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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 1 장


균 렬


3


뜻밖에도 당중앙위원회의 부름을 받고 급히 평양에 올라온 리성복은 그곳에서 가슴뜨거워지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를 만난 일군은 첫마디부터 목이 잠겨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언젠가 보슬비가 내리는 밤 북부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평양시가 바라보이는 도로에서 차를 멈추시였습니다. 차창밖에서는 여전히 보슬비가 휘뿌리고 사위는 한치앞도 분간키 어려웠습니다. 승용차전조등을 끄시고 천천히 차에서 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불꺼진 평양시의 거리를 가슴아픈 눈길로 바라보시였습니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일군들이 죄스러운 마음으로 장군님께 어서 차안에 들어가셔야지 그러다 옷이 다 젖겠다고 간절히 말씀드리자 장군님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둠에 묻힌 평양의 거리를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슴이 아픔니다. 아직 생활도 넉넉치 못한데 전기까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니 시민들이 얼마나 불편을 느끼겠습니까. 우린 가책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입니까? 수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고가신 인민이 아닙니까. 정말이지 우리 인민만큼 오늘의 고생을 달게 여기며 만난신고를 꿋꿋이 이겨나가는 인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차거운 보슬비에 그이의 야전복은 푹 젖어들었습니다. 수행일군들은 너무 안타까와 장군님께 그러다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쩌겠는가고 어서 떠나실것을 거듭 말씀올렸습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여전히 평양의 거리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신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으시였습니다. 한참만에야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던 그이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동무들은 내 옷이 젖는다고 걱정하는데 젖은 옷이야 말리우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 불꺼진 창문을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나를 기다리는 평양시민들앞에 어떻게 차를 타고가겠습니까? 정말 가슴이 아픔니다.〉

그 말씀에 일군들은 끝내 눈물을 쏟고야말았습니다. 장군님의 심중이 얼마나 아프시였으면… 그이를 받들어 일을 쓰게 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그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습니다.

〈동무들! 우리 힘을 냅시다. 당에서 제시한 경제건설의 웅대한 목표를 내걸고 투쟁하면서 모든 부문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전기에 대한 수요를 더한층 높일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올해에도 전력문제를 푸는것을 경제과업수행의 선결적인 요구로 내세웠고 그 관철을 위해 전력부문 일군들이 떨쳐나 일련의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장성하는 경제발전수준에 비추어볼 때 우리에게는 아직 전기가 모자랍니다. 우리 전력부문 일군들을 다시한번 분발시켜 나라의 긴장한 전력수요를 풀어나갑시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비를 맞으시며 전력생산을 끌어올릴 방도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습니다.…》

리성복은 어떻게 당중앙위원회청사를 나섰는지 알수 없었다. 한낮이였다. 대동강기슭에는 수양버들이 줄지어 늘어서 한창 연두빛잎새를 내밀며 다양한 봄볕에 하느적이고있었다. 소생의 봄을 맞은 환희로운 강반, 하지만 리성복은 전혀 그 풍경에 눈이 가지 않았다. 그저 죄책감으로 심장이 무섭게 옥죄여들었을뿐이였다. 이 땅의 거리마다에 밝은 빛을 주고 온 나라 공장마다 보이지 않는 크나큰 힘을 주는 전기, 그 전력생산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간다는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살던 그였다. 60객이 된 오늘까지 더더욱 왕성한 정력으로 일해나가는 그의 열정과 패기의 기초도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이였다. 그런데 다름아닌 바로 자기가 일을 쓰게 못하여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을 다녀오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부족되는 전력사정으로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자기같은 당일군이 천이면 무엇하고 만이면 무엇하랴. 죄인, 이 땅에 머리들고 살수 없는 죄인이야말로 바로 자기가 아니겠는가!

리성복의 걸음은 절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졌다. 생명이 꺼진 상태인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을 하루빨리 제거하는것만이 장군님의 기대와 신임에 보답하는 첫걸음으로 되는것이다. 그 복구방도를 지배인은 내놓을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배인앞에 그 말을 꺼내야 하겠는지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병원침상에 누워 인생의 조락을 맞고있는 지배인이 아닌가.

그의 눈앞으로는 며칠전 기사장이 평양출장길에서 가져온 지배인의 편지구절이 자꾸 얼른거렸다.

《비서동무, 미안합니다. 2호발전기대보수로 온 발전소가 밤낮없는 전투를 벌리고있을 때 이렇게 침대에 매인 몸이 되고보니 미칠지경입니다. 마음같아서는 환자복차림으로라도 공장에 달려가고싶지만 육체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군요. 기사장동문 공장일이 다 잘되니 걱정말고 치료를 잘 하라고 신심을 줍디다만 그릴수록 발전기의 동음을 듣고싶어 못 견디겠습니다.

어제 밤 창문을 내다보니 동평양지구의 몇몇 고층살림집에 불이 꺼져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죄스러워 온밤 잠을 이를수 없었습니다. 그저 인차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몸뚱이만을 저주했을뿐이지요.

