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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5


리성복이 서재필의 집을 방문하고 돌아온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바쁘게 흘러간 날일수록 보람차고 긍지높은 날이다. 하지만 리성복은 그 이틀이라는 길지 않은 날에 자신의 당사업에 대해 심각히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갓 예순고개를 넘긴 사업에서나 생활에서나 년장자로 불리울만큼 인생의 황홀한 마무리를 짓게 될 사람이다. 무릇 이 나이의 사람들은 자기 사업에 대한 긍지감이 하늘만큼 높아 인생체험의 절정에 오른듯 사람들을 손아래로 굽어보려 하기 쉽다.

리성복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사업년한이 수십년을 헤아린다. 그의 당사업은 총각시절부터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다.

그는 군대에서 제대되여 1년만에 기계공장에서 당세포비서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때는 왕성한 패기와 열정, 완강한 투지로 일관된 당초급일군이였다.

그러던 그는 당의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일군양성의 믿음직한 학교인 도당학교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고 어느 한 시당의 지도원(당시)으로 배치받아 몇년사이 부부장의 사업을 맡아보았다.

그후 리성복은 도당위원회에 소환되였다. 도당위원회에 올라가서도 영천화력발전소를 담당하여 당사업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친 리성복은 그후 여기 영천화력발전소 초급당비서로 내려오게 되였던것이다.

이즈음에 와서 그는 자신의 오랜 당사업년한에 대해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화력발전소의 종업원들에게서 진심으로 되는 존경과 신뢰를 받고있었다. 구내에서나 마을에서나 그를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가식없이 깍듯이 인사를 했고 일신상의 문제든, 사업상문제든 서슴없이 터놓고 그의 조언과 방조를 청했다.

서재필도 그전에는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다. 그런 사람에게서 리성복은 뜻하지 않게 랭대를 받았던것이다.

그의 랭대앞에서 리성복은 아연해졌다. 이럴수가 있는가. 생각같아서는 그를 무섭게 닦아세우고싶었다. 하지만 자기는 화력발전소에서 퇴직한 사람이니 이젠 당비서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권한이 없다고 딱 잘라말하는 그앞에서 어안이 벙벙해질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그랬다. 서재필을 무슨 명분으로 닦아세운단 말인가?

그 순간 리성복은 자신의 당사업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연막처럼 가리워져있던 구멍을 정면으로 찌른것은 바로 서재필이였다.

서재필이 용접의 방법으로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안을 기술발전부기사장에게 귀뜀해주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리성복은 그가 눈물나도록 고마왔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 인사도 하고 다시 공장에 나와 2호발전기의 복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던것이다.

하지만 서재필은 리성복의 진정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그의 청도 거절했다. 거절했을뿐아니라 다시는 화력발전소와 상대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돌아앉아버렸다.

무엇이 그를 그렇듯 랭정하게 만들었는가 하는것은 줄곧 마음속의 수수께끼로 남아 리성복을 괴롭혔다.

언제인가 기사장에게 서재필을 다시 공장으로 데려오자고 했을 때 기사장은 서재필의 용접기능은 인정하면서도 그의 인간적인 측면은 부정해버렸었다. 리성복은 그때 서재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다. 그랬더라면 그런 랭대도 받지 않았을것이고 서재필의 마음속 문을 열어볼 방책을 찾을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고보면 기사장의 도리머리도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필에 대한 인간적인 파악도 없이 그저 당비서라는 직권을 믿고 자기의 말 한마디면 무슨 일이든 다 해결된다는 생각에 너무도 쉽게 그의 집문턱을 넘어섰던것은 아닌지.

따져보면 서재필에게서 받은 랭대는 응당한 귀결이였다. 그러고도 오랜 당사업년한을 자부하며 경험글까지 쓰겠다고 했으니 자신이 얼마나 수양없는 사람인가. 후회가 뼈를 저리게 했다. 언제나 후회는 때늦은 법이고 그 맛은 소태처럼 쓰거운 법이다.

리성복이 서재필의 일로 이렇듯 괴로와하는것은 자신의 당사업에 많은 허점이 있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은것뿐만이 아니였다.

지금 발전소의 전체 종업원들은 숨죽은 2호발전기를 자체의 힘으로 살려내서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자고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하지만 서재필은 그렇듯 혁신적인 안을 발기하고도 공장에서 퇴직했다는 이 한가지 리유로 거세찬 격류속에 뛰여들지 않고 기슭에서 맴돌고있다. 그를 그 헌신의 대오에 다시 들여세우는것이 바로 당비서의 몫이라는것을 리성복은 너무도 잘 알고있는터였다.

