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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회


제2장.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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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리규택이 낚시대를 손질해가지고 집을 나서려는데 닭모이를 주던 로친이 막아나섰다.

《당신 정신있소? 지배인이랑 오겠다고 했는데.》

리규택은 해외로 떠나면서 안하무인격으로 자기를 대한 김성남의 얼굴이 떠올라 이마에 밭고랑을 지었다.

《선배도 모르는 그런 사람은 만나고싶지도 않아.》

《새로 오신 책임비서어른도 함께 온다지 않수.》

리규택이 버럭 어성을 높였다.

《비키오.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데…》

로친이 흠칫 뒤로 물러섰다.

《에그, 무슨 고집이 그렇소. 원…》

로친은 자기도 모르겠다는듯 집안으로 힝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다.

모이를 쫏던 닭들이 놀라서 머리를 쳐들고 두릿거린다.

그러거나말거나 리규택은 대문을 나섰다.

어디로 갈것인가.… 랭각호수로는 가기 싫었다. 그는 대동강가로 발길을 돌렸다.

리규택은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무슨 일때문에 찾아왔댔는지 알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배인에 대한 노여움이 아직도 풀리지 않아 공연히 엇서나가는것이다.

대동강기슭에는 낚시군들이 쭉 늘어섰다. 저마다 경쟁적으로 낚시대를 휘두른다. 공중에서 고기가 펄떡거리고 비늘이 해빛에 번쩍인다. 어디에 자리를 잡을것인가 두루 살펴보고있는데 누구인가 소리쳤다.

《규택이, 여기로 오라구! 자네도 이젠 년로보장을 받은 모양이구만.》

《?…》

그전에 압연직장에서 책임기사로 일하던 동료였다. 다른 말이 없었으면 아무 생각없이 그의 곁에 가서 앉았을것이다. 그런데 년로보장을 받았구만 하는 그 귀에 익지 않은 말이 싫었다. 마치도 이젠 다됐구만 하는 소리처럼 기분나쁘게 들려왔던것이다. 그래서 삐뚜렁소리가 나갔다.

《난 복잡한건 좋아 안해. 도래굽이에 가겠네.》

어정어정 도래굽이에 가앉은 리규택은 별로 흥심도 없이 낚시대를 휘둘러 줄을 던졌다. 물우에 떨어진 깜부기가 오똑 일어설새가 없이 물속으로 쑥 끌려들어간다.

《?!…》

리규택은 어망결에 낚시대를 잡아챘다. 손바닥만 한 붕어가 퍼들쩍거리며 데룽데룽 걸려나왔다. 마수거리치고는 괜찮았다. 기분이 뜬 그는 다시 미끼를 꿰고 낚시를 던졌다. 이번에도 처음것 못지 않은 큰놈이 물렸다.

참, 오늘은 운수가 좋은지 련달아 걸려 올라온다.

사실 대동강에 나온것은 낚시질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래서인지 고기가 더 잘 물린다. 물에 담그어놓은 불룩한 구럭에서 고기들이 풀떡거린다. 미묘한 낚시질의 재미를 이제야 느껴보는듯 했다. 이런줄 알았으면 대동강에 나왔을걸 그랬다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하지만 생각은 은근히 딴곬으로만 흘러간다.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왜 만나자고 하는가?… 혹시 초고전력전기로설계때문에?… 왜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말로 그 문제가 아닐가? 그렇다면 내가 너무하지 않는가.

어쩐지 자기 처신이 잘된것 같지 않았다.

누구인가 옆에서 다급히 소리쳤다.

《고기가 물렸습니다.》

리규택은 언뜻 정신을 차리고 낚시대를 잡아챘다. 낚시대가 활시위처럼 휘여든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하지 않는다. 무슨 나무등걸에 든든히 걸린 모양이다. 어쩐지 처음부터 잘 잡힌다 했더니 끝내…

리규택은 구경군들의 부추김때문에 그렇게 된것처럼 기분이 언짢았다.

젠장 어떻게 낚시를 벗겨낸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느라니 낚시줄이 물우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리규택은 안경낀 눈을 슴벅거렸다. 고기가 물린게 아니야?!…

얼마나 큰 놈이면 낚시대가 다 휘겠는가.…그의 짐작을 긍정해주듯 낚시줄이 물속으로 끌려드는것이 느껴졌다.

