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 회


제 1 장


균 렬


4


성과학기술국장의 방은 걸려있었다. 옆방에 물어보니 김책공업종합대학으로 초빙강의를 나갔다고 했다.

《국에 들어오지 않고 곧장 퇴근할겁니다.》

콤퓨터와 마주앉아 타자를 치던 생기발랄한 처녀가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리성복은 난감하여 텅 빈 복도복판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손목시계는 오후 6시를 넘어서고있었다. 이제 대학으로 찾아간대도 퇴근시간이여서 지용수국장을 만나기는 코집이 글렀다. 차라리 곧장 집으로 가는것이 나을것이다.

리성복은 서둘러 청사를 나와 지용수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우쳤다.

거의 오래간만에 찾아가는 지용수의 집이였다. 련희를 처음 보내놓고는 너무 보고싶어 평양출장기회만 생기면 꼭꼭 들리군 했었다. 그러면 련희는 너무 좋아 리성복의 품에 안겨 떨어질줄 몰랐다. 평양에 올라온지 오래되였지만 아직도 큰어머니네 집에 더 정이 가있는 련희였다.

그래서인지 만나면 어제 밤 꿈에서 큰어머니를 보았다고, 또 며칠전에는 학교갔다오다가 영희와 꼭같이 생긴 처녀를 보고 《영희야.》 하고 찾았는데 다가가보니 아니라느니,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소리는 전부 큰아버지네 집소리였다. 만나면 더없이 반가와 한덩어리가 되였지만 헤여질 때면 련희는 물론 리성복까지도 눈물을 흘리군 했다.

인간의 정이란 참 뜨겁기도 하고 모질기도 하였다. 련희와 헤여져 며칠동안은 눈앞에 그의 모습이 어물어물 어려와 일손이 다 안 잡혔다.

그래서 련희가 그리울 때면 기회가 있을적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여 자주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언젠가 련희의 이붓어머니가 눈에 서글픔을 한껏 담고 자기를 맞아주는것을 보았을 때 리성복은 흠칠했다. 자기를 대하는 녀인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함께 모성애의 강렬한 그리움이 가득차있었다. 그 눈빛은 리성복의 단 가슴에 싸늘하게 찬 기운을 들씌워주었다.

그때부터 리성복의 행동이 이전과는 달랐다. 자기 품에 안겨드는 련희를 안는 품도 그전처럼 세괃지 않았고 련희의 재롱을 받아주는 품도 이전처럼 아기자기 못했다. 지금껏 자기 기분에 싸여 련희에게 친딸처럼 온갖 정을 쏟고싶어하는 마음이 착실한 녀인의 심정을 뒤늦게야 알게 된 후회감으로 얼굴이 다 뜨거워났던것이다.

그랬다, 녀인은 어린 련희의 마음속에 젖을 먹여 키워준 큰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더욱 강렬하게 해주는 리성복의 출현을 슬퍼하고있는것이였다. 한것은 새처럼 작은 련희의 가슴속에 새 어머니의 사랑이 자리잡을새없이 난데없이 불청객이 뛰여들어 한돌기, 두돌기 차곡차곡 쌓아지던 사랑의 앙금을 마구 휘저어놓는 격이 된셈이였다.

(아, 련희의 어머니가 이 미련한 놈을 얼마나 욕많이 했을텐가. 련희를 위해서도, 또 친구의 안해를 위해서도 발길을 끊어야 해.)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였기에 리성복은 이 집으로의 발길을 오래동안 끊었던것이다. 그렇게 되여 련희를 억지로 외면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었다.

문수거리에 자리잡은 지용수의 집문을 두드렸을 때 그를 맞아준것은 한창 저녁준비를 하던 련희의 어머니였다.

《안녕하십니까?》

리성복이 느슨한 미소를 던지며 집안으로 들어서자 녀인은 너무 반가와 두손을 딱 마주잡기까지 했다.

