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협이 울린 출항의 첫 고동
유서깊은 평양의 모란봉에 한여름의 청신함을 함뿍 자랑하며 온갖 잎새들이 푸르러 설레이던 1956년 7월 2일이였다. 이날 모란봉극장에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이전 남조선의 민족자주련맹, 한국독립당, 사회당,
민족공화당, 민주국민당, 신생회, 건국청년회를 비롯한 10여개
정당, 단체들의 지도급인물들과 남조선의 전 《국회》의원, 장관들을 비롯하여 정계, 군부,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녀성계
등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불문하고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려는 각당, 각파, 각계 인사들이 참가하였다.
결성식에 참가한 재북인사들은 한결같이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려는 자기들의 소청을 헤아려주시고 성대한 결성식을 가지도록 해주신
두달전인 5월 23일
그 제의를 받으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그 명칭이 말해주듯이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에서 공화국북반부에 있는 이전 남조선정객들로 무어진 정치조직이였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고 남조선에 나간 김구, 김규식선생은 련석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실현하려는 결심으로 1948년 7월 남북련석회의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남조선의 80여개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을 망라하는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하였으며 공화국창건후에는 그 이름을 통일촉진협의회로 개칭하였었다. 통일촉진협의회는 미군철거와 남북협상, 평화통일을 구호로 내걸고 남조선의 정계, 사회계에서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렸었다. 전쟁의 발발과 함께 조직으로서의 통일촉진협의회는 해체되였으나 그가 추켜들었던 구호는 계속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라는 명칭은 북에 들어온 남조선의 정계, 사회계인사들이 통일촉진협의회가 들었던 구호를 계속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였다.
조국전선중앙위원회 대표, 홍명희부수상을 비롯한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과 남조선출신 청년학생 대표 및 《국군》의거 장병 대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대표와 재중조선인 대표 등 수많은 래빈들이 참가한 결성식에서는 안재홍선생의 개회사에 이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과 그 임무에 대한 조소앙선생의 보고가 있었다.
이어 조헌영선생을 비롯한 10여명 대표들의 토론과 축사가 있은 다음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결성대회 선언서와 북남협상, 평화통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강령과 략장(규약)이 채택되였다.
통협결성대회 선언서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져있었다.
1. 조선사람은 조선민족의 지조와 절개를 굳게 지켜서 일체의 예속과 간섭을 물리치고 자주독립정신을 굳게 가질것.
2. 조선사람은 일치단결하여 동족상잔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방법으로 통일독립을 달성할것.
3. 남북간의 호상접촉과 리해와 협의를 달성하며 서신과 주민의 래왕, 경제, 문화, 예술, 과학의 교류를 추진할것.
4. 남북정권당국, 국회 혹은 정당, 단체대표 및 애국적인사들로서 평화통일문제협의를 위한 상설기관을 설치할것.
5. 전 조선 총선거에 의하여 통일민주자주련합정부를 수립할것.
6. 조선문제의 평화적해결을 위하여 관계국가들의 협조를 기할것.
한편 결성대회에서 채택된 통협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조국의 평화적통일달성을 촉진함.
2. 외국의 예속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반대함.
3. 조국 남북의 협의달성과 교류를 촉진함.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이로써 출항의 첫 고동을 힘있게 울렸다.
그 고동이 남긴 여운은 남조선땅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뭐니뭐니해도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련석회의참가자들인 상해림정시절의 관록있는 민족주의자들과 반미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원내에서 사사건건 리승만도당에게 도전해나섰던 세칭 《국회》소장파인물들뿐아니라 초대《국회》 부의장을 했던 《한민당》 총무 김동원, 초대《국회》에서 《미군장기주둔요청안》의 기안으로 소장파《국회》의원들의 《미군즉시철수안》에 정면대결해나섰던 《한민당》의 조직부장 조헌영, 폭력으로 《국회》소장파의원들을 무리로 서대문형무소에 처넣는데서 앞장섰던 전 내무부 장관 김효석 같은 극우익인물들, 40여명의 1대, 2대 《국회》의원들이 버젓이 통협이라는 《함선》에 승선하여 운명공동체를 이룬 사실은 리승만일당을 아연실색케 하였다. 물론 리승만일당은 이런 현실의 도래를 예상할수도 없었으며 그것을 리해할래야 리해할 능력도 없었다.
충격은 이에 앞서 1955년에도 한번 강하게 일어난적이 있었다.
