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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회


제 1 장


균 렬


5


4월 27일은 영천화력발전소창립절이였다. 어느덧 20여년의 긴 세월이 흘렀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영천화력발전소의 터전을 잡아주시기 위해 몸소 현지에 나오시였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과 함께 장성강다리에 오르시여 쌍안경을 들고 동암벌의 여기저기를 유심히 바라보시며 오늘의 화력발전소터전을 잡아주시였던것이다. 아직은 봄비에 부푼 대지여서 한자욱, 한자욱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신발에 무겁게 달라붙은 흙도 아랑곳 않으시고 발전소의 총부지면적을 일일이 밟아보시였다.

영천화력발전소의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력사의 그날을 영원히 잊지 않고 대를 이어 어버이수령님의 령도업적을 길이 빛내여가기 위해 정해진 이날을 기업소창립일로 뜻깊게 맞군 하였다.

기업소에서는 창립절을 기념하여 체육대회를 조직하였다. 월말생산이 바쁜 때여서 일부 행정일군들이 체육대회를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초급당위원회에서는 발전소로동계급의 단결력과 전투력을 다시한번 과시할겸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 위하여 체육대회를 크게 조직했던것이다.

이번 체육대회에서 주목을 끄는 종목의 하나가 청년돌격대팀과 기타 보장팀사이에 진행되는 녀자축구경기였다. 청년돌격대팀은 당비서가 맡고 보장부문팀은 기사장이 맡은것으로 하여 두 팀사이의 경기는 전체 관람자들의 인기를 모으게 되였다.

어느 팀이 이기겠는가는 두고봐야겠지만 경기전 관람자들의 평은 보장팀에 축구명수로 소문난 명윤희가 있어 청년돌격대팀이 그를 제압하지 못하면 경기에서 이길수 없다는것이였다. 과연 청년돌격대팀이 보장부문팀의 공격수 명윤희를 어떻게 제압하겠는가는 두고봐야 할 일이였다.

명인국기사장의 딸 명윤희는 화력발전소의 처녀리발사이다. 외동딸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고를 뿌리치고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리발사가 되였다.

명윤희는 중학시절 공부도 잘했고 또 축구에 남달리 취미가 있었다.

그가 중학교졸업반때 학급남자들과 축구경기를 한적이 있었다. 축구경기조직도 남자번지기로 소문난 그의 발기에 의해 조직되였고 경기전과정에 두알의 보기좋은 꼴을 넣어 남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것도 바로 명윤희였다.

그 일이 있은 후 명윤희는 전망있는 녀자축구선수로 학교는 물론 영천시내까지 소문나게 되였다. 어느결에 소문을 들었는지 도체육단의 녀자축구감독이 학교로 찾아왔다. 축구감독은 명윤희의 날씬한 키와 천성적인 축구감각을 대번에 포착하고 그에게 체육단에 갈 의향이 없는가고 물었다.

명윤희는 웬일인지 녀자축구감독의 귀맛좋은 의향을 거절해버렸다.

축구감독은 물러서지 않고 부모들한테까지 찾아가 딸의 천성적인 기질을 높이 평가하면서 부모의 권위로 승인해줄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최근 세계녀자축구계를 들었다놓은 우리 나라의 녀자축구선수들의 혁혁한 성과에 대해 장시간이나 이야기해주며 그들의 마음을 들춰놓았다.

그의 아버지 명인국은 기업소적으로 소문난 축구애호가였다. 그는 쉰고개가 지났지만 기업소적인 체육대회때면 매번 행정팀의 주장으로 경기장에 출전하군 했다. 밥상에 마주앉아서도 텔레비죤에서 축구경기소식이 방영되면 흥분하여 숟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군 했다.

명인국은 축구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딸이 신통히도 자기를 닮았다며 쌍손을 들어 찬성하였다. 그러나 처녀시절부터 리발사로 일한 어머니의 의향은 반대였다. 무릇 딸을 가진 어머니들의 심정이 다 그러하듯 그도 딸이 교원대학이나 상업학교를 나와 녀성적인 직업에 종사하기를 바랐었다.

