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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제 1 장


균 렬


6



리동혁의 금새는 명윤희를 경기장밖으로 끌어낸 일로 하여 바람먹고 구름똥싸는 장돌뱅이로 떨어졌다. 비온 뒤엔 서늘해지고 거짓말한 뒤에는 부끄러워진다는 말이 있듯이 리동혁은 명윤희를 대할 일이 아뜩했다.

체육대회가 끝난 다음날 리동혁은 마음을 든든히 먹고 명윤희를 찾아 리발소로 갔다. 안전모를 쓰고 나타난 그를 보자 명윤희는 쌀쌀하게 쏘아붙였다.

《이번엔 무슨 희한한 소식이 있어 찾아왔나요?》

명윤희의 칼칼한 눈빛과 마주치자 리동혁의 어깨는 마가을 서리맞은 배추잎처럼 후줄근해졌다. 그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희동무, 정말 안됐소. 동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니 용서해주오.》

《됐어요. 난 동무가 그렇듯 훌륭한 연극배우인줄은 몰랐군요.》

《동무가 뭐라 해도 난 할말이 없소. 그러나 이 머리야 마저 깎아줘야지 이대로야 어떻게…》

리동혁은 안전모를 벗어보이며 사정했다. 그야말로 꼴불견이였다. 했건만 윤희는 울화가 치밀어 리동혁을 문가에로 다몰아갔다.

《다신 내앞에 얼씬하지 말아요. 이 동암땅에 리발사가 나 혼자뿐이 아니니 어서 딴데나 가보라요!》

윤희는 리동혁을 끝내 문밖으로 몰아내고야말았다.

(뭐, 딴데나 가보라구? 다른 리발사를 찾으라면 못 찾을것 같아?)

리동혁은 자기를 향해 다시는 열려지지 않을 명윤희의 입처럼 꼭 다물린 리발소문을 멀거니 쳐다보고나서 씩 황소숨을 불었다. 당장이라도 문을 부시고 들어가 해보고싶은 생각이 불끈했다. 물론 거짓말을 한 자기의 죄는 크다만 한번 손을 댔던 머리야 책임져야 하지 않는가. 저렇게 매몰차서야 어떤 총각인들 좋아하랴.

리동혁은 생각던 끝에 군대때 옛 상관인 서봉철을 찾아갔다. 특수용접작업반에서 일하는 서봉철은 그때 기사장을 만나려고 급히 밖으로 나가는 길이였다. 그것을 알았지만 리동혁은 막무가내로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사관장동지! 제 머리를 좀 다스려주십시오.》

《내가? 그건 왜?》

서봉철의 뒤말은 《명윤희는 어딜 가고?》였다. 리동혁은 더 말하고싶지 않아 머리에서 슬그머니 안전모를 벗겨들었다. 그의 머리모양을 유심히 바라보던 서봉철의 입에서 갑자기 김빠지는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밸이 끊어져라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하- 여 동혁이, 동무 어디 가서 개뜯어먹던 머리를 해가지고 나타났어? 아마 윤희동무가 이걸 보면 기절초풍할거야. 하하하…》

리동혁은 울상을 해가지고 투덜거렸다.

《말도 마십시오. 내 머리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자, 빨리 깎아주십시오. 사관장동지야 군대때 우리 전사들의 머리를 얼마나 잘 깎아주었습니까. 어서요!》

리동혁이 윤희에게서 당한 봉변을 알리 없는 서봉철은 그냥 놀려댔다.

《암만 봐도 개한테 물리웠다 놓여난 수닭꼴이라니까, 하하… 동혁이, 바른대로 말해. 그게 누구 소행이라구?》

《사관장동지, 아, 개와 수닭은 그만 건드리구 어서 이 머리부터 다스려주십시오. 전후사연은 리발이 끝난 다음 설명해드립니다.》

리동혁은 서봉철의 손에 가정용가위를 쥐여주며 졸랐다.

서봉철은 그냥 키득거리며 가위를 잡았다. 그는 윤희가 깎다만 상고머리를 완성하는데 달라붙었다. 생각보다 여간 품이 들지 않았다.

전문리발사도 아닌데다가 가정용가위를 가지고 하자니 군데군데 가위자리가 나 보기가 흉했다.

리동혁은 거울을 앞에 바투 가져다놓고 여기저기 손가락을 찍어가며 훈시했다. 그 훈시를 접수하느라 서봉철은 땀깨나 흘렸다. 하도 다스리고 깎고 하니 상고머리는 비슷이 완성되였는데 너무 짧아진감이 들었다. 그래도 서봉철이 보기엔 제 재간이여서 그런지 그것이 더 패기있어보였다.