전쟁시기와 전후시기 한동안 《국회》의장직에 있었던 신익희가 리승만역도에게 반기를 들고나온데 이어 33명의 《국회》의원들을 규합하여 이해 9월 반리승만, 반독재민주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민주당을 결성한 사실과 조봉암중심의 혁신세력이 벌리고있던 진보당결성운동이 한층 활기를 띠게 된 사실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4월테제》로 알려진
남조선의 명망높은 정치활동가들인 6명의 재북인사 오하영, 윤기섭, 조소앙, 송호성, 안재홍, 엄항섭은 1955년 11월 12일에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신뢰하는 남반부동지들!
남반부의 정당, 군사, 경제, 문화, 각계각층의
우리 삼천만이 잠결에도 잊을수 없는 조국의 평화통일은 우리들이 사람답게 잘살수 있도록 조건지어주는 유일의
이러한 사태에 대처하여 북반부의 당국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남북협상을 주장하는 몇가지의 주요방안을 루차 제의한바 있습니다.
즉 남조선<정권>당국은 남북간의 현존한 불신임과 긴장상태를 제거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반대하는 그 어떠한 무력행사도 하지 않고 조선통일에 관한 일체 문제를 오직 평화적방법으로 해결할 의무를 질데 대하여 선포할것,
남북조선대표가 회의를 가급적 속히 조직하여 조선통일에 관한 문제를 토의할것,
아시아국가들이 광범하게 참가하는 유관국가들의 극동회의를 소집하고 조선의 평화적통일대책을 강구하고 전쟁재발의 방지를 보장할 의무를 부담케 할것,
이밖에 조선으로부터 외국군대를 철퇴시킬것과 남북이 각각 군대를 최소한도로 축소할것과 남북조선인민이 호상 접촉할것과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등의 교류와 기타 몇몇 방안들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현 단계에 있어서 우선 착수하여야 할 일은 무엇보다 남북의 각계 인사들이 허심하게 한자리에 모여앉아 흉금을 털어놓고 민족분렬의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의견을 교환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결국 모두 승인하고 접수하시리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외국사람들과도 자주 앉아 협상을 하거늘 항차 같은 조상의 피를 가진 조선사람들끼리 서로 마주앉지 못할 리유가 그 어데 있겠습니까? …
여러분! 우리 조국은 이제 가장 큰 난관에 부닥쳤고 우리 민족은 가장 엄중한 시련속에 빠지고있습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최후적결심을 위하여 각자의 가슴마다에 안고 평화통일로선에서 남북의 협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단연 총궐기하시오. 그러하면 조국의 난관은 장엄하게 극복될것이요.
민족의 대사변은 응당한 승리로써 돌파될것입니다. …
여러분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단연코 평화통일투쟁에로 일제히 매진합시다.
조속히 남북협상을 달성합시다.》
이상이 6인공동성명의 내용이였다.
8. 15직후부터 전쟁전까지의 시기에 리승만도당의 반역행위에 제동을 걸고 그 숨통을 조인 련공애국세력의 핵심들이 반민족분자들의 악선전에도 불구하고 건재하여 가장 적절한 시기에 발표한 이 공동성명이 반미반리승만투쟁의 새로운 막을 열고있던 남조선민중과 민족세력에 대한 강력한 지원포사격으로 되였던것은 두말할것 없었다.
그런데 명망높은 그 련공애국인사들이 이번에는 리승만역도와 결별하여 전쟁시기에 월북한 모든 우익 및 극우익인사들까지 규합하여 통협과 같은 조직을 무어 도전해나서고있었으니 이런 사변은 역적패당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되지 않을수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전쟁시기에 월북한 련공애국인사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을 정치적으로 매장하기 위하여 그들의 이름우에다 들씌워놓았던 《랍북인사》라는 도깨비감투가 6인공동성명으로 하여 백일하에 벗겨지고말았으니 리승만일당이 일거에 매우 난감한 처지에 빠져들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재북인사들이 통협의 출항을 알려 울렸던 고동소리는 그만큼 효과가 큰것이였다.
이날 통협결성식에 참가하여 자기들도 조국통일의 대하에
합류된 민족의 한 성원임을 가슴뜨겁게 절감한 재북인사들은 한결같이 우리모두는 한 어머니품에 안긴 자식들이다, 우리가 안긴 품은 나라와 민족앞에 죄를 진 사람들까지도 다 안아주고 길을 헛갈려 헤매이던 사람들도 다 따뜻이 품어주는
재북인사들의 자치적인 통일애국조직으로서의 통협의 결성에
큰 의의를 부여하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결성, 그것은 진정 재북인사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