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7 회


제 1 장


균 렬


7


새벽이슬을 한껏 머금은 청신한 이른아침 당비서 리성복은 출근길에 올랐다. 그는 동암산언덕에 즐비하게 늘어선 발전소사택들을 두릿두릿 둘러보며 걸었다. 당비서로 사업하면서 언제한번 번지지 않고 지켜오는 이를테면 종업원들의 아침생활에 대한 료해산보였다.

매양 이 시간이면 사택들은 제나름대로 바쁘다. 어느 한 집에서 늦잠을 자다가 탄불을 죽였는지 마당에 딴가마를 내다걸며 분주탕을 피우고있었다. 그런 집은 대개 신혼살림을 하는 가정이다.

리성복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젊은 부부가 바삐 돌아가는 모양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허, 또 늦잠을 잤군. 열생산직장의 저 고수머리가 작년 초봄에 결혼식을 했던가?… 아니, 아니야. 3호발전기대보수를 끝내고 결혼식상을 통채로 현장에 가져왔댔으니까 늦가을이겠군. 결혼생활이 한창 꿀맛같을 때지. 저런, 저녀석 직장에 나와선 보기 드문 동작가라더니 제색시 돕는데선 바람개비 한가지인걸!…)

그는 혼자 흐뭇하게 웃고나서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전소후문쪽으로 몇걸음 옮겨짚던 그는 도로옆에 꽃울타리를 곱게 둘러친 어느 한 집앞에서 멈춰섰다. 지금쯤이면 아낙네들이 한창 밥김을 피워올릴 시간인데 그 집 굴뚝엔 연기 한점 없었던것이다. 키낮은 널대문엔 복숭아모양의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운탄직장의 운탄공 박동무의 집이였다. 본가에 해산하러 갔던 아주머니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박동무는 혼자 때식하기 힘들다고 자기 형님의 집에 얹혀있다고 한다.

리성복은 안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연기 없는 굴뚝을 이윽히 바라보고나서 발길을 뗐다.

리성복의 빠른 걸음으로 재면 집에서 청사까지 7분밖에 안 걸리지만 늘 이런 식으로 출근하면 30분도 더 걸리군 한다.

발전소사람들은 가마에서 밥이 뜰 때면 의례히 당비서가 자기 집앞으로 지나간다는것을 알고있다. 어떤 아낙네들은 우정 이 시간을 기다렸다가 그를 만나서는 어렵지 않게 가정사정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 리성복은 바쁜 내색 없이 사정많은 아낙네들의 말을 다 들어주고 그 애로를 풀어주군 하였다.

오늘 아침도 리성복은 발전소사택들을 일일이 다 밟아보고나서 밤새 별다른 일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공장후문에 들어섰다.

출근시간은 아직도 이르다. 그는 먼저 하차직장에 들려 어제 밤에 들어온 석탄재고량을 확인했다. 석탄재고량은 시원치 않았다. 령창탄광에서 들어와야 할 석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연료과에서 복닥소동을 피우며 탄광에 전화를 하느라 야단이였다.

영천화력발전소를 맡은 탄광들에서 석탄을 어떻게 보장하는가에 따라 전력생산이 오르내린다. 석탄이자 곧 전력생산이라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천화력발전소 석탄보장의 기본몫을 맡고있는 령창탄광의 석탄생산량은 나날이 떨어지고있었다. 원인은 여러가지였다. 그중 당면한 석탄생산에 치우쳐 탄밭조성과 굴진을 선행시킬데 대한 당적요구가 잘 관철되지 않고있는것이 기본적인 걸린 문제였다.

리성복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운탄직장과 열생산직장을 거쳐 전기타빈직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전기직장에 들어서니 3대의 호기들이 기운차게 돌아갔다. 일순간 마음이 후련해지고 심장의 박동마저 세차게 뛰는것처럼 느껴졌다.

리성복은 이어 계단을 올라 2층조작실에 들려 콤퓨터에 현시된 전력생산량을 확인했다. 3대의 호기는 만출력을 내고있었다. 석탄만 제대로 보장되면 아무리 높아진 월전력생산도 문제될것이 없다. 석탄, 석탄이 문제였다.