리동혁도 그쯤 하자는 식으로 손가락짬에 끼워지지 않는 머리칼을 슬쩍 쓸어넘기고나서 히죽이 웃었다.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갔다.

《자, 이젠 그 반제품상고머리에 대한 사연을 들어보자구.》

서봉철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었다. 리동혁은 어제 있은 일을 사실그대로 털어놓았다.

《사관장동지도 어제 녀자축구경기를 보셨겠지만 우리 돌격대팀의 승리는 보장팀의 명윤희가 있는 한 불가능한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전반전만이라도 그를 경기장밖으로 빼낼 궁리를 했지요. 그 주역을 이 리동혁이 맡았는데 겨우 생각해낸것이 경기시간이 달라졌다는 거짓말과 상고머리였지요. 그런데 잘되여가던 일이 전반전경기가 끝나고 잔뜩 뿔을 세운 기사장동지가 리발소로 뛰여드는통에… 그래 나만 윤희동무한테 깨깨 몰림당하게 됐단 말입니다. 결국 용서도 못 받고…》

서봉철은 그의 이야기를 심중하게 듣고나서 어깨를 툭 쳤다.

《거 멋진 궁리를 했지만 동문 서툴렀어. 나도 돌격대팀이 우승하기를 바란 사람이야. 하지만 그 수법은 사내답지 않은 졸렬한 수가 아닌가. 내가 명윤희래도 동무의 뺨을 쳤겠소.》

리동혁은 군사복무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서봉철을 친형처럼 믿고 사업에서나 생활에서나 그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리동혁이 제대되여 홀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가 아니라 여기 영천화력발전소로 탄원하게 된것도 서봉철의 역할이 컸다.

서봉철은 리동혁이보다 2년 앞서 제대되여 화력발전소로 왔다. 그는 한달이 멀다하게 전우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전력생산자의 긍지가 한껏 어려있었고 나라의 전력생산문제를 놓고 그토록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받드는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갈 옛 사관장의 불타는 결의가 글줄마다 맥맥히 어려있었다.

비록 초소는 달라도 전력생산자가 된 옛 사관장과 전우들사이에 오고간 심장의 호소는 리동혁으로 하여금 영천화력발전소에 제대배낭을 풀게 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들의 전우관계는 다시 이어지게 되였다.

서봉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동혁이, 이번 일은 그저 스쳐보낼수 있는 일이 아니야. 이 일로 해서 동무에 대한 한 처녀의 믿음이 허물어질수도 있다는걸 생각해봤소? 동혁인 남을 기만하는 좋지 않은 싹을 드러낸거나 같애. 물론 난 동무가 달라졌다고는 보지 않아. 병사시절의 그 깨끗하고 고지식한 마음이야 어델 갔겠어. 동혁이, 우린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언제나 그 시절처럼 살아야 해. 가서 윤희동무의 마음을 풀어주라구. 좋은 사람이 그런 실수는 왜 해가지고, 허허…》

《알았습니다, 사관장동지. 내 윤희동무에게 멋진 봉창을 해주겠습니다.》

리동혁은 서봉철의 충고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병사시절처럼 차렷자세로 대답했다.

리동혁과 헤여진 서봉철은 기사장사무실에 들어섰다. 뜻밖에도 방에는 기사장과 함께 지련희가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기사장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난 서봉철은 지련희에게도 슬쩍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발전소를 찾아오는 그 처녀를 처음으로 마중해주었다는 은근한 권리도 포함된 반가움의 인사였다. 기사장은 둘이 미묘하게 눈을 맞추는것을 감촉했는지 의혹에 차서 이쪽저쪽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좀 실뚱해서 물었다.

《또 그 용접봉심선절단기때문에 왔겠지?》

《예, 그렇습니다.》

서봉철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기사장은 대뜸 얼굴을 찡그리며 곱지 않게 내뱉았다.

《봉철동무, 내 몇번이나 말했소. 그 용접봉심선절단기로 말하면 동무보다 우리가 더 신경을 쓰는 문제요. 동무야 용접공이지 전문기술일군은 아니지 않소. 그건 내가 이미 자력갱생직장에 과업을 주었으니 동문 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소.》

사실 그 말썽많은 용접봉심선절단기문제를 놓고 기사장이 여태 골머리를 앓아왔다는것은 서봉철도 잘 알고있었다. 화력발전소에서 제일 긴요한 자재는 용접봉이다. 아직은 나라의 경제사정이 어려운 형편에서 성자재국에서도 화력발전소에 절실히 필요한 용접봉을 원만히 보장해주지 못하고있었다. 그렇다고 앉아서 용접봉 대주기를 기다릴수는 없었다. 하여 공장에서는 이미전에 용접봉을 자체로 생산하기 위한 자력갱생기지를 꾸려놓았다.