서재필을 하루빨리 공장으로 데려내와야 한다. 그러자면 든든하게 빗장을 건 서재필의 마음속 문을 열어 밝은 빛이 아낌없이 흘러들게 해야 한다. 그 문을 열려면 그의 가슴속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불신의 감정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것이 중요했다.

불현듯 그의 머리속에는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이 떠올랐다. 그는 서재필과 남달리 각별한 사이이다.

리성복은 석남흥을 자기 방으로 부르려고 송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던 그는 주춤했다. 어쩐지 그를 자기 방에 불러 담화하면 격식을 차리는것 같아서였다. 그럴바에는 그의 방으로 찾아가는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는 소나기가 내리고있었다. 이따금 비풍에 휘뿌려지는 비방울이 유리창문을 때렸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날씨였다. 리성복은 옷걸이에 걸린 우산을 벗겨들고 밖을 나섰다.

기술발전과는 당위원회청사와 2백메터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비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어대는지 우산이 뒤집힐것 같았다. 리성복은 우산을 쓰는둥마는둥하며 달렸다.

그가 2층에 있는 기술발전과에 들어섰을 때 다행히 석남홍은 혼자서 책상에 무슨 도면인가를 펴놓고 거기에 열심히 끄적거리고있었다. 옷이 젖어가지고 자기 방에 들어선 당비서를 띠여본 석남흥은 놀랜듯 피끗 바깥부터 내다보았다. 아마 도면에 열중한 나머지 밖에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것도 모르고있은것 같았다.

《비서동지가 어떻게?…》

《왜? 못 올데를 왔소?》

《아니, 그런게 아니라 밖에 비가 쏟아지는데…》

석남흥은 얼른 보온병에서 물을 따라 리성복에게 권했다.

《자, 더운물입니다. 그러다 감기에라도…》

《감기는 무슨… 요 코앞에서 뛰여왔는데, 하여튼 마시기요.》

리성복은 고뿌에 김이 문문 나는 더운물을 받아 후후 불며 맛스럽게 들이마셨다.

《그래 뭘 보댔소?》

《저…》

어째서인지 석남흥은 그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펴놓았던 도면을 슬그머니 덮어버렸다.

《왜, 비밀이요?》

《아닙니다. 아직 완성된것도 아닌 착상에 불과한것이여서…》

《?…》

지꿎은 당비서의 시선에 그만 어쩔 도리가 없었는지 석남흥은 《좋습니다.》 하고는 덮었던 도면을 끌어당겨 리성복앞에 펴놓았다.

《실은… 우리 화력발전소에서 연료는 석탄과 중유가 기본을 이루지 않습니까. 그러니 중유를 절약하는 문제는 실리보장의 중요고리지요.》

《그래서?》

어느 사이 리성복은 호기심에 불이 달려 걸상을 석남흥쪽으로 바싹 끌어당겨앉기까지 했다. 석남흥도 차츰 흥분되는지 손세를 써가며 열을 올렸다.

《지금까지 우린 보이라착화시 랭상태로 불을 지피기때문에 정상운전상태까지 도달하려면 굉장히 많은 중유가 소비되군 했습니다. 그래 전 보이라와 타빈을 미리 예비가열시켜 6~8시간 걸리는 기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이자는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중유도 거의 절반이상은 절약할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보이라속성착화방법이랄가. 이제 2호발전기까지 살아나 기동하게 되면 중유소비가 더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리성복은 귀가 번쩍 열렸다. 실로 막대한 절약이였다. 그렇게 되면 발전소의 중유소비량은 지금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 예비가열방도는?》

《이미 기동하는 보이라의 생증기를 리용해볼가 하는데… 비서동지, 이거 아직은 착상에 불과합니다.》

《이 동무 정말!》

리성복은 너무 반가와 그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 막 흔들어댔다. 아무모로 보아야 석남흥은 갈데없는 재간둥이에 열정가, 발전소의 보배감이였다. 무엇보다 기쁜것은 그가 남들은 아직도 과학적으로 신심을 가지지 못하는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복구를 확고히 믿고 벌써부터 그날에 대비하고있는것이였다.