량부모의 서로 상반되는 의향에 딸이 어느쪽을 택하겠는가는 두고봐야 할 일이여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기들의 주장을 내리먹이지 않았다. 부모들은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딸을 지켜보았다. 딸은 발쭉거리며 부모들의 애간장을 말렸다.

그러던 윤희는 중학교졸업을 앞둔 어느날 희망을 적어내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1지망, 2지망, 3지망도 하나같이 상업학교로 적어놓았던것이다.

아버지는 귀여운 딸에게 눈을 흘겼고 어머니는 어절씨구 좋아라 춤을 추었다. 이렇게 되여 명윤희는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뒤를 이어 리발사로 되였던것이다.

명인국은 아침에 집을 나서며 딸에게 말했다.

《윤희야, 이번에 세꼴을 넣으면 아버지가 널 업어주지.》

《꼴은 넣겠는데 아버지가 업어주는건 반대예요.》

윤희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이 아버지가 뭘 해줄가?》

《자, 걸자요.》

윤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명인국도 딸애의 가는 손가락에 자기의 손가락을 걸었다.

《아버지 요구대로 꼴을 넣으면 내 요구를 들어주겠어요?》

《응, 들어주마. 어서 말해라.》

기사장은 딸애의 얼굴을 기분좋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버지, 공장돌격대에 내가 아는 남동무가 있어요. 그 동무의 고향이 황남도인데 이번에 집을 받았어요.》

《오, 고향에서 어머니가 홀로 살고계신다는 그 제대군인총각 말이냐?》

《어떻게 아세요?》

윤희는 눈이 둥그래지며 되물었다.

《집을 배정할 때 당비서동지가 제대군인총각이 고향에 계시는 홀어머니때문에 걱정이 많다며 부모님을 모셔오자고 제기해서 유독 그 총각에게만은 새집을 주었다.》

그제야 윤희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꼴을 넣으면 그 동무네 이사짐을 실을수 있게 화물차를 보장해주세요.》

《너 혹시 그 제대군인총각에게 반한건 아니냐?》

《호호, 아니예요. 우린 순수 동무관계예요.》

윤희가 얼굴이 붉어지기는커녕 너무도 태연히 웃는 바람에 명인국은 마음이 놓였다. 그는 딸을 믿었다. 아마 윤희가 반할만 한 남자는 이 발전소구내에서 찾아보기 힘들거라고 생각되였다. 그만큼 딸의 금새를 높이 사주는 아버지였다.

《좋아, 약속했다. 그대신 세꼴은 꼭 넣어야 한다. 돌격대팀도 만만치 않다더라. 우리 보장팀의 코대를 꺾겠다고 윽윽한다더라.》

《그렇게는 안될걸요.》

《좋아! 어서 경기장으로 나가자꾸나.》

부녀는 이런 약속을 걸고 기업소로 나갔다.

윤희는 즐거운 기분으로 리발소에 들어가 경기복을 꺼내놓았다. 경기복에는 노란색으로 10번선수번호가 새겨져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자기의 재치있는 빼몰기와 정확한 차넣기에 감탄하여 관람석이 와와 끓어번지는 모양이 선히 안겨왔다.

그는 이번 녀자축구의 경기승패가 자기에게 달려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툭툭 높뛰였다. 경기시간은 10시, 아직 20분이 남아있었다.

윤희가 경기복을 갈아입으려고 할 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섰다. 돌격대에서 일하는 제대군인총각 리동혁이였다.

《있었구만!》

리동혁은 별스레 히벌쭉거리며 윤희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빨간 사과 두알을 꺼내놓았다.

《자, 경기전에 이걸 먹고 힘을 내오.》

윤희는 리동혁이 내미는 사과를 스스럼없이 받아들며 말했다.