《어마, 련희 큰아버지. 이게 얼마만이예요?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요!》

녀인은 눈물까지 글썽하여 가방을 받아든다, 재털이며 방석을 꺼내놓는다 부산을 피웠다. 어느덧 쉰줄에 들었으나 눈언저리에 보일듯말듯 가는 실주름이 갔을뿐 여전히 아름답고 정숙한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련희 어머니의 모습이 어찌 변하지 않았으랴. 제 낳은 자식 못지 않게 금이야 옥이야 키워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그 수고를 다 말하자면 한밤이 모자랄것이라고 리성복은 생각했다.

이번에 화력발전소로 현실체험을 나온 함박꽃처럼 환하게 번진 련희의 모습을 대하는 순간 리성복은 마음속으로 련희 어머니를 생각하였었다. 련희 어머니의 수고가 저 환한 련희의 모습에 다 어려있는것이 아니겠는가, 리성복은 일부러라도 련희 어머니를 찾아가 인사하리라 마음다졌던참이라 이번방문길이 의의가 깊다고 여겨졌다.

리성복은 녀인이 이끄는대로 방안으로 들어가며 흥심에 떠 물었다.

《국장은 아직 안 들어왔는가요?》

《예, 10분전에 전화가 왔으니 인차 도착할겁니다. 잠간만 앉아계세요.》

부엌으로 잉그르르 달려들어가는 품이 식사대접준비를 하려는 모양이였다. 하기야 희떠운 롱이나마 자기를 지용수의 형으로 여기고있으니 제수가 시형을 위해 한상 차리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라고 리성복은 흐뭇하게 생각했다. 리성복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이 녀인을 사진으로 처음 보게 될 그때였다. 하루는 지용수가 련락도 없이 불쑥 리성복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환했다.

《원, 전화라도 하고 올게지. 무슨 도깨비에게 홀렸나?》

《그래, 홀렸네. 그래서 이렇게 싱거운 웃음을 자꾸 흘리며 정신없이 달려왔지.》

지용수는 창문가의 쏘파에 기분좋게 털썩 주저앉으며 방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드디여 앉음새를 바로했다.

《자네와 심중히 토론할 일이 있어 왔네.》

지용수는 움씰 일어나 리성복이 앉아있는 앞책상 가까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앉음새를 보니 보통 심중한 문제가 아닌것 같았다.

리성복도 호기심에 등이 달아 지용수를 바라보았다.

지용수는 얼굴이 지지벌개가지고 말할듯말듯 두툼한 입술을 우물거렸다.

(허, 저 친구 속에 굉장한걸 묻어가지고 날 찾아왔군.)

한동안 바재이던 지용수가 드디여 결심이 선듯 입을 열었다.

《난 말일세, 한 녀성을 사귀였네.》

《?!…》

리성복은 너무도 놀랍고 희한하여 눈까지 휘둥그래졌다.

《허, 그게 사실인가, 이거 서쪽에서 해가 뜨겠는걸?》

《어쩌겠나, 나도 홀아비생활에 신물이 난것 같네.》

지용수는 솔직히 마음속 심중을 털어놓았다.

이 순간 리성복은 눈물이 나오도록 친구의 일이 고마왔다. 먼저 간 안해를 그리며 더우기는 사랑하는 딸 련희를 위해 새 가정을 꾸리기 저어하는 그의 심정이 리해는 갔지만 생활의 정상적인 흐름에서 탈선된 그의 처지를 볼 때면 리성복의 마음도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안해를 잃고 수년간을 독신으로 살아오는 지용수였다. 만날 때마다 장가를 들라고 채근하고 새 혼처자리를 물색해주었지만 련희에게 그늘을 지어줄수 없노라고 딱 잡아떼군 하여 리성복은 아예 손털고 나앉아버렸었다. 그러던 지용수가 난데없이 나타나 생활의 길동무를 택했다고 하니 해가 서쪽에서 뜬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 지금 데려왔겠지?》

리성복은 성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그는 지용수가 녀인을 데려다 밖에 세워두고 혼자 들어왔을것이라고 단정했던것이다.

