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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제3장. 완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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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방에 있는 부원에게 자기 행처를 알려주고난 김성남은 밖으로 나왔다. 뿌연 하늘에서는 흰눈이 푸실푸실 내리고있었다.

이해의 첫눈이다. 햇솜같이 가벼운 눈송이들은 하늘이 이 땅을 위해 내려보내는 솜이불인듯 하얗게 내려와 쌓이고쌓인다.

제강소현대화가 제기되여 벌써 다섯번째로 내리는 생각깊어지게 하는 눈이다.

구내의 잎떨어진 앙상한 나무가지며 거무칙칙한 건물들의 지붕, 누런 나무잎들이 흩날리던 구내길, 길을 걷는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그 어디나 흰 눈송이들이 내려와 포근히 덮인다.

행정청사 앞마당에서 처녀들이 날아내리는 눈을 받느라고 깔깔 웃어대다가 김성남과 부딪칠번 하고는 황황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조금후 뒤쪽에서 또다시 처녀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김성남은 한순간 시름을 잊고 빙그레 웃으며 설계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요즘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박상근부상이 그만두라는 설계를 밀고나가고는 있으나 락관적이 못된다.

중요한것은 시간을 쟁취하는것이다.

설계원들은 하루를 3일로 계산하여 설계전투를 벌렸다. 침식을 현장으로 옮겼다. 긴 의자를 맞붙여놓고 쪽잠에 들었다가도 다시 일어나 연필을 잡았다.

언제 자고 어느때 먹는지 분간이 없다.

리규택은 아들이 수술을 받고 아직도 병원에 있는 상태지만 한순간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밤에는 졸음을 몰아내느라고 소랭이에 찬물을 떠다가 발을 담그고 설계하는 사람도 있다.

설계실창문가에는 밤이 새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설계전투는 더 어려워졌다.

육체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설계원들의 입술은 부르트고 눈에는 피발이 섰다. 견디다못해 쓰러지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설계에 달라붙었던 리제일이 다시 실려갔다.

설계를 제기일내에 완성할수 있겠는지 머리를 가로저으며 동요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설비는 사오자는 의견이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바로 이러한 때 나이많은 한 어머니가 여러가지 설계용품을 가지고 찾아와 매일 후방사업도 해주며 설계를 도와준다고 한다. 하여 김성남은 점심시간을 리용하여 설계실로 가는 걸음이다.

행정청사 3층에 있는 설계실까지 곧장 올라간 그는 조심히 문을 열었다.

밝고 넓은 설계실에는 미술가의 화판처럼 보이는 설계도판들이 질서있게 배렬되여있다. 점심시간인데도 설계원들은 벌써 도판앞에 마주앉아있다.

설계실장과 리규택, 박영재가 난로곁에 앉아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론의하고있다. 설계실에는 원래 증기난방체계가 되여있었는데 최근년간 생산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가열로의 불이 꺼지다보니 난방이 보장되지 않았다. 춥고 손이 곱으면 설계를 제대로 할수 없다. 그래서 비상대책으로 큰 난로를 두개 놔주었던것이다.

《수고들 합니다!》

김성남이 인사를 하며 들어서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배인동무, 여기 뜨끈한 난로곁으로 오십시오.》

김성남은 실장이 권하는 의자에 가앉았다. 늘 무드기 쌓여있던 재는 말끔히 치워졌고 구석구석 녀인의 손길이 미친 흔적이 눈에 알린다. 쇠단내와 후끈한 열기가 풍겨오는 난로우에 처음 보는 커다란 늄주전자가 둥실한 배를 번쩍이며 놓여있다. 뚜껑이 들썩거리며 흰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른다.

김성남의 눈길은 리규택아바이의 얼굴에 가멎었다.

수염도 미처 깎지 못한 텁수룩한 얼굴이며 꺼실꺼실 부르튼 입술, 벌겋게 충혈되고 부어오른 눈, 아버지같은 그를 너무 무리시키는것 같아 마음이 아파났다. 무슨 말로 위로해주겠는지… 리규택과는 중요한 기술문제를 놓고서 이야기를 나눌뿐 아직도 어성버성한 사이였다. 참, 언제면 그 노여움이 풀리겠는지…

김성남은 설계실을 둘러보고나서 실장에게 물었다.

《지원자어머니가 설계실을 잘 도와주고있다던데 보이지 않는걸보니 오늘은 나오지 않은 모양이구만.》

《아닙니다. 방금전에 물을 길러 갔습니다. 그 어머님이 며칠전부터 여러가지로 도와주고있는데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박영재가 고뿌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지배인에게 권했다.