리성복은 매 호기조작실에 들려 전력생산량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2호발전기로 향했다. 2호발전기가 멎은지도 벌써 보름이 지나갔다.

리성복은 아픈 눈길로 숨죽은 2호발전기를 바라보았다. 회전자축은 발전기에서 심장과 같다. 그만큼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은 발전기의 죽음을 의미한다.

리성복이 해체한 2호발전기회전자축이 놓여있는 작업마당에 이르렀을 때 전지불로 균렬부위를 깐깐히 비쳐보고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기술발전부기사장 석남흥이였다. 리성복이 가까이 다가갔으나 그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채 거기에 온 정신을 쏟고있었다.

석남흥은 갓 마흔에 이른 젊고 유능한 기술인재였다. 군대에서 제대되여 일하면서 특수용접공경험을 쌓은 그는 함흥수리동력대학을 졸업하고 전기직장장으로 일하였다. 그가 기술발전부기사장으로 일하는지는 3년째이다. 그 기간 공장에서 제기되는 많은 기술적문제를 풀어 성적으로도 무시할수 없는 사람으로 공인되고있었다. 리성복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를 놓고 밤잠도 잊고 고심하는 그의 일군다운 태도에 감심되였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도 선뜻 특류영예군인에게 안겨줄 정도로 아름다운 성정을 지녔을뿐아니라 저렇게 기능과 책임성 또한 높은것이다.

한동안 균렬부위를 관찰하던 석남흥이 허리를 펴다가 리성복이 자기앞에 서있는것을 보고 흠칫했다.

《언제 나오셨습니까?》

리성복은 느슨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부기사장동무, 아침식사는 했소?》

거세찬 발전기의 동음이 그 말을 삼켜버려 석남흥은 말뜻을 깨닫지 못한채 눈만 둥그렇게 치떴다. 리성복은 석남흥의 곁에 바투 다가서며 큰소리로 반복했다.

《아침식사를 했나 말이요?》

석남흥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아침출근시간이 됐음을 느꼈는지 빙긋이 웃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제 구내식당에 가서 먹겠습니다.》

어제 밤 석남흥은 생산직일을 섰던것이다.

《가기요, 부기사장동무.》

리성복은 그를 이끌고 발전기실을 나왔다. 발전소구내는 출근길을 환영하는 방송선전차에서 울리는 힘찬 노래소리로 법석 끓었다. 두사람은 흐뭇한 기분으로 구내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안에 나타난 당비서와 석남흥을 띠여본 주방장이 활짝 웃으며 맞아주었다.

《비서동진 또 밤을 팬 모양입니다.》

《아니, 밤을 패기야 이 기술발전부기사장동무지. 나야 집에서 편안히 자고 나왔는걸. 그러니 부기사장동무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오.》

주방장은 모를 일인듯 머리를 기웃거리며 주방칸으로 사라졌다. 뒤미처 반짝반짝 윤기도는 늄쟁반에 김이 몰몰 나는 아침식사가 나왔다.

두사람은 식탁에 마주앉았다. 석남흥이 국에 만 밥을 게눈감추듯 하는 동안 리성복은 그와 토론에 붙일 문제가 무엇이겠는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 어떤 묘안을 찾지 않았을가?)

리성복의 뇌리에는 줄곧 이 생각뿐이였다. 어제 밤도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를 놓고 이리 궁싯, 저리 궁싯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리성복과 석남흥은 식당앞에 놓인 나무의자에 마주앉았다. 출근환영모임도 끝나고 각 직장별 아침조회가 시작됐는지 발전소구내는 조용했다. 이따금씩 발전기실철문이 열릴 때마다 지축을 울리는 발전기동음이 우렁차게 터져나올뿐이였다.

《그래, 영예군인의 집에 들여보낸 아들은 잘 지내고있소?》

리성복이 우선우선하게 물었다. 그런데 석남흥은 약간 흥분한 어조로 왕청같은 말을 꺼냈다.