분명 큰 물고기다! 순간 가슴이 후두둑 뛴다. 놓치지 말아야겠는데…

바싹 긴장해진 그는 손에 땀을 쥐고 고기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솜씨있는 낚시군들이 하던것처럼 줄을 늦추기도 하고 물우로 끌어당겨 공기를 먹이기도 하면서 고기의 맥을 뽑았다. 한동안 요동치며 줄을 끌고다니던 고기는 점점 기운이 빠지는것 같았다. 흰배를 희끗 드러내며 모로 넘어졌다가는 다시 거무스레한 잔등을 내보인다. 힘없이 반항하면서도 줄을 당기는대로 끌려나온다. 기슭으로 나오는것을 보니 과연 팔뚝만 한 잉어였다.

《이크, 큼직한 놈이 걸렸구만!》

옆에 와서 구경하던 사람이 혀를 차며 감탄했다.

조심히 줄을 당겨 잉어를 끌어낸 리규택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아가미를 잡고 걸린 낚시를 뽑았다. 어찌나 큰 놈인지 낚시가 다 한절반 펴져있다. 입을 넙죽거리던 잉어가 갑자기 요동을 쓰며 푸들쩍 뛰여올랐다.

당황한 리규택이 잉어를 덥석 끌어안았다. 순간 손바닥같은 잉어의 꼬리가 그의 뺨을 후려쳤다. 어찌나 세찼던지 안경이 훌렁 벗겨져 달아났다.

어망결에 잉어를 떨구었다. 그놈은 펄떡펄떡 뒤채기며 점점 물가로 나간다. 안경을 찾아 낄새도 없었다.

규택은 다시한번 덮치며 몸통을 잡았으나 얼마나 미끄러운지 또 빠져나갔다.

잉어가 마지막기력을 쓰는것 같았다. 이제 한번만 뛰여오르면 물속으로 들어갈판이다. 이때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달려들며 덮치였다.

고기를 무릎사이에 몰아넣고 몸통을 눌렀다. 그래도 잉어가 요동을 쳤다.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도와 펄떡거리는 꼬리를 잡았다. 리규택은 얼른 고기구럭을 들고 뛰여갔다. 아구리를 벌리고 대가리부터 쓸어넣었다.

그놈은 구럭안에 들어가서도 가만있지 않는다. 구럭아구리를 졸라맨 리규택은 안도의 긴 숨을 내쉬였다. 뿌옇고 흐릿한 눈을 슴벅거리며 도와준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뉘신지 도와주어 고맙수다!》

처음 고기를 덮쳐누르던 사람이 허허 웃었다.

《안경이 없으니 알아보지 못하시는군요.》

어딘가 귀에 익은 목소리다.

《?!…》

그 사람은 얼른 모래불에 떨어진 안경을 찾아왔다. 수지안경이여서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그가 내미는 안경을 받아 손으로 닦아낀 리규택은 흠칫 굳어졌다.

《지배인이?…》

그제야 김성남이 인사를 했다.

《집에 찾아가니 낚시질하러 나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는 옆에 서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이분은 새로 오신 책임비서동지입니다.》

바지에 묻은 손톱눈만 한 고기비늘들을 툭툭 털고있던 책임비서가 허리를 펴며 머리를 숙였다.

《류준권입니다.》

집에서 몸을 피하기는 하였지만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낚시터에까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리규택은 당황하고 주눅이 들어 더듬거렸다.

《예… 헌데… 어떻게…》

류준권이 벙글서 웃었다.

《제가 인사도 할겸, 리규택아바이가 고기를 잘 잡는다기에 어죽을 좀 먹어볼가 해서 왔습니다. 허허.》

《무슨 롱담을…》

《롱담이라니요.》

책임비서가 모래불에 놓았던 큼직한 구럭을 헤치고 늄남비와 술병, 된장이며 쌀과 감자까지 꺼내놓자 리규택은 다시한번 꿈쩍 놀랐다.

괘씸스러운 지배인을 봐서는 말도 하고싶지 않았으나 새 책임비서의 서글서글한 품성이 마음에 든다.

《좋수다, 마침 고기도 잘 잡혔겠다, 어죽을 푹 쑵시다.》

먼저 옷을 벗어던진 류준권이 남비를 집어들며 어성버성 서있는 두사람에게 소리쳤다.

《내가 가마를 걸고 어죽 쓸 준비를 하겠으니 두분은 마른 나무를 주어오십시오.》

《아니, 그렇게야 어떻게…》

그의 손에서 가마를 앗아낸 리규택은 큼직한 돌을 두개 마주세워놓고 그우에 늄가마를 걸었다. 고기밸을 따고 손질하여 가마에 안쳤다. 쌀을 씻고 감자를 깎았다.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나무를 주어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불을 살렸다.