《결명자차입니다. 맛보십시오.》

《결명자차? 이런건 어디서?…》

김성남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고뿌를 받았다.

곁에 있던 실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설계원들은 눈이 밝아야 한다면서 그 어머니가 가져온것입니다.… 어느 하루도 번지지 않고 끓여놓습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수정안경에 결명자차까지 마시니 눈이 점점 밝아지는것 같다고들 합니다.》

《음-》

김성남이 결명자차를 후후 불며 한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몸이 훈훈해진다. 그 녀인의 지극한 정성이 그대로 온기가 되여 몸에 흘러퍼지는것 같았다. 다시 설계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있는데 나들문이 조용히 열렸다.

찬기운과 함께 누런색동복에 회색털수건을 쓴 녀인이 파란 비닐바께쯔를 들고 들어섰다. 실장이 지배인을 쳐다보았다.

《그 어머닙니다!》

김성남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녀인에게서 물바께쯔를 받아들었다.

《인사가 늦어 미안합니다. 제가 지배인입니다.》

순간 녀인은 놀란듯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수건을 벗어쥐고는 그를 쳐다보는것이였다. 녀인의 눈에 물기가 어리는것 같았다.

김성남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녀인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본것 같았다. 어디서 만났던가?… 놀란듯 한 저 얼굴표정… 문득 생각났다.

《아! 길가에서 만났던 어머님이시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

모두 놀라운 눈길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녀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조용히 눈굽을 훔쳤다.

《갑자기… 더운 방에 들어오니… 눈물이 나와서…》

사람들을 둘러보며 김성남이 활기있게 말했다.

《며칠전에 평양에 갔다오다가 길을 걷고있는 이 어머님을 보고 차를 세웠댔지요.…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날줄이야.》

설계실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지배인동진 우릴 도와주러 오시는 어머니라는걸 대뜸 알아보신 모양입니다. 허허.》

지배인도 설계원들도 즐겁게 웃었다. 김성남은 녀인이 어쩔바를 몰라하며 서성거리는것을 보고 제가 앉았던 의자를 그의 앞으로 내놓았다.

《자 어머님, 여기 앉아 몸을 녹이십시오.》

녀인이 황황히 사양했다.

《난… 일없습니다.… 어서 앉으시우…》

박영재가 의자 하나를 제꺽 가져다 놓아서야 녀인은 조심히 앉았다.

김성남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들집에 오신다고 했던것 같은데… 편안히 휴식하지 않고 우리 설계원들을 진심으로 도와주고있으니 뭐라고 인사를 올려야 할지… 정말 고맙습니다!》

녀인이 목이 메여 더듬거렸다.

《뭘… 크게 도와준게 있다고… 그저 마음뿐이지…》

《원 어머님도, 그 마음이 중요한거지요. 저도 그렇고 여기 앉아있는 우리 설계원들모두가 그 마음에서 큰 힘을 얻고있습니다!》

설계원들도 머리를 끄덕인다. 김성남은 묵묵히 그 녀인을 바라보았다. 우리 어머니도 저 녀인의 나이쯤 되였을것이다.

눈녹은 물이 구슬알처럼 매달려있는 희슥한 앞머리칼, 호수에 흘러드는 실개울인양 눈귀에 곱게 잡힌 실주름, 상큼한 코날과 선이 또렷한 입술… 젊은 시절 미모의 흔적이 남아있는 녀인의 얼굴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모성적인 친근감이 느껴진다. 다난한 생활속에서도 깨끗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을 고상한 지성미가 엿보인다. 어머니생각이 간절해졌다.

김성남은 젊은 시절의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친어머니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려고 애쓰며 저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어머님… 성함을 어떻게 부르십니까?》

《?!…》

순간, 안신옥은 심장이 멎는것만 같았다. 수십년세월 얼마나 그립고 만나고싶었던 아들이였던가… 하지만 신옥은 딴 이름을 대버렸다. 선뜻 제 이름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것이다. 이미 이런 경우를 생각해두었던 신옥이였지만 정작 말해놓고보니 스스로도 놀랍고 서글펐다.

《그렇습니까…》 하고 말꼬리를 길게 끌며 성남은 한숨을 내쉬였다.

아들을 앞에 두고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신옥의 가슴은 터지는듯 했다. 아들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성남아! 내가 네 엄마란다. 어쩌면 넌 그리도 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내 아들 성남아! 신옥은 마음속으로 애타게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부르다부르다 돌처럼 굳어진다 해도 부르고 또 부르고싶은 아들의 이름을…

이제 한순간만 지나면 아들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내가 네 어머니라고 오열을 터칠것만 같았다.

그래서 안신옥은 눈길을 떨구고 피가 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 시각 그는 가장 불행한 어머니였다.

