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0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3


《련희동무, 설계가 완성되면 빨리 기계제작에 필요한 자재목록을 작성해서 기사장동지에게 보여주오.》

아침출근시간에 공장병원앞에서 만난 서봉철의 부탁이였다. 그리고는 사위를 슬쩍 둘러보더니 무엇인가를 넘겨주었다. 받아보니 쪽지편지였다. 이미 서봉철은 천연스레 열생산직장쪽으로 씨엉씨엉 걸어가고있었다.

그리 붐비지 않는 출근길인데 할말이 있으면 제꺽 말할게지 별스럽게 쪽지편지는 뭐람?… 지련희는 누가 훔쳐보기라도 했을가 저어하며 얼른 줌안에 쪽지편지를 말아쥐였다.

련희가 큰아버지와 함께 서봉철을 찾아간 때부터 보름이 흘렀다. 그 길지 않은 나날에 서봉철이 제작하려는 용접봉심선절단기설계는 련희의 도움으로 크게 전진했다. 자인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서봉철이 매우 잘생긴 미남인데다가 학구적이고 열정 또한 비상히 높다는것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자기를 대하는 서봉철의 태도 또한 매력있는 영화의 남주인공처럼 눈에 쭉 들어와 이러다 처녀의 자존심이 손상될가 겁이 날 정도였다. 어쨌든 서봉철은 련희의 선망의 대상이였다.

지련희는 자력갱생직장쪽으로 걸음을 재우치면서 쪽지편지에 무슨 글을 적었을가 하고 오만가지 생각을 굴렸다. 카바이드생산작업반을 지나 전기유도로작업장으로 뻗은 길은 조용했다. 세멘트포석을 깐 소로길 량쪽에는 정향나무가 왕성히 자라 가까이에서도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련희는 그 길에서 쪽지편지를 펼쳐보려고 멈춰섰다. 그러다가 제풀에 흠칫 놀라며 다시 걸음을 재우쳤다. 어쨌든 밖은 안심치 않았다.

그는 자력갱생직장 선전실에 들어섰다. 선전실은 출근시간이여서 조용했다. 이제는 그 시한탄처럼 느껴지는 쪽지편지를 펼쳐보아도 일없을것 같았다.

련희는 꼭 그러쥔 줌속에 숨가삐 짓눌려진 땀에 젖은 쪽지편지를 펼쳤다. 쪽지편지를 읽고난 그는 기가 막혀 《아이!》 하고 혼자 웃어버렸다. 맹랑하게도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달이 뜨면 장성강버드나무밑으로 나올것! 준비품 바줄.》

련희는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다시 쪽지편지를 꼭 말아쥐였다.

(참, 싱거운 사람도 다 있지. 이런 글이나 적자고 부디 쪽지편지를 쓰면서 그럴가. 슬쩍 한마디 던지면 그만인걸…)

련희는 별치 않은 글쪽지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던 제모습이 련상되여 얼굴이 다 뜨거워졌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바줄을 준비하고 강변에 나오라는 소리는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에이, 맹꽁이. 별걸 가지고 잔뜩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이제 나가보면 다 알게 될걸!

서봉철은 하루종일 련희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련희는 서봉철을 만나면 바줄은 어디에 쓰려는가 묻고싶었다. 바줄을 준비해도 알아야 그 용도에 맞는걸 준비할게 아닌가.

저녁시간이 다 되여 련희는 공용기직장에 찾아가 사정사정해서 엄지손가락굵기의 비날론바줄 여섯메터를 얻었다. 이제는 달이 뜰 시간에 맞추어 장성강버드나무밑에 나가면 된다.

련희는 출근할 때처럼 연분홍색양복을 입었다. 그 양복의 색갈이며 형태가 련희에게 리상적으로 어울렸다. 언제인가 서봉철도 옷색갈이 잘 어울린다고 말한적이 있다. 거울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한동안 옷깃을 여미던 련희는 갑자기 정신이 펄쩍 들어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양복차림에 바줄을 메고간다는것이 격에 어울리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던것이다.

련희는 자기가 어딘가 모르게 붕 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싱거운 쪽지편지때문에 하루종일 이 생각, 저 생각 굴리느라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여튼 바야흐로 달뜰 시간이 닥쳐왔으니 장성강으로 나가볼판이였다. 아직 날은 희름희름 밝은데 만월이 된 달은 제모습을 드러냈다. 고무테가 하얀 편리화에 산뜻한 곤청색작업복차림은 제가 보기에도 그것대로 탄력감이 나고 세련미가 흘렀다.