나무가 바짝 마르지 않았는지 불이 잘 당기지 않는다. 김성남이 엎드려 입바람을 불었다. 매캐한 연기만 무럭무럭 피여오를뿐 붙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깇고 눈물을 쥐여짜며 그가 일어서자 류준권이 엎드렸다. 후- 후- 힘차게 불어댔다. 불길이 일어날듯 하면서도 확 피여나지 않는다. 그도 얼굴에 검뎅이를 잔뜩 칠해가지고 일어섰다.

이번엔 리규택이 가마앞에 허리를 구부렸다. 숨을 한껏 들이쉬고나서 두볼을 고무공처럼 불구며 서서히 입김을 불었다. 불찌가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확- 불이 당겼다. 짙은 연기가 사라지고 불길이 너울거리며 가마밑굽을 감싸올랐다.

류준권이 얼굴에 묻은 검댕이를 닦으며 웃었다.

《역시 로기술자의 불지피는 솜씨가 다릅니다!》

씨쁘둥하던 리규택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피여났다.

잠시후 가마속의 어죽이 풀떡풀떡 끓기 시작했다. 구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타붙지 않게 가마안을 슬슬 긁어주던 류준권이 어죽을 떠서 훌훌 불며 맛보고나서 싱긋 웃었다.

《셋이 먹다가 한사람이 없어져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그럼 시작합시다!》

그들은 어죽을 가운데 놓고 해빛에 뜨거워진 모래불에 둘러앉았다.

김성남은 병마개를 따고 고뿌에 술을 넘쳐나게 붓고는 먼저 리규택에게 권했다.

《아바이… 다시… 제강소에 나와주십시오.》

얼결에 손을 내밀던 리규택은 그때 일이 생각났던지 제꺽 손을 거두며 고개를 외로 비틀었다.

《싫수다, 본체만체할 땐 언젠데… 두번다시 발길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수다. 젊은 기술자들도 많은데 나야 이제는 성쌓고 남은 돌이 아니요? 지배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소?》

리규택은 그때 다하지 못했던 분풀이를 마저 하려는듯 다시 입을 뗐다.

《아, 내가 뭐 장기쪽인줄 아시우? 난 나가지 않겠수다.》

책임비서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지난 기간 우리 일군들이 제 힘을 믿지 못하다나니 이리저리 방황하였습니다.

아바이… 제 무릎을 꿇고 빌겠습니다. 모든걸 용서해주십시오.》

류준권이 정말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려 하자 리규택은 황황히 그의 팔을 잡았다.

그들은 말없이 술잔을 맞쪼았다.

술이 몇고뿌 돌아가고 기분이 좋아지자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기간 해외로부터의 납입작전이 미국놈들의 압력책동으로 좌절되였다는 말을 듣자 리규택은 어죽맛이 싹 없어져 숟가락을 놓았다.

《그까짓 외국설비는 못 들여온대도 일없수다. 미국놈들이 그런다고 우리가 제강소현대화를 못하겠습니까?》

《옳습니다. 초고전력전기로를 우리 힘으로 건설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놈들의 코대를 보기 좋게 꺾어놓을수 있습니다.》

책임비서가 이렇게 말하자 리규택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초고전력전기로를 우리 힘으로 건설하겠다는게 정말입니까?!》

《그래서 아바이를 찾아왔습니다.》

《내 듣던중 제일 반가운 소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로친네의 잔소릴 들으면서도 슬금슬금 설계를 시작했수다.》

이번에는 류준권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바이, 정말 자신있습니까?》

《아, 있구말구요. 내 ㅎ제철소에 가보니 초고전력전기로라는게 별게 아닙니다. 우리 기술로 얼마든지 할수 있수다!》

《그런걸 우린 아바이가 ㅎ제철소에 아주 가는가 했습니다. 하하.》

《원, 책임비서두. 허허…》

리규택은 말없이 묵묵히 앉아있는 지배인을 못마땅한 눈길로 쳐다보며 뒤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배인을 생각하면 제강소에 다시 나가고싶은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수다.… 하지만 이 리규택은 강선사람이웨다. 이 땅에 태를 묻고 이 땅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강선사람이란 말이웨다!

