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1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4


산형강을 성공적으로 회수한 세사람은 밤이 어지간히 깊어서 동뚝길에서 헤여졌다. 리동혁은 출출한 배를 달래야겠다면서 합숙으로 부리나케 뛰여가면서 위협조로 서봉철에게 소리쳤다.

《범이 나타날수 있으니까 호위병노릇을 잘해야 합니다!》

서봉철은 그가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한다는것을 알았다.

(자식, 능청스럽긴…)

지련희 역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얼른 간격을 두고 자기네 큰어머니의 집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서봉철은 말없이 처녀의 뒤를 따랐다.

밤의 정적이 깃든 호젓한 동구길이였다. 어디선가 개가 컹컹 짖어대고 멀지 않은 마을에서는 하나둘 전등불이 꺼지고있었다. 달빛만은 점점 휘영청 밝아지며 그들에게 《왜 벌써 잠을 자?》 하고 꼬드기는것 같았다.

갑자기 이상하게 혀가 굳어져 서봉철은 졸장부같은 자신을 저주했다. 그저 마음을 툭 터놓고 아무 이야기나 하면 그만인데 어째서 옹색스럽게 입을 봉하고있는지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오늘 밤의 적잠수함인양작전에서는 자기가 얼마나 호방하게 굴었던가.

그 오래동안의 침묵이 처녀를 불안스럽게 했는지 지련희쪽에서 불쑥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 봉철동지, 어릴 때부터 여기 영천에서 살았겠지요?》

《그랬소. 군사복무시절을 내놓고는.》

《해병으로 복무하였겠는데 왜 배를 계속 타지 않았어요?》

련희는 주동적으로 이야기화제거리를 끌고나갔다. 이제는 서봉철의 인간됨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처음은 흠썩 잘나고 호감이 가는 청년이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남녀관계에서는 서로 넘지 말아야 할 계선이 있어 련희는 그 계선에 방어진을 든든히 치고 서봉철을 대해왔던것이다. 허나 언제부터인지 그 계선이 물먹은 토담벽처럼 스르르 허물어졌다. 허물어졌다고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좀 꺼려했다면 서봉철이 자기의 마음속 생각을 말짱 들여다볼것만 같아 살짝 막을 쳐놓은것밖에 없다.

《련희동무! 난 바다를 사랑했소. 출렁이는 파도, 아득한 수평선에 떠오르는 해돋이, 임무를 수행하고 군항으로 돌아올 때마다 느끼던 숭엄한 감정, 정말 이 바다와 헤여지자니 마음이 허전했지. 부대의 지휘관들은 해운대학을 졸업하고 큰 무역선을 타는게 어떤가고 의향을 묻더군. 생각만 해보아도 가슴이 설레더군.》

서봉철은 잠시 동안을 두고 련희쪽으로 돌아섰다. 희뿌연 달빛에도 그가 한껏 흥분되였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래서요?》

련희는 호기심이 한껏 어린 눈길로 서봉철을 바라보았다.

《그래 부대정치부에서는 나를 해운대학에 추천해주었지. 제대명령을 받기 며칠전 난 사단정치부로 추천서를 받으러 올라갔지. 정치부장의 방에 들어서니 제대명령을 받으러온 수십명의 제대군인들이 있었소. 난 처음 그들도 나처럼 대학입학추천서를 받으러 온 병사들인줄 알았지. 그런데 얼마 안있어 정치부장동지가 그들에게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달하는게 아니겠소. 난 머리를 들수가 없었소. 그들이 받은 명령이 어떤 명령이였는지 아오.… 나라의 전력생산을 높이기 위해 발전소로 배치되여갈데 대한 명령서였소. 그런데 나는 고향도 화력발전소가 자리잡고있는 영천이고 더우기는 아버지가 한생을 화력발전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였는데 발전소와는 거리가 먼 바다로 인생의 방향타를 잡으려 했으니… 난 심한 량심의 가책을 느끼며 정치부장동지가 내미는 추천서를 되돌려주며 늦게나마 아버지의 땀이 깃들고 빛을 떠나 살지 못하는 근면하고 성실한 발전소로동계급을 찾아왔소.》

서봉철은 련희에게 모든것을 이야기했다. 련희도 서봉철의 진정이 넘친 사실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번엔 서봉철이 련희에게 물었다.

