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3장. 완강성


1


얼마 못 가 포기하리라 생각했던 초고전력전기로설계를 계속 내민다는 서승민의 전화를 받고 제강소로 내려오는 박상근의 마음은 착잡했다.

나의 의도를 전혀 모르는바도 아닌 그가 어쩌면 그렇게 나올수 있단 말인가?…

김성남은 그와 류다르게 깊은 인연이 있는 일군이다. 달리는 차창에 아득히 흘러가버린 옛시절의 추억이 어려올랐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된 박상근은 강철직장에서 용해공으로 일하였다. 그때 그는 쇠물처럼 끓어번지고있던 천리마작업반쟁취운동에도 앞장섰고 기술혁신에도 두팔을 걷고나섰었다.

몇해후, 김책공업대학에 입학하러 가는 그의 앞가슴에는 군공메달과 함께 천리마휘장이 자랑스럽게 빛나고있었다.

대학에서 배움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해인가 박상근은 졸업실습차로 강선에 내려오게 되였는데 함께 실습나온 동무가 앓아누워 식사를 못하기때문에 과일을 사려고 시장에 나갔던 일이 있었다.

시장의 가건물밑에는 녀인들이 주런이 앉아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여러가지 농토산물이 보기 좋게 무둑무둑 쌓여있다. 푸르싱싱한 남새와 도라지, 여러가지 산나물이며 먹음직한 과일이 눈길을 끌었다. 다른 한쪽엔 노끈으로 다리를 졸라맨 닭들이 꼬꼬택거리는가 하면 복슬강아지들이 재롱을 피우며 장난질을 한다.

시장안은 물건을 팔고사는 사람들로 몹시 붐비였다.

박상근이 어디로 가서 살가 망설이는데 한 녀인이 손짓하며 불렀다.

《뭘 사려고 그래요? 이리 오라요!》

너부죽한 얼굴에 코마루가 잘룩한 안장코녀인의 앞에는 참외가 무득하였다. 오동통하고 배꼽이 불룩한 노랑참외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참외를 하나 골라들고 값을 물어본 상근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옆에 앉은 녀인의 참외를 넘겨다보았다. 그 녀인은 자기 참외를 슬며시 손짓해보이며 눅게 주겠다는듯 눈을 끔뻑해보인다. 어느새 그것을 눈치챈 안장코녀인이 소리쳤다.

《거기선 어째서 남의 흥정판에 끼여드는거요? 돼먹지 않게…》

두 녀인은 서로 어성을 높이며 싱갱이질이다. 상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해 서있는데 안장코녀인이 그에게로 낯을 돌렸다.

《젊은이, 내 값을 낮추어주겠네. 그래, 몇키로나 사려오?》

이때였다. 그들의 흥정에 더는 흥미가 없는지 허공을 쳐다보며 하품을 하던 옆에 앉은 녀인이 갑자기 악- 하고 소리쳤다.

안장코녀인이 흠칫 놀라며 눈을 흘겼다.

《에구, 간 떨어지겠다.》

옆의 녀인이 얼굴이 거멓게 질린채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켜보였다.

《저… 저길 좀 …》

그들의 눈길이 그 녀인이 가리키는 시장밖의 굴뚝으로 쏠렸다. 순간 박상근이 놀라서 굳어졌다.

바로 그 굴뚝꼭대기에 짧은 멜빵바지를 입은 작은 사내애가 올라가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사내애는 내려오지 못하고 철사다리란간만 꼭 잡은채 엉엉 울고있는것이 아닌가.…

옆의 녀인도 또 그옆의 녀인도 련쇄반응을 일으켜 삽시에 온 장마당사람들의 눈길이 굴뚝우의 아이에게로 쏠렸다. 이제 조금만 지체하면 맥이 빠진 아이가 더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질것만 같았다. 여기저기서 경악에 찬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애야, 빨리 내려오라- 아!》

당황해진 녀인들은 어쩔바를 모르고 저마다 소래기만 질러댔다. 어떤 녀인들은 기겁하여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이때 웬 중년의 녀인이 허둥허둥 굴뚝밑으로 달려가 올려다보며 통곡을 터뜨렸다. 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 애를 데리고 시장에 왔던 녀인이였다. 안장코녀인이 소리쳤다. 《소리만 치면 어떻게 하나, 애를 안아 내려와야지.》

시장에는 거의나 녀인들과 로인들뿐이였다.

