짝이는 눈가루를 마구 쥐여뿌린다. 창문에서 환히 내다보이는 교양마당 한가운데 위대한 수령님의 모자이크영상작품이 모셔져있다.

철골만 남은 강철직장을 배경으로 세그루의 애어린 백양나무아래 깨진 벽체우에 앉으시고 로동자들과 전기로복구를 토의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이다.

조선은 백년이 가도 일떠서지 못한다고 지껄이는 미국놈들에게 다시한번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신 수령님!

그 담력과 배짱을 그대로 받아안고 전후의 페허우에서 40일만에 전기로를 복구하고 첫 쇠물을 뽑아낸 강선의 로동계급이 아니였던가.

그들이 일떠세운 전기로, 그것은 강선의 배짱이였다.

조선은 주저하지 않고 일어났다고, 미국놈들의 거만한 코대를 강철주먹으로 또다시 후려쳤다는것을 온 세상에 선포한 조선의 기상이였다.

세월은 멀리 흘러갔어도 변하지 않은것은 그 정신이다. 지금이 그때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방금전 그 어머님이 남기고간 말이 귀가에 울려왔다.

《천리마정신으로 일한다면 못해낼 일이 없지요!》

그렇다, 우리의 큰 재산인 천리마정신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게 있는가.…

김성남의 눈길이 키높이 자란 백양나무에 가멎었다.

그때 팔목처럼 가늘던 세그루 백양나무는 거목으로 자라나 그날의 사연을 전하는듯 와- 와- 설레이고있다. 키높이 자란 백양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바람의 충격을 더 많이 받는다. 나무가지들은 부러질듯 애처롭게 떨며 휘여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셨던 그날로부터 수십년세월 모진 풍파속에서도 끄떡없이 서있는 세그루의 백양나무, 태양을 향하여 더 높이 머리를 쳐들수록 자기가 자라는 땅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백양나무이다.

그 백양나무들도 김성남을 고무해주는것만 같았다, 주저앉지 말라고.

문득 어린시절 할머니가 자장가처럼 들려주던 아름다운 전설이 저 눈보라속에서 들려오는듯 했다.

수령님께서 강재 1만톤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강선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은 강재를 밀어냈단다. 참 대단했지. 그러자 그 뜻깊은 백양나무우에서 번개가 치고 우뢰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쇠물빛노을속으로 날개돋힌 강철천리마가 훨훨 날아올랐단다.

강선사람들을 태우고 말이다.…

할머니가 들려준 전설이 어찌나 황홀했던지 어린 성남은 그 백양나무밑에 앉아 천리마가 날아오르지 않겠는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군 했었다.

그래도 성차지 않아 시장곁에 있는 굴뚝에까지 올라갔었다. 지금도 그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천리마동상이 보일것이라고, 천리마를 탄것처럼 온 제강소가 눈아래 내려다보일것이라고 생각하던 어린시절 그때처럼 짜릿한 흥분이 느껴진다.

참, 이상한 일이다. 수십년전 어릴적 그 시절과도 같이 모험을 해보고싶은 충동이, 동심과도 같은 호기심이 땅속을 뚫고나오는 샘물처럼 자꾸 솟구쳐오르는것은 무엇때문인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으로 방송차에서 《강선의 노을》 노래가 장쾌하게 울려왔다.


만경대고향집을 옆에 두시고

강선의 로동계급 먼저 찾아주셨네


김성남의 페부속으로 노래의 선률이 숨결처럼 흘러들었다. 가슴이 설레이고 심장이 튀여나올듯 흉벽을 두드린다.

바로 그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강선의 로동계급을 잊지 않으시고 보내주신 노래가 저렇게 제강소구내에 메아리치며 울려퍼지고있지 않는가!

마치도 장엄한 노래의 선률이 그대로 장군님의 사랑의 빛발이 되여 온 제강소를 아름다운 붉은 노을로 감싸주는것 같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제강소의 현대화는 우리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이다.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이라면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무조건 해내고야만 강선의 로동계급이 아닌가.…

설계도 완성되였다. 공사를 시작하자.

한순간 번뜩인 그 생각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여 그의 온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충동이 어찌나 강했던지 김성남은 성급히 나들문을 열었다. 차거운 눈바람이 방안으로 흘러든다. 솜옷도 목수건도 털모자 생각도 잊었다. 희한한 모험을 구상해낸 어린애의 심정으로 추위도 느끼지 못한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결심을 굳게 해주는듯 노래선률이 고조를 이루며 울려퍼진다.


아 그날의 그 사랑

아름다운 노을속에 어리여오네


김성남은 행정청사 2층의 기술공정실로 단번에 두계단씩 올리짚으며 단숨에 올라갔다. 홑옷차림의 그가 공정실에 들어서자 실장이 놀라서 일어섰다.

《솜옷도 입지 않고 이게 웬일입니까?》

로기술자들의 시선이 일시에 지배인에게로 쏠렸다. 실장이 벽에 잇대여 만들어놓은 온돌판으로 그를 이끌었다.

《여기 따뜻한데 앉으십시오.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려구.》

《고맙습니다.》

김성남은 몸을 녹일 사이도 없이 부상과의 심각한 론쟁끝에 기술과제제안서가 부결된 내용을 말하고나서 차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로기술자들의 결심을 물어보았다.

로기술자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다. 보던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담배를 피워물기도 한다. 다만 무슨 일에서나 감정을 숨길줄 모르는 리규택이 툭 내쏘았다.

《지배인결심은 어떻소?》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이런 때 천리마시대의 로기술자들이 누가 뭐라고 하든 공사를 시작하자고 나설것이라고 흥분해서 달려왔는데 모두 침묵을 지키고있다. 아직 성에서 승인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들도 주저하는것인가?

재털이에 피우던 담배를 꾹 박으며 리규택이 고개를 쳐들었다.

《언젠 뭐 안 그랬소? 6만톤분괴압연기에서 12만톤의 강재를 밀어낼 때도 그랬지요. 일부 일군들이 못한다고 했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로동자들에게 호소하시니 다 해내지 않았소!》

유진섭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옳수다! 우린 그런걸 많이 보아서 그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됩니다.》

김성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성급히 물었다.

《그러니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시작하자는것이지요?!》

로기술자들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마치도 그런걸 무엇때문에 물어보는가 하는 표정들이다.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여 실장이 저력있게 말했다.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이라면 못해낸 일이 없는 우리 강선의 정신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게 있습니까. 결심할탓이지요.》

김성남은 아바이들의 침묵을 자기가 속단했다는 생각으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기술도 지도능력도 생활경험도 어린 자기에게 강철같은 담력이 있기를 바라는, 자신들을 겸손하게 낮추며 자기의 결심을 더 중시해주려는 그들의 웅심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이런 로기술자들을 먼저 만나보지 않고 혼자서 끙끙 마음을 썩인 자신이 은근히 후회되였다.

성남은 지난날 천리마기수들이였던 로기술자들의 지지와 믿음이 있어 얼마든지 초고전력전기로를 건설할수 있다는 신심이 쇠물처럼 끓어올랐다.

김성남은 큰숨을 내쉬였다.

《전 이미 결심했습니다! 당위원회와 토의하고 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갑자기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

로기술자들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듯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박수로 대답한것이다.

그것은 믿음이고 힘이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였다.

로병들의 정신력을 믿고 시작하였고 그들의 지지와 성원속에서 설계를 완성하고 공사를 시작할것을 결심하였는데 오히려 그들에게서 박수갈채를 받고보니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김성남은 머리를 깊이 숙이였다. 그들의 백발에, 거룩한 정신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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