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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 2 장


에돌아갈수 없는 길


2


도당위원회에 올라갔던 초급당비서 리성복과 기사장 명인국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2호발전기를 공장자체의 힘으로 복구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겠다고 충정의 결의를 올렸다는 소식은 날개라도 돋힌듯 온 공장에 파다하게 퍼졌고 전력공업성에까지 알려졌다.

리성복은 먼저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진 맹세를 무조건 관철하여 영천화력발전소 로동계급의 기개를 다시한번 떨칠데 대한 안건을 가지고 회의를 열었다. 공장이 생겨 이렇듯 무겁고도 영예로운 과업을 스스로 맡아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런것만큼 회의는 자못 심중하고 그 열기 또한 고조를 이루었다. 회의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우선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하여 동기전력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5월17일보수지휘부가 꾸려졌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맹세올린 날인 5월 17일을 뜻깊은 날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날로 새기기 위해 그런 명칭을 달았던것이다.

5월17일보수지휘부는 기술발전부기사장을 책임자로 한 공장의 우수한 기술력량이 망라되여있었다. 또한 당위원회의 사업방향도 대중의 앙양된 정치적열의를 최대한 발양시켜 경애하는 장군님께 다진 맹세를 무조건 관철하는데로 지향되도록 치밀하게 짜졌다.

회의가 끝난 후 리성복은 부비서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맹세》라는 제목으로 선동문을 썼다.

선동문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맹세를 지키는것은 영천화력발전소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이 지닌 수령결사옹위의 발현으로 된다는 사상이 맥맥히 차넘쳤다.

이튿날 아침 방송차에서는 격동된 방송원의 힘있는 선동연설이 울려퍼졌다. 선동문은 그대로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발전기실은 물론 공장구내 곳곳마다 붉은색바탕의 힘있는 구호들이 나붙어 발전소는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전투장으로 화해버린듯싶었다.

리성복은 고양이손이라도 빌릴만큼 바쁜 속에서도 서재필의 집을 방문하는것을 미루지 않았다.

서재필의 집은 동암산기슭에 자리잡은 화력발전소주택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있었다. 1동 2세대의 집은 량쪽으로 출입문이 나져 독집이나 다름없다. 집앞뜨락도 퍼그나 넓었다. 울바자도 바람이 잘 통하게 구멍이 난 꽃블로크로 규모있게 쌓아 집마당의 풍치를 한껏 더해주었다. 터밭에는 시금치가 파랗게 자랐고 마늘이 구획맞게 심어져있었다. 어디라없이 손끝이 여문 부지런한 안주인의 수고가 곳곳에서 엿볼수 있었다.

리성복이 널판자로 높지 않게 세운 대문을 열자 종이 딸랑딸랑 기분좋게 울렸다. 뒤미처 누런 강아지가 아직은 옹골차지 못한 엷은 짖음소리를 냈다.

《계십니까?》

부엌문이 열리며 환갑나이의 녀인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리성복이 허리를 굽석하며 인사를 하자 녀인은 두손을 들어 허공에 저으며 반겼다.

《아이구, 당비서어른이 아니시우?》

리성복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렇게 뒤늦게야 찾아와 미안합니다.》

《무슨 말씀을, 어서…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녀인은 뜻밖에 자기 집을 방문한 당비서앞에서 황송하여 말까지 더듬으며 그를 방안으로 잡아끌었다.

《여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령감님은 어딜 가셨습니까?》

《그 령감이야 갈데가 있습니까? 낚시대를 메고 장성강으로 나갔습니다. 바쁘시면 제가 얼른 강변에 나가 데려오겠습니다.》

《아니, 됐습니다. 여기 앉아 기다리겠습니다.》

리성복은 나무로 만든 의자를 가져다놓고 앉았다.

조마조마해서 서있는 녀인의 모습을 보니 리성복은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가 이 집을 찾아오기는 이번이 두번째이다. 한번은 썩 오래전 서재필이 평양화력발전소에 특수용접이 제기되여 장기동원을 나가있을 때 평양으로 출장가는 길에 월동준비를 못해가지고간 그에게 솜옷과 신발, 내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들렸던적이 있다. 그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오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보니 다시 찾아오게 됐으니 면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모름지기 녀인은 이미 종업원도 아닌 령감을 당비서가 무엇때문에 찾아왔을가 하는 의혹과 까닭모를 불안때문에 속을 조이고있을것이다.