《련희동무, 내 한가지 몰읍시다. 동문 집이 평양인데 어떻게 화력발전소로 왔소?》

이 물음 또한 서봉철이 긴하게 알고싶은 문제였다.

지련희가 흰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는다는것이 알렸다. 이미 대답할 준비가 되여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그가 유쾌하게 대답했다.

《우리 큰아버지와 헤여지고싶지 않아서예요. 큰어머니도 그렇고… 제가 꼭 철없는 아이들처럼 놀고있지요?》

《아니, 그렇게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소.》

《거짓말!》

응석처럼 내뱉으면서도 지련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였다. 어떤 감회깊은 기억이 머리에 떠오른 모양이였다.

아닌게 아니라 지련희는 심각한 어조로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 큰아버지 고향은 여기서도 수천리 떨어진 함북도 부령군이예요. 무슨 사구리라던지요. 읍에서 사구리까지는 70리, 거기서 또 30리 떨어진 외진 산골마을의 화전민가정에서 태여났다는군요.…》

언제부터 지련희에게서 듣고싶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왕청같은 화제였다. 그러면서도 서봉철은 그 이야기거리가 련희의 큰아버지이고 또 온 발전소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 당비서의 일이라 온몸이 귀가 되여 열심히 들었다.

…리성복의 아버지는 어느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왜놈감독의 채찍에 억울하게 숨진 동료의 죽음에 항거하여 감독놈을 때려눕히고는 인간세상을 등지고서 약혼녀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정처없이 들어갔는데 그곳이 바로 사구리였다. 그래도 사람이라고 하늘을 가리울 둥지는 있어야겠기에 산전막을 지은 그들은 그때부터 화전민생활을 시작했다.

한해가 지나서 이들사이에 첫 자식이 태여났고 이듬해부터는 연줄 내리내리 일곱을 더 낳았다. 리성복은 그 8남매중의 넷째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강애기였는데 그 이름이 전해주는 구슬픈 이야기를 8남매는 옛말처럼 들으며 자랐다. 어머니 강애기는 형제라고는 하나도 없는 외톨밤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자식들이 태여나는족족 세살을 넘기지 못하고 명을 마치자 일자무식인 외할머니는 자기의 기구한 팔자를 한탄하며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다는것이였다.

그때 누군가가 위로의 말을 한다는것이 아이의 이름을 《애기》라고 지으면 절대로 죽을 념려가 없다는 엉터리없는 귀뜀을 해주었다. 영원히 애기로 살것이니 그들 가문의 죽음의 문어구인 3살을 넘기지 않게 되지 않겠느냐는것이였다. 그 말에 한가닥 희망을 건 외할머니는 몇번째인지 알고싶지도 않은 아이가 몸안에 자리잡은 순간부터 배속의 아이를 《애기》라고 불렀다. 하늘이 도왔는지 어쨌든 그렇게 태여난 강애기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자식으로 되였다.

그래서인지 강애기는 줄당콩처럼 오롱조롱 열리는 여덟자식이 조금도 많아보이지 않았다.

드디여 나라가 해방되자 리성복의 아버지는 스스로 산림보호원(당시)이 되였다. 여덟자식을 위하여 자기가 벗겨먹은 산을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량심에서였다.

아버지는 자식들의 손에 물통을 들려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새움이 트고 잎이 무성하게 푸르러지는 산천을 바라보며 비로소 삶의 희열을 느끼던 아버지는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전선으로 탄원했다. 조국의 산과 들을 지키고 어린 자식들의 맑은 눈동자를 흐리지 않게 하려고. 해방된 5년은 그를 한가정의 세대주로부터 나라의 어엿한 주인으로 성장하게 하였던것이다.