《동문 돌격대팀을 응원하겠지요? 그런데 상대방팀에 후방사업을 하면…》

《난 말이요, 돌격대팀이 이기든 보장팀이 이기든 상관하지 않소. 아, 다 발전소사람들인데 그렇게 이악스레 승벽을 가를게 있소? 까짓거 어느 팀이 이기든 이기겠지. 그건 그렇고 자, 내 머리를 좀 깎아주오.》

리동혁은 능글거리며 리발의자에 몸을 맡겼다.

《난 시간이 없어요. 당장 경기시간이 박두한데 동무도 빨리 경기장에 나가요. 경기복을 갈아입어야겠어요.》

《챠, 덤빈다구야. 동문 경기시간이 달라진걸 모르고있구만. 이자 오면서 내다붙인 경기시간표를 보니까 녀자축구팀경기는 맨 마지막시간에 하게 되여있더군. 하기야 극장들에서도 인기있는 종목일수록 관중들의 호기심을 잡아당기느라 마지막순서에 넣더구만. 그러니 덤비지 않아도 되오. 그런데 난 말이요. 돌격대에서 혁신자들의 사진을 찍어 속보판에 내다붙이겠다면서 당장 머리를 깎고 오라고 생야단을 하지 않겠소. 그래 할수없이… 좀 도와주오.》

리동혁은 리발의자에서 일어설념을 않고 사정하다싶이 했다. 윤희는 리동혁을 말끄러미 쳐다보았으나 그의 표정에서 어떤 거짓이라고 느껴지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의심할 근거는 없었다. 넉근히 그렇게 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그러니 벌써부터 덤빌 필요는 없었다.

《좋아요.》

윤희는 경기복을 다시 내려놓으며 리동혁의 머리를 살펴보았다. 머리가 좀 긴감은 났지만 보기싫은 정도까지는 아니였다. 그는 리발가위를 찾아들었다.

윤희는 리동혁을 진실한 인간으로 여기고있었다. 흔히 처녀들은 남자라면 우선 멋쟁이로 생기고 언변도 있으며 무슨 일에서나 앞장서나가는 그런 영웅적인 사나이를 좋아한다지만 윤희가 보는 남자의 기본장점은 누가 보든 말든 말없이 자기의 성실한 땀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그런 진국의 인간이였다. 윤희는 리동혁이 그런 부류의 청년이라고 보았다.

리동혁은 돌격대에서 별로 나서지 않아도 언제나 속보판에는 그의 이름이 떨어질줄 몰랐다. 돌격대처녀들은 입을 모아 그를 황소처럼 성실하다고 말들을 했다.

윤희가 리동혁의 성실성을 느낀 그런 일이 있었다. 언제인가 윤희가 돌격대에 이동리발을 나갔을 때였다. 오전시간에 다섯명 돌격대원들의 머리를 깎았는데 맨 마지막으로 리동혁이 리발을 했다. 그러다나니 면도날도 무디여졌는지 좀 뜯는감을 주었다. 그는 아무 내색없이 묵묵히 리발의자에 앉아있었다.

윤희는 점심시간에 우선 리발도구부터 갈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점심식사를 끝내고 여느때보다 일찍 나오니 누군가가 현장에 놓아두었던 자기의 리발도구를 깨끗이 갈아놓은것이 아닌가.

윤희는 그 고마운 소행의 주인공이 누굴가 하고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사람을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날이 선 리발도구로 그날 일을 흥겹게 마쳤다.

윤희가 리발을 끝내고 퇴근하려는데 돌격대에서 일하는 그의 중학교동창생인 철옥이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벌써 끝났니? 윤흰 참 좋겠어. 생각해주는 총각이 많아서.》

윤희는 밑도끝도 없는 그의 말에 길다란 속눈섭을 한껏 치켜올렸다.

《시치밀 떼지 말어. 점심시간에 너의 리발도구를 열심히 갈아주는 사람을 내가 보았는데두?》

순간 윤희는 입을 벌렸다.

