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6
서재필은
공장에서 퇴직한 후의 2년동안 노상 장성강반에 붙어살았다. 할일없이 집에 있느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견딜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다가도 장성강에 나와 물고기와의 긴장하면서도 가슴이 요글요글거리는 심리전을 벌리고나면 모든 괴로움이 가뭇 사라지게 된다. 지금은 하루일과처럼 자연 굳어져버렸다. 수확도 괜찮았다. 어떤 날에는 팔뚝만 한 잉어와 메기를 댓키로나 잡을 때도 있었다. 무릇 열명의 낚시군들중에 먹는 재미에 낚시질을 하는 낚시군이 두명쯤 된다면 잡는 재미에 물고기를 낚는 낚시군은 여덟이다. 서재필도 그 여덟중의 한사람이였다.
서재필은 2년사이 숱한 물고기를 잡아 이웃들은 물론 공장에 있을 때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대접해왔다. 그 재미에 엉치에 군살이 배기도록 장성강의 너럭바위에 앉아있었다.
그가 남은 여생을 바쳐 터득한 낚시묘리의 비결은 그의 성격적인 측면에 많이 기인된다고 할수 있었다. 그는 하루종일 가야 묻는 말외에는 입을 봉하고있는 과묵한 사람이였다. 또 과묵한만큼 진중하고 침착하다. 직업적특성에서인지 아니면 성격적측면에서인지 그는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남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도 상대방이 무안을 당하리만큼 지써구니 머리를 숙이고있군 했다. 오죽했으면 입이 무겁고 진중한것을 남자의
서재필은 전형적인 왼손잡이였다. 밥도 왼손으로 먹고 용접도 왼손으로 한다. 다만 글을 쓸 때에만 오른손이 필요하다. 그가 어릴 때 어머니가 욕도 하고 매도 들었지만 끝내는 왼손으로 밥숟가락을 드는 버릇을 떼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옛 소학교담임선생만이 왼손으로 연필을 쥐려는 버릇을 떼주었다.
이런 그의 성격적특질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는 긍정적인 호평을 받지 못해도 낚시애호가들에게서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서재필의 왼손감각은 귀신 한가지였다. 그는 낚시대도 왼손에 잡는다. 고기가 물렸을 때 낚시줄의 켕김을 왼손으로 가늠하며 그 물고기의 종류와 크기까지도 알아맞춘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입을 하- 벌리고 경탄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로 여긴다. 한것은 그의 뛰여난 용접기술을 알고있어 그것이 이런 신묘한 감각을 주었다고 인정하기때문이다.
서재필이 소유한 용접기술의 장점은 바로 그 왼손감각이였다. 발전소사람들치고 그의 왼손감각이 마술사와 같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공장에 있을 때 젊은 용접공들이 술병까지 들고와서 그 비결을 알려달라고 조른적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때마다 재필은 눈을 흘기며 쓰겁게 돌아서군 했다. 용접기술은 어떤 비상한 묘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어쨌든 서재필의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 뛰여난 왼손감각은 그를 낚시명수로 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놀았다. 그는 2년동안 장성강반을 휘둘러보고는 물고기들이 노는 모양을 손금보듯이 환히 볼수 있는 예리한 눈초리를 가질수 있었다. 참새를 잡으려면 참새가 어디에 모이는가를 알아야 하듯 물고기를 낚으려면 물고기가 어디에서 노는가를 아는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물온도, 물흐름속도, 물깊이, 물바닥을 알아야 한다. 이 네가지 조건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은 낚시명수라고 말할수 없다.
서재필은 이 네가지 조건을 제꺽 감득했다. 그런 덕에 장성강일대의 낚시애호가들모두가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낚시명수가 되였던것이다. 사실 인생말년에 이런 락도 없었더라면 그는 주저앉아 이미전에 구새먹은 고목이 됐을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서재필은 울적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벌써 보리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아침부터 하늘은 찌뿌둥하게 흐려 때없이 줄금줄금 비를 쏟았다. 이런 날이면 마음이 더 갑갑했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 집을 찾아왔던 당비서를 랭대해보내고는 마음이 편치 않아 그 이틀밤을 꼬박 새웠다.
집안분위기도 썰렁했다. 아들녀석은 생각하는 품이 넓어 쉽게 아버지를 리해했지만 로친은 그냥 옹알거리며 아픈 상처를 헤집었다.