《덤비긴, 다 절차가 있는 법이지.》

품속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든 지용수는 리성복에게로 쑥 밀어주었다.

《어디 봐주게.》

사진속에서는 수집은 미소를 머금은채 약간 고개를 갸우뚱한 미모의 녀성이 칠판앞에 서있었다. 처녀라고 하기엔 좀 지숙해보이나 그렇다고 가정부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젊어보이는 아주 세련된 차림의 녀인이였다. 사진밑굽에 《존경하는 선생님의 생일을 기념하여》라는 글발이 박혀있는것으로 보아 어느 장난꾸러기학생이 교실에서 몰래 찍어서 기념으로 준것인 모양이였다.

《그래그래, 김책공대 전기공학부 교원일세. 나이는 서른다섯, 몇년전에 남편이 병으로 사망했더군. 자식은 없네.》

참지 못하고 지용수가 앞질러 녀인의 경력을 소개했다. 리성복은 입이 벙글서해졌다.

《거 좋구만. 대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니 수준도 성품도 나무랄데 없겠고 게다가 미인이니 안팎으로 합격일세.》

《그렇게 믿어지나?》

《일생 홀아비로 살겠다던 자네가 이렇게 벙글거리며 달려왔을 때야 더 따질게 있나?》

리성복은 사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채 아직은 사진속의 녀인을 쌍 손을 들어 찬성했다.

《아니!》

지용수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들떠보이던 그의 얼굴이 어느사이 진중하게 굳어져있었다.

《내 이 동무의 론문을 방조하면서 모든 점에서 나무랄데 없는 홀륭한 녀성이라는걸 파악하게 되였지만… 그래서 사랑하게 되였지만 자네의 결론없이는 절대로 결합될수 없어 이렇게 달려왔네. 그리고 또…》

《허, 너무 어마어마하다! 내가 뭐…》

《마저 들어주게. 이 동문 련희의 어머니가 되여야 할 녀성이네. 그건 각오가 되여있지. 하지만… 련흰 자네의 딸이기도 하네. 만약 내가 결혼하면 련희를 내놓을수 있나, 응?》

비로소 리성복은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련희를 내놓는다!… 그 말 한마디에 벌써 가슴이 쿡 찔리였다. 언제건 이런날이 오리라고 각오하고있기는 했으나 너무도 오랜 세월 품을 들여 키우고 사랑을 쏟아 다듬어왔기에 이제는 련희가 딸이상의 귀중한 존재로 심장에 인박혔고 그래서 마치 도적질 당하는것 같은 억울하고 분한 생각마저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용수가 굳이 결론을 받자고 온것은 바로 자기의 그 애절한 심정을 누구보다 더잘 알기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자기의 리기적인 감정에 포로되여 한창나이 친구가 영원히 고독하게 살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을수 있는가. 더구나 남자인 경우에는 생활의 길동무가 되여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가정의 반려자가 있어야 인생궤도를 탈선없이 곧바로 갈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련희는 지용수의 심장에서 언제한번 지워져본적이 없는 아픔이자 기쁨이고 고통이자 행복인 유일한 혈육이 아니겠는가. 리성복은 가슴이 얼얼했으나 애써 흔연히 말했다.

《좋네, 난 찬성일세. 다만… 나도 한가지 조건이 있네. 이 녀성이 련희의 진짜어머니구실을 못할 땐 딸을 잃는다는걸 명심하게.》

바로 그 녀인의 손에서 련희는 구김살없이 대학까지 나온 어여쁜 처녀로 성장했다.

귀맛좋은 부름종소리가 그의 회상을 깨뜨려버렸다. 이어 나들문 열리는 소리와 녀인의 낮은 속삭임… 어느사이 지용수가 드레진 몸으로 방문을 밀어젖히며 큰소리를 쳤다.