《비서동지, 2호발전기균렬을 제거할 방도를 찾은듯 합니다.》

《그게 정말이요?》

리성복은 귀가 번쩍 열렸다.

《아직은 싹에 불과합니다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은… 어제 서재필아바이를 만났댔습니다.》

《서재필아바이?》

《그 있지 않습니까, 2년전에 공장에서 나간 특수용접공 말입니다.》

《특수용접공이라? 그래그래, 이젠 생각나오.》

한찰나 리성복의 뇌리에는 키가 크고 나이에 비해 허리가 곧은 한 용접공의 모습이 류다른 기억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아마 그것은 바로 서재필이 퇴직결정을 받고 발전소를 떠나던 날일것이다. 그날 정문을 나서는 그와 우연히 마주친 리성복은 오랜 특수용접공에 대한 경건한 감사의 의미로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로용접공은 그를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몸이 말째였던지 힘겨운 걸음으로 덤덤히 지나치는것이였다. 퇴직리유에서 눈이 나쁘다는 조항이 강조되였던것이 생각나 리성복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생 용접화광을 쏘였을 눈이 정상일수가 없는것이였다.

그것이 마음에 얹혀 리성복은 곧 병원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재필의 눈치료를 종업원과 다름없이 계속 진행해줄것을 부탁하는 한편 발전소후방부에 특별히 그의 옷감을 장만해주라고 지시했었다. 아마 서재필은 그 일을 기억하고있을것이다.

《그래서?》

서재필을 감감 잊고있었다는 자책감에 이마를 치면서도 리성복은 호기심을 누를길 없어 다음말을 재촉했다.

… 어제 저녁 석남흥은 생산직일이여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올 생각으로 집으로 들어가던 길에 서재필아바이에게 들렸었다. 집에는 그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말이 둬시간전에 낚시대를 메고 장성강으로 나갔다는것이다.

그는 또다시 장성강으로 찾아나갔다. 서재필아바이의 낚시터를 잘 알고있는 그였다.

저녁노을이 장성강반을 붉게 물들이고 바람 한점 없는 물면은 잔잔했다. 이맘때면 서툰 낚시군들도 수확을 기대하는 좋은 시간이다.

서재필은 색이 바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낚시질에 열중하고있었다.

구럭안에는 한키로는 실히 될 잉어 두마리가 아가미를 껍적거리고있었다. 석남흥은 감탄했다. 역시 서재필은 이 동암지구에서 누구도 따를수 없는 명수급낚시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재필은 엉치를 들썩이며 물고기와 심리전을 벌리고있었다. 몇번이고 낚시줄을 늦추었다, 당겼다 하던 그는 일순간 기발한 동작으로 낚시를 걸어챘다. 빈 낚시코가 허공을 그으며 날아올라왔다.

《제길, 허탕이군.》

서재필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낚시줄을 당겨 낚시코에 반쯤 붙은 미끼를 떼버렸다.

《아바인 오늘도 성적이 좋습니다.》

석남흥이 그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오, 부기사장이군. 그래 무슨 바람이 들어 강변에 나왔나?》

서재필은 낚시대를 바위중턱에 놓으며 석남흥을 반겼다.

석남흥은 서재필을 스승으로 남달리 존경했다. 군대에서 제대되여 화력발전소에 배치되여왔을 때 서제필에게서 용접을 배웠기때문이였다. 한생 용접기와 함께 살아온 그의 용접기술은 화력발전소적으로 손꼽히였다. 그런 고급기능공밑에서 용접을 배운다는것은 로동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석남흥으로서는 행운이 아닐수 없었다. 허나 막상 대상해보니 그 행운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서재필은 종일가도 말 한마디 없이 시키는 일만 수걱수걱했다. 무엇인가 불미스러운 과거를 가지고있어 속죄하는듯 한 소심한 모습이였다. 대신 성미는 까다로왔다. 옆에서 자주 물어보는것도 좋아 안하고 또 용접의 신기한 묘리를 대달라고 조르면 눈을 흘기고는 말없이 가버리고만다. 그저 기분이 좋을 때 한마디 한다는게 《누구든 기술은 제 노력으로 익혀야지 요행수를 바라면 안되지.》 라는 맹랑한 말뿐이였다.