그날 당비서가 돌아가고 아들이 밤늦어 들어왔을 때 로친의 역증에 신물이 나 웃방문을 닫아버린 서재필은 연거퍼 줄담배를 태웠다. 그래도 로친의 역증은 끊치지 않았다. 그러는 로친이 미워났으나 아들에게는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로친 보란듯이 아들만 웃방에 불러들였다. 그다음 아들의 눈빛에 실려있는 의혹, 실망, 애타게 바라는 간절한 기대를 느끼며 무겁게 입을 뗐다.
《봉철아, 이 아버지를 원망해라. 난 지금도 어릴적 너의 여린 볼에 아픈 매를 안기던 일을 잊을수가 없구나. 그때 넌 우리 집에는
봉철아, 그러고보면 이 애비가 너에게 물려줄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난 량심껏 일했다. 허나 인생말년에
서재필은 《로동자집안의 대》라는 대목에 력점을 찍어 말했다. 그말속에는
그때 아들은 아버지에게 간청하다싶이 말했다.
《아버지! 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하지만 공장에 다시 나와달라는
서재필은 또다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밤새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아들의 간절한 청을 수십번이나 음미해보았다. 하지만 선뜻 아들의 의향을 따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의 가슴에 쌓인 괴로움의 키가 아직은 너무 높았던것이다. 이런 때는 장성강물에 낚시대를 던져 넣고 모든것을 잊는것이 상책이라고 서재필은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아침부터 낚시질을 나가려고 했는데 때없이 비가 내려 일이 틀어지고말았다.
서재필은 하는수없이 전날에 파왔던 찰진흙에 콩가루와 번데기가루를 섞어 잉어먹이를 만들었다. 그런데 저녁시간이 되면서 소나기가 멎고 날이 잠풍해졌다. 이 시간이면 고기를 낚는데는 호경기시간이다.
서재필은 로친의 눈을 피해 낚시도구를 들고 슬그머니 집을 나와 부리나케 장성강으로 나갔다. 한바탕 소나기를 먹은 장성강물은 희뿌옇게 흐렸으나 그 물흐름새는 예전그대로였다. 이런 날씨에 이런 물에서는 잉어가 잘 낚아진다.
서재필은 낚시를 강복판에 힘껏 던져넣었다. 긴장한 전투가 시작되였다. 자세도 예전그대로 출발선에 나선 단거리달리기선수 한가지이다.
낚시를 던져넣은지 십분도 안되여 묵직한 놈이 요동치는 감각이 마쳐왔다.
(허, 분명 잉어로군. 요동이 심한걸 보니 처음 낚시에 걸려든 놈이 분명해. 가만, 줄을 늦추어볼가? 이크! 햇내기로군. 다시한번 당겨보자. 어랍쇼, 고분고분해졌는걸. 이젠 공기를 먹여볼가? 어때, 맛이 괜찮지?)
서재필은 흥분하기도 하고 또 놀라기도 하면서 야릇한 쾌감을 맛보고있다.
하늘에서는 또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거나말거나 그는 온몸이 화락하니 젖어가지고 끝내는 잉어를 강변풀숲으로 끌어냈다.
서재필은 서둘러 푸들쩍거리는 잉어를 그물코가 숭숭하게 뚫린 고기 망태기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분명 로친의 지청구가 요란할것이다.
(까짓, 잉어를 낚았으면 그만이지!)
서재필은 배심이 든든해가지고 집문을 열었다. 그가 전실에 들어서는데 로친이 달려나와 숨찬듯 속삭였다.
《당비서동지와 기술발전부기사장이 왔수다.》
서재필은 굳어졌다. 전실 한쪽에 세워져있는 옷걸이에 젖은 작업복이 걸려있었다. 서재필의 심장은 웬일인지 놀란 토끼를 안은듯 쿵쿵 뛰였다.
로친이 낚시도구와 잉어가 푸들쩍거리는 고기망태기를 누가 볼세라 얼른 세면장에 넣었다.
서재필이 옷을 갈아입는데 로친이 다가와 또다시 속살거렸다.
《령감,
무슨 큰 비밀인가 해서 귀가 벌름해졌던 서재필은 눈을 찔 빨았다.
《별로친 다 봤다. 비오는 날 낚시질 나갔댔으면 잡아갈텐가?》
서재필은 로친의 참견질을 못마땅히 여기며 아래방으로 들어갔다. 리성복과 석남흥이 약속이나 한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반겼다.