초고전력전기로를 기어이 이 손으로 건설하여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다시 나가겠수다.》

《고맙습니다. 우린 첫 천리마기수들중의 한사람인 아바이를 믿었습니다!》

김성남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아바이에게 다시한번 용서를 빌고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한마디 말로…

모든것을 실천행동으로, 초고전력전기로를 기어이 건설하는것으로써, 바로 그 길만이 로기술자들에게서 용서받는 길이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있는 리규택에게 류준권이 한마디 했다.

《아바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우리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도 많으실텐데 천리마시대에 있은 이야기를 하나 하십시오.》

그 시절이 감회깊이 되새겨지는지 리규택은 실주름잡힌 눈을 가느스름히 좁혀뜨고 아득히 흘러가는 대동강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을 뗐다.

《지금도 잊을수 없수다. 천리마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던 때 일을 말이우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쇠바줄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우리 제강소에 주시였지요.

쇠바줄로 말하면 당시 일부 공업이 발전된 나라에서만 생산하였수다. 공장에서는 처음에 가까운 이웃나라에 도면이나 기술문헌을 보내줄것을 요구했습니다.

헌데 그들은 우리 나라 실정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고, 자기네것이나 가져다쓰라고 하며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그러자 일부 일군들은 쇠바줄을 만들수 없다고 머리를 흔들었고 지금형편에서 시기상조라고, 부질없는노릇이라고 했수다.…》 여기서 말을 끊은 리규택은 자책에 잠겨 앉아있는 지배인을 흘깃 쳐다보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다시 힘을 주어 말하였다.

《그때 쇠바줄 만드는 문제는 단순한 기술실무적문제가 아니였지요. 수령님의 뜻을 어떻게 받들고 실천하는가를 보여주는 우리 강선로동계급의 의지였고 정신력문제였습니다.

우리는 굳은 각오를 가지고 떨쳐나섰지요.

그러나 그런 기계를 본 일도 없고 만들어본 경험도 없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수다.

수십차례 협의회도 하고 기술문헌도 뒤져보았으나 신통한 안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제강소를 찾아주셨습니다.

기술자들과 허물없이 마주앉으시여 연구실태를 일일이 알아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손으로 새끼꼬는 흉내를 내시며 쇠바줄도 꼬는 바줄인데 뭘 그렇게 신비하게 생각하는가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쇠바줄이건 무슨 바줄이건 바줄은 바줄이 아닌가, 농촌에서 늙은이들이 새끼를 가지고 바줄을 꼬는 식으로 만들면 되지 거기에 무슨 신비한것이 있는가, 자료도 보고 연구도 하고 지혜도 합치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고 힘을 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때의 흥분이 되살아나는듯 리규택은 말을 끊고 한동안 큰눈을 슴벅거렸다.

류준권은 감동에 겨워 나직이 말했다.

《쇠바줄문제를 놓고 얼마나 마음쓰셨으면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수령님께서 몸소 그 방도까지 가르쳐주셨겠습니까!》

《옳수다.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는 순간 안타깝고 답답하던 가슴이 확 열리는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기계가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것이였습니다. 그후 우리들은 쇠바줄 꼬는 설비인 강삭기를 끝내 만들어내고야말았지요. 강삭기에서 보기 좋게 꼬여나오는 쇠바줄을 바라보며 너무도 기쁜 나머지 아이들처럼 얼싸안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참,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데 쇠바줄은 이것으로 완성된것이 아니였습니다. 겉보기엔 매끈하고 탄탄하여 나무랄데가 없어보였지만 실지 기중기에 걸고 물체를 들어올리자 쇠바줄이 서로 엉키면서 빙글빙글 감겨드는게 아니겠습니까? 랑패였지요.…》

진지하게 듣고있던 류준권이 놀라서 물었다.

《무슨 원인이였습니까?》

《후에 판명한데 의하면 기술부족에서 오는 치명적결함이였지요.

그러던 어느날 또다시 제강소에 찾아오신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미완성쇠바줄을 보아주시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도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수 없었지요.…

질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배인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몸소 쇠바줄을 만져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만하면 괜찮다고, 제강소기술자들이 끝끝내 자기 힘으로 쇠바줄을 만들어냈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사대주의, 기술신비주의를 불사르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 천리마의 정신으로 일하였기때문에 위대한 창조물을 낳게 되였다고, 그 정신력만 있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크나큰 믿음과 신심을 안겨주시였습니다.