남들이면 열번도 넘게 튀여나갔겠지만 석남흥은 집요한 인내력을 발휘하여 서재필아바이를 따라다녔다. 그 끈질기면서도 완강하고 눈썰미까지 있는 석남흥이 마음에 들었던지 서재필은 그에게 하나하나 자기의 용접기술을 넘겨주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성공이였다.

이제는 서재필아바이의 마음속 문을 열었다고 생각되였을 때 석남흥은 대학으로 떠나갔다. 그때 서재필은 석남흥에게 빨간색뚜껑의 고급 학습장 두권을 주면서 말했다.

《이 책은 내가 도에서 열린 기술자, 기능공회의에 참가해서 받은거라네, 받아주게. 자넨 꼭 성공할 사람이야.》

이렇게 서재필은 석남흥의 잊을수 없는 로동생활의 첫 스승으로 남아있게 되였다.

석남흥이 오늘 서재필을 찾아온 목적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를 놓고 토론할 일이 있어서였다.

《저… 아바이, 2호발전기회전자축이 균렬간 사실을 알고계십니까?》

《알고있지. 아들녀석이 그러더구만.》

서재필은 낚시도구를 거두며 건성 대답했다.

《지금 성에서는 2호발전기회전자축을 외국에 주문하여 사오자고 합니다. 결국 회전자는 자기의 수명이 다 끝난셈이지요.》

석남흥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서재필은 거두어들인 낚시도구를 손에 쥔채 멍하니 굳어져버렸다. 석남흥은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영천화력발전소의 모든 발전기들과 승수관, 과열관, 쇠붙이라고 생각되는 모든것에 서재필의 땀이 슴배지 않은것이란 없다. 오랜 세월 그의 손에서 녹아흐른 용접봉만도 그 얼마인지 헤아릴수 없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서재필은 공장을 나온지 2년이 되였지만 아직도 잠자리에 들면 매 호기발전기들이 눈에 선하고 수만메터의 승수관들이 살아움직이는것만 같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한동안 망두석처럼 까딱 않고 굳어져있던 서재필이 불쑥 물었다.

《이 사람 남흥이, 하나 묻자구. 2호발전기회전자축균렬부위가 어딘가?》

《3번메달부위입니다.》

《음…》

석남흥은 바싹 긴장되여 서재필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무언가 속구구를 해보는듯 하던 서재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부하모멘트를 제일 많이 받는 부분이군.》

《그렇습니다.》

석남흥은 서재필의 곁으로 바싹 다가붙으며 이제나저제나 그의 입에서 어떤 신통한 답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서재필은 오래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장성강의 흐름에 시선을 박고있더니 이번에는 왕청같은 소리를 꺼냈다.

《내 임자는 믿고있네만… 간부들이 틀렸어. 아들녀석의 소리를 들어보니 뭐 누가 살려주겠거니 하며 애초에 머리들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당비서동지만 해도 어떻게 하든 자체의 힘으로 그 회전자축을 살리자고 얼마나 애쓰는지 아십니까?》

《당비서가?》

서재필의 이마에 대뜸 밭고랑같은 주름살이 깊이 패였다. 그는 불쾌하다는듯 낚시대를 획 내저었다.

《선동연설이나 잘했겠지. 당에서 바라는 문제다, 뼈를 깎아서라도 기어이 발전기동음을 울리자!… 뻔해!》

석남흥은 안타까움에 또다시 한숨이 나갔다. 그렇다고 서재필을 탓할수도 없었다. 발전소에서 가볍지 못한 걸음으로 들어간 마음을 아직도 묵새길수 없어하는 그 심리가 리해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잠시후 서재필은 뜻밖에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네만… 자네 말만은 믿겠네. 누구도 이 서재필을 찾아올 궁리는 않고 괜한 골머리를 앓고있는데 임자만은 끝내 날 찾아주었거던. 하긴 다들 애쓰기야 하겠지. 그래서 참고삼아 귀뜀하는것이니 연구해보라구. 내가 수십년전 북창화력발전소에서 특수용접공을 할 때 부러져나간 발전기회전자날개를 용접으로 되살린적이 있네. 그 재질이 발전기회전자축과 비슷해. 얼마전에 듣자니 아직 한번의 사고도 없이 정상가동한다고 하더군. 그러니 용접의 방법으로 균렬을 제거할수도 있지 않을가?》

《?!…》

석남흥은 막혔던 귀가 쩡 열리는듯 했다.