하지만 가장 난문제로 제기되는것은 용접봉심선절단기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력갱생기지의 기술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마다 실패하여 하는수없이 용접봉심선절단을 이웃기계공장에 가서 소재의 30프로를 주고 해오고있는 형편이였다. 화력발전소에서 필요한 각종 재질의 용접봉을 자체의 실정에 맞게 생산해내자면 기필코 발전소의 실정에 적합한 새형의 용접봉심선절단기를 제작해내는것이 선차적인 문제였다.

특수용접작업반 용접공인 서봉철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것은 1년전이였다. 처음 그가 기사장을 찾아와 내놓은 절단기설계는 한심하기짝이 없었다. 그래서 기사장에게서 되지도 않을걸 가지고 괜한 고생을 한다며 일찌기 손을 떼라는 권고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서봉철은 물러서지 않고 몰래 혼자 연구하던 끝에 절단기칼날각도를 최소한 5도~4도로 주면 용접봉심선변형을 줄일수 있다는 착상을 내놓았다. 기사장은 머리를 기웃거리면서도 미욱한 놈이 곰잡는다고 혹시 성공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미련이 들었는지 어디 한번 대담하게 제작해보라고 승인했다.

서봉철은 수시로 제기되는 특수용접을 원만히 보장하면서도 작업여가시간과 퇴근후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제작에 달라붙었다. 기사장도 자재과에 지시를 주어 용접봉심선절단기제작에 필요한 자재를 아끼지 않고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한달만에 제작된 기계의 시운전은 무참한 실패로 끝나고말았다. 결국 기사장은 그만 헛물만 켜고 돌아앉아 버린셈이 되였다. 그는 성이 나서 거기에 들어간 자재가 얼마인지 아는가고 서봉철을 다몰아쳤었다.

그런데도 오늘 또 계속 해보겠다고 찾아왔으니 신경이 곤두설만도 했다. 필경 저런 미욱한 고집쟁이를 믿다가 자기만 딱해질것이라는 속구구를 한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기사장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문제는 발전소가 자기 발로 걸어가는가 남에게 업혀 더부살이를 하는가 하는데 있는것이다. 우선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그는 언짢았지만 속을 누르고 비위좋게 달라붙었다.

《기사장동지,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실패가 없는 성공이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한번만 더 힘써주십시오.》

《이 동무 정말 질기구만. 제 맡은 일이나 잘하면 되겠는데 왜 자꾸 중뿔나게 나서면서 그러오?》

기사장은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쯤한데 주눅이 들 서봉철이 아니였다.

《기사장동진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우리 현장사람들을 믿지 않는겁니까. 그래, 우리 당의 대중적기술혁신운동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이 운동의 주인은 기술자들과 함께 우리 로동계급도 당당히 포함되여 있단말입니다.》

기사장은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나중에는 주먹으로 책상을 탕 내리쳤다.

《여, 동무! 지금 누굴 훈시하는거요? 이 방에서 당장 나가오!》

서봉철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모욕감이 가슴에서 보이라화구의 불길처럼 펄펄 피여올랐다. 호감을 갖고있는 아름다운 처녀앞에서 당하는 무시여서 더구나 분했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나가겠습니다. 나도 이 방에 더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용접봉심선절단기문제는 일단 내 손에서 시작된 이상 끝나는것도 내 손에서 끝날겁니다!》

서봉철은 이 말을 남기고 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의 뒤모습을 쏘아보던 기사장은 쓰겁게 입을 다셨다.

가운데서 두사람의 대화를 조마조마해서 지켜보던 련희는 그제서야 호- 한숨을 내그었다. 했으나 기사장의 노기에 찬 얼굴을 그냥 마주볼수 없었다. 련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기사장동지, 전 가보겠습니다.》

기사장은 아무말없이 고개를 끄떡했다.

문을 나선 련희는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식은땀을 손수건으로 꼭꼭 눌러댔다. 따분한 그 자리를 인차 뜨지 못한것이 후회되였다.

련희는 기사장을 만나 아버지의 인사도 전하고 또 화력발전소에 절실히 필요한 기술적문제가 무엇인지도 알아보려고 그의 방에 들렸던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서봉철이 불청객으로 뛰여드는 바람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간에 깨여져나갔다.