《그게 누군데?》

《너 정말 리동혁동지 모르니?》

윤희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왜서인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그 모양을 깔끔히 바라보던 철옥은 다가올 때처럼 생긋생긋 웃어보이고 사라졌다. 윤희의 가슴은 한점 불찌가 날아든듯 따끔했다.

리동혁은 이렇게 윤희의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리동혁은 공장구내에서 윤희를 만나면 인상좋은 얼굴로 먼저 인사말을 건넸고 리발소에 일이 생길세라 달려와 돕군 했다. 윤희는 윤희대로 명절날이면 제 먼저 리동혁을 무도장으로 이끌었고 스스로 그의 단골리발사가 되였다. 이 나날은 그들을 딱친구로 만들었다.

동무들이 남녀관계에서는 순수한 우정이란 없다고 은근히 놀려주군 했으나 그게 무슨 대수랴. 진실한 우정도, 그 우정으로 꽃피운 사랑도 당자는 두사람인데야…

윤희는 친구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써왔다. 별식이 생겨도 슬그머니 합숙에서 사는 리동혁의 호실로 가져갔고 새 책이 나와도 먼저 리동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 세꼴을 넣겠다는 약속으로 리동혁의 이사짐 실어오는 문제를 부탁했던것도 그때문이였다.

그는 리동혁을 위해서도 꼭 세꼴을 넣으리라 마음먹고있었다.

경기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공장종업원모두가 운동장에 나가있어 리발소에는 두사람만이 있었다. 결국 리동혁은 윤희의 특별대우를 받는셈이였다.

리동혁은 윤희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목시계를 훔쳐보았다. 정확한 경기시간은 10시였다. 그는 히쭉 웃으며 윤희가 씌워주는 흰 천을 몸에 둘렀다.

《윤희동무, 이번 머리는 상고머리를 치면 어떻겠소? 그게 더 패기있어보일것 같은데…》

《동무 머리형태는 상고가 어울리지 않아요.》

윤희는 동혁의 머리에 리발기를 가져가며 새침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요구대로 상고머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좀 품이 많이드는 머리형이였다. 그래도 시간은 넉넉하니 덤빌것은 없었다. 사각사각 리발기는 기분좋게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리동혁은 흠흠한 표정으로 대판거울에 비쳐진 명윤희의 새침한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미안하게 됐소, 윤희동무. 축구경기는 시작됐을거요. 어찌겠소, 동무때문에 돌격대팀이 질수야 없지 않소. 난 우리 대장동무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중이요. 아마 내 일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는것 같소. 난 각오했소. 이 일로 동무가 날 용서하지 않으리란걸. 그러나 난 우리 돌격대의 명예를 생각했소. 지금 우리가 얼마나 힘겨운 전투를 벌리고있는지 동무도 잘 알지 않소. 정양소건설을 단 넉달만에 끝낸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요.

어제도 당비서동진 건설장에 나와 종일 블로크를 나르며 함께 일했소. 년세가 많은 비서동지가 얼마나 힘들었겠소. 그런데도 비서동진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느라 앞장에서 뛰고 또 뛰였소. 과연 이런 당일군을 위해 우리 돌격대원들이 무엇으로 힘을 보태겠소. 우리가 맡은 정양소건설은 물론 힘있게 해제끼되 오늘 경기마다에서 비서동지가 기뻐하게 승리를 이룩하자, 바로 이것이였지.

그런데 기업소적으로 축구명수로 소문난 동무가 암초였거던. 우린 생각던 끝에 동무를 경기장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지금의 이 작전을 꾸민거요. 이 특수작전의 주역은 어쩔수없이 내가 맡게 된거고. 처음 난 거절했더랬소. 경기야 정정당당하게 이겨야지 그런 오그랑수를 쓴다는것은 경기도덕에 심히 어긋나며 또 량심에 꺼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러나 끝내는 승인했소.

윤희동무, 내 진심으로 사죄하오. 정말 안됐소. 이왕 경기는 시작했으니 제발 천천히 머리를 깎아주오. 전반전이 끝나면 동무도 섭섭치 않게 경기장에 뛰여들게 될게요.)