련희는 동뚝우에 올라 장성강을 감회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몇년만인가. 장성강은 예전처럼 물흐름도, 강변의 풍치도 제모습 그대로였다. 수면은 그 흐름새가 정지된듯 잔잔했다. 그래서인지 강변에는 모래불이 적고 푸른 주단을 펼쳐놓은듯 금잔디가 한벌 쭉 깔려있다.

어릴 때 련희는 그 금잔디를 밟으며 자랐다. 지금도 눈에 삼삼히 밟혀온다. 여름방학이면 동네아이들이 서로 패를 지어 강변의 여기저기에 자기들의 령지를 만들어놓고 놀음놀이를 벌렸었다. 여라문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나이는 모두 련희또래여서 누구의 눈치볼것도 없이 섭쓸리기 좋았다.

물기슭에는 조무래기들 서넛이 갈잼질해도 일없을 너럭바위가 있다. 동네아이들은 그 너럭바위와 금잔디밭에 금을 쭉 그어놓고 그것을 자기들이 건설한 극장이라고 했다. 노을비낀 하늘은 지붕이요, 너럭바위는 극장무대요, 금잔디밭은 임의의 순간에 수용능력을 늘일수 있는 관람석이였다. 극장이름은 《금잔디극장》 이라고 누군가가 명명했다. 무대도 좋았고 관람석도 좋았다. 언제든지 막을 올릴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장성강반에 저녁노을이 물들기만을 기다렸다.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이 물결우에 그대로 복사될 때면 갖가지 아름다운 꽃이랑을 짓다가 나중에는 일시에 뜨거운 쇠물빛으로 이글거리는것이였다. 그 쇠물빛물결에 흰연기를 타래쳐뿜어대는 영천화력발전소의 아스라한 굴뚝과 덩지큰 발전기실이 한폭의 그림마냥 비쳐들군했다. 어디 그뿐인가. 때를 기다린듯 물고기들이 쩜벙 쩜버덩 연방 물면우로 솟구치며 기교를 부리고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는지 모를 물오리떼들이 쌍쌍이 다정한 부부가 되여 헤염친다.

동네아이들은 드디여 이 시간에 공연의 막을 올린다. 짝자그르르- 그리 요란하지는 않아도 박수소리는 아이들처럼 여물었다.

공연의 처음순서는 쌍둥이자매가 부르는 녀성2중창이였다. 너럭바위우에 올라선 련희와 영희의 머리에는 노랗고 하얗고 빨갛고 한 이름모를 꽃들이 닥지닥지 붙어있었다.

련희와 영희는 손잡고 《우리 집 토끼》 노래를 불렀다.


양지쪽창문가에 우리 집 토끼

잠만 깨면 오물오물 풀을 먹지요


쌍둥이자매의 노래가 끝나자 관람석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려나왔다. 언제 이렇게 모였을가? … 극장관람석은 배로 늘어나 그야말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처음에는 처녀애들만이였는데 입장전에 어디에 숨었댔는지 키꼴이 있는 오빠들도 좋아라 박수갈채를 보냈다. 련희와 영희는 재청 3창을 부르고서야 무대에서 내렸다.

아, 동심의 꿈이 다복다복 새겨진 장성강반이여!

련희는 지금 그 너럭바위우에 서있었다. 지금도 영희만 곁에 있다면 《우리 집 토끼》노래를 불러보고싶었다. 아마 그때 쌍둥이자매의 노래를 훔쳐듣던 사내아이들속에 봉철동무도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있었을것이라고 련희는 생각했다. 그때 처녀애들을 골려주기 좋아하던 망나니오빠가 서봉철이 아니였을가? 나도 그를 몰라보고 그도 나를 몰라보니 어릴 때 동심의 꿈만 기억에 남았으니 그 꿈의 기억을 되살려보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련희는 서봉철과 약속한 장성강버드나무밑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내짚었다. 멀리서 실실이 푸른 잎을 드리우고 어서 오라 처녀총각들을 부르는듯 미풍에 설레이는 버드나무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련희는 조심조심 그리로 다가갔다. 사람의 형체는 물론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시간이 채 되지 않았나싶어 사위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약간 떨어진 강상류쪽에서 대형자동차쥬브에 팽팽히 공기를 불어넣고 그 밑에 널판자를 댄 고무배가 미끄러져내려왔다. 고무배에는 두명의 사나이들이 타고있었는데 웃옷은 해군샤쯔차림들이였다.