《이 궂은날 어딜 다녀오시오? 어서 아래목에 내려앉으십시오.》
리성복이 친절하게 서재필을 아래목으로 이끌었다.
《아, 일없습니다. 이거 기다리게 해서 안됐수다.》
서재필은 말은 겸손하게 했으나 이틀만에 다시 자기 집을 찾아온 당비서를 대하고보니 가슴이 후두둑거렸다.
세사람은 사이를 두고 둘러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리성복이 먼저 서두를 뗐다.
《서동무, 에돌것없이 직방 말합시다. 내 오늘 기업소를 대표하여 동무에게 사죄하러 왔습니다.》
《?…》
서재필은 어리둥절하여 리성복을 쳐다보았다. 리성복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지금껏 서재필동무가 눈병도 앓고해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직한줄로 알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더군요. 나나 우리 기업소의 일군들이 일처리를 잘못했으니 늦게나마 사죄합니다.》
서재필은 말없이 고개를 외로 틀었다.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그때 기사장은 당위원회와의 합의끝에 자기를 퇴직시킨다고 말했었다. 그 당위원회를 과연 누가 대표하겠는가 말이다.
리성복의 진심어린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내가 서동무에게서 받은 랭대는 응당한것이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줄 모르는 나같은 사람이 무슨 당일군이겠습니까. 날 욕하십시오.》
《…》
여전히 고개를 틀고있는 서재필을 그냥 보기가 딱했던지 석남흥이 한마디 끼여들었다.
《아바이, 이젠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리고 당비서동지앞에서 속시원히 하고싶은 말을 다 하십시오. 아바이마음이야 늘 전기에 가있지 않았습니까.》
했어도 서재필은 한본새로 앉아있었다. 부엌에서 로친의 헛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쓰다달다 반응하라는 신호인것 같았다.
지루하고 따분한 침묵이 지속되던 끝에 서재필은 마침내 움씰하고 자리를 고쳐앉았다. 두사람의 시선이 일시에 서재필에게로 쏠려졌다. 서재필은 주머니를 부시럭거리더니 담배 한대를 꺼내여 입에 물었다. 그의 두툼한 입술새로 실한 담배연기가 뭉게뭉게 뿜어져나갔다.
드디여 서재필의 입에 걸려있던 자물쇠가 벗겨졌다.
부엌에서 또다시 마른기침소리가 들렸다. 어디다 대고 그런 까다로운 질문을 하는가 하는 질책의 신호였다.
리성복은 심중하게 대답했다.
《예, 큰 범주로 말하면 우선 시대의 절박한 요구로 받아들이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다음은 당비서의 요구보다도
《좋습니다. 그럼 내 말이 터진김에 한마디 합시다.》
갑자기 서재필은 억양을 높였다. 리성복도 석남흥도 부엌에서 귀를 강구고있는 그의 로친도 긴장해한다는것이 알렸다.
그중에서도 제일 속이 조마조마해난것은 그의 로친이였다. 이제 저 령감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터질지 모른다. 그것도 여느 사람이 아니라 당비서앞에서 실언이라도 하면 어쩌누?… 방안공기는 다치면 팡 하고 터질만큼 긴장해졌다.
마침내 서재필의 입이 터진 깨자루에서 깨가 쏟아지듯 했다.
서재필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꺼지게 한숨을 내불었다. 느닷없이 눈물이 났다. 전기를 위하여 뼈를 깎아온 그였다. 그 시절에는 어떤 평가나 보수를 바란적이 없었다. 그저 나라와 매 가정, 개개의 사람들에게 순간도 없어서는 안될 힘이고 빛인 전기를 제 손으로 마련해보낸다는 순수한 기쁨이 자기의 전생활을 지배했을뿐이였다. 하지만 그 전기와 리별하고보니 자기
손에 든 담배는 불이 꺼진지 오래였다. 서재필은 쪼프린 눈으로 불꺼진 담배대를 쓸쓸히 들여다보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난 우리 로친의 표현대로 고집이 소힘줄같수다. 그러다나니 일군들의 눈에 나기가 쉽지요. 그까짓 용접재간이 다 뭐요, 그런데도 날보고 기술코대라고 몰아붙이면서… 더 말하지 않겠소만 난 화력발전소와 담을 쌓으리라 결심했던 사람입니다. 솔직히
그래도 나같은걸 아직은 공장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불러주는게 고마워서 울었고 한켠으로는 사람운명을 장기쪽 옮겨놓듯 하려드는 일부 공장일군들의 그릇된 처사에 격분해서 울었수다. 그런데 오늘
서재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지막말을 맺았다.