《대단하오, 대단해. 빨리 다그치오. 무엇이 걸렸는지 다 제기하오, 알았소?》

공교롭게도 그 순간 전화종이 울렸다. 석남흥이 송수화기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동지. 예, 제 부기사장 석남흥입니다.》

한동안 전화를 받고난 석남흥은 리성복에게로 돌아서며 그 내용을 알려주었다.

《성과학기술국 국장동지한테서 온 전화입니다. 다음주에 현지에서 2호발전기복구를 위한 기술협의회를 조직하겠으니 그 준비를 잘하라고 했습니다.》

《…》

리성복은 이미 며칠전에 전화로 과학기술국장인 지용수를 만나 기술협의회를 빨리 조직해달라고 독촉했었다. 그때 지용수는 리성복에게 용접의 방법으로 2호발전기를 복구하겠다는 발전소의 제의가 과학기술적으로 담보되지 않는 조건에서 긍정할수 없다는 암시를 했다. 하지만 리성복은 그 문제는 기술협의회에서 결정될것이니 하루빨리 협의회부터 조직해달라고 요구했던것이다.

며칠동안 석남흥의 얼굴은 협의회에 제출할 기술문건을 만드느라 밤을 패워서인지 별스레 꺼칠해보였다. 측은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리성복은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여보 부기사장동무, 내 한가지 알고싶은게 있어 찾아왔소.》

석남흥은 긴장한 눈길로 당비서를 바라보았다. 당비서가 일부러 비까지 맞으며 자기를 찾아온것만 봐도 무슨 심중한 이야기를 나누려는게 틀림없다고 단정한듯 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내 이틀전에 서재필아바이네 집에 갔댔소.》

《예, 저도 어제 저녁 서재필아바이를 만났습니다.》

리성복은 약간 놀라 되물었다.

《그렇소? 그가 뭐라고 했소?》

《아바인 비서동지에겐 안됐지만 공장에 다시 나갈 의향은 없다고 합니다.》

석남흥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어제 성에 제출할 기술문건을 작성하던중 모를 문제가 있어 서재필을 찾아갔었다. 석남흥의 질문에 충분한 대답을 주고난 서재필은 일어서려는 그를 그냥 붙잡고 먹지도 않던 술을 꺼내놓았다. 그다음 마른 안주 한접시를 놓고 제먼저 술 한고뿌를 쭉 들이켰다.

어지간히 술기운이 오르자 서재필은 석남흥에게 분명 당비서가 보내서 왔겠는데 그래 무엇을 더 알고싶어 그러는가고 따져물었다. 석남흥이 눈이 휘둥그래서 그게 무슨 소린가고 묻자 서재필은 어제 당비서가 찾아왔었다는 소리를 하면서 설분을 쏟기 시작했다.

《당비선 내가 용접기능이 높다고 코를 세우는걸로 알고 노여워하던데, 천만에! 가서 이르게, 난 그렇게 우쭐대는걸 질색하는 사람이라구. 기업소의 일부 간부들 꼴이 눈에 거슬려 그러는걸세. 필요하면 다시 끌어들이고 제 비위에 거슬리면 헌 신짝 내던지듯 하는!… 알겠나?》

서재필의 울분은 리해되는것이였다. 사실 그가 년로보장을 받은것은 본인의 의향에서가 아니였다.

로동법에 년로보장나이가 되면 무조건 퇴직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본인의 의향에 따라 더 일할수 있는 조건이 있으면 일할수 있는것이다. 더우기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에게는 퇴직하고싶어도 기업소가 요구해서 한두해 더 붙들어놓는것이 보편적이였다. 현재 열조종실의 임용국아바이도 칠순을 넘겼지만 아직도 자기 부문에서는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왕성하게 일하고있다.

서재필의 퇴직을 알았을 때 석남흥은 기사장을 찾아가 그의 년로보장문제를 가지고 의견을 제기했다. 아직도 건강하고 더구나 특수용접에서는 그를 당할 사람이 없는 조건에서 발전소가 오히려 손해를 볼수 있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러자 기사장은 이미 당위원회와 토론된 문제이니 그렇게 개별적으로 찾아다니지 말라고 딱 잘라말했었다.

비로소 석남흥은 서재필의 퇴직이 기사장의 독단의 결과물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결국 서재필은 서글픔과 원망에 싸여 집으로 들어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러니 다시 공장에 들어오지 않겠는가고 청탁한 당비서의 제의를 올곧게 받아들였을리 만무했다.

《기사장이? 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리성복은 놀라움에 싸여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서재필이 자기의 심한 눈병때문에 자칭하여 년로보장을 받았다고만 생각하고있던 그였다.

