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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회


제2장. 돌아오다


2


인생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떳떳이 마무리하겠는가를 생각하던 리규택은 설계를 다시 하리라 결심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든 집어던졌던 초고전력전기로설계를 해보고싶다.

불쑥 일어나 당반에서 둘둘 만 설계용지를 내리웠다.

그 모양을 의아한 눈길로 지켜보던 로친이 나무랐다.

《년로보장을 받구 집에 들어왔는데두 도면이우? 남들은 현대화때문에 해외출장이랑 다닌다는데…》

자기 마음은 알지도 못하면서 지청구를 하는 로친에게 리규택은 버럭 소리쳤다.

《당신은 뭘 안다고 현대화요, 해외요 하면서 그러오. 그래 유진섭이 해외대표단으로 가라는걸 차버리고 집에 들어간걸 모른단 말이요? 나도 그렇소! 무엇이 모자라 외국기술자들한테 가서 머리를 숙인단 말이요?》

《에구, 속은 시퍼렇게 살았수다. 컴컴한 방구석에 앉아 아무리 도면을 그렸댔자 누가 알아줄거나 같소. 차라리 터밭울타리나 수리하는게 좋겠수다. 당신이 좋아하는 부루랑 감자싹이 돋아났는데 닭들이 들어가 다 짓쪼을것 같수다.》

《어허, 참…》

리규택은 더 할말이 없어 도면을 밀어놓고 일어섰다.

창고에서 낫을 꺼내 허리에 가로지르고 달마산에 올랐다. 가느다란 잡관목을 한짐이나 해왔다. 땀을 뚝뚝 흘리며 한나절이나 걸려 울바자를 엮고있는데 안해가 나와보고 잔소리다.

《어휴, 그게 어디 울타리요. 사이가 그렇게 넓어서 닭이 아니라 개까지도 좋다고 드나들겠수다. 당신이 설계를 잘한다고 사람들이 말하던데 그 울타리엮는걸 보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수다.

설계도 그렇게 했소?》

별의별 잡생각을 하면서 건성건성 엮다보니 울타리가 들쑹날쑹 말이 아니다. 복잡한 그의 마음처럼…

젊어서는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던(직장일을 잘하라고 집일은 시키지도 않았었다.) 안해가 아무 말이나 탕탕 하는걸 보니 아직도 기력이 정정한 남편이 제강소현대화도 못한채 집에 들어온데 대한 불만이 가득한것 같았다.

리규택이 변명처럼 대꾸했다.

《설계야 꼿꼿한 자막대기가 있으니 잘될수밖에…》

《그럼 자막대기가 없어서 울바자가 이 모양이요? 아, 그만 됐수다. 그렇게나 하자면 내가 더 나으니 어서 들어가 도면하구나 씨름해보라구요.》

《허허, 당신 좋을대로 하구려.》

리규택은 마침이라는듯 손을 툭툭 털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에 있기가 갑갑하여 밖으로 나왔다.

무슨 희소식이 없나 해서 유진섭을 찾아갔다. 그는 파철을 수집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니 토막소식들을 먼저 알고있었던것이다.

무슨 기술서적을 보고있던 유진섭이 돋보기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별루 좋은 소식은 못되네만… D그룹과 벌렸던 콘스틸전기로납입작전이 좌절되였다누만.…》

《왜?》

《로가격을 터무니없이 높였다던지… 더러운것들 같으니…》

《뭐?》

리규택은 망연하여 큰 눈만 더부럭거렸다.

그러나 다음순간 잘코사니하고 생각했다.

그런것들에게 모두들 기대를 가지고있었으니…

남의 설비를 쳐다보며 해외로 나다니는 사람들을 속으로 실컷 비웃어주었다. 남을 믿다가는 그렇게밖에 될수 없지…

하지만 은근히 화가 치밀어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우릴 얕잡아봐도 분수가 있지, 그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밸이 울컥 치밀었다.