전반전이 거의 끝날무렵 돌격대팀은 보장팀문전에 세번째 꼴을 넣었다. 경기장은 그야말로 죽가마끓듯 했다. 돌격대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고 윤희가 없는 보장팀은 죽지부러진 새신세였다.

경기는 돌격대팀의 전술체계대로 맞물려졌다.

리동혁이 윤희를 전반전까지만 경기장밖에 잡아두면 돌격대팀은 두꼴내지 세꼴은 넉근히 넣을것이다. 후반전에 들어가 윤희가 경기장에 뛰여들면 공격력량을 방어에 돌려 그의 손발을 제압하여 맥을 추지 못하게 하자는것이 돌격대팀이 비밀리에 짜놓은 특수작전방안이다.

이 방안을 알리없는 보장팀선수들과 응원자들은 경기직전에 행방불명된 윤희의 행처를 찾느라 분주탕을 피웠다. 제일 속이 안달아난 사람은 아버지인 기사장 명인국이였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세꼴은 문제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약속을 건 딸이 아닌가. 그런 윤희가 경기시간에 리발소에서 돌격대팀의 《간첩》에게 얼려넘어갔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돌격대팀을 책임진 리성복은 엉치에 불달린 사람마냥 안절부절 못하는 보장팀의 기사장을 동정하며 경기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윤희의 모습을 찾아 두릿거렸다.

어느덧 경기는 전반전이 끝나고 중간휴식에 들어갔다. 명인국은 더 앉아있지 못하고 딸의 행처를 찾아 발닿는대로 막 뛰여갔다. 그는 행정청사 1층에 자리잡은 리발소로 달려가면서도 분명 거기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괜히 껑충 뛰며 리발소안을 들여다보던 명인국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윤희가 한가하게 누군가의 머리를 매만지고있는것이 아닌가. 잘못 보지 않았나 하여 다시 유리창을 들여다본 명인국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쳐올랐다.

(세상에 저런 맹추도 있나. 여우귀신에게 홀려도 분수가 있지.)

명인국은 유리창이 부서져라 주먹으로 마구 두드렸다. 와뜰 놀래여 《엄마!》하는 윤희의 부르짖음과 함께 리발가위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츠럽게 났다.

명인국은 더 참지 못하고 리발소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는 앞뒤를 가릴새없이 딸에게 벌컥 역증을 냈다.

《너 지금 제정신이냐? 축구경기가 한창인데 머리를 깎고있어? 벌써 전반전이 끝났다. 3 대 0으로 말이다!》

윤희는 얼나간듯 멍청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분명 세꼴을 돌격대팀이 넣었다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리고 리동혁은?…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말인가? 아, 속았구나.

윤희는 얼굴이 촉수낮은 전등불처럼 지지벌개가지고 채 깎다만 머리를 푹 떨구고있는 리동혁을 쏘아보았다. 억울하고 분한 생각에 눈물까지 쑥 나왔다. 문앞에 떡 버티고선 아버지만 아니라면 리동혁의 귀뺨이라도 후려치고싶었다.

《아니 야, 뭘 멍청해있어? 어서 경기복을 입고 후반전을 뛰여야지.》

아버지가 벼락같이 소리쳐서야 윤희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급기야 위생복을 벗어던졌다. 선수복을 갈아입고 경기장으로 내달리며 혼자소리로 부르짖었다.

《리동혁, 꽝포쟁이! 내 다신 리발을 해주지 않을테다. 그 깎다만 절반짜리 머리를 어디 버젓이 들고다녀봐!》

기사장도 윤희도 경황없이 경기장으로 달려나가고 리발소안에는 머리를 절반만 깎은 리동혁이만이 남았다. 그는 특수작전방안의 주역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러나 승리자의 쾌감을 느낄 경황은 없었다. 이제부터 그림자처럼 뒤따를 갖가지 비난을 생각하니 까마득한 벼랑턱에 선듯 아찔해났다. 더구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자기를 쏘아보던 윤희의 눈빛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여 자기 몸에 박힌듯 소름이 끼쳤다. 리동혁은 그렇게 성난 윤희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니, 다시는 보지 못할것이다. 그토록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상냥한 웃음만을 자기에게 뿌리던 그 명윤희가 아니였던가.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명윤희를 속이다니.…)