비서동무의 두어깨에 큰 짐만 실어주고 누워있는 나를 욕많이 하시오. 공장일을 부탁합니다. 믿겠습니다.》

편지에서는 한생을 화력발전소와 함께 보낸 공로있는 일군으로서의 지배인의 공장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함께 병든 육체로 하여 남들의 짐이 된 애달픔이 짙게 풍겨오고있었다. 그것이 리성복의 가슴을 아릿하게 허비였다. 10여년간이나 함께 일해온 그들이였다. 그 기간 서로 위해주고 떠받들며 오로지 나라의 전력생산을 위해 뛰고뛰였었다.

나이는 같아도 지배인은 언제나 당비서앞에서 자신을 낮추었고 자기 또한 지배인을 높이 사주어 성적으로도 당, 행정결합이 잘되는 기업소로 소문내왔었건만…
사람의 가치란 그 사람의 자리가 비였을 때 더 뚜렷이 나타나는 모양이였다. 지배인이 병원에 실려가 있는 두달동안 리성복은 그가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해왔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 어깨에 새롭게 짊어지게 된 짐의 무게가 바로 지배인의 가치였던것이다. 바로 그 지배인이 어버이장군님께서 전력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신다는것을 안다면 당장 뛰쳐나오자고 할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리성복은 잠시 망설이다가 담당의사의 방문부터 두드렸다. 위생복차림에 청진기를 들고 어디론가 나가려던 중년의 녀의사는 리성복이 들어서자 반색하여 부르짖었다.

《아이, 비서동지가 또 오셨구만요!》

여러번 찾아오는 과정에 서로 낯을 익히고 친밀해진 그들이였다. 리성복은 모자를 벗으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이거 바쁜 선생님의 걸음을 지체시킨게 아닙니까?》

《안예요, 괜찮아요. 어서 앉으십시오.》

담당녀의사는 상냥하게 자리를 권하였다. 나이에 비해 머리칼이 류달리 까맣고 윤기가 자르르 도는 녀인이였다. 거기에 갸름한 얼굴과 잘 조화되는 안경으로 하여 세련된 지성미까지 한껏 보태여져있었다.

그가 여전히 상냥하게 말을 이었다.

《아마 지배인동지의 건강이 념려되여 저부터 먼저 찾아온 걸음이겠지요?》

역시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데는 의사들의 눈이 남달리 예민했다. 리성복은 에두르지 않고 툭 털어놓았다.

《옳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시오. 우리 지배인이 꽤 일어날수 있을가요?… 아니, 자기 직무에서 그대로 일해낼수 있겠나 말입니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물음이여선지 녀의사는 딱한듯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다음 억지로 미소를 띄워올렸다.

《이제 만나보시면 알테지만… 지배인동지의 병은 우리도 놀랄 정도로 많이 회복되였답니다. 정신도 맑고 언어장애도 풀리고… 정말 감탄할 정도예요.》

《?…》

리성복으로서는 여간 반갑지 않은 소식이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끛게 녀의사의 눈을 곧추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자기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였던것이다.

그 눈길앞에 끝내 녀의사는 항복했는지 고개를 떨구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뭘 더 숨기겠어요. 우리 소견에는 왼쪽팔과 다리에 온 강직이 쉽게 풀리지 않을것 같습니다. 영원히 풀리지 못할수도 있고… 전 비서동지가 기대하는 대답을 드릴수 없습니다. 원체 년세가 많으시니 혹 다시 일을 보신대도 약간한 정신적부담이나 육체적과로를 받아도 2차뇌출혈이 오기 쉬우니까요.》

리성복은 가슴이 답답하여 웃옷단추를 벗겼다. 당장 선생은 우리 지배인을 잘 모른다고, 그는 발전기의 동음을 들으면 오히려 심장의 박동이 더 고르로와지는 사람이라고 반박하고싶었다. 그러나 녀의사 역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기사로서의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책임적인 대답을 했다는것을 부정할수 없었다. 그 어떤 강의한 의지를 가지고도 인간의 육체적한계점을 극복해낼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것이다.

리성복은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럼 전…》

무거운 마음으로 입원실에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있던 지배인은 반색하여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 동작이 서툴고 몹시 불편했다.

《아니, 그냥 누워계시오. 그냥!》

리성복이 황급히 다가가 진정시키려 했으나 지배인은 그냥 고집을 썼다.

《그사이 내 병이 얼마나 나았는지 잘 모르시는구려. 비서동무가 처음 면회왔을 때는 말도 제대로 못 번지고 팔다리도 까딱 못하지 않았습니까. 이젠 바깥출입도 혼자 한단 말입니다.》

끝내 지배인은 혼자 몸을 일으켜 편안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장한듯이 리성복을 돌아보며 벙글서 웃었다. 자 이래두? 하는 표정이였다. 그러나 리성복은 여전히 병색을 털어버리지 못한 누르끼레한 그의 얼굴을 차마 정면으로 마주볼수 없었다.