어머니는 여덟명의 자식을 혼자 돌보며 억척같이 전쟁을 이겨냈다.

3년간의 전쟁은 우리 인민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이 승리한 그해 가을 리성복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손에 매달려 전선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마중하러 읍까지 나갔었다. 미군놈파편에 다리를 상했다는 아버지를 위해 형들이 달라붙어 밤새 깎아만든 다래나무지팽이를 품에 꼭 안고, 이른새벽에 떠나 발에 온통 물집이 생기도록 걷고 또 걸었으나 날이 이슥해서야 아버지를 만난 리성복은 읍거리에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해는 이미 지고 하늘에선 도글도글한 별들이 깜박이는데 전후복구건설의 힘찬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는 건설장은 대낮같이 밝았다. 사람들이 켜든 불망치말고 다른 불이 또 있었던것이다.

호기심이 잔뜩 동한 어린 아들은 광솔불에 까매진 코구멍을 발름거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 신기한 빛을 내는건 뭐나?》

아버지는 허허 하고 속궁글게 웃었다. 하도 깊은 산골에서 살다보니 세상에 전기라는것이 있다는것을 모르고 자란 아들애의 순진한 질문이 가슴을 허빈듯 했다. 아버지는 철부지 아들의 까까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저건 전기라는거다. 저 전기만 있으면 너희들이 환한 전등불아래서 공부할수도 있고 노래춤도 맘껏 출수 있단다. 어디 그뿐인줄 아니? 저 전기는 너희들이 먹고싶어하는 사탕이랑 고운 옷이랑 다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신비한 빛이란다.》

《야, 멋있네!》

리성복은 그만 너무 기뻐 손벽까지 짝짝 울렸다.

《아버지, 나 이담에 크면 우리 마을에도 전기를 꼭 데려올래.》

그후 마을에 벌목장이 꾸려지고 그렇게 환상적으로 여겨지던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왔다. 그때 리성복은 난생처음 전기덕을 보았고 그 강렬한 인상으로 하여 앞으로 꼭 요술방망이같은 신비한 전기를 만드는 사람이 될 결심을 거듭거듭 굳혔었다. 그가 커서 군사복무를 마친 후 곧장 주을전기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전기와 한생의 인연을 맺게 된것은 바로 이런 리유에서였다.

《…어릴 때부터 전 오직 전기때문에 웃고 전기때문에 고민하는 큰아버지의 모습만을 보면서 자랐어요. 언젠가 〈큰아버진 나보다 전기가 더 곱나?〉 하고 묻자 제 머리를 쓸어주며 하시던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우리 련희 더 고와지게 만드는게 전기인데 그걸 사랑하지 않을수야 없지 않니.〉

아마 그래서 저도 전기를 사랑하게 된가봐요. 이 세상 억만재부를 다 창조해내는 신비한 빛… 그러니 그 빛에 이끌려 영천으로 되돌아온 셈이지요.》

서봉철은 어째서인지 심장이 별스레 후둑거렸다. 지련희의 마감말에서 큰아버지와 다름없이 한생을 전기와 인연을 맺고 살려는 처녀의 남다른 결심을 읽은것이였다. 그것은 평양처녀인데다가 큰 간부집 딸이기도 한, 하여 자기로서는 감히 가까이 접근할수도 만질수도 없는 저하늘의 신기루같던 존재가 별안간 고운 피부며 명랑한 웃음, 싱싱한 체취며를 가까이 느낄수 있는 자기곁의 친밀한 인간으로 되였다는 가슴설레이는 깨달음이였다. 그래서 더 친숙해지고싶고 자기곁으로 바싹 당겨 빛이라는 신비경에 싸여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고싶은 처녀로 여겨지는것이였다.