《이보라구, 그깐놈들이 그런다구 우리가 현대화를 못하겠나? 우리한번 해보자구. 첨단기술이 뭐 저들의 독점물인가? 난 로체설계를 할테니 자넨 전기부문을 연구해보는게 어떤가?》

유진섭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거린다.

그길로 집에 돌아온 리규택은 당반에서 도면말이를 와락와락 내리웠다.

먼지를 툭툭 털고 책상우에 펼쳐놓은 다음 분도기며 직각자, 설계도구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두번다시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물건들이다. 그 누가 하라고 하든말든 초고전력전기로설계를 다시 시작했다.

자기 힘, 자기 기술을 스스로 속시원히 느껴보고싶다. 그래야 직성이 풀릴것 같다.

몇달이 흘렀다.

설계에 전심전력을 다하였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구경도 못한 전기로인데다가 몇해전에 연구해보았던 기술제안서를 상기하며 설계하자니 걸리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초고전력전기로에 대한 기술서적이 책상우에 쌓여졌다.

그리다가는 지우고 지웠다가는 다시 그리기를 수십, 수백번…

그러는 속에 터밭의 감자수확도 끝나고 강냉이도 다 쪄먹고 그 자리에 가을배추씨를 뿌리는 계절이 왔다.

초고전력전기로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는 뻔한것 같았지만 각 부문에 대한 설계를 과학적으로 하자니 막연한것이 많았다.

문득 ㅎ제철소에 있다는 초고전력전기로가 생각났다.

비록 들여온지 오래고 현재는 일반전기로로 조업하고있지만 어쨌든 형식은 초고전력전기로가 아닌가? 미리 가보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이튿날 그는 ㅎ제철소에 갔다. 마침 전기로는 대보수를 하는중이여서 돌리지 못하고있었다.

초고전력전기로를 관찰해보며 필요한 부분을 속사하고있느라니 누구인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돌아다보니 ㅎ제철소 지배인 한영빈이다.

《웬 사람이 초고전력전기로를 속사한다고 해서 나왔더니 자네였구만.

사람두 원, 우리 제철소에 왔으면 나부터 찾아야지. 정말 인사불성이구만!》

그는 금속전문학교시절의 동창생이다.

《일이 바쁜 지배인을 감히 어떻게…》

《허, 그 입삐뚤어진 엇드레질은 여전하구만. 마침 잘 왔네. 내 그러지 않아도 자넬 찾아가려고 했는데… 자, 저기 가서 이야기하자구.》

한영빈은 그를 끌고 전기로조작실창문앞에 주런이 놓여있는 의자쪽으로 갔다. 용해공 몇이 의자에 앉아 한담을 하다가 그들이 곁에 와앉자 얼른 일어서며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래 어떻게 여길 왔나?》

뭐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리규택은 한동안 머밋거렸다.

《저… 사실은 초고전력전기로를 설계해보자구…》

한영빈은 놀라운듯 눈을 치떴다.

《어랍쇼, 내가 알아보니 자넨 년로보장을 받구 집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

워낙 솔직하고 대범한 리규택이였다.

그는 오게 된 사연을 죄다 털어놓고말았다.

머리를 끄덕거리며 이야기를 다 듣고난 한영빈은 무엇을 타진해보려는듯 그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음, 그렇단 말이지… 이보라구, 그럴것없이 자네가 우리한테 오는게 어떤가?》

《어째서?》

한영빈이 큰 비밀을 알려주는듯 그의 귀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우린 저 초고전력전기로를 개조해보려고 하네.》

《음, 참 좋은 생각이구만!》

리규택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그것을 허락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한영빈이 만족하여 손바닥을 쑥쑥 비볐다.

《자네도 알지 않나. 이 전기로가 제구실을 못하고 일반전기로로 운영되고있다는걸. 그러니 기술고문으로 여기 와서 손잡고 일해보자구.

인생의 마무리를 깨끗이 해야 할게 아닌가? 내 집이랑 생활조건도 잘 보장해주겠네!》

제강소에서는 자기같은걸 우습게 여기고 괄세를 하는데 한영빈은 함께 일하자고 불러주니 리규택은 눈물이 나게 고마왔다.