《용접의 방법으로 말이지요. 그래서요?》

《발전기회전자축의 회전속도는 분당 3 600회전이 아닌가. 용접으로 이어붙인 회전자날개도 3 600회의 고속회전에서 지금껏 견디여냈을라니 회전자축인들 다를가. 이건 내가 며칠밤 곰곰히 따져본거니 한번 잘 생각해보게.》

석남흥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내리쳤다. 십분 가능한 문제였다. 누구나 그 어떤 재질의 강재도 그 재질에 따르는 용접봉으로 마음먹은데로 이어붙일수 있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러나 회전자축을 용접으로 이어붙일 가능성을 이야기한 사람은 오직 서재필 한사람뿐이였다. 수백명의 기술자, 기능공들이 밤낮을 모대기며 안타까이 방도를 모색했지만 이렇듯 단순하면서도 신통한 수를 누구도 내놓지 못한 사실에 얼굴이 뜨거워났다. 하기야 발전기회전자날개를 용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대담하고 기발한 수를 생각지 못할것이다.

석남흥은 눈물겹도록 서재필이 고마왔다. 사실 서재필의 퇴직은 영예로운 은퇴로 되지 못했다. 한생을 화력발전소에서 특수용접공으로 일하고도 큰 평가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공장을 나갔던것이다. 그때 석남흥은 기사장을 찾아가 서재필아바이를 너무 이르게 공장에서 내보낸다고 의견을 제기했었다. 기사장은 서재필이 제 눈을 찔렀다고, 동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할수없이 서재필은 말 못할 사연을 가득 묻어두고 공장을 나갔던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듯 훌륭한 착상을 내놓았으니… 석남흥은 서재필의 마음속에 남모르게 잠재여있는 쇠물처럼 뜨거운 공장애에 대해 깊이 머리숙어졌다.

《아바이, 정말 고맙습니다. 이 소식을 당비서동지가 들으면…》

석남흥은 서재필의 두손을 맞잡고 기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리성복은 당장 서재필아바이를 찾아가자고 그를 잡아끌었다. 석남흥은 여느때없이 덤벼치는 리성복을 자제시킬듯 어조를 은근히 낮추었다.

《비서동지, 이제는 균렬을 제거할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으니 기사장동지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는게 어떻습니까? 기사장동지도 무척 기뻐할겁니다. 그다음 그와 함께 서재필아바이를 찾아가 구체적인 대책안까지 세우겠습니다.》

《그게 좋겠군. 나도 시간을 내서 서재필아바이를 찾아보겠소.》

리성복은 개운해진 마음으로 석남흥과 헤여졌다.

리성복이 정양소건설장으로 걸음을 다그치는데 행정청사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쳐 찾았다.

《큰아버지!》

뒤돌아보니 련희였다. 련희는 냉큼 달려와 리성복의 손부터 부둥켜잡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집에서나 공장에서나 보고보아도 또 보고싶은 련희의 고운 얼굴이다.

《큰아버지의 방조를 받아야 할 문제가 있어 그래요.》

《어서 말해라.》

리성복은 거의 성급하게 독촉했다. 련희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나 다 들어주고싶어 몸살이라도 앓을 정도인 그였다. 그 심정을 잘 알고있는듯 련희도 응석투로 속살거렸다.