공교롭게도 지련희를 바래주는 길은 그의 큰아버지네 집앞에서 끝나고말았다. 서봉철은 너무도 짧은 이밤 산보길이 아수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련희에게 더 걷지 않겠느냐고 권고할 용기도 나지 않았고 설혹 련희가 동의해준대도 다 큰 처녀가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면 큰어머니, 큰아버지가 걱정스러워 잠을 이루지 못할것 같아 미안쩍기도 했다.

지련희도 무엇때문인지 대문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도 역시 뭔가 아쉬움비슷한것이 있었던 모양이였다. 심장이 더 쿵쿵거렸다. 하지만 서봉철의 입에서는 자기 감정과는 전혀 다른 왕청같은 소리가 튀여나왔다.

《어서 들어가보오, 어서. 저놈의 개가 날 쫓누만.》

인기척을 느끼고 요란스레 짖어대던 개를 빗대고 봉철은 황황히 되돌아섰다.

허둥지둥 걸음을 내짚으며 그는 혼자서 투덜거렸다.

《에이, 이 졸장부. 그냥 남아있어도 되였을걸 왜 도망치듯 달아뺐담?》

집으로 돌아온것은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서봉철은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필요한 소재를 얻은것이 좋았고 또 련희에게서 느꼈던 따스한 선망의 눈길에 대한 회상도 좋았다.

서봉철은 부엌으로 들어서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방안에서 인기척이 나며 부엌문이 열려졌다.

《늦었구나.》

어머니도 여태 잠들지 않고 자기를 기다린 모양이였다.

《예, 일이 있어 좀 늦었습니다.》

《어서 밥을 먹어라.》

서봉철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에 마주앉았다.

《아버진 식사를 하셨습니까?》

《…》

웃방에서 쿨럭클럭 잔기침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로인지 어머니는 마루바닥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있었다. 어쩐지 집안분위기가 이상스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어머니는 도리질을 할뿐 아무 대꾸도 없었다. 서봉철은 슬며시 부엌에 내려가 밥가마뚜껑을 열어보았다. 가마안에는 세그릇의 밥이 모록이 남아있었다. 분명 손님이 왔다가 그냥 간듯 했다. 서봉철은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손님이 오셨댔지요?》

어머니는 아들앞에 더 숨길수가 없었는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왔댔다, 당비서어른이 일부러 아버지를 만나자고 왔다갔지. 휴-》

그 한숨속에서는 짙은 시름이 느껴졌다.

(무슨 일일가? 당비서동지가 왔댔다면 혹시 2호발전기때문이겠는데 집안공기는 왜 흐려졌을가?…)

서봉철은 어머니에게 캐여묻기를 단념하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예측대로 아버지는 지써구니 앉아 꾸역꾸역 담배를 태우고있었다.

《아버지, 비서동지가 무슨 일로 집에 오셨댔습니까?》

아버지는 다 타버린 담배꽁초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짜증을 냈다.

《됐다! 넌 몰라도 되니 더이상 묻지 말아.》

그러자 아래방에서 어머니의 지청구가 날아올라왔다.

《령감, 그것두 말이라구 하우? 아들이 왜 몰라야 한다는거요? 툭 털어놓고 이야기해보구려!》

평시 어머니는 드살군이라는 말을 들을만치 입심이 세다.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의 성격은 탁 트이지 못하고 녀자들처럼 차곡차곡 쌓아두는 앵공한 성격이다. 아버지의 그 성격때문에 어머니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봉철이 군대나가기 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성격때문에 자주 다투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입에 자물쇠를 딱 잠그고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상한 어머니가 자꾸 도발을 걸어도 묵묵부답이다.

그렇다고 영 벙어리노릇만 하는것은 아니다. 어머니앞에서 아들에게는 예전보다 더 살뜰하게 구는것으로 약을 올리는것이다. 이렇게 날과 달이 흐르면 공격형인 어머니도 끝내는 방어형인 아버지에게 손을 들고 져버리군 했다.

서봉철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이 서로 반대로 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고 생각한적이 한두번 아니였다. 오늘도 아버지는 마음속 문을 꼭 잠그고 침묵을 지켰다.