리성복은 그 마음을 눅잦혀주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고 서봉철을 념두에 두고 허물없이 입을 열었다.

《참, 아들을 잘 두었습니다. 키도 크고 인물 잘났지, 또 용접기능도 높지… 어디 봐둔 처녀라도 있습니까?》

《뭐, 잘나면 뭘합니까. 속이 옹골차야지. 처음 군대에서 제대되여왔을 땐 문돌쩌귀가 불이 나도록 선을 보자고 소개자들이 드나들더니 요즘은 잠잠합니다.》

《왜 말입니까?》

리성복이 다우쳐물었다. 녀인은 그의 눈에 진정으로 놀라는 호기심이 깃든것을 알아보고 당비서라는 간격이 한메터, 반메터로 줄어갔는지 이야기판을 펼쳤다.

《다 그 잘난 아들때문이지요. 처녀사진만도 열장은 봤을거우다. 헌데 볼적마다 키가 작다느니 너무 호리호리하다거니, 나중엔 너무 키가 크다는 구실까지 대며 사방 도리머리질이니… 이젠 나나 령감도 기권했수다. 그래 네 마음에 드는 처녀를 네가 골라라 하고 내버려두었지요. 뭘 믿고 그러는지. 우리야 가문에 작업반장을 하는 사람도 없는 알짜 로동자집안인데 제 인물이나 멀끔하면 단줄 아는가부지요. 호호…》

녀인은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말주변도 좋았다. 불과 당비서와 몇마디 대화가 오간 사이인데 벌써 서먹서먹한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너나들이사이가 되였던것이다.

《허, 로동자집안이 어떻다고 그럽니까.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인데 아들이 코를 세울만도 하지요. 요먼저 기업소창립절날 예술공연무대에서 아들이 시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를 얼마나 멋들어지게 읊은줄 압니까? 그때 아마 숱한 처녀들이 애를 태웠을겁니다. 하하…》

리성복은 호방하게 웃으며 고무풍선처럼 뜨기 시작한 녀인의 마음을 눙쳐놓았다.

녀인은 입이 함박만 해져 당비서앞으로 한걸음 다가들며 신명이 나서 얘기판을 펼쳤다.

《그녀석 날 닮아 그런지 목청이 좋수다. 새벽마다 마당에 나와 소리통 터치기련습을 할 땐 요란하우다. 그리고선 한바탕 운동을 해대지요. 정말 대견하기 이를데없어요.》

녀인은 남이 들으면 부실하다고 하리만큼 아들자랑을 늘어놓았다.

《보아하니 목청은 어머니를 닮고 그 인품은 아버지를 빼물었습니다.》

《?…》

비로소 리성복은 이야기화제를 서재필에게 돌리려고 슬쩍 변죽을 울렸다. 녀인은 씁쓸하게 입을 다시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못 봤수다. 닮았다면 식성 한가지뿐이우다. 참, 다행이지요.》

녀인은 어떤 일에서나 에돌지 않는 곧은배기였다. 하물며 당비서앞에서도 아들을 빗대고 제 령감의 금새를 낮추니 말이다. 보매 령감과 늦정이 그닥 탐탁한것 같지 않았다.

리성복은 슬쩍 이야기화제거리를 돌렸다.

《아주머니, 요새 령감님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그 령감이야 고뿔 한번 앓지 않는 건강체인걸요.》

《그렇습니까?》

마음이 놓였다. 그러니 서재필이 다시 공장에 나와도 건강에는 지장없을것이다.

어느덧 저녁해는 서산마루에 꼴깍 넘어갔다. 여전히 서재필은 나타나지 않는다. 서재필의 안해는 저녁준비로 부엌에 들어가고 그새 친숙해진 누렁강아지가 리성복의 주위를 솔곳게 맴돌며 그를 동무해주었다.

리성복은 몇번이고 시계를 들여다보며 인내성있게 서재필을 기다렸다. 저녁어둠이 마당가에 느물느물 기여들무렵에야 낚시도구가 든 가방을 메고 서재필이 마당에 들어섰다. 누렁강아지가 주인을 반겨 쏜살같이 달려나가 그의 바지가랭이에 칭칭 감겨돌았다.

《허허… 그래 오늘 어로실적이 괜찮습니까?》

리성복이 움쭉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재필을 맞았다. 서재필은 주춤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둑어둑한 속에서도 상대가 당비서임을 알아본 모양이였다.