《큰아버지, 내가 현실체험을 내려온지도 여러날 되지 않았나요. 그러니 나도 발전소에 절실히 필요한 기술적문제를 푸는데 한몫 해야지요 뭐. 그래서 두루 료해한 끝에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이 그중 절실한 문제같아 그걸 맡아해볼 결심인데…》

물흐르듯 하던 련희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여기서 별스레 바재이며 끊어졌다. 그래도 리성복은 련희가 발전소현장을 그렇게 재빨리 파악하고 중심고리를 제꺽 포착했다는 생각에 너무 기특하여 성급히 지지해주었다.

《거 좋구나, 정말 좋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 듣기엔 그 기계제작을 서봉철이가 한다고 하던데?…》

리성복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련희가 바싹 다가들며 말했다.

《저도 알아요. 헌데 그 동문 1년째나 혼자 고생을 하는게 아니겠어요.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면서… 그래서 제가 그 동무를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큰아버지 생각은 어때요?》

련희의 얼굴에 어째서인지 엷은 홍조가 피여올랐다. 리성복은 피끗 서봉철에 대한 련희의 그 남다른 관심에 호기심이 없지 않았으나 우선 발전소에서 걸린 문제의 하나가 손쉽게 풀릴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그의 제의를 수긍해주었다.

《난 절대찬성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질 않니.》

련희는 너무 기뻐 어린애처럼 콩당 뛰기까지 했다.

《아이 좋아, 큰아버지도 찬성했으니 이젠 나와 함께 가봐주어야 하겠어요.》

《누구한테 말이냐?》

리성복은 의아한 눈길로 련희의 새록새록한 고운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련희는 또다시 응석투로 《큰아버진 다 알면서도. 그 동무한테 말이예요!》 하며 큰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냐, 그래그래. 내가 가서 소개해달라는거지?!》

리성복은 지련희의 손에 이끌려 특수용접작업반으로 찾아갔다. 마침 서봉철은 저쪽 철판으로 된 책상우에 도면을 펴놓은채 쭈그리고앉아 궁싯거리고있었다. 뜻밖에 나타난 당비서와 련희를 대하자 서봉철은 몹시 당황한듯 했다.

《용접봉심선절단기가 잘되나?》

《…》

서봉철은 주밋거리며 대답을 못했다.

《잘 안되는가 보군. 어깨가 축 처진걸 보니. 자, 내 훌륭한 조수를 데려왔는데 받아주겠소?》

리성복은 뒤켠에 서있는 련희를 서봉철이앞에 끌어다세웠다. 못이기는체 하면서도 련희는 서봉철을 할끔 곁눈질하며 수집게 웃었다.

서봉철은 여전히 두사람의 출현에 어안이 벙벙해진듯 꿀먹은 벙어리마냥 말이 없었다.

《허-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리성복은 망두석처럼 한자리에 굳어져있는 서봉철의 어깨를 툭 쳤다. 그때에야 서봉철은 당비서가 자기를 찾아온 사연에 대해 깨도가 든 모양이였다. 그의 입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열렸다.

《비서동지, 저야 로동자인데 어떻게 대학졸업생을 조수로 삼겠습니까. 차라리 제가 련희동무의 조수가 되겠습니다.》

야유하는것 같은 어조였으나 리성복은 그가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하여 그도 역시 짐짓 엄포비슷이 말했다.

《이 동무 관점이 틀렸구만. 로동자면 어떻고 대학졸업생이면 어떻단말이요. 서로가 합심하면 그만큼 기계제작이 빨리 완성될게 아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린 물러가겠소! 련희야, 우린 청하지 않은 대사집에 온 격이 됐구나. 할수 없는걸, 돌아가는수밖에.》

리성복은 련희에게 눈을 찡긋했다. 이쯤되자 서봉철은 바빠나서 리성복의 팔소매를 잡았다.

《아, 가시다니요. 나야 너무 감지덕지해서 그런겁니다. 비서동지가 이렇게 믿어주는데야… 제 힘을 합쳐 꼭 해내겠습니다.》

리성복은 련희와 눈을 마주치며 흡족하게 웃었다.

련희는 큰아버지의 해학적인 말에 놀라 헤덤비는 서봉철의 모습이 우스워 입술을 오물거리며 해죽거렸다.