련희는 휘영청한 달빛속에서 그중의 한사람이 서봉철임을 알아보았다. 고무배가 강기슭에 와닿자 서봉철이 훌쩍 뛰여내렸다.

《련희동무, 오래 기다렸소?》

《아니요, 나도 방금 도착했어요.》

서봉철은 련희의 한쪽어깨에 걸려있는 바줄을 보며 벙글벙글 웃었다. 련희도 영문없는 웃음을 던지며 서봉철의 다음지시를 기다렸다. 고무배에서 또 한사람이 내렸다. 그는 서봉철의 군사복무시절 전우 리동혁이였다.

《여 동혁동무, 고무배를 바싹 대오. 련희동무를 안전하게 모셔야지.》

련희는 와뜰 놀랐다.

(어마! 그러니 나를 저 고무배에 태우려고?)

아니나다를가 리동혁이 배를 강기슭가까이에 대자 서봉철이 시치미를 뚝 따고 말했다.

《자, 련희동무, 우리 군함에 오르십시오.》

서봉철은 고기잡이군들이나 쓰는 고무배를 자칭 《우리 군함》이라고 씩씩하게 불렀다.

련희는 선뜻 배에 오를념을 못했다. 어릴 때는 이 장성강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던 덕분에 막치는 헤염은 자신있었다. 그러나 평양에 올라간 다음부터 일요일마다 창광원에 다니는것이 고작이여서 수영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저러다 배라도 뒤집히면 저 엉큼한 봉철동무가 또 무슨 놀음을 꾸며내겠는지 어떻게 안담…

련희는 한켠으로는 주저하면서도 다른 한켠으로는 자존심이 손상가는감을 느꼈다.

《저… 봉철동무, 타긴 하겠는데 무슨 일때문에 타야 하는지 알고야 타겠어요.》

서봉철과 리동혁은 서로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여 갑판장, 우리 경비함이 받은 전투임무를 알려주라구.》

《알았습니다, 함장동지!》

리동혁은 군대식으로 차렷자세를 취해보이고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련희동무, 우리 경비함은 좌표 25해구에 침몰된 적잠수함을 인양시켜가지고 운반할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련희동무의 도움이 필요해서 …》

《자, 타오. 생명안전은 철저히 담보되여있소.》

서봉철이 슬쩍 보태였다. 련희는 여전히 어리둥절해있었으나 서봉철에게 이끌려 고무배에 올랐다. 고무배는 세사람이 앉으면 비좁을것 같았다. 리동혁이 지련희와 마주앉으면 한사람은 가운데 불편하게 앉아야 했기때문이다. 허나 괜한 걱정이였다.

서봉철은 고무배를 힘껏 강복판으로 밀었다. 고무배는 움씰거리며 밀려나갔다. 련희는 서봉철과 리동혁이 걸친 해군샤쯔를 보고서야 또 그들이 주고받는 군사술어에서 두사람이 해군에서 군사복무를 했음을 알았다.

하늘에 도장을 찍은듯 낮게 떠있는 달은 장성강물을 금빛으로 물들여놓았다. 고무배는 그 아름다운 물결을 산산쪼각내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처음엔 좀 무섭기도 하고 또 어떤 싱거운 장난에 끌려들어가지 않았는가 하는 경계심도 없지 않았으나 차차 몸의 균형이 잡히면서 마음이 진정되자 련희는 어느덧 자기가 예술영화 《종군기자의 수기》의 녀주인공처럼 인식되였다.

깊은 밤, 어둠속으로 경비정이 바다물을 썰며 적해구로 전진한다. 바다는 고요하다. 정적 또 정적… 폭풍전야런가 사위가 왜 이렇듯 조용할가? 경비함은 적해구로 한치한치 접근한다. 순간 적순찰정의 탐조등이 바다물을 핥으며 지나간다. 발견인가?… 어째서 함장동지의 전투준비신호가 없는가? 경비함은 또다시 전진한다. 이제는 발동기소리도 멎는다.…

《자 련희동무, 바줄을 주오.》

련희는 흠칫 놀라 깊은 상념의 세계에서 깨여났다. 고무배가 어느사이 그들의 말처럼 적잠수함이 침몰된 좌표 25해구에 도착한 모양이였다.

련희는 한옆에 놓여있던 바줄을 서봉철에게 넘겨주었다. 서봉철은 바줄을 받아 허리에 둘렀다. 바줄 한쪽은 리동혁이 붙잡고있었다.