리동혁은 당장 고민에 빠졌다. 명윤희 역시 그런 정신상태로 경기장에 뛰여든댔자 관중이 기대하는 훌륭한 득점장면을 펼쳐보이기 만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이 타던 끝에 슬며시 눈을 든 리동혁은 거울에 비쳐진 자기 모습을 보고는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채 완성하지 못한 조각품처럼 깎다만 우습기짝없는 상고머리가 눈을 쿡 찌른것이였다. 우정 시간을 끄느라 자기한테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상고머리를 깎아달라고 조른 덕에 윤희는 더부룩한 머리칼에 주저없이 가위질을 해댔던것이다. 이제 이 모양을 해가지고 경기장에 간다는것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성이 독같이 난 윤희가 경기가 끝난 다음 다시 자기를 위해 리발가위를 잡겠는가 하는것이 더 난문제였다.

물론 그렇게는 되지 않을것이다. 글쎄 후반전에서나마 득점을 올려 이기지는 못해도 비기기라도 하면 어떨는지?… 그래도 오늘만은 윤희의 용서를 기대할수 없다.

리동혁은 리발의자에서 맥없이 일어나 자기 몸을 감싸고있던 흰 천을 풀어버렸다.

(까짓거, 될대로 되라지. 이제야 엎지른 물인걸!)

그러고나니 마음이 좀 편해지기 시작했다. 밖으로 막 뛰여나가려던 리동혁은 저도 모르게 망측한 머리에 손이 갔다. 이런 때 안전모라도 있었으면… 리발소안을 한바퀴 빙 둘러보느라니 리발탁에 산뜻한 타올수건이 놓여있었다.

수건에는 새벽이슬을 머금고 금방 피여난듯 한 빨간 한떨기 꽃이 소담하게 찍혀있었다. 명윤희의 수건이 분명했다. 수치를 느끼면서도 머리에 뒤집어쓰고보니 맨머리보다는 나았다. 흠이라면 남자가 쓰기엔 지내 화려한것인데 그런대로 참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달려갔을 때 경기장은 부글부글 끓고있었다. 실종되였던 명윤희가 후반전경기에 참가한것으로 하여 보장팀은 잃었던 사기를 되찾았고 관객들의 흥미도 절정을 이루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왜서인지 선수들은 윤희와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먼저 전반전에 세꼴을 넣음으로써 승리의 신심에 넘쳐있는 돌격대팀은 철저한 대인방어로 상대팀의 공격을 제압했다. 명윤희가 분한 마음을 달래며 어떻게 하나 득점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공을 잡으면 돌격대팀은 두겹, 세겹으로 그를 에워쌌다. 이쯤 되고보니 평시에 그렇듯 재치있는 공다루기와 정확한 차넣기로 상대측의 꼴문을 위협하던 명윤희의 축구기술도 김빠진 고무풍선이 되여버렸다.

선수들에게 있어 심리적인 압박감은 경기승패에서 결정적역할을 논다. 명윤희가 맥을 추지 못하는 원인이 여기에 있었다. 자기가 진심으로 믿었던 리동혁의 배반으로 하여 심장은 팔딱거렸고 자기를 성벽처립 에워싸는 상대측방어를 뚫고 어떻게나 한꼴 넣어야겠다는 조바심은 그의 손발을 얼구어놓았던것이다.

후반전경기시간 5분을 남겨두고 명윤희는 상대측문전 20메터구간에서 공을 잡았다. 벌써 사방에서 방어로 이전한 돌격대팀공격수들이 윤희에게로 달려왔다. 모두들 윤희가 달려드는 상대팀방어수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고 끝내는 공을 빼앗겨 경기장바닥에 주저앉을것이라고 믿었다.