박상근은 한순간 주춤했다. 그는 높은 곳에 올라가본적이 없었다. 굴뚝에 올라가 아이를 안아내리운다는것은 하나의 모험이다. 하지만 군사복무기간 정신육체적으로 교양받고 단련된 박상근이였다.

굴뚝밑으로 단숨에 달려간 그는 중년녀인을 비껴세우고 녹이 쓴 철사다리에 매달렸다. 사다리를 타고 얼마쯤 올라가는데 갑자기 사다리한쪽이 툭 끊어지며 뽑혀나왔다.

순간 머리칼이 곤두섰다. 박상근은 몸의 균형을 잃고 떨어질듯 허우적거렸다. 밑에서 공포에 질린 녀인들의 아우성이 터졌다. 겨우 몸중심을 회복한 박상근은 뽑혀진 란간끝을 살펴보았다. 비바람에 녹이 쓸고 삭을대로 삭아서 겨우 붙어있은것이였다. 가벼운 어린애가 올라갈 때엔 그래도 지랭하였는데 덩지 큰 박상근의 중량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제 수십개가 넘는 사다리중에서 또 어느것이 끊어지겠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그의 얼굴과 손에 긴장으로 하여 땀이 질벅하게 배여나왔다. 그래도 다시 올라갔다. 한계단 또 한계단… 철사다리에 거밋한 땀자욱을 남기며… 밑에서는 수백의 눈길이 지켜보고있었다.

드문히 사다리가 끊어졌다. 그때마다 눈앞이 아뜩하여 한동안 숨을 몰아쉬였다. 초인간적인 긴장으로 굴뚝꼭대기에 올라간 박상근의 심장은 튀여나올듯 세차게 흉벽을 때렸다. 사다리에 매달려 울고있던 사내애는 그를 보자 란간을 놓고 무작정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

박상근은 몸의 중량이 증가됨을 의식하며 더 힘껏 사다리를 틀어잡았다.

사다리가 이겨내겠는지, 그 애를 목에 걸고는 내려갈것 같지 않았다.

애에게 란간을 다시 잡게 하고 자기가 그뒤에서 보호해주면서 천천히 한단한단 내려갔으면 좋으련만 그 애는 겁에 질려 꼭 끌어안은 목을 놔주려 하지 않는다. 숨쉬기도 바빴다. 어떻게 할것인가.…

사내애는 그의 목덜미에 눅눅한 입김을 불며 아직도 흑흑 흐느끼고있다.

겁에 질린 이 조그마한 애가 어찌도 순진하게 자기 목을 꼭 부여잡고 온몸을 의지하고있었던지 상근은 련민의 정이 끓어올라 애를 목에 건채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내려오는것은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들고 위험했다.

몇번이나 사다리가 부러져나갔다. 땀이 눈에 흘러들어가 쓰렸다. 그래도 닦을수가 없다. 굴뚝밑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고있다. 장보러 왔던 사람, 지나가던 사람, 소문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올려다본다. 박상근이 아슬한 고비를 겪을 때마다 경악에 찬 웨침소리가 터져올랐다. 그때 안장코녀인이 호소했다.

《우린 뭐 구경만 하겠소. 저 청년을 도와주자구요!》

《어떻게 도와준다는거요?》

《모두들 자기의 짐보자기를 풀라구요. 그리고 그끝을 서로서로 련결하여 크게 만들어 받쳐들면 저 청년과 아이가 떨어져도 안전하게 받을수 있어요!》

단순하면서도 누구나가 리해되는 착상이였다. 녀인들은 와- 흩어져갔다.