그 기색을 가려보았는지 지배인이 슬쩍 말을 돌렸다.

《이젠 비서동무가 제 몸걱정을 해야 할가보우. 몸이 대단히 축갔소. 이번걸음에 꼭 시간을 내여 종합검진을 받아보시우. 내 이번에 쓰러지고보니 건강에는 장수가 따로 없습니다. 제 몸은 제가 돌봐야 한다 이 말이요.》

눈뿌리가 후더워올라 리성복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사경에서 겨우 소생한 지배인이 오히려 성성한 자기를 념려해주고있는것이였다. 그럴수록 곁에서 그를 잘 돌봐주지 못한 가책이 뼈를 에이였다.

사실 지배인은 고혈압으로 내내 신고했었다. 그러다가 올해에 긴장한 2월계획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다나니 그만 자기 사무실의 책상우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것이였다.

이번에도 지배인이 또 새로운 화제를 꺼내였다.

《4월전력생산계획이 몹시 바쁘겠지요? 내 모르기는 하겠지만 석탄이 보장되지 않아 애를 먹을겁니다. 며칠전 기사장도 전력공업성에 석탄보장때문에 올라왔다고 하더군요. 령창탄광이 구실을 해줘야 하겠는데…》

《지배인동무, 너무 걱정마시오. 계획은 우리가 알아 할테니… 병원침대에서야 병고칠 생각을 해야지 원.》

(다행이다. 지배인은 2호발전기회전자축이 균렬간건 모르고있다. 알려주면… 더 도질것이다.)

비로소 리성복은 지금껏 가지고온 간식구럭을 감감 잊고있었다는것을 깨닫고 급히 일어나 사과부터 꺼냈다.

지배인은 그가 베여준 사과한쪽을 입으로 가져가다말고 슬그머니 물었다.

《기사장동무가 일을 감당해냅니까?》

《또 사업얘기를 하자오?》

리성복이 짐짓 성을 내보였으나 지배인은 고집스레 머리를 저었다.

《어찌겠소. 내 보기엔 그가 실력도 있고 현장경험도 풍부하니까 얼마든지 날 대신할수 있을게요, 얼마든지!》

《?…》

피뜩 고개를 든 리성복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지배인의 두눈에 추연한 빛이 뽀얗게 떠돌고있었던것이다.

《지배인동무, 뭘 말하시는거요?》

지배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어딘가 한점을 지그시 쏘아보고있더니 무엇인가 결심한듯 움쭉 일어나 의무탁의 서랍에서 무슨 종이 한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윽히 그것을 들여다보며 괴롭게 중얼거렸다.

《난… 비서동무가 담당의사를 만나고왔다는것을 아오. 그렇소. 난 내 병을 잘 아오. 이 강직은 쉽게 안 풀리오. 식물인간이 안된것만도 다행이지. 그러니 허울뿐인 이 몸뚱이에 그냥 관직을 두르고있으면… 발전소만 녹소!》

지배인이 성난듯 쑥 내민 종이장을 보고 리성복은 흠칫 놀랐다. 그것은 지배인이 제 손으로 서툴게 쓴 사직서였다.…

병원을 나선것은 오후 4시였다. 리성복은 경황없이 걸었다. 고막속에는 여전히 지배인의 애수에 찬 그러면서도 결단성있는 목소리가 올리는것이였다.

《결심해주오, 발전소의 장래를 위해서… 결심해주시오!》

그는 자기가 주먹속에 꼬깃꼬깃 구겨진 사직서를 그냥 움켜쥐고있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응할수 없는 요구였다. 이제 어데 가서 그만큼 완벽한 일군을 고른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몸상태는?…

(난 못하겠어. 우리야 인생의 마감을 영천화력과 더불어 깨끗하게 마무리하자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그것만은 못하겠어!…)

그러면서도 리성복은 지배인의 결심을 지지해주어야 한다는것을 똑똑히 느끼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토록 마음쓰시는 전력문제를 풀자면 결정적으로 젊고 패기있으며 과학기술기능이 높은 새 일군을 지배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이다.

전기야말로 순간도 꺼져서는 안되고 그 세기 또한 순간도 약해져서는 안되는 우리 조국의 아름다운 빛이고 억센 힘이 아니겠는가. 그 빛을, 그 힘을 떠받들고나가야 할 전력생산자들의 정신육체적힘 또한 가장 강하고 가장 억세야 할것이다. 그래서 지배인이 서운함을 애써 누르며 결심했을것이라고 리성복은 생각하였다.

(역시 지배인은 대틀이야. 그는 몸만 성성하다면 억척같이 일어나 2호발전기회전자축의 균렬제거방안도 쉽게 내놓을것이다. 그에게 모든것을 털어놓고 방조를 받는것이 어떨가? 아니, 아니야. 지배인은 얼마전에 생사기로에서 벗어난 사람인데… 다른 생각말고 지용수국장을 찾아가 의논해보자.)

리성복은 전력공업성청사를 향하여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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