서봉철은 입이 함박만 해져 어쩔줄 몰라 했다.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진셈이였다.

《자, 그럼 이젠 서로 통성을 해야지.》

《우린 구면입니다, 비서동지.》

서봉철은 손을 썩썩 비비면서 데면데면한 어조로 말했다.

《다 알고있어. 그래서 그 신세를 갚자고 찾아온거야, 허허.…》

보매 서봉철은 리성복의 속깊은 마음에 크게 감동된듯 했다. 이미 리성복은 련희의 고자질로 그가 며칠전 기사장에게 호된 욕을 먹고는 기가 한풀 꺾여 우울해다닌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좀전에도 손맥이 풀려 이궁싯저궁섯거리던 참이였을것이다. 초롱불같이 환히 밝아진 서봉철의 눈빛을 보니 참 요긴한 때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초급당비서가 대학을 졸업한, 그것도 이슬을 머금은 장미꽃같이 아름다운 처녀를 조수로 데려와 힘을 주니 그 마음에 눈물겹도록 고마와하는것이 헨둥이 알렸다.

《그래, 아버지는 건강한가?》

《예, 건강합니다. 매일과 같이 낚시질을 나갑니다.》

리성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음, 좋구만. 아버지에게 내가 한번 찾아가겠단다고 전해주오. 자, 그럼 난 가겠소.》 하고는 특수용접작업반을 나왔다.

찬란한 해빛이 누리에 가득 넘쳐나고있었다. 멀지 않는 장성강너머에서 열심히 퉁퉁거리는 모내는기계의 동음과 《또 한배미 넘어간다!-》하는 기세높은 웨침이 기분좋게 울려왔다. 농장벌뿐아니라 이 땅 어디서나 들끓고있는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국가건설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총진군길에 오른것이다. 자강땅에서 열어간 락원의 행군길을 따라 나라의 저 북변에서 라남의 봉화가 활활 타올랐고 락원의 기계동음이 그에 합세하여 우렁차게 울려퍼지고있었다. 장군님의 선군령도를 받들고 대담한 공격전을 벌리고있는 대상들에 빛을 주고 힘을 주는 전력공업은 언제나 앞서나가야 할 부문이다.

리성복은 자기도 모르게 배에 힘을 주었다. 그렇다, 우리 영천화력발전소는 온 나라의 총진군발걸음에 나래를 달아주며 결단코 비약해야 한다. 그토록 애를 먹이던 2호발전기회전자축균렬문제도 이제는 그 복구방도가 명백하게 서있게 된것이 아닌가.

모름지기 서재필아바이도 자기가 찾아가주면 감격에 겨워 울먹거릴것이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퇴직한지 오랜 저를 그토록 믿고 내세워주어서… 그 믿음에 힘껏 보답하겠습니다!》

달리 말할수 없을 서재필일것이다. 수십년세월 전기와 함께 살아온, 전기의 그 눈부신 빛발을 위해 육신을 깡그리 바쳐온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으며 만져볼수도 없는 무형의 힘이다. 하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빛으로 이 강산을 단장하는것인가.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류의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온 나라 방방곡곡 우후죽순처럼 일떠서는 대기념비적창조물과 비약의 룡마타고 달리는 조국의 모습에서 삶의 무한한 긍지와 보람을 느끼며 더 힘껏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전력생산자들인것이다. 서재필도 손에서 일손을 놓았지만 마음만은 발전소의 동음과 함께 높뛰고있을것이니 이제 그도 전류처럼 눈부신 빛발에 싸여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게 될것이다.

리성복은 처음으로 머리를 기웃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기발한 착상을 내놓은 보배같은 서재필을 자기가 어째서 눈이 좋지 않다는 별치 않은 한가지 리유로 선뜻 년로보장으로 내보낼수 있었는지 전혀 가늠되지 않는것이였다. 여하튼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복구방도가 나졌으니 막혔던 물목이 터져나가듯 가슴이 후련해졌던것이다.

리성복은 그길로 사무실에 올라가 송수화기를 들었다. 지용수국장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시급히 방조를 받고싶어서였다.