동무따라 강남간다고 한영빈이한테 와서 마음터놓고 일해보고싶다!

그런데 정작 강선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쩌릿해진다.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희망을 꽃피워준 고향,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령도자욱이 가는 곳마다 깃들어있는 영광의 땅, 내 한생의 기술과 넋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고장이다.

더우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처럼 걱정하시며 바라시는 제강소현대화도 하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떠날수 있단 말인가!

자기가 아무리 일군들의 괄세를 받았다 해도 강선을 떠나지 못하리라는것을 눈뿌리 뜨겁게 절감하였다.

《날 믿어주어 고맙네. … 하지만 난 강선을 떠날수 없네!》

《!…》

그가 선뜻 응했더라면 한영빈은 오히려 그를 의심했을것이다.

자기 고향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날 저녁 집에 초청하여 잘 대접하고난 한영빈은 제 승용차까지 태워 강선으로 바래주었다.

《자네 일이… 제강소현대화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네!》

《고맙네!》

집으로 돌아오니 기다렸던듯 안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제 새로 왔다는 책임비서와 김성남지배인이 찾아왔댔수다!》

리규택이 입을 씰룩거렸다.

《무슨 일로 왔다우?》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내인이라는게 따져물을수도 없고… 어디로 갔느냐 하기에 솔직히 말해주었지요. 술이랑 무슨 안주감도 한구럭 들고왔다가 그대로 두고갔수다. 당신이 오면 대접하라고… 아마 오늘 왔다는걸 알면 래일쯤 또 올거우다. 어디 가지 말라고 합디다.》

리규택이 흥- 코웃음쳤다.

《내가 뭐 장기판의 졸인가 하는 모양이지.》

로친이 가볍게 나무랐다.

《에구, 무슨 소릴 그렇게 하시우. 큰 간부들이 왔댔는데…》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요!》

《원,령감두…》


X


아침 일찍 출근한 김성남은 기사장을 불러 하루사업지시를 주고나서 당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성남이 전화합니다. ㅎ제철소에 전화를 걸어보니 리규택아바이가 어제 떠나갔다고 합니다. 당위원회접수에서 기다리겠습니까? 예, 알았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새로 부임되여오다나니 사업이 몹시 바쁜 당비서였지만 어제는 시간을 짜내여 리규택의 집에 함께 갔었다.

지배인이 혼자 갔다가는 문전거절당할것 같다고 웃었다. 리규택은 집에 없었다. 3대혁명소조로 제강소에 나와있을 때부터 잘 알고있던 안주인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몇달째 도면과 씨름질하던 령감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ㅎ제철소에 갔다는것이다.

여전히 펄펄한 리규택의 기상이 느껴졌다. 비록 헛걸음은 했지만 김성남으로서는 생각이 깊어졌었다.…

사무실문을 나서는 김성남은 한가지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다. 리규택이 왜 ㅎ제철소에 갔댔을가? 그 기업소 지배인과 동창이고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알고있는 김성남은 어쩐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ㅎ제철소에서 전기로를 개조한다고 하던데 혹시 리규택을 데려가려고 찾았던것이나 아닌지… 십중팔구는 그럴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전부터 지배인이 자기와 함께 일해보자고 리규택을 부추겼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김성남은 별스레 온몸이 긴장해지는감을 느꼈다.

책임비서와 함께 리규택이 살고있는 화석동으로 가면서도 그 말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의 예감은 리규택의 집앞에서 확신으로 변하였다.

문을 열고나온 안주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 수고로이 또 오셨군요. 그런데 령감이 오늘 아침 낚시대를 들고나갔습니다.》

김성남은 아연해졌다.

《ㅎ제철소에서 돌아오면 우리가 인차 찾아오겠다던 말을 하셨습니까?》

안주인이 한숨을 내쉬였다.