어머니의 지청구는 계속되였다.

《령감이 말 안하겠으면 내가 하겠수다. 봉철아, 오늘 저녁 당비서어른이 모처럼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저 령감은 무슨 억하심정에 찼는지 당비서어른을 쓴외보듯 하더구나. 그건 그렇구. 내 부엌에서 귀동냥하느라니 글쎄 비서어른은 령감이 2호발전기회전자축균렬을 용접의 방법으로 복구할수 있는 안을 내놓았다며 몇번이고 감사의 말을 하는게 아니겠니. 헌데 저 령감은 자기는 그런건 모르니 인사를 받을수 없다고 딱 잘라말하더구나. 그래 이런 인사불성이 또 어디 있겠니? 그리고 다시 공장에 나와 회전자축균렬을 복구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뭐랬는지 아니? 자기는 필요할 때 옮겨놓을수 있는 장기쪽이 아니라고 딱 잘라말하더니 웃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걸었단다. 봉철아, 네 한번 시비를 갈라봐라. 이게 어디 경우가 된 일이냐 말이다. 그렇게 노니 공장에서도 년로보장달이 되자마자 퇴직수속을 시켰지.…》

어머니의 넉두리같은 긴 사설이였다. 서봉철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며칠전 당비서동지와 기사장동지가 도당위원회에 올라가 2호발전기를 공장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겠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정의 맹세를 올리고 돌아온 일이 심각하게 되새겨졌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화력발전소의 전체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당비서와 기사장이 자기들의 심정을 반영하였다고 얼마나 기뻐들 했던가. 오늘도 봉철은 출근길에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맹세》이라는 내용으로 선동문을 랑독하는 방송원의 열기띤 목소리를 흥분된 마음으로 들었었다.

요즘 화력발전소는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고있다. 공장의 기술력량이 총망라된 5월17일보수지휘부가 활동을 시작하자 그가 기술일군이든 열관리공이든 누구나 자기 몫을 맡아수행하면서도 2호발전기복구를 위해 머리를 쓰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련희는 전기를 두고 《이 땅의 억만재부를 다 창조해내는 신비한 빛》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 전기에 매혹되여 평양을 떠나 여기 영천땅에 왔다고. 그 처녀는 어쩌면 한생을 이곳에 뿌리박고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빛은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수 없는 삶의 강렬한 자양인것이다. 그렇다면 리성복당비서 못지 않게 그 전기와 운명을 같이하고 살아온 오랜 로동계급이였던 아버지는 어찌하여 그 빛을 굳이 피하려고, 한사코 어둠속에 은둔하려고 하는것인가?

푸념에 가까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여보 령감, 우리가 늙은건 사실이우. 하지만 아들을 봐서라두 말년을 똑똑히 처신하며 보내야 할게 아니요.》

아버지는 연방 줄담배를 갈아대며 일언반구 말이 없다. 서봉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어머니와 호응하여 아버지를 다몰아세웠댔자 당장 얻어질것은 없을것 같다.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자니 속이 상했다. 이럴 때는 한발 물러났다가 아버지의 성이 가라앉은 다음 이야기하는것이 상책이 아닐가?

《어머니, 그만하세요. 아버지도 다 생각이 있겠지요.》

《에그- 저런 령감의 속통머리를 알면서도 어떻게 30년세월을 살아왔는지… 그래 령감의 용접기술이 얼마나 높은진 모르겠소만 그 기술을 믿고 그러우?》

아버지에 대한 질책의 도수는 점점 높아졌다. 이쯤되면 웬만한 사람이면 벼락을 쳤을것이지만 아버지는 용케 참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본체도 않고 웃방미닫이를 드룩 닫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너에게 할 애기가 있다.》

어머니는 약이 바싹 치밀었는지 부엌으로 내려가 왱가당댕가당 애매한 그릇에 대고 해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웃방에서 부자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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