윤희는 상대팀문전을 바라보며 직접 차넣기하리라 맘먹었다. 그는 맞다든 상대팀방어수를 슬쩍 유인하고 1메터쯤 속공몰기를 하다가 오른발로 힘껏 차넣기를 했다. 공은 속도있게 상대팀문전으로 날아가 그물에 걸렸다. 보기 좋은 통꼴이였다. 경기장은 함성으로 끓었다.

관람객들은 명윤희의 정확한 차넣기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주석단에 앉은 사람들은 앉은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한편 경기는 패해도 딸이 한꼴이라도 넣어 과시 축구애호가의 딸이 다르다는 평가라도 받고저 안절부절 못하고 발장단만 치던 기사장 명인국은 너무 좋아 두손까지 높이 들고 환성을 올렸다.

리성복도 기사장과 호흡을 맞추어 훌륭한 득점장면을 보여준 명윤희를 향해 열성껏 손을 흔들었다. 녀자축구경기는 3 대 1로 돌격대팀의 승리로 끝났다.

리동혁은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경기장 한쪽모서리에서 경기를 보았다. 그는 명윤희가 차넣는 꼴이 그대로 그물에 걸렸을 때 머리에 쓴 수건이 벗겨지는줄도 모르고 환성을 올렸다. 만약 전반전에 명윤희를 참가시켰더라면 돌격대팀은 영낙없이 패했을것이다. 과시 명윤희는 천성적인 축구감각이 있는 멋있는 처녀였다. 그리고 반할만 한 처녀였다.

그렇지만 리동혁의 마음 한구석에는 조바심이 바글바글 끓었다. 명윤희가 돌격대팀의 이 전술방안을 체육협회위원장에게 발가놓는다면 일이 시끄럽게 번질수 있다. 더우기는 축구광신자로 소문난 기사장이 한길이나 뛰면서 즉석에서 경기를 무효로 선포할수 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도 간이 콩알만 해서 우려한 일은 다행히 벌어지지 않았다.

시상식에서 돌격대녀자축구팀은 우승기와 함께 《은방울》 상표가 붙은 손풍금을 수여받았다. 온 발전소가 돌격대팀의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우승은 응당 기업소의 가장 힘있는 전투부대인 돌격대가 차지하는것이 백번 옳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기사장도 돌격대팀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기세로 지금 맡아하고있는 전자도서열람실과 정양소건설을 밀고나간다면 제기일에 앞당겨 끝낼수 있다고 고무를 주었다.

명윤희는 돌격대팀을 향해 크게 박수는 쳤으나 인상은 썩 밝지 못하였다. 이번 경기에서 돌격대팀에게 졌다기보다 양보했다고 생각하는 그였지만 리동혁에 대한 노여움은 명치끝에 딱 맺혀 풀리지 않았다.

그는 체육협회위원장을 찾아가 고소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윤희는 결코 속이 좁은 처녀가 아니였다. 더우기나 돌격대팀의 우승을 축하하여 관객이 터치는 환성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가 옳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발전소의 청년들이면 누구나 돌격대에서 일하고싶어한다. 그만큼 돌격대는 청년들에게 있어 위훈의 상징으로 되고있다.

그렇다고 보장부문 처녀들은 앉아 놀고있는것도 아니다. 그들도 누가 쉽게 대신할수 없는 자기의 임무가 있다. 그러나 돌격대만큼 청춘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친다고는 할수 없다. 그런 돌격대처녀들이 경기에서 우승하여 만사람의 축하를 받는것은 너무도 응당한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생각이 윤희의 마음을 더 크고 넓게 해주었던것이다. 단지 자기의 이런 마음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은 리동혁이 밉고 또 미웠다.

윤희의 마음은 매듭진 실토리마냥 밸밸 탈렸지만 리동혁은 이번 일을 통해 명윤희의 도량 큰 마음을 알게 되여 기뺐다. 그리고 그가 자기를 용서하지 않아도 윤희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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