지련희는 호기심어린 눈길로 두사람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자칭 위치를 표기한 좌표 25해구는 수십년전 영천비날론공장을 건설할 때 놓았던 림시철교가 지나갔던 자리라고 한다. 그러던것을 몇년전 철교를 해체해버리고 지금은 세멘트교각만 남아있었다. 서봉철과 리동혁이 침몰된 적잠수함을 구출하는 작전이라는것도 그때 철교를 해체할 때 수장된 형강을 건져내는 일이였다. 서봉철은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필요한 자재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 이 해구로 나왔던것이다.

그가 토설한데 의하면 서봉철은 전번 시운전에서 실패하고 기사장과 자재과장에게 미운털이 박혔으므로 이제 또 그 많은 자재를 요구하자니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래 부족되는 자재를 자체로 해결하리라 결심했다. 그러던중 철교해체때 수장된 형강소재가 있는가 보려고 며칠전 자맥질을 해보았는데 용케도 물속에 박힌 여러대의 형강소재를 발견했다. 정말 행운이 아닐수 없었다. 물속에 수장된 형강소재를 모조리 수집한다면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필요한 많은 자재가 해결되는것으로 하여 이 해상작전의 의미가 자못 컸다.

서봉철은 해군출신이여서 잠수에서는 자신있었다. 더 배심이 있는것은 전우인 리동혁이 방조자로 나선것이였다. 그는 어제 밤 리동혁과 함께 백여번나마 자맥질하여 물속에서 모래자갈을 파내며 쓸만 한 여러대의 형강소재를 수집했던것이다. 그런데 길이가 서너메터는 잘될 산형강소재는 어떻게나 들이박혔는지 끄떡하지도 않았다. 정말 요긴한 소재였다. 두사람이 번갈아 자맥질을 하며 무진 애를 쓴 끝에 강물속에 박혀 끄떡없던 산형강소재를 움씰움씰 흔들어놓았던것이다. 때는 동녘켠에서 희붐히 아침해가 떠오를무렵이여서 그들은 작업을 중단하고 오늘 밤으로 인양작업을 미루었던것이다.

련희의 가슴은 뭉클해졌다.

(정말 쉽지 않은 사나이들이구나. 그 산형강소재가 뭐라고 깊은 물속에 그것도 한밤중에 서슴없이 뛰여들다니.…)

바로 이런 헌신적인 소행이 바로 우리 장군님께서 키워주신 혁명적군인정신의 발현일것이다.

서봉철은 한번 또 한번 련속 물속에 들어갔다. 련희는 리동혁과 함께 바줄을 꼭 잡았다.

1분…2분…3분… 시계의 초침소리가 높뛰는 심장의 박동처럼 들려온다. 물속에서는 끄륵끄륵 물기포소리가 들려올뿐 서봉철은 솟구치지 않는다. 지련희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리동혁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리동혁은 아무런 긴장한 표정도 없이 다시 시계를 들여다본다.

마침내 서봉철이 물속에서 솟구치며 해녀마냥 푸- 긴숨을 내뱉았다.

《됐어, 이젠 세사람이 힘껏 당기면 될것 같아.》

서봉철은 숨이 찬 어조로 말했다.

세사람은 세괃게 바줄을 부여잡았다.

《자- 하나, 둘, 영차!》

서봉철이 구령을 치고 련희와 동혁이는 이에 화답하며 끙- 힘을 썼다. 끊어질듯 팽팽히 늘여졌던 바줄에서 무엇인가 쑥 들리는감이 마쳐왔다.

서봉철은 또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곧 솟구치며 환성에 가깝게 웨쳤다.

《동혁이, 산형강이 뽑혔네. 성공이야!》

《성공이다!-》

동혁은 반쯤 일어서며 고무배가 기우뚱거리게 주먹을 쥔 두팔을 들어 흔들었다. 련희는 기쁨의 탄성을 올릴새없이 몸을 유지하느라 무진애를 썼다. 두 바다사나이들은 련희의 심정엔 아랑곳없이 저들만 좋아라 어쩔줄 몰라했다. 련희는 리동혁의 팔을 와락 잡았다. 고무배 멀미의 장본인은 다름아닌 익살군인 리동혁이였다. 고무배는 기우뚱기우뚱 흔들이가 약해졌다.

《자, 철수!》

서봉철이 전투명령을 치듯 짤막하게 소리쳤다.