고통스러운 순간은 길게만 느껴졌다. 성남이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나간 뒤에도 안신옥은 점도록 난로곁에 앉아있었다. 그의 심정을 잘 알고있는 리규택은 아무말없이 깊은 숨을 후- 내쉬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며칠전 안신옥이 설계실에 찾아왔을 때 알만 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다만 총설계를 하고있는 리규택을 이름과 모색으로 겨우 알아보았을뿐이다.

머리는 비록 희슥해졌으나 장대한 체격이며 민활하고 데면데면한 그 성미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안신옥은 아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리규택의 눈은 속일수 없었다. 설계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기억력의 덕분이였던지… 어느날 조용한 틈에 리규택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김철우의 부인이 아닌가고… 안신옥은 더는 감출수 없었다. 리규택은 몹시 반가와하면서 대뜸 아들을 만나보았는가고 물었다.

안신옥은 가슴속깊이 묻어두었던 결심을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초고전력전기로에서 첫 쇠물을 뽑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리규택은 녀인의 심정을 리해하였다. 허나 지배인에 대해서는 도무지 리해할수가 없다.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어머니를 찾아보지 않았고 얼굴마저 알아보지 못하고있다니… 그에게 무슨 인간적인 체모가 있단 말인가.


X


그날 밤, 집에 들어간 김성남은 가방을 받아드는 안해에게 말했다.

《여보, 전번날 아들집에 온다던 한 어머니에 대해 내가 말하던것이 생각나오?》

영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경상점에 갔다오던 길에 차를 태워주었다던 그 어머니말이예요?》

《그렇소. 오늘 설계실에서 다시 만났소!》

《아니, 설계실이라니요?》

《글쎄 알고보니 매일 설계실에 나와 도와주고있더구만… 그런데 이상한것은 두번밖에 만난 일이 없는데도 그 녀인을 보게 되면 생사도 알수 없는 우리 어머님을 만난듯 한 느낌이 든단 말이요. 참 그래서 슬며시 성함까지 물어보았소…》

영실이도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눈을 슴벅거렸다.

《그 어머님을 한번 모셔오세요. 이야기도 나누고… 할머니를 모르고 자라는 애들도 몹시 좋아할거예요!》

김성남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선뜻 오시자고 하겠소. 그럴것없이 당신이 찾아가오. 설계실을 지원도 하고 그 어머님도 만나볼겸… 가만.》

그는 무엇인가 언듯 떠오르는것이 있어 두눈을 슴벅거렸다.

《여보, 그 어머님의 소행을 들으며 생각되는게 없소?》

잠시 고개를 숙이고있던 리영실이 나직이 입을 뗐다.

《아들집에 나들이온 어머니도 설계를 도와주느라 애쓰고있는데 강선사람인 우리가 그런 생각을 못했으니…》

《옳소. 바로 그거요. 그거!… 지금 설계원들은 방대한 설계를 넉달동안에 끝내자고 밤낮을 이어 전투를 벌리고있소. 기술적으로나 물질정신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오.》

《알겠어요. 우리 공장대학교원들도 설계실을 지원하겠어요!》

김성남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게 온 강선이 도와준다면 제기일내에 설계를 완성할수 있소!》

자정이 지나 잠자리에 누웠어도 김성남의 눈앞에는 물바께쯔를 들고들어서던 그 어머님의 모습이 사라질줄 몰랐다.


X


일요일 점심때였다.

공장대학교원들이 여러가지 지원물자를 가지고 설계실에 찾아왔다. 그들속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온 안경을 낀 젊은 녀인도 있었다.

교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리규택이 그 녀인을 알아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지배인 부인이 어떻게? 아이들까지 데리고…》

리규택은 자기의 실언을 느꼈는지 안신옥을 얼핏 쳐다보고는 인차 그에게서 손짐을 받아들었다.

리영실이 미안해하는 어조로 말했다.

《온다온다하면서 강의가 바쁘다나니… 마침 일요일이여서 애들까지 따라나서더군요!》

늄주전자에 결명자를 갈아넣던 안신옥은 지배인 부인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순간 흠칫 몸을 떨며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리규택과 눈길이 마주치자 황황히 머리를 숙였다. 가슴은 후둑후둑 방망이질을 하는것 같다.

리규택에게 무엇인가 조용히 물어보던 그 녀인이 머리수건을 벗으며 안신옥에게로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추운 때 아들집에서 쉬지 않고 이렇게 설계실에 나와 도와주고계신다니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안신옥이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손을 내흔들었다.

《아니, 원… 무슨 소릴…》

목이 꺽 메여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함께 온 교원들이 저마다 그에게 다가와 진심어린 인사를 하였다.