《이거 우리 집과는 영영 의절한줄 알았더니 왜 손들었나?》

《아니, 마지막항복을 받자고 왔지.》

《됐네됐어, 정말 기쁘이. 여보, 상다리 부러지게 잔뜩 차려올려오오!》

정말 식탁에는 인심 후한 안주인의 솜씨로 차린 산해진미는 아니더라도 눈맛을 돋구는 기름진 음식들이 비좁을 정도로 올라있었다.

《련희 큰아버지, 차린건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련희 어머니가 술병을 들고 리성복의 잔에 기울이려고 했다. 리성복은 얼른 그것을 밀어버리고 자기가 가져온 목이 긴 술병을 꺼내들었다.

《오늘은 내 련희 어머니에게 먼저 한잔 붓겠습니다.》

《아니, 전 술을 입에 못 대는데…》

순간 지용수가 묵직한 어조로 나무랐다.

《여보, 련희 큰아버지가 모처럼 오셨는데 사양하지 마오.》

련희 어머니는 정숙한 자세로 술잔을 받았다.

《련희를 오늘과 같이 훌륭히 내세운 아주머니의 수고에 정말 감복됩니다. 이 잔을 받으십시오.》

리성복은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쳐든 련희 어머니에게 찰랑찰랑 술을 부어주었다. 련희 어머니의 눈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는 술잔을 곱게 입에 가져다대고는 얼른 놓았다. 그리고는 앞치마로 눈굽을 찍었다.

《여보, 기쁜 날 웬 눈물이요, 자 들자구.》

지용수가 안해를 가볍게 나무라며 술잔을 들었다. 리성복도 잔을 들었다. 세사람은 화락한 가정분위기에 싸여 저녁식사를 마쳤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리성복은 지용수와 무릎을 마주했다.

《자네 무슨 토론할 문제가 있어 날 찾아왔겠는데 어서 들어보자구.》

지용수는 리성복의 내심을 꿰뚫어본듯 이렇게 말했다. 리성복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보게, 자네도 우리 발전소 2호발전기회전자축에 균렬이 간 사실을 알고있겠지?》

《알고있네, 어제 발전소에서 올려보낸 자료를 보았네.》

지용수는 사태의 엄중성을 시사하듯 심중하게 말을 받았다. 리성복은 숨가쁜 기분으로 지용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어떻게 살려낼 방도가 없을가?》

지용수는 일언반구도 없이 제 생각에 골몰했다. 그는 며칠전 기사장 명인국과 전화상으로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은 치명적이여서 살려낼 방도가 묘연하니 혁신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 혁신적인 대책이란 회전자축을 외국에 주문하여 사오는것이였다. 기사장도 그 의견에 은근히 동감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기술일군들의 과학적인 타산에 당비서라는 사람은 반기를 들며 어떻게 하나 살려낼 궁냥을 하고있다니 그랬으면 오죽 좋으랴… 지용수는 리성복이 애초에 그런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속다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국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론의가 있었네.》

지용수는 무거운 어조로 말하며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 어조나 그 행동거지가 리성복에게는 어쩐지 좋지 않은 예감을 던져주는듯 했다.

리성복은 마음을 다잡으며 지용수의 입을 주시했다.

몇모금 깊숙이 담배를 들이빤 지용수는 리성복에게 눈길을 주며 우선우선한 어조로 말했다.

《결론은 명백하네. 자네도 알다싶이 어떤 재질의 금속이든 그 재질의 균렬을 그 물질의 물리적마멸로 봐야 한다는것은 초보적인 상식이 아니겠나? 균렬부위도 3번메달축목이더군. 부하모멘트를 가장 많이 받는 부문이니…》

리성복은 입을 꾹 다문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사실 그는 큰 기대를 안고 지용수를 찾아왔었다. 화력발전소계통에서는 지용수만큼 기술이 밝은 사람이 드물다. 그런데… 리성복의 얼굴에 짙게 구름이 낀 모양을 보고 지용수가 말했다.