《아니, 비서동지가 어떻게…》

《서동무를 만나보고싶어 왔습니다.》

《저를요?》

서재필은 놀라움과 의혹이 엇갈린 눈길로 리성복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황황히 말을 돌렸다.

《이 로친 어딜 갔나? 손님이 왔으면 안으로 모셔야지 밖에 세워두다니, 좌우간 어서 들어갑시다.》

《예, 난 밖이 시원해서 그랬습니다.》

리성복은 서재필을 따라 방에 들어섰다. 방안을 빙 둘러보던 그의 첫눈에 안겨든것은 서봉철이 군사복무시절 찍은 기념사진이였다. 부대에 찾아오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한자리에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지닌 병사들의 얼굴은 끝없는 감격과 환희에 넘쳐있었다. 금빛액틀속에 정히 모셔진 기념사진은 이 집안의 둘도 없는 가보였다. 아들이 이 기념사진을 안고 처음 제대되여왔을 때 서재필은 너무 기뻐 며칠밤을 꼬박 새웠다고 한다.

창문좌측벽에 걸려진 특무상사령장의 군복에는 주먹만 한 훈장이 세개나 달려있었다. 아마도 이 집에 가장 큰 자랑거리가 아들의 군복자락에서 빛나는 저 훈장인듯싶었다.

리성복은 이 집에서 아들 하나는 훌륭히 키웠다는 생각을 하며 서재필이 권하는 방석에 앉았다. 서재필도 부자연스럽게 마주앉았다.

먼저 리성복이 말꼭지를 뗐다.

《그래 서동문 이제 남은 여생을 낚시질에 바칠 생각입니까?》

《글쎄요.…》

《제 사실 서동무에게 인사를 하자고 찾아왔습니다.》

《?…》

리성복은 느슨한 미소를 보내며 말을 이었다.

《며칠전 기술발전부기사장동무를 만나 얘길 다 들었습니다. 서동무가 용접의 방법으로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수 있는 안을 내놓았다는걸 말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공장을 나가서도 발전소를 위해 마음쓰니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재필은 그제야 깨도가 된 모양이였다. 그는 황황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난 비서동지한테 인사받을만큼 큰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발 옹색하게 이러지 마십시오.》

《그게 어찌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서동문 대단한 착안을 했습니다.》

《허- 비서동진 뭔가 잘못 알고 왔습니다.》

서재필은 지꿎게도 당비서의 인사를 거절했다. 리성복은 그의 고집이 여간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서재필이 당비서의 인사를 굳이 사양하는데는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기술발전부기사장에게 그 무슨 뚜렷한 과학적담보도 없이 20여년전 북창화력발전소에서 부러진 회전자날개를 용접하여 쓴 일이 불쑥 상기되여 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도 용접의 방법으로 제거할수 없겠는가고 무심히 이야기해보았을뿐인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큰 발견이라고 이렇듯 당비서까지 찾아와 떠든단 말인가.

서재필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를 얼리려드는감도 느껴져 기분이 거슬렸다.

리성복은 절절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서동무, 온 발전소가 밤잠도 잊고 발전기복구를 위해 뛰고있습니다. 물론 아직은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것이 과학적으로 담보된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2호발전기를 우리 힘으로 복구할수 있다는 신심을 준것이 고마와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서동무야 오랜 용접기능공이 아닙니까.》

그러자 머리를 짓수굿한채 돌부처마냥 앉아있던 서재필이 눈을 들었다.

《비서동지의 말뜻을 내 모르는바가 아닙니다만… 난 비서동지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나야 기업소에서 이미 년로보장을 주어 내보낸 사람인데…》

리성복은 놀랐다. 그의 어조에서 그 어떤 반감이 진하게 깔려있는것을 감촉한것이였다.

《서동무,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난 서동무가 공장에서 나간것을 본인의 요구로 알고있는데요?》

《…》

서재필은 말이 없었다. 그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속이 달아오른 리성복은 서재필에게로 바투 다가앉았다.