《!…》

그들과의 수인사가 끝나자 리영실이 애들을 찾았다.

《애들아, 어서 인사드려라.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그 할머님이시다.》

호기심어린 까만 눈을 깜박거리며 서있던 딸애와 사내애가 머리를 굽석 숙인다.

《할머니! 안녕하십니까?》

신옥의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러니 내 손녀, 내 손자란 말인가!

심장이 튀여나올듯 쿵쿵 뛰였다. 너무도 격하여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저 두 아이의 머리만 어루쓰다듬었다. 애들의 따스한 온기가 전류처럼 짜릿하게 온몸에 흘러든다.

한참만에야 그는 떨리는 입술을 겨우 뗐다.

《그래… 이름이… 뭐냐?》

처녀애가 귀엽게 눈웃음을 지었다.

《내 이름은 설금이고 내 동생은 설송이예요!》

설송이가 제꺽 누나의 말을 보충했다.

《김설송!》

《그렇구말구, 김설송이지. 김설송!…》

안신옥은 너무도 기특하여 그 애를 꼭 끌어안았다.

《참 좋은 이름이다. 이름처럼 귀하게도 생겼구…》

아득히 흘러가버린 그 시절, 유치원교양원의 손을 잡고 나왔던 어린 성남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을 앞에 놓고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했고 내가 네 엄마라고 말하지 못했던 그때처럼 눈물만 하염없이 고여오른다.

설송아, 설금아! 내가 너희들의 할머니다, 할머니야라고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몇번이고 되뇌이기만 했다.

신옥의 그 모습을 더 보지 못하겠는지 리규택이 눈을 슴벅이며 음식을 차리고있는 교원들쪽으로 돌아섰다.

성남이 안해의 놀란 눈길을 감촉한 안신옥은 애를 놔주며 조용히 눈굽을 훔쳤다.

《이 애들을 보니… 집에 두고온 손자들 생각이 나서…》

공장대학 교원들과 함께 그들이 성의껏 준비해온 음식을 설계원들에게 대접하면서도 안신옥은 손자와 손녀, 며느리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얼마후 아이들은 돌아가고 교원들만 남았다.

밤이 늦도록 어렵다고 하는 부분설계들에 대한 기술적문제들을 풀어주었고 직접 설계도 해주었다.

안신옥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며느리와 교원들과 어떻게 헤여겼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귀여운 손자손녀와 살뜰한 며느리의 모습만이 눈앞에 꽉 차오며 사라질줄 몰랐다.…

요즘 설계실은 매일 흥성거렸다. 설계를 도와주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던것이다. 공장대학 교원들은 말할것 없고 기능공학교며 각직장과 분공장들의 기술자들, 오래전에 년로보장을 받고 들어간 백발의 설계원들, 방학으로 집에 왔던 대학생들…

어찌나 많이 찾아왔는지 그들을 위해 큰 방을 하나 내여 설계할수 있게 꾸려놓았다.

지어는 중학교, 소학교 학생들까지 설계하는데 써달라고 연필이며 지우개를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그들속에는 설금이와 설송이도 있었다.

현장식당에서도, 병원의사들 온 강선이 설계전투를 도와나섰다. 설계는 공정계획대로 착착 진척되여나갔다.

매일 그것을 목격하는 안신옥의 마음은 커다란 감동과 기쁨으로 설레였다. 휴식시간이면 학생들과 지원자들에게 시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천리마전설이며 그 시대에 나왔던 소설 《〈해주-하성〉서 온 편지》와 경희극 《산울림》, 곳곳마다에서 기적만을 창조하던 천리마시대 사람들의 영웅적투쟁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다시 들려달라고 졸라댔으며 어른들은 천리마시대인간들의 숨결과 지향을 느껴보며 생각에 잠기군 했다. 신옥의 소행은 온 제강소에 퍼졌다. 사람들은 신옥을 《천리마어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며 따랐다.

신옥은 새삶을 다시 누리는것 같았다. 성남이 아버지를 도와 전기로에 산소취입법을 도입하던 그때의 그 열정이 온몸에 샘솟는듯 하였다. 우리 힘으로 현대적전기로를 건설하자고 설계원들이 난관을 물리치며 설계를 해나가는것이고 성남이가 이 큰일을 위해 애쓰고있다. 생각할수록 대견스러웠다. 바로 그 길을 아들과 함께 걷고있다고 생각하니 힘든줄 몰랐다.

신옥은 몸이 불편하고 힘들 때마다 현대적전기로에서 첫 쇠물이 쏟아져나올 그날을 그려보며 참고 견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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