그는 놀랐던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공장구내길의 야외걸상에 가앉았다. 마침 구내길 저쪽에서 서봉철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땅에 지그시 눈길을 박은채 은행나무아래에 서있었다.

련희는 은근히 그를 돕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장을 위해 무언가 바치고싶어하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뜨겁고 진실한것인가. 그런 사람을 돕지 않으면 누굴 돕겠는가.

서봉철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있던 련희였다. 어제일만 해도 그랬다. 그때 련희는 각양각색의 명절옷차림을 한 처녀들과 함께 공장문화회관에 들어갔었다. 예술소조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연시작전이여서 처녀들은 자기 직장에서 출연할 종목에 대해 저마끔 재깔거리기 시작했다. 련희는 조용히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맨처음 화제에 오른것은 연료과 령창탄광주재로 일하는 김일로부부의 2중창이였다. 아마 이들의 부부2중창이 오늘 공연의 절정이라도 되는듯싶었다. 그런데 잘 흘러가던 부부2중창의 화제에 까만 양복차림의 한 처녀가 끼여들었다.

《말두 말아. 오늘 무대에는 부부2중창이 오르지 못해.》

《왜 오르지 못한다는거니? 공연종목에 부부2중창이 들어있는걸 내눈으로 봤는데.》

어느새 공연종목을 내탐했는지 부부2중창을 화제에 올렸던 처녀가 반박했다.

《부부2중창이면 뭘하니. 어제도 대들이판을 벌렸는데 뭐.》

《정말?》

처녀들은 놀라서 입들을 딱 벌렸다. 련희도 그들부부의 일이 은근히 걱정되였다. 아직 그들의 노래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단히 안삼불이 째이고 기교도 높다는 소리를 귀동냥해들은것이였다. 그런데 대들이판을 벌렸다면 가정생활에서는 문제의 그 안삼불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느덧 공연의 막은 올랐다. 첫 순서는 공장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 출연하는 노래이야기 《불밝은 평양의 밤》이였다.


전류는 흐른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전류가

허나 그 흐름은

내 사랑 평양에도 피줄처럼 흐르나니

평양이여! 너를 지켜선 우리가 있는 한

너의 불빛은 영원히 꺼지지 않으리 …


노래이야기는 관람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주었다. 련희도 자기가 아름다운 평양의 불빛을 지켜선 사람들속에 둘러싸여있다는 생각으로 사뭇 가슴이 설레였다. 그러고보니 곁에 앉은 발전소처녀들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련희 역시 지금은 당당히 그들과 같은 전력생산자의 한사람이 된것이였다.

첫 종목이 끝나자 분홍색치마저고리를 환하게 차려입은 발전소현장 방송원이 무대로 나와 다음종목을 소개했다.

《다음은 특수용접작업반 용접공인 서봉철동무가 출연하는 시랑송입니다.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

관람석에서 요란한 박수갈채가 일었다. 처녀들속에서 또다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그 멋쟁이제대군인총각 말이니?》

《그래, 그 사람 어디 인물만 잘났니. 특수용접공이 된지 3년만에 벌써 5급이래.》

《어마, 너 혹시 짝사랑하는거 아니가?》

《왜, 그러면 안되니? 에이, 내가 키만 좀 컸어도 그앞에 한번 나서 보겠는데!》

《얘, 올라 못 갈 나무는 바라도 보지 말아, 그림에 떡인걸,》

《쉿, 조용해!》

성미가 활달한 두 처녀의 꺼리낌없는 총각소리였다.

지련희는 그렇듯 처녀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그 멋쟁이미남자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듯싶어 호기심을 가지고 무대우를 지켜보았다.

인차 무대로는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훤한 제낀깃양복차림의 청년이 걸어나왔다. 관중을 향해 정중히 머리숙여 인사하는 그 청년을 보는 순간 련희는 그가 다름아닌 영천역에서 만났던 자전거주인임을 알아보고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그랬어. 그때 그가 서봉철이라고 자기 이름을 소개했어.)

벌써 서봉철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객석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하기 힘들어

이 말을 하기 부끄러워

동네아이들이 아버지자랑할 때면

나는 저 멀리 강가에 홀로 서있었다

나에겐 아버지자랑할게 없어서


무릎바지 입고다니던 소학교 그 시절

아버지는 뭘하시는가고 묻는 선생님물음에

우리 아버지는 승용차를 탄다고

우리 아버지는 이번에 왕별을 달았다고

학급동무들이 저저마다 아버지자랑할 때면

나는 죄를 지은것처럼 머리를 수그렸다

나의 아버지는 그냥 로동자여서


서봉철은 마이크를 떼고 잠시 동안을 두었다. 관람석은 숨을 죽이고 그가 읊는 시의 깊은 감정세계에 끌려들어갔다. 은은한 서정적인 세계가 시의 정서적인 감정과 화합되여 관람자들의 심금을 세차게 달구어주었다. 시는 다시 이어졌다.