《서동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발전소일군들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터놓고 이야기하십시오.》

했어도 서재필은 여전히 한본새였다. 리성복은 며칠전 기사장을 만나 서재필을 다시 공장에 들여오자고 했을 때 그가 서재필의 기술코대가 아직은 숙어지지 않았으니 단념하자고 했던 일을 상기했다. 그때 리성복은 기사장의 말을 별로 새기지 않고 그냥 스쳐버렸었다. 그는 서재필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공장애를 무엇보다 크게 보았던것이다. 그런데 정작 부딪쳐보니 기사장의 말도 일리가 없지 않았다.

사실 서재필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이 안을 들고나왔으면 이처럼 크게 끌리지는 않았을것이다. 서재필은 용접에서 누구도 따를수 없는 고급기능공이다. 그리고 북창화력발전소에서 부러진 회전자날개를 용접의 방법으로 이어놓은 경험을 가지고있다. 그런것으로 하여 서재필이 기술발전부기사장에게 내놓은 용접안은 그 신빙성이 대단했던것이다.

하지만 서재필의 속생각은 달랐다. 서재필은 년로보장을 받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기업소의 일부 간부들에게 환멸을 느낀 사람이였다. 그는 용접기능공을 양성하라는 기사장의 요구에 제대로 따라서지 못해 그에게서 미운털이 박혔다. 그 일로 기사장과는 다투기도 했다.

서재필은 기사장과 다툰지 몇달만인 년로보장나이가 된 그해 생일달에 년로보장수속을 받으라는 통지문을 로동과에서 받았다. 서재필은 깜짝 놀랐다. 이것이 혹시 기사장의 독단으로 이루어진 조치가 아닐가? 십분 그럴수 있었다. 하다면 일개인의 불쾌한 감정이 작용하여 발전소에 그토록 필요한 고급기능공이 헌신짝 던져지듯 한다는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서재필은 분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로동과장에게 이 문제가 다른 일군들과 다 토론이 있은 일인가고 물었다. 로동과장은 한갖 로동자가 무슨 까박이 많은가고 시끄러운듯 토론된 문제니 더 들고다니지 말라고 욱박에 가깝게 말했다.

이제는 기사장이 이 일을 솔선 꾸몄다는것은 의심할나위도 없었다. 서재필은 허무감에 속이 뒤집혔다. 그는 더이상 아무 미련도 가지지 않고 그날로 년로보장수속을 해버렸다.

집으로 들어올 때 그는 수십년간 애용해오던 공구함을 열었다. 그 공구들은 서재필과 함께 한생을 일해왔다. 망치, 나사틀개, 각이한 드릴, 철직각자… 이것이 서재필의 재산의 전부라고 할수 있었다. 서글픈 생각이 조수처럼 가슴속으로 쓸어들었다. 아마 이 공구들만이 전기를 위한, 그 눈부신 빛의 창조를 위한 서재필의 한생 수고를 헤아릴것이다. 그 생각은 한생 켜고살았던 마음속의 밝은 조명마저 어둡게 흐려놓았다. 아니, 이 서재필이라는 인간의 빛은 영영 꺼져버렸다!

서재필은 눈물을 머금고 작업반의 신입용접공들에게 하나하나 공구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는 스뎅으로 자작 만든 용접공구함과 용접면을 집에 가지고 들어왔다. 그것은 자신이 한생 용접공으로 사심없이 일해왔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표적이기때문이였다. 오늘은 그것이 그대로 아들에게 넘어갔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으나 대신 서재필은 발전소와 아예 담을 쌓고 낚시질에 열중했다. 가끔가다 기술발전부기사장을 만나 공장소식을 듣는것이 서글프긴 해도 락이라면 락일뿐이였다. 서재필의 그 숨은 락을 알아주고 달래준 사람은 발전소에서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이였다. 가끔 장성강으로 나와 발전소소식을 알려주는 석남흥이 얼마나 고마왔던지 종일 잡은 물고기를 통채로 들려주군 했다. 몸은 강변에 나와 낚시대를 드리우고있지만 마음은 전기, 오로지 전기에만 가있었다.

하지만 며칠전 장성강낚시터에서 석남흥을 만나 이야기도중에 2호발전기소리가 나와 무심코 한마디 비친것이 오늘 당비서까지 찾아오게 만들줄은 전혀 몰랐다.

서재필의 속생각을 알리 없는 리성복이 거듭 부탁했다.

《서동무, 내 기사장동무와 토론했으니 다시 공장으로 나와주시오.》

《…》

서재필은 눈을 쪼프렸다. 절로 눈에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 그는 자기가 몹시 흥분했다는것을 느꼈다.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꺼내며 눈굽을 훔치는 그의 심중에서는 노여움의 파문이 세차게 일어번졌다.