전화는 번호를 누르자 제꺽 걸렸다.

《지동무요, 내 성복이요.… 련희 말인가. 재미를 붙인것 같네. 벌써 발전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기계제작에 착수했네. 암 어련하겠나, 걱정말라구. 련희야 내 딸과도 같은데… 음, 좋아하네. 음, 이젠 마음을 놓으라구. 그건 그거구. 이보게, 한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자고 전화했네. 2호발전기회전자축을 복구할수 있는 방도가 나졌네. 들어보게. 어제 기술발전부기사장이 한 오랜 용접기능공을 만나 용접의 방법으로 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할수 있는 방안을 찾았네. 자네도 알수 있네. 서재필이라구 화력발전소에서 한생을 특수용접공으로 일했다네. 그렇네, 년로보장을 받았네.…》

전화를 하는 리성복의 얼굴은 웬일로인지 점차 굳어졌다. 수화기공명통으로는 지용수국장의 거센 목청이 쩌렁쩌렁 울리며 들려왔다. 리성복은 고막을 울리는 전화소리가 불쾌한듯 수화기를 귀에서 약간 떼버렸다. 그만큼 상대방이 열에 뜬 모양이다. 수화기공명통으로는 곁사람도 가려들을만큼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서재필은 말 마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난 알고도 남음이 있소. 난 지금도 서재필이 하면 입맛이 다 없어지네. 자넨 다는 모를거네. 그까짓 용접기술이 뭐라구 잔뜩 코를 세우고 안하무인격으로 노는가말이요. 기사장의 말에 의하면 공장을 나갈 때도 코를 세웠다면서. 내 미리 말하네만 서재필을 주의하게. 걸핏하면 사람을 걸고든다네.…》

리성복은 한마디 반문도 못하고 서재필에 대한 그의 흉을 들었다. 그도 그럴것은 서재필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너무 적었던것이다. 안다면 용접에서는 누구도 따를수 없는 사람이며 년로보장나이가 되자마자 눈병으로 본인의 의향에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는 사실뿐이였다. 하지만 지용수는 서재필에 대하여 정도이상으로 알고있을뿐더러 그와의 인간관계가 아주 깊었으며 그 연고로 서로 량립될수 없게 사이가 버그러졌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지용수는 용접의 방법으로 회전자축의 복구방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서재필을 믿지 말라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하긴 인간 서재필을 믿지 않는 담에야 그가 내놓은 용접안에 대해서야 더 말해 뭘하랴. 그의 이야기를 듣고난 리성복이 심중해진 어조로 말했다.

《난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이네. 자네가 그렇다고 나도 그를 그릇되게 볼 일은 아니지 않나. 난 그를 높이 사주고싶네, 아직은 용접안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실현가능이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년로보장을 받아서도 공장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면 다지 더 뭐가 필요한가. 알겠네. 서재필을 자네만큼은 몰라도 나도 어지간하게 아니, 용접으로 회전자축을 복구할수 있겠는가나 토론해주게. 알겠네. 전화를 놓겠네.》

리성복은 지용수에 대한 알수 없는 불쾌감으로 기분이 좋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방금전까지 균렬간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복구방도로 들떴던 기분은 지용수의 전화로 하여 마른바가지 부셔져나가듯 깨져버렸던것이다.

리성복은 빈 종이장에 지용수와 서재필의 이름을 나란히 크게 써놓았다. 그리고는 원주필로 몇번이고 반복하여 덧썼다. 두사람중 어느 사람을 믿어야 할지 아직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그는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고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감아진 눈앞으로 균렬이 간 회전자축이 무겁게 안겨들었다. 그는 펀뜻 눈을 떴다.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감을 느꼈다. 비단 균렬은 회전자축에만 오지 않았음을, 발전기를 살려야 할 사람들사이에도 쉬이 풀리지 않는 매듭이 얽혀있음을 느꼈던것이다. 그는 무겁게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가슴이 뻐근해옴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원주필로 《균렬》이라는 두 글자를 큼직하게 써놓았다. 그 두 글자는 리성복의 가슴에 아프게 파고들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