물건을 꽁꽁 싸놓았던 보자기들을 풀어헤쳤다. 먹음직한 과일이며 남새들을 여기저기 되는대로 쏟아놓았다. 언제 한알두알 어린애 머리쓰다듬듯 닦고 또 닦으며 팔았던가싶었다. 시장안에서는 주인들의 구속에서 풀려난 닭이며 오리, 강아지들이 제세상을 만난듯 이리저리 돌아치며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는 과일이며 남새들을 소멸해치우고있다.

녀인들은 보자기끝을 서로 련결하고 단단히 옭아맸다. 여러개의 보자기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두겹세겹 겹쳐가지고 굴뚝밑에 늘어섰다.

그것은 참으로 희한한 광경이다. 희고 누르고 불깃한 갖가지 색갈의 보자기들로 련결된 큰 보자기다. 비록 시장에는 나오지만 정의로운 일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강선녀인들의 단합된 마음이런듯.…

그런줄도 모르고 박상근은 필사의 기력을 다하여 사다리를 내리고있었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이제는 뛰여내리라고 소리치는 녀인들의 웨침소리에 놀란 상근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숱한 녀인들이 틀어쥐고있는 큰 보자기가 안겨왔다. 마치도 교예극장의 안전그물과 같은 그 보자기를 보는 순간 온몸을 유지하던 긴장이 탁 풀렸다. 박상근은 저도 모르게 쥐고있던 사다리란간을 놓았다. 와- 새된 함성이 터지는 속으로 박상근은 어린애를 안은채 풀썩-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감정의 변화란 미묘한것이다.

좀전만 해도 제발 떨어지지 말라고 가슴을 바재이던 녀인들은 박상근이 거의다 내려오고 위험이 사라지자 제발 떨어지기를 바랐다. 자기들의 마음이 합쳐진 류다른 창조품인 큰 보자기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던것이다. 그래서 뛰여내리라고 소리쳤고 정말로 떨어져내리자 놀람과 기쁨이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녀인들은 먼저 어린애가 상하지 않았나 팔다리를 주물러본 다음 상근에게로 돌아섰다.

어린애의 어머니인듯 한 중년의 녀인은 너무도 감동되여 박상근의 팔을 꼭 붙잡았다.

《고맙네, 고마워.… 젊은이가 아니였다면 우리…》

녀인의 눈이 갑자기 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누군가? 강철직장 용해공총각이 아니우?!…》

그제야 박상근은 녀인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철우동지 어머님이!… 그럼 저 애가 철우동지의?!…》

녀인이 눈을 슴벅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렇네.

박상근은 눈길이 당돌한 사내애를 덥석 들어 가슴에 꼭 껴안았다.

《네 이름이 뭐니?》

《김성남…》

《오, 그래,》

박상근은 목이 꺽 메여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고있던 안장코녀인이 언제 값을 올렸던가싶게 참외를 한보자기 싸주었다. 박상근이 받지 않으려 하자 그 녀인은 제편에서 어성을 높였다.

《우리 강선의 녀인들이 시장에 앉아있다고 해서 의리와 량심마저 팔아먹은건 아니라네. 자, 어서 받으라구!》

《!…》

다른 녀인들도 과일들을 싸서 성남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순식간에 온 강선에 퍼졌다.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또 쳐서 박상근이 아이를 안은채 굴뚝 꼭대기에서 떨어지는걸 녀인들이 받아냈다고 윤색되기도 했다. 박상근은 강선땅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받들리웠다.

그때부터 박상근은 김성남을 친조카처럼 생각하고 사랑해주었다.

쉬는 날에는 성남을 데리고 달마산에 가기도 했고 대동강에 나가 낚시질도 하고 미역을 감으며 즐기기도 했다.

박상근이 제강소에 배치되여온 후에도 그들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김성남이 대학을 졸업하고 제강소에서 일할 때 박상근은 그의 사업을 잘 도와주었고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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