고무배는 해상전투임무를 수행한 기쁨안고 기지로 돌아왔다. 세사람은 고무배를 강기슭에 바투 대고 바줄에 끌려나온 산형강을 륙지에 부렸다. 산형강은 서너메터는 실히 되였다. 이만하면 절단기밑틀조립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서봉철의 얼굴에 온통 흡족한 웃음이 벙글거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것이다.

그들은 강변에서 마른 삭정이를 주어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젖은 옷을 말릴겸 오래동안의 자맥질로 으시시해난 몸도 덥히자는것이였다. 곧 그들의 몸에서 더운 김이 서려올랐다.

련희는 임무를 수행한 그들앞에 간식 한봉지 내놓지 못하는 자신이 몹시 민망스러웠다. 미리 귀뜀이라도 해주었다면 녀성다운 솜씨를 보였을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서봉철의 사나이다운 이악함과 진취적기질에는 어쩔수없이 마음이 확 끌리는것이였다. 장성강반에 자기를 볼러준 서봉철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지금껏 한계단, 두계단 마음속에 쌓아지던 그에 대한 존경이 이제는 허물수 없는 탑이 되였음을 련희는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였다.

이때 서봉철이 리동혁에게 아직도 명령조가 섞인 어조로 말했다.

《여 동혁이. 한곡조 타라구. 얼마나 좋은 밤인가!》

(피리도 없는 허허강변에서 무얼 가지고 한곡조 타라는것일가? 참, 랑만적인 사람들이야.)

련희는 고운 눈을 깜박이며 두사람의 노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좋습니다. 내 풀피리를 멋들어지게 불겠으니 련희동무와 2중창을 부르십시오.》

《아이…》

《여 동혁이, 그런 눅거리반주와 우리 2중창이 값이 맞을가?》

서봉철은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로 두사람의 관계가 보통사이가 아님을 은근히 시위했다.

련희는 부끄러움에 슬쩍 서봉철을 훔쳐보았다. 순간 둘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서봉철은 빙그레 웃고있었다. 무척 재미있는 제안이라는, 그러니 련희쪽에서도 거절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친밀한 고무이자 기대였다.

《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데…》

련희가 당황해서 중얼거리자 리동혁은 딱 하고 손가락총을 울렸다.

《그러니 찬성했습니다!》

어느 사이 훌쩍 뛰쳐일어난 그는 머리우에 드리운 버드나무가지에서 제일 실한 잎을 골라따서 입에 물었다. 그다음 몇번 음조를 맞추었다.

서봉철이 련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동혁동문 군사복무시절 전우들의 사랑을 받는 풀피리명수였소. 아무 풀잎이든 입술에 가져다대면 노래반주는 물론 새소리, 물소리 어느것 하나 막힘이 없었지. 정말 재간이 보통이 아니라오. 중대오락회시간이면 지명권을 독차지했소.》

《자자, 출연!》

리동혁이 귀솔가스럽다는듯 소리쳤다. 련희는 어쩔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봉철의 곁에 나란히 섰다. 은은한 달빛은 무대조명이요, 그들의 머리우에 내리드리운 버드나무가지는 무대막이라 할수 있었다. 꼭 소시적 아롱다롱한 동심의 세계로 들어선듯 가슴이 흥떡인다. 좋은 밤, 좋은 사람들속에 자기가 있다는 긍지감 또한 드높다.

리동혁이 불어대는 풀피리소리가 고요한 달밤에 정서깊게 울려퍼졌다. 자연이 준 악기로 신비할만큼 곡을 찾아내는 리동혁의 입재주를 처음으로 보는 련희로서는 그저 감탄뿐이였다.

노래곡은 《내가 지켜선 조국》이였다. 련희는 자기곁에 름름하게 서있는 사나이의 체취를 후덥게 감득하며 야릇한 수집음속에 서봉철의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에 자기 목소리를 합쳐나가기 시작했다.


금잔디 밟으며 첫걸음 떼고

애국가 들으며 꿈을 키운 곳


리동혁은 지그시 눈을 감은채 열정적으로 풀피리를 불었다. 달밤도 좋았고 조국을 구가하는 처녀총각의 감정도 좋았다. 누구 보는이가 없는게 아쉽다. 저 벙어리같은 달은 그냥 웃기만 하는데 장성강물만은 이들의 노래에 혹한듯 주절주절 끝없는 칭찬을 읊조린다.

오, 달밤이여! 장성강반이여! 이 젊은이들을 자랑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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