우리는 수령님의 그 말씀에 솟구치는 격정을 누를수가 없었습니다.·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쇠바줄이 흘러나오는 광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석탄열처리로에 잠시 시선을 멈추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는것이였습니다. …》

이야기에 심취된 두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말을 기다렸다. 리규택은 고뿌에 물을 부어 목을 추기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영문을 알수 없어 의아한 눈길로 그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석탄열처리로에서 피여오르는 검붉은 연기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쇠바줄이 아무리 귀중하다 해도 로동자들의 건강과는 바꿀수 없다고 하시면서 전력사정이 긴장하지만 여기만은 전기를 넉넉히 보내주어 모든 석탄로들을 전기로로 바꾸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순간 우리는 그 어떤 물질적재부보다 우리 로동자, 기술자들을 더 귀중히 여기시는 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고마움에 눈물을 흘리고야말았습니다.…》

그때 감격이 다시금 사무치게 안겨와서인지 리규택은 팔소매로 눈굽을 조용히 훔쳤다.

《그후 우리는 자체의 힘과 기술로 자동공급장치가 달린 전기열처리로에서 끝내 질좋은 쇠바줄을 만들어내고야말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우리 제강소에서는 가는 쇠바줄로부터 대형페쇄식쇠바줄에 이르기까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요구하는 쇠바줄이 물결처럼 쉬임없이 쏟아져나오게 되였습니다.

이 나날에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 기술과 힘을 믿고 자력갱생의 정신력을 발휘할 때 이 세상에 못해낼 일이란 없으며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는것을 심장으로 받아안게 되였습니다.》

리규택의 이야기는 끝났다.

모두들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이 없다. 대동강물우로 무엇인가 가득 실은 짐배가 퉁퉁거리며 지나간다. 흰물갈기가 늠실늠실 기슭으로 밀려와 처절썩 부딪쳤다. 서늘한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겨났다.


X


그날 저녁 집에 들어온 김성남은 잠을 이를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첨단기술로 장비된 남의 설비에 현혹되여 여러해동안 헤매고 다닌것이며 자기가 품을 넣어 키운 젊은 기술자들이 전기로건설에 발벗고나서지 못한것이 무엇때문이였는가 하는것이 느껴지며 가슴이 아팠다.

오늘날에 와서 나는 그들의 육체도 기력도 다 쇠진해졌을것이라고 속단했었다. 그들을 데려내오자는 책임비서의 제의에도 주저하였다. 더우기 리규택이 ㅎ제철소에 가려는게 아닌가고까지 생각하였던 내가 아닌가.…

나는 또다시 그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제강소를 가슴에 안고살았다. 결코 쇠진해지지도 않았다. 초고전력전기로건설을 얼마든지 우리 힘으로 할수 있다고, 전기로설계를 자기가 맡아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던 리규택아바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그의 눈빛은 젊은이들처럼 얼마나 신심과 열정으로 번쩍이고있었던가!

그 지칠줄 모르는 젊음과 열정은 어디에 근원을 둔것인가?…

그들은 전후의 어려운 시기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의 궤변을 맞받아 꿋꿋이 강철로 우리 당을 받들어온 천리마기수들이다.

그렇다. 그들의 심장속에 천리마의 넋이 살아맥박치고있다. 그 넋의 빛발로 하여 오늘까지도 젊음과 신심에 넘쳐 결연히 기치를 드는것이리라.

천리마시대의 인간들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오늘 나는 그 넋과 함께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전우를 되찾았다. 두번다시 잃어서는 안된다.

나의 잘못된 처사로 들어간 로기술자들을 모두 데려내오리라. 그들의 인생말년을 아름다운 강선의 노을처럼 빛나게 해주기 위해, 새 세대들에게 그 고귀한 넋을 실천적모범으로 계승해주도록 하기 위하여…

어느덧 동창이 훤히 밝아왔다.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김성남은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신선한 공기가 방안으로 흘러든다. 새벽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가에 서서히 떠오르던 보라빛구름이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물든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천리마전설이 그 노을빛에 실려 들려오는것 같았다.

…그 뜻깊은 백양나무우에서 번개가 치고 우뢰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쇠물빛노을속으로 날개돋힌 강철천리마가 훨훨 날아올랐단다.

그때 천리마의 발굽에서 일어난 불꽃이 온 나라에 축포처럼 흩날려퍼졌는데 그 불꽃이 떨어진 곳마다에서 숱한 자동차, 뜨락또르, 기계들이며 먹을것, 입을것이 폭포처럼 쾅쾅 쏟아져나오고 곳곳마다에서 우렁찬 노래소리가 터져올랐단다.


우리는 자랑찬 사회주의건설자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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