순간 리성복의 가슴이 얼음장 터갈라지듯 쩡하니 금이 갔다. 그 금이간 사이로 용암처럼 뜨거운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서재필은 마음속에 여전히 전기를 안고살아온것이였다. 여태 꽉 닫겨져있던 그의 가슴속에는 티없이 눈부신 빛이 발산되고있었던것이다. 그의 가슴을 활짝 열어주어 그 빛이 자기 주위뿐아니라 공장을, 거리를, 나아가서 온 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밝게 채색해주도록 만드는것이 바로 당일군인 자기의 소임이 아니겠는가.
어머니는 오만자루의 품을 들여 자식들을 키운다. 그랬다. 슬하에 열자식을 둔 어머니에게 물어보라. 열손가락을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듯이 어머니에게는 열자식모두가 하나같이 귀하다. 그 귀한 자식들을 위해 어머니는
어디 열자식모두가 하나같을가? 개중에는 끌날같은 자식도 있고 병든 자식 또 못난 자식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그 자식들을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에는 차별이 없다.
어머니는 병든 자식, 못난 자식일수록 더 사랑을 기울이고 정을 기울인다. 그 사랑, 그 정은 곧 자식들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헌신이다.
그래서 일찌기
리성복은 자기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서재필이 진정 고마왔다.
그는 서재필앞에 가지고온 술병을 꺼내놓았다.
《자, 서동무, 난 정말 기쁨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술이나 한잔씩 나눕시다.》
그 술이
서재필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 웃방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부시럭거리던 그는 큰 지함을 무겁게 들고나와 방 한가운데 내려놓았다. 지함에서 병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재필은 지함뚜껑을 열었다. 호기심에 잔뜩 어린 두쌍의 눈동자들이 지함에 쏠렸다. 지함에는 술병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놀라운것은 그 모든 술병들이 하나하나가 다 각이한 형태와 빛갈, 각이한 상표를 가진것들이라는것이였다.
이윽토록 그것들을 감회깊이 들여다보던 서재필이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그가운데서 어느 한병을 정중히 골라들었다.
《자, 이 술을 마십시다.》
그가 꺼내든 흰 술병은 척 보매도 무척 오래된 술병이라는것이 알렸다. 상표는 날아 희뿌옇고 목에 두른 빨간 넥타이도 연분홍빛으로 퇴색되여있었다. 유표하게 눈길을 끄는것은 상표 웃부분에 만년필로 《10월 9일》이라는 글이 또렷하게 적혀져있는것이였다.
리성복은 깜짝 놀랐다. 그 날자는
리성복은 술병을 든 서재필의 손을 두손으로 뜨겁게 감싸쥐였다.
《서동무, 이러지 마시오. 이 술은 서동무가 가보처럼 건사해둔것이 아닙니까, 가보처럼 말입니다.》
《원
순간 리성복은 목구멍으로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바로 그 선물술 한지함은 비록 많다고 할수 없어도 거기엔 서재필의 성실한
서재필은 결코 작고 얕은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크고 깊은 사람이였다. 그 크기를 재여보려 하지 않고 그 깊이에 풍덩 빠져보지 못한 자책감에 머리를 들수 없었다.
리성복은 서재필의 악마디진 꽛꽛한 손을 틀어잡았다. 그 손길을 타고 진정으로 고마운 정이 전류처럼 흘러가고 흘러왔다.
《서동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서재필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눈굽을 훔쳤다. 그리고나서 부엌에 대고 제법 큰소리로 웨쳤다.
《여보, 로친! 거 내 잡아온 잉어로 생선국이나 푸짐히 끓여들여오오!》
서재필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화기에 넘친 로친의 대답이 들려온다.
《알았수다! 내 오늘 잉어탕을 멋들어지게 끓여 당비서어른에게 대접하리다!》
《가만, 잉어밸을 딸 때 열을 주의하오.》
서재필은 아무래도 덜퉁한 로친에게 맡겨두기가 안심치 않은지 서둘러 부엌에 내려섰다.
《보아하니
서재필은 기분이 붕 떠있었다. 그는 일생 오늘처럼 기쁜 날이 없은듯 했다.