《난 자네만 동의한다면 성의 일군들과 내각에 상정시켜 이 문제를 해결해볼 생각이네.》

《어떻게?》

리성복은 호기심이 동해나 물었다.

《몰라서 묻나? 2호발전기회전자축은 자기의 사명이 끝났네. 그러니 대담하게 페기하고 새 회전자축을 외국에 주문하여 사오기로 하세.》

리성복은 눈이 커졌다. 애초에 그의 말이 선뜻 믿어지지도 않았다.

《그게… 롱담은 아닌가?》

《원, 그게 무슨 아이들 놀음이라고 롱담을 하겠나.》

비로소 지용수가 진심을 터놓았다는것을 깨달은 리성복은 불끈하여 한손을 홱 내저었다.

《안되네, 그 방안은 찬성할수 없네. 자네도 회전자축의 가격이 얼마인지 모르지는 않겠지? 그래 그 돈을 국가에 손을 내밀어 해결받겠나? 난 그렇게 못하겠네. 그리고 우린 한시가 급하네.》

지용수는 허- 하고 속 빈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곧은목같은 리성복이 답답하게 느껴진 모양이였다. 회전자축을 외국에 주문하여 사오자는 제의가 쉽게 결심되지 않을것이라고 이야기하던 기사장 명인국의 말이 십분 리해가 갔다.

(허, 이거야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격이지. 급하다고 우물가서 승늉 찾을셈인가?)

《그래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나?》

《…》

지용수는 말없이 줄담배를 태우고있는 리성복을 답답한 눈길로 바라보며 다시 말을 뗐다.

《이보라구,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나라의 전기사정은 나날이 긴장되여가네. 그저 어느 단위나 전기, 전기 한단 말일세. 그만큼 우리의 경제가 활성화되여간다는걸 말하지. 정말 우리의 책임이 무거워졌네. 이런 때 수만키로 능력의 발전기를 돌리지 못한다는것은… 정말 가슴이 아픈 일일세. 그렇다고 맥을 놓고 앉아있을수야 없지 않나? 하루빨리 발전기를 살려 전력생산의 동음을 울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자면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단 말일세. 안 그렇나?》

지용수는 손세를 써가며 열변에 가깝게 토로했다. 그도 리성복이 자기를 찾아온것이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를 놓고 그 무슨 신통한 수를 바라고온것임을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그렇다고 엄연한 과학적인 문제를 놓고 무턱대고 만족을 줄수야 없지 않는가? 친구이상이라도 그렇지…

《난 외국에 주문하여 사오는 문제가 자네가 말하는 혁신적인 대책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 이보게! 다른 방도는 없겠나?》

지용수는 크나큰 기대가 실린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리성복을 향해 다시금 이야기했다.

《회전자축은 발전기의 심장부야. 그래 무슨 수로 21톤이나 되는 회전자축의 균렬을 제거하겠나, 무슨 수로?》

지용수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앞에서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리성복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다. 그는 현명한 사람들의 제일가는 장점은 선택을 잘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도 선택에 의해 규정된다. 물론 이것이 그의 인생지론이라고까지는 말할수 없지만 많은 경우 선택을 중시해온 덕에 자기는 오늘 성의 국장까지 되였던것이다.

지용수는 영천화력발전소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문제는 그 설비의 담당자들의 결심여하에만 맡겨두어서는 절대로 해결될수 없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왜냐면 오래동안 소중히 다루어온 그 설비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강하여 기술적인 타산에 앞서 망치로 두드려서라도 제 품에서 떼여놓지 않으려고 할것이기때문이였다.

하지만 리성복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용수가 내놓은 방안이 누구든 쉽게 결심할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 나라의 경제형편은 제국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경제봉쇄로 하여 의연 어렵다. 이런 때 어떻게 하든 나라의 귀중한 설비를 살려낼 방도를 찾아야지 무턱대고 국가에 손을 내민다면 그것이 과연 주인다운 일본새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리성복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용수도 더는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방안의 공기를 짓눌렀다.