(성쌓다 남은 돌처럼 버릴 땐 언제인데… 아니, 그렇게는 못해!)

서재필은 리성복을 곧추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비서동지, 내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난 공장에서 아주 나온 사람이라구요. 다신 그런 청을 마십시오. 난 결코 오락을 위해 아무때나 이쪽저쪽 옮겨놓는 장기쪽이 아닙니다. 더이상 사람을 괴롭히지 마시우!》

서재필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나 웃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리성복은 서재필의 급작스러운 태도에 한동안 얼떠름해졌다.

(이릴수도 있단 말인가. 아무리 년로보장을 받은 사람이라도 그렇지. 그래도 2년전에는 자기의 당비서였는데 이렇듯 매정할수 있단 말인가.)

리성복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무안을 당해보기는 난생처음인것같았다. 가슴이 다 얼얼해났다.

빈방에 흘로 앉아있는것도 무안해 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말이지 밝은 환생을 가져온 자기의 진정이 너무 고마와 틀림없이 두손을 와락 부둥켜안으며 어깨를 들먹이리라고 여겼던 서재필이였다. 한생 빛을 창조하여왔기에 그 빛에 주린 몸부림이 회전자축의 용접안이라는 착안도 불러왔으리라 여긴 서재필이였다. 그런데 무엇이 저 인간의 마음속에 그토록 완고한 빗장을 지르도록 강요하고있는것인가?

부엌에서 그들의 대화를 죄다 엿들은듯 서재필의 안해가 방안으로 뛰여들어오며 소리쳤다.

《령감! 환장하지 않았소?》

녀인이 웃방미닫이를 열려고 했으나 끄떡하지 않았다. 그러자 녀인은 그 미닫이를 안타까운 자기 가슴이라도 두드리듯 쾅쾅 쳤다.

《령감, 내 오늘은 한마디 합시다. 그래 령감은 나와 한생을 살면서 언제한번 속을 준적 있소? 그래 모처럼 당비서어른이 찾아왔는데 그렇게 왼새끼만 꽈야 하우? 제발 끙끙거리지 말고 흉금을 콱 터놓구려. 그래 아들보기가 부끄럽지 않소. 늘그막에 로친대접 못 받는다고 탓하지 마시우. 괘씸한 령감태기! 흐흑-》

녀인은 그만 제 설음에 겨워 마구 흐느꼈다.

리성복은 지금에야 령감의 금새를 하찮게 여기는 안주인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아주머니 , 진정하십시오. 》

리성복은 자리에서 일어서 녀인을 만류했다. 그다음 참을수 없는 노여움을 누르며 웃방의 서재필에게 조용히 말했다.

《서동무! 내 오늘은 가겠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난 그래도 서동무를 믿고 찾아왔는데… 섭섭합니다. 그래 이 당비서에게 말 못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내 다시 오겠으니 잘 생각해보시오.》

서재필의 집을 나선 리성복의 가슴은 망돌에 짓눌리운듯 답답했다. 다리까지 떨려 걸음걸이가 술마신 사람처럼 휘청휘청거렸다. 오늘처럼 자기자신에 대해 허무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보는데는 눈이 트이였다고 은근히 자부해온 그였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한 인간에게서 여지없이 패배를 당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 허무감, 그런 패배감은 문제로 되지 않았다. 이제 벽장처럼 닫겨진 서재필의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할지 아직은 방안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념할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서재필은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 빛을 갈망하고있다. 등불을 비쳐 안되면 전등불을, 그래도 안되면 레이자빛을 쏘여서라도 그의 마음속에 강렬한 빛을 주리라.… 사람은 빛이 없으면 못산다. 그래서 막막한 어둠의 장막에 둘러싸인 초원에서 먼 지평선에 반짝이는 자그마한 등불이라도 발견하면 목메는 환희에 넘쳐 얼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내달아가는것이다.

하물며 누구보다 더 못 견디게 빛을 갈망하리라 여겼던 서재필, 그래서 따뜻한 빛발 한가닥이라도 비쳐지면 가슴을 활짝 열어제끼고 그것을 목마른듯 정신없이 빨아들이리라 여겼던 서재필이 어찌하여 구원의 그 빛을 굳이 외면하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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