누가 감히 숫볼가봐

누가 함부로 나의 아버지를 건드릴가봐

나는 밤새워 산수문제를 풀었거니

명절날에만 볼수 있는 아버지의 공로메달

이것은 나의 아버지자랑의 전부!

허나 이것은 누구에게나 다 있어

나는 아버지자랑에서 한번도 이긴적이 없었다


지련희의 심장은 터질듯 부풀었다. 그는 자기가 어느사이 홀린듯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시에도 랑송자에게도 어쩔수없이 끌려들어간것이였다. 정말이지 그 인물, 그 화술기량이면 중앙의 큰 극장에 세워놓아도 손색이 없을것만 같았다. 살며시 감아쥔 줌안에 땀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련희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감촉하지 못할 정도로 한껏 흥분되여있었다. 아니, 련희만이 아닌 그의 주위에 앉은 처녀들모두가 그러했다. 시의 감정정서는 처녀들의 세계를 어디까지 끌고가겠는지 그 깊이를 알수 없이 더 격조높이 울려퍼졌다.


오, 그날은

내가 아버지자랑에서 이긴 그날은

어버이수령님 우리 공장에 찾아오시여

장알박힌 아버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로동계급의 손은 보배손이라고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라고

말씀하신 그날부터였어라


나는 학교에서 마을에서 자랑했어라

수령님께서 나의 아버지손을 잡아주시며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라고 하셨다고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승용차도 왕별도 로동자다음에 있다고


서봉철은 울먹이고있었다. 그랬다, 랑송자는 확실히 울고있었다. 모름지기 그의 아버지도 한생 로동자로 산 모양이였다. 시구절에도 있듯이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라고 어버이수령님께서 나의 아버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셨다는 대목에서 서봉철은 너무도 격정에 북받쳐 끝끝내는 눈물을 쏟았을것이다. 그러면서도 련희에게는 그 눈물속에 어떤 남다른 아픔이 담겨있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저렇듯 열정에 넘쳐 절절하게 심장속깊이에서 용암처럼 뜨거운 감정을 퍼올리는것이 아니겠는가.

목이 꽉 잠긴듯 잠시 랑송을 끊었던 서봉철은 마음을 다잡았는지 시의 마지막대목으로 넘어갔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이 말을 외운다

위대한 수령님뜻 받들어

경애하는 장군님을 대를 이어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에 끝까지 충성다할

나는 로동자의 아들이다!


서봉철의 시랑송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장내가 떠나갈듯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렸다. 련희도, 그의 주위에서 들까불던 처녀들도 격정된 심정을 손벽이 깨져나갈듯 한 박수로 표시했다.

그가 무대에서 사라진 뒤에도 박수소리는 오래도록 그칠줄 몰랐다.…

지련희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구내길 저쪽에 서있던 서봉철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지련희는 갑자기 떠오른 충동적인 생각에 가슴이 호독호독 들뛰였다. 그를 도와 용접봉심선절단기를 꼭 성사시켜보려는 대담한 결심이든것이였다. 그것이 자기에게 남다른 관심을 돌려주는 기사장 명인국에 대한 어떤 배반이 될는지도 모른다. 하다면 기사장이 그 절단기제작을 한사코 반대하는 리유도 아리숭하게 여겨졌다. 서봉철이 배심있게 접어들었던 기계제작이 실패로 끝났다고 이다지도 랭정하게 잘라버릴수 있단 말인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서봉철이 락심하지 않고 다시 접어들었을 때에야 자기딴에 실패의 원인을 찾았을텐데… 련희는 어쩐지 용접봉심선절단기문제를 놓고 기사장과 서봉철이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작용한다고 생각되였다. 아직은 그 미묘한 감정의 실마리를 찾아 쥐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서봉철의 편역을 들고싶었다.

서봉철을 도와주는것이 그 어떤 개인적인 인정을 초월한 발전소에 절실히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를 푸는 중요한 사업이라는 자각이 앞서서였다. 더우기 련희는 서봉철의 능력과 열정을 몹시 믿고싶은 이상한 호감에 깊이 휩싸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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