석남흥의 말을 듣고보니 피뜩 생각되는것이 있었다. 언젠가 리성복은 공장병원앞에서 눈약을 넣고 나오는 서재필을 보고 눈이 편치 않은가고 물었던적이 있었다. 그때 서재필은 크게 다른 일은 없다고, 간밤 긴장한 용접을 하느라 좀 무리했을뿐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얼마후 기사장이 리성복을 찾아와 특수용접만은 젊고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로 로력을 보충했으니 년로보장이 된 서재필아바이는 집으로 들여보내야 하겠다고 제의했다.

리성복은 저으기 의아쩍어 되물었다.

《서재필동무야 기업소의 최고용접기능공인데 건강이 허락되면야 몇년은 더 일할수 있지 않소?》

《저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아바이가 제발로 찾아와 자기는 눈병도 심하고 또 기능공양성문제에서 사람들의 뒤소리를 듣는게 싫어 자꾸 년로보장을 받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들여보냅시다.》

리성복은 더 할말이 없었다. 아무리 기능공이라 해도 사회주의로동법이 있는 한에야 본인의 의향에 따라야 했다. 그래서 서재필의 퇴직문제는 당위원회의 합의로 정식 결정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서재필이 자기를 외면한 사실이 앞뒤가 환하게 련결되였다. 병원에 입원한 지배인의 제의도 있고 하여 그의 후임으로 내정할 생각까지 품었던 기사장에게서 일군으로서는 절대로 허용할수 없는 인간성의 상실을 보게 된것이 가슴아팠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 모든것은 자기자신의 사업에서의 빈구석이 초래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래, 결국 서재필의 퇴직은 나의 눈먼 당사업이 빚어낸 결과물이였어!)

리성복은 스스로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정작 인정하고나니 가슴은 더욱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그 아픔이 2년세월 서재필이 당한 인간적 좌절로부터 겪지 않을수 없었을 마음속 고충에야 어찌 비길수 있으랴.

(가자! 가서 진정을 주자. 서재필의 마음속 문을 활 열어제끼도록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자. 그도 감정을 가진 인간일진대 진심의 호소앞에 그렇듯 랭담할텐가. 가자!)

당비서의 내심을 알리 없는 석남흥이 슬며시 권고했다.

《비서동지,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언제인가는 서재필아바이도 꼭 비서동지를 리해할것입니다.》

《아니, 난 당장 서재필아바이를 찾아가 진심을 나눌 결심이요. 그래 나와 함께 가주지 않겠소?》

리성복은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는 이미 소나기가 멎은 뒤였다. 그러나 하늘을 꽉 덮은 비구름때문인지 아니면 해질무렵이 되여서인지 밖은 어둑검컴했다. 시계를 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였다. 이제 서재필의 집을 찾아가면 그는 필경 집에 있을것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으니 설사 낚시질을 떠났다가도 되돌아서기 십상이다.

석남흥도 함께 따라일어섰다. 그는 당비서의 휘발유같은 성격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부기사장동무, 내 사무실에 들렸다 가겠으니 5분후에 정문에서 만나기요.》

리성복은 서둘러 기술발전과를 나와 당위원회청사로 향했다.

사무실에 들어선 리성복은 서류함을 열었다. 그는 서류함에서 병모가지에 빨간 넥타이를 두른 고급술병을 꺼내들었다. 그 술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태양절을 맞으며 화력발전소로동계급과 일군들에게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술이였다.

리성복은 평시에 술을 한잔도 입에 대지 못한다. 그는 술이 생기면 꼭꼭 서류함에 건사해두었다가 요긴할 때마다 쓰군 했다.

지금 꺼내놓은 술도 그가 아끼고아껴오던 선물술이였다. 사나이들이 앉아 해묵은 오해를 씻는데야 술이 좋지.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도 이 기회에 다시 되새겨볼겸 몸을 달구고 마음을 달구는데는 술이 좋을것 같았다.

리성복은 선물술을 흰 종이로 정히 싸들고 방을 나섰다.

그가 공장정문에 나서니 석남흥이 기다리고있었다. 공교롭게도 떠나려는 참에 또다시 소나기가 쏟아졌다.

《젠장,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때없이 비가 쏟아지니… 부기사장동무, 젖으면 뭐라오. 자, 달리기요!》

《예, 달려봅시다!》

두사람은 줄대같은 굵은 비속을 뚫고 서재필의 집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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