《그럼요. 그래도 부득부득 낚시질을 나가니 원… 그 령감 고집을 나같은게 당해냅니까? 지배인두 잘 알지 않나요.》

김성남이 당황해하자 책임비서가 배심좋게 웃었다.

《아마 려행의 피로를 풀려고 그랬겠지요. 어디서 낚시질을 하군 합니까?》

《그전엔 랭각수가 나오는 호수에서 했는데…》

《알만 합니다. 그럼 찾아가야지요. 참, 댁에 작은 늄가마가 있으면 좀 빌려주십시오.》

《있긴 하지만 그건 해서?…》

《예, 어죽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허허.》

긴장해서 굳어졌던 안주인의 얼굴에도 즐거운 미소가 피여났다.

《에구, 그 령감이 잡기나 한다구요. 공연히 시간만 보내지요. 하여간 방안에 들어갑시다. 내 곧 준비해드릴테니.》

《아니, 여기가 좋습니다, 시원한게. 허, 터밭에 갓을 많이 심은걸 보니 규택아바이가 갓김치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예, 갓김치라면 오금을 못쓴답니다. 그럼 잠간 기다리시우. 내 얼른…》

그래도 간부들이 제 령감을 찾아다니는것이 기뻤던지 녀인은 흥이 나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심중한 얼굴로 서있던 김성남은 조심스럽게 자기의 속생각을 비치였다.

《리규택아바이가 ㅎ제철소로 가려는게 아닌지…》

《그건 무슨 소립니까?》

김성남은 ㅎ제철소 지배인과 리규택의 친분관계와 자기의 예감을 간단히 말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류준권이 부정하듯 손을 흔들었다.

《규택아바이는 절대로 제강소를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그 노여움이 아직 풀리지 않았겠지요.》

《…》

책임비서의 말은 그러했어도 김성남은 가슴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있는 긴장함은 풀수 없었다.

안주인은 정말로 늄가마며 어죽감, 삐죽한 술병까지 넣은 묵직한 구럭을 들고나왔다.

두사람은 호수를 찾아 떠났다.

넓은 호수가주변에는 낚시군들이 하얗게 덮여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살펴보고 물어보았으나 리규택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낚시터에 나타난 지배인과 책임비서를 알아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인가 귀뜀해주었다.

《그 사람은 몇달째 호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혹시 대동강에나 나가는지 …》

김성남은 책임비서를 쳐다보았다.

《대동강에 나가봅시다.》 라고 한 류준권은 지배인의 손에서 무거운 구럭지를 앗아들고 저벅저벅 앞서 걸었다. 감탕에 빠졌던 신발에서는 쿨쩍쿨쩍 물소리가 났다.

호수는 그래도 좀 나은 축이다. 눈뿌리가 모자라게 펼쳐진 대동강기슭을 따라 띄염띄염 수많은 낚시군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속에 있기나 할지 모르는 리규택을 찾는것은 풀섶에 떨어진 바늘찾는것처럼 힘들것 같다.

감탕묻은 신발에 모래까지 게발리니 발을 쳐들기도 무겁다. 전기로 앞에 선것처럼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아무리 찾아도 리규택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피하기나 한것처럼…

누구인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지배인동무, 누굴 만나려고 그러시우?》

리규택의 목소리같았다. 김성남이 뛰여가보니 어디선가 본듯 하면서도 모를 사람이다. 하긴 년로보장을 받고나간 숱한 사람들을 다 기억할수는 없는것이다.

《기술공정실에 있던 리규택아바이를 찾습니다.》

《그 로체설계를 하던 키가 장대같은 령감 말입니까? 대동강에선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혹시 랭각호수에 있겠는지.…》

김성남이 어이가 없어 허구프게 웃는데 그곁에 있던 농립모자를 쓴 사람이 참견했다.

《모르는 소리, 아침일찍 그 사람이 나왔댔수다. 저쪽 도래굽이쪽으로 혼자 가는걸 봤는데…》

《고맙습니다.》

그들은 아득히 바라보이는 도래굽이쪽으로 털썩털썩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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