리성복은 이 순간 지용수와 함께 흘러온 오랜 세월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보았다. 그들은 군대에서 제대되여 덕산기계공장 공무직장에서 서로 알게 되였다. 리성복은 당세포비서로, 지용수는 작업반장으로 일했다.

장가도 한달새에 거의 함께 가고 새살림도 나란히 한 옆집에 폈다.

그후 당의 정치적신임과 은정에 의해 리성복은 도당학교로, 지용수는 함흥수리동력대학으로 떠나갔다. 5년후 그들은 영천화력발전소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 연고로 둘은 뜻도 지향도 서로 같았다. 하지만 이번문제를 놓고는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내놓았던것이다.

두사람은 서로의 견해를 합치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리성복은 잠을 이를수 없었다. 의혹이 가슴을 갉았다. 지용수가 혹시 상급기관일군들이 때로 범하기 쉬운, 넓은 범위의 사업을 지도한다는 권위에 포로되여 절박한 현실의 요구나 나라의 리해관계를 외면하고 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는 관료가 된것은 아닌지?… 그것은 나중에 변질을 낳고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수 없었다.

(아니, 내가 너무 이르게 속단하는게 아닐가? 그도 전기와 한생 인연을 맺고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한창시절에는 발전기동음을 들어야 잠이 오고 아스라한 굴뚝에서 뭉게뭉게 흰연기가 타래치는 모양을 보아야 몰렸던 피곤이 풀리던 발전소의 로동계급이 아니였는가, 그러던 그가 목숨처럼 귀중히 여겨오던 발전기회전자축을 강건너 불보듯 대할수 있단 말인가?)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지만 칼끝같은 신경으로 하여 잠은커녕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리성복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용수는 까딱 않고 누워있었다.

리성복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푸릿한 가로등빛이 창문으로 흘러들었다. 이렇게 속이 탈 때는 랭수라도 한그릇 쭉 들이켰으면 좋으련만… 차각차각 전자벽시계의 고르로운 소리가 방안을 꽉 채우고있을뿐이였다. 손더듬으로 담배를 찾았다. 담배꽉에는 피다만 두대의 담배가 남아있었다. 그는 한손으로 라이타를 가리우며 조심히 담배불을 붙여물었다.

《이보게, 밤도 깊었는데 눈을 좀 붙이게. 그렇게 마음쓴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나. 한밤 자고나면 무슨 수가 떠오를지 알겠나?》

지용수도 리성복이처럼 궁싯궁싯 잠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한마디한마디 말속에는 병든 자식을 안은 부모의 애절한 심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영천화력발전소의 전체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생사기로에서 헤매는 병든 자식을 대하는 심정이였다. 그만큼 발전기에 온넋을 쏟아붓고 사는 사람들이 숨죽은 발전기를 안고 몸부림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것이였다.

《이 사람 성복이, 너무 속태우지 말게. 발전소에서 올라온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사고원인을 분석해보니 제작상 재질에 결함이 있지 발전소의 책임은 전혀 없더군. 그러니 더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될 문제라고 보네.》

지용수는 자기딴엔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리성복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느슨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리성복의 내심에 더 큰 불만을 가져다 준다는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 그 누구의 책임으로 이 문제가 풀릴수 있다면 이렇게 속을 태우지 않겠네. 자넨…》

리성복은 말끝을 채 잇지 못했다. 속에서는 지용수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불끈불끈 치밀어올랐다. 그는 지용수가 오래전 발전소에서 기술발전과장으로 일할 때 보여주었던 열정적이고 아름답고 고상하던 모든것이 높아진 관직과 함께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음을 비로소 느끼게 되였다.

리성복은 당장이라도 불을 켜고 방바닥을 치며 지용수를 질책하고싶었지만 아래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정들의 대화에 신경을 도사리고있을 안주인을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눅잦혔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