사실 서재필이 제 손으로 잡은 잉어를 당비서에게 대접해보기는 처음이다. 지금껏 숱한 물고기를 잡아 이웃은 물론 더러 수고하는 공장일군들에게도 대접했다. 하지만 기업소의 크고작은 일을 도맡아안고 밤낮없이 뛰고있는 당비서에게는 처음으로 대접했던것이다.
서재필은 부엌으로 내려가 로친을 제껴놓고 제 손으로 잉어를 손질했다. 그러느라니 그놈의 잉어를 낚을 때 마쳐오던 짜릿한 흥분이 되살아나는듯 했다. 역시 낚시질은 좋았다. 하지만 이제 다시 용접고대를 손에 잡는다는 생각은 더더욱 가슴이 터질듯 부풀게 했다. 단번에 고대질로 쇠붙이를 이어놓고 망치로 탕탕 두들겨 그 세기를 측정할 때 오는 흥분은 용접공들 아니면 체험하기가 힘들것이다. 그렇다, 빛을 창조하는 용접의 진미를 어찌 한가한 낚시질에 비길수 있으랴. 할수 없어 잡았던 왼손에 다시 용접고대를 쥐여준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 서재필이였다.
식칼을 잡은 서재필의 왼손은 벌써 용접고대를 잡은듯 후들거린다. 로친이 주의하라는 귀뜀을 주어서야 비늘을 벗겨낸 잉어를 칼도마에 올려놓고 토막을 쳤다. 그다음 대가리부분에 살이 넙적 가붙게 잘라냈다.
《어두진미라고 이건 당비서동지의 몫이다!》
서재필은 토막친 잉어를 팔팔 끓는 가마에 덤벙덤벙 집어넣었다. 드살군으로 소문난 그의 로친도 난생처음 속통머리 커진 령감이 고마운지 잔소리 한마디없이 살갑게 보조해주었다.
리성복과 석남흥은 땀이 찔 나도록 잉어국을 대접받고 밤이 어지간히 깊어서야 그의 집에서 나왔다.
…자정이 훨씬 지났지만 리성복의 집 창문가에는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리성복은 탁상등빛이 환히 비치는 책상에 마주앉았다. 그의 앞에는 일기장이 펼쳐져있다. 도당학교시절부터 일기를 써오는 그였다. 그 시절에 바로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정을 통해 일기가 사업과 생활에서
오늘은 리성복이 서재필의 집을 두번째로 찾은 날이다. 처음 서재필에게서 랭대를 받은 날밤에도 괴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썼었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이 가볍고 기쁘기만 하다.
일기장을 마주하고보니 불현듯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그마한 키에 손끝이 여물고 바늘이 들어갈 틈없이 이악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보리단을 져도 남정들 못지 않게 졌고 나무단을 묶어도 남정들이 혀를 차게 단단히 묶었다. 그런 어머니였기에 아버지는 전상자였지만 슬하에 여덟자식을 두고 하나같이 훌륭히 키워냈다.
리성복은 그런 어머니를 둔 자식된 긍지를 한껏 느꼈다. 그 어머니의 손길이 아니였더라면 여덟형제는 해방전에 가난에서 또 전쟁의 엄혹한 시련속에서 살아나지 못했을것이다.
어머니의 손은 북두갈구리처럼 거칠었다. 허나 그 손길은 무엇에 비길데없이 따스했다.
리성복은 어머니의 손길을 어루쓸듯 일기장에 한자한자 글을 적어나갔다.
《어머니! 오늘 밤은 꼭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다른 형제들보다 키가 작고 몸이 약하다고 치마폭에 누룽지라도 감추셨다가 내 입에 넣어주군 했지요. 그 누룽지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정말 별맛이였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억세여진 내가 군대로 나갈 때 어머니는 100여리 읍거리까지 따라나와 바래주셨지요.
어머니! 전 그날에 어머니의 눈가에 피여난 대견함으로 빛나던 미소를 평생 잊을수 없습니다. 정말이지 어머니의 그 사랑에 떠받들려 전 오늘 이렇게 당일군으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사람들의 정치적생명을 책임지지 못해 한
어머니! 저를 키워준 어머니처럼 사랑을 기울이고 정을 쏟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전 뒤늦게야
며칠전 우리 화력발전소의 전체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2호발전기를 공장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겠다고
전 이제 그 로동자가 큰일을 하리라봅니다. 이 아들을 믿어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전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영예로운 과업을 수행하고
그날이 오면 어머니에게 다시 펜을 들겠습니다.》
리성복이 일기장을 덮